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영 shared a post.
3tm0 StnphgoJdnuly igatotsforegd 21:S0d6mSmh ·
도올의 이 글을 하경숙 님은 동덕님들과 토론을 위해 소개한 것이라 여긴다.
도올의 이 대목을 읽으면 심지어는 불쾌해지기까지 한다.
도올이 수운을 말하면서 수운의 아버지인 근암공뿐 아니라 거슬러 올라 최진립 장군까지 언급하거나, 조선역사의 총체를 언급하는 지경에 이르서는 우생학 혐의마저도 일어난다.
우생학을 나타내는 영어 eugenics는 well(잘난, 좋은, 우월한)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의 eu와 born(태생)의 의미를 지닌 genos의 합성어였으며, 따라서 eugenics는 글자 그대로 '잘난 태생에 대한 학문'(wellborn science)을 의미했다. 우생학은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종자나 인종 문명에 대한 인위적 소멸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도올의 수운가계 언급 태도는 훌륭한 가계에서 태어난 훌륭한 동학의 냄새가 짙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학들이나 동학에 대한 다른 해설을 '개똥', '개똥'하는 것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수운을 우수한 종자로 만들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수운이 위대한 것은 우부우민의 주유팔로를 겪으며, 우부우민의 아픔에서 치열하게 사유했던 것이다. 이는 예수가 목수의 아들이며, 말구유에서 난 것과 같은 일이다.
수운이 하늘을 인간화, 만물화한 것처럼 수운 역시 영웅이어서는 안 되며, 우부우민으로 노이무공한 어리숙한 스승님으로 우리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도올 동경대전의 수운에 대한 문장들은 신비화, 성인화로 가득하여서 품에 안을 수가 없다. 예수가 거룩한 성령이 아니라 피를 흘리는 예수이어야 하는 것처럼 수운 역시 우부우민이어야 하는 것이다.
"총기((聰氣)"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무기(巫氣)는 하찮은 광기일 뿐이다. 그러한 자들이 하나의 종교를 창도할 때 그것은 사회적 광란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대목은 천도교와 의암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읽혀지기까지 한다. 동학과 천도교 역사의 아픔과 좌절까지 껴안아야 하는 것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에 도올의 발언은 천도교를 깡그리 무시하는 독단이 아닐 수 없다.
도올은 자기 학문의 에고이즘에서 수운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하경숙
2tm3 StnphgoJdnuly igatotsforegd 11:S3d8mSmh ·
"총기((聰氣)"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무기(巫氣)는
하찮은 광기일 뿐이다. 그러한 자들이 하나의
종교를 창도할 때 그것은 사회적 광란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ㅡ본문에서
우리는 수운과 수운의 아버지 근암공 최옥과의 관계를 다음의 세 측면에서 고찰해볼 필요를 느낀다. 하나는 유전적 성품이며, 하나는 가학(家學)의 연원이며, 하나는 수운의 일생을 지배한 사상적 기저에 관한 것이다.
첫째, 수운은 아버지 근암공으로부터 매우 영민한 지력을 물려받았다. 한마디로, 수운의 아버지 최옥은 머리가 비상하게 좋은 사람이었다. 이종상이 쓴 최옥의 행장(行狀)에 이르기를 : "타고난 자질이 영민하고 쉽게 깨우쳐, 이미 아동시절에 중국의 『십구사(十九史)를 배웠다. 눈이 한번 스치기만 하면 외워버렸고, 그 대의를 파악해버렸다. 여덟살 때 이미 『봉덕종부(鳳德鍾賦)를 지어 세인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봉덕종부에 관해서는 상고할 길이 없으나 어려서부터 시부(詩賦)에 능하였고, 고찰컨대 뛰어난 암기력과 이해력의 소유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뛰어난 부친, 최옥의 머리를 수운은 이어받았다. 수운이 결코 머리가 아둔한 사람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매우 총명한 사람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은 수운의 생애와 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종교체험이 평소 뛰어난 지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아둔한 인간이 도를 한번하고 싶어서 무리한 발심을 한 사태가 아니라는 이 사실이 명료하게 반추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견딜 수 없는 어떤 도약에 대한 몸부림," "정신적 비상에 대한 갈망", 그의 삶의 저변을 흐르는 이러한 용솟음이 범용한 인간의 구도가 아니라, 비상한 이해력과 암기력의 발군의 총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총기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무기(巫氣)는 하찮은 광기일 뿐이다. 그러한 자들이 하나의 종교를 창도할 때 그것은 사회적 광란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근암은 노경에 예기치 못했던 삼취(三娶)에서 평생 얻으려다 못얻은 아들을 얻게 된다. 그가 복슬(福述)이 수운이었다. 복슬이는 서자도 아니요, 상처 후에 정식으로 결혼한 부인에게서 낲은 소생이지만, 재가녀의 소생인지라, 『경국대전』의 규정상 과거에 응시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과거도 못볼 자식 공부 가르쳐 무엇할 까? 보통 같으면 농사나 짓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암은 이미 성숙한 노경의 대석학이었다. 수운이 가정리에서 고고지성을 울렸을 때 그는 이미 63세였다.
근암(謹庵)에서 근암(近庵)으로 바꾼 최옥(崔鋈)! 그는 말년에 아들을 얻었을 때, 아들의 출세여부는 관심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학문이란 오로지 "사람되기 위한 배움"이었고 "자기를 위한 배움"이었다. 그는 말년에 얻은 자식을 애지중지 키우면서 무엇보다도 학업에 열중케 하였다. 11조로 된 그의 가훈 제22조에 정이천의 말을 빌어, 자녀교육에 관하여 간곡히 타이르는 말이 있다.
아! 한심하도다! 요즈음 자식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입학 후에도 마소에 꼴먹이게 하거나, 들판에 나가 물대게 하거나 하는 등
글 공부에만 전념치 못하게 하니, 이래 가지고
서야 어찌 자식이 재목이 되기를 바랄 수
있으리오! 엷살 때부터 열다섯살 때까지는 무조건 공부를 시켜보면 재목이 될지 안될지, 성공을 할지 못할지 판가름이 나게 될 것이다.
만약 머리가 아둔하여 잘될 가망이 없거나, 도무지 타고나기를 교육이 안 먹힐 수준이라고 한다면, 그때 가서 농사일을 배우고 꼴맥이고 물대게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근암공의 이념에 따라 수운은 1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죽으라고 공부만 했다. 수운이 부모를 다 여의고 19세 때 결혼한 후 살길이 막막했던 것도 농사일 을 전혀 못배운 서생이라는 처지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장사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수운은 어디까지나 아버지 근암공의 가학을 이은 선비로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학을 후대의 갑오동학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그 원인제공의 남상(濫觴)으로서 거슬러 올라가 인식하는 데만 익숙해 있다. 그리고 후대에 성립한 천도교라고 하는 종교사의 틀 속에서 그 시조로서의 수운을 이해하는 데만 익숙해 있다. 그러나 모든 시발역은 종착역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수운이 혁명이나 종교의 창시자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선비로서 가학을 잇고 성장한, 기나긴 조선 사상사의 종착역으로서의 중요한 한 측면을 완벽하게 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37세 득도 이전의 최수운은 평범한 조선의 선비였으며, 그에게는 중요한 학통이 있었다. 이 학통을 여태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 학통은 영남 퇴도(退陶)의 학통이었다. 그의 아버지 근암공은 최진립 장군 가문을 빛낸, 우리의 상식적 기대를 뛰어넘은 당대의 대유(大儒)였다.
곧 제2탄이 이어집니다! 도올의 『동경대전』
8Yuik Kim, 유상용 and 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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