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0

[김조년] 이럴 수는 없어 : 10·29 이태원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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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이럴 수는 없어 : 10·29 이태원참사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2.11.15


한남대 명예교수

마침 연세대학교 학생들에게 ‘풀뿌리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서울에 갔다. 아름답고 넓은 캠퍼스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학생들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러 해 전에 있었던 것과 같은 사회운동을 펼칠 주제를 찾기는 쉽지 않음을 안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그에 맞는 시대의 얼굴과 소리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민감한 촉각을 가지고 찾아낼 때 아주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주 순수한 맨사람의 맘, 맨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주 깊은 곳에, 일상에 자리잡은 심각하나 드러나 있지 않은 문제를 찾아서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시대의 얼굴은 무엇이며,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는 어떤 것일까? 이것을 깊이 생각하다가 이태원을 가기로 했다.

지하철 녹사평역에서 내려 10월 29일 밤에 사라져 간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합동분향소로 갔다. 경찰 몇 사람이 서 있었고, 국화꽃을 나누어 주는 검은 옷 입은 젊은 두 여인이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조문객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유족같지는 않았다. 자원봉사자인가? 아니면 파견된 공무원인가? 거기에는 영정도 위패도 없었다. 그냥 하얀 국화꽃으로 그런 장소라는 것을 표시하였을 뿐이다. 나는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거기에 국화꽃 한 송이를 놓고 눈을 감고 머리를 숙여 묵념하였다. 부끄럽게도 나에게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렇게 참담하게 죽어간 그들을 떠올리려 해도 그것이 내 맘에 담겨지지가 않았다. 참 맘이 답답할 뿐이었다.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걸어서 이태원역으로 갔다. 참혹한 일이 벌어진 해밀턴호텔 앞 인도에는 많은 국화꽃들이 놓여 있었고, 상당히 많은 것들은 이미 시들어가고 있었고,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써놓은 쪽지들이 가득하였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사진이 틀에 넣어져 있었고, 애도의 뜻으로 가지고 온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은 와인병과 소주병들이 애도의 쪽지들이 붙은 옆에 모아져 있었다. 사고가 난 골목길은 경찰관들이 지키고 선을 쳐놓아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멀리에서 보니 그 골목에는 어지럽게 흩어진 쓰레기들만 보였다. 짧고 좁은 골목이 깊게 보이지 않았다. 약간 경사가 져있었고, 옆으로 굽어 있었기에 골목길이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는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어느 민속굿을 하는 분들 십여명이 굿을 하여 원혼을 달래고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이런저런 예식을 올렸다. 그 옆에는 스님 같은 한 분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나 일부러 거기를 찾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거나 합장을 하고 간단히 목례를 하기도 하였다. 맘이 참 허전하였다. 이럴 수는 없다는 맘만 들었다.

‘이럴 수는 없어/ 10ㆍ29 참사가 있던/ 이태원 해밀턴 호텔 앞/ 합동분향소와 사고현장이/ 성의도 진정도 애도도 위로도 없는/ 원한만 쌓이게 할 듯/ 위패도 영정도 없는/ 의미 없는 시들어 말라 썩어질/ 흰 국화꽃만 차가운 분노를 기다릴 뿐/ 반성도 각오도 변화도 없는/ 거짓 껍질만 있는 곳/ 죽고 또 산 원혼이 슬피 우는 곳/ 살아 숨쉬는 민중의 소리 없는 분노와 차가운 속 맘이 가득/ 이렇게 민중을/ 소위 국민을 홀대할 수 없다는 날카로운 판단이/ 다시 찾을 맘 지워버려/ 벌건 대낮에 악귀 되어/ 그 스스로 갖는 무지와 오만으로/ 마감할 그날이 다가올 수밖에/ 이럴 수 없는 그짓으로/ 스스로 판 무덤일 수밖에’


이런 예감이 내 가슴을 가득채웠다. 사진을 구하는 것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왜 그렇게 졸지에 간 그들의 이름만이라도 거기에 내놓지 않았을까? 그 사건이 있고 얼마간 그런 행사에 갈만한 자녀를 둔 내가 아는 사람에게 혹시나 하는 맘에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이런 큰 사건이 난 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맘을 함께 하여 슬퍼하고 위로하고 싶어한다. 간 사람이야 말이 없지만, 남은 가족들이나 친구들 또는 아는 사람들은 맘 깊은 곳에서 같이 있다는 것을 나눈다. 그렇게 해도 일생을 안고 살아야 할 응어리를 가슴에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안전을 강조하지만 ‘국가는 없다’는 말이 실감나도록 그냥 지워버리려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했다. 어디에 사는 어떤 사람이 그런 참사를 당했는지 모르게 둔 것은 정부나 당국에서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보도에 의하면 생명을 잃은 158명 중 10대가 12명, 20대가 104명, 30대가 31명, 40대가 8명, 50대가 1명(이 소식 이후에 2명이 사망하였다는 데, 그들의 연령대는 모르겠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슬픔을 당한 분들과 함께 할 길이 없다. 세월호침몰사건 때는 짧은 순간에 슬픔과 어처구니 없음이 확 올랐다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그런데 이번 10ㆍ29 참사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어벙벙하다가 차차 어처구니없음과 시민들의 관심과 분노가 증폭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정부에서는 빨리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느낌을 주지만, 아마도 상당히 오래도록 이 문제는 현 정부를 잡고 늘어질 것같다. 유족들끼리, 그와 같은 일을 이미 당했던 사람들이나 그분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은 분들의 맘이 연결되지 않고 완전히 단절되고 고립된 맘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 책임소재를 밝히고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변을 당한 분들을 씻어주고 안아주는 일을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것은 정부가 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하지 않으면 시민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원한의 소리가 지루하리만큼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