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이적(異蹟)을 행했나요
승인 2008.10.04
문: 다른 종교에서는 교주의 신비한 행적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으며, 또한 설교 등을 통해 이적을 강조함으로서 자기 종교의 우월성을 나타내려 합니다. 그에 비해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신비한 행적을 잘 가르치지 않는데, 그런 기록이 없는 것인지요?
이적은 진실 포장한 상징적 사건
부처님의 삶 자체가 이적과 신통
답 : 여기 한 사건을 예로 들어 신통과 기적의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당시에 가장 큰 종교집단이었던 가섭 삼형제와 천명의 무리를 제자로 거두게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신비로운 행적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타마는 불을 섬기는 집단의 지도자 우루빈나(우루벨라) 가섭을 찾아가 화룡(火龍)을 모시는 사당에 하룻밤 머물기를 청했다. 가섭은 화룡에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며 만류하다가 결국 허락을 하였다. 밤이 되자 화룡은 자기의 처소에 들어온 사문을 향해 불길을 토하기 시작했다. 고타마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화광삼매에 들었다. 고타마의 몸에서도 불이 나오기 시작하여 밤새도록 사당은 불길에 휩싸였다. 그것을 지켜보던 가섭과 제자들은 ‘안타깝게도 저 사문이 목숨을 잃게 되었구나!’하며 불쌍히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고타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당의 문을 열고 나왔으며, 놀랍게도 고타마의 발우 안에는 화룡이 작은 뱀처럼 되어 있었다. 가섭은 매우 놀랐으나 자신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거듭해서 계속 신통을 겨뤘지만 계속 패했다. 이윽고 가섭은 자신이 고타마를 이길 수 없음을 실토하고 제자가 되었다.”
옛 인도에는 사상가들끼리는 논쟁을 해서 우열을 가리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옛 문헌의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사상논쟁은 대부분 많은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국가적인 인물이 논쟁자일 경우에는 국왕과 대신들까지도 참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논쟁에 진 사람은 승자에게 목숨까지도 내놓는 엄청난 일인데, 부처님과 가섭의 사건도 이 사상논쟁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우루빈나 가섭은 이미 국왕과 대중들의 귀의를 받고 있던 인물이었으며, 고타마도 출가이전부터 명성이 높았던지라 두 사람의 논쟁은 큰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가섭은 화룡과 같은 절대적 존재였고, 고타마는 아직 수행의 정도가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논쟁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고타마가 무모한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위대한 가섭의 불길과 같은 위력 앞에 젊은 고타마가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그것은 자청해서 화룡의 사당에 들어가 불길에 타 죽으려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고타마의 존재는 빛나기 시작했고, 화룡 같았던 가섭은 작은 뱀처럼 초라해져 갔던 것입니다. 이미 백세가 넘은 위대한 존재인 가섭을 삼십대 후반의 고타마가 논쟁에서 이겨 제자로 삼은 것이지요.
이미 세상의 존경을 받는 탁월한 사상가로 하여금 자신의 사상을 버리고 다른 사상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고타마가 가섭 삼형제를 제도한 일만큼 단 시간에 거대한 사상집단을 다른 사상체제로 바꾼 예가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며 신통인 것이지요. 부처님의 삶은 그 자체가 모두 이적(異蹟)이며 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편케 하고 고통에 빠진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보다 더한 신통은 없는 것이니까요.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465호/ 10월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