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8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에노미야 라쌀의 신비주의: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대화 (김명희)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에노미야 라쌀의 신비주의: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대화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에노미야 라쌀의 신비주의: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대화*1) 

The mysticism of Enomiya Lassalle as a model of inter-faith dialogue: A Dialogue between Zen and Christianity Religiosity of Filial Piety and Brotherly Love Myong-Hee Km(김명희)**2)

===
<Abstract>

Pater Hugo Makibi Enomiya-Lassalle (1898-1990) from the Society of Jesus was sent to Japan as a missionary in 1929, and was introduced to Zen Buddhism. Lassalle's 'Zen meditation of Christianity' has become a meditation method to

bring a transition for the general public as well as Christians to a new consciousness, combining Zen with the mysticism of Christianity. Lassalle's Zen meditation quickly spread to Germany and Europe. Moreover, Lassalle promoted the popularization of Zen performance so that not only Christians can meet Buddhism without giving up their identity of being a Christian, but also anyone, regardless whether they are believers, non-believers or atheists, can practise Zen in their daily lives. The reason why the dialogue between Lassalle's Zen and Christianity was possible was because it was a dialogue based on experience, not on doctrine. Lassalle pursued the inter-faith dialogue, not through doctrines, but through religious experiences between religions, and realized it through an existential dialogue aiming at moral self completion, not through real ontology which makes an issue of theism. It was the concepts of nothingness(無), no thinking(無思惟) and no object(無對象) that his experiential and existential dialogue was based upon. The purpose of Lassalle's dialogue was to restore the world peace and humanism through the self completion of human beings. Lassalle's dialogue of existence and experience could be a good case example for the future inter-faith dialogue in South Korea which can develop, not into a dialogue focused on theory and doctrines, but into a practical humanistic dialogue that is popular among the general public, sharing social responsibilities. The inter-faith dialogue that Lassalle pursued was a dialogue method in which the identity and universality of each religion is respected. This was demonstrated throughout his

life, and he was hailed as a spiritual leader bridging great spiritual and religious characteristics of the cultures of East and West in the 20th century. This study explores the dialogue between Lassalle's Zen and Christianity in two sections. First, Lassalle's initial understanding of Zen Buddhism in Japan as a missionary having a mission work in mind was examined. Second, it explores Lassalle in the later period after he attempted the dialogue between Zen and Christianity. The dialogue of Lassalle in the later stage suggests that it is possible to experience through Zen practices, taking a position of humanistic pluralism. If the initial dialogue was a cultural approach to Zen, the dialogue in the later stage in his life was a meeting with Zen as an experience, especially a mystical experience. Key words: Enomiya-Lassalle, inter-faith dialogue, Zen, Zen meditation, religious experience
====
󰡔종교연구󰡕 제75집 2호 한국종교학회, 2015, PP. 135-176
종교간 화의 모델로서 에노미야 라쌀의 신비주의: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화*1)
---
  * 본 논문은 2011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으며[NRF-2011-358-A00047], 3년 연구과제인 “종교 간의 화 를 위한 원효의 화쟁 성-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및 에노미야 라쌀의 신비 주의와의 비교분석을 통하여-” 중 제2차년도의 연구과제에 해당된다. 제2차 년도는 “종교간 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와 에노미야 라쌀 의 신비주의”에 해 연구할 예정이었으나 리치와 라쌀을 한 논문에서 다루 기에는 지면상 어려움이 있어 리치와 라쌀에 한 연구물을 각각 연구‧발표 하기로 하 다. 리치의 논문 “종교간 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 주의-『천주실의』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와 유‧불‧도(儒佛道)의 화”(『한국조직 신학논총』39, 2014, 141-197)는 이미 발표되었다. 본 논문은 종교간 화의 모델로서 라쌀의 신비주의에 한 연구다.

===

The mysticism of Enomiya Lassalle as a model of inter-faith dialogue: 
A Dialogue between Zen and Christianity Religiosity of Filial Piety and Brotherly Love
Myong-Hee Km(김명희)**2) 

 ** She is a Lecturer of the Department of Religious Studies, Sogang 
University, South Korea. E-mail: mhk3014@yahoo.co.kr
 ----
<Abstract>
Pater Hugo Makibi Enomiya-Lassalle (1898-1990) from the Society of Jesus was sent to Japan as a missionary in 1929, and was introduced to Zen Buddhism. Lassalle's 'Zen meditation of Christianity' has become a meditation method to 
bring a transition for the general public as well as Christians to a new consciousness, combining Zen with the mysticism of Christianity. Lassalle's Zen meditation quickly spread to Germany and Europe. Moreover, Lassalle promoted the popularization of Zen performance so that not only Christians can meet Buddhism without giving up their identity of being a Christian, but also anyone, regardless whether they are believers, non-believers or atheists, can practise Zen in their daily lives. 
The reason why the dialogue between Lassalle's Zen and Christianity was possible was because it was a dialogue based on experience, not on doctrine. Lassalle pursued the inter-faith dialogue, not through doctrines, but through religious experiences between religions, and realized it through an existential dialogue aiming at moral self completion, not through real ontology which makes an issue of theism. It was the concepts of nothingness(無), no thinking(無思惟) and no object(無對象) that his experiential and existential dialogue was based upon. The purpose of Lassalle's dialogue was to restore the world peace and humanism through the self completion of human beings. Lassalle's dialogue of existence and experience could be a good case example for the future inter-faith dialogue in South Korea which can develop, not into a dialogue focused on theory and doctrines, but into a practical humanistic dialogue that is popular among the general public, sharing social responsibilities. 
The inter-faith dialogue that Lassalle pursued was a dialogue method in which the identity and universality of each religion is respected. This was demonstrated throughout his life, and he was hailed as a spiritual leader bridging great spiritual and religious characteristics of the cultures of East and West in the 20th century. 
This study explores the dialogue between Lassalle's Zen and Christianity in two sections. First, Lassalle's initial understanding of Zen Buddhism in Japan as a missionary having a mission work in mind was examined. Second, it explores Lassalle in the later period after he attempted the dialogue between Zen and Christianity. The dialogue of Lassalle in the later stage suggests that it is possible to experience through Zen practices, taking a position of humanistic pluralism. If the initial dialogue was a cultural approach to Zen, the dialogue in the later stage in his life was a meeting with Zen as an experience, especially a mystical experience. 

Key words: Enomiya-Lassalle, inter-faith dialogue, Zen, Zen meditation, religious experience
 
===

I.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함께 문명을 일구어온 유럽 륙에 지리
상의 발견 이후 아시아의 낯선 문명들이 전해지기 시작 하 다. 17세기부터 전래되기 시작한 아시아의 문명 중 하나가 불교다. 2 천년에 걸쳐 그리스도교 문명으로 일관해 온 게르만 민족의 땅에 들어 온 아시아의 불교는 독일인들의 문화와 사회, 정신적 역 에 서서히 뿌리내리게 되었다. 오늘날 독일의 수많은 도시에서 불교 명상센터들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특히 독일인들에 게 선(禪)수행은 종교와 종파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생활명상법이 되었다. 불교의 선수행이 중적 명상법으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예수회 선교사 에노미야 라쌀 신부 (Pater Hugo 
Makibi Enomiya-Lassalle, 1898-1990)의 공헌이 크다(Baatz 2004, 7). 라쌀은 유럽인들이 양차 세계 전을 치루면서 잃어버린 그리
스도교의 신비주의와 명상을 재발견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오늘날 유럽과 미국에 수많은 선마이스터들을 배출 해 물질의 노예로 전락한 현 인들에게 성회복을 위한 길을 제 시하 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으로 머물면서 선수행을 종교적 명 상법으로 실천하고 있는 명상가들로서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라쌀이 추구한 선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화를 이들이 계승 하고 있는 셈이다. 라쌀은 선수행과 저서들, 특히 그의 삶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에 한 깊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평생 힘써왔다. 그는 가톨릭교회 뿐 아니라 선불교에서도 인정받는 사 람이 되고 싶었다. 비록 예수회 선교사로서 일본에 와있었지만 선(禪)을 직접 체험하면 할수록 그는 타종교(불교), 타문화(선문 화)에 한 배타적 태도에서 벗어나 존중과 화해의 의식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그는 선(禪) 안에서 그리스도교적 성의 길을 발견하 다. 라쌀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성의 길을 추구하지 않았고, 모두를 위한 성의 길을 실현하고자 전생을 바쳤다. 나 아가 명상과 수행을 통한 성이 개인의 ‘신비체험’으로만 머물 지 않고 사회정의와 평화를 책임지는 실천적 성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힘썼다. 
라쌀은 1, 2차 세계 전을 치르면서, 그리고 원폭이 투하됐던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으면서 종교와 교회가 세계평화에 해 책임 을 져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인 간의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전제되었는데, 이 새로운 의식은 립 과 이기주의적인 사고(思考)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라쌀은 명상적 선수행이야 말로 새로운 의식을 위한 길을 열 수 있다고 믿었고, 이러한 의식변화는 인류가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한 선결 과 제라고 확신하 다. ‘새로운 의식’ 안에서 나와 너, 나의 종교와 너의 종교 간(間) 불통의 벽이 무너지고, ‘우리’라는 공동체가 형 성된다. 뿐만 아니라 ‘일치’와 ‘화해’ 안에서는 자기정체성이 파괴
되지 않는다(Brück & W. Lai 1997, 502-504). 라쌀이 추구한 종교 간의 화는 상즉상입(相卽相入, coincidentia oppositorum)의 원 리에 입각한 것으로써 각 종교의 개별성 (정체성)과 보편성이 동 시에 보장되는 화법이었다. 이것은 그의 삶을 통해서 입증되었
다.
예수회 신부 던 라쌀은 선마이스터임에도 불구하고 평생 ‘그
리스도의 제자’로 살기를 원하 다. 선수행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것은 하느님 체험이었다. 선(禪)에서 하느님을 발견 하 던 것이 다. 라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림 없이 선 을 그리스도교의 명상법으로 적극 활용하 다. 그는 자신의 경험 을 토 로 사람들이 각자의 종교전통을 포기 하지 않으면서 어떻 게 타문화‧타종교와 만날 수 있는지 저술과 강연, 가르침과 삶을 통해 해법을 제시하 다. 마침내 그는 20세기 동서문명의 위 한 정신적 ‧ 종교적 가교자(架橋者) 로서 칭송받게 되었다.
라쌀의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화는 크게 전기와 후기로 구
분된다. 전기는 예수회 선교사로 일본에 파견(1929년)되어 라쌀이 선교의 목적으로 선과 만난 시기를 가리키고, 후기는 1975년 이 후 그리스도교와 선의 융합을 시도한 종교간 화의 시기를 말한
다. 화 초기의 선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이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포괄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후기의 라쌀에게 서는 자크 뒤퓌(Jacques Dupuis)의 포괄주의적 다원주의1) 및 휴
 
 1) 예수회 신부 자크 뒤퓌는 저서 『종교다원성의 신학』(Christian theology of religious pluralism)에서 성취이론에 의거한 타종교들의 ‘한시적’ 역할론을 
머니즘적 다원주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후기 라쌀의 주관심 사는 선과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통해 인류의 평화에 기여할 ‘새 로운 의식'(das neue Bewußtsein)을 발견하는 데 있었다.
선교초기 예수회 적응주의 선교방법의 일환으로 만난 ‘문화로 서의 선(禪)’은 후기에 가면 상즉상입의 화원리를 통해 ‘그리스 도교적 선명상’으로 융화(融和) 되었고, 종교간 차별을 떠나 인류 의 성과 평화를 위한 중적 ‧ 성적 명상법으로 발전하게 되 었다. 그리스도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선수행을 통해서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후기의 선수행은 그리스도교의 성을 위한 명상법일 뿐 아니라, 비그리스도인 이나 일반 중에게 도 새로운 의식의 전환을 가져다주는 명상법이 되었다. 라쌀의 선명상은 독일과 유럽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후기 라쌀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전기와 달리 선교를 목적으로 
선(禪)을 만나기보다는 선과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를 하느님 체 험을 할 수 있는 동일한 방법으로 간주하 다는 것이다. 라쌀은 선(수행)과 선불교는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하 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선을 그리스도교에 융합시키려는 그의 시도는 독일과 유 럽, 미국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수용, 발전되었다. 라쌀 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도 불교 를 만날 수 있도록, 뿐만 아니라 신자나 비신자, 무종교인들 누구 나 일상생활에서 쉽게 선(禪)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선수행의 중
 
넘어서, 그들의 ‘속적’ 역할을 허용하는 모델을 제시한다. 뒤퓌는 구원의 원천으로서의 원한 하느님과 그 역사적 구현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비육화적 말씀(Logos asarkos)과 육화된 말씀(Logos ensarkos)으로 구분한다. 비육화적 말씀은 온 인류를 비추는 진리의 빛으로서의 말씀이다. 육화된 말 씀은 이 원한 비육화적 말씀의 구체적이고 결정적이며 보편적인 현현이다. 하느님의 비육화적 말씀의 현존과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사건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류 역사 속에서 타종교 전통들과 위 한 현자들에게도 하느님의 비육화적 말씀이 작용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와 타종교는 하느님 의 구원사를 풍요롭게 하는 상보적인 동역자다. 뒤퓌는 ‘교회 밖에 구원 없 다’를 ‘세상 밖에 구원 없다’로 바꾼다. 그는 그리스도 중심적 구원론과 종교 다원성의 다원주의를 통합한 ‘포괄주의적 다원주의’를 제안한다.  
화를 도모하 다.
본 논문은 전‧후기로 나눠 라쌀의 선과 그리스도교의 화를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일본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만난 초기 라 쌀의 선불교에 한 이해를 고찰한다. 둘째, 그리스도교와 선의 화를 시도한 후기 라쌀에 해 탐구하도록 한다. 라쌀의 후기 화에서는 선수행을 통해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음을 제시하면 서, 화 초기의 칼 라너의 포괄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 자크 뒤 퓌의 포괄주의적 다원주의와 휴머니즘적 다원주의의 입장을 견지 한다. 초기의 화가 선에 한 문화적 접근이었다면, 후기의 화는 경험, 특히 신비체험으로서 선(禪)과의 만남 이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첫째, 독일 예수회 신부인 에노미야 라쌀의 그리스도교와 선(禪)의 만남을 분석 ‧ 고찰함으로써 새로운 종교간 화의 모델을 제시하는 데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종교 갈등 의 중심에 있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배타적 관계를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로 전환시킬 실천방안을 라쌀의 종교간 화의 원 리를 통해 모색한다.
둘째, 문명 간 충돌의 위기를 맞은 우리 시 에 서로 다른 문
화와 종교가 어떤 방법으로 타자(他者)를 위해 공간을 내 줄 수 있는지 라쌀의 수행과 명상을 통한 종교간 화 속에서 그 해법 을 찾는다. 특히 종교 간의 화가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서 만이 아닌 모두에게 가능한 중적 화로 발전하기 위해 라쌀의 ‘그리스도교적 선수행’을 모델 삼아 탐색한다. 
셋째, 동서문명의 가교 역할을 한 화자로서 독일과 유럽, 미 국, 일본 등지에 널리 알려져 있는 라쌀 신부가 한국에는 거의 알 려진 바가 없기에 그를 소개한다. 라쌀 신부의 불교와 그리스도교 의 화에 관한 분석적 연구는 독일과 유럽 내에서도 미미하기 때문에 본 연구가 향후 라쌀 연구에 기폭제가 되리라 기 한다. 

II. 라쌀의 적응주의 선교: 일본 선(禪)‧선불교와의 만남

1. 예수회와의 만남
후고 마키비 에노미야 라쌀(Hugo Makibi Enomiya-Lassalle, 1898-1990)은 신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어머니의 기도 속에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 다. 어린 후고가 처음으로 예수 회원을 만난 것은 성당에서 복사로서 봉사하던 때 다. 당시 비스마르크 의 문화투쟁으로 활동이 금지된 예수회원들은 ‘민족선교’를 위한 특별한 경우에만 설교를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예수회 신부의 민족선교에 관한 설교를 듣게 된 복사 후고는 그 자리에서 예수 회원이 되기로 결심하 다(Baatz 2004, 20).
청년이 된 라쌀은 제1차 세계 전 때 병사로 참전하 다. 전 쟁이 끝날 무렵(1918년) 라쌀은 예수회의 창시자인 로욜라의 이 냐시오(Ignacio de Loyola, 1491-1556)의 자서전을 읽고 큰 감명
을 받았다. 그래서 라쌀은 이냐시오의 모범을 따르기로 결심한 후 이듬 해 4월 25일 네덜란드에 있는 예수회 수련원에 들어갔다 (Baatz 2004, 23). 예수회원이 되고자 했던 어린 후고의 결심이 젊은 후고 라쌀에게서 실현된 것이다. 
전쟁전 세계의 붕괴와 그의 형 베른하르트(Bernhard)의 죽음 은 세상의 지배자를 위한 봉사가 공허한 것임을 입증하 다. 그 리하여 라쌀은 훌륭한 그리스도의 병사가 되어 세상의 황제의 자 리에 원한 왕인 그리스도를 앉히고자 결심하 다. 여기에는 이
냐시오의 향이 크게 작용하 다(Baatz 2004, 25). 1534년 8월 15일 군인 출신 수사 이냐시오에 의해 창설된 예수회는 라쌀의 ‘그리스도의 병사’로서의 삶을 실현시켜 줄 유일한 수도회 다. 청빈, 정결, 순명과 교황에 한 순명을 서원하고 혼 구원에 헌 신할 것을 맹세하는 예수회는 일본 선교사가 된 라쌀의 삶에 주 요한 기반이 되었다. 특히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정책은 일본에 선교사로 파견된 라쌀이 선불교를 만나는 데 초석이 되었다. 예수회 입회 후 젊은 라쌀은 나병환자들을 위하여 아프리카로 
가고자 하 다. 하지만 예수회 총장 신부의 간곡한 권고로 일본 을 선교지로 정하 다. 이를 위해 라쌀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Francisco de Javier, 1506-1552)2) 신부의 일본선교에 한 책들 을 읽으며 준비하 다. 1927년 8월 28일 라쌀은 친구 부루노 비
터(Bruno Bitter)와 함께 사제 서품을 받았다 (Baatz 2004, 31). 이 
후 선교사로서 라쌀이 일본에 입국한 것은 1929년 10월 3일이었 다. 당시 낯선 아시아 땅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거의 모두가 선교 지에서 생을 마쳐야 했다. 라쌀도 선교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 면에 들 때까지 일본이 그의 고향이 되고 말았다(Baatz 2004, 
34).
1919년 교황 베네딕트 15세(Benedikt XV)는 선교는 식민지화 를 의미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풍습과 관습을 각 나라에 유입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 다. 선 교는 하느님의 광과 인간 구원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
다(Müller et al. 1985, 72). 아시아에서 추진된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도 이러한 교황의 뜻에 부합하고 있었다. 선교지의 문화에 조절‧적응 하는 것이 예수회 적응주의 선교의 핵심 이었다.3) 1935년 3월 일본에 있는 독일 예수회의 수도원장이 된 라쌀도 “선교사는 언어와 문화, 그 나라의 관습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 라 가능한 한 토착민의 심성에도 적응해야 된다”고 역설하 다. 한 마디로 “소위 일본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Baatz 2004, 38).4) 이러한 그의 적응주의적 선교 정책은 그가 일본의 선
 
2)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는 예수회 설립에 참여한 6명 중 한 사람으로서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에게 예수회를 수도 단체로 공식 인정해 줄 것을 요 청하여 승인받았다. 1549년 최초로 일본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 으며 중국 에 선교사로 파견된 마태오 리치에게도 큰 향을 주었다. 하비에르는 리치, 발리냐노와 함께 초기 예수회 적응주의 선교의 주역이기도 하 다.
3)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에 해서는 필자가 이미 다른 논문에서 상세히 다 루었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김명희 2012, 67-122 참조).
4) 라쌀이 1940년 6월 18일 나고야에서 수도서원을 개혁하기 위한 수업에서 한 
(禪)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일본의 적응주의 선교: 선 ‧ 선불교와의 만남
선교사로 일본에 파견된 라쌀은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정책에 
발맞춰 무엇보다 선(禪) ‧ 선불교를 통해 일본의 문화를 깊이 알고 자 하 다. 선은 전형적으로 일본적인 것으로 일본인들의 성격 형 성에 크게 향을 미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Enomiya-Lassalle 1988, 20). 뿐만 아니라 그는 불교의 선(禪)이 하느님 체험에 도움 이 된다고 믿었다. 라쌀이 일본에서 선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제3수련기 때(1927년) 만난 신비주의자 루이스 풀리어
(Louis Poullier, 1865-1940)의 향이 크다(Baatz 2004, 31). 풀리
어 신부는 그리스도적인 삶의 목표는 원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한 하느님과의 신비적 합일에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풀리어를 통해 라쌀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Teresa von Avila)와 십자가의 성 요한 (Johannes vom Kreuz), 마이스터 에 크하르트(Meister Eckhart) 등 그리스도교의 신비가들의 저술들 을 접하게 되었다(Baatz 2004, 32). 이들의 신비사상은 라쌀이 선
(禪)을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와 접목시키는 데 토 가 되었다 수도원장이 된 라쌀은 우선 1936년 히로시마 근처 나가추카 (Nagatsuka)에 예수회 수련원을 세웠다. 그는 수련원의 방들을 일본식으로 꾸미고 다다미를 깔았으며, 수도원 안의 성당은 일본 식 양식으로 건축하 다. 또한 그는 로마에 여러 번 편지를 써서 성찬식을 라틴어 신 일본어로 집전할 수 있도록 요청 하 다. 이러한 그의 뜻은 마침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이루어지
게 되었다(Baatz 2004, 39-40). 이것은 일본문화에 뿌리 내리고자 한 라쌀의 적응주의적 선교정책의 성과 다. 라쌀은 선수행을 통해 일본의 선사(禪師)들에게 그리스도교에 
 
내용이다.
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 다. 실제로 히로시마 근처의 코 쿠타이절(Kokutaiji)의 선사(禪師)인 후쿠하라 에이간(Fukuhara Eigan)은 라쌀에게 가톨릭의 초월자 개념만 제외한다면 “가톨릭 은 선(禪)의 뿌리와 연결되고 선은 가톨릭의 뿌리와 연결된다.”고 하면서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만날 수 있음을 제시하 다(Baatz 
2004, 64). 라쌀에게 선수행의 참여는 선교적 과업이었다. 물론 라쌀은 개인적인 성을 위해서도 선수행을 결심하 다. 선수행 이 명상적 삶을 향한 그의 갈망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 하고픈 그의 바람과 일치하 기 때문이다.
라쌀은 1956년 6월 오바마(Obama)의 하라다 소가쿠(Harada Sogaku) 노사(老師)의 쎄신(Sesshin)5)에 참가하면서 하라다 노사
의 제자가 되었다. 본래 조동종의 선사 던 하라다는 임제종의 가르침도 수용해 조동종과 임제종의 선승 모두에게 존경의 상 이 되었다. 하라다 노사의 가르침에 따라 라쌀의 선수행은 일일 7회의 좌선으로 시작되었고, 무엇보다도 자기애의 극복과 무아
(無我)의 실현에 초점을 맞췄다(Baatz 2004, 67-69 참조). 라쌀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화에 있어서 장애가 되었던 ‘무(無)’와 ‘무 아(無我)’의 개념을 선(禪) 체험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토양인 유럽에도 선불교의 좌선을 종교적 장애 없 이 전파할 수 있었다.
1968년 가을 라쌀은 독일 니더알타이히(Niederalteich)의 베네 딕트 수도원에 초 되어 선코스를 인도했으며, 이후 1990년 그가 죽을 때까지 독일 곳곳에서 선코스를 개최하 다(Baatz 2004, 98). 
 
 5) 쎄신(Sesshin)이란 여러 날 동안 진행되는 것으로 부분 그룹으로 행해진다. 쎄신은 좌선과 달리 일정한 수행과정이 없다. 보통 선사(禪寺)에서 7일간 하 게 되는데 매일 다른 방법으로 진행된다. 평균적으로 30에서 40분간 진행된
다. 하루에 열 번 정도 명상을 하는데, 매일 한번은 선사(禪師)가 40분에서 50분간 인사말을 한다. 그 말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공안(公安集)에 있는 텍스 트다. 라쌀은 쎄신을 이냐시오의 신수련과도 비교하면서 둘 사이에 유사성 이 있음을 제시한다.
오늘날 독일뿐 아니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과 스페인, 미국 등지에 수많은 선명상 센터가 설립된 데는 라쌀의 그리스도 교적 선명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 다.
III.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화
에노미야 라쌀의 후기는 1975년 이후 선과 그리스도교의 융합 을 시도한 종교간 화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 라쌀이 보여 준 선과 그리스도교의 화는 방편적 ‧ 체험적 ‧ 책임적 화로 구 분할 수 있다. 이 세 유형의 화 속에는 󰡔승기신론󰡕6)에서 밝 히고 있는 진리(一心)의 체 ‧ 상 ‧ 용(體相用)의 원리가 작용한다.
󰡔기신론󰡕에서는 일심이문(一心二門)으로 승의 진리를 설명 한다. 승의 법으로서 일심은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 인 두 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실상은 하나다.      진여문 으로서 일심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 생멸문이기 때문이다. 진여문 중에 승의 체(體, 존재)가 있고 생멸문 중에 체(體)의 상(相, 존재의 드러남)과 용(用, 존재의 드러남의 작용)이 있다. 체(體)가 진여(眞如) 즉 ‘절 진리’라고 한다면, 상(相)은 진여의 ‘현현(顯現)’이고, 용(用)은 현현한 진여의 ‘작용’이다. 진리의 체· 상· 용(體相用)의 세 모습은 어느 하나만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 니다. 하나의 전체가 분화되는 층위 구조 속에서, 부분이 전체성 을 가지는 프랙탈 구조와 동일한 논리로 체 ‧ 상 ‧ 용은 하나가 된
 
 6) 『大乘起信論』은 승불교 경전으로서 마명(馬鳴 100?-160?)이 인도에서 쓴 것 으로 추정되며 진제(眞諦 499-569)나 그의 제자들에 의해 기원후 550년경에 산스크리트어에서 중국어로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을 '구역본'(舊譯本)이라 부른다. 그 후 695년-700년 사이에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에 의해 '신역본'(新譯本)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기신론』 연구는 신역본 보다는 구역본을 더 많이 사용한다..
다. 체상용은 하나이자 셋이며 셋이자 하나다. 이와 같이 종교가 내세우는 진리(=體)는 한 가지로 그 뜻이 같을 지라도 그것을 구 체화한 교리(=相)와 그 교리의 실천적 행위(=用)는 다양하다. 즉 종교의 상이한 교리들(相)과 실천(用) 속에 체(體)의 진리가 작용 한다. 이때 종교의 정체성이란 진리의 상(相)을 말한다. 정체성은 각각의 종교가 갖는 특수성으로서 다양하다. 종교간 화란 정체 성(相)과 정체성(相)의 화를 의미한다. 화 시 각각의 정체성 은 혼합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 정체성은 ‘하나’의 체(體)에 근원 하기 때문이다(김명희 2011, 183-184 참조).
모든 종교인들이 ‘체’의 절 진리와 ‘상’과 ‘용’으로 ‘나타난’ 
상 진리의 다양성을 인정할 때 종교 간의 화가 가능해진다. 󰡔 기신론󰡕의 체상용 원리는 다양한 종교들이 어떻게 자(自) 종교의 정체성을 상실함 없이 타(他)종교와 평화 공존할 수 있는지, 그 근거를 밝힌 화원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라쌀의 선과 그리 스도교의 화를 체상용 원리를 통해 분석한다면 그의 화의 특 징이 명확히 규명될 수 있다. 특히 서양(인)의 종교간 화를 동 양의 화원리를 통해 조명함으로써 ‘동서양 통섭(通涉)’의 해석 학적 의미를 갖게 된다.
다음은 라쌀이 선과 그리스도교의 화에서 보여준 체(體) 로 서 체험적 화와 상(相)으로서 방편적 화, 용(用)으로서 책임 적 화를 고찰해 보겠다. 나아가 체상용 원리에 입각해 세 화 가 어떠한 유기적 관계를 갖는지, 그리고 어떻게 종교간 화의 원리가 될 수 있는지 조명하고자 한다.

1. 방편적 화: 상(相)의 화

라쌀이 일본 선교에서 보여준 선(禪)과의 만남은 ‘방편적 화’ 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관심을 갖고 수행한 선 불교의 좌선(坐禪)은 신신앙(神信仰)에 이르는 수단(방편)이었다. 선(禪)을 통한 깨달음의 길은 인간완성 ‧ 자아완성 ‧ 도덕적 완성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었다. 무엇보다도 선수행은 초기 일본 선교에 있어서 토착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선교의 수단이었다. 선과 좌선, 선적 깨달음을 신과의 합일(신비체험)과 도덕적 자기완성을 위한 ‘수단’ 혹은 ‘방편’으로 받아들인 라쌀은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만 남을 ‘방편적 화’를 통해 실현할 수 있었다.
상(相)의 화로서 방편적 화는 자종교의 정체성을 지키면 서 타종교의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적 특징 을 갖는다. 진리의 체(體)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다양한 상(相)의 모습으로 자기를 나타낸다. 체(體)가 진여(眞如) 라고 한다면, 상 (相)은 진여의 ‘현현(顯現)’이다. 체의 체됨, 곧 체의 현현은 다양 하다. 체와 상의 사이(間)에는 ‘일즉다(一卽多) ‧ 다즉일(多卽一)’ 또 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의 화해의 원리가 작용 한다. 체(體)인 ‘하 나’가 상(相)인 ‘다양성(=다름)’을 포용하고, 상인 ‘다양성(=다름)’ 이 체인 ‘하나’ 안에서 융화(=존중)된다. 이 ‘다름의 존중’ 원리가 상(相)의 종교간 화의 원리이다(김명희 2014, 167).
라쌀에게 선(禪)은 체(體)에 이르는 다양한 상(相) 중에 하나의 
길(방편)이다. 그래서 그는 선수행을 그리스도교의 명상법으로 기 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음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화에 있어서 방편으로서 작용 한 선과 선수행, 선적 깨달음과 불교의 무(無)에 한 라쌀의 이 해를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동양문화를 이해하는 방편으로서의 선(禪)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 정책에 따라 추구된 일본의 선(禪)문 화에 한 라쌀의 적응주의적 노력은 그에게 동양문화를 이해하 는 열쇠가 되었다. 라쌀은 여러 가지 동양의 ‘도(道)’, 다도, 궁도, 서도, 화도, 유도, 검도 등에 선(禪)의 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생각하 다. 이 여러 가지 ‘도’에는 하나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데, 바로 선의 정신이다(Enomiya-Lassalle [1969]2007, 88-89). 따라서 라쌀에게 선과 선적 깨달음은 동양정신을 이해 하는 열쇠
다. 선의 핵심은 깨달음으로서, “정말 깨달음에 이른 동양인은 소수이고 오늘날 깨달음을 소유하는 동양인은 더 극소수지만, 가 장 깊은 내부에 선의 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확 신한 라쌀은 동양문화를 이해하는 방편으로서 선(禪)과의 화를 시도하 다(Enomiya-Lassalle [1969]2007, 92).
선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라쌀에게 그것은 불교의 무아(無我), 즉 완전한 자아제어의 정신을 뜻하 다Enomiya-Lassalle [1969] 2007, 89). 라쌀은 이러한 선의 정신이 아직도 동양 민족성에 깊 이 뿌리박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선의 정신이 서양에서 유입 된 유물론에 의해 질식되어 가고 있다며 우려하 다. 절멸의 위 기에 있는 선의 정신을 복원해 다시 동양인들에게 되돌려 준다면 그들이 개종 할 것이라고 기 하 다. 라쌀에게 있어서 선의 정 신의 재발견은 그리스도교 선교의 사명이었다 (Enomiya-Lassalle 
[1969]2007, 89, 103).
선교 초기 라쌀의 선과의 만남은 일본 및 동양문화를 이해 하 는 수단이었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한 적응주의적 선교방 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라쌀에게 선(禪)은 신과 합 일체험을 하기 위한 성적 방편이 되었다.

2) 선(禪)과 선적(禪的) 깨달음, 그리고 신(神) 신앙
라쌀에게 선적 깨달음의 목표는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함 이 었다. 그래서 그는 신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깨달음을 간접적 으 로 이용할 수 있다고 여겼다. 라쌀에게 선(禪)은 신과의 합일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초자연적 은 총 없이 깨달음만으로 신 직관에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라 쌀은 깨달음을 통해서 신 직관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하 다 
(Enomiya-Lassalle [1969]2007, 110). 그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깨달음을 통해 신 신앙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깨달음을 통한 체험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차이로 다르게 표현될 뿐이
다.
불교는 깨달음을 일원론적으로 해석하여 자연 내지 우주와의 
일체체험이라고 표현한다. 더욱이 선에서는 신(神)에 관해서는 말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선 체험자를 무신론자라고 부르지도 않는 다. 다만 선불교에서는 신이나 신의 존재를 개념이나 문자로 파 악하는 것을 배격하기 때문에 깨달음을 우주와의 일체체험 이라 고 설명한다. 신은 불가지(不可知)이며 비개념적 이므로 선을 깨 달은 자가 신 신앙에 이른다 해도 그는 자기의 체험을 그리스 도 교적 개념으로 표현하지 않는다(Enomiya-Lassalle [1969]2007, 114-115). 한 마디로 선적 깨달음을 통해 신 신앙에 도달할 수 있 지만 ‘신’이란 언어로 표현되지 않을 뿐이다. 선수행자가 어떤 종 교와 연관되어 있느냐에 따라 성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 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에, 불자는 불교에 연관되어 좌선의 성과 가 달리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선수행을 풍부하 게 할 수 있으며, 깨달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Enomiya-Lassalle 
1987, 12). 
라쌀은 각자가 자신의 체험과 관련하여 신에 해 이야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선을 ‘무신론적’이라고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 한다. 그는 크게 깨달은 동양의 선사들은 오히려 신 신앙을 뛰어 넘어 더 높은 차원에 이른다고 믿는다. 따라서 라쌀은 깨달음을 얻은 선사들이 자신의 체험을 그리스도교적 신 신앙과 동일시 하 는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보았다(Enomiya-Lassalle [1969]2007, 116). 오랜 좌선 끝에 신 신앙에 이른 스님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은 깨달음의 체험을 담론 혹은 언어를 통해 서술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신 신앙에 이르렀는지 단정하기가 힘들다고 한 다(Enomiya-Lassalle [1969]2007, 117). 그것은 불립문자를 표방하
는 선불교의 무(無)와 그리스도교의 유신론(有神論)적 신앙관에서 오는 유적(有的) 표현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라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불교도는 그리스도교 신자와는 정반 의 경로를 거친다. 그 리스도교 신자는 신 신앙에서 출발하여 이것을 기반으로 도덕 적 순결성과 완전성을 추구한다. 그에게 있어서 양심의 소리 는 최고의 입법자인 신의 소리다. 반 로 선에 있어서는 신 신앙 없이 도덕성과 완전성을 추구하며 끝에 가서야 신에 도 달한다. 어떤 사람이 그의 완전성 추구에 정진하면 할수록 그 의 신 신앙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깨달음은 참으로 신 신앙과 신 사랑을 위한 길이며, 더욱이 지름길이다 
(Enomiya-Lassalle 1992, 78).
결국 선불교도의 깨달음이나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 신앙은 도
덕성과 완전성의 추구에서 만난다. 라쌀에게 깨달음은 신 신앙을 위한 최고의 길, 최고의 방편이다. 방편으로서의 깨달음은 그리스 도교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에 한 믿 음이 불확실한 그리스도인이 깨달음을 경험하면, 신앙의 의심들 이 제거될 뿐만 아니라 깊은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잘못된 하느 님에 한 관념도 바로잡게 되며, 마침내 참된 하느님을 발견하 게 된다. 즉 그리스도인에게 선(禪)은 참된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신앙의 방편이 된다 (Enomiya-Lassalle 1987, 13). 때 문에 라쌀은 선수행을 전 인류가 필요로 하는 명상법으로 추천하 기까지 한다 (Enomiya-Lassalle 1987, 51).

3) 무(無)와 무사유(無思惟)
라쌀이 선수행을 그리스도교의 신 신앙을 돕는 방편으로서 받 아들일 수 있었던 데는 불교의 무(無)에 한 그의 이해 때문이
다. 중국에서 예수회 선교사로 활동한 마태오 리치가 넘지 못한 불교의 무(無)와 공(空)개념을 라쌀은 선수행의 무사유(無思惟) 개 념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명상과 달리 상 없 이 이루어지는 선수행은 철저히 무아(無我)와 무사유(無思惟)에서 출발한다. 라쌀은 “선(禪)은 무(無) 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하면 서, 그리스도교의 명상도 좌선과 같이 상이 없이도 하느님 체 험을 직접 할 수 있다고 확신 한다(Enomiya-Lassalle 1987, 84-85). 라쌀은 무사유의 선은 선불교와 구분된다고 말한다. 그는 명 상으로서의 선은 그리스도교가 종교인 것과 같은 의미에서 종교 는 아니라고 한다(Enomiya-Lassalle 1987, 97). 좌선(坐禪)은 근본
적으로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사유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수행은 어떤 종교적 교리도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라쌀은 ‘그리스도교적 선’도, ‘불교적 선’ 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불자나 그리스도 인이 차를 마시면서 하는 표현이 다르지 않듯이 선수행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Enomiya-Lassalle 1987, 98). 좌선의 상도, 주체도 없기에 선은 무사유하고, 무사유하기에 선은 모두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 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선수행이 종교적 의식(意識)을 갖는다면 종교와 관계 하게 된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은 제도적 종교, 즉 그리스도교와 도 불교와도 관계하지 않는 선(禪)코스를 찾는다. 오늘날 이런 참 여자들은 젊은이들 중에 드물지 않게 있는데, 그들의 좌선수행 동기는 종교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선수행 중 예 기치 않게 종교적인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만일 이 들이 어린 시절 그리스도인이었다면 그들은 다시 그리스도교로 돌아오게 되고, 다시 찾은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전보다 더 깊게 된다고 라쌀은 밝힌다(Enomiya-Lassalle 1987, 85).
라쌀은 ‘순수한’ 선(禪)은 사상(思想)이 없기 때문에 선수행을 
진실하고 올바르게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무엇인가를 얻게 되는 데, 적어도 정신 건강에 큰 효과를 준다고 말한다. 특히 좌선은 선수행자의 마음을 평안하고 침착하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어떤 직업이든지 더 잘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일예로 서구의 많은 예술가들은 춤을 추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음악을 할 때 그 속에서 선(禪)과 내적인 관계를 느낀다고 한다(Enomiya-Lassalle 1987, 85). 라쌀은 명상자가 끈기 있게 선수행을 한다면 무의식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선수행은 사람을 내적으로 자유롭게 만들뿐만 아니라, 육체 건강에도 좋은 향을 미친다. 물질주의와 경쟁시 에 사는 현 인들에게 선수행은 스트레스 해소의 좋은 명상법이 될 수 있으며, 현 문명의 병들과 위험으로부터 쉽게 벗어나게 해준다. 특히 선은 종교인들에게는 불안한 실존의 세계 에도 불구하고 깊은 내적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신비체험에 
이르게 해준다(Enomiya-Lassalle 1987, 99). 이렇듯 무사유의 선 (禪)은 비종교인 이나 종교인 모두에게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 해, 신신앙의 강화를 위해 필요한 방편적 명상법이 되고 있다. 라쌀이 무사유의 선을 통해 이해한 불교의 무(無)개념은 수련 (수행)시 무절제한 정욕에서 벗어나야 하는 ‘자아의 죽음(=無我)’을 의미한다. 그는 “자아는 죽어야만 한다.”고 역설 하면서 ‘무아(無
我)’는 늘 되풀이 되는 명제라고 강조한다. 라쌀에게 ‘무아’란 불안, 오만, 시기 등 여러 정념(情念)과 함께 ‘죽어야만 하는 자아’다. 그 리스도교의 피정도 나쁜 성향을 근절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데 그 방법은 과정에 있어서 선과 차이가 있다(Enomiya-Lassalle 
[1969]2007, 25). 피정은 신앙의 진리라는 ‘상’을 묵상함으로써 자신의 나쁜 정욕을 억제하게 된다. 즉 상을 사유함으로써 피 정의 목적을 달성한다. 반면에 좌선은 상에 한 묵상 없이 마 음 비움을 통해 인간 안의 무질서를 분쇄해 버린다. 무 상과 무 사유를 통한 선적 깨달음 이다. 라쌀은 이러한 동양인의 자제력
을 칭송한다(Enomiya-Lassalle 1987, 180). 그리스도교는 자아의 묵상(有)을 통해, 선수행은 자아의 죽음(無)을 통해 도덕적이고 수덕적인 동일한 효과를 얻게 된다. 즉 긍정(有)과 부정(無)의 다 양한 삶의 길이 이루어내는 동일한 목표다. 라쌀이 ‘무(無)’의 깨 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는 ‘선은 삶’이라는 것이다(Baatz 2004, 
92).

2. 체험적 화: 체(體)의 화
체(體)의 종교간 화란 종교의 공통점, 즉 보편성을 통한 
화를 뜻한다. 상(相)의 화가 종교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진리에 이르는 ‘방편’으로 받아들여 타종교와의 만남을 가능케 한다면, 체(體)의 화는 각각의 종교가 추구하는 공통의 목표로부터 출 발하는 종교간 화를 말한다. 종교의 교리와 제도가 종교의 특 수성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넘어서는 말할 수 없는 ‘무엇’에 한 깨달음의 체험 혹은 신비체험은 종교의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 다. 깨달음을 통한 불성(佛性) 혹은 무아 (無我)체험이든지 명상 적 기도를 통한 신과의 합일체험 이든지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절 진리 혹은 절 존재에 한 체험 이라는 점에서 두 종교는 만난다. 다만, 종교적 체험이 자(自) 종교의 언어로 표현될 때 불 성 체험 혹은 하느님 체험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라쌀은 절 존재 ‧ 절 원리에 한 ‘종교경험’을 통해 선과 그리스도교의 화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마음 비움(無我)을 통한 견성(見性)의 체험도 신(神) 신앙을 통한 하느님 체험도 결 국 욕망의 세계에 더럽혀진 인간의 참 모습을 회복하는 비움(無我)과 채움(神愛)이 하나 되는 자기완성의 체험, 곧 체(體)의 체험 인 것이다.

1) 무아(無我) 체험과 신(神) 체험

비움의 체험이란 고통의 세계에 집착하는 자아가 참자아가 아 님을 깨닫는 ‘무아(無我)의 체험’ 이다. 라쌀은 이러한 무아 체험 을 ‘존재체험’ 혹은 ‘자아체험’이라고 부르면서, 그리스도교 의 하 느님 체험과 동일하게 자기완성의 수단이 된다고 설명한다 
(Enomiya-Lassalle [1969]2007, 50, 72). 선적 깨달음을 통한 무아
(無我)체험은 그리스도교의 신(神)체험과 함께 누구나 가능한 체 (體)의 체험이다. 
선적 깨달음에서 절 존재는 인격으로도 상으로도 경험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것’으로 경험된다. 불교에서는 절 존재를 모든 긍정적 표현의 한계 때문에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공(空)’ 혹은 ‘무(無)’라고 부른다. 라쌀에게 공(空) 과 무(無)는 절 존재와의 ‘완전합일’을 의미하며, 선 깨달음은 완 전합일의 의심할 바 없는 경험이다. 그런데 이 경험은 선수행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禪) 밖에서도, 선수행에 의존
하지 않고서도 발생한다(Enomiya-Lassalle 1987, 187-188). 결국 
라쌀에게는 무아체험과 신체험이 동일한 합일체험이다. 선과 그 리스도교의 신비체험이 일치한다고 확신한 라쌀은 마이스터 에크
하르트(Meister Eckkhart)와 보나벤투라(Bonaventura),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Teresa von Avila), 십자가의 성 요한(Johannes vom 
Kreuz)등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자들에게서 선(禪)체험의 유사성
을 발견 한다(Enomiya-Lassalle 1987, 101이하 참조). 특히 라쌀은 
예수회의 창시자 로욜라의 이냐시오의 신수련과 좌선의 유사점 을 제시하면서 선수행을 통해서도 하느님과 하나 되는 신비체험 을 할 수 있다고 주장 한다.7)
라쌀에게 있어서 깨달음은 그 자체로는 불교적인 것도, 그리스
도교적인 것도, 어떤 다른 종교적 신앙과 필연적으로 결합된 것도 아니다. 깨달음은 인도에서 이미 불교 이전에 존재한 것으로 이슬 람교와 그리스도교에도 있는 종교현상이다(Enomiya-Lassalle [1969]2007, 51). 깨달음을 통해 인간은 종교적 완성에 이르게 된
 
 7) 그는 저서 『선과 성』(Zen und christliche Spiritualität, München: Kösel, 
1987, pp.126-197)에서 이냐시오의 신수련과 좌선을 상세히 비교하 다. 본 논문에서는 지면 관계상 라쌀의 비교분석을 논하지 않았다. 이 비교는 차후 의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한 가지, 선과 이냐시오 신수련의 큰 차이점이라 고 한다면 좌선은 무 상(無對象)‧무사고(無思考)를 통해 혼의 근저로 깊이 들어가는 체험을 하는데 반해, 신수련은 상(對象)과 사고(思考)를 통한 묵상훈련이다. 신비체험은 좌선의 직접적 목표이지만, 신수련은 그리스도 와의 인격적 관계를 이끈다. 그러나 두 가지 명상법 모두 명상자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신비체험에 이르게 하고 ‘새로운 의식’을 갖게 한다.
다(Enomiya-Lassalle [1969]2007, 75). 이 깨달음은 인간이 갖고 
있는 자연능력에 기인한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인간의 본 성적 이성능력으로 깨달음이 가능하다. 그래서 라쌀은 불교인도 그리스도인도 선적 깨달음을 통해 신과의 합일체험에 이를 수 있 다고 믿는다. 

2) 신의 사랑과 이타행의 체험

선적 깨달음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교의 신비체험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라쌀은 깨달음에 있어서 자연‧우주만물과의 일치를 통해 큰 환희를 체험하는 선사도 있는 데, 이때 ‘자연과 우주만물’ 신 ‘신’이란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고 말한다(Enomiya-Lassalle [1969]2007, 118). 다만 불교도는 초 자연(=神)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의 능력에 의존 하 고 있으며, 자연능력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고자 한다 (Enomiya 
-Lassalle [1969]2007, 130). 라쌀에 의하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종교체험은 동일하나 문자의 차이 때문에 다르게 표현되는 것뿐 이다(Enomiya-Lassalle [1969]2007, 118).  
그리스도교의 신과의 합일이란, 신에 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다시 인간사랑 ‧ 이웃사랑으로 확장된다. 라쌀은 인격적 신관이 없는 불교의 깨달음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한 사랑(利他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체험과 근본 
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Enomiya-Lassalle [1969] 2007, 119 참조). 때문에 라쌀은 깨달음의 목적이 자신의 마음의 평안에 있지 않고 이웃사랑에 있다고 말한다. 보편적 명령으로 주어지는 이타행은 불교적 언어로도, 그리스도교적 언어로도 표현된다. 이 타행을 위한 개인의 행동에 있어서 절 적 책임이 동반되는데, 라 쌀은 ‘책임’ 또한 언어적 표현이라고 말한다(Enomiya-Lassalle 
1987, 92).

3) 붓다와 그리스도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화 시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그리스도 없이도 구원이 가능한가?”란 의문을 제기한다. 이 질문과 관련해 라쌀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리스도는 현재 구원자로서 존재할 수 있다고 밝힌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에 한 절 성 요구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절 성 요구 와는 다른 것이다. 라쌀은 그리스도가 참으로 하느님의 독생자 아들이라는 것과 그가 온 인류를 위해 구세주라고 하는 것을 비 그리스도인도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한다. 그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 , 그리스도교를 알고 있는 불자 또한 그리 스도교에 한 이해심을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에 한 것이 부 당하다고 하면서도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Enomiya-Lassalle 
1987, 89). 따라서 라쌀은 ‘그리스도교’의 절 성 요구에 해서는 거부하지만 ‘그리스도’에 한 절 성 요구는 긍정한다. 그리스도 교와 타종교의 차이점은 계시가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데서 비롯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라쌀은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그 리스도’이고, ‘불교의 계시는 붓다’라고 하는 것이 문제시 되어서 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믿음의 상이 없는 불교의 존재 체험과 그리스도를 상으로 삼는 그리스도교의 신의 현존의 체 험 사이에서 오는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Enomiya-Lassalle 
1987, 90-91).
4) 동일한 체험, 새로운 의식
라쌀은 선(불교)과 그리스도교의 종교체험이 동일하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Enomiya-Lassalle 1987, 91-92).: 
첫째, 두 종교체험 모두 목표가 단지 의식의 확장에 있지 않 고 완전히 새로운 의식의 차원에 도달하는데 있다. 이것은 비인 격적 혹은 인격적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두 방법 모 두 침묵 속에서 존재와 만나는 황홀한 체험을 하게 한다.
라쌀에게 새로운 의식이란 ‘전체’(das Ganze)를 이해하는 것이
고, 모든 다양한 의식들을 조화롭게 일치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의식은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불이적(不二的) ‧ 일원론적(一元論
的) 의식이다. 이 의식 안에서는 차별과 소외, 갈등과 분열이라는 모든 이분법적 립이 무너진다. 새로운 의식은 인류를 하나가 되 게 하여 전쟁과 분쟁을 피할 수 있게 만든다(Enomiya- Lassalle 
1987, 193-194). 라쌀은 국가와 국가, 종교와 종교, 인간과 인간의 분열과 갈등을 조화와 평화로 만드는 원동력으로써 ‘새로운 의식’ 을 제시한다. 이 의식은 불자와 그리스도인 모두가 종교체험을 통 해 얻게 되는 인류평화를 위한 ‘책임의식’이다. 
둘째, 명령의 유사 언어적 전달이다. 이타행의 명령은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각자의 언어로 체험자에게 접근하여 그로 하여금 불가피한 결정을 하게하고 그의 행동에 해 절 적 책임을 지게 한다. 이 명령은 성스러운 절 존재의 체험에 능동적으로 행동하 게 한다. 이러한 이타행의 실천은 자기완성의 수행이기도 하다.
라쌀은 불교의 존재체험과 그리스도교의 신비체험이 서로 다
른 관점을 갖는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두 체험은 서로 립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가 다른 것 안에 포함되어 있다. 동일 한 체험이 각각 다른 전제들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뿐이다. 선승이 “당신은 당신의 그리스도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 은 당연히 그리스도교의 깨달음을 얻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나는 나의 불교를 포기할 수 없기에 불교적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각자의 종교언어로 깨달음을 체험하게 된다
(Enomiya-Lassalle 1987, 92). 라쌀은 동일한 체험의 다양한 해석 이 문제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의 현존 하는 신은 불 교도의 경험 속에 숨어서 존재”하며, “그리스도인은 자기체험을 존재의 궁극적 원인을 체험할 때까지 발전”시킨다고 주장한다
(Enomiya-Lassalle 1987, 92). 하지만 라쌀은 동서양의 사고방법은 서로 보완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서양에서는 의식이, 동양에서는 무의식이 더 지배적이기 때문에 두 역은 하나의 완전한 인격을 생성하기 위해 서로 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쌀은 동서양의 목표가 단지 개별 종교의 한계 내에서 ‘의식’의 확장이 아닌, 모 든 종교를 관통하는 ‘새로운 의식’의 차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말한다(Enomiya-Lassalle 1987, 92). 동일한 체험으로
부터 형성된 ‘새로운 의식’ 안에서는 종교적 개념과 교리, 제도와 조직, 인격신과 비인격신의 개념이 더 이상 문제시 되지 않는다. 바로 이 전제로부터 체(體)의 화가 시작된다.

3. 책임의 화: 용(用)의 화

용(用)의 화란 실천을 통한 화를 의미한다. 종교가 추구하
는 절 진리(體)의 작용이 용(用)이다. 라쌀은 선불교의 선수행과 선적 깨달음과 그리스도교의 신체험이 도덕적 완성 ‧ 인간적 완성 ‧ 자기완성이라는 동일한 실천적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두 종 교간 화를 시도한다. 특히 라쌀은 책임의 화로서 선과 그리 스도교의 화를 모색한다. 그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으로 인해 무 너져 가는 유럽과 세계의 정신문명을 동양의 선수행을 통해 회복 하려고 한다. 새로운 의식을 통한 성의 회복운동이다. 라쌀은 이를 위해 먼저 선명상의 중화를 꾀하고 나아가 사회정의와 평 화에 기여할 종교의 책임적 임무를 제안한다. 
다음은 라쌀이 선명상을 어떻게 중화 시켰으며, 선과 그리
스도교의 책임적 화를 어떻게 전개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그리스도교적 선명상의 대중화
라쌀은 선(禪)을 실제로 경험하 을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널리 전파한 주역이다. 라쌀로 인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이 아카데미담론을 넘어서 명상적 경험의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라쌀을 통해서 선이 일 본,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다른 유럽나라들의 수많은 가 톨릭 수도회에 전해지게 되었다. 특히 독일의 가톨릭 교회 에서 는 선불교와의 만남을 다른 나라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
다. 1969년에는 라쌀의 명상운동에 자극받아 프리츠 크뢰거(Fritz 
Kroegr)가 ‘사단법인 프랑크푸르트회(Frankfurter Ring e.V.)’를 설립되기도 하 다. 이 단체는 오늘날까지도 독일의 명상그룹 중 가장 큰 협회로 주목받고 있다(Baatz 2004, 99).
라쌀은 독일에 선(禪)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공헌하 다. 수
많은 선그룹과 선센터들이 라쌀에 의해 설립되었다. 톨레이 
(Tholey)와 메틀라흐(Mettlach)에 있는 노이뮐레(Neumühle)와 디 트푸르트(Dietfurt)의 프란치스코 명상센터 등이 창설되었다. 디트 푸르트의 프란치스코 명상의 집은 1977년에 라쌀이 직접 설립한 최초의 그리스도교 선명상 센터다. 라쌀은 독일 방문 때마다 이 곳에 머물면서 일 년에 6-7회 선명상 코스를 인도 하 다. 그는 깊은 경험은 사유(思惟)에 앞선 것으로 자기 정체성은 그 로 유 지한 채 모든 종교가 만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고 강조하
다. 모든 종교와 종파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사유(思惟)가 아닌 심층적 경험이라는 것이다(Brück and Lai 1997, 211이하 참조).
2014년 현재 프란치스코 명상의 집은 라쌀 신부에게서 직접 선 수행을 전수받은 오트마 프란탈(Othmar Franthal) 선 마이스 터가 다양한 선(禪) 프로그램들을 맡아 운 하고 있다. 그는 오늘 날 유럽과 독일어 지역(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라쌀 신부 의 향력이 단하다고 일러준다. 라쌀 신부에 의해 수많은 선 명상센터가 생겨났으며, 선불교와 그리스도교와의 화가 활발하 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8) 종교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라쌀 의 선명상 운동은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화가 중화되는데 
 
 8) 필자가 2014년 1월 프란치스코 명상의 집을 방문했을 때 오트마 프란탈
(Othmar Franthal) 선 마이스터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라쌀은 1968년 베네딕트 수도원에 다양한 선 코스를 개설하 여, 12개의 쎄신(Sesshin) 코스에 980명이 참가하기도 하 다
(Enomiya-Lassalle 1988, 94). 그는 1990년 그가 죽을 때까지 지속 적으로 독일에서 선 코스를 개최하 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예수 회 신부 던 라쌀의 선명상법은 예수회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 수도회나 베네딕트 수도회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해 그들의 명상법에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라쌀의 향 하에 세워진 몇몇 센터들은 불교 교사뿐만 아니 라 그리스도교 교사들도 가르쳤으며 1980년 말 이후로는 불교 센터(예로 알고이의 붓다의 집)에서도 그리스도인이었던 라쌀의 제자들이 선(禪) 교육을 맡기도 하 다.
라쌀의 명상코스에 참여한 사람들을 통하여 불교적 ‧ 그리스도 
교적 명상그룹 및 교회일치를 위한 명상그룹이 생기게 되었다. 다양한 가톨릭 수도원들이 오늘날 명상법으로 선을 실행하고 있 다. 뿐만 아니라 독일 개신교에서도 이미 60년 말부터 선수행
이 미카엘형제단(Michaelsbruderschaft)을 통하여 장려되 었다. 이 모두가 라쌀의 그리스도교적 선명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라쌀은 서구에 선불교를 전파했던 사람들(예로, Daisetz Teitaro Suzuki)과는 다르다. 그는 신부이자 선사로서 그리스도 교의 신비 주의와 함께 선불교를 전파하 다. 이 신비주의는 하느님과 내가 하나 되는 신비체험이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부터의 해 방이고 ‘상즉상입’(相卽相入, coindidentia oppositorum)의 합일체 험이다. 라쌀은 이 신비체험을 선에서도 발견하 다. 라쌀의 그리 스도교적인 선 해석 때문에 서구인들이 선에 해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 다. 마침내 라쌀은 동· 서양의 사고(思考)에 가교 역 할을 하게 되었다. 
특히 라쌀은 일본의 선불교와의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선(禪)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그리스도교 안에 초종파 적 인 명상의 형식을 도입하 으며, 깨달음(Satori)의 체험을 그리스 도교적인 관점에서 해석하 다. 그리고 그는 쎄신을 하는 동안에 성찬식도 거행하 다. 이것은 라쌀 신부가 일본에 있을 때 가톨 릭 신앙의 확고한 정체성 확보를 위해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시 도한 선명상이었다. 이러한 그의 선명상의 토착화 작업은 서구 그리스도교의 참석자들에게 그들의 신앙과 성서적 증언들을 새롭 고 심도 있게 다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Baumann 
1995, 80).
이렇듯 라쌀의 그리스도교적 선명상은 독일과 유럽 내에서 종
교와 교파를 초월해, 무종교, 무신론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성운동으로 중화되었다. 자본주의 시 에 물질주의로 병들어 가고 있는 유럽사회를 선명상을 통해 치유하고자 한 라쌀의 책임 적 화의 성과 다. 라쌀의 깊은 내면의 선명상 속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차별은 차이로 바뀌고 차이는 다시 조화와 화해 로 승화되었다. 이념과 교리가 아닌 경험의 화를 통해 종교 간 화의 중화를 실현하게 된 것이다.
2)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책임의 대화
라쌀은 어렸을 때부터 가난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두 차례
의 세계 전을 겪으면서 가난과 전쟁, 평화는 그의 삶의 중심에 늘 해결해야 할 과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라쌀은 일본 여행 전 에 항구도시 고베의 빈민가에서 살면서 일을 했던 어느 일본 개 신교 신자의 책에 감동되어 다음과 같이 회고 하 다. “내가 일 본에 가야했을 때, 나의 꿈은 가난한 지역에서 사는 것이었 다.”(Enomiya-Lassalle 1988, 20) 예수가 보여준 가난은 라쌀의 삶 의 방식이 되었고, 사회적인 책임은 그가 평생 감당해야 할 과제 가 되었다. 
1931년 가을 일본군 는 만주에 진군해 점령하 다. 같은 해 
11월에 라쌀은 도쿄의 빈민가에 사회 정착촌을 건립하 다. 라쌀 은 정착촌에서 생활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주력 하
다. 음식, 의약품, 약국, 학교(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학교), 법률상 담소가 정착촌에서 제공되었고, 사회연구소도 세웠다. 이러한 정 착촌의 운 은 당시 일본에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정착촌에서 라쌀은 사회봉사활동뿐 아니라 그리스도 교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도 힘을 기울 다. 또한 불교의 승려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그들과 종교적인 물음에 하여 화도 나눴다. 승려들과의 화 를 통해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에는 유사한 것들이 있다고 확신하 다. 정착촌에서 만난 불교를 통해 ‘위 한 힘과 사랑 그리고 무 아(無我)’가 그리스도교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 하 다
(Baatz 2004, 36-37). 
제2차 세계 전 이후에 일본인들은 그리스도교에 해 지 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49년부터 라쌀은 도죠 선사와 함께 히로 시마 주변 지역에 있는 여러 선사들을 돌면서 종교가 사회에 한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을 호소하 다. 라쌀은 일본의 선승들 과 함께 더 이상 전쟁의 참화가 없는 평화의 세계를 위하여 실천 적 운동을 전개하 다. 라쌀이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관련해 세 계평화를 기념하기 위한 ‘평화의 교회’(die Friedenskirche)를 설 립하려고 했을 때 많은 선승들이 교회건축 모금에 동참하 다.
히로시마 원폭투하 9년 후인 1954년 8월 6일에 ‘평화의 교회’ 가 봉헌되었다. 교회내부는 부분 독일인 들의 후원금으로 완성
되었다(Baatz 2004, 61). 1990년 7월 7일 토요일 라쌀은 오후에 소천 하 다. 그의 시신은 일본의 관습에 따라 화장되었고 유골 단지는 히로시마의 평화의 교회에 묻혔다. 결미사는 1990년 7 월 12일 독일 뮌스터에서 열렸 다(Baatz 2004, 149).
가난한 성의 소유자 라쌀은 세계 전의 한 복판이었던 일본 
히로시마에서 그의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일본의 가난과 전 쟁, 사회의 불의와 맞서 저항하며 지냈다. 그의 불교와 그리스도 교의 화는 일본 사회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는 일에 기여하
다. 라쌀의 묘비가 그가 세운 평화의 교회에 있는 것도 그가 얼 마나 세계평화를 원했는가를 반 한다. 
스위스 라쌀 하우스와 라쌀 연구소를 설립한 니클라우스 브란 첸(Niklaus Brantschen S.J.) 예수회 신부는 라쌀 신부야 말로 종 교이론에 머물지 않고 종교경험과 책임적 실천을 추구하며 살았 던 성가라고 평가한다. 라쌀에게서 선수행을 전수받은 브란첸 신부는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라쌀하우스(Lassalle-Haus) 와 라쌀 연구소(Lassalle-Institut)를 설립하 다.
1929년에 설립된 라쌀 하우스는 ‘성과 화 그리고 책임’을 위한 종교 간 만남의 센터로서 운 되고 있다. 80명 이상이 성 과 종교간 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년 5,500명이 다 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 들로서 특히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의 독일어권의 관심 있 는 사람들이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 라쌀하우스를 방문하고 있다.
1995년에 세워진 라쌀연구소는 라쌀 하우스 산하 기관으로 ‘선(禪)과 윤리, 리더 십’을 목표로 교육프로그램을 운 하고 있 다. 라쌀연구소는 에노미야 라쌀의 사회적 책임의 성을 실천하 는 교육의 장으로서, 특히 회사원, 기업인, 교육자, 성직자, 의사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책임적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참여 하고 있다. 라쌀연구소야 말로 선명상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의 식’이 사회의 현장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통로 역할을 해주는 곳 이다.
라쌀의 그리스도교와 선의 책임적 화는 독일과 스위스, 오
스트리아 등지에서 그의 제자들에 의해 실천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은 공동체와 함께 나눠져야 하는 과제로서 여기엔 이념의 차 이나 교리의 배타적 태도가 개입할 수 없다. 라쌀은 종교와 종파 를 초월해 세계평화를 위하여 인류가 함께 힘을 모을 것을 요청 한다. 행동의 화, 책임의 화야 말로 종교간 평화공존을 위한 실천적 해법이 될 수 있다.
IV. 종교간 화의 모델로서 라쌀의 선(禪)과 그리스도교 화의 특징
지금까지 살펴 본 로 라쌀의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화가 체험과 실존에 기반한 화 다는 데 있다. 라쌀은 종교간 화를 교리가 아닌 종교체험을 통해 추구하 고, 인격신론이 쟁점이 되는 실재론적 존재론의 화가 아닌 도덕적 자아완성을 목표로 하는 실존적 화를 통해 실현하 다. 그의 체험적 ‧ 실존적 화의 토 가 되었던 것은 무
(無)와 무사유(無思惟), 무 상(無對象)의 개념 이었다. 라쌀의 화의 목적은 인간의 자아완성을 통한 세계평화와 휴머니즘의 회 복이었다.

1. 실존적 화 
그리스도교의 인격적 신개념과 불교의 비인격적 진리개념 ‘무’(無) 혹은 ‘공’(空)-은 종교간 화 시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것 은 마태오 리치에게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리치는 중국 선교에서 인격신의 존재로서 상제(上帝)를 내세운 원시유교에 해서는 보 유론적 입장을 취하지만, 무신론적 도덕형이상학이 지배적인 신 유학의 이(理)와 태극(太極)에 해서는 철저히 비판적 태도를 취 하 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도교와 불교의 무(無)와 공(空) 사상을 단순히 ‘공허’ 혹은 ‘허무’로 이해하여 󰡔천주실의󰡕에서 신랄하게 비판하 다. 리치는 중국종교인 유교, 불교, 도교와 화를 시도 하지만 인격적 신관-상제(上帝)-을 가지고 있던 원시유교에 해 서만 그리스도교의 화자로 인정하 다. 16세기 중국의 유교문 화에 적응을 시도한 예수회 선교사 리치는 비실재적 존재론을 표 방하는 불교의 무(無)와 공(空) 개념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3백년 후에 등장한 예수회 후배 선교사 에노미야 라쌀에게는 불 교의 무(無)와 공(空)이 그리스도교와 만나는 접촉점이 되었다.
라쌀은 불교의 무(無)로부터 무사유(無思惟) ‧ 무 상(無對象)의 
화방법을 발견 하 다. 그는 무사유 ‧ 무 상의 화를 통해 ‘인 격신  비인 격신’, ‘실재적 존재론  비실재적 존재론’이라는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립을 극복할 수 있었고, 나아가 사회 적 책임과 도덕적 자아완성을 지향하는 실존적 화의 길을 모색 할 수 있었다.
라쌀은 비실재론적인 불교의 무(無)가 맞닥뜨리는 “불교는 그
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인격신에 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데 과연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해 “선불교에서는 깨달 음의 길이 곧 구원의 길을 의미한다.”고 답한다 (Enomiya- Lassalle 1987, 67). 그는 인격신 개념과 그리스도교의 속죄개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불교가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신의 구원개념 없이 깨달음을 통한 구원을 말하는 불교도 그에게는 분 명히 종교다. 
라쌀에 따르면, 불교철학에서는 궁극적 실재가 실재적(有的) 
존재가 아니고, 진여(眞如)다. 이 ‘진여는 공’(空)이라고 부정적 으 로 표현된다. 하지만 공은 절 부정적 허무의 무(無)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조건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공(空)이다. 이 공은 모두
가 돌아가야 할 절 존재다(Enomiya-Lassalle 1987, 70). 구원이란 공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그리스도교의 죄로부터의 해방으로서 구원은 선불교에는 없다
(Enomiya-Lassalle 1987, 68). 그것은 선불교에는 신(神)도 초월적 
존재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불교에서는 구원을 고통으로부터 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고통의 원인이 되는 욕망을 제거하여 윤 회의 사슬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곧 구원이다. 이때 윤회의 사슬 이란 혼의 윤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인간이 죽으면 동 일한 혼이 다른 육체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는 개인의 혼과 혼불멸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경험적 나로 서 나(我)도 없고 심층적 자아로서 자아(自我)도 없다. 나는 무아적 (無我的) 존재일 뿐이다. 만일 내가 없다면, 나에 관한 관념은 순 수한 망상에 불과하다. 모든 망상 중에 가장 나쁜 관념이다. 그렇 기 때문에 나의 망상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Enomiya-Lassalle 
1987, 69). 곧 무아(無我)를 깨달아야 한다. 집착할 주체도 집착의 상도 없는 무아는 타자를 위해 살아가는 실존적 존재다. 이타행 의 자아가 완성된다. 
라쌀은 불교의 비실재론적 무아의 개념에서 도덕적 실존, 즉 
이타행의 자아를 발견한다. 이 ‘무아적 자아’는 그리스도교의 신 과 하나가 된 자아와 만난다. 라쌀에게 신비체험을 통한 신과 합 일이란 신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은 이 웃 사랑이란 실천적 행위로 나타난다. 가난과 전쟁, 물질적 욕망 으로 파괴된 인간과 사회의 실존적 물음에 해 종교는 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라쌀은 선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 속에 서 해답을 찾는다. 라쌀은 선수행의 무아체험과 그리스도교의 신 비체험의 실존적 화를 통해서 종교가 인간완성과 사회정의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선명상을 통한 개인의 성회복과 사회정의와 평화를 위한 종교의 책임적 실천이 라쌀 화의 핵심적 과제다. 
이렇듯 라쌀은 실존적 화를 통해 불교의 비실재적 존재론으
로서 무아개념을 극복할 수 있었다.
2. 체험적 화
라쌀에게 있어서 무(無, 無我)로부터 출발하는 불교와 유(有, 
有神論)에 기반하는 그리스도교의 만남은 종교의 교리가 아닌 체 험을 통해서다. 불교의 무아는 사유의 주체도 될 수 없고 사유할 상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선적(禪的) 깨달음의 체험이란 무사 유 ‧ 무 상 ‧ 무아의 체험이다. 라쌀에게 삼무(三無)체험은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만나는 접촉점이다.
무사유(無思惟) 혹은 무사고(無思考)의 화는 종교의 교리와 개념, 언어가 요구되지 않는다. 그래서 라쌀은 무사유의 체험만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화를 가능케 한다고 믿는다. 그는 그리스 도교의 신비주의자인 그레고르 폰 니싸(Gregor von Nyssa, ca.333-ca.394)와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21-1274) 에게 서도 무사유의 신비주의를 발견한다. 니싸는 인식과 이해함 없이 그의 정신이 깊이 침잠할 때 하느님을 본다고 말한다. 그는 신비체험 의 목표는 모든 앎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나벤투라도 이 성이 모든 감각적 인식능력으로부터 멀어진다면 깨끗해질 것이라 고 밝힌다(Enomiya-Lassalle 1987, 102-103). 이처럼 라쌀은 불교
나 그리스도교 모두 언어와 개념, 사유를 떠난 곳에서 절 자와 나의 립이 사라지는 신비체험을 하게 된다고 제시한다. 그에게 는 무사유가 일어나는 곳이 무아체험과 신비체험의 장(場)이다. 
무사유의 종교체험의 장에서 종교 간 만남이 가능해진다.
무 상(無對象)의 화 역시 무(無)와 무아(無我)에서 출발 한
다. 진리를 공(空)과 무(無)로 정의하는 선불교에서는 선수행시 집중할 상도 상을 집중할 주체도 없다. 무 상의 선수행과 그리스도교적 명상은 서로를 구별 짓는 모든 인식과 형태 들로부 터 해방되어 종교의 뿌리에서 만난다. 무 상의 화로 부터 종 교간 만남이 시작된다. 라쌀은 무 상의 표적 신비주의자로 십 자가의 성 요한(Johannes vom Kreuz)을 꼽는다. 
라쌀은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스승들 가운데 십자가의 성 요 한 만큼 철저히 자기부인을 성취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는 선 (禪)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는 신비적 합일을 위한 준비단계로서 좌선과 비슷한 명상법이 있 는데, ‘어두운 관조’다. 어두운 관조에서는 혼 혹은 정신적 눈 이 완전한 어둠 속에서 바라본다. 거기에는 주시할 상도 없으 며, 생각할 상도 없다. 마침내 신과의 합일에 도달한다
(Enomiya-Lassalle 1987, 115).
무 상의 체험에서는 모든 차별과 갈등, 분별과 욕망이 사라 진다. 모든 립이 사라진 곳에 사랑과 자비의 이타행(利他行)만 이 남는다. 사회정의와 이웃사랑의 실천을 위해 종교가 상호 협 력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무 상의 체험을 통한 종교 간의 화다.
라쌀의 선과 그리스도교의 화가 종교간 화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종교체험을 통한 불교의 ‘무’(無)의 극복과 ‘도덕적 자기완성’이라는 실존적 화 때문이었다. 종교적 체험과 책임적 실존이라는 목표 아래 라쌀은 평생 선과 그리스도교의 융화를 위 해 힘썼다. 
3. 휴머니즘적 다원주의
라쌀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화는 마태오 리치가 유교와 그 리스도교의 화에서 보여준 칼 라너(Karl Rahner)의 ‘성취 이론 적 포괄주의’를 넘어 자크 뒤퓌(Jacques Dupuis)의 ‘포괄주 의적 다원주의’의 특징을 나타내기도 한다. 뒤퓌는 하느님의 구원사 안 에서 타종교들이 타종교인들의 구원을 위한 정당하고 속적인 수단이 되는 것을 허용한다(김연희 2012, 93). 그는 타종교들이 하느님의 구원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하느님의 포괄적인 구원의 경륜을 주장한다(김연희 2012, 97). 더욱이 뒤퓌는 라너의 성취이 론적 포괄주의가 타종교의 구원적 기능은 인정하지만 타종교인들 의 온전한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한정하고 있다고 비판한 다(김연희 2012, 92). 뒤퓌는 하느님의 비육화적 말씀의 현존과 활동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타종교 안에 서도 일어난다고 보았다(김연희 2012, 96-97).
라쌀이 선불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뒤퓌의 주장 로, 선불교 안에도 하느님의 구원의 섭리가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성불(成佛)의 수단인 좌선이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 체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도교 신자 던 그에게 좌선과 깨달음은 신(神)체험과 신(神)신앙을 위한 수단 이었다. 그가 일본 선교 초기에 보여주었던 적응주의 선교를 목 적으로 만난 선(禪)과는 달리 후기의 라쌀은 선을 자신의 신 신 앙을 위한 하느님 체험의 수단으로 받아들 다. 라쌀은 더 이상 개종의 상으로서 불자(佛者)를 만나지 않고, 사회정의 ‧ 평화의 공동선 구축을 위한 협력자로서 만났다. 그는 선적 깨달음에도 구원의 신비가 있음을 발견하고, 교리적 화가 아닌 실존과 성의 화를 모색하 다. 
한편 라쌀의 종교간 화는 뒤퓌의 포괄주의적 다원주의보다 진일보한 사회정의와 평화구현의 ‘휴머니즘적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라쌀은 타종교와의 만남에 있어서 그리스도론이나 신론 이 화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라쌀의 관심은 그리스도교와 불 교가 실존적 ‧ 체험적 화를 통해 동‧서양의 사회가 직면하고 있 는 정신 및 물질적 빈곤, 인간의 소외현상을 극복하고 전쟁에 의 한 절멸의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데 있었다. 라쌀은 휴머니 즘-인간완성 ‧ 자기완성 ‧ 도덕적 완성-의 회복을 위한 최상의 길을 동양의 선(禪)에서 발견하 다. 그는 언어와 교리, 제도를 떠났기 에 선불교와의 만남이 가능하 다. 
휴머니즘적 다원주의의 체험과 실존의 화에서는 종교의 정
체성이 문제시 되지 않는다. 라쌀 자신이 선마이스터로서 매일 선수행을 실천하 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 성을 잃지 않았던 이유다. 오히려 그는 선(禪)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라쌀이 보여준 타종교(불교)와의 화는 칼 라너의 성취이론적 포괄주의와 뒤퓌의 포괄주의적 다원 주의를 넘어서는 ‘휴머니즘적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라쌀의 종교간 화가 보여주듯이, 인류의 ‘휴머니즘 회복’이라는 실천적 목표를 위해 종교들이 만난다면 종교간 립과 갈등은 화해와 연 로 전환될 것이다. 이러한 용(用)의 휴머니즘적 화에서는 종 교들의 특수성과 보편성이 상즉상입(相卽相入)하며 존중될 것이
다.
V. 나가는 말
우리나라의 종교 인구는 크게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양 산맥 을 이루고 있다. 두 종교가 차지하는 종교인구의 총인구 비율 은 52.5%로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불교도이거나 그리스 도교도인 셈이다. 그리고 두 종교의 종교인구 비율은 98.1%(불교 43.0%, 개신교 34.5%, 천주교 20.6%)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우 리나라 종교인구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서 발생하고 있는 종교간 갈등의 중심에도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게 된다. 특히 갈등사례의 부분이 불교와 개신교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같은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타종교에 한 태도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천주교와 개신교의 관계가 갈등과 충돌의 양상을 띠기 시 작한 것은 천주교보다 100년 늦게 한반도에 들어온 개신교가 한 국에서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두 종교 가 갈등을 갖게 된 것은 선교의 장이 같았다는 점과 개신교의 선 교정책에 따른 차별화 전략 때문이다. 그리하여 개신교는 점점 더 공격적인 성향을 띠면서 천주교를 '위(僞)기독교'로 규정하
다. 특히 성모 마리아에 한 신심으로 만들어진 성모상을 일컬 어 '우상숭배'로 규정하며 천주교를 이단시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개신교는 서구문화로의 변혁을 강조하고 전통문화를 금기시하며 한국 사회에 정착하 다면, 천주교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인정하 고 그것을 천주교 교리와 융화함으로써 개신교와는 다르게 한국 의 종교로 자리매김 하 다. 그 예가 조상제사문제다. 개신교는 한국전통문화인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라고 규정해 금하고 있으나, 천주교는 1936년 이후부터 조상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신자들에게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 
조상제사의 인정과 같은 한국 천주교의 전통문화에 한 관용 적 태도는 예수회의 초기 적응주의 선교에서도 발견된다. 16-17 세기 프란체스코 하비에르(Francisco de Javier, 1506-1552)와 알 렉산드로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 1539-1606), 마태오 리 치(Matteo Ricci, 1552-1610)를 비롯한 수많은 예수회의 선교사들 은 인도, 일본, 중국 등지에서 힌두교, 불교, 유교문화에 적응하며 그리스도교의 토착화와 종교 간의 화를 모색 하 다(김명희 
2012, 67-68). 그로부터 3세기가 지난 1929년 일본에 선교사로 파 견된 에노미야 라쌀 신부에 의해 또 한 번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 교정책이 빛을 발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선교초기 아시아의 예 수회 선교사들이 보여준 토착문화에 한 적응주의의 노력들이 포괄주의적 양상을 띤다면, 20세기 일본에서 라쌀이 추구한 적응 주의 선교정책으로서 선불교와의 화는 다원주의적 특징을 지닌 다. 특히 앞서 설명한 로 라쌀은 인간의 실존적 삶의 현장을 토 로 선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휴머니즘적 화를 전개하 다. 이 화를 통해 라쌀이 이해한 불교의 ‘무’(無)는 유신론적(有神論的) 실재관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교와의 화에 걸림돌이 되지 않 았다. 라쌀에게 무(無)와 무사유(無思惟), 무 상(無對象)의 선불교 의 개념들과 좌선(坐禪)은 그리스도교의 신비체험과 신(神) 신앙 을 위한 ‘방편’ 으로서 수용되었다. 방편으로서의 화, 즉 상(相) 의 화는 깨달음과 하느님 체험이라는 체(體)의 체험적 화를 가능케 하 고, 체와 상의 화는 인간과 사회에 한 책임과 실 천이라는 용(用)의 화로 전개되었다.
라쌀의 체 ‧ 상 ‧ 용 화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의 화로서 자
(自) ‧ 타(他) 종교의 정체성(특수성)과 보편성을 인정하는 종교간 화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라쌀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화의 의의라고 한다면 마태오 리치가 해결하지 못했던 ‘종교적 적응주의’9)를 실현했다는 점이다. 리치는 불교의 비실재적 존재 인 무(無)와 공(空)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 다. 그래서 그는 불교 의 종교성을 비판하면서 불교도들이 그리스도교로 귀화 해야함을 주장하 다(리치 [1607]2012, 75 참조). 이러한 불교의 무(無)의 비 실재적 ‧ 비인격적 존재론을 극복한 사람이 라쌀이었다.
라쌀의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화 사례를 한국의 다종교 상 황에 적용해 본다. 향후 한국의 종교간 화가 이론과 교리 중심 의 화가 아닌 중적이고 사회적 책임을 나눠지는 실천적 휴머 니즘의 화로 발전하기 위해선 라쌀의 체 ‧ 상 ‧ 용 화인 실존과 체험의 화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라쌀의 그리스도교적 선수행의 보급으로 설립된 독일의 선명 상 센터들과 스위스의 라쌀하우스 및 연구소처럼 한국에도 다양 한 성센터와 연구소들이 초종교, 초교파적으로 운 된다면 종 교간 화의 중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 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불교의 ‘템플스테이’나 존 카밧진의 ‘마음 챙김명상’ 등은 초종교, 초교파적으로 중에게 사랑받는 성 프 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라쌀의 선명상도 한국의 성 프로그램으로 중화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불교와 그리 스도교의 화의 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9) 필자는 논문 “예수회의 적응주의와 종교간 화”(김명희 2012, 67-122)에서 예수회의 적응주의를 방법적, 문화적, 인식적, 종교적, 사회적 적응주의 등 다섯 개의 범주로 분류해 설명하 다. ‘종교적 적응’은 예수회 선교사 마태오 리치가 중국에서 신유교와 불교, 도교의 비인격적 실재인 이(理), 공(空), 무 (無)에 한 비판과 이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PP. XI, 1700-1721)가 내린 중국의 공자공경과 조상제사에 한 금지령이 토착종교에 한 적응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는 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예수회 선교초기 인도, 중국, 일본에서 시도한 문화적 적응은 비교적 성공한 반면, 종교적 적응은 ‘인격신  비인격신’, ‘실재적 존재  비실재적 존재’의 립을 화해하는 것이 선결 과제가 되었다. 이것을 달성한 사람이 에노미야 라쌀 신부다.
의 천주교 내에서는 선명상을 성수련법으로 활용하는 수도회도 있다. 라쌀의 선명상을 통한 성운동이 천주교 뿐 아니라 한국 개신교회에서도 수용,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선명상법의 활용은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뿐 아니라 타종교에 한 정체성 또한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성을 통한 종교간 화에 있어서 종교 정체성의 문제는 향후 풀어야 할 숙제다. 
라쌀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 
불교와의 만남을 이어갔지만, 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여전 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여부가 종교간 화의 핵심 과제다. 라쌀의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체험과 휴머니즘이라는 실천의 역에서다. 평생 종교 간 만남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한 라쌀에게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다. 라쌀의 선과 그리스도교의 화가 종교간 화의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종교체험을 기반으로 하는 체(體)의 화와 휴머니즘적 실천을 토 로 하는 용(用)의 화를 넘어, 종교의 정체성(차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상(相)의 인식적 화까지 추구되어야 한다. 인식적 화가 전제될 때 체와 용의 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회 선교사로서 라쌀이 보 여준 선과 그리스도교의 화에서 ‘선교’라는 한계를 어떻게 극 복할 수 있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종교간 화와 선교, 이 둘 의 관계는 종교간 화에 있어서 정체성의 문제와 함께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쌀의 선명상을 통한 성운동이 한국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갈등 해결에 하나의 안이 될 수 있을 것 으로 기 된다. 라쌀이 그러했듯이 개인적 성은 세상의 공동선 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즉, 신인(神人)합일의 체험적 성은 '생 명살림'과 '생명사랑'에 참여하는 책임의 성으로 승화되어야 한 다. 이것은 타자 혹은 사회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이 타행(利他行)의 성이다. 한국의 모든 종교들이 자신의 성 수 련의 장에만 머물지 말고, 세계평화와 정의를 위해 연 하는 행 동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자본주의가 낳은 개인주의와 경쟁주의, 물질만능주의로 불의와 불평등이 팽배한 사회에서 종교는 불의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종교는 선(善)의 이상을 ‘제시’하는데 머물지 말고, 선의 이상을 ‘구현’하 는데 더 힘써야 한다. 이것이 라쌀의 선명상이 추구했던 실존과 체험, 책임과 성의 휴머니즘적 화다.
주제어: 에노미야 라쌀, 종교간 화, 선, 선명상, 종교경험
투고일: 2015.2.3 심사종료일: 2015.5.20 게재확정일: 2015.6.5
참고문헌
  1차 자료: 라쌀 문헌
Enomiya-Lassalle, Hugo M. 1988. Mein Weg zum Zen, München: 
Kösel.
 ____. 1992. Zen - Weg zur Erleuchtung, Freiburg Basel Wien: 
Herder.
 ____. [1969]2007. Zen. Weg zur Erleuchtung, Freiburg i. Br.: Herder. 
󰡔선도. 깨달음의 길󰡕, 이남  정은순(역), 왜관: 분도출판사.
 ____. 1987. Zen und christliche Spiritualität, München: Kösel.
  2차 자료
김명희. 2014. “산 김 거 종사의 종교간 화-원효의 체상용(體相
用)화원리를 중심으로-”,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61: 
149-197.
 ____. 2012. “예수회의 적응주의와 종교간 화”, 『한국조직신학논총』
34: 67-122.
 ____. 2014. “종교간 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천주 실의󰡕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와 유 불 도(儒佛道)의 화”, 󰡔한 국조직신학논총󰡕39: 141-197.
 ____. 2011. “체(體) 상(相) 용(用)의 원리로 살펴 본 참여 성과 평화 의 해석학적 고찰-간디의 아힘사를 중심으로-”, 󰡔원불교사상 과 종교문화󰡕 50: 169-209. 김연희. 2012. “자크뒤퓌의 종교다원성의 신학”, 󰡔신학전망󰡕 176: 
77-119. 마테오 리치(利瑪竇). [1607]2012. 󰡔天主實義󰡕송 배 외 5명(역), 서울: 서울 학교출판문화원. 박태원. 1994. 󰡔승기신론 사상연구 (I)󰡕, 서울: 민족사.
Baatz, Ursula. 2004. H.M. Enomiya-Lasalle. Jesuit und Zen-Lehrer. Brückenbauer zwischen Ost und West. Freiburg Basel Wien: Herder.
Baumann, Martin. 1995. Deutsche Buddhisten: Geschichte und Gemeinschaften. Marburg: Diagonal-Verlag.
Brück, Michael von & Lai, Whalen. 1997. Buddhismus und Christentum. Geschichte, Konfrontation, Dialog, München: 
Verlag C.H.Beck. 
Müller, K. u.a. 1985. Missionstheologie. Eine Einführung. Berlin: D. 
Reimer.









====
에노미야 라쌀과 선(禪) ― 영성과 책임의 대화 ―
김명희
Published 2017
Linguistics
20세기 초 일본에 선교사로 파견된 가톨릭 예수회 신부 에노미야 라쌀(H. M. Enomiya-Lassalle, 1898-1990)은 선(禪)을 통해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대화를 추구하였다. 라쌀은 예수회의 영신수련과 불교의 좌선이 차이를 넘어 통섭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교적 선 명상`을 창안해 독일과 유럽에 보급시켰다. 라쌀은 그리스도교와 선의 영성적 대화와 함께 사회평화를 위한 책임의 대화도 시도하였다. 그의 그리스도교적선 영성은 사회의 안녕과 평화를 책임지는 `참여영성` 혹은 `책임영성`이 되었다. 본 논문은 라쌀의 선과의 대화를 세 방향에서 다루었다. 첫째, 라쌀의 선과 그리스도교의 영성적 대화를 고찰하였다. 라쌀의 저서 『좌선과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을 통해 예수회의 영신수련과 선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탐색하였다. 둘째, 라쌀 하우스를 중심으로 라쌀의 책임의 대화로서 선과 그리스도교의 대화를 고찰하였다. 마지막으로 라쌀의 그리스도교적 선 명상을 통한 영성적 책임적 대화가 한국의 다종교 사회에 가능한지 진단하였다. 
Collap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