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들통문35-016] [이정배 교수님 글 펌-사진추가]
1. 며칠 전 <<동학과 서학>>출판모임이 100여분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몇몇 선생님들을 통해 이처럼 진지하고 열성적인 북토크를 근자에 모처럼 경험했다는 말씀을 들었네요. 부산,전주, 포천, 춘천 등지에서도 먼길 마다 않고 발걸음 하셨습니다. 개신교신학자들은 물론 가톨릭, 유교, 동학 천도교 측 학자들도 함께해 주셨지요. 몇몇 시인들께서도 토론에 참여해주셨습니다. 인사를나누지 못한 분들도 상당수 계신데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2. 제 삶 여정에 계획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햇수로 3년전부터 동학 관련 책을 읽게 되었고 <창작과 비평>지에 "기독교의 개벽적 전회"란 글을 시작으로하여 <<역사유비로서의 개벽신학>>을 출간했고 이어서 여럿이 함께한 이번 책 <<동학과 서학>>을 펴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창비>에서 주관하는 공동저술 한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8인이 함께 쓴 <<동학과 서학>>에 대한 제 자신의 소감을 정리하고자 며칠 벼르다 이 순간을 맞았습니다. 아시는 대로 이 책은 동학관련 출판사<<모시는 사람들>>의 제안을 받아 <<한국信연구소>>가 기획하여 엮었습니다. 실린 8편 글을 읽으면서 객관적으로 위 책에 대한 소감을 짧게나마 적어 보려합니다.
3. 책의 부제- 이해와 관점의 전위와 변신-가 적시하듯 동학과 서학(기독교)을 이전과 다른방식으로 만나게 할 작정이었습니다. 모든 글이 그렇지는 않았으나 목표 팔부능선에는 도달했다 싶습니다.
동학을 유학(성리학)과 서학의 바탕에서 고유성을 인정하되 그것을 다시 信學으로 전개시킨 창조적 글을 접할수 있어 좋았습니다. 동학의 至氣가 성리학의 '理', 최한기의 '氣', 정약용의 '天'과 어떻게 변별되는지를 잘 정리한 글입니다. 개화와 수구를 넘어선 개벽의 의미를 '토착적 근대'가 아닌 '근대이후'로 살핀 것 또한 부제의 뜻과 부합합니다.
4. 이 책 2부에는 수운의 종교체험을 기독교 서구에서 홀대받던 신비주의의 차원에서 서술한 글들이 모여 있습니다. 유대교의 핫시디즘을 비롯하여 엑카르트의 신비주의 그리고 조지폭스의 퀘이커 신비주의와의 대화가 수운(水雲) 최제우를 이해하는 전거가 된것입니다. 이 역시 지금껏 논의 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입니다. 이들 신비주의를 성육신 신앙과 연계시켜 영성과 사회(역사)의 관계를 역설한 것에 마음이 끌립니다.
5. 다음 장에는 기독교의 주요 교리를 동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글들이 실렸습니다. 공동체성(가족), 종말론 그리고 하느님나라 비전등이 그것입니다. 예수와 수운을 통해 공동체 이해가 전복되었음을 밝혔으며 오심(종말)이 곧 모심(侍天主)인 것을 강조했고 수운을 통해 신국이 포스트 휴먼 차원으로 확장될 수있다는 논의입니다. 어느 글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어 읽는 내내 설레는 마음 한가득입니다.
마지막 글은 동학을 '잊힌 神'의 재발견이란 차원에서 접근했습니다. 유불선을 품되 <<천부경>>까지 소급시켜 동학을 한국 사상사 속에서 살핀 글입니다. 기독교 사상가로서 이런 생각을-비록 의식하지는 못했으나- 확장시킨 것이 多夕의 '바탈'사상이었고 '역사유비'를 기초한 李信의 '영의 신학'이라 생각했습니다. 세개의 공- 空, 公, 共- 개념으로 동학의 개벽사상을 설명했고 기독교 이후, 인간세 이후 시대의 담론인 것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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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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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信연구소 오늘, 25.02.18. 화>
-[동학과 서학]저자초청 북토크를 마치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원근각처에서 와주셨습니다.
모두가 오늘의 엄중한 상황에서 정말 다시 참 인간다운 공동체 마련의 길이 어디에 있을까 깊이 찾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信연구소와 공동주최하고 모두의 인사를 해주신 박길수 대표님과 그 짝이신 소경희 편집장님,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진행을 맡아주신 김정숙 교수님, 멀리서 기타와 함께 오셔서 의미깊은 두노래를 선사하신 전기호 목사님, 이번 모임 장소이기도 했던 공덕감리교회의 담임 목사님으로서 책임 발제를 해주신 최대광 목사님, 평화학의 개척자 이찬수 박사님, 그리고 책임 질문을 선도하신 김응교 교수님, 저와 더불어 한국信연구소를 이끄시는 짝꿍 이정배 교수님!
모두 수고가 크셨고 감사드립니다. 공덕교회의 여신도들께서 좋은차와 커피를 마련해 주셨고 자리 정리와 사진 찍는 일까지 해주셨습니다.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또 사랑하는 동료 여신협의 강현미 대표님과 최은영 삼총님, 진미리 박사님이 꽃다발과 함께 오셨고, 가톨릭 동료 권영파 박사님은 맛있는 빵과 과자를 한보따리 들고 오셔서 간식을 풍성히 채워 주셨습니다. 우리의 오랜 동반자 명작 출판사의 고은경 선생님과 동료분도 오셨습니다.
유교 쪽에서는 이번에도 안동 도산서원 참공부 모임의 김병일 원장님이 아름다운 축하난을 보내주셨고, 그 멤버이신 한국 최고의 퇴계학자 이광호 교수님과 황상희 선생님이 자리해 주셨습니다. 또 최근에 <주역의 눈>이라는 책을 내신 한국 주역학회 회장 이선경 선생님도 오셨습니다.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민족종교를 공부하시는 분들도 웹자보를 보고 오셨고, 가톨릭 영성철학자 이향만 교수님, 멀리 창원에서 올라오신 김유철 시인님은 기차 시간 때문에 식사도 못하고 가셨습니다.
더불어 한국信연구소 모임을 항상 지지해 주시는 박정규 교수님, 조헌정 목사님, 이송우 시인님, 하태혁 목사님, 홍만조 목사님, 안광덕 목사님, 임덕수 교수님, 김오성 목사님, 조재형 교수님, 임경철 목사님, 최범철 선생님, 복간 사상계의 장원 선생님과 두분의 위원님, 씨알 수례단의 김덕영 단장님과 동료분들, 여러 신학대학의 대학원생, 연세 원주캠퍼스 교목님 등, 제가 과문해서 미처 들지 못한 분들이 100여분의 많은 분들이 모이셨습니다. 추운 날씨의 참석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녁식사자리로 옮기는 바람에 전체 사진도 못 찍었습니다.
제가 모두 들지 못하는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또한 마지막 토론 시간에 혼란스러웠던 저의 답변을 매우 송구하게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다시 한국信學의 길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 글의 요약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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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성 논의 속의 조선 유학과 동학 그리고 信學>
오늘 인류세의 위기 상황에서 외부 또는 저 하늘 위에서 절대자로서, 가부장으로서 군림하고, 지휘하고, 명령하던 서구 기독교 神의 시대는 끝나가는 것 같지만, 아직도 그 상에 매달려서 그 모양대로 세상을 통치하고, 여성을 억누르고 자연을 착취하고, 공동체를 자기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종교인이나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조선의 유학과 서학, 그리고 그 응전으로서의 동학을 돌아보면서 한국 信學이 믿음의 새길을 찾고자합니다. 그것을 넓은 의미의 한국사상사의 길을 다지는일이라고 보고 그 과정을 간략하게 다음으로 정리 보았습니다:
1. 오늘 인류 문명의 근대성(modernity) 논의에서, 한국信學은 조선시대를 보통 서양학자들이나 우리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근대(modern era) 전의 '중세'(middle age)라고 하지않고 조선 고유의 '근대'였다고 주장합니다.
2. 그런 의미에서 이후 동학을 그 서양적 근대에 기댄 해석인 '토착적 근대'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서양의 근대도 함께 포괄해서 인류 근대의 한계를 한국적으로 넘는 '포스트 근대(post modern)임을 주창합니다.
3. 정다산 선생은 유학자로서 서학을 만나서 조선 유학을 선진유학과 서학의 두 축을 기본으로 하여 개신해서 하나의 고유한 유학적 신학(神學)으로 재구성해내고자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4. 최수운 선생의 동학은 그러나 그러한 정다산의 서학적 유학도 온전히 넘지못한 근대의 사각지대, 특히 주체에의 함몰을 비판하며 그에 대한 응답으로 다시 개벽의 무위이화(無爲而化)의 동학을 창도하셨다고 봅니다. 즉 서학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결국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 자아중심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5. 이러한 근대성 논의에서 서구적 근대성 개념을 가지고 한국사나 조선유학, 동학 등을 평가하는 것을 세차게 비판하는 도올 김용옥 선생은 특히 조선 말 최한기 등에게서의 氣學을 통해서 동학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학적 동학 이해는 자칫하면 동학을 하나의 유물적 과학론으로 환원시킬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저는 동학을 기학(氣學)이 아닌 리기(理氣) 불이(不二)의 리학(理學)이나 영학(靈學)으로 보고자 합니다.
6. 그것이 바로 한국 信學의 길이라고 여깁니다. 그 길은 그래서 서학의 神學을 넘고, 동학의 氣學이나 天學을 넘어서 초월을 더욱더 이 땅의 내면과 여기 지금(氣)으로 모셔오면서도 지극히 그 초월(理)을 경외하는 리기(理氣)불이의 방식입니다.
7. 그것은 여기 이곳의 모든 차이와 다름의 경계를 넘어서 보다 근본적이고 넖은 보편의 근거라고 여기는 '언어'와 '사유'를 만물과의 관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서 시작하려는 일종의 실학(實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8. 그 실학인 信學을 이끄는 세 원리를 저는 생리(生理), 진리(眞理), 실리(實理)의 세가지로 제안합니다. 이것은 최수운 선생 도의 집결인 誠,敬,信의 언어 중 마지막 信을 잡아 이으면서 그 信의 구체적인 내용 원리를 더욱 밝히려는 것입니다.
9. 이제 마지막으로 이 보편의 학인 신학(信學)을 오늘 포스트 모던 시대 만사와 만물, 동서 인류 모두의 보편이 된 양자역학 등의 언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봅니다:
"이것을 오늘의 생명과학적 보편의 언어로 말해 보면, '생물학적 정보[理]가 물질[氣] 속에 현시되는 것은 맞지만, 그 정보가 물질에 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에서, 그리고 또한 어느 한 주체, 또다시 양자역학으로 말하면, '양자계(이를 테면 원자 하나)를 측정이나 관찰을 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 정밀한 수학적 법칙에 따라 진화하지만, 그 계가 측정 장치와 엮여서 어떤 양(예를 들면 원자의 에너지)에 대한 측정이 시작되면, 즉 그 안에서 '신(信)'이 작동하고 개입하면, 지금까지 죽어있고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된 대상이 살아 있고, 생동하고, 역할을 하는 '산 존재(vibrant being)라는 것을 생생하게 깨닫도록 하는 '배움(學)'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인간의 의식을 포함해서 만물을 살아 있는 '영(靈)'으로 아는 일이고, 만물 안에 '천주(天主)'가 내재해 있다는 것(侍天主)'를 깨닫는 일이며, 그러나 그 인식의 시작점과 계기가 인간의 믿음, 상대에 관한 관심과 신뢰, 선한 말이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이은선 외, <동학과 서학>, 89쪽)
10. 한국 信學은 氣學과 天學을 넘어 그 사이(中, between), 또는 너머(post)의 길을 가고자하는 참 實學을 지향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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