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1

불교는 비관주의도 아니고 낙관주의도 아니며, 실제적인 종교입니다. 담마난다

 교학과 수행   불교이야기 담마난다 스님


불교는 비관주의입니까?
불교는 비관주의도 아니고 낙관주의도 아니며, 실제적인 종교입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불교가 음울하고 냉소적이며, 인생의 어둡고 그늘진 쪽만을 서성거리며, 아무런 해가 없는 쾌락을 적대시하고, 인생의 순순한 즐거움에 대해서까지 냉혹하게 짓밟는 종교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불교가 인생에 대해 절망적인 태도를 조장하고 고통과 악이 인간사를 지배하고 있다는 모호하고 일반적인 느낌을 고무하는 비관주의라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현 로마 교황까지도 “불교는 인생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르친다” 고 설명해 왔습니다.

이런 비판은 ‘조건지어진 것들은 모두 고통 상태에 있다’ 는 제일성제(弟一聖諦)에 대한 그들의 견해에 근거합니다. 그들은 부처님이 고통의 원인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고통을 끝내는 길도 가르쳐 주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어떤 경우이든지, 이 세속적 삶을 칭찬하고 우리들에게 그것을 집착하라고 가르친 종교 지도자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모든 종교가 구원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것은 이 세상의 불확실성과 불만족에서 해방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종교의 교조인 부처님이 비관주의자였다면, 그분의 성품은 이제까지 이루어져 온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상(像)은 평화, 평온, 희망과 선의(善意)의 인격화입니다. 매력적이고 환하게 빛나는 부처님의 미소는 그분 가르침의 표상입니다. 걱정하고 좌절한 사람들에게 그분의 깨달음과 희망의 미소는 불후의 확실한 강장제이고 진통제입니다. 부처님은 당신은 사랑과 자비를 온 천지로 퍼뜨렸습니다. 그런 사람이 비관주의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호전적인 왕과 제후들이 그분 가르침을 귀 기울여 듣게 되면, ‘유일하고 참된 정복은 나를 정복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진리인 불법을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것’ 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의 철저한 반대자까지도 아주 쉽게 무장해제시킬 정도로 유머감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종종 그들은 스스로에게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뛰어난 강장제를 갖고 있었으며, 그들 반대자들의 위험한 독성 시스템을 깨끗이 씻어주어 그 이후로 그들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열성적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설법, 대화와 토론에서 그분은 사람들의 존경과 애정을 자아내게 하는 자세와 품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비관주의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지속적으로 인생의 고통만을 품에 안고 비참하고 불행한 존재로 살아가기를 기대한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고통을 극복하고 행복한 방향으로 가는 방법(길)을 보여주려고 고통의 사실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깨달은 사람이 되려면 먼저 즐거움을 가져야 하는데, 이 즐거움은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잘 가꾸라고 권했던 조건들중 하나입니다. 즐거움은 절대로 비관적일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삶에서 평화와 행복을 찾은 부처님의 남녀 제자들이 기쁨에 겨워 토해낸 말들로 가득 찬 「장로게 Theragatha」 와 「장노니게 Thengatha」 라고 하는 두 가지 불교 경전이 있습니다.

한 번은 코살라(Kosala) 국왕이 부처님에게 “앙칼진 얼굴을 하고 거칠며 창백하고 깡마르고 호감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종교 집단의 제자들과 달리, 부처님의 제자들은 ‘즐거워하고 의기양양하며, 희열에 넘치고 환희하며, 영적인 삶을 즐기고, 고요하며, 평화롭고 가젤 (아프리카나 인도 등에서 서식하는 영양의 일종. 성질이 무척 온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엮은이) 같이 착한 마음씨를 갖고 살아가며, 밝은 마음을 가졌다’ ”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왕은 “이런 건전한 경향은 ‘이 스님들이 복 받으신 분의 가르침의 위대하고 완전한 의미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는 사실 때문일 것으로 믿는다” 고 덧붙였습니다. (「중아함경 Majjhima Nikaya」)
하루 한 끼만 먹는 단순하고 조용한 삶을 사는 그분의 제자들이 왜 그렇게 기쁨에 겨워 얼굴이 환한지 질문을 받았을 때, 부처님은 “그들은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가슴에 품고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만족하며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기쁨에 겨워 얼굴이 환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미래를 가슴에 품고 고민하고 과거를 후회하느라 햇볕 아래 베어져 버린 푸른 갈대처럼 말라들어 갑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잡아함경 Samyutta Nikaya」) 

종교로서 불교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불만족스런 본질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이 불만족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에, 불교를 단순히 비관적 종교로 분류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에 따르면, 최악의 범죄자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한 일의 대가를 치르고 난 뒤에는 구원(解脫)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교는 전 인류에게 언젠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들은 어떤 사람들은 영원히 악할 것이고, 영원한 지옥이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그런 점에서 그 종교들이 더욱 비관적입니다. 불교도들은 그러한 믿음을 부정합니다.
불교는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변덕스런 느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불교는 우리에게 실질적이 되라고 권합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사물의 참 모습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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