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3

최요한 아둘람온라인공동체 |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 문제는 ‘사도바울’이었다는 뼈아픈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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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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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카톡으로는 글을 남기고, 페이스북에는 글을 남기지 않았네요... 이 글 올리고 곧 2편도 용감하게 올리겠습니다.

<아둘람 가족분들께>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단순명료하게 나쁜 놈과 착한 분들이 나뉘던 시대가 지나고 그야말로 포스트모던하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제 삶의 뿌리였던 기독교 – 심지어 제 이름은 ‘요한’입니다 – 가 심각하게 비판을 받는 시대가 되다 보니 진짜 ‘기독교는 뭐지?’라는 질문이 제 뱃속에서부터 목구멍까지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징글징글했던 기존 기독교회에서 쫓겨나고 나서, 나름 대안교회라는 곳에 출석하기도 하고(거기서도 심각한 내상을 입었습니다 ㅠㅠ), 이리저리 치여 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목사아들 돼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사역하고 있는 ‘벙커1’교회에 출석을 하기도 했지요. 요즘은 사정이 생겨서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가나안’ 교인이네요.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제가 생각하고 느끼고 정리한 것을 글로 남겨 두지 않으면 그냥 휘발(揮發)되겠구나 하는 겁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으면 5.18이 부정당하듯이 왜곡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대단해서도, 너무나 엄청난 주장이라서가 아니라, 돌들이라도 소리를 칠 것이라고 하셨으니, 그 돌이 던져졌으면 어디에 어떻게 던져졌고, 누굴 맞춰서, 어떤 파괴력이라도 보였나, 하는 것을 기록하겠다는 것입니다. 
  몇 주 동안은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저서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를 중심으로 책도 읽고 생각을 깊이 했습니다. 도올 선생의 해석은 탁월했습니다. 제 생각과 맥이 닿는 부분이 있어서 좀 뒤적거려 보았더니 대략 10여 년 전에 썼던 글이 있네요. 지금 맥락에 맞춰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냥 이런 생각하고 사는구나 하고 여기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210703 최요한
<생각 톺아보기1 - 20210704>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 문제는 ‘사도바울’이었다는 뼈아픈 깨달음 
문제는 바울
 1.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라디아서1:8~9)
 2.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요한14:6)
 3.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행전4:2)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누가 읽는지, 언제 어떤 장소에서 반포하는지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만, 기독교인들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성경’에 분명히 들어가 있는 말씀입니다. 
  10여 년 전에 한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위험지역이라고 제발 가지 말라고 외교부에서 그렇게 막았었지만, 당시 정말 개념 없는 기독교인들이 정부를 속이고 넘어갔다가 납치되어 2명의 귀한 생명 희생되고 아까운 세금이 협상용으로 사용되는 ‘민폐’를 끼친 적이 있지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오직 예수’라는 단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 인용한 성경말씀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지요. 온 세계 방방곡곡에 하느님 말씀이 널리 퍼져서 온 민족과 온 열방이 온리 지저스, 온리 하느님만 믿어야 하는 것, 부처니 이슬람이니 모두 다 불태워버리고, 오로지 기독교 지상천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의식, 오직 예수님만 믿고 천국가자는 바로 그 핵심논리 말입니다.
  슬프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국민적 지탄을 받을 때는, 막상 납치당했을 때는 ‘선교’가 아니라 순수 ‘봉사’라고 하더니 지금 그때 살해된 두 사람의 ‘순교비’가 서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때의 이슬람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 바뀌었기 때문일까요? 중동을 비롯한 이슬람 선교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부처님 오신 날’에는 조계사와 봉은사에서 잇따라 개신교인들 10여 명이 소란을 피웠다고 하지요. 바뀌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볼까요? 생각해 보면 조선 땅에 들어온 ‘복음’도 서양 선교사들이 대동강에서 목이 뎅강 떨어져 나가면서 전파된 것이지요. 그냥 분당샘물교회를 욕하거나 “개념 없는 개독교인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화가 나서 욕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순교와 순교자에 대해서 비하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물론 저는 순교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아직도 버젓이 그 유가족들이 남아 있는데 도가 지나쳐서는 안 되지요.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을 이제 보니까 낯이 뜨겁습니다. 혹시라도 유가족분들이 그때의 제 글을 읽고 맘 상하셨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는 이 부분이 명백하게 ‘순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짚을 것은 짚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땅밟기(불교나 이슬람 사원 가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 말입니다.)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데도 그게 의미가 있다고 그런 짓을 한 것입니다. 그쪽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지 않고 공격적인 선교를 진행한 것이죠. 
  이제 생각해 보니 대동강에서 예수를 전파하다 대원군의 잔인한 명령으로 살해당한 선교사님들의 순수성을 십분 이해하지만, 그분들의 배경에는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했던 제국주의의 시커먼 속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눈앞의 팩트가 전부 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 옛날에도 복잡다단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복잡한 인간사입니다. 여기에 정치가 개입되어 있는 ‘종교’가 외피를 두르고 나타나면.... 사건이 커집니다. 
  잠시 이야기가 샜습니다만, 전 세계에서 이렇게 사고를 저지르는 기독교인들, 특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많은 이유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해 보았는데 요, 그 이유가 바로 ‘바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올쌤은 마가복음에 베드로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인했고, 그것으로 마가복음의 ‘베드로’는 끝났다, 라고 표현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초대교회 신자들이 떠받들어 교회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이제는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지만, 저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떻게 베드로가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그런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을까? 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가장 큰 제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반석이라고 칭해서?(마태오 16장 18절)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초대교회에서 베드로를 초대 지도자로 삼아서 처음부터 엇나간 것은 바로 [바울-베드로 동맹체제]가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바울과 베드로가 동맹을 맺었고, 나머지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나? 어떻게 기독교가 ‘예수의 하느님 신앙’과는 전혀 다른 ‘예수에 관한 신앙’으로 변질되었고, 어떻게 세계종교로 성장하게 되었나,를 제가 공부한 대로, 그리고 한국기독교에 비추어 해석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짬짬이 정리해서 글을 올리는 건데요, 혹시라도 팩트가 틀릴 수 있고 제가 착각했다면 지적해 주세요. 다만 기본적인 시각이 다르면, 맘이 상하실 수 있으니까 그냥 지나가 주세요. 서로에게 이롭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아직 많이 남았네요.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