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8

알라딘: 삶은 기적이다 현대의 미신에 대한 반박 웬델 베리 (지은이),박경미 (옮긴이)

알라딘: 삶은 기적이다

삶은 기적이다 - 현대의 미신에 대한 반박  
웬델 베리 (지은이),박경미 (옮긴이)녹색평론사2006-02-15원제 : Life Is A Miracle (2000년)



삶은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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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238쪽156*188mm452gISBN : 978899027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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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서평 형식을 통해 현대 과학문명 전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주는 책이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의 <통섭(Consilence)>이 주장하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통합이라는 개념을 면밀히 분석하고 비판했다.

저자는 삶의 신비로움과 알 수 없음, 기적적인 성격을 회복하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면에서 <통섭>이 말하는 환원주의 과학은 그 기적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블레이크의 시를 수차례 인용하여 진정한 통섭/통합은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듯이" 모래알과 들꽃이 세계와 천국의 수준으로 도약하여 '고양'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과학과 문명의 기계론적 사고, 산업주의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등에 관한 포괄적인 성찰과 비판을 가했다. 또한 인간을 물화(物化)하는 현대의 한탕주의적인 예술과 과학에 대한 대안으로 "붙박이로서의 삶"을 제시했다.
목차
Ⅰ 알지 못함

Ⅱ 타당성

Ⅲ 에드워드 윌슨의《통합》에 대하여
1. 물질주의
2. 물질주의와 신비
3. 제국주의
4. 환원주의
5. 기계로서의 피조물
6. 독창성과 “두개의 문화”
7. 뺄셈 없는 진보

Ⅳ 환원주의와 종교

Ⅴ 환원주의와 예술

Ⅵ 학교 밖에서의 대화

Ⅶ 기준 바꾸기

Ⅷ 결론을 대신하여

역자 해설 “살아 있음”의 신비,
“알지 못함”의 인식론

접기
책속에서
붙박이로서의 삶은 지금까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존경과 충성스러움, 이웃간의 정, 충직함 같은 고대 인간이 지녔던 미덕으로 우리의 기억과 실천 속에 간신히 보존되었다. 그러나 현대사를 지배한 것이 한탕주의 뜨내기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현대의 지배적인 예술과 과학이 한탕주의 뜨내기 예술과 과학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한탕주의 과학과 한탕주의 기업정신이 협력한 결과 이제 지구상의 모든 피조물은(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팔려갈 물건처럼 제 몸에 가격이 매겨지는 신세로 전락했고, 사실상 경제 전체주의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경제 전체주의에서는 모든 물질과 피조물, 생각들이 상품화되어 교환 가능하고 써서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이 된다. 사람들도 다른 것들과 함께 상품이 된다. 오직 그러한 경제만이 풍요로움과 피조물의 다양성으로 가득 찬 세계에 기술주의적 독재와 유전학적 획일 문화를 덮어씌우려 한다. 그러한 경제 전체주의 체제에서만 '삶의 형태들'이 특허대상이 되고, 자연과 문화의 재생가능성이 파괴된다. - 본문 192쪽에서  접기
현대과학의 가장 일차적인 환원주의는 인간 경험, 혹은 인간적 의미를 인간의 언어에 의해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가정은 잘못된 가정이다.-219쪽 -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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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 <취서만필> (평단문화사 刊)
저자 및 역자소개
웬델 베리 (Wendell Berry)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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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이자 철학자이며, 시인이자 소설가. 켄터키 주 농부의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전통 방식의 농사를 배우며 자랐다. 켄터키대학교에서 문학 교수로 일하다가 마흔네 살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농부로 살기 시작했다. 농사짓는 작가, 글 쓰는 농부로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현대 문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땅과 사람의 관계를 고찰해 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들로부터 출발해 지구의 문제로 확장해 가는 근본주의적 시선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많은 성찰과 고민을 던져 주고 있다.
『생활의 조건』, 『희망의 뿌리』, 『포트윌리엄의 이발사』, 『삶은 기적이다』, 『지식의 역습』, 『온 삶을 먹다』 등 마흔 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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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오직 하나뿐>,<소농, 문명의 뿌리>,<온 삶을 먹다> … 총 254종 (모두보기)
박경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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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성서신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신약성서학 교수이다.

저서
『예수 없이 예수와 함께: 요한공동체의 문학과 신학』(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행복하여라 하느님 나라의 사람들』(한울)
『신약성서, 새로운 삶이 희망을 전하다』(사계절)
『시대의 끝에서』(한티재)
『마몬의 시대, 생명이 논리』(녹색평론사)

역서
『요한복음 요한서신』(대한기독교서회)
『말씀을 믿다: 요한복음서 1-4장을 읽다』(대한기독교서회)
『서기관들의 반란... 더보기
최근작 :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행복하여라! 하느님 나라의 사람들>,<시대의 끝에서> … 총 29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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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녹색평론 통권 178호>,<농본주의를 말한다>,<녹색평론 통권 177호>등 총 78종
대표분야 : 환경/생태문제 2위 (브랜드 지수 79,81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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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세상을 정확하게 보게 만듭니다.  구매
물살 2009-01-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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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좋은 껍데기를 벗고 참삶을 찾자 새창으로 보기

- 책이름 : 삶은 기적이다
- 글쓴이 : 웬델 베리
- 옮긴이 : 박경미
- 펴낸곳 : 녹색평론사(2006.2.15)
- 책값 : 7000원


 우리 나라에 참된 과학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과학뿐 아닙니다. 문학도 사상도 철학도 역사도 참답게 자리잡고 있을는지요? 글쎄. 그러면 책은 어떻습니까? 그림이나 사진은? 교육이나 사회는? 정치나 경제는? 노동은? 운동경기는 어떨까요?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즐겁게 맞이하면서 너나없이 고르게 함께할 수 있는가요?


.. 과학은 인간적 한계를 지니며, 늘 인간의 무지와 오류를 포함한다. 과학이 발명해내거나 발견해낸 해결책들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또 그 자체가 새로운 문젯거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특정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발견해냈지만, 핵의 사용은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위험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핵폐기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폐타이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 항생제의 사용은 항생제의 남용을 가져왔고, 계속 이런 식이다. 우스꽝스럽게도 우리는 일상적 삶 속에서 황당한 과학지식에 매달린다. 가령 우리는 유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지만, 우리 가운데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  〈53∼54쪽〉


 한 달쯤 앞서, 서울역에서 전철을 탈 때입니다. 저는 멀리 가는 길이라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전철을 탔는데 마침 유모차를 끌고 계단 앞에서 허둥지둥하는 젊은 어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한쪽 어깨에는 자전거를 메고 있었지만 한쪽 손은 자유로워서, “아주머니, 같이 들어 드릴게요” 하고는 꽤나 긴 계단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저는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갔고, 아이 어머니는 표를 사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유모차를 어떻게 개찰구를 넘어 나오는가로 힘들어합니다. 아마, 전철역까지 오는 동안 꽤나 애먹고 힘들었는가 보군요. 그런데 서울역 개찰구에는 휠체어나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뚫려 있는 다른 문’이 없습니다. 표를 끊고 지나가는 자리도 대단히 좁습니다. 그래, 하는 수 없이 유모차를 들어서 안쪽으로 옮겨야 했고, 아이도 누군가 들어 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까 계단에서도 그랬으나, 이 개찰구 앞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리기는 했어도 누구 하나 손을 거들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침 이날만 이렇게 돕는 손길이 없는지도 몰랐겠지만요.


.. 다행스러운 것은 과학자들조차도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말할 때에는 “한 여성”, “한 남성”, “한 아이”, “한 사례”와 같은 범주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정을 느낄 때 우리는 추상과 추상화의 범주들을 깨부수고, 고유한 생명과 장소를 지닌 피조물 그 자체와 대면하고 싶어한다 ..  〈65쪽〉


 아기를 제가 안고 있는 동안 젊은 어머니는 유모차를 낑낑거리며 개찰구 아래로 밀어서 가까스로 빼냅니다. 겨울이지만 얼굴엔 땀이 줄줄 흐릅니다. “아유, 서울 한번 나오면 힘들어서 못 다니겠어요. 다니기 너무 불편해요!” 하는 아이 어머니. 저는 4호선을 타고 아이 어머니는 1호선을 탑니다. 길이 엇갈려서 걱정스러운데, 저 어머니가 가는 길에 도와줄 사람이 있을는지…


.. 삶을 경험한다는 것은 뭔가를 “알아내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고통받는 것이며, 동시에 있는 그대로 삶을 기뻐하는 것이다. 고통받으면서, 또 있는 그대로 기뻐하면서 우리는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서 우리는 생명을 이해했다는 누군가의 주장에 의해 생명이 소유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생명은 우리가 향유하는 것이지만, 우리 너머에 있다 ..  〈18쪽〉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양문), 《생활의 조건》(산해) 같은 책에 이어 우리 말로 번역된 ‘웬델 베리’ 님 책 《삶은 기적이다》입니다. 과학기술이라는, 또 물질문명이라는 허울좋은 껍데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제정신을 잃어버린 우리들한테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운가를 자기 경험을 밑바탕 삼아서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소중한 나를 찾고, 내 삶터를 찾을 때는 우리 삶을 ‘기적’이라 할 만하지만, 나 자신을 소중히 느끼지 못하고 내 삶터를 소중히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를 억누르는 권력자들 배만 불려 주는 ‘기적’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담아요. (4339.3.9.나무.ㅎㄲㅅㄱ)

 

**

다만 번역은... 다른 녹색평론사 책과 마찬가지로 엉망입니다. 쩝.

- 접기
숲노래 2006-03-09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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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기적으로 본다는 것은 새창으로 보기
 
삶은 기적이다. "Life is a miracle." 삶 중에서 기이한 일, 특별한 일, 초자연적인 일이 아니고 '그냥 삶'이 기적이다. 먹고 자고 씻고, 출근하거나 등교하거나 집안일하거나 공부하거나 일터에서 일하거나 놀거나 하는 것, 그런 일상이 바로 기적이다. 그럴 만도 하다. 자동차는 쌩쌩 달리지, 범죄자들은 수두룩하지….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 풍진 세상, 별 탈 없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 기적이랴.



그런데, 그런 것 모두를 기적이라고 부르자니, (솔직히 말해) 기적이 좀 시시해지는 느낌도 없지 않다. '까'놓고 말해, 일상사를 기적이라고 부르면 '기적'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신비스러움이 어쩐지 반감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째서 그럴까?



우리는 일상의 삶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또 일상사를 신비롭다고 여기지 않는다.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다투고…, 이런 일들이 신비롭다? 어떻든지 간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게 사실이다.



헌데, 지금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한 번 깊이 생각해보자. '과연 나는 일상의 삶에 대해 다 알고 있는가?' 웬델 베리는 우리가 삶에 대해 '안다'고 착각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기적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리하여 그의 책 <삶은 기적이다>는 '알지 못함(1장의 제목)'으로 시작한다.



삶을 경험한다는 것은 뭔가를 "알아내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고통 받는 것이며, 동시에 있는 그대로 삶을 기뻐하는 것이다. 고통 받으면서, 또 있는 그대로 기뻐하면서 우리는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18쪽



베리의 책 <삶은 기적이다>는 에드워드 윌슨의 책 <통섭>이 바탕하고 있는 환원주의적 세계관에 대항한다. <통섭>을 다 읽어보지 못한 내가 이해하기로 환원주의적 세계관은, 모든 것을 기계로 보고 이해가능·설명가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베리는 <통섭>의 저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물론 나는 윌슨의 과학적 지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마도 그의 지식은 인간이 알아낸 지식으로서 위대하고 경탄할 만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가 보여주는 태도이다. - 42쪽







우리는 삶을 알려고 하고 그 알아낸 지식으로 기대하고 예측하며 유형화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해서 삶을 더 쉽게 살고자 하고 덜 힘들게 살고자 한다. 그런데 삶을 대상화하여 알아내도 우리의 투덜거림은 변함이 없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우리는 신비 안에서, 기적에 의해 살아있다. 에르빈 샤르가프는 "삶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71쪽



삶을 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죽음도 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죽음은 단지 건강함의 종착역이자 불건강함의 표지가 아닌 것이다. 암환자가 건강하지 않아서(암세포 때문에) 죽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죽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베리는, 죽음을 건강의 일부분으로만이 아니라 '신비'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212쪽)고 역설한다. 베리의 말처럼, 죽음에 대한 과학적 영웅주의의 표현으로 의료산업이 발달했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삶은 기적이다. 그리고 죽음도 기적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맛보는 삶과 죽음 안에 있는 우리는 기적 안에 있다. 그런데 이 말, 가만히 묵상해보니, 참 신비롭다. 기적은 인간이 아닌 신의 작용이므로 '우리가 신 안에서 살고 있다'는 고백을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 월간<새가정>, 오마이뉴스, 에큐메니안 등에도 같은 글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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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2007-03-12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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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새창으로 보기
  대부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제는 도시생활이 대부분이다. 농촌에는 60대 노인이 청년 회장을 한다는 말이 사실이 되었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낙후되고 삶의 질이 결여되어 있다는 인식과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농촌으로 갈 수 있을까? 과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가능한 모든 발전들은 우리 삶의 목표가 되었다. 세상은 진보와 발전의 수레바퀴 속에서 영속적인 진화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인류는 이제 그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맹목적인 과학에 대한 믿음은 인류의 삶에 반성적 태도를 박탈했다. 현대의 미신에 가까운 과학에 대한 맹신은 인간의 가치 판단과 무관하게 발전되어 왔다.

  과학은 결국 가치 판단과는 무관한 기능만을 제공해왔다. 물론, 인문학과 예술과 종교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적절한 가치관을 제공했는가 하는 비판과 반성도 아울러야 한다. 이러한 판단과 논의는 인류에게 영원한 숙제로 남아 있고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웬델 베리의 <삶은 기적이다>는 이러한 논쟁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저자의 생각과 주장은 분명하다. 과학기술의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한 숭고함이다.

  현대과학의 방법론은 근본적으로 물질주의와 환원주의, 기계론적 사고와 산업주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비판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래서 저자가 택한 방법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오성이 선택한 ‘한 놈만 팬다’는 전략이다. 그 한 놈으로 선택된 것이 에드워드 윌슨이다. 최재천과 장대익이 옮긴 <통섭>으로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아 웬델 베리의 의견에 전반적으로 동의하거나 조목조목 반대의견을 비판하며 읽을 수가 없어 아쉬웠지만 전반적인 그의 견해와 논의의 초점은 특별하지 않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일반론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

  윌슨의 통섭은 한자로 ‘統攝’이다. 큰 줄기로 끌어 당긴다는 한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전제주의적 지배적 성격이 강하다. 문제는 통섭의 주체가 과학이라는 데 있다. 웬델 베리가 윌슨에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이유도 과학적 환원주의의 입장에서 모든 학문과 인접 분야의 통합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알 수 없는 세계는 없고 과학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웬델 베리는 수용하지 못한다. 살아 있음의 신비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인식은 과학의 잣대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삶은 그 자체로 기적이라는 인식이 기독교적 관점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구체적으로 과학적 방법론이 왜 타당한지 조목조목 따져 밝히고 있고 나름의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저자가 내세우는 대안은 없다. 오히려 신비주의와 모호한 태도로 보일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다만 과학적 환원주의에 대한 맹신을 돌아보고 경계해야할 전제임을 반성하는 정도로 읽는다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시도한다는 것은 분명 무리한 시도로 보인다. 그것은 학문간의 교류를 넘어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철학적 문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단순하게 발전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진보와 발전의 개념과는 다른 문제다. 이 책의 저자가 현대 문명 전반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삶의 방향과 목적도 없이 맹목적인 속도전을 치르고 있는 현대인을 위한 반성적 태도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인다면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 라이오넬 베스니(1946-1999)의 “우리는 아무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걸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선언적으로 요약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이 말은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

당신이 보는 대로 세상은 당신에게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당신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Blake, Complete Writings, Oxford, 1966, 663쪽) - P. 16

를 인용하며 삶의 예측 가능성과 기계적인 방법론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 비판이 비판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아전인수식 해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찰적 비판의 대안이 모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종교와 양립할 수 없는 과학의 대립이라는 관점은 아니지만 저자의 태도는 신비주의에 가깝다. 브레이크의 위대한 시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 많은 책에서 인용되어 식상하기까지 한 이 시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곰곰이 음미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 준다. 그래도 ‘삶은 기적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다.

한알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Complete Writings, 431쪽) - P.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