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7

[관상적 시선>?

[내가 잘 모르는 한국어] <관상적 시선>?

---

- 우선 <관상>에는 한자가 다른 두 가지 말이 있다.

1] 관상(觀相) - 관상(觀相)이란 겉으로 드러난 얼굴(생김새)을 말한다. 또는 그 생김새로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파악하는 점(占)을 말하기도 한다. 위에서 하는 말은 기독교인의 글에서 나오는 것이니 관상(觀相)은 아니겠다.

2] 관상(觀想)이라는 말은 <관상기도>, 등, 종교나 영성에서 나오는 말인데, 흔히 쓰는 말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처럼 모르는 말이 있으면 우선 아내에게 물어보는데, 아내도 모른다. 인터넷에 찾아보는데, 좋은 글이 있어 밑에 옮긴다.

===

한자말 186 : 관상觀想

---

"느티나무 하나로 나무를 보고 느끼는 관상觀想의 즐거움은 모두 누릴 수 있는 셈이지요"

《유상준,박소영-풀꽃 편지》(그물코,2013) 88쪽

---

한자말 ‘관상(觀想)’은 종교에서 쓰는 낱말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수행의 한 가지로서 마음을 오로지 일정한 대상에 기울여, 어떤 상념을 일으키게 하여 번뇌를 없애는 일”이라 하고, 여느 종교에서는 “신(神)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일”이라고 해요.

곰곰이 헤아리면, 불교에서 쓰는 ‘관상’은 ‘마음닦기’라 할 만합니다. 여느 종교에서는 ‘하느님읽기’나 ‘하느님사랑’이라 할 만해요.

나무를 보고 느끼는 관상觀想의 즐거움

→ 나무를 보고 느끼는 즐거움

→ 나무를 보고 느끼면서 마음을 닦는 즐거움

→ 나무를 보고 느끼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즐거움



보기글에서는 한자말 ‘관상’을 넣으면서 한자를 잇달아 붙입니다. 아마 ‘관상’을 한글로만 넣으면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기 때문일 테지요. 그러나, 한자를 밝혀 ‘觀想’이라 적더라도 뜻이 또렷하지 않습니다. 외려 거추장스럽습니다.

한편, ‘觀想’은 “보다 + 생각하다”입니다. “보고 생각하다”인 셈이요, “보고 느끼다”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이 뜻을 헤아린다면 “보고 느끼는 관상”처럼 적을 적에는 겹말이 되기도 해요. ‘관상’이라는 낱말은 아예 덜 때에 가장 낫고, 따로 꾸밈말이나 보탬말을 넣으려 한다면 “마음을 닦는”이나 “마음을 다스리는”이나 “마음을 갈고닦는”이나 “마음을 가꾸는” 같은 말마디를 넣어야 잘 어울리리라 봅니다.

느티나무 하나로 나무를 보고 느끼면서 마음을 닦는 즐거움은 모두 누릴 수 있는 셈이지요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

세진:

---

- 내가 보기로는 <관상觀想>이라는 말이 <관상적 시선>, 또는 <관상기도>에서 쓰일 때는<contemplation, contemplative>의 번역어이다. 영어 세계에서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관상觀想, 관상적>이 되고 그 뜻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아리송해진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관상기도>라고 하면 <능동적인 면>보다 <수동적인 면>을 강조하는 뜻이 된다고 한다. 기도를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듣기>가 중심이 된다. 누구의 <목소리>를 듣는가 하면 <하나님>의 목소리가 되나, <내안의 하나님>이 될 수도 있다.

- 그런데 다른 종교에서는 <내속의 목소리>inner voice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