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인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개인적인 역사를 가지게 됨니다. 나는 감히 그것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모든 인간의 인격이 소중하다는 논리의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이 일기가 되고 인생이 역사가 되는 그러한 진솔한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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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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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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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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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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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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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유대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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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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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벌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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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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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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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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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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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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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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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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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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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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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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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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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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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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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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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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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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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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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30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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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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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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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편지] 가족의 눈물이 나를 암과 싸우게 했다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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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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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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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시에세이
가족의 눈물이 나를 암과 싸우게 했다
착한 사마리아인 증후군
최만섭 저
키메이커 출판
소장
출간 정보
2016.12.16 전자책 출간
듣기 기능
TTS(듣기) 지원
파일 정보
EPUB
약 2.3만 자
11.3MB
-
가족의 눈물이 나를 암과 싸우게 했다
작품 정보
작품 소개
목차
나는 2015년 3월 23일 출근길에 39도가 넘는 고열로 병원에 입원하여 엑스레이, 엠알아이, 시티, 패트, 피검사, 심전도 등 고열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수많은 검사를 받았다. 해열제로 열을 강제로 떨어뜨리면 발열 원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의사가 발열의 진원이 위에서 발견된 악성종양이라는 사실을 찾아낼 때까지 약 보름간을 온몸을 휘감고 있는 불덩이같이 뜨거운 열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 당시 나는 오십견으로 어깨가 마비되어서 일단 침대에 누우면 39도의 뜨거운 등과 매트리스가 밀착된 상태에서 몸을 뒤척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마치 붉은 불길 속에 갇힌 몸뚱이가 불길에 타들어 가는 것같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잠자리에 드는 것이 두려워서 휠체어에 앉아서 날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의사와 집사람이 억지로라도 잠을 자지 않으면 병이 악화할 것이라고 주의를 시키면서 침대에 누우라고 요구할 때마다 나는 휠체어에 앉아 침대에 누워있는 또 다른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환각에 빠져들곤 했다.
각종 검사를 한 후에 고열의 원인이 위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설사 내가 지금 죽는다 해도 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는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혹독한 고통을 겪은 암 환자들은 통증이 죽음보다 무섭다는 것을 깨닫는다. 암 병동에서는 치료를 포기하고 죽기로 했다가 통증 때문에 입원한 환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나는 2015년 4월 8일 위 절제 수술을 받은 후에 약 1년간 암과의 처절한 싸움을 치러야만 했다. 첫 번째 닥친 위기는 수술 후유증으로 폐에 물이 고여서 유발된 호흡 장애였다. 숨이 가빠질 때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나는 폐에 고인 물에 두 개의 호수를 연결하여 물을 몸 밖 물통으로 받아내는 포크테 일(PORK TALE)이라는 시술을 받았다. 부분 마취를 하고 갈비뼈 사이를 펀치로 구멍을 내듯이 공간을 만들 때마다 전신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고 두려웠다. 나는 퇴원 후에도 폐에 물이 차서 또 한 번 포크테일(PORK TALE) 시술을 받아야만 했다. 두 번째는 심장약 복용으로 인해 혈압이 65로 급격하게 내려가 화장실을 가다가 낡은 집채가 무너지듯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입원하여 심장약을 반으로 줄이고 나서야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다
암 병동의 분위기는 생각보다는 비교적 밝고 활기찼다. 신병 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과 교관을 연상케 했다. 팀장 의사를 필두로 2~3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오전 오후 한 차례씩 회진하는데, 그들의 눈은 상방 15도를 향했고 걸음걸이는 아주 힘차고 빨랐다. 자유롭게 살던 젊은이가 군대라는 규율이 엄격한 조직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두렵고 벅차지만, 교관이 시행하는 혹독한 훈련과정을 통하여 적을 무찌르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사기로 충만한 병사로 새로 태어나듯이 악성종양으로 죽음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젖어있던 환자들은 의사의 과학적인 치료과정을 통하여 암을 퇴치하고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거나 설사 악성종양을 원천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한다 해도 종양으로 발생한 부작용을 치료하면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낙천가로 다시 태어난다. 모든 인간은 죽음이라는 암을 앓고 있는 암 환자 아닌가? 다만 그 운명의 날을 알지 못할 뿐이지.
나는 환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부분 암 환자는 나처럼 마음이 여리고 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연 우리는 정말로 착한 사람들일까?
볼프강 슈미츠 바우어(Wolfgang Schmidbauer)는 조력자에 대한 이상적인 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취지로 쓴 문제작 ‘무력한 조력자’에서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남을 돕다가 급기야 조직활동에 중독되는 조력자들의 독특한 정신구조를 가리켜 조력자 증후군(helper syndrome)이라고 정의했다. 성직자,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심리사, 언어치료사, 교사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 대부분 남을 돕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조력자 증후군의 특징은 개인적 감정과 특성 때문이 아니라 관련 인물의 이상화된 상에 적응하려는 행동방식 때문에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의 이면에는, 억압되었기에 허기져서 거대한 자기애적 욕구를 일으키는, 깊은 자기애적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채기화 교수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부단한 성찰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살피고 스스로 위로하는 힘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 충고한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남을 돕는 직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은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조력자 증후군’이라는 정신구조를 가진 ‘약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비록 가난하지만 착하고 정의롭게 살았다고 자부하고 살았다. 적자에 허덕이는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 대표이사의 경영방침에 맞서기도 하였고 경영실적을 배가시키기 위하여 매일 날밤을 지새웠다. 또한, 박봉을 불평하는 능력 있는 직원을 데리고 있고 싶은 욕심에 내 월급의 일부를 사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나의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머리는 수긍하는데 가슴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소위 말하는 스트레스로 이어져 위암이라는 중병에 걸리게 되었다. 차체를 감당하기에 차량의 엔진 용량이 작어서 차량 자체가 파손된 격이 된 셈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최소공배수는 착할 선(善)의 사전적 의미인 ‘어질다 플러스 좋다’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성적(理性的)으로는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살고자 세상과 맞서지만, 감정적(感情的)으로는 이를 거부하여 발생하는 가슴앓이를 ‘착한 사마리아인 증후군’이라 부르고자 한다. 나는 나이 육십 대 중반이 돼서야 나 자신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 착한 사마리어인 증후군에 걸린 환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 증상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병원 수술대에 누워서 몸이 내게 수차례 보낸 위암 전조증상을 무시한 것에 대하여 뼈저린 후회를 했었다. 몸은 몇 번이고 면도날로 왼쪽과 오른쪽 가슴을 찔리는 듯한 격한 통증을 가하면서 내게 대화를 요청했지만 나는 이를 무시하고 약국에서 담에 바르는 파스를 사서 붙이고 동네 한의원에서 침과 뜸질 치료 만을 받는 등 종합검진을 외면하고 통증 완화를 위한 임시방편적인 치료만 받았다.
이제 나는 몸에 말을 건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지난밤 늦게 과식을 한 경우에는 “밤새도록 그 많은 음식물을 소화하느라고 고생 많았지? 나는 그것도 모르고 정신 놓고 잠이 들었었구나. 몸아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앞으로 주의할게!”라고 몸에 사과한다.
두 번째는 마음과의 대화이다. 몸이 많이 회복되어서 사회생활을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백방으로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60대 중반 나이에 직장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 세상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텔레비전으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보도를 볼 때마다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 몇 날 밤을 지새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어두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망상! 망상! 망상!” 이라고 속으로 크게 세 번을 외친 후에 정신을 차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망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탐진치(貪瞋癡, 욕심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 같은 망상이 발생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시냇가에 흙탕물같이 망상은 항상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흙탕물이 잤기를 기다리는 사람과 흙탕물 속에 빠져서 허우덕 대는 사람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깨끗한 정신으로 진상과 망상을 분별하면서 마음을 바라보고자 노력한다면 망상에 빠져들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세 번째는 매일 새벽에 ‘자존감(自尊感)’을 화두로 명상에 젖는 것이다. 행복이란 이웃집 담장에 올라가서 화려하고 부유한 친구의 위인전을 집필하는 것이 아니라 초라하고 가난한 내 인생의 자서전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끝으로 나의 졸작이 착한 사마리아인 증후군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나는 누구인가?”
1. 어머니.
도신 스님-불교 신문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서 도신 스님의 말씀을 들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고, 긴 세월 어머니를 그리워한 그의 애달픈 이별 이야기는 내 가슴 속에 숨어있던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끄집어내고야 말았다. 나같이 70이 넘은 노인의 어머니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 대한민국 질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내야만 했던 불행한 여인이다. 그래서 우리 같은 노인은 “어머니!”로 말문을 열 때마다 눈물이 앞선다."
도신 스님의 어머님은 소위 말해 팔자를 고치기 위해서 딸 셋을 해외로 입양 보내면서, 여덟 살 먹은 아들마저 숙부 집에 맡겼다. 논 다섯 마지기에 9명의 자식을 책임져야 했던 숙부는 나이 어린 조카를 보육원에 보내는 것보다는 절에 맡기는 것이 낫다는, 이모의 충고를 받아들여 1969년에 도신스님을 덕수총림의 수석사로 출가시켰다.
여덟 살에 어머니와 생이별을 한 어린 동자승의 소원은 부천 소사 터미널에서 헤어지면서 매일 저녁 찾아오겠다고 수없이 다짐한 어머니를 만나는 것이었다. 어둠이 깔리면 정신 줄 놓고 절 입구를 바라보는 동자승에게 주지 스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부르면, 어머님이 너를 보러 오실 것이다.”
몇 년간 주지 스님의 말씀 약속을 철저히 지켰지만, 어머니는 스님을 찾아오지 않았다.
주지 스님이 자신을 속였다는 의구심에서 이를 따져 물으니,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난 후에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덧붙이면 어머니를 반드시 만날 수 있다고 주지 스님이 답해 주셨다.
어머니와 헤어진 지 몇십 년 세월이 흘렀지만,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쌓여만 갔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져 갔다. 수도자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스님은 어머니의 평안을 위한 ‘지장천일기도’를 드려야만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어머니라는 무상(無常)을 뚫고 나가서야 비로소 주지 스님이 주신 화두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도신 스님에게 깨달음의 실마리를 제공한 무상(無常)을 절실하게 느끼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은 어머니와의 이별이 아니라 월정사에서 2년간 같이 수행한 도반 선배인 원혜 스님과의 작별이었다.
원혜 스님은 잠자리에서 오줌을 싸서 방을 같이 쓰는 도반들의 빈축을 사고 따돌림을 당했던 나이 어린 도신 스님을 친 무모처럼 돌봐주고 지켜준 고마운 은인이었다.
원혜 스님은 안거(安居)를 마치고 주지 스님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후에 기둥에 걸어 놓았던 걸망을 걸치면서 “부지런히 수행하여 다시 만날 때에는 훌륭한 스님이 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작별의 말을 건네고 도신 스님 곁을 떠났다.
원혜 스님이 남긴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 친근현선(親近賢善)- 나쁜 친구를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하라.’ 일 년 후에 도신 스님은 인편으로 원혜 스님의 열반 소식을 접했다.
어머니와의 이별로 맺힌 한을 미처 해결하지 못한 나이 어린 스님은 두 번째 닥친 이별 앞에서 망연자실하였고, 그와 인연을 맺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무상(無常)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나고 죽고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한없이 덧없는 것이다. 인연이 없으면 물질은 결코 만날 수 없다. 나라는 존재도 업보라는 원인과 번뇌라는 조건이 맞아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의 조합일 뿐이다.’
무상(無常)을 뼈저리게 느끼고 난 후에, 도신 스님의 이별이 없는 영원한 나를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고, 이는 ‘~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끝없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2. 현존 감.
명상과 정신 치료를 접목한 최훈동 정신과 전문의는 모든 환우를 가족처럼 돌보는 병원을 꿈꾸며 김포에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정신병원을 짓는 도중에 IMF가 터졌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 문은 열었지만, 적자가 쌓여가는 경영악화로, 부도를 맞아 가족과 지인들에게 빚을 떠넘겨야 하는 몹쓸 짓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몇 년 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위기에 직면하면, 참담한 현실에서 도피하기에 급급해진다. 술에 의존하여 현실을 망각하고 거리를 방황하다가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동안 등한히 했던 마음공부나 좀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당시 미얀마의 ‘우 자나카’ 스님이 천안 호두마을이란 곳에서 3주간 진행한 명상 수련에 참여했다. ‘우 자나카’ 스님의 수행 지도를 받으면서 남방 위파사나 수행에 매진하던 17일째에 그는 난생처음 부처님의 경건한 마음, ‘현존 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여기에 그의 감격스러운 고백을 소개하고자 한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현존 감이 밀려왔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완전한 느낌, 눈물이 쏟아지는데 한 3시간 동안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천근만근 쑤시고 아팠던 육체의 통증도 사라지고, 마음은 과거로도 미래로도 향하지 않고 온전히 현재에 머무르면서 마음이 순백색으로 정화되고, 즐겁고, 편안해졌습니다.”
나는 그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사유와 숙고를 거쳐서 흘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를 경건하게 읽어 내려갔다.
“부도 위기의 병원과 산더미 같은 빚은 내가 아니다. 사람들은 경험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해석하여 판단한 후에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내어서 스스로 고통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어리석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이 아픈 기억은 아픈 기억일 뿐, 어떤 기억도 내가 아니다. 과거의 경험은 이미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나는 누구인가?
그리운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부지런함이 몸에 밴 분이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밭으로 나가 해가 져서 어둠이 일손이 멈추게 할 때까지 씨를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고 밭고랑을 정리하는 등, 정신없이 농사일에 몰두하셨다.
어머니는 고된 하루를 보낸 후에 집에 돌아와서도 밀린 집안일을 당신이 직접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깐깐하고 고집이 센 분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어머니의 일 처리 능력이 빠르고 완벽해서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머니 눈에 차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그럴듯한 핑곗거리에 기대어서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어머니에게 떠맡겨버리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이르렀다.
성인이 된 후에 자식들은 어머니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어머니! 인제 그만 쉬엄쉬엄하세요. 그러다가 지쳐서 쓰러지세요!”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항상 이렇게 답변하셨다 “일이 보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냐? 걱정 마라. 나는 일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불교에서는 이미 전생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했기 때문에 배우지 않아도 나면서부터 도(道)를 깨우친 사람을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전생에 재주가 많고 힘이 장사인 장정으로 사셨던 때문에 여자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육체노동일을 기쁜 마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해 본다. 어머니는 평생 가난하고 초라한 생을 사셨지만, 단 한 번도 좌절하거나 당신의 팔자를 비관하지 않았다.
어머니 눈에는 평생 일거리가 보였고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일에 몰두하다가 행복한 생을 마감하셨다.
나는 70살이 넘어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인간이 타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확신이 얼마나 큰 오만인가를 깨달았다. 행복은 본인 스스로 찾아야 한다. 자기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을 일컬어 도인(道人) 혹은 선지식이라고 부른다. 도(道)의 경지가 높아지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우선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몸속에 사는 ‘나’라는 실체가 재물에 대한 욕심과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사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인간을 차별하고 자기보다 가난하고 지적 능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자만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악성종양의 덩어리로 보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지금까지‘나’라고 불렀던 놈을 제거하여 몸 밖으로 내 던져 버리게 된다.
이렇게 속이 비워진 상태를 일컬어 마음을 비웠다고 하는 것이며, 공(空)의 원리를 깨쳐서 자타의 경계를 넘었다고 하는 것이다.
수행이란 호흡 운동을 통하여 마음의 눈으로 신체적인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오장육부와 가슴 속에 숨어 사는 ‘나’를 선명하게 보고 정밀하게 그리는 훈련이다. 국선도에서는 수행의 한 단계로 ‘의식집중훈련’을 실행하는데, 이를 통하여 자신의 오장육부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음미하는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실낱같이 가는 숨을 천천히 길게 들이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차분하게 정화된 마음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푸른빛 조각들을 내 몸속으로 초대하여, 내 뇌와 오장육부의 구석구석을 유람시키는 훈련을 약 10년 전부터 실천하고 있다.
나는 이 밝은 기(氣) 덩어리를 가슴 중앙에 위치한 폐와 심장으로 안내한 후에 좌측의 위장과 췌장, 우측의 간과 쓸개를 걸쳐서 아래쪽의 작은창자와 큰창자 그리고 신장을 지나 단전으로 유도하면서 기(氣)의 빛줄기가 각각의 장기 형태를 선명하게 비추어 줄 때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보기 위해서는 좌정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삼매에 드는 수행을 실천해야만 한다. 상당한 집중력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하는 이 수행의 최대 방해꾼은 잡념이며 이를 퇴치하는데 많은 수행인 들이 성공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를 한다.
국선도 연맹 총재인 진목 법사는 수행의 최대 방해꾼이 잡념을 이기는 방법을 칠흑 같은 동굴 속을 탐험하는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동굴탐험을 경험한 수행자는 동굴 속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동굴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강력한 희망을 주는 곳, 빛줄기가 희미하게 비추는 지점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빛줄기를 따라가서 결국 동굴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질흙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과 인내심을 가지고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잡념의 몇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를 미리 알고서 수행에 임하면 마치 처음 가는 여행지를 웹 지도를 가지고 찾아가는 것과 같이 어렵지 않게 삼매에 들 수가 있다.
누구나 좌정하여 명상에 들면 자연스럽게 잡념과 망상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이른바 잡념과 망상에도 일종의 생노병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경천(驚天)을 당한 과거의 악몽에서 시작해서 둘째는 가까운 과거에서 시작해서 아득히 먼 과거에 가슴 아팠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하나한 떠오른다.
만일 우리가 과거의 따뜻한 경험 까지 돌아가서 그 앞에 머무른 경험이 있다면, 이는 동굴에서 빛줄기라는 희망을 만난것과 같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하여 터득하게 되었다.
수행은 정화된 마음을 가지고 푸른 뜰에 앉아서 헤드 셋 기기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보는 것에 비유된다. 물고기는 맑고 깨끗한 물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가끔 수행을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는 생존할 수 가 없다.
나는 항상 현재에 존재하면서 기기 속에서 보여주는 가상현실을 감상한다. 이 현대적 기기는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선험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좌선하고 몇 십 년 전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같이 배추를 수확하고, 부처님 나라에 들어서서 감사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나의 잡념과 망상이 단편소설에서 장편소설로 그 줄거리가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언젠가는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4. 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배치하고 공유하는 문화 전도사!
법정 스님은 자신이 출가를 결심한 것은 부처님의 말씀하신 생로병사를 초월하기 위해서도 불쌍한 중생을 깨우치게 하기위해서도 아니며, 그저 나답게, 법정답게 살기위해서 집을 떠났다고 고백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끊임없는 수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처음으로 심각하게 고민하던 청소년 시기에 인간은 죽음 앞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자기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에게 목숨이 고귀한 것은 언젠가는 맞이해야 하는 죽음 때문이며, 따라서 잘 산다는 의미는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일 것이다. 생이 아름답다면 죽음 또한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청소년 시절에 나는 내가 죽으면 밤하늘의 별이 된다고 굳게 믿었다. 한편으로 죽음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사실이 내게는 견디기 어려운 궁금증을 유발하였고, 이를 해결하게 위하여 죽음을 경험해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또한 죽음으로서 들어서게 되는 사후 세계에 대한 견디기 힘든 궁금증은 죽음에 대한 엄청난 공포로 변해갔다.
나는 죽음에 대한 진지하고 처절한 고백을 진지한 자세로서 써내려갔다. 나의 글쓰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게 있어서 글 쓰는 작업은 문학이 라기 보다는 내 인생의 독백이었다.
내가 이러한 죽음의 공표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는 내 자신의 강력한 의지가 아니라 불혹이 지난 어느 날 마치 이미 예정되었던 만남처럼 내게 다가왔다. 폐병 치료를 포기하고 시골 고향으로 돌아와서 맑은 공기와 정겨운 이웃들과 함께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 친척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문득 공자님이 말씀하신 지(知)에 대한 정의가 떠올랐다.
논어 옹야편 20장 원문에 공자의 제자 번지(樊遲)가 “지(知)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자기(自己) 자신(自身)이 해야 할 일에 힘쓰고 귀(鬼)나 신(神)은 공경(恭敬)하되 멀리하는 것을 지(知)라 말할 수 있다.”라고 답하였다.
설사 죽음을 경건하게 받아들인다 해도, 내가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인간의 도리를 포기한다면, 어떻게 인생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번지 점프대에 서면 눈 딱 감고 뛰어내리는 것이 상책이다. 많은 생각은 고통스러운 인생의 길이를 연장할 뿐이다. 나는 이날의 감격을 기록한 수필인 ‘경원(敬遠)’으로 2006년에 등단을 했고, 드디어 죽음의 공포와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
나는 70이 넘어서야 나의 진짜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창작에 몰두할 때보다는 명상에 잠길 때가 더 행복한 수행자이며, 진솔한 삶을 이야기할 때보다는 타인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듣고 이내 감복하여 행복에 빠지는 한 작가의 열렬 독자이다.
나는 집에서 쓰는 일기와 회사에서 사용하는 업무 일지를 합해놓은 형태로 쓰인 글을 선호하는데, 회사에서도 ‘업무일지’ 대신 ‘행복 일지’를 기록하고 있다.
나는 ‘수필 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주로 신문 등에서 이러한 형태로 쓰인 글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글이라고 묵시적으로 동의할 것으로 추측되는 글들을 선택하여 블로그에 게재하고, 그중 에서 한두 개를 정선하여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창 카카오톡에 올리는 일을 수년간 지속하고 있다. 아름다움을 빨리 전달해 주고 싶은 조바심에 이른 새벽에 내가 사랑하는 시인의 시를 올려서 핀잔을 받은 적도 있다.
나는 또한 ‘브런치 작가’로서 '브런치 스토리'에 실린 모든 글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여기에 실린 글의 대부분은 자신의 느낌을 미사여구(美辭麗句)로 포장하지 않고 순수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좋은 글들이어서, 천상병 시인의 말대로 읽어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2006년 이후에 나는 작가가 아닌 아름다운 글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는 문화 전도사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불교 수행 원리는 신해행증(信解行證), 먼저 진리의 法을 믿고[信], 이어서 그 法의 의미를 잘 이해하며[解], 그에 따른 실천 수행을 철저히 닦아 [行], 마침내 궁극의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證]’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첫째로 단계마다 선지식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신심(信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훈동 정신과 전문의가 현존 감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서양 철학을 공부한 현각 스님 같은 분의 설법이 소위 말해서 깨달았다는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선 문답식 교리보다는 가슴에 와닿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현각 스님이 신심(信心)에 대한 설명이 명확한 논리성에 근거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김정호 덕성여대 심리학 교수는 ‘수행’이라는 상위 개념을 명상(쉰다), 마음 챙김(본다) 그리고 긍정심리(쓴다)로 구분하고, 개인적으로는 긍정 심리(쓴다)에 비중을 많이 둔다고 한다. 이는 수행을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방법에 대한 아주 좋은 해답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수행이 인간의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는 본질적인 목적에 대한 답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70이 넘어서 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보았다. 이른 새벽에, 호흡운동에 매진하던 중에 갑자기 눈앞에 삼매에 빠진 40대 남자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깊게 파인 눈은 여름 햇살을 받아서 진한 회색으로 빛나고, 우뚝 선 커다란 코의 그림자는 쓸쓸한 남자의 얼굴을 진한 검정으로 채우고 있었다.
검정 연필심으로 진하게 칠해서 눈 과 코의 깊이와 높이를 분명하게 표현한 미완성 흑백 초상화를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그 동굴같이 깊은 눈 속 세상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보았다.
나는 하늘에 자리를 잡은 안개와 구름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형체를 알 수 없었던 ‘나’를 확연하게 볼 수 있는 순간, “나는 나를 보았다”라고 크게 외칠 수 있다는 강력한 희망을 느꼈으며, 이는 내 생존 의지로 이어지고 있다.
혹자는 “수행과 현실적인 성취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나 같은 경우, 인생 대부분을 주한미군 중소하도급업체에서 근무했다. 흔히 일반회사 경영진과 종업원의 관계를 ‘갑’과 ‘을’에 비유하는 데 반하여 우리 업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병’들의 집합이라고 불릴 만큼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먹고살기 위해서 회사에 출근해야만 한다. 또한 지방에 작은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일 만큼 가난한 노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는 마음이 부자인 진짜 부자다. 나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근무 중이며, 젊은이 못지않은 업무 능력으로 영어 문서를 작성하고 주한미군 및 주한미국대사관 입찰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약 한 시간 수행한 힘을 가지고 8시간 근무를 견디고 있다.
인간은 한없이 무상(無常)한 존재다. 인간은 이러한 무상(無常)을 이타심(利他心)과 공공선(公共善)으로 깨뜨리려야 만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생성되는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게 만들어진 위대한 생명체이다.
이러한 존재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매일 명상에 드는 사람은 평생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내가 나이가 들어 깨달은 새로운 사실은 높은 지위나 많은 재산이 인간의 정신적인 건강을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부모는 금지옥엽으로 키운 여식을 출가시키는 날에는 “시집가서 잘 살아야 한다!”라는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준다. 그 잘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반드시 부자가 되라는 단순한 뜻은 아닐 것이다.
자식이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이며, 이는 정신적인 건강과 신체적인 건강 그리고 건전한 경제력 등이 조화로운 조합을 이루는 평화로운 집안을 이야기한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각박한 이 사회에서 생존하고 성공하기 위하여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경쟁력도 이러한 부모의 진심 어린 충고와 인간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데 두어야 하며, 그 출발점이 매일 새벽에 좌선하여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눈의 방향을 바꾸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최만섭-시인.수필가
당신도 부자로 살 수 있다
최만섭 수필가
얼마 전 집사람이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고 왔다.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너는 어떻게 그렇게도 남편 복이 많냐?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라면서 부러워했다고 하면서 양손으로 나의 오른손을 꼭 움켜쥐었다. 나는 결혼한 지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나와 같이 산 세월이 정말로 행복했다는 고백에 감격(?)하면서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남편들은 공무원, 선생 및 은행원 등으로 안정된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하여 연금 등으로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영위하고 있어서, 의정부 변두리의 작은 아파트가 전 재산이 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부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젊은 시절부터 여분의 돈을 착실하게 저축하고 부동산 등에 투자하여 상당한 재산을 축적해 놓은 상태라 일을 놓아도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하루 종일 소일거리를 찾거나 취미생활을 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반면에 나는 영세 중소기업을 전전하면서 박봉에 시달렸기 때문에 저축은 고사하고 인생 말년까지 생계비를 벌어야만 하는 초라한 월급쟁이로 살고 있다.
그녀들이 집사람을 부러워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단 하나 내가 소위 말해서 집에서 아내가 해준 세끼 밥을 얻어먹는 삼식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출퇴근으로 아침에 헤어졌다가 저녁에 다시 만나던 일상에 수십 년간 길든 부부가 온종일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떼야 하는 것은 매우 짜증나고 곤혹스러운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특히 나 같은 70대 노인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혼자 힘으로 일상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 만큼 건강해야 만이 늙은이가 아닌 사람대접을 받으면서 행복한 말년을 기약할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한다.
그러면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이 생기면 우리는 행복해 질까? 미국 NBC 방송에 따르면, 연간 가구 소득이 12만 3천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억 6천만 원 이하인 가구에서는 적어도 6개월간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소비와 빈곤, 복지에 대한 분석으로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미 프린스턴대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연 소득이 7만 5,000달러 이상인 사람이 실제로 느끼는 행복은 소득과 크게 상관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나는 경험을 통하여 만일 우리가 회사에서 업무 일지를 기록하듯이 매일 행복일지를 쓴다면, 비록 소득이 적어도 충분히 부자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60대 중반에 미국 대사관 경비로 취직하여 근무한 경험이 있다. 대부분 한국 군대에서 정년퇴직한 영관 장교와 부사관 출신이었는데, 이분들은 모두 군인연금 수혜자다. 굳이 돈벌이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음에도, 왜 ? 밤과 낮을 바꾸어 생활해야 하므로 근무할 때마다 시차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경비 생활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번을 망설이고 나서 용기를 내어서 동료에게 그 이유를 물었는데, 그는 의외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형님 우리가 받는 급료는 20억 금융자산의 가진 부자들의 매달 받는 은행 이자와 같습니다. 우린 모두 20억 자산을 가진 부자입니다. 나는 부자로 살고자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나의 월간 수령액이 야간, 휴일 수당 등을 합하여 200~300만 원 사이였는데, 나는 그의 주장의 진위를 단 한 번도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이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믿었다. 몇 년간 위암 치료로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을 생활비로 다 소비하고 나니, 단돈 10,000원이 아쉬웠다. 특히 병마와 실직으로 인하여 나는 매우 가난해졌는데, 보험이 직장에서 개인으로 전환되다 보니 보험료는 더 올라서 생활비가 아주 부족했다. 그 당시 나의 소망은 백만 원의 월급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을 구하는 것이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어렵게 구한 주한 미국대사관 경비원의 급료를 받고 나는 정말로 큰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지금은 비록 미 미 대사관의 다른 용역업체로 직장을 옮겨 근무하고 있지만, 나는 그의 부자 논리를 신봉한 덕분에 아직도 5년째 부자로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또한 나는 가난한 예술가로 살고자 한 어제의 나를 강물에 던져 버리고 부유한 수행자로 살고자 매일 마음을 다지고 있다.
지난날의 나는 알지 못할 두려움에 쫓기며 살아왔다. “평생 나를 쫓아다니는 두려움의 정체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결코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가난과 빈곤이 아니며 모든 인간에게 어렴풋이 느껴지는 막연한 공포 또한 아니라는 데에는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단지 내 마음의 분별이 만들어 낸 탐진치(貪瞋癡)일 뿐이며,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신(神)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본성(本性)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적지 않은 고뇌를 감내해야만 했다.
나는 수많은 번뇌의 강을 건너고 나서야 비로소 내 안에 살아계시는 신(神), 부자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부처님의 나라에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는 언어가 내뿜는 단순하고 명쾌한 느낌에 현혹되어 그 언어의 진의를 망각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삶은 죽음의 상대적 단어이며,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나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맹자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더 바람직한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어서 훌륭한 인재로 키우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소중한 아들을 나쁜 교육환경에서 벗어나게 해서 행복한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하고자 세 번씩이나 이삿짐을 쌌을 것으로 판단한다.
삶의 지혜는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그의 정직한 마음과 진솔한 경험을 탐구할 때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것이다.
부자는 빈자의 상대적 의미이다. 따라서 가난의 원인을 제거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가 있다. 불교에서는 가난과 질병을 각각 탐심(貪心)과 진심(瞋心)이 만들어 낸 분별 망상으로 본다. 우리 주위에는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우환이 겹쳐서 가난해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세상 원리로는 도저히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또한 치료 불가 진단을 받은 말기 암 환자에게 이 세상의 의술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탐(貪)-욕심-가난의 원인
진(瞋)-성냄-질병의 원인
치(癡)-자만 심-재앙의 원인
그러나 질병의 원인을 진심(瞋心)에서 가난의 원인을 탐심(瞋心)에서 찾는다면, 우리는 마음공부를 통해서 건강한 부자로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가 있다. 일체유심조라고 했다. 인간은 구족(具足)-모든 것을 충분히 갖추어진 부처님과 같은 존재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모든 인간은 부자로서 사는 삶이 시작되고, 그 믿음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인생이 행복해지며 세상만사가 잘 풀려나가는 것이 하늘의 섭리이다.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노랗게 물들어 가는 가을 들판을 달린다. 활짝 열린 온몸의 피부 세포로 들이닥친 싸늘한 가을바람이 가슴 속 오장육부를 씻어내고 머릿속 망상을 하늘나라로 쫓아낼 때 나의 거친 숨결이 욕심과 조바심을 삼켜버리는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하면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만일 그대가 뛰는 걸음을 스스로 멈추고 거울 앞에 서서 적나라한 그대의 모습인 성리(性理)를 볼 수 있다면, 그대는 천상천하(天上天下) 제일 부자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출처] 당신도 부자로 살 수 있다.|작성자 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