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살아남게 한 능력이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다 ➀신장의 염분 재흡수
조송현
승인 2017.05.12 17:52
업데이트 2017.05.13
인간을 살아남게 한 능력이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다 ➀신장의 염분 재흡수
뉴기니 섬 원주민한테 활쏘기를 배우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그는 1961년부터 이곳의 새를 관찰하며 진화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신장 177cm에 58kg이었습니다. 남들이 ‘와라바시’(젓가락의 일본말)라고 놀릴 정도로 야위었습니다. 엄청난 컴플렉스였습니다. 살이 찐 친구들을 부러워했습니다. 대학 때도 65kg을 넘지 못했습니다. 살 찌는 게 소원이라는 얘기도 한 적도 있습니다.
30대에 취직하고 결혼하니 체중이 ‘보통사람’ 정도로 불었습니다. 40대 말까지 직장생활하면서 엄청 술을 마셔댔는데도 20년간 75kg을 넘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이 ‘비만’과 ‘성인병’을 걱정할 때 ‘나는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자만하지 말라”는 친구들의 충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50대 중반이 되고, 체중이 80kg을 넘기면서 예전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현대인의 강령과도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답니다.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하라.’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짜게 먹지 말라.’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반발심도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애먼 자신의 몸에 대해서 말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이런 겁니다. ‘충분히 먹어주지 못해서 몸 네가 야위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런데 많이 먹어주는데 몸 네가 왜 불만이냐! 쓰고 남는 것은 버리면 될 게 아니냐?!’
뇌졸중의 원인이 되는 고혈압을 유발하는 소금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소금을 많이 섭취했을 경우 신체 대사에 필요한 적정 염분만 남기고 배출해버리면 될 텐데 왜 그러지 못하고 고혈압이 되도록 방치할까요? 당뇨를 일으키는 비만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김영사, 2016)은 이런 의문에 인류학적인 해답을 주었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와 ‘문명의 붕괴’로 너무나 잘 알려진 진화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이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의 여섯 번째 주제인 ‘건강하게 삶의 질을 유지하며 오래 사는 법’에서 염분 섭취와 고혈압 간의 관련성과 비만과 당뇨 간의 관련성에 대해 인류학적 분석을 제시합니다.
우선, 이번 글에서는 염분 섭취와 고혈압 간의 관계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염분이 뇌졸중의 원인 중의 하나인 고혈압의 주된 위험인자라는 사실은 많은 연구에서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염분 섭취와 무관한 이유로 고혈압에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사들은 염분민감성 고혈압과 염분비민감성 고혈압을 구분합니다.
그런데 염분민간성 고혈압도 염분 섭취만이 원인은 아닙니다. 똑같은 양의 염분을 섭취해도 상대적으로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높은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특정 유전인자가 ‘신장에 의한 염분의 재흡수를 높여준다’는 게 밝혀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깁니다. 왜 우리의 유전자는 신장을 통해 염분을 재흡수 하도록 할까요? 염분이 축적되면 고혈압과 뇌졸중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말입니다.
재레미 다이아몬드는 그 이유를 인류의 역사를 통해 추론합니다. 그는 1961년부터 호주 대륙 근처 뉴기니 섬을 드나들며 진화생물학을 연구해왔습니다. 뉴기니 사람들은 힘든 과정을 거쳐 소금을 얻는다고 합니다. 특정 식물 잎을 태운 재를 물에 넣고 희석시킨 후 가열해 수분을 증발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식입니다.
뉴기니 사람들이 염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미국인의 한 끼 식사에 포함된 염분량은 뉴기니 고원지대 사람들의 1년 염분 섭취량과 비슷하다고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뉴기니 사람들의 신장은 한 톨의 소금분자도 내버리지 않고 재흡수 하도록 진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단 뉴기니 사람들뿐이겠습니까? 고대부터 2, 3세기 전까지만 해도 소금은 바닷가를 제외한 전 세계 어디서나 귀한 생활필수품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신장은 염분 재흡수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진화했을 것이고, 염분 재흡수 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은 도태되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염분 재흡수 능력 덕택에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식탁에서 언제나 원하는 만큼의 소금을 뿌려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햄버거 하나에도 옛날 뉴기니 사람들의 한 달 치 염분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염분 과다 섭취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장의 염분 재흡수 기능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고혈압 위험을 높이는 데도 말입니다. 옛날에 우리를 살아남게 한 기능이 이젠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염분 재흡수 기능의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염분 재흡수 기능의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입니다. 이들은 미국에서 유독 염분민감성 고혈압의 발병 확률이 가장 높은 인구 집단입니다. 즉, 똑 같은 양의 염분을 섭취했는데도 백인이나 히스패닉 등 다른 집단에 비해 염분민감성 고혈압에 유독 잘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 의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추정을 내놓았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쿤타 킨테처럼 약 300년 전 아프리카에서 끌려왔습니다. 이들은 노예사냥꾼에게 붙잡혀 땡볕 아래 해안지역까지 끌려갔습니다. 땀을 엄청 흘려 염분을 상실했고, 이로 인해 적잖은 흑인들이 죽었을 겁니다. 이것은 약과에 불과했습니다. 노예선 바닥에 갇힌 흑인들은 수주일 동안 무더위와 싸우며 땀을 무진장 흘려야 했을 것입니다.
항해하는 동안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이질과 전염성 질병이었습니다. 이질은 설사를 유발하고, 이는 염분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결국 염분을 보존하거나 재흡수하는 기능이 뛰어나지 못한 흑인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염분 보존력과 재흡수력이 뛰어난 신장을 지닌 노예만이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그처럼 뛰어난 염분 재흡수 기능을 가진 흑인들의 후손입니다. 당연히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선조들을 살아남게 한 염분 재흡수 능력이 이제 자신들을 염분민감성 고혈압과 뇌졸중의 발병 빈도를 높이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모는 원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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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살아남게 한 능력이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다 ②식후인슐린 분비
조송현 조송현 승인 2017.05.13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을 UCLA 지리학 교수, 진화생물학 현장 연구가, 문화인류학 과련 저술가, 환경운동가로 소개하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개인 사이트
여러분은 감꽃이나 진달래꽃으로 주린 배를 달랜 적이 있으신가요? 연세가 50대 이상이고 시골에서 자랐다면 한 번쯤 그런 경험을 해보셨을 테지요. 그 시절 우리 몸은 배고픔을 잘 견뎌주었던 것 같습니다.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그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여러 전염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기 했지만요.
우리는 그런 시절을 어렵게 견디고 살아남았고, 먹을 게 풍족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많이 먹습니다. 좀 많이 먹으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열심히 일하는 것도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몸이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나쁘게 변하는 것입니다. 비만해지고 당뇨 같은 예전에 없던 병에 걸립니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음식물을 과다 섭취한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몸에게도 따져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음식물이 필요 이상으로 들어오면 적당히 버릴 것이지 왜 꾸역꾸역 지방으로 쌓아뒀느냐고요.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지방을 축적하지 않았다면 비만도 없고, 또 그로 인한 당뇨도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 글은 ‘우리 몸은 왜 필요 이상의 지방을 축적해 스스로 병을 유발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했고, 그 답을 진화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근작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김영사, 2016)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물론 그 해답은 진화론적·인류학적인 해석이지 실제 병리학적인 처방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태평양의 조그만 섬, 나우루(Nauru) 섬에 미크로네시아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섬은 면적이 21km² 정도로 부산 가덕도 크기와 비슷합니다. 주민들은 주로 어업과 농업으로 먹고 사는데 식량이 충분치 않아 자주 굶주렸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우루 섬을 점령한 일본군은 주민들을 투르크 섬으로 강제 이송해 강제노역을 시키면서 하루 250그램의 호박을 식량으로 주었습니다. 강제징집된 주민의 절반이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주민들은 나우루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우루 섬의 지반은 비료의 원료가 되는 인삼염 바위입니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포기하고 인산염 채굴 광산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연봉이 일인당 2만 달러 이상이었기 때문에 주민 모두 갑자기 부자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굶주렸던 주민들은 슈퍼마켓에서 온갖 식품을 사다 실컷 먹었고, 좁은 섬에서도 걷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 결과 불과 70년 만에 주민들, 즉 나우루공화국 국민은 태평양에서 가장 비만한 국민이 되었고, 당뇨의 유병률도 높아져 당뇨가 제1의 사망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20세 이상에서 3분의 1, 70세까지 생존한 소수의 나우루 주민 중에서는 70%가 당뇨 환자라고 합니다.
대대로 배고픔에 시달렸고 또 2차 대전 동안에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굶어죽다 살아난 나우루 섬 주민들이 이제 비만으로 인한 당뇨에 목숨을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슬픈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과 중국 인도에서도 음식 섭취량의 증가로 당뇨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제1의 당뇨환자 보유국 오명을 놓고 서로 다투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음식물 섭취량으로 따지면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이 평균적으로 중국과 인도보다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뇨 환자 비율은 훨씬 낮습니다. 이를테면, 부유한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경우, 당뇨 유병률은 대략 5~9%인데 반해 중국, 인도, 나우루, 뉴기니 등 생활이 풍족해진 비서구 나라들의 당뇨 유병률은 15~30%로 유럽과 미국보다 훨씬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같은 의문에 진화론적·인류학적 분석으로 해답을 추론합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당뇨병은 생활방식이나 유전에 의한 제2형 당뇨를 말합니다. 당뇨병은 인슐린과 관계가 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슐린은 공복과 식사 사이에 혈당을 지속적으로 조절하는 기저인슐린과 음식 섭취 후 급격히 높아진 혈당을 낮추는 식후인슐린으로 나뉩니다.
당뇨병은 물론 기저인슐린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식후인슐린이 기저인슐린의 기능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식후인슐린이 비만을 일으키는 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수많은 요인이 있지만요.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근래 풍족해진 비서구 국가들의 당뇨 유병률이 왜 유럽·미국보다 높은가?’라는 의문의 열쇠를 바로 식후인슐린에서 찾고 있습니다.
인슐린(식후인슐린)은 우리가 포식할 때 섭취하는 과도한 칼로리를 지방으로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멀리 수렵시대를 상상해보겠습니다. 원시인들이 거대한 맘모스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모처럼 찾아온 풍요로운 시기에 사람들은 마음껏 먹고 살을 찌워야 했을 것입니다. 곧 닥칠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때 식후인슐린이 많이 분비된다는 것은 많은 고기를 먹고 이를 곧바로 지방으로 저장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것이며, 그만큼 생존할 확률이 높았을 것입니다. 수렵시대를 지나 기근이 해결되지 않은 고대와 근대까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식후인슐린 분비량이 많다는 것, 다시 말해 섭취한 음식을 재빨리 지방으로 축적하는 능력은 인간에게 큰 이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덧 음식을 언제나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은 여전히 식후인슐린을 재빨리 많이 분비합니다. 남는 칼로리를 버리지 않고 지방으로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둡니다. 몸을 비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과도한 지방은 기저인슐린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합니다. 그 결과 당뇨병이 생기는 것이죠. 당뇨병은 사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고 심하면 합병증을 유발해 목숨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결국 수렵시대나 기근이 흔했던 시대에는 생존을 위한 능력이었던 ‘식후인슐린 분비 능력’이 식량이 풍족한 오늘날에는 쓸데없이 지방을 체내에 축적하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식후인슐린 분비량은 유럽인보다 나우루, 뉴기니, 호주 원주민이나 인도인 중국인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근래 풍족해진 비서구 국가들의 당뇨 유병률이 왜 부유한 유럽·미국보다 높은가?’라는 당초 의문에 대한 해답인 것입니다.
아직 의문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왜 유럽인의 식후인슐린 분비량이 줄었을까요?’ 해답은 유럽에서 1800년대 말 이전에 기근이 사라졌다는 데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식량이 넉넉해진 100년쯤 전에 당뇨병을 유행병처럼 앓았을 것이고, 식후인슐린을 왕성하게 분비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도태되었을 것이라는 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추론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식후인슐린을 적게 분비하는 사람들, 당뇨에 강한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들이 유럽인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