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호] 지나온 10년 앞으로의 10년
등록자 교육담당등록일자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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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_원상호 편집위원장
참석_성락철 무위당사람들 이사장, 황도근 무위당학교장, 심상덕 무위당기념관장,
김찬수 무위당사람들 기획관리이사, 장동영 무위당학교 운영위원장,
박설희 무위당사람들 사무국장, 황진영 무위당사람들 사업팀장
정리. 편집위원회
“이때까지 추구한 게 의미가 없으면
소리 없이 버려야 한다.
10년을 쌓았건 20년을 쌓았건
그게 모래성이라는 걸 알았으면
허물 줄도 알아야 한다.
집착(執着)이 병통(病痛)이다.”
-무위당 어록 중에서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이 올해로 법인 설립 10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잘한 일도 많았지만 미숙했던 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추구한 것이 의미가 있고 모래성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면 앞으로의 10년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 일꾼들이 지난 1월 17일 무위당기념관에 모여 지나 온 10년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며 비전을 공유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10년이 그랬듯 앞으로도 무위당 선생님의 사상과 삶의 실천 방식 등 기본 정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생명과 평화, 협동, 연대의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지나 온 10년의 성과와 성찰
진행자
: 안녕하세요. 어느덧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이 법인으로 전환된 지 10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선 지나 온 10년을 돌아보며 성과와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성락철 이사장
: 무위당 선생님은 생전에 당신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후학들이 그 말씀을 따르느라 10여 년을 허비한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선배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속상한 일도 많아요. 협동운동과 생명운동으로 한정해 놓고 일을 한 것 같다는 말입니다. 사실 선생님은 생명운동, 협동운동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하신 분이죠.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했어요. 신협운동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단 말입니다.
제가 예전 어느 날 선생님을 찾아가서 투정을 부릴 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야, 이놈아, 신협운동이 너 그렇게 우습게 보이는 게 아니다. 신협운동을 통해 민주화 교육을 시키겠다는 말이야”라고요. 박정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게 데모한다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며 농촌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신협 조합원들에게 민주화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것이 하나로 귀결돼 민주화가 되어가는 과정의 그림을 그리신 겁니다.
표면적으로 선생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절에 신협운동을 하신 거예요. 선생님은 생명운동, 협동운동, 한살림 운동만 한 것이 아닌 거죠.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그 밑에서 일했던 분들도 암암리에 와서 지도받고 그랬어요. 그 일들을 모두 기록해 놓은 분도 계시고요. 올해부터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부분을 좀 더 알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올해 가장 중요하게 해보고 싶은 사업으로 지학순 주교님과의 관계를 재설정해 발굴하고, 기록하고 알리는 부분입니다. 민주화와 관련된 아주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기록한 분이 기록물을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장동영 운영위원장
: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에 대해 원주 내에서는 소위 ‘그들만의 리그’라거나 ‘좌빨’이라는 등의 인식이 남아있는 것 같아 이를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할지 고민입니다. 최근에 어떤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중 비중 있어 보이는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무당인지 무위당인지 아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왜 이렇게 비중 있게 다루냐”고요. 조금 당황스러웠고 이 말을 들으니 고민도 많이 됐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말입니다. 슬기롭게 잘 풀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무위당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교육과 관련해 말하고 싶습니다. 무위당학교가 지금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이 역시 고민을 많이 해야 될 것 같아요. 무위당 선생님은 담론을 많이 이야기 하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신협에 들어와서 보니까 필요할 때는 담론을 던지셨지만, 어떤 사안을 풀어가는 데 있어서는 무위당 선생님과 지학순 주교님이 굉장히 치열하고 섬세하게 고민을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부분을 못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부분에 좀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외부에서 볼 때 무위당사람들에서는 담론만 던지고 있지 않느냐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무위당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실패하더라도 만들어가고 개척해나가는 것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바람이 있습니다.
황도근 무위당학교장
: 지나 온 10년을 뒤돌아보면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이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무위당만인회는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전국적으로 화두를 던졌다면 무위당사람들은 뒷일을 거의 다 했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분이 동주 심상덕 선생님입니다. 서화 전시회를 위한 서포터 기관일 정도로 열심히 하셨습니다. 무위당사람들 최고의 일 중 하나는 2009년부터 전국 전시회를 다니며 서포터 역할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 역할이 지금의 무위당사람들이 존재하는 기본 동력이라고 생각됩니다.
지역은 늘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미움도 사랑도 바로 옆에 있듯이 말이죠. 지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서화 전시회가 가장 큰 성과 중 하나고 이와 함께 무위당 서화자료집을 낸 것은 지난 10년 무위당사람들의 가장 큰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이 생기면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것이 바로 무위당학교입니다. 무위당학교는 원주에서 제법 자리잡는 데 성공한 것 같아요. 서화전시회는 전국에 알리는 데 성공했고, 무위당학교는 원주에서 인식을 바꾸는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운영위원들의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 분들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무위당 모임이 지역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된 것 같아요.
무위당학교는 앞으로도 지역 사람들을 위한 소통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정적인 일처리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의 초창기 행정은 약간 뒤죽박죽이었어요. 예산도 1억이 좀 안됐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산이 2억 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예산이 더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많아요. 지금까지 무위당사람들의 사무국이 힘들었던 것은 대외적인 일과 내부 행정을 동시에 하다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무위당사람들 사무국은 일하기 굉장히 어려운 곳이라는 겁니다. 전국 단위로 일을 해야 하고, 어르신도 모셔야 합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은 사무국에서 일하는 국장님이나 실무자 분들이 꿋꿋하게 잘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점을 지적할 수도 있지만 잘한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우리 스스로 서로 칭찬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심상덕 관장
: 이제 곧 무위당 선생님 25주기를 맞이합니다. 매년 기일 행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사무국 직원들이 외부에서 치러지는 1박 2일 행사 때 반드시 동행했으면 좋겠어요. 하루를 같이 묵고, 먹고,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분들과 잘 알게 됩니다. 다른 행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무위당 선생님 기일 행사 때 손님이 오면 사무국 실무자들이 외부 손님 3분의 1은 모르는 것 같아요.
공식적인 명함을 가지고 있는 분이야 당연히 알겠지만 그 외에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거든요. 밖에서 1박만 해도 그 주변 사람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은 생전에 어떤 손님이 오시든 사람들을 불러 인사 시키고, 함께 동행하고, 식사하고, 잠도 여자는 여자 집에, 남자는 남자 집에 모셨어요. 그 다음날 아침도 될 수 있으면 댁에서 대접하고, 그것이 안 되면 함께 모여 해장국을 먹기도 했죠. 이런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끈끈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이 싹틀 수 있었던 거죠. 그 덕분에 우리도 어디를 가면 그 분들이 똑같이 대접을 해줘요. 어디든 그분들이 계시는 곳을 가면 내 집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잘해주시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해주는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라도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원주에 오겠다고 전화가 오면 재워주고, 밥을 대접하고, 숙박 장소도 알아봐 주고, 그곳으로 직접 모시기도 하고 그래요. 손님이 오면 다른 건 못해도 두부와 묵, 막걸리를 싸들고 찾아갑니다. 그러면 굉장히 좋아하고 잊지 못하는 거예요. 이런 역할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찬수 기획관리이사
: 김정남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국에 내로라하는 독립운동가와 유명한 인물에 대한 기리는 모임도 있고, 기념사업회도 있지만 전국에서 가장 활발하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위당사람들 10년의 성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1세대 어른부터 같이 일하는 이사님, 실무진들의 자기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다른 이사님들보다 무위당사람들에 합류를 굉장히 늦게 했습니다. 원주의 여러 단체에서 같이 일하자고 했는데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무위당 선생님 일은 친한 친구가 핵심적으로 하고 있어서 합류하게 됐습니다. 제가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까 인물에 대한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어요. 무위당 선생님은 굉장히 콘텐츠가 풍부한 분이셨고 저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한테 늘 이야기 합니다. “원주는 앞으로 무위당 선생님 때문에 먹고 살 거다”라고 말이죠. 왜냐하면 스토리텔링이 무궁무진할 뿐 아니라 무위당 선생님은 우리 현대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나 감옥 생활, 민주화 등 거의 모두 우리 현대사와 관여가 돼 있어요. 이것은 원주로서 큰 유산입니다. 이런 사실을 원주사람들이 아직도 인식을 못하는 것 같아 굉장히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다음 정말 잘해온 것을 저는 세 가지로 봅니다. 첫 번째가 무위당사람들 소식지인데요. 김삼웅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이분은 무위당사람들 소식지가 없었다면 무위당 선생님 평전을 못 썼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안에 무위당의 역사를 비롯해 인터뷰와 글을 보면 다 들어 있다는 겁니다. 소식지에 대한 평가를 굉장히 좋게 해주더라고요. 첫 권부터 봐도 몇 장 안 되지만 굉장히 내공이 깊은 소식지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4년 동안 편집장을 하면서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소식지에 대한 일만 했어요. 매일 말입니다. 그 정도밖에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또 하나는 역시 서화 자료집에 대한 겁니다. 지난해 심상덕 관장님을 따라 다녀봤는데 저 같으면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작품이 있다는 소리에 생판 모르는 집 찾아가서 초인종을 누르는 일을 10년 넘게 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에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죠. 마음속으로 정말 존경하고, 누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신 것이라고 봅니다.
다음은 무위당학교입니다. 저는 인문학아카데미 같은 것을 예전부터 추구해왔는데요. 무위당학교 일을 하면서 ‘무위당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교육 이념을 실현하는 굉장히 좋은 학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건도 안 좋고 하다 보니 봄· 가을 두 번 정도밖에 할 수 없습니다만 거기에 최선을 다했어요. 실무자나 담당자는 굉장히 어려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10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진행자
: 지금까지 지나 온 10년을 뒤돌아봤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이 한 많은 일들 중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분야가 없어 안타까웠다는 말씀도 있었고요. 또 외부 인사에 대한 모심의 역할을 하는 분들이 없어 아쉬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무위당학교가 좀 더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제안과 서화집 발간의 큰 결과물에 대한 성과, 전국 전시회를 통한 전국화에도 기여했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고생한 사무국의 실무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지금부터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황도근 교장
: 서화 전시회 등 10여 년을 노력해서 얻은 큰 자산을 가지고 앞으로의 10년은 패턴이 좀 달라져야 될 것 같습니다. 전시회 등의 스타일보다 무위당의 사상과 접목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영상도 있을 수 있겠고요. 그렇게 전환하는 시기가 올해부터 진행됐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올해부터는 전시회를 열거나, 무위당 선생님을 소개할 때 서화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말고 더욱 다양한 형태로 모든 행사들이 진행되었으면 해요. 무위당 선생님의 사상과 시대정신, 미래에 대한 비전 등 다양한 형태로 말입니다. 심상덕 관장님을 중심으로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새롭게 디자인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아닌 새로운 사람이 주관하게끔 무대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보는 시각이 다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디자이너를 통해서 제2의 전시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면서 세 가지 정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무조건 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조직이 커지면 돈과 명예, 두 가지가 다가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조직이 커지고, 생명협동교육관이 생기고, 국가 예산도 받으면 상당한 명예가 걸린 일이 되어버리죠. 이 때문에 내부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무위당 선생님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외부에서 볼 때 무위당 선생님 자체보다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 안에서 일하는 실무자를 쳐다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내부 수련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정기적으로 내부 토론회를 자주 해서 스스로 다져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 실무자들이 외부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무조건 새사람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려 있는 조직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무위당 선생님의 정신운동, 사상운동이 퍼져나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누가 오더라도 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중심축은 흔들리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에는 어르신들이 있으니까 결코 흔들릴 조직은 아닙니다.
세 번째로 10년을 기획하는 분들은 과거 관성을 바꾸려고 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했다고 해서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끔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밖에서 많은 지원을 받더라도 공격을 받지 않아요. 무위당 선생님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끼리의 리그가 안 되게끔 하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끼리 리그를 하다가 정치상황이나 외부 환경이 바뀌었을 때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무위당학교는 지금과 같이 시민강좌로 가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대안교육이 되어야 해요. 앞으로 모든 교육은 무너질 것이기 때문에 무위당학교를 사회화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국을 모두 네트워크화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역마다 대안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과 새롭게 연결하고 연대해서 큰 흐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상덕 관장
: 무위당 서화집이 8집까지 나왔어요. 올해는 1집에서 8집까지 작품이 나오게 해준 소장자들을 찾아가 작품을 잘 간직하고 있는 지 돌아보고 싶어요. 그동안 기증해달라는 소리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기증을 해준다고 해도 어디 걸어 놓을 때도 변변치 않고 그래서 큰 숙제였어요.
올해는 행구동 생명협동교육관도 준공을 한다고 하니 일단 그 핑계로 기증을 받아볼 생각입니다. 또 한 가지는 무위당기념관 창고 안에 작품이 있는 데 예산을 세워서라도 잘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봤으면 좋겠어요.
박설희 사무국장
: 앞으로의 역할이나 사업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요즘하고 있는 작업은 그동안 나온 서화집 1집에서 8집까지 수록돼 있는 모든 작품을 데이터베이스(DB)화 하는 것이에요. 현재 2집만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분실사고도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바코드 같은 것도 정해서 무위당기념관에 들고 나는 것을 잘 정리하고 소장 작품도 잘 목록화해 전시회든지, 연구 자료로 쓸 때 바로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원로분의 책도 엑셀 작업은 돼 있는 데 마땅한 서가가 없어 묶어놓기만 했어요. 이런 자료 목록들을 연구 자료화 할 수 있게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정리하면서 느낀 건 심상덕 관장님이 그동안 많이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종류별로 기증자가 누구고,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등에 대한 정보가 디테일하게 잘 입력돼 있었어요.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셨구나, 자료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사무국에서 심 관장님의 뒤를 이어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무위당학교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무위당사람들이나 무위당학교에 애정을 가지셨던 분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주십니다. 그런 의견을 많이 들어야겠어요. 생명협동교육관 관련해서 만인회 분들 뵈러 다니실 때 저도 되도록이면 꼭 같이 다니고 싶습니다. 큰 그림을 같이 그려줄 분들 얘기를 많이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랬을 때 우리가 뭔가 제안하고, 시작할 때도 그 분들의 의견이나 고민을 받아 안고 그걸 녹여내 하는 것이라고 많은 분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야 우리가 앞으로 뭔가를 진행하면서 앞서 나갈 때, 그동안 고생하신 분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면서 잘한다고 애정을 가져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을 할애해서 정기적인 토론회나 학습모임 등을 통해 우리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사업적으로, 일적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정신 등 소양을 쌓아야 버틸 수 있고, 오래 지속할 수 있고, 좀 더 창의적이고, 좀 더 주도적인 활동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일의 책무성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가 견딜만한 기본 정신, 이런 것들을 잘 할 수 있게 저희 자체적으로 그런 것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역할을 잘 받아 안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한편으로는 그런 것도 하고 싶어요. 최근 지방분권화 얘기도 그렇고 지역자치, 마을공동체, 도시재생이든 굉장히 여러 단위의 지역 모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동체 운동, 지역자치를 표방하는 많은 운동들이 있는데 원주에서 그렇게 해오던 면모들이 운동사적 관점으로 잘 번역이 돼서 후배들이 잘 새길 수 있도록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얼마 전 원로님에게도 물어봤는데 “노동운동, 빈민운동, 농촌운동, 도시문제 해결과 같은 분과별 운동이 많았는데 무위당 선생님은 원주에 있었지만 운동의 큰 틀 자체를 성찰하시고 새로운 전망을 내놓으셨다”라고 하셨어요. 운동사적 관점에서 지금의 시민단체 등 시민사회 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신 거 같아요. 이런 이야기들도 세상에 잘 발신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제가 교류하고 있는 연구자들과 자료를 모아서 공부하는 모임을 작게라도 해서 세미나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시회나 무위당학교 모두 위에서, 중앙에서 지시하는 형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인 마음들이 모여서 지역모임들이 꾸려졌거든요. 이것이 무위당 선생님 운동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의 운동도 그렇게 돼야 될 것 같습니다.
봉산동 도시재생과 결합하고, 심상덕 관장님은 원주초등학교와 연결되는 등 지역과 밀착한, 사회적인 흐름들이 구체적으로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잘 만들어지고 있구나. 그동안 해온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사상에 대해서 교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연구모임 등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갈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김찬수 기획관리이사
: 생명협동교육관이 생기면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많은 분이 생각하고, 꿈꾸는 다양한 교육에 대한 커리큘럼이 생길 것입니다. 생명 협동에 대한 교육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그런 조건을 만들어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무위당사람들은 이제 태동기를 거쳐 거침없는 전개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발전기까지 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발전기로 도약하기 위한 전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환기를 잘 넘기면 정말 무위당사람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을 하다보면 정체기도 오고 힘든 시기도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들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생명협동교육관은 다음 세대가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는 장으로 우리가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동륜 선생님이 남편인 황도근 교수에게 ‘당신은 정사각형 네모를 원으로 생각하고 굴리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정사각형도 계속 굴리다보면 모서리가 깎이기 마련이지요. 저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 중 쉬운 건 하나도 없습니다. 앞으로 10년도 그 생각으로 저에게 주어진 일을 하겠습니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면 위로가 됩니다.
황진영 사업팀장
: 요즘 실무자로서 정체성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는 왜 ‘무위당사람들’과 함께하는가? 그 정체성을 찾는 것이 동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어디서 일하든지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와 조직이 함께 간다고 생각하기 위해 지금은 저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와 내년까지가 조직도 그렇지만 실무자에게도 중요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저는 무위당사람들에 합류한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일하면서 번뇌도 가끔 있어요. 이런 부분들을 주위에서 잘 이해해주고 보듬어줘 일할 수 있었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의 기본 정신을 실무자들이 잃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정기적인 토론과 학습도 좋지만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무위당 선생님의 사상과 삶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위당 선생님 사상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무위당 선생님이 남겨놓으신 유산을 가지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등 실무자로서도 체험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것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진행자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10년은 역시 두 가지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가 새로운 변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무위당 선생님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애써야 된다는 것 같습니다.
이제 올해 안으로 행구동에 생명협동교육관이 준공되면 지금보다 할 일은 배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직이 커지고, 규모도 방대해지겠지만 무위당 선생님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을 잘 이겨내고 선생님의 사상과 시대정신이 올곧게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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