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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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한국문화 사진
천지인 신학(Theocosmoandric Theology)이란 무엇인가?천지인신학조회 수 8345 추천 수 389 2003.08.28 22:04:44
허호익*.67.151.113http://theologia.kr/board_chungeein/2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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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저서 "제6장 천지인 신학 가능성 모색" 참고 바람**
한국 기독교인은 '한국인 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으로 성서와 기독교신학의 구성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한국문화의 구성원리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서의 구성원리 역시 하나님께서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바른 수직적 영성적 관계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바른 수평적 연대적 관계와 인간과 자연(또는 물질) 사이의 바른 순환적 친화적인 관계"를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과 불순종과 육욕 때문에 이 삼중적인 관계가 불편하여졌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삼중적인 관계를 회복하시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이다. 이러한 성서의 삼중적 삼중관계는 십계명과 주기도문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 원리는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한국문화의 구성원리로서 최근 조자룡, 김지하, 우실하 등에 의해 널리 인정받는 천지인 조화의 삼태극적 구조의 삼재론과 상응 한다.
따라서 천지인의 조화라는 삼태극의 원리로서 성서와 신학의 여러 주제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천지인의 신학은 영육 이원론적 구조에 기초한 서구 중심의 인류 문명이 안고 있는 심각한 현안들의 대안적인 사상이 될 수 있다. 전통적인 서구의 이원론적 실체론으로 인해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몸과 마음, 정신과 물질이 대립적인 실체로 분열되어 신성(神聖)의 포기와 자연의 파괴와 인격의 파탄이라는 인류문명의 생존과 관련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성적 대신관계, 연대적 대인관계, 순환친화적 자연물질관계라는 삼중적 삼중관계의 원리를 회복하는 것만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신과 인간의 바른관계를 회복하고 마음과 몸의 바른 관계와 나아가서 물질과 정신의 균형적인 발전을 지향하는 영성신학,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바른 관계를 지향하는 정의와 평화의 상생신학이나, 남성과 여성의 바른 관계를 지향하는 여성신학, 자연과 인간의 바른 관계를 지향하는 창조의 보전과 생태학적 신학을 모두 아우르는 해석학적 원리가 바로 천지인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제3세계신학의 주제로 등장하는 백인우위의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racism), 남성우위의 여성 차별(sexism), 서구 문화 중심의 문화적 차별은 모두 위계적인 시원적인 사상에서 비롯된 소외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일의적 논리의 독단은 폭력과 대응폭력의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이원론적 비실체론으로 대립적 갈등을 해소하고, 비시원적 순환론으로 차별과 소외를 극복하고, 다중적 논리로서 일의적 논리적 독단에서 벗어 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지향하는 비시원적인 천지인의 조화와 전개를 지향하는 천지인의 신학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문화의 뿌리사상이면서 동시에 전통문화의 구성원리로서 널리 맥을 이어온 천지인의 조화 원리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바른 관계, 인간과의 수평적인 바른 관계, 자연(또는 물질)과의 순환적 바른 관계의 조화를 지향하는 전향적인 해석학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 한국토착화 신학과 달리 천지인 삼중적 삼중관계를 해석학적 원리로 삼아 그 성서적, 신학적 근거 뿐만 아니라 목회적 근거를 통전하려고 한다. 천지인 신학의 목회적 근거로서 무엇보다도 필자의 모교회인 포항제일교회(김광웅 목사)의 표어가 "하나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자연과 함께"이며, 협동목사로 섬긴적인 있는 새벽교회(이승영 목사)의 표어는 "하나님께 영광, 이웃과 평화, 자연에게 긍휼"이며 그리고 생명목회를 지향하는 덕수교회(손인웅 목사)의 목회철학 역시 삼애 목회로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자연사랑"이다.
마지막으로 "천지인 신학(Theocosmoandric Theology)"이라는 용어는 필자가 처음 사용하는 것으로서 R. 파니카의 우주신인론적 체험(Cosmotheandric Experience) 또는 우주신인론적 영성(Cosmotheoandric Spiritualisty)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자세한 내용들은 제가 쓴 글들을 참고 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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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호익
February 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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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단군신화에 대한 기독교 신학적 이해가 필요한가?
1985년의 단군전 건립 계획과 1999년 단군상 건립으로 인하여 한국기독교에서 단군신화를 바라보는 눈이 비판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성명서를 통해 밝힌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가 상고사에 대한 학문적 검토 없이 단군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은 자칫 반민족적인 행위로 비칠 수 있음을 우려”하였다. 그리고 “단군신화를 단순히 하나의 신화나 특정 종교의 교리와 관련된 문헌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의 중요한 자산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고 제언하였다.
그러나 단군신화와 기독교와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인은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이라는 실존적 역설"에서 벗어 날 수 없다.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되는 과정을 보아도 성서가 번역되면서 구약성서의 여호와 엘로힘을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신명인 하나님으로 번역한 일이다. 이 하나님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과 같은 뜻이다. 장병일은 이점을 분명히 하였다.
“창조주인 히브리명인 엘로힘(P문서)은 한국의 신명인 하나님으로 개명한지 오래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 어원이 바로 단군신화의 환인의 고유한, 하나님, 혹은 하느님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우리 조상대대로 전승되어온 하나님 신앙 때문에 기독교가 전래되었을 때 기독교의 여호와 엘로힘을 하나님으로 번역함으로 단군신화의 환인 하나님 바로 기독교의 여호와 엘로힘 하나님이라는 신앙으로 토착화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신앙의 토착화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기우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는 것이 성서 번역상의 논쟁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듯 그 기본 의미는 한국 고유의 신명으로서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인(桓因)을 지칭한다. 환인에 관해서 하나님설, 천부설, 천신설 등이 주장 되었지만 그 기본 내용은 동일하다. 환인은 하나님으로서 천부요 천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천신 사상은 북방유목민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 기독교는 누가 뭐래도 단군신화를 통해 계승된 하나님 신앙 전승의 토양 위에 성서의 여호와 엘로힘 하나님 신앙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천지신명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쉽게 전파되고 수용되고 뿌리를 내려 세계 선교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단시간의 내의 급속한 교세 성장을 이룬 것이다.
중국에서는 황제를 천자(天子)라 하고 일본에서는 왕을 천황(天皇)이라 하였기 때문에 민중들 사이에서 자연히 천신에 대한 하나님 신앙이 약화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우리 보다 훨씬 먼저 전해 졌으나 늘리 전파되고 수용되지 못한 것이다.
한국인들의 경우는 단군신화에 내재된 하나님 신앙을 끈질기게 계승하여 왔기 때문에 기독교의 전래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이 신앙이 쉽게 전파되어 뿌리내리는 아주 중요한 통로가 된 것이 분명하다. 한국문화의 구성원리인 단군신화와 성서와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의 만남이 불가피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1930년대부터 생겨난 ‘조선적 신학’에 대한 자의식이나, 1960년대의 ‘토착화 신학’이나. 1970년대의 민중신학이나 그리고 1980년대의 문화신학 등은 “복음의 씨앗과 문화의 토양”의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하여 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동안 성의 신학, 효의 신학, 풍류신학, 상생신학, 언행일치의 신학, 한(恨)의 신학, 민중신학, 물(物)의 신학 등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해석학적 원리는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사유의 원리로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단군신화에 나타난 천신이 환인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지모신인 웅녀와 짝을 지어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천지인의 조화의 원리'는 삼태극의 원리에 상응하는 북방 유목인 삼수분화의 세계관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가장 시원적인 사상이고 시대마다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이어저 왔으며 기층문화와 표층문화에 동시적으로 나타나는, 그래서 공시적이요 통시적이요 통전적인 가장 한국적인 사유의 원리이다. 그리고 단군신화의 천지인의 조화의 원리는 또한 성서와 기독교 신학의 원리, 즉 하나님과 바른 관계(개인구원), 이웃과의 바른 관계(사회구원), 자연 과의 바른관계(생태구원)의 원리와도 상응한다.
단군신화가 케케묵은 우리 민족의 옛날 이야기인데, 오늘과 같은 세계화시대에 세계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문할 수 있다. 이제는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세계인”으로 자리 매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특수한 것이 보편적인 것이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천지인의 조화라는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단군신화의 삼재론은 서구 중심의 인류 문명이 안고 있는 심각한 현안들의 대안적인 사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서구의 이원론적 실체론으로 인해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몸과 마음, 정신과 물질이 대립적인 실체로 분열되어 신성(神聖)의 포기와 자연의 파괴와 인격의 파탄이라는 인류문명의 생존과 관련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천지인 조화의 원리에는 화이트헤드가 새롭게 모색한 비본체론적인 유기체 철학의 원리와 비시원적인 과정철학의 원리가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가장 최근의 서구 철학과 현대물학의 원리와 상응하는 점이 많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천지인의 역동적 조화의 원리는 다이나믹 코리아로 표상되는 삼태극의 원리로서 천지인의 신학의 해석학적 원리를 삼아 한국신학의 세계화를 모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직적 영성적 대신관계, 수평적 연대적 대인관계, 순환적 친화적 대물관계라는 삼태극의 원리를 회복하는 것만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인이면서 동시인 기독교인이며 동시에 세계인”이라는 삼중적인 실존 구조 속 있다. 따라서 단군신화의 천지인의 조화의 삼재론과 기독교적인 천지인 신학의 역설적인 만남을 통해 새롭고 통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서구신학에 대한 대안적인 한국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