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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산스크리트어: सद्धर्मपुण्डरीक सूत्र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 →흰 연꽃과 같은 올바른 가르침) 또는 《법화경》(法華經)은 대승경전의 하나로, 예로부터 모든 경전의 왕으로 생각했으며, 석가모니의 40년 설법을 집약한 경전으로, 법화사상을 담은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이다.[1]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2]
산스크리트어 원본으로는 영국인 호지슨이 네팔에서 발견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단편(斷片)이 존재한다.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역했으며, 한편 한문, 티베트어, 위구르어, 서하어, 몽골어, 만주어 등으로 번역해서 넓은 지역 여러 민족이 애호한다.[2]
현존하는 3종 한문 번역 가운데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T.0262) 7권(후에 8권이 되었음)이 가장 널리 유포되어 있다.
오늘날 학자는 그 성립을 기원 전후에 신앙심이 강하고 진보적인 신자집단이 서북부 인도에서 《소부》(小部)를 만들었고, 후일 증보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2]
《묘법연화경》에서 부처는 머나먼 과거로부터 미래 영겁(未來永劫)에 걸쳐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가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은 모든 인간들이 부처의 깨달음을 열 수 있는 대도(大道, 一乘)를 보이기 위함이며, 그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경전의 핵심이다.[2] 《법화경》은 모두 28개의 품(品,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혹 《무량의경》,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과 함께,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3]
역사[편집]
유포[편집]
법화경은 동쪽으로 전해지기 전에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널리 유포된 경전이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경전이 존재했고, 티베트 불교의 게르크파의 개조가 된 총카파는 자신의 저서 보리도차제대론(菩提道次第大論)에서 죄를 멸하는 방편으로써 법화경을 독경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네팔에서는 구법경전의 하나로써 다룬다. 중국 천태종에서는 법화경을 가장 중요시하여, 저장 성(浙江省)의 천태산 국청사(天台山国清寺)의 천태대사 지의(智顗)는 쿠마라지바가 번역한 묘법연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다. 400년경 서역에서 중국의 수도 장안으로 온 쿠차 출신의 승려 쿠마라지바가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한자로 번역하면서부터 법화경은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쿠마라지바의 번역에서는 산스크리트어 원전의 진언(真言)이나 인(印)을 생략했는데, 훗날 첨품법화경(添品法華経)에서는 이를 다시 추가시켰다.
법화경은 빠르게 한반도에도 전래되었다. 고구려의 수도(427년 천도 ~ 668년까지)였던 평양의 대성산성(大城山城) 성돌 사이에서 발견된 1천 자 정도의 글자가 남은 묘법연화경이 현재 북한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백제의 승려 혜현(惠賢)이 수덕사에서 아침저녁으로 법화경을 독송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고, 신라의 승려 원효는 법화경의 교리를 해설한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를 짓기도 했다.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법화경》은 1236년에 간행된 《법화경》과 1467년(세조 13)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송나라 계환(戒環)이 1126년(인종 4)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 7권본이다. 《법화경》에 대한 연구 주석서로는 신라 시대 고승들의 저술을 비롯하여 중국 역대 고승들의 저술이 수십 종에 이르고 있다.
이 중 계환의 주해가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통된 것은 그 내용이 한국 불교의 흐름과 일치하고 문장이 간결하며 이해가 쉽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현존 판본을 살펴보면 고려 시대 3종이고, 조선 시대의 것이 117종으로 모두 120종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고 있는 법화경판은 34종 3,036장이다.
오늘날 학자는 《법화경》을 대승 불교 교단이 소승 불교 교단과 갈라져 나오면서 형성된 경전으로 추정하며, 초기에는 운문의 형태로 암송되어 전래되어 오다가, 후에 서술형 문구와 운문의 형태가 융합된 형태를 띠게 되었으리라 추정한다. 따라서 오늘날 학자는 《법화경》은 《반야경》 이래로 등장한 대승 불교 경전들의 최고 집대성이자 완성된 시기의 경전으로 그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4]
설법 장소[편집]
영취산(靈鷲山 · 鷲栖山)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한 인도 왕사성 근방에 있는 산이다. 《법화경》을 설법할 때 그 모임을 일러 불교에서는 영산회(靈山會) 또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하며, 이 모임의 장면을 영산회상도라고 하며, 법당의 후불탱화로 많이 사용된다.[5]
구성 및 내용[편집]
구성[편집]
무량의경(無量義經=開經) | |
---|---|
덕행품(德行品) | 第一 |
설법품(說法品) | 第二 |
십공덕품(十功德品) | 第三 |
적문(迹門) | 14品 |
서품(序品) | 第一 |
방편품(方便品) | 第二 |
비유품(譬喩品) | 第三 |
신해품(信解品) | 第四 |
약초유품(藥草喩品) | 第五 |
수기품(授記品) | 第六 |
화성유품(化城喩品) | 第七 |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 | 第八 |
수학무학인기품(數學無學人記品) | 第九 |
법사품(法師品) | 第十 |
견보탑품(見寶塔品) | 第十一 |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 | 第十二 |
권지품(勸持品) | 第十三 |
안락행품(安樂行品) | 第十四 |
본문(本門) | 14品 |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 | 第十五 |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 第十六 |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 | 第十七 |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 | 第十八 |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 | 第十九 |
상불경보살품(常不經普薩品) | 第二十 |
여래신력품(如來神力品) | 第二十一 |
촉루품(囑累品) | 第二十二 |
약왕보살본사품(藥王普薩本事品) | 第二十三 |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 | 第二十四 |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 | 第二十五 |
다라니품(陀羅尼品) | 第二十六 |
묘장엄왕본사품(妙莊嚴王本事品) | 第二十七 |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 | 第二十八 |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佛說觀普賢普薩行法經) |
법화칠비[편집]
《법화경》에는 부처가 되기 위한 길로 7가지의 비유를 들어 설해놓은 것이 있다. 이를 법화칠비(法華七譬) 또는 법화칠유(法華七喩)라 한다.
- 삼거화택(三車火宅)의 비유(火宅喩)
- 장자궁자(長者窮者)의 비유(窮子喩)
-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藥草喩)
- 화성보처(化城寶處)의 비유(化城喩)
- 계중명주(契中明珠)의 비유(契珠喩)
- 빈인계주(貧人繫珠)의 비유(衣珠喩)
- 양의병자(良醫病子)의 비유(醫子喩)
지정 문화재[편집]
국보 제185호[편집]
《상지은니묘법연화경》(橡紙銀泥妙法蓮華經)은 《묘법연화경》 전 7권을 고려 공민왕 22년(1373)에 은색 글씨로 정성들여 옮겨 쓴 불경이다. 봉상대부 지옥주사 허사청이 발원하여 영암 도갑사에 봉안되어 있던 책이며,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보물 제961-2호[편집]
‘묘법연화경 권4~7(妙法蓮華經卷四~七)’은 불교의 대표적인 대승경전으로 조선 태종 5년(1405)에 전라도 도솔산 안심사(安心社)에서 성달생(成達生, 1376~1444년)과 성개(成槪, ?~1440) 형제가 필사한 것을 새긴 목판본 전 7권 가운데 권4~7의 1책이다.[6]
권수 변상도(變相圖)의 왼편에 정씨(鄭氏)가 죽은 남편 왕씨(王氏)의 초생정토(超生淨土)를 기원하기 위하여 화공(畵工)을 시켜 그림을 그리고, 판각하여 유통시킨다는 조성경위를 밝히고 있다. 권말에는 간행사실을 밝히는 권근(權近, 1352~1409년)의 발문을 갖추고 있어 조선 초기의 불경 간행 방식을 알 수 있는 등 서지학과 불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6]
보물 제1147-2호[편집]
이 책은 1470년(성종 원년) 4월에 세조의 왕비인 정희대왕대비가 발원하여 돌아가신 세조, 예종, 의경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묘법연화경 7권 가운데 권 1∼2이다. 이 책은 권돈일, 고말종, 장막동, 우인수, 최금동, 이영산, 최덕산 등 당대의 일류 각수(刻手)들에 의해 이루어져 새김이 매우 정교하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법화경은 대부분 계환의 해석이 붙어 있는 것을 사용하였는데, 이때 새긴 법화경은 천도의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원문만 새긴 것이다. 이와 같은 판본으로 기 지정되어 있는 <묘법연화경 권 제3~4, 5~7> 중 권7 말 김수온 발문에 간행동기 및 간행시기가 밝혀져 있어 왕실불교관련 및 서지학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자료이다.[7]
보물 제1164-2호[편집]
‘묘법연화경 권3~4, 5~7(妙法蓮華經卷三~四, 五~七)’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주도하여 간행한 불경으로, 김수온(金守溫, 1410~1481년)의 발문에 간행 시기와 연유가 분명하게 남아 있고, 보존상태도 원래의 표지만 결락되었을 뿐 온전하다. 또한 장막동(張莫同), 최금동(崔今同), 고말종(高末終), 이영산(李永山) 등 일류 각수(刻手)들이 참여하여 판각이 정교하고, 정밀하게 인출하여 먹색이 진하고 고르다. 한 책(권5~7)의 서배(書背)에는 비단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비단 표지의 포배장 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6]
묘법연화경은 구마라집(姚秦, 344~413년)이 한역한 불교경전으로 ‘법화경’이라 약칭하기도 하는데, 초기 대승경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교경전이다.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불교전문강원의 과목으로 채택되었고 화엄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6]
보문사 소장의 묘법연화경은 글자의 깨짐과 계선의 마멸상태로 보아 초인본은 아니고, 성종연간(1470~1494년)에 간행된 후인본으로 보인다. 동일한 판본으로는 보존상태가 온전하고, 인쇄상태와 지질도 뛰어나므로 자료로서의 가치는 높다고 판단된다.[6]
보물 제1194호[편집]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 보물 제1194호 《묘법연화경 권2》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있으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3cm, 가로 10.9cm이다.
간행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 제9∼10(보물 제1195호)과 글씨체가 같은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1196호[편집]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 보물 제1196호《묘법연화경》은 권1에서 권7에 해당하는 책으로 세조 1년(1456)에 동궁(東宮)의 빈(嬪)인 한씨가 좌의정 한확의 부인 홍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간행한 것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권1에서 권7의 내용을 3책으로 엮었으며 각 권의 크기는 세로 30cm, 가로 17.6cm이다.
표지의 일부가 약간 훼손되었을 뿐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완전본이다. 제목은 붉은 바탕 위에 금색 글씨로 썼으며, 각 권의 첫머리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그린 변상도(變相圖)가 있다.
판에 새긴 후 처음 찍어낸 책은 아니지만, 권1에서 권7까지 완전하게 전해진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제1306-1호[편집]
직지사 성보박물관 소장 《묘법연화경》은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발문(跋文)에 의하면, 조계종의 대선(大選), 신희(信希) 등이 기로(耆老)들을 위해 보기에 편리하도록 중자(中字)로 간행하기를 원했는데 성달생(成達生)·성개(成槪) 형제가 상중(喪中)에 이를 듣고 선군(先君)의 추복(追福)을 위해 필사(筆寫)한 것을 도인(道人) 신문(信文)이 전라도(全羅道) 운제현(雲梯縣) 도솔산(兜率山) 안심사(安心社)에 갖고 가서 조선 태종 5년(1405)에 간행(刊行)한 것이다. 2001년 1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06호로 지정[8]되었다가, 2019년 3월 6일 제1306-1호로 문화재 지정번호가 변경되었다.[9]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6호[편집]
취정사 소장 《묘법연화경》은 조선시대 명필가인 성달생(成達生, 1376~1444)과 성개(成槪, ?~1440) 형제가 선친의 명복을 기원할 목적으로 정서(精書)한 《법화경》을 판하본(板下本)으로 하여, 1405년(태종 5)에 전라도 도솔산 안심사(安心寺)에서 도인 신문(道人信文)이 주관하여 목판으로 새긴 것을 조선 전기에 후인(後印)한 것이다. 전체 7권3책 중 권1, 2와 권3, 4의 4권 2책만 남아 있는 결본이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가나 다 라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교 > 불교의 성전 > 법화경",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법화경(法華經) 원명을 삿다르마푼다리카 수트라(Saddharmapundarikasutra)라고 하며 '백련화(白蓮華)와 같은 올바른 가르침'이라는 뜻으로서 예로부터 제경(諸經)의 왕으로 생각되었고,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원본은 영국인 호지슨이 네팔에서 발견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가지의 단편(斷片)이 존재하며, 이들의 불역(佛譯)·영역(英譯)이 있는 한편 한역·티베트어역·위구르어역·서하어역(西夏語譯)·몽고어역·만주어역 등이 있어서, 이 경이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여러 민족에게 애호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성립 시기는 기원 전후에 신앙심이 강한 진보적인 일단의 사람들에 의해 서북 인도에서 소부(小部)의 것이 만들어졌고 후일에 증광(增廣)되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3종의 한역 중에는 라습(羅什)역의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후에 8권이 되었음)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이 경(經)에서는, 불타는 구원(久遠)한 옛날부터 미래 영겁(未來永劫)에 걸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超越的存在)로 되어 있고,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은 모든 인간들이 부처의 깨달음을 열 수 있는 대도(大道, 一乘)를 보이기 위함이며, 그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그 중심으로 되어 있다." - ↑ 《묘법연화경》은 7권 28품으로 된 불교경전으로 ‘법화경’이라 약칭하기도 한다.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으로, 불교전문강원의 수의과(隨意科) 과목으로 채택되고 있다.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한국불교사상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이 경은 예로부터 모든 경전들 중의 왕으로 인정받았고,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경이다.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여러 민족에게 애호되었던 이 경은 기원 전후에 신앙심이 강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에 의해 서북 인도에서 최초로 소부(小部)의 것이 만들어졌고, 2차에 걸쳐 증보되었다. 한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한역본 중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8권이 가장 널리 보급, 유통되었다.
- ↑ 틱낫한, 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 Opening, the heart of the cosmos ISBN 8976772059-0322
- ↑ “봉정사 산내암자”. 봉정사. 2016년 3월 1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11월 29일에 확인함.
- ↑ 가나 다 라 마 문화재청고시제2014-4호,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및 지정번호 변경》,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8186호, 32면, 2014-01-20
- ↑ 문화재청고시제2008-19호,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및 지정번호변경》, 문화재청장, 2008-03-12
- ↑ 관보 제14693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001년 1월 2일. 문화재청고시제2000-60호 .〈보물지정〉. 2016년 5월 8일 확인함.
- ↑ 문화재청고시제2019-27호(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 지정 및 지정번호 변경), 제19452호 / 관보(정호) / 발행일 : 2019. 3. 6. / 144 페이지 / 720KB
참고 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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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법화경 |
한글표제 | 법화경 |
한자표제 | 法華經 |
분야 | 종교/불교/경전 |
유형 | 문헌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세종 |
집필자 | 성낙수 |
간행년일 | 1422년(세종 4) |
권책수 | 4권 1책 |
소장처 | 구인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법화경(法華經)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조실록』 3년 7월 17일, 『세종실록』 2년 8월 11일, 『세종실록』 4년 6월 21일 |
대승 불교에서 가장 널리 읽힌 경전으로 본래 이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개설
『법화경(法華經)』은 『묘법연화경』을 줄여 부르는 이름으로 대승 불교 전통에서 가장 널리 읽혀온 경전의 하나이다. 천태종(天台宗)을 비롯한 여러 불교 종파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경전으로, ‘진실한 가르침의 연꽃이라는 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대부분 운문으로 되어 있으며, 2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공덕을 가져다준다는 주문과 진언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으며, 이에 독송하기만 해도 구원을 받게 된다는 믿음이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었다. 3세기에 최초로 한역(漢譯)되었고, 한국과 중국·일본에서 널리 읽혀왔다. 특히 자비를 특색으로 하는 위대한 보살인 관세음보살의 영광과 특별한 능력들을 묘사하고 있는 제25장은 『관음경(觀音經)』이라는 이름으로 별도로 중시되어 왔다.
편찬/발간 경위
『묘법연화경』은 부처님이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독송(讀誦)·서사(書寫)·공덕(功德) 등을 강조한 내용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법화경』은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麻羅什)이 한역한 것으로 송(宋)나라의 계환(戒環)이 주석한 저본을 조선 전기에 간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조선 초기에는 나라에서 여러 번 발간하였을 뿐만 아니라, 강독을 하기도 하였다.
서지 사항
총 4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묘법연화경』은 여러 판본이 전하고 있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4년(태조 3) 태조(太祖)의 명에 따라 금으로 『법화경』을 작성하도록 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태조실록』 3년 7월 17일)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1420년(세종 2) 8월에 성개(成槪)·신장(申檣)·최흥효(崔興孝) 등이 금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고,(『세종실록』 2년 8월 11일) 1422년(세종 4) 6월에 성달생(成達生)·신장·성개 등이 장서했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4년 6월 21일) 또 세종 초에 중간했다는 기록도 보이는데, 1422년(세 인순부(仁順府) 윤(尹) 성억(成抑)은 사위인 성녕대군(誠寧大君)과 그 어머니 원경왕후(元敬王后)를 위해 목판을 새겼다. 이때 변계량(卞季良)과 승려 기화(己和)가 쓴 발문이 있다.
구성/내용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는 아득한 옛날에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구원불’로 나타난다. 신앙과 헌신의 지고한 대상으로서의 그는 순식간에 사방에 제각기 부처를 모시고 있는 수천 개의 세계가 눈앞에 나타나도록 하는 능력 등과 같은 불가사의한 능력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 경전에서는, 대승불교 태동기에 초기 불교의 성문(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아라한’이 되기를 이상으로 하는 자)과 연각(부처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자)을 소승이라고 매도하며, 성불에는 이를 수 없는 존재로 멸시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각각의 입장을 성불을 위한 방편이라고 하였다. 즉 그들도 궁극적으로는 대승불교의 보살과 마찬가지로 성불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 일승묘법의 사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경전의 서두에서는 자기의 입장만을 고수하는 독선적 태도를 배척한다. 또한 ‘여래사’라고 하여, 부처에 의해 세상에 파견되어 현실의 한가운데에서 진리를 구현하며, 온갖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청정한 불국토를 이루기 위해 힘쓰는 보살의 전형이 제시되고 있는 점도 이 경전의 중요한 특색이다.
『묘법연화경』은 7권 28품으로 나뉘는데, 대개 권1의 앞쪽에 「변상도」가 있다. 1422년(세종 4) 대자암본의 「변상도」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神將)을 표현한 천상(天像)과 석가의 설법을 보살과 제자들이 듣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반면 1443년(세종 25) 화암사본은 석가 앞에 다보탑이 용출하는 모습을 묘사한 차이를 보인다. 「변상도」 뒤에 도의(道宣)의 「묘법연화경홍전서(妙法蓮華經弘傳序)」와 급남(及南)의 「묘법연화경요해서(妙法蓮華經要解序)」, 그리고 『묘법연화경』에 대한 계환의 요해가 나온다. 본문에는 『묘법연화경』 원문 옆에 한 글자 내려 계환의 주가 부기되었다.
목차는 권1이 서품(序品)·방편품(方便品)‚ 권2 비유품(譬喩品)·신해품(信解品)‚ 권3 약초유품(藥草喩品)·수기품(授記品)·화성유품(化成喩品)‚ 권4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수학무학인기품(授學無學人記品)·법사품(法師品)·견보탑품(見寶塔品)·제파달다품(提婆達多品)·권지품(勸持品)‚ 권5 안락행품(安樂行品)·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 권6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여래신력품(如來神力品)·촉루품(囑累品)·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 권7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타라니품(陀羅尼品)·묘장엄왕본사품(妙莊嚴王本事品)·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 등 7권 28품이다.
이 중 권7의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은 관음신앙의 근거로 따로 『관음경』으로 편찬되어 독송되고 있다. 그리고 권5의 제11품 견보탑품은 불탑숭배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조성의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조선 전기에는 간경도감판 등 몇몇 인본을 제외하면, 대부분 성달생 형제의 서체로 인출된 것들이어서 간행 배경과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강순애, 「성달생서체계의 묘법연화경 계환해의 판본에 관한 연구」, 『가산학보』6, 가산학회, 1999.
- 박상문, 『법화경의 세계』, 정인각, 1991.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법화경언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0.
- 정승석, 『왕초보 법화경 박사 되다』, 민족사, 2009.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불교문헌
우리나라 천태종의 근본이 되는 불교경전.
묘법연화경 권7
이칭법화경
정의
우리나라 천태종의 근본이 되는 불교경전.
개설
7권 28품. ‘법화경’이라 약칭하기도 한다.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으로, 불교전문강원의 수의과(隨意科) 과목으로 채택되고 있다.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한국불교사상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역사적 변천
『법화경』은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이다. 이 『법화경』이 언제부터 유통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유사』 권3 대산오만진신조(臺山五萬眞身條)에 이 경의 이름이 보이고 있고, 의천(義天)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이에 대한 경흥(憬興)의 소(疏), 태현의 고적기(古迹記), 도륜(道倫)의 소, 원효(元曉)의 종요(宗要)와 방편품요간(方便品料簡), 의적(義寂)의 강목(綱目), 순경(順憬)의 요간(料簡) 등 신라인의 연구 주석서가 보이고 있다.
이로써 삼국시대부터 『법화경』이 널리 유통되어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는 금자원(金字院)·은자원(銀字院) 등 사경 전문기관이 설치되어 금·은으로 대장경을 필사하기도 하였는데, 초기부터 『법화경』에 대한 금니(金泥)·은니(銀泥)의 사경(寫經)도 성행하였다. 이 시대의 사경으로는 1275년(충렬왕 1)에 선린(禪隣)이 필사한 『법화경보문품( 法華經普門品)』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법화경』 간행에 대한 기록은 1020년(현종 11)에는 현종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대반야경(大般若經)』과 함께 『법화경』을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에 김제 금산사에서 1083년에서 1097년 사이에 『법화현찬(法華玄贊)』 등을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백련사원묘국사중진탑비(白蓮寺圓妙國師中眞塔碑)에 국사가 『법화경』을 천만 번 염송한 뒤 『법화경강요(法華經綱要)』를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창 문수사(文殊寺)에서 간행한 『법화경』의 발문에 보면 1340년 요원(了圓)이 편찬한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이 만의사(萬儀寺)에서 간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고종 때는 고종 자신이 『법화경』을 숭상하였으며, 이규보(李奎報)는 『법화경』을 암송할 정도로 법화 공덕사상이 널리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간행본이 현재까지 전해 오는 것은 1236년에 정안에 의해서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몇 종에 지나지 않지만, 『법화경』 간행은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는 배불숭유정책(排佛崇儒政策)으로 사찰경제가 많은 핍박을 받았으나, 불교경전의 간행은 사찰이 중심이 되어 끊임없이 계승되어 왔다. 조선시대의 『법화경』 간행은 경전 독송이나 교학 연구라기보다 경전신앙(經典信仰)에 의해 시주자들의 공덕을 위하여 간행된 경향이 짙다. 고려 때의 『법화경』 유통에 대한 공덕사상이 조선 초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금은자(金銀字)의 법화경사경(法華經寫經)이 여러 번 이루어졌다.
세조 때는 간경도감이라는 국가기관을 설치하여 불교경전을 간행하였는데, 이 때 『법화경』에 관한 것만도 3종이나 되었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판본을 살펴보면 정천익(鄭天益)의 시주로 1399년에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전국 각 사찰에서 간행한 것으로 간행 기록이 뚜렷한 것만도 117종이 전해 오고 있다.
이들 판본을 살펴보면 1행에 13자, 17자, 18자, 20자가 대부분이다. 이 중에서 20자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성달생(成達生)이 필사한 1405년(태종 5) 안심사(安心寺) 간행본과 1445년(세종 27) 성달생·임효인(任孝仁)·조절(曺楶) 등이 공동으로 필사하여 간행한 것, 세조 연간에 황진손(黃振孫)이 필사로 간행한 것을 번각(飜刻)한 것이 대부분이다.
내용
『묘법연화경』은 예로부터 모든 경전들 중의 왕으로 인정받았고,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경이다.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여러 민족에게 애호되었던 이 경은 기원 전후에 신앙심이 강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에 의해 서북 인도에서 최초로 소부(小部)의 것이 만들어졌고, 2차에 걸쳐 증보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종류의 한역본 중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8권이 가장 널리 보급, 유통되었다.
28품으로 된 이 경은 그 전체가 귀중한 가르침으로 되어 있어서 어느 한 품만을 특별히 다룰 만큼 우열을 논하기 어렵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이 관음신앙의 근거가 되어 특별히 존숭을 받아 왔고, 따로 『관음경(觀音經)』으로 편찬되어 많이 독송되었다.
또한 제11품 「견보탑품(見寶塔品)」은 보살 집단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불탑숭배(佛塔崇拜)사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다보탑과 석가탑 조성에 모체가 되기도 하였다.
제15품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에서는 대지하(大地下)의 허공 속에 살고 있던 보살이 대지의 틈바구니에서 솟아오르듯이 나타나 허공에 서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학자들은 이 광경을 오랫동안 표면에 나타나지 못하였던 보살집단이 강력한 세력으로 출현하게 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허공에 선다는 표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입장에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전통적 교단에서 오직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불만을 숭배하는 피상적 견해를 탈피하여, 무량한 생명의 상징인 불(佛)을 보려는 보살들의 깊은 성찰의 결과를 선언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제16품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은 영원한 생명, 근원적인 생명으로서의 부처를 체증(體證)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보살들의 새롭고 깊은 불타관(佛陀觀)이 반영되어 있다. 부처는 언제나 이 사바세계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교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성불(成佛)하게 한다는 지극한 이상이 담겨 있고, 이것이 우리나라 법화신앙의 근거로 크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 『법화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으로 평가되고 전승된 것은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이다. 삼승(三乘)이 결국은 일승(一乘)으로 귀일(歸一)한다는 이 사상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보살(菩薩)의 무리들에게 맞게끔 갖가지의 법(法)을 설하였지만, 그것이 모두 부처의 지견을 열어 보이고 깨달음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 시방불토(十方佛土)에는 오직 일불승(一佛乘)의 법만이 있음을 밝힘으로써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 회삼귀일사상은 『화엄경』의 원융무애사상(圓融無碍思想)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꽃을 피워 한국불교의 전통을 회통적 귀일불교(會通的歸一佛敎)로 이끌었고, 한민족의 화사상(和思想)에도 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일부 학자들은 신라의 삼국통일이 이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회삼귀일사상은 제2품 「방편품(方便品)」, 제3품 「비유품(臂喩品)」, 제4품 「신해품(信解品)」, 제5품 「약초유품(藥草喩品)」, 제7품 「화성유품(化城喩品)」 등에서 높은 문학성을 지닌 불타는 집의 비유, 방탕한 자식의 비유, 초목의 비유, 주정뱅이의 비유 등을 통하여 그러한 입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경의 유통을 위하여 간행된 판본은 불경 가운데서 가장 많은 횟수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경의 중요성과 함께 경전 간행의 영험에도 힘입은 바 크다. 현재 알려지고 있는 한국인 찬술 주석서는 [표1]과 같다.
[표1]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한국인(韓國人) 주해서(註解書)
시대 | 저자 | 책명 | 권수 | 비고 |
---|---|---|---|---|
신라 | 원효(元曉) |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 | 1 | 존(存) |
법화경방편품료간(法華經方便品料簡) | 1 | 실(失) | ||
법화경요략(法華經要略) | 1 | 실(失) | ||
법화약술(法華略述) | 1 | 실(失) | ||
경흥(憬興) | 법화경소(法華經疏) | 16 | 실(失) | |
순경(順璟) | 법화경료간(法華經料簡) | 1 | 실(失) | |
현일(玄一) | 법화경소(法華經疏) | 8 | 실(失) | |
의적(義寂) | 법화경논술기(法華經論述記) | 3 | 상존(上存) | |
법화경강목(法華經綱目) | 1 | 실(失) | ||
법화경료간(法華經料簡) | 1 | 실(失) | ||
법화경험기(法華經驗記) | 3 | 실(失) | ||
둔륜(遁倫) | 법화경소(法華經疏) | 3 | 실(失) | |
태현(太賢) | 법화경고적기(法華經古迹記) | 4 | 실(失) | |
고려 | 제관(諦觀) |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 2 | 상존(上存) |
의천(義天) | 천태사교의주(天台四敎儀註) | 3 | 실(失) | |
요원(了圓) |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 | 2 | 존(存) | |
조선 | 설잠(雪岑) | 법화경별찬(法華經別讚) | 1 | 존(存) |
연대 | 간행처 | 참고사항 | 연대 | 간행처 | 참고사항 | 연대 | 간행처 | 참고사항 |
---|---|---|---|---|---|---|---|---|
1236124012861383 1399 | 법불산일련암(法佛山日蓮庵)-정천익(鄭天益) 시주(施主) | 정분(鄭奮) 지(誌)최이(崔怡) 지(誌)성민(成敏) 지(誌)간행(刊行)남재(南在) 발(跋) | 1569 | 경주보문사(慶州普門寺) | 개판(開板) | 1649 | 보성(寶城) 개광사(開光寺) | 신간(新刊) |
1404 | ? | 용담(龍潭) 발원(發願) | 1571 | 보원사(普願寺) | 간행(刊行) | 1649 | 양산(梁山) 통도사(通度寺) | 간행(刊行) |
1405 | 도솔산(兜率山) 안심사(安心寺) | 성달생(成達生) 서(書) | 1572 | 사불산(四佛山) 대승사(大乘寺) | 어역(御譯) 복각(覆刻) | 1651 | 보성(寶城) 개광사(開光寺) | 간행(刊行) |
1420 | 구월산(九月山) 장불사(長佛寺) | 성부(省浮) 서(書) | 1572 | 월출산(月出山) 무위사(無爲寺) | 개판(開板) | 1652 | 보성(寶城) 개광사(開光寺) | 중간(重刊) |
1422 | 대자산(大慈山) 대자암(大慈庵) | 함허(涵虛) 발(跋) | 1573 | 은진(恩津) 쌍계사(雙溪寺) | 조귀창(趙貴唱) 각(刻) | 1653 | 해남(海南) 대흥사(大興寺) | 개판(開板) |
1443 | 불명산화암사 | 성달생(成達生) 서(書) | 1574 | 월출산(月出山) 덕주사(德周寺) | 개판(開板) | 1654 | 전주(全州) 백운암(白雲庵) | 간행(刊行) |
세조 | ? | 황진손(黃振孫) 서(書) | 1574 | 보개산심원사(寶蓋山深源寺) | 어역(御譯) 복각(覆刻) | 1655 | 속리산(俗離山) 법주사(法住寺) | 개판(開板) |
세조 | ? | 을해자판(乙亥字板) | 1575 | 금강산(金剛山) 장안사(長安寺) | 1655 | 영산(靈山) 쌍계사(雙溪寺) | 조성(造成) | |
1457 | 주자소(鑄字所) | 갑인자판(甲寅字板) | 1577 | 가야산(伽倻山) 보원사(普願寺) | 간행(刊行) | 1656 | 구월산(九月山) 흥률사(興栗寺) | 류판(留板) |
1463 | 간경도감(刊經都監) | 1578 | 광교산(光敎山) 서봉사(瑞峯寺) | 화암사복花巖寺) 복(覆) | 1657 | 자조산(慈照山) 대흥사(大興寺) | 개판(開板) | |
1463 | 간경도감(刊經都監) 어역(御譯) | 일여(一如) 주(注) | 1581 | 불명산쌍사(佛明山雙寺) | 류판(留板) | 1660 | 은진(恩津) 쌍계사(雙溪寺) | 중간(重刊) |
14671470 | 간경도감(刊經都監) | 무주(無注)김수온(金守溫) 발(跋) | 1581 |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 | 개판(開板) | 1660 | 조계산(曹溪山) 선암사(仙巖寺) | 개간(開刊) |
성종 | 정희대왕대비(貞喜大王大妃) | 김수온(金守溫) 지(誌) | 1583 | 송광사(松廣寺) | 신간(新刊) | 1661 | 운악산(雲岳山) 신흥사(神興寺) | 개간(開刊) |
1472 | 인서대비(仁舒大妃) | 1584 | 서산(瑞山) 개심사(開心寺) | 간행(刊行) | 1663 | 금강산(金剛山) 표훈사(表訓寺) | 간상(刊上) | |
1474 | ? | 한계희(韓繼禧) 발(跋) | 1604 | 능인암(能仁庵) | 개간(開刊) | 1664 | 영취산(靈鷲山) 이왕사(異旺寺) | 판각(板刻) |
1477 | 불명산(佛明山) 화암사(花巖寺) | 1605 | 가산(迦山) 강당사(講堂寺) | 개간(開刊) | 1665 | 금산(金山) 직지사(直指寺) | 개판(開板) | |
1483 | 인서대비(仁舒大妃) | 학조(學祖) 발(跋) | 1607 | 송광사(松廣寺) | 개각(改刻) | 1665 | 덕유산(德裕山) 영각사(靈覺寺) | 중간(重刊) |
1493 | 갑인자(甲寅字) 복각(覆刻) | 김열경(金悅卿) 발(跋) | 1609 | 전주(全州) 귀신사(歸信寺) | 개간(開刊) | 1668 | 울산(蔚山) 운흥사(雲興寺) | 중간(重刊) |
1495 | 어역본(御譯本) 복각(覆刻) | 1610 | 김제(金堤) 흥복사(興福寺) | 간(刊) | 1669 | 개령(開寧) 고방사(敲防寺) | 개판(開板) | |
1500 | ? | 1613 | 청계산(淸溪山) 청룡사(靑龍寺) | 개판(開板) | 1670 | 운주사(雲住寺) | 개판(開板) | |
1523 | 영광지(靈光地) 구수사(九水寺) | 어역복각(御譯覆刻) | 1615 | 송광사(松廣寺) | 개판(開板) | 1670 | 계룡산(鷄龍山) 갑사(甲寺) | 개간(開刊) |
1527 | 하가산(下柯山) 광흥사(廣興寺) | 개판(開板) | 1622 | 청룡산(靑龍山) 청계사(淸溪寺) | 개판(開板) | 1675 | 청룡산(靑龍山) 화장사(華藏寺) | 개판(開板) |
1531 | 팔공산본사(八公山本寺) | 중간(重刊) | 1623 | 고성(固城) 운흥사(雲興寺) | 개간(開刊) | 1678 | 학가산(鶴駕山) 광흥사(廣興寺) | 개간(開刊) |
1534 | 고창(高敞) 문수사(文殊寺) | 영험전(靈驗傳) | 1627 | 남양(南陽) 봉림사(鳳林寺) | 간행(刊行) | 1678 | 몽학사(夢鶴寺) | 개판(開板) |
1539 | 덕유산(德裕山) 영각사(靈覺寺) | 중간(重刊) | 1628 | 영광(靈光) 수연사(隨緣寺) | 개간(開刊) | 1681 |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 | 개판(開板) |
1543 | 토산지(兎山地) 석두사(石頭寺) | 유판(留板) | 1631 | 구룡산(九龍山) 수암사(水巖寺) | 중간(重刊) | 1685 | 지리산(智異山) 안왕사(安旺寺) | 류진(留鎭) 신간(新刊) |
1543 | 마니산(摩尼山) 정수사(淨水寺) | 개간(開刊) | 1632 | 안변(安邊) 석왕사(釋王寺) | 개간(開刊) | 1686 | 초주갑인자(初雕甲寅字) | 복각(覆刻) |
1545 | 중봉산(中峰山) 쌍계사(雙溪寺) | 어역(御譯) 복각(覆刻) | 1633 | 무등산(無等山) 증심사(證心寺) | 개간(開刊) | 1688 | 칠보산(七寶山) | 개간(開刊) |
1545 | 금강산(金剛山) 표훈사(表訓寺) | 류판(留板) | 1634 | 순창(淳昌) 흥복사(興福寺) | 간행(刊行) | 1691 |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 | |
1547 | 중봉산(中峰山) 쌍계사(雙溪寺) | 어역(御譯) 복각(覆刻) | 1635 | 은진(恩津) 쌍계사(雙溪寺) | 중간(重刊) | 1697 | 해주(海州) 신광사(神光寺) | 보문품(普門品) |
1554 | 고덕산(高德山) 귀진사(歸進寺) | 복각(覆刻) | 1635 | 운주산(雲住山) 용장사(龍藏寺) | 개간(開刊) | 1720 | 삼각산(三角山) 중흥사(重興寺) | 류진(留鎭) |
1559 | 자모산(慈母山) 거봉사(炬峯寺) | 복각(覆刻) | 1635 | 해남(海南) 대흥사(大興寺) | 간행(刊行) | 1723 | 덕원(德源) 원통암(圓通庵) | 개판(開板) |
1561 | 소백산(小白山) 질방사(叱方寺) | 복각(覆刻) | 1636 | 지리산(智異山) 군자사(君子寺) | 개간(開刊) | 1724 | 덕유산(德裕山) 영각사(靈覺寺) | 행간(行刊) |
1561 | 지제산(支提山) 천관사(天冠寺) | 개간(開刊) | 1638 | 재악산(載嶽山) 영정사(靈井寺) | 간행(刊行) | 1727 | 비구혜원(比丘惠遠) 중각(重刻) | 간경도감(刊經都監) |
1562 | 쌍봉사(雙峰寺) | 류진(留鎭) | 1639 | 곤양(昆陽) 서봉사(栖鳳寺) | 개간(開刊) | 1728 | 조계산(曹溪山) 선암사(仙巖寺) | 중간(重刊) |
1564 | 구월산(九月山) 패엽사(唄葉寺) | 을해자(乙亥字) 복각(覆刻) | 1646 | 신어산(神魚山) 감로사(甘露寺) | 개간(開刊) | 1764 | 덕산(德山) 가야사(伽倻寺) | 개간(開刊) |
1564 | 대청산(大靑山) 중암(中庵) | 개판(開板) | 1646 | 전주(全州) 백운암(白雲庵) | 개간(開刊) | 1795 | 양주(楊州) 불암사(佛巖寺) | 영험전(靈驗傳) |
1564 | 황주(黃州) 이순변가(李順卞家) | 판각(板刻) | 1646 | 천$비구(天$比丘) | 누판(鏤板) | 1799 | 조계산(曹溪山) 송광사(松廣寺) | 개간(開刊) |
15651565 | 가야산(伽倻山) 보원사(普院寺)속리산(俗離山) 복천사(福泉寺) | 행간(行刊)개판(開板) | 1648 | 가야사(伽倻寺) | 개간(開刊) | 1876 | 천마산(天摩山) 보정사(寶晶寺) | 간행(刊行) |
도 | 소장처 | 매수 | 연대 | 간행처 | 비고 |
---|---|---|---|---|---|
경기 | 청계사(淸溪寺) | 2 | 미상 | 권1 | |
청계사(淸溪寺) | 210 | 1622 | 청계사(淸溪寺) | 7권 | |
전등사(傳燈寺) | 104 | 1543 | 강화(江華) 정수사(淨水寺) | 7권 | |
불암사(佛巖寺) | 17 | 미상 | 권1 | ||
서울 | 동국대(東國大) | 2 | 미상 | 권1 | |
동국대(東國大) | 62 | 미상 | 7권 | ||
강원 | 신흥사(神興寺) | 30 | 1661 | 앙양(襄陽) 신흥사(神興寺) | 권1 |
충북 | 26 | 미상 | |||
충남 | 11 | 1565 | 서산(瑞山) 보원사(普院寺) | 7권 | |
1 | 미상 | 권6 | |||
전남 | 송광사(松廣寺) | 237 | 1799 |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 | 7권 |
선암사(仙巖寺) | 260 | 1728 | 7권 | ||
흥국사(興國寺) | 21 | 미상 | 권1 | ||
대흥사(大興寺) | 245 | 1561 | 장흥(長興) 천관사(天冠寺) | 7권 | |
쌍봉사(雙峰寺) | 17 | 미상 | 7권 | ||
경북 | 도리사(桃李寺) | 223 | 1688 | 도리사(桃李寺) | 7권 |
직지사(直指寺) | 31 | 1665 | 직지사(直指寺) | 권1 | |
고천사(攷川寺) | 10 | 미상 | 언해 | ||
고천사(攷川寺) | 4 | 1672 | 청도(淸道) 고천사(攷川寺) | 권1 | |
고방사(敲防寺) | 31 | 1669 | 개령(開寧) 고방사(敲防寺) | 권1 | |
백흥암(百興庵) | 277 | 1531 | 공산본사(公山本寺) | 7권 | |
경남 | 해인사(海印寺) | 119 | 1242 | 대장도감(大藏都監) | 7권 |
해인사(海印寺) | 146 | 1242 | 대장도감(大藏都監) | 7권 | |
해인사(海印寺) | 118 | 1242 | 대장도감(大藏都監) | 7권 | |
해인사(海印寺) | 71 | 1236 | 정구(鄭舊) 지(誌) | 7권 | |
해인사(海印寺) | 2 | 1236 | 선산(禪山) 사(寫) | ||
해인사(海印寺) | 257 | 1660 | 은진(恩津) 쌍계사(雙溪寺) | 7권 | |
쌍계사(雙溪寺) | 105 | 1604 | 용인암(能仁庵) | ||
쌍계사(雙溪寺) | 5 | 1903 | 국사암(國師庵) | ||
쌍계사(雙溪寺) | 1 | 미상 | 법화영험(法華靈驗) | ||
벽송사(碧松寺) | 221 | 1685 | 함양(咸陽) 안왕사(安旺寺) | 7권 | |
운흥사(雲興寺) | 32 | 미상 | 고성(固城) 운흥사(雲興寺) | 권1 | |
통도사(通度寺) | 7 | 미상 | 7권 | ||
통도사(通度寺) | 31 | 1668 | 울산(蔚山) 운흥사(雲興寺) | 권1 |
지정번호 | 지정명칭 | 수량 | 판종 | 소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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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85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7권 7책 | 사경(寫經) |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
국보 제211호 | 백지묵서묘법연화경(白紙墨書妙法蓮華經) | 7권 7첩 | 사경(寫經) | 성보문화재단(成保文化財團) |
국보 제234호 |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 7권 7첩 | 사경(寫經) | 이건희(李健熙) |
보물 제204호 | 송광사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松廣寺妙法蓮華經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 | 1책 | 목판본(木版本) | 송광사(松廣寺) |
보물 제206호 | 송광사묘법연화경찬술(松廣寺妙法蓮華經讚述) | 1책 | 목판본(木版本) | 송광사(松廣寺) |
보물 제269호 |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 1권 1첩 | 사경(寫經) | 마곡사(麻谷寺) |
보물 제270호 |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 1권 1첩 | 사경(寫經) | 마곡사(麻谷寺) |
보물 제278호 | 법화경절본사본(法華經折本寫本) | 7권 7첩 | 사경(寫經) | 내소사(來蘇寺) |
보물 제314호 | 취지금니묘법연화경(翠紙金泥妙法蓮華經) | 2권 2첩 | 사경(寫經) | 광흥사(廣興寺) |
보물 제315호 | 백지묵서묘법연화경(白紙墨書妙法蓮華經) | 2권 2첩 | 사경(寫經) | 광흥사(廣興寺) |
보물 제352호 |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 1권 1첩 | 사경(寫經) | 이화여대(梨花女大) |
보물 제390호 | 광덕사고려사경(廣德寺高麗寫經) | 6권 6첩 | 사경(寫經) | 광덕사(廣德寺) |
보물 제692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2권 2첩 | 목판본(木版本) | 조명기(趙明基) |
보물 제693호 | 소자본묘법연화경(小字本妙法蓮華經) | 7권 2첩 | 목판본(木版本) | 조명기(趙明基) |
보물 제766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4권 1첩 | 목판본(木版本) | 임창순(任昌淳) |
보물 제918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1권 1첩 | 목판본(木版本) | 이행로(李行鷺) |
보물 제936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4권 2책 | 목판본(木版本) | 김경숙(金京淑)·박순분(朴順粉) |
보물 제950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3권 1책 | 목판본(木版本) | 이양희(李洋姬) |
보물 제960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7권 1책 | 목판본(木版本) | 이화균(李華均) |
보물 제961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4권 1책 | 목판본(木版本) | 이화균(李華均) |
보물 제962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2권 1책 | 목판본(木版本) | 이화균(李華均) |
보물 재968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1권 1첩 | 목판본(木版本) | 이정자(李正子) |
보물 제971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3권 1책 | 목판본(木版本) | 이양재(李亮載) |
보물 제976호 | 상지은니묘법연화경(橡紙銀泥妙法蓮華經) | 2권 1첩 | 사경(寫經) | 이원기(李元基) |
보물 제977호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1권 1첩 | 목판본(木版本) | 이원기(李元基) |
(1) 묘법연화경 권7(보물, 1981-1 지정)(보물, 1981-2 지정)
1240년(고종 27)에 간행한 목판본. 2권(권7 複本) 2첩(帖). 이 판본은 권말에 의하면, 최이(崔怡)의 명으로 사일(四一)이 입수한 송나라 계환이 주해한 송본(宋本)에 의거하여 조판(雕板)하였음을 알 수 있다. 판각이 정교하며 자체가 단정하다. 2첩 중 간기(刊記)를 잃은 판본은 판각 당시에 인출하여 불복(佛腹)주 01)에 넣었던 듯 자획(字劃)에 마멸이 없고, 인쇄가 깨끗하며 지질도 두텁게 잘 뜬 저지(楮紙)주 02)가 흰색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지정 당시의 소장자에 의하면, 황해도 황주군 정방산(正方山)성불사(成佛寺)의 불복에서 나온 것을 입수하였다고 한다. 다른 한 첩은 성불사의 불복에서 꺼낸 판본보다 오래된 것같이 보이나, 자획에 완결(刓缺)주 03)이 있는 것으로 보아 후쇄본임을 알 수 있다. 이 판본은 『법화경』에 대한 계환의 주해본이 당시 우리나라에 널리 유통되었음을 알려 주는 자료이다. 경기도 호암미술관과 서울의 최현이 소장하고 있다.
(2) 묘법연화경 권6~7(보물, 1988년 지정)
1240년에 간행한 목판본. 2권(권7) 1책. 묘법연화경 권7(보물, 1981-1 지정)(보물, 1981-2 지정)과 동일한 첩장본 판식이나 선장으로 제본하였다. 권말에 ‘시주전진양판관김○○(施主前晉陽板官金○○)’·‘거창군부인유씨(居昌郡夫人劉氏)’ 등의 묵서지기(墨書識記)가 있어 이들의 시주에 의하여 인출되었음을 알 수 있고, 그 시기는 고려 말경으로 추정된다. 서울의 이경희가 소장하고 있다.
(3) 묘법연화경 권7(보물, 1988년 지정)
1240년에 간행한 목판본. 1권(권7) 1첩. 묘법연화경 권7(보물, 1981-1 지정)(보물, 1981-2 지정)과 동일한 판본이다. 권말에 ‘시주공조전서최극수김남효도흥윤금환(施主工曹典書崔克壽金南孝道興潤金環)’의 묵서가 있어 고려 말경에 인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감색(紺色) 표지에 ‘묘법연화경계환소권제칠(妙法蓮華經戒環疏卷第七)’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서울의 이원기(李元基)가 소장하고 있다.
(4) 묘법연화경 권7(보물, 1987년 지정)
1288년(충렬왕 14) 승려 재색(齋色)이 간행한 것이다. 1권(권7) 1첩. 이 판본은 본문이 매항 16자씩 배열되어 있고, 그 윗부분에는 과주(科註)주 04)를 달아 본문과 선(線)으로 연결되게 하여 내용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불복에서 나온 듯 앞뒤 표지가 없다. 서울의 강태영이 소장하고 있다.
(5) 묘법연화경(보물, 1988년 지정)
1382년(우왕 8)에 판각된 소자본(小字本) 『법화경』. 7권 2책. 이색(李穡)의 발문에 의하면, 계환이 주해한 구본(舊本)이 글씨가 커서 지선(志禪)이 다시 작은 글씨로 썼다고 하며, 수연군(壽延君)왕규(王珪)와 수령옹주(壽寧翁主) 왕씨(王氏) 등의 시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판본은 권4∼권7이 후쇄본이고, 권1∼권3이 복각본이다. 서울의 이경희가 소장하고 있다.
(6) 묘법연화경(보물, 1991년 지정)
권1∼3, 권4∼7. 7권 2책. 목판본. 1399년(정종 1)에 간행되었다. 권말에 있는 남재(南在)의 발문에 의하면 도인 해린(海隣)이 송나라 계환(戒環)의 주해본(註解本)을 구해서 간행하기를 원하여, 중정대부사재령치사(中正大夫司宰令致仕) 정천익(鄭天益)과 전중훈대부군기감(前中訓大夫軍器監) 이양(李穰) 등의 시주로 간행한 것이다.
권머리에 학조(學祖)의 도장이 있어 조선 초기의 고승 학조가 소장했던 책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에 소자(小字)로 아주 정교하게 새긴 판본이다. 권1의 첫 장이 떨어져 나간 것이 흠이고 다소 후쇄본(後刷本)이다. 서울의 송성문(宋成文)이 소장하고 있다.
(7) 묘법연화경 권3(보물, 1988년 지정)
정확한 간행시기는 알 수 없으나 1401년(태종 1) 신총(信聰)이 태상왕(太上王)으로 있던 태조의 명으로 간행한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보물, 1984년 지정)과 본문 글씨가 동일한 점과 간행 조건으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경기도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8) 묘법연화경 권4~7(보물, 2013년 지정)
1405년(태종 5) 안심사에서 간행한 것이다. 권말에 있는 권근(權近)의 발문에 의하면, 조계종 신희(信希) 등이 기로(耆老)주 05)를 위해서 보기에 편리하도록 중자(中字)주 06)로 간행하기를 원하였는데, 성달생·성개(成槪) 형제가 상중에 이를 듣고 선친의 추복(追福)주 07)을 위하여 필사한 것을 신문(信文)이 안심사에 가지고 가서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포배장(包背裝)주 08)의 청색명주로 된 표지가 남아 있고, 그 위에 ‘묘법연화경 권제사지칠(妙法蓮華經 卷第四之七)’이라는 제목이 주사(朱絲) 바탕에 금니(金泥)로 쓰여 있다. 서울의 이경희가 소장하고 있다.
(9) 묘법연화경 권5~7(보물, 1988-2 지정)
1405년 안심사에서 간행한 묘법연화경 권4~7(보물, 2013년 지정)와 동일한 판본이다. 권머리에 고려 우왕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정씨(鄭氏)라는 사람이 시주하여 새긴 커다란 변상도(21.7×79㎝)가 붙어 있다. 이 책은 원래 절첩본(折帖本)주 09)이었는데 포배장으로 개장(改裝)되어 있다. 서울의 이양재(李亮載)가 소장하고 있다.
(10) 묘법연화경 권4~7(보물, 1984년 지정)
1448년(세종 30) 효령대군(孝寧大君)과 안평대군(安平大君)이 함께 발원하여 간행한 것이다. 권머리에는 변상도가 있고, 권말에 안평대군이 손수 써서 새긴 발문이 있다. 이 책은 글씨를 정성껏 썼고 판각도 정교하며, 조선 초기의 명필가인 안평대군의 필적이 잘 나타나 있다. 서울의 강태영(姜泰泳)이 소장하고 있다.
(11) 묘법연화경 권6~7(보물, 1987-1 지정)
1482년(성종 13) 인수대비(仁粹大妃)가 외동딸인 명숙공주(明淑公主)의 천도를 위하여, 1470년(성종 1) 세조비인 정희대왕대비(貞熹大王大妃)에 의하여 판각된 목판에서 찍어낸 경전 중 하나이다. 2권 1책(複本). 책 끝에는 판각 때 쓴 김수온(金守溫)의 발문과 인출 당시 먹으로 쓴 강희맹(姜希孟)의 발문이 붙어 있다. 경기도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2) 묘법연화경 권5~7(보물, 1988-1 지정)
1488년(성종 19)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가 그의 딸 순숙공주(順淑公主)의 천도를 위하여 찍어낸 14부 가운데 하나이다. 3권(권5∼7) 1책. 이 판본은 1470년에 정희대왕대비(貞熹大王大妃)에 의해서 판각된 목판에서 찍어낸 후쇄본이다. 책 끝에 1488년에 을해자(乙亥字)로 찍은 발문이 있다. 묘법연화경 권6~7(보물, 1987-1 지정)와 같은 판본으로 왕실의 불교신앙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3) 묘법연화경(언해) 권1, 3, 4, 5, 6(보물, 1989년 지정)
1463년(세조 9)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한 『법화경』 7권 가운데 권1·권3·권4·권5·권6의 5권 5책이다(권5·권6은 추가 지정됨). 서울의 강태영(姜泰泳)이 소장하고 있다.
(14) 묘법연화경 권5~7(보물, 1991년 지정)
1451년(문종 1) 태종의 빈(嬪)인 명빈(明嬪) 김씨가 태종·세종·소헌왕후(昭憲王后)와 친정 아버지 안정공(安靖公)김구덕(金九德), 어머니 장경택주 신씨(莊敬宅主辛氏)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간행한 것이다. 3권(권5∼7). 서울의 호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15) 묘법연화경(언해) 권3(보물, 1992년 지정)
1463년(세조 9)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법화경』 가운데 1권(제3권) 2책으로 비록 전질은 아니나 교정인(校正印)이 있는 초쇄본(初刷本)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이 본은 계환의 주해와 일여(一如)의 집주(集註)가 붙은 『법화경』을 국역한 것인데 본문과 계환의 주해만 번역하였다. 서울의 송성문이 소장하고 있다.
(16) 묘법연화경 권1(보물, 1992년 지정)
이 판본은 권1(1帖)로 간기(刊記)가 있는 권책을 잃었으나, 본문의 글자체로 보아 1401년(태종 1)에 신총(信聰)이 태상왕 태조의 명을 받아 필사하여 판각한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보물, 1984년 지정)과 동일한 서법(書法)의 판본이다. 이 판본은 책의 머리[卷首]를 변상도로 장식한 조선 초기의 독자적인 판본인 점에서 특히 이채롭다. 경기도의 박찬수(朴贊守)가 소장하고 있다.
(17) 묘법연화경 권3~4, 5~7(보물, 1993년 지정)
1470년(성종 1)에 세조비인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尹氏)가 둘째아들 예종이 돌아가자 이미 고인이 된 세조와 의경왕(懿敬王)주 10), 그리고 예종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간행한 책이다. 5권(권3∼7) 2책. 이 판본은 당시 일류 각수(刻手)인 이영산(李永山)·장막동(張莫同)·최금동(崔今同) 등에 의해서 판각된 것으로 그 새김이 아주 정교하다. 이 판본은 초판본으로 이후에 찍은 후쇄본이 여러 종 전하고 있다. 서울의 강태영이 소장하고 있다.
(18) 묘법연화경 권1~3(보물, 1993년 지정)
조선 세조 연간(1455∼1468)에 간행된 황진손(黃振孫)의 목판본. 3권(권1∼3) 1책. 책의 머리卷首]에 변상도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널리 유통된 『묘법연화경』 판본 가운데 성달생이 필사한 판본 계통과 구별되는 조선시대의 독자적인 판본이다. 전주시의 한솔종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 묘법연화경 권3~4, 5~7(보물, 2014년 지정)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유통된 후진(後秦) 구마라습의 한역본이다. 2권(권3∼4) 1책. 이 책은 간기가 없으나 묘법연화경 권6~7(보물, 1987-1 지정)과 묘법연화경 권5~7(보물, 1988-1 지정)로 지정된 판본과 비교하여 보면 동일한 판본임을 알 수 있다. 1470년(성종 1)에 세조비인 정희대왕대비 윤씨(貞熹大王大妃尹氏)가 둘째아들 예종이 일찍이 죽자 이미 고인이 된 세조와 덕종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판각한 목판에서 찍어낸 후쇄본이다.
그 후쇄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묘법연화경 권5~7(보물, 1988-1 지정)의 1488년(성종 19) 후쇄본보다 인쇄상태가 양호하므로 그 이전인 성종 연간에 찍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판본은 본문에 둥근 표점이 새겨져 있어 읽기 편리하게 되어 있고, 당시에 유행하던 계환의 주해가 붙어 있지 않아 독송용(讀誦用)으로 판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울의 김민영(金敏榮)이 소장하고 있다.
(20) 묘법연화경 권2(보물, 1994년 지정)
간기가 없어 정확한 간행연도는 알 수 없으나 신총이 필사하여 판각한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9~10(보물, 1994년 지정)과 서체가 동일한 판본이기에, 조선 초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엽(全葉)을 6행(行)씩 나누어 첩장(帖裝)으로 제본하였다. 1권(권3) 1첩(帖).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에 소장되어 있다.
(21) 묘법연화경(보물, 1994년 지정)
1422년(세종 4)에 성령대군(誠寧大君)주 11)과 그의 어머니 원경왕후(元敬王后)를 위하여 인순부윤(仁順府尹) 성억(成抑)이 새긴 목판에서 1456년(세조 1)에 동궁(東宮)의 빈(嬪)인 한씨(韓氏)주 12)가 친정 어머니인 홍씨(洪氏)주 13)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찍어낸 책이다. 이 책은 7권 7책의 완질본으로 표지 일부가 약간 훼손되었을 뿐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제첨(題簽)주 14)은 붉은 바탕에 금니로 썼으며, 각 책의 권수마다 변상도가 들어 있다. 글씨는 성달생 형제가 썼다. 비록 초간본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 판본의 전체 모습을 알 수 있는 완질본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에 소장되어 있다.
(22) 묘법연화경 권7(언해)(보물, 1995년 지정)
권말(卷末)의 갑인소자(甲寅小字)로 된 김수온의 발문에 의하면, 이 판본은 1463년(세조 9)에 간경도감에서 판각한 목판에서 인수대비가 세조(世祖), 예종(睿宗), 의경왕과 인성대군(仁城大君)의 명복을 빌기 위해 1472년(성종 3)에 찍어낸 29종의 불경 가운데 하나이다. 『법화경』이 간경도감판(刊經都監版)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귀중한 판본이다.
권 제7. 1권 1책. 목판본. 이 책은 인수대비가 인출한 불경 가운데서도 『법화경』은 간경도감판이었고, 이 때 인출한 60부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서울의 중앙승가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23) 묘법연화경 권3~4(보물, 1996년 지정)
이 판본은 전 7권 중 권 제3∼4의 영본(零本)주 15)이고 간기가 없으나 묘법연화경 권6~7(보물, 1987-1 지정), 묘법연화경 권5~7(보물, 1988-1 지정)과 비교해 볼 때 동일한 판본이다. 이 판본은 구두를 나타내는 둥근 표점이 새겨져 있어 독해하기 편하도록 하였다. 제첨에 이르기까지 책의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지질이나 인쇄상태도 매우 깨끗하다.
이 판본은 표지와 제첨이 원장(原裝) 때의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포배장인 장정은 우리나라 장정사(裝幀史)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에 소장되어 있다.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1992∼1993 지정편-(문화재관리국,1994)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 -1991 지정편-(문화재관리국,1992)
『동산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1990 지정편-(박상국,문화재관리국,1991)
『국보』 12-서예·전적-(천혜봉 편,예경산업사,1985)
『불전해설』(이기영,한국불교연구원 출판부,1978)
『한국불교소의경전연구』(이지관,보련각,1973)
주01불상의 뱃속주02닥종이주03깨지거나 마모된 것주04문단을 나누어 주석을 붙임주05노인주06큰 글씨주07사후에 명복을 빔주08등지까지 함께 표지를 감싸는 것주09병풍식 제본주10德宗주11태종의 넷째 아들주12昭惠王后주13韓確의 부인주14제목이 쓰여진 종이를 표지에 붙임주15책의 대부분이 유실되고 남은 몇 권의 책
집필 (1996년)서경수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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