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모르는 한국어] <관상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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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관상>에는 한자가 다른 두 가지 말이 있다.
1] 관상(觀相) - 관상(觀相)이란 겉으로 드러난 얼굴(생김새)을 말한다. 또는 그 생김새로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파악하는 점(占)을 말하기도 한다. 위에서 하는 말은 기독교인의 글에서 나오는 것이니 관상(觀相)은 아니겠다.
2] 관상(觀想)이라는 말은 <관상기도>, 등, 종교나 영성에서 나오는 말인데, 흔히 쓰는 말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처럼 모르는 말이 있으면 우선 아내에게 물어보는데, 아내도 모른다. 인터넷에 찾아보는데, 좋은 글이 있어 밑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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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186 : 관상觀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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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하나로 나무를 보고 느끼는 관상觀想의 즐거움은 모두 누릴 수 있는 셈이지요"
《유상준,박소영-풀꽃 편지》(그물코,2013)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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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관상(觀想)’은 종교에서 쓰는 낱말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수행의 한 가지로서 마음을 오로지 일정한 대상에 기울여, 어떤 상념을 일으키게 하여 번뇌를 없애는 일”이라 하고, 여느 종교에서는 “신(神)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일”이라고 해요.
곰곰이 헤아리면, 불교에서 쓰는 ‘관상’은 ‘마음닦기’라 할 만합니다. 여느 종교에서는 ‘하느님읽기’나 ‘하느님사랑’이라 할 만해요.
나무를 보고 느끼는 관상觀想의 즐거움
→ 나무를 보고 느끼는 즐거움
→ 나무를 보고 느끼면서 마음을 닦는 즐거움
→ 나무를 보고 느끼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즐거움
…
보기글에서는 한자말 ‘관상’을 넣으면서 한자를 잇달아 붙입니다. 아마 ‘관상’을 한글로만 넣으면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기 때문일 테지요. 그러나, 한자를 밝혀 ‘觀想’이라 적더라도 뜻이 또렷하지 않습니다. 외려 거추장스럽습니다.
한편, ‘觀想’은 “보다 + 생각하다”입니다. “보고 생각하다”인 셈이요, “보고 느끼다”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이 뜻을 헤아린다면 “보고 느끼는 관상”처럼 적을 적에는 겹말이 되기도 해요. ‘관상’이라는 낱말은 아예 덜 때에 가장 낫고, 따로 꾸밈말이나 보탬말을 넣으려 한다면 “마음을 닦는”이나 “마음을 다스리는”이나 “마음을 갈고닦는”이나 “마음을 가꾸는” 같은 말마디를 넣어야 잘 어울리리라 봅니다.
느티나무 하나로 나무를 보고 느끼면서 마음을 닦는 즐거움은 모두 누릴 수 있는 셈이지요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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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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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기로는 <관상觀想>이라는 말이 <관상적 시선>, 또는 <관상기도>에서 쓰일 때는<contemplation, contemplative>의 번역어이다. 영어 세계에서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관상觀想, 관상적>이 되고 그 뜻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아리송해진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관상기도>라고 하면 <능동적인 면>보다 <수동적인 면>을 강조하는 뜻이 된다고 한다. 기도를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듣기>가 중심이 된다. 누구의 <목소리>를 듣는가 하면 <하나님>의 목소리가 되나, <내안의 하나님>이 될 수도 있다.
- 그런데 다른 종교에서는 <내속의 목소리>inner voice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