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8-법화 신앙
승인 2004.02.25
“본래 부처 깨달으려면 법화경 수지독송하라”
사진설명: 법화경을 설할 때의 장면을 묘사한 진주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국보 302호).일월만영(一月萬影). 달은 하나지만, 달 그림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뜻이다.
근본 달은 하나지만 달그림자는 바닷물에도, 심산유곡 계곡물에도, 종지물에도 있다. 그래서 천강유수 천강월(千江有水 千江月), 천개의 강마다 천개의 달 그림자가 있다고 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는데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재세시에는 성문(聲聞) 연각(緣覺)이 있었고, 이후 수많은 불보살이 등장했다.
극락정토의 아미타불,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 지혜를 주는 문수보살,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 모두 제각각 다스리는 영역이 있었다. 마치 천개의 강에 비친 천개의 달과 같았다. 하지만 달은 하나며 나머지는 모두 달그림자다.
그 이름이 성문 연각이든 수많은 불보살이든 모두 달 그림자다. 심지어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난 석가모니까지. 그러면 허공에 떠있는 하나의 달은 누구인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대승의 수많은 불보살들은 〈법화경〉에 이르러 다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그 석가모니부처님은 〈아함경〉에 나오는 역사적 실존으로서의 부처님이 아니다. 절대화 되고 신비화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그속에는 누구나 성불할 수있다는 불성관이 담겨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숭배하고 모시며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는 신앙이 법화신앙이다.
〈법화경〉은 범어로 ‘Saddharma-Punddrika-Sutram’이다. ‘Sad’는 ‘정’(正) 또는 ‘묘’(妙)로 해석되고 ‘Dharma’는 ‘법’(法), ‘Pundarika’는 ‘흰 연꽃’을 나타낸다. ‘Sutram’은 성인의 말씀을 적어놓은 ‘경’(經)을 뜻한다. 직역하면 ‘무엇보다도 바른 흰 연꽃과도 같은 가르침’이라는 뜻이 된다. 〈법화경〉은 부처님의 지혜를 열어(開) 보여(示)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悟)하고 부처님의 지혜에 들게(入)함을 목적으로 편찬된 경이다. 다른 경에서는 성불할 수 없다고 한 악인이나 여인까지도 성불이 가능하다고 설하고 있다.
비유 뛰어나 문학적 소재로 애용
〈법화경〉은 불교경전 중 가장 넓은 지역에 유포되어 많은 민족들에게 애호되었으며, 가장 깊이 연구된 대승경전이다.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화택(火宅)의 비유’, ‘궁자(窮子)의 비유’ ‘약초(藥草)의 비유’ ‘화성(化城)의 비유’ ‘여래의 수명’ 등이 모두 〈법화경〉에서 방편설로 등장하는 것들이다. 뛰어난 문학적 비유로 인해 문학의 소재로도 많이 애용되었다.
가장 넓은 지역에 유포된 경전신앙
‘수지독송’강조… 한중일 삼국서 성행
경전에서는 본래 부처님은 오백진전겁 전에 이미 성불하였으며 인도에 나타난 역사상의 부처님은 응신불이라고 한다. 여기서 법화경의 구원실성(久遠實成)관이 나온다. 이미 성불했다는 것이다. 이를 일부에서는 기독교의 메시아와 같은 영혼불멸의 존재로 받아들이지만 이는 불교의 본 뜻과 맞지않다. 그보다는 모든 중생은 성불할 수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구원실성관은 〈법화경〉의 또다른 핵심사상인 회삼귀일(會三歸一)로 연결된다. 성문 연각 보살이 모두 하나라는 사상은 부처에 대한 갖가지 개념을 일거에 정리한다. 마치 냇물과 강물이 모여 결국은 바다로 모여드는 것과 같다. 법화경은 또 이행도(易行道)를 강조하고 있다.
삼국시대때 경전 들어와
‘법화경을 듣는 이는 빨리 불도를 이루며, ‘불탑과 불상을 조성하거나 불탑, 불상에 예배하는 것만으로도 공덕을 얻는다. 또 아이들이 장난으로 풀이나 나무로 붓을 삼고 손가락이나 손톱으로 불상을 그려도 다 불도를 이룬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믿음(信)에 의하여 성불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화경〉은 스스로 독송하거나 혹은 타인이 독송하는 것을 듣기만 하여도 가피를 얻는다고 한다. 경전 속에도 경권수지(經卷受持)를 권장하는 구절이 많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사찰 불사나 가정집 애경시(哀慶時)에는 법화경을 공양하고 수지독송해오고 있으며, 법화경 사경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법화신앙은 석가모니 부처님에 의지해 성불에 이르고 그 공덕을 믿고 따르는데 있다.
〈무량의경〉(無量義經) 〈묘법연화경〉 〈관보살행법경〉(觀菩薩行法經)을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이라 한다. 이를 법화경의 개경(開經), 본경(本經), 결경(結經)이라 한다.
중국에 건너가서는 천태대사 지의에 의해 교학적.사상적으로 조직.정리돼 천태사상이 나온다. 〈법화경〉은 천태종의 소의경전이다.
사진설명: 국보 185호 묘법연화경.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법화경〉은 삼국시대부터 들어왔다. 고구려는 일본의 ‘성덕태자전’ 에서 법화경을 공부하는 장면이 나오고 중국에 들어가 천태대사의 제자가 되어 법화수행을 한 석파라는 스님이 있다.
백제는 석현광스님이 중국에 건너가 당시 진(陳)의 남악혜사(514~577)에게 법화경 안락행문을 전수받아 법화삼매를 증득해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그는 중국 남악영당내의 28인도(人圖)와 천태산 국청사 조당(祖堂)에 각각 그가 모셔져 있었다.
석혜현은 어려서부터 법화경을 지송하다 생을 마쳤는데 그 시신을 호랑이가 먹고 오직 혀만 남겨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는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는 공덕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에서는 일찍부터 법화경을 강송했다.
신라귀족출신이었던 연광은 80세에 입적해 화장을 했는데 혀만이 타지 않았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연광의 두 누이가 그 혀를 거두어 공양했는데 혀가 자주 법화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내고, 모르는 글자가 있어 물어보면 모두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가람배치에 지대한 영향
이처럼 신라는 법화경의 수지 독송을 권장하는 설화가 대부분이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에는 신라법화원에서 법화경강회인 법화회를 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적산법화원에서 행한 이 법화회는 강경(講經)의 법주가 1인이고 논의가 2인이며, 남녀 신자들이 법당에 모여서 낮에는 강설을 듣고 저녁에는 예참을 하고 독경을 들었다고 한다. 회향일에는 보살계를 설했다고 한다.
신라인들은 또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한 영축산을 설정하는 등 법화정토를 구현하고 있다. 김영태 교수는 “신라인들의 법화신앙은 창의적이고 현실 이익적이었다”고 말했다. 법화경의 회삼귀일 사상은 신라의 삼국통일과 고려 왕건의 후삼국통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열었다. 그는 천태의 근본사상인 회삼귀일(會三歸一).일심삼관(一心三觀)의 교의로 선(禪)과 교(敎)의 화합을 도모했다. 원묘국사 요세(1163~1245)는 고려말 천태종풍을 널리 선양했다. 그는 ‘천태묘관’을 깨달은 뒤 법화삼매참의에 의한 수행에 몰두했다. 그 중심도량이 전남 강진의 백련사다. 요세에 의해 법화신앙은 밀교와 결합한 양상을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당 가람 배치등에서 법화신앙의 영향을 볼 수있다. 법화신앙은 주로 탑이나 당배치, 사경 등에서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사찰의 당탑배치, 존상봉안의 의범은 대부분 〈법화경〉 교의에 따른 것이다. 순천 선암사의 경우처럼 대웅전 팔상전 응진전이 가람의 중심인 것은 법화신앙의 영향이다.
조선시대 대웅전이 집중적으로 건립된 것도 마찬가지다. 쌍탑형식도 법화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불국사를 창건할 때 석가탑과 다보탑을 건립한 것이 그 예다. 영산회상도가 특히 많다는 것도 법화신앙이 성행했다는 증거다.
현재 한국에서 법화신앙은 경전 독송, 연비 등에서 볼수있다. 법화경 화엄경 등 경전을 독송하는 것을 창제(唱題)라고 하는데, 다른 신앙은 불보살을 명호하지만 법화경 화엄경은 경전을 독송한다. 연비나 소신공양은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면 혀가 타지 않는다’는 경전에 근거한 것이다.
고려 시대 유행하다 최근 다시 성행하는 사경도 법화신앙의 한 형태다. 보광스님은 “법화신앙에 몰두한 사람 중에는 외곬수가 많은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법화경에서 사리 조탑(造塔) 신앙과 관음신앙이 파생된데다 천태사상과 섞여 법화신앙의 일관된 형체를 찾기는 쉽지않다.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천태종과 법화신앙을 추구하는 관음종 등의 종파도 있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법화신앙 계열의 종파
법화신앙 계열의 종파로는 중국과 한국의 천태종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천태 지자 선사로부터 시작됐으며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한다. 그는 〈법화경〉에 따라 불교를 체계화하고 독자적인 관법을 정리, 천태종의 교의를 삼았다.
한국은 천태종, 일본은 일련종 유명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의 천태종과 사이초가 개조인 일본 천태종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한국에는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하는 종단은 천태종외에 관음종 대한법화 한국법화종이 있다. 일본은 한국에서 대표적인 일본 불교로 배척당하고 있는 일련종 계열이 있다. 창가학회등이 이에 속하며 ‘나무묘법연화경’의 일본음으로 ‘남묘호렌게쿄’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일련종의 현소(玄蘇)라는 승려와 가등청정이 ‘南無妙法蓮華經’이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우리나라를 침략했었다. 일제강점의 원흉 이또오 히로부미와 조선총독부의 미나미 총독, 마루따의 생체실험 장본인인 731부대장 등침략의 주동자들이 모두 일련종 계열 신도들이다.
-법화경은…
〈법화경〉의 갖춘 말은 〈묘법연화경〉이다. 한역본은 3가지가 있다.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정법화경(正法華經)〉 10권 27품, 구마라즙(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 28품, 사나굴다와 달마급다가 공역한 〈첨품법화경(添品法華經)〉 7권 27품이 그것이다. 그러나 구마라즙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 가장 널리 유포돼 이 경의 대표적인 경명이 됐다.
‘묘법연화경’의 약칭… 보문품은 관음신앙의 근거
7권 28품으로 구성된 법화경은 그 전체가 귀중한 교훈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어느 한 품만을 특별히 다룰 만큼 우열을 논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제 25품 ‘관세음보살 보문품’이 관음신앙의 근거가 되어 특별히 존중을 받는다. 그래서 따로 〈관음경〉으로 편찬되어 많이 독송되고 있다.
또한, 제11품 ‘견보탑품’은 보살집단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불탑(佛塔)숭배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다보탑과 석가탑의 조성에 모체가 되기도 하였다. 또 이 경은 조선조 세조 때의 언해와 현대어 번역 등 우리말 번역은 물론, 서장역, 위글어역, 몽고어역, 만주어역, 일본어역 등 광대한 지역에서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또 19세기에는 유럽에도 소개되어 영어와 불어로 번역됐다. 영어와 불어로 번역됨에 따라 기독교 교리와의 비교 등 비교종교학의 연구 범위로 확대됐다.
[불교신문 2009호/ 2월27일자]
근본 달은 하나지만 달그림자는 바닷물에도, 심산유곡 계곡물에도, 종지물에도 있다. 그래서 천강유수 천강월(千江有水 千江月), 천개의 강마다 천개의 달 그림자가 있다고 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는데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재세시에는 성문(聲聞) 연각(緣覺)이 있었고, 이후 수많은 불보살이 등장했다.
극락정토의 아미타불,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 지혜를 주는 문수보살,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 모두 제각각 다스리는 영역이 있었다. 마치 천개의 강에 비친 천개의 달과 같았다. 하지만 달은 하나며 나머지는 모두 달그림자다.
그 이름이 성문 연각이든 수많은 불보살이든 모두 달 그림자다. 심지어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난 석가모니까지. 그러면 허공에 떠있는 하나의 달은 누구인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대승의 수많은 불보살들은 〈법화경〉에 이르러 다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그 석가모니부처님은 〈아함경〉에 나오는 역사적 실존으로서의 부처님이 아니다. 절대화 되고 신비화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그속에는 누구나 성불할 수있다는 불성관이 담겨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숭배하고 모시며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는 신앙이 법화신앙이다.
〈법화경〉은 범어로 ‘Saddharma-Punddrika-Sutram’이다. ‘Sad’는 ‘정’(正) 또는 ‘묘’(妙)로 해석되고 ‘Dharma’는 ‘법’(法), ‘Pundarika’는 ‘흰 연꽃’을 나타낸다. ‘Sutram’은 성인의 말씀을 적어놓은 ‘경’(經)을 뜻한다. 직역하면 ‘무엇보다도 바른 흰 연꽃과도 같은 가르침’이라는 뜻이 된다. 〈법화경〉은 부처님의 지혜를 열어(開) 보여(示)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悟)하고 부처님의 지혜에 들게(入)함을 목적으로 편찬된 경이다. 다른 경에서는 성불할 수 없다고 한 악인이나 여인까지도 성불이 가능하다고 설하고 있다.
비유 뛰어나 문학적 소재로 애용
〈법화경〉은 불교경전 중 가장 넓은 지역에 유포되어 많은 민족들에게 애호되었으며, 가장 깊이 연구된 대승경전이다.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화택(火宅)의 비유’, ‘궁자(窮子)의 비유’ ‘약초(藥草)의 비유’ ‘화성(化城)의 비유’ ‘여래의 수명’ 등이 모두 〈법화경〉에서 방편설로 등장하는 것들이다. 뛰어난 문학적 비유로 인해 문학의 소재로도 많이 애용되었다.
가장 넓은 지역에 유포된 경전신앙
‘수지독송’강조… 한중일 삼국서 성행
경전에서는 본래 부처님은 오백진전겁 전에 이미 성불하였으며 인도에 나타난 역사상의 부처님은 응신불이라고 한다. 여기서 법화경의 구원실성(久遠實成)관이 나온다. 이미 성불했다는 것이다. 이를 일부에서는 기독교의 메시아와 같은 영혼불멸의 존재로 받아들이지만 이는 불교의 본 뜻과 맞지않다. 그보다는 모든 중생은 성불할 수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구원실성관은 〈법화경〉의 또다른 핵심사상인 회삼귀일(會三歸一)로 연결된다. 성문 연각 보살이 모두 하나라는 사상은 부처에 대한 갖가지 개념을 일거에 정리한다. 마치 냇물과 강물이 모여 결국은 바다로 모여드는 것과 같다. 법화경은 또 이행도(易行道)를 강조하고 있다.
삼국시대때 경전 들어와
‘법화경을 듣는 이는 빨리 불도를 이루며, ‘불탑과 불상을 조성하거나 불탑, 불상에 예배하는 것만으로도 공덕을 얻는다. 또 아이들이 장난으로 풀이나 나무로 붓을 삼고 손가락이나 손톱으로 불상을 그려도 다 불도를 이룬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믿음(信)에 의하여 성불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화경〉은 스스로 독송하거나 혹은 타인이 독송하는 것을 듣기만 하여도 가피를 얻는다고 한다. 경전 속에도 경권수지(經卷受持)를 권장하는 구절이 많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사찰 불사나 가정집 애경시(哀慶時)에는 법화경을 공양하고 수지독송해오고 있으며, 법화경 사경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법화신앙은 석가모니 부처님에 의지해 성불에 이르고 그 공덕을 믿고 따르는데 있다.
〈무량의경〉(無量義經) 〈묘법연화경〉 〈관보살행법경〉(觀菩薩行法經)을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이라 한다. 이를 법화경의 개경(開經), 본경(本經), 결경(結經)이라 한다.
중국에 건너가서는 천태대사 지의에 의해 교학적.사상적으로 조직.정리돼 천태사상이 나온다. 〈법화경〉은 천태종의 소의경전이다.
사진설명: 국보 185호 묘법연화경.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법화경〉은 삼국시대부터 들어왔다. 고구려는 일본의 ‘성덕태자전’ 에서 법화경을 공부하는 장면이 나오고 중국에 들어가 천태대사의 제자가 되어 법화수행을 한 석파라는 스님이 있다.
백제는 석현광스님이 중국에 건너가 당시 진(陳)의 남악혜사(514~577)에게 법화경 안락행문을 전수받아 법화삼매를 증득해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그는 중국 남악영당내의 28인도(人圖)와 천태산 국청사 조당(祖堂)에 각각 그가 모셔져 있었다.
석혜현은 어려서부터 법화경을 지송하다 생을 마쳤는데 그 시신을 호랑이가 먹고 오직 혀만 남겨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는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는 공덕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에서는 일찍부터 법화경을 강송했다.
신라귀족출신이었던 연광은 80세에 입적해 화장을 했는데 혀만이 타지 않았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연광의 두 누이가 그 혀를 거두어 공양했는데 혀가 자주 법화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내고, 모르는 글자가 있어 물어보면 모두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가람배치에 지대한 영향
이처럼 신라는 법화경의 수지 독송을 권장하는 설화가 대부분이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에는 신라법화원에서 법화경강회인 법화회를 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적산법화원에서 행한 이 법화회는 강경(講經)의 법주가 1인이고 논의가 2인이며, 남녀 신자들이 법당에 모여서 낮에는 강설을 듣고 저녁에는 예참을 하고 독경을 들었다고 한다. 회향일에는 보살계를 설했다고 한다.
신라인들은 또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한 영축산을 설정하는 등 법화정토를 구현하고 있다. 김영태 교수는 “신라인들의 법화신앙은 창의적이고 현실 이익적이었다”고 말했다. 법화경의 회삼귀일 사상은 신라의 삼국통일과 고려 왕건의 후삼국통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열었다. 그는 천태의 근본사상인 회삼귀일(會三歸一).일심삼관(一心三觀)의 교의로 선(禪)과 교(敎)의 화합을 도모했다. 원묘국사 요세(1163~1245)는 고려말 천태종풍을 널리 선양했다. 그는 ‘천태묘관’을 깨달은 뒤 법화삼매참의에 의한 수행에 몰두했다. 그 중심도량이 전남 강진의 백련사다. 요세에 의해 법화신앙은 밀교와 결합한 양상을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당 가람 배치등에서 법화신앙의 영향을 볼 수있다. 법화신앙은 주로 탑이나 당배치, 사경 등에서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사찰의 당탑배치, 존상봉안의 의범은 대부분 〈법화경〉 교의에 따른 것이다. 순천 선암사의 경우처럼 대웅전 팔상전 응진전이 가람의 중심인 것은 법화신앙의 영향이다.
조선시대 대웅전이 집중적으로 건립된 것도 마찬가지다. 쌍탑형식도 법화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불국사를 창건할 때 석가탑과 다보탑을 건립한 것이 그 예다. 영산회상도가 특히 많다는 것도 법화신앙이 성행했다는 증거다.
현재 한국에서 법화신앙은 경전 독송, 연비 등에서 볼수있다. 법화경 화엄경 등 경전을 독송하는 것을 창제(唱題)라고 하는데, 다른 신앙은 불보살을 명호하지만 법화경 화엄경은 경전을 독송한다. 연비나 소신공양은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면 혀가 타지 않는다’는 경전에 근거한 것이다.
고려 시대 유행하다 최근 다시 성행하는 사경도 법화신앙의 한 형태다. 보광스님은 “법화신앙에 몰두한 사람 중에는 외곬수가 많은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법화경에서 사리 조탑(造塔) 신앙과 관음신앙이 파생된데다 천태사상과 섞여 법화신앙의 일관된 형체를 찾기는 쉽지않다.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천태종과 법화신앙을 추구하는 관음종 등의 종파도 있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법화신앙 계열의 종파
법화신앙 계열의 종파로는 중국과 한국의 천태종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천태 지자 선사로부터 시작됐으며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한다. 그는 〈법화경〉에 따라 불교를 체계화하고 독자적인 관법을 정리, 천태종의 교의를 삼았다.
한국은 천태종, 일본은 일련종 유명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의 천태종과 사이초가 개조인 일본 천태종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한국에는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하는 종단은 천태종외에 관음종 대한법화 한국법화종이 있다. 일본은 한국에서 대표적인 일본 불교로 배척당하고 있는 일련종 계열이 있다. 창가학회등이 이에 속하며 ‘나무묘법연화경’의 일본음으로 ‘남묘호렌게쿄’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일련종의 현소(玄蘇)라는 승려와 가등청정이 ‘南無妙法蓮華經’이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우리나라를 침략했었다. 일제강점의 원흉 이또오 히로부미와 조선총독부의 미나미 총독, 마루따의 생체실험 장본인인 731부대장 등침략의 주동자들이 모두 일련종 계열 신도들이다.
-법화경은…
〈법화경〉의 갖춘 말은 〈묘법연화경〉이다. 한역본은 3가지가 있다.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한 〈정법화경(正法華經)〉 10권 27품, 구마라즙(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 28품, 사나굴다와 달마급다가 공역한 〈첨품법화경(添品法華經)〉 7권 27품이 그것이다. 그러나 구마라즙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 가장 널리 유포돼 이 경의 대표적인 경명이 됐다.
‘묘법연화경’의 약칭… 보문품은 관음신앙의 근거
7권 28품으로 구성된 법화경은 그 전체가 귀중한 교훈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어느 한 품만을 특별히 다룰 만큼 우열을 논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제 25품 ‘관세음보살 보문품’이 관음신앙의 근거가 되어 특별히 존중을 받는다. 그래서 따로 〈관음경〉으로 편찬되어 많이 독송되고 있다.
또한, 제11품 ‘견보탑품’은 보살집단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불탑(佛塔)숭배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다보탑과 석가탑의 조성에 모체가 되기도 하였다. 또 이 경은 조선조 세조 때의 언해와 현대어 번역 등 우리말 번역은 물론, 서장역, 위글어역, 몽고어역, 만주어역, 일본어역 등 광대한 지역에서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또 19세기에는 유럽에도 소개되어 영어와 불어로 번역됐다. 영어와 불어로 번역됨에 따라 기독교 교리와의 비교 등 비교종교학의 연구 범위로 확대됐다.
[불교신문 2009호/ 2월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