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2

[완역 이경숙 도덕경] 비판 – 노바당

아트앤스터디

제목 : <완역 이경숙 도덕경> 비판 – 노바당 [0]
번호 : 1765 작성자 : 노자조아 등록일 : 2009-04-27(12: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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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이경숙 도덕경> 비판 – 노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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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글머리1 - 이경숙과 노자

글머리2 - 이경숙의『완역 이경숙 도덕경』비판에 들어가며

1> 이경숙의 책 『완역 이경숙 도덕경』은 얼마나 엉망인가?

1. 원문을 잘못 입력하고, 그 잘못된 원문을 가지고 해석하는 경우

2. 반복되는 같은 구절을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

3. 자기 마음대로 문법을 만든 경우(1편; 시지불견의 경우 등)

4. 자기주장이 옳다는 근거로 허위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5. 무식이 드러나는 경우

2> 이경숙의 한문 이해 방식에 대한 비판

3>

4> ‘『완역 이경숙 도덕경』비판’ 주석

이경숙의 ‘시지불견視之不見’ 해설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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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1 - 1)이경숙과 노자

 

 

저는 에코넷 뒷마당에 6월 21일과 22일에 올라 온 『완역 이경숙 도덕경』을 비판한 세편의 글과 그 글을 종합한 한편의 글을 쓴 노바당입니다. 이 글들을 쓴 이유는 지난 4월 인터넷에서 이경숙의 『노자』해설이 말이 된다는 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제가 5,6년 만에 쓴 비교적 긴 글입니다. 단 한 분이 보라고 쓴 글이지만, 기왕 쓴 글이라 이 글을 6월 중순에 보충하여 제 블로그에 다시 올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경숙이 지금은 뭘 하는지 궁금하더군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이경숙 구름’으로 검색해 봤습니다.

 

검색을 하여 구름카페를 거쳐, 구름타운을 지나 에코넷 뒷마당까지 왔습니다. 구름타운에서 보니 한눈에 사이비 종교형 다단계 사업이더군요. 저는 다단계 사업이 정부에서 허용해서는 안 될 비인간적 기업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자』로 모은 사람들 데리고 다단계 사업이라니...  저는 금년에도 집에 있던 멀쩡한 정수기 내버리고 280만 원짜리 정수기를 설치했습니다. 300만원 그냥 준다는데도 꼭 실적을 올려야 한다더군요. 사이비 종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등록된 대형 종교도 대부분 사이비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에코넷 뒷마당에 와보니 저로서는 상상 불허인 2) ‘구름은 깨비다.’라는 의혹이 있더군요. 물론 저는 이 때 깨비가 도깨비 줄인 말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에코넷 뒷마당을 더 살펴보니 하루 전에 블로그에 올려놓은 제 글들이 모두 올라와 있어서 놀랐습니다. 물론 제가 올린 것 아닙니다. 저는 하루 10시간 근무하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날부터 시간이 날 때 마다 에코넷 뒷마당과 구름타운의 글을 대부분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구름은 깨비다.’라는 의혹이 정당하다고 봅니다.

 

저는 『노자』와 관계된 문제만을 한 번 더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경숙의 지금 상황이 『노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에 올려 진 글은 교정이 덜 된 것이고 제가 올린 것이 아니므로 조금 손보아 다시 올립니다.

   

 

 

 

‘구름은 깨비다.’, ‘구름의 글은 깨비가 쓴 것이다.’ 지금 이경숙이 ‘지금까지의 내 글은 내 남편이 쓴 것이다.’라고 인정한다면 구름과 안티구름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리고 구름타운은 구름타운대로, 안티구름은 안티구름 그만 두고 내 갈 길로 가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구름의 글 자체, 그 내용도 의심해봐야 하는 것이다.

 

이경숙에 대한 추종자들의 존경심, 그리고 선생님, 사이비 교주(약간 전 단계?), 또한 다단계 상위 사업자로서의 이씨의 권위와 권력은 대부분 이씨의 『노자』책(『노자를 웃긴 남자』, 『완역 이경숙 도덕경』)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이씨의 『노자』해석 중 기존 전문가와 다른 부분, 즉 이경숙식으로 번역한 것은 3)거의 100% 틀렸다. 내 글은 이것을 증명한 것이다. 확고한 근거가 없는 권위는 조그만 비판에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내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은 내 글과 본인이 가지고 있는 『완역 이경숙 도덕경』을 맞춰 보면서 공부해야한다. 믿는 것도 알고 믿어야 한다. 모르고 믿는 게 맘 편한 분들은 그냥 그렇게 살면 되지만, 모르고 믿는 것을 미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구름타운의 회원이었다가 지금은 안티구름인 분들도 마찬가지다. 이 분들은 대체로 ‘구름이 깨비다.’라는 의혹은 있지만, 그가 『노자』에 대해 쓴 글에는 아직도 존경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한문이나 『노자』에 관심이 있고 공부하고자 한다면 상당한 공력을 들여야 한다. 그런 공을 들이지 않고 누구의 말이 쉽게 이해된다고 덥석 물면 평생 고생할 수 있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훌륭한 것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이경숙의 『노자』해설을 보고 혹한 사람들은 대체로 한문과 『노자』에 대한 상식과 인문학적 기본 교양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잘못인가? 한문이나 『노자』는 몰라도 되고, 『노자』를 안다고 해서 세상살이가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노자』를 공부한 적이 없더라도 노자의 사상은 거의 2000년에 걸쳐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과 생각의 기초에 깔려 있다.

 

이경숙의 『노자』에 대한 권위가 도올 김용옥을 씹음으로써 시작된 것이므로 도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의문이 든다. 정신이 정상인 사람들이 어떻게, 4)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국립대만대학교와 동경대학교에서 노자철학을 공부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중국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고전 한문을 읽지 못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런 정도의 수련을 거친 사람과, 책을 쓰면서 『노자』를 처음으로 다 읽어 봤다는 사람이 비교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바둑에 급수가 있는 것처럼 앎과 깨달음에도 급수가 있다. 급수라는 말 대신 차원이나 수준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다. 도올과 이경숙의 한문 실력이나 『노자』이해는 프로와 10급 바둑 이상의 차이가 있다. 나는 그 중간 어디에 있으나 이씨에 가깝지는 않다. 그런데 바둑을 관전하는 사람이 프로기사의 바둑과 10급 바둑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바둑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바둑을 잘 구경하려면 먼저 바둑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10급 바둑도 여러 가지다. 정수로 두는 10급과 사이비 10급이 지금은 서로 이겼다 졌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한 사람은 그대로이고 한 사람은 저만큼 앞에 가게 된다. 나는 이씨의 『노자』 이해 수준이 사이비 10급 정도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이비『노자』10급인 이씨에게 『노자』를 배운다는 것은 안 배우는 것보다 훨씬 나쁜 결과가 된다.

 

나는 대만 사람인 진고응(陳鼓應) 선생의 『노자주역급평개(老子註譯及評介)』(中華書局)로 『노자』공부를 했다. 지금은 이 책이 국내에 『진고응이 풀이한 노자』(영남대학교 출판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어 있다.

 

진고응은 국립대만대학교에서 노장철학을 가르쳤고, 1970년대 말에 반정부 운동 때문에 미국으로 추방되어 버클리대학교에서 연구했다. 그 후 중국 북경대학교에 ‘대만을 비방하지 않는다. 공산당 선전을 하지 않는다.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친다.’는 3개항의 조건으로 초빙되어 노장철학을 가르쳤다.

 

나는 진고응 선생의 『노자주역급평개(老子註譯及評介)』가 『노자』를 읽는 사람들에게 표준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록에 선진시대(先秦時代; 약 2200년 이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노자』해설서 중 262가지 책의 목록이 실려 있다. 거기에 중국인이 아닌 사람의 책으로는 일본의 후쿠나가 미쓰지(福永光司)의 『노자』와 김용옥(金容沃)의 『노자자연철학중무위지공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두 가지만 실려 있다. 이런 전문가들을 무대뽀로 무시하는 게 가능한 것이 우리나라의 인문학 수준이며, 고전에 관심 있다는 일반인들의 수준이다.

 

이런 모든 문제의 시작에 중앙일간지 기자들이 있다. 인문계 대학 공부를 하고 중앙일간지 서평을 담당하는 기자들이 ‘이경숙이 도올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경숙이 하버드를 이겼다’라는 말들을 만든 것이다. 게다가 ‘왕필(王弼) 이후 모든 『도덕경』은 오역(誤譯)의 역사였다’라는 이경숙의 허황된 말을 기사화하고, ‘이경숙이 노자의 가르침을 온전하게 전해준다’는 평가를 하는 5)기자들의 수준은 부끄러울 정도를 넘어 선 것이다. 아무리 장사속이라도 기본 양심과 상식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질문을 한 기자나, 황당한 대답을 하는 이씨나 그분이 그분이다.

 

기자; 어떻게 『노자』의 해석을 그리 잘 하는가?

이경숙; 내가 노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모를 일이 뭐 있겠는가?

 

이씨의 글을 읽어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이씨의 문장력, 소위 글빨에 대해서는 인정을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씨의 글빨이 먹히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씨의 유창한 표현력에 앞서 그 내용이 보이기 때문이다. 유창하지만 대부분 틀린 말을 정신 나간 소리 또는 헛소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씨의 글이 그냥 『노자』를 읽은 감상문이라면 나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노자』에 대해 저만 안다고 선전하여 남을 가르치려 들고, 책 팔아먹고, 사람들을 모아 다단계 사업하는 것은 나라도 참견할 수밖에 없다. 그런 걸 6)사이비 종교 사업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씨가 이제는 한문이나 『노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정직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결국에는 인간관계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다단계 사업도 접기를 바란다. / 끝 2007.7.5

 

 

 

 

글머리2 - 1)이경숙의『완역 이경숙 도덕경』비판에 들어가며

 

수년 전에 중앙일보에『노자』에 대해 획기적인 해석을 하는 이경숙이라는 여자가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노자를 웃긴 남자』(2001)라는 책을 썼는데 그게 말이 된다는 겁니다. 좀 7)이상한 중앙일보 신문기자가 이 여자를 띄우려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잘 안 됐습니다.

 

그 후 3년쯤 지나 이씨가 쓴 책이『완역 이경숙 도덕경』(2004)입니다. 자기 딴에는 공부도 더 했다하고, 정통파인 것처럼 젊잖은 흉내 낸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도 개판이고 거의 100% 틀린 해석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틀린 책이 어떻게 버젓이 출판될 수 있는지 궁금 할겁니다. 별거 아닙니다. 출판사 돈벌이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사람들이『노자』에 관심은 많아도 자기 자신이 생각을 하지 않고, 제대로 된 것인가 확인도 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여자의 문제는『노자』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요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비해 우리나라의 고대사에 대한 재야의 연구가 활발합니다.『환단고기』라는 책에 「천부경」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이 여자가 해석한 것을 가지고 논의를 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이 여자 말 듣고 그걸 기초로 이해하고 판단한다? 미친 짓입니다. 저는『환단고기』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서는 판본板本의 문제가 기본입니다. 

 

어제 인터넷에서 아직도 이 여자의『노자』해설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는 분이 있어서 오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글을 써 놓는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물론 저 혼자 한 약속이지만 이 글(1편) 쓰느라 하룻밤 샜습니다. (2007.4.9)

 

(참고: 아래 [종합]편은 기존의 다음 세 편을 3편, 2편, 1편순으로 재편집한 것입니다.

1편, 「이경숙의 ‘시지불견視之不見’ 해설 비판」

2편, 「이경숙의 한문 이해 방식에 대한 비판」

3편, 「이경숙의 책『완역 이경숙 도덕경』은 얼마나 엉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