전통정원의 재해석 ② 한국식 정원이란
전통정원의 재해석 ② 한국식 정원이란
정진우 입력 2013-09-23
친환경 자연공간 속 '비움·채움의 미학' 깃들어
▲ 건지산 힐링숲, 조경단 역사경관 묘역, 동물원, 체련공원,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등을 에두르며 전통정원화사업이 추진되는 전주 덕진공원. 전북일보 자료사진
전통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터살피기(相地), 자리잡기(立地), 설계(規劃), 시공(營造) 등의 과정을 거쳤다.
이 가운데 터살피기와 자리잡기의 경우 '지세는 높낮이를 따르고, 문을 들어서면 아취를 느끼게 하며, 지형에 따라 경물을 배치한다'는 지세자유고저 섭문성취 득경수형(地勢自由高低 涉門成趣 得景隨形)의 의미를 앞세웠다.
설계·시공단계에서는 '인지제의, 정청당위주 선호취경'(仁地制宜, 定聽堂爲主 先乎取景·지형에 따라 알맞게 조성하되, 청당 위치선정을 중히 여기며 경물의 취사선택을 앞세운다)을 중시했다.
△전통정원은 자연공간
굳이'배산임수'(背山臨水·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나 '장풍득수'(藏風得水·바람은 감추고 물은 얻는다)와 같은 풍수적 사고를 거론하지 않아도, 한국정원은 친환경 자연공간이다. 자연재료와 조영물을 적절하게 배치해 한국의 미를 극대화하고, 몸과 마음을 스스로 열리게 만드는 공간이 한국정원인 셈이다. 또 한국정원은 심층적 생태주의와 차경기법을 앞세운, 비움과 채움의 미학을 깃들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원을 '원림(園林)'으로 불렀고, 일본에서는 '정원(庭園)'이라고 썼다. 학계에서는 정원을 일본식 용어로 보는 이가 많다. 국내에서는 가원(家園), 임원(林園), 임천(林泉), 원(園), 원(苑), 정원(庭院), 화원(花園) 등의 다양한 명칭을 사용했고, 이제는 정원으로 굳어졌다.
어떤 이는 원림을 자연의 조건을 훼손하지 않고 식물과 조형물의 배치를 돋보이게 하는 친환경 조경문화로, 정원은 인위적인 부분이 가미된 인공적인 조경문화로 구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원은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일종의 예술이다. 정원예술을 통해 사람들은 심신을 달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덕진연못에 전주 정체성 담아야
그런 한국식 정원을 덕진공원에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이 일단은 '옳은 선택'으로 평가받는다. 전북지역의 경우 남원 광한루가 대표적인 한국식 정원으로 불리고 있으며, 덕진연못이 전통정원으로 탈바꿈한다면 사정이 달라지게 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덕진공원 전통정원화 사업은 한국식 정원의 새로운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덕진연못의 역사적 의미는 많은 문헌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고, 역사성과 상징성을 갖춘 공간에 전통정원이 채워진다면 전주의 시격이 한단계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 대표적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덕진지(德眞池)는 부(府)의 북쪽 10리에 있다. 부의 지세는 서북방이 비어 있어 전주의 기맥이 이쪽으로 새어 버린다. 그러므로 서쪽의 가련산에서 동쪽의 건지산까지 큰 둑을 쌓아 기운을 멈추게 하고 이름을 덕진이라 하였으니, 둘레가 9073자이다"라고 적고 있다. 또 고려의 대문장가 이규보는 용왕제와 성황제가 덕진연못에서 거행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창업과 관련된 건지산과 조경단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러면서도 덕진공원 전통정원화사업은 덕진공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덕진연못외에도 건지산 힐링숲, 조경단 역사경관 묘역, 동물원, 체련공원,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등을 에두르며'한국적 도시공원모델 제시'라는 포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전북대 김정문 교수는 "덕진공원 전통정원 조성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주의 정체성에 맞는 전통정원에 대한 개념이 정립돼야 하고, 덕진연못·조경단·건지산·동물원 등이 활용지속성과 환경생태성이라는 밑그림아래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면서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넓게 멀리 보고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면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 한·중·일의 전통정원
- 韓 '자연 순응' 中 '규모 압도' 日 '축소 지향'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의 전통정원은 '차경'(借景·경치를 빌리다)을 중시하는 동양정원이라는 울타리에 속해있다. 그러면서도 세 나라의 전통정원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에 대해 우석대 신상섭 교수는 "한국의 정원이 '1대 1'이라면, 중국의 정원은 '1대 10', 일본은 '1대 1/10'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정원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데 주력했다면, 중국의 정원은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없을 정도로 규모를 앞세웠고,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는 자연을 축소하는데 천착했다는 것.
또 한국에서는 궁궐·별서정원이, 일본에서는 사찰정원, 중국은 부유한 관리들과 문인들이 지은 민간정원이 발달한 것도 특이하다.
숲이 유난히 많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진 한국의 경우 자연스럽게 자연과 동화된 자연풍경식 조경을 중시했다. 연못·누각·화단 등은 직선으로 처리하는 등 자연미를 최대한 배려하면서 도형적인 대비효과를 가미했다. 한국인 특유의 무위자연과 겸양,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순천주의(順天主義)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의 정원은 자연의 이상향과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 규모를 키웠고, 형식에 치우치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돋보인다. 동굴·바위 등을 인공적으로 만들고, 누각도 높고 화려하다.
한편 일본은 땅가름(地割)과 돌놓기(石組)로 대표되는 독특한 정원양식을 발전시켰다. 재난재해가 많다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일본의 정원은 폐쇄적이고 축소지향적이다. 불교사찰·신사를 중심으로 정원문화가 발달한 만큼 간결하고 사색적이며 작위적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