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를 학대한 부모님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저의 고민은 부모님과의 관계입니다. 아버지는 툭하면 윽박지르고 심한 욕설을 해서 인격적으로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폭행과 성추행으로 얼룩진 나날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안 보내주셔서 4년간 거의 혼자 지냈습니다.
제가 직장이 없을 때는 인연을 끊자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다가 직장을 갖게 되자 자주 만나려고 하고 카드를 가져가십니다. 이런 도의에 어긋난 아버지의 모습들을 보면 안 만나고 싶다가도 막상 안 만나면 마음이 쓰입니다. 지금은 부모님과 같이 살기 싫어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데, 한편으론 부모님과 좋은 기억들도 많아서 저 혼자 편하게 지내려니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앞으로 부모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며 지내는 게 현명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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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는 부모님처럼 애먹이는 남편 만나서 부부간에 싸우면서 살고 싶어요? 부모님처럼 안 살고 싶어요?”
“부모님처럼 안 살고 싶어요.”
“부모님처럼 안 살고 싶으면 이제 정을 끊어야 해요.”
“정을 끊으라는 말씀은 부모님을 아예 만나지 말라는 건가요?”
“만나는 건 누구든지 만날 수 있죠. 죄를 지어서 교도소에 있는 사람에게도 면회는 가 줄 수 있듯이요. 만나고 안 만나고가 문제가 아니라 정을 딱 끊는 게 핵심이에요.
미리 ‘안 만난다’ 하고 정하면 만나고 싶을 때 내가 정한 것 때문에 속박을 받게 돼요. 또 미리 ‘만나자’ 하고 정하면 만나기 싫을 때 내가 정한 것 때문에 속박을 받게 됩니다. 만나고 안 만나는 것을 미리 정하면 거기에 자신이 속박을 받아요. 그러니 만나고 안 만나는 것은 미리 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핵심은 부모님과의 정을 끊는 거예요.
‘지금까지 저를 낳아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스무 살이 넘었으니 부모님의 도움 없이 제 인생은 제가 살겠습니다.’
정을 끊으려면 이렇게 기도하면 돼요.”
“그런데 제가 마음으로는 정을 끊은 것 같거든요.”
“지금 질문자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자석에 쇠붙이가 끌려가듯이 털끝만큼도 정을 끊은 게 아니에요. 그냥 고통이 올 때 싫어하는 거죠. 정을 끊으면 싫어하는 마음도 안 생겨요. 정을 끊어버렸는데 싫어하고 좋아할 게 뭐가 있어요. 지금 질문자가 ‘만나야 합니까? 안 만나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아직 정을 못 끊었다는 겁니다.
정을 끊어버리면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어져요. 질문자는 이웃집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을 만나야 할까, 안 만나야 할까?’ 이런 고민을 안 하잖아요. 비록 옆집에 살아도 그 사람하고 정이 없기 때문에 볼일 있으면 만나고, 볼일 없으면 10년이 가도 안 만납니다.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볼일 있으면 자주 만나는 것이고요. 그것처럼 정을 딱 끊어 버려야 해요. 정을 딱 끊는 방법은 감사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동안 저를 때렸든 어쨌든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낳아주고 키워주셨으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제 스무 살이 넘었으니 부모님께 야단맞고 의지하고 도움받고 살 때는 지났습니다. 저는 독립해서 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렇게 감사 기도를 하고 더 이상 연연할 필요 없이 정을 끊고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저 하나여서 부모님이 걱정됩니다.”
“부모님에게 자식이 하나든 둘이든 열이든 그런 생각할 필요 없이 내가 정을 끊어야 해요. ‘자식이 나 하나라서 부모가 걱정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정을 못 끊겠다는 거잖아요. 정을 못 끊으면 또다시 부모한테 가서 싸우고 정붙였다가 또 울고불고 싸우고 이렇게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괜찮아요.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 바에야 스님한테 물을 필요가 없잖아요. 지금 질문자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물으니까 스님이 조언을 해주는 겁니다.”
“나중에 부모님이 연세를 많이 드셨을 때는 어떻게 하죠?”
“그런 질문 자체가 정이 안 끊어져서 하는 질문입니다. 이웃집 할머니가 아무리 늙어도 혼자 살든 말든 신경이 안 쓰이듯이 정을 딱 끊어버리면 부모님에 대해 그런 걱정이 안 들어요.
제가 어제 길을 가는데 이웃집 할머니가 혼자서 뭘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뭐 하세요?’ 물어보니 고라니가 밭에 들어와서 상추를 다 먹어버려서 울타리 치려고 말뚝을 만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혼자 하기 힘들지 않으세요? 제가 좀 거들어드릴까요?’ 했더니 ‘아니야, 나 혼자 할 수 있어’ 이러시더라고요.
이렇게 아무런 정이 없어도 관심을 가질 수 있잖아요. 필요하다고 하면 도와드리고,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 못 도와드리는 겁니다. 설령 병원에 실려 가시더라도 그 집 자식이 알아서 하든지 본인이 알아서 하도록 두면 돼요. 내가 도움이 되면 도와주고, 내가 도울 형편이 안 되면 안 도와주고, 그건 내 자유입니다.”
“제가 만약에 정을 안 끊으면 저도 부모님처럼 그렇게 살게 되는 건가요?”
“100% 그렇게 살게 된다는 게 아니라 부모님이 사는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처럼 살게 될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새끼 고양이는 어미 고양이를 흉내 내고, 강아지는 어미 개를 흉내 내고, 송아지는 어미 소를 흉내 내듯이, 그건 자연의 이치예요. 자신이 자란 환경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막상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겁니다. 그것을 ‘까르마’라고 합니다.”
“그럼 제가 명절이든 생신이든 어버이날이든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옆집 사람처럼 생각나면 만나는 정도로 부모님과 지내면 되는 건가요?”
“정이 끊어지면 그런 질문 자체를 할 필요 없이 저절로 돼요. 정에 끌려서 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원한이 있어서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됩니다. 어버이날이니까 전화 한 통을 드릴 수도 있고, 부모님 댁에 인사를 드리러 갈 수도 있고, 그때 부모님이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그 말에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부모님 댁에 갔더니 ‘다음부터는 오지 말라’ 하면 ‘알았습니다’ 하고 안 가면 돼요. 그래도 가고 싶으면 가면 됩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이웃집이라고 생각하면 저절로 이렇게 됩니다.
질문자는 정이 안 끊어졌기 때문에 열 가지 백 가지 질문이 생기는 거예요. 정을 붙여놓고 머리를 굴리는 수준으로는 밤새도록 얘기해도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정만 딱 끊어버리면 만 가지 질문이 필요 없이 저절로 해결됩니다. 그러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그 이상은 정을 딱 끊어야 해요.
부모가 나를 보살필 책임도 없고, 나도 더 이상 부모를 보살펴야 할 책임도 없고,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할 책임도 없고, 부모를 돌봐야 할 책임도 없어요. 의무 관계가 다 끊어진 겁니다. ‘이제 나는 내 인생을 산다’ 이런 관점을 분명하게 가져야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상대가 질문자를 독립된 한 사람으로 만나서 살 수 있어요. 그게 아니고 질문자 뒤에 부모가 있으면 상대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이 불행해지는 지름길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 여기서 딱 정을 끊어야 합니다.
인생이 참 재미있습니다. 질문자가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마치 변소간에 구더기를 연상하게 되거든요. 구더기가 변소간에서 기어 나오려고 해서 건져 내놓으면 다시 변소간으로 들어갑니다. 질문자는 실컷 조언을 해줘도 다시 기어들어 가고, 도저히 못살겠다고 해서 다시 끄집어 내놓으면 또 기어들어 가는 수준이에요. 악담을 해서 미안합니다만 질문자가 그만큼 위험한 수준이라는 거예요. 부모 하고는 정을 딱 끊고 이걸로 끝을 내야 합니다. 이웃이라는 관점에서 필요하면 돌봐줄 뿐이에요. 그래도 나를 키워주었으니까 어버이날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릴 수는 있지만, 바쁘면 못 가는 겁니다. 아버지가 나를 추행했느니 때렸다느니 이런 얘기 자체도 이제는 버려버려야 해요.
정을 끊으라는 말은 미워하지도 말고, 정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 의무감도 갖지 말고 미워하지도 마세요. 부모는 더 이상 미워할 대상도 아니고, 책임져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이런 가족관계일 때는 정을 딱 끊고 좋은 마음으로 그저 편안하게 지내는 게 좋아요.”
“그러면 어떤 기도문을 갖고 수행을 하면 좋을까요?”
“기도문 타령하지 말고 정만 끊어버리면 됩니다. 별도로 기도문이 필요 없어요. 기도문을 만 번 외워도 정을 못 끊으면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굳이 기도문이 필요하다면 매일 절하면서 이렇게 되내어 보세요.
‘부모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제 인생 살겠습니다. 정은 끊었습니다.’
‘정을 끊겠습니다’ 하고 기도하는 게 아니고 ‘정을 끊었습니다’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을 끊겠다는 말은 아직 정을 못 끊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 ‘정은 끊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대답만 잘하지 말고, 실제로 정을 딱 끊어야 해요. 정을 못 끊고 살면 앞으로 질문자의 인생에 불행이 눈에 훤히 보여요. 젊은 사람이 그렇게 불행하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집안에 태어났든, 그동안 어떤 고통을 겪고 학대를 받았든, 지금만 딱 정신 차리면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과거에 생긴 트라우마에 매이거나 정에 매이게 되면 늘 다람쥐가 쳇바퀴 돌리듯이 그 울타리에서 못 벗어나게 됩니다.”
“네, 스님 말씀대로 정을 끊겠습니다.”
“또 정을 끊겠다고 하네요. ‘스님 말씀 듣고 이제 정을 딱 끊었습니다’ 이렇게 말해야죠. 정을 끊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정을 못 끊었다는 얘기입니다.”
“네, 스님 말씀 듣고 정을 딱 끊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엎드려 절 받기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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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는 질문자를 뒤로 하고 다음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남편과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숙여지지가 않아 많이 다투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까요?
저는 시댁에서 시어머니와 아가씨들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다시 남편에게 상처를 주고, 그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힘듭니다.
회사에서 1년에 한 번씩 업무분장을 하고 일을 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업무를 많이 받아서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저는 식용 목적의 개 농장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한국에서 개 식용이 없어질까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친 후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다고 했던 질문자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