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7

‘생애구술사’로 ‘돌봄’을 고민하는 사람들...서울 중랑구 '건강 리더'의 통합 돌봄 - 경향신문

‘생애구술사’로 ‘돌봄’을 고민하는 사람들...서울 중랑구 '건강 리더'의 통합 돌봄 - 경향신문

‘생애구술사’로 ‘돌봄’을 고민하는 사람들...서울 중랑구 '건강 리더'의 통합 돌봄
2022.06.07

김보미 기자


서울 중랑구의 고령층 주민들을 돌보는 ‘건강 리더’들이 어르신들과 신체를 유연하게 만드는 건강소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초록상상 제공

“가난에 대해 대부분은 막연하죠. 그래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접하면 우선 새로울 겁니다. 빈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게 되고, 최소한의 기회조차 균등하지 않은 현실에 화가 나기도 할 거예요. 듣기 전까지는 이런 이야기는 알 수 없어요.”


지난달 3일 오전 최현숙 작가가 화상으로 진행한 생애구술사 강의.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2시간 넘게 집중했다. 이날 8번째 수업을 포함해 한 달 넘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기록하는 일을 공부하는 이들은 서울 중랑구에서 ‘건강 리더’로 불리는 어르신 돌봄 활동가들이었다. 생애사와 돌봄은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걸까.



중랑구에는 지역 돌봄을 고민하는 마을 공동체에서 양성한 ‘건강 리더’가 활동 중이다. 이들은 소외계층의 안부를 묻고, 매주 한 번씩 고령층 주민들과 건강을 지키는 법에 대해 연구하거나 운동을 배우는 소모임도 연다. 어르신들과 일상에서 소통하는 건강 리더들이 구술로 노년층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색다른 돌봄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번 작업을 기획한 중랑마을넷의 장이정수 상임이사는 “혼자 사는 노인을 찾아가 도시락을 배달하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는 행정적으로 굉장히 잘 짜여있기는 하지만 주고받는 사람이 분리된 일방적 방식”이라며 “‘이웃을 만드는 게 더 큰 복지’라는 측면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살아온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기록 대상은 중화2동에 거주 중인 어르신 15명이다. 중랑구는 65세 이상 인구가 7만2858명으로 전체 주민(38만8941명, 올해 4월 기준)의 18.7%에 달해 서울 평균(17%)보다 높다. 특히 중화2동은 20%가 넘는다. 중랑구 고령 1인가구의 10%가 여기에 사는 셈이다. 소외계층 비율이 높아 팬데믹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이기도 하다.


서울 중랑구의 고령층 주민들을 돌보는 ‘건강 리더’들이 어르신들과 꽃 그림으로 액자를 만드는 건강소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초록상상 제공

건강 리더를 육성하는 여성환경연대 동북지부 ‘초록상상’의 김주희 대표는 7일 “돌봄은 신뢰와 친근감으로 관계(라포)를 이뤄야 한다는 점에서 생애구술 작업과 공통점이 있다”며 “구술사를 통해 지역사회가 함께 복지를 고민하는 통합 돌봄을 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점의 돌봄을 떠올릴 수 있었던 데는 오랜 시간 이어온 지역 공동체가 큰 역할을 했다. 동네가 주민들의 건강을 살필 수 있는 방식을 논의하기 위해 2016년부터 중랑넷과 중랑의사회가 매달 만나기 시작했다. 이어 지역 약사회, 복지관, 장기요양기관, 마을의 풀뿌리 단체까지 참여한 ‘건강공동체’가 2020년 꾸려졌다. 여기서 지난해 서울시와 자치구의 주민 협치 사업으로 지역사회 통합 돌봄을 제안하면서 구술 작업도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주희 대표는 “지역 공동체 의제로서 ‘건강’은 개인적인 측면, 신체적인 요건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과 연계해 다루게 됐다”고 말했다. 여성의 건강에서 여성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으로 시선을 옮겨 조건 없는 생리대 지원을 확대하고, 여성이 주로 돌보는 고령층에 대한 건강까지 범위가 확장되는 식이다. 생애구술사도 같은 맥락이다.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엮어 내는 과정에서 현재 돌봄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이웃들에게 잘 몰랐던 노인들의 삶을 전하는 취지도 있다. 서로를 잘 알아야, 잘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이정수 이사는 “사회에 무의식적인 노인 혐오도 존재한다. 하지만 고령층에서도 돌봄의 역량을 갖춘 분을 찾을 수 있다”며 “복지 서비스를 무조건 제공하는 것보다 공동체가 서로를 돌보는 선순환을 만들려면 노인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전했다.


건강 리더들은 상반기까지 어르신들에 대한 구술 작업을 마친 뒤 지역 노인들의 생애 구술사를 책으로 엮어 연말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