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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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아메리 (지은이),김희상 (옮긴이)돌베개20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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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고의 책 : 기억할 책, 함께할 책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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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철학 주간 44위, 인문학 top100 1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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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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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늙어감의 불가피한 인간 실존과 운명을 도저하게 사유한다. 이 책이 질문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 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늙어감이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아낸 주관적 현실’의 차원에서 다룬다.
저자 장 아메리는 철학과 문학 텍스트에서 길어올린 사유를 씨줄과 날줄 삼아 늙어감의 진실에 한치의 타협도 없이 접근한다. 『늙어감에 대하여』는 늙어감의 현실에 직면하기 시작한 중장년층에게는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남아 있는 생을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젊은 독자에게는 그들 앞에 놓인 삶의 소중함과 존엄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목차
초판 서문―저항과 체념의 모순을 탐색하는 여정
4판 서문―늙어감, 그 지속의 현상
살아 있음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
속절없이 흘러버린 세월
시간, 그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허무
측량할 길 없는 시간의 상대성
우리는 늙어가며 시간을 발견한다
시간의 무게와 죽음
다시는 오지 않으리
시간 속에서 나는 홀로 있다
낯설어 보이는 자기 자신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닌 나
노화, 세계의 상실 또는 감옥이 된 몸
나는 누구이며, 내가 아닌 나는 또 누구인가
낮과 밤이 여명 속에서 맞물리듯이
타인의 시선
사회적 연령, 타인의 시선으로 정의되는 나
소유냐 존재냐
저항과 체념의 모순에 직면하기
더는 알 수 없는 세상
세상으로부터의 소외
문화적 노화
세상 이해의 불가능성과 가능성, 그 모순에 저항하기
죽어가며 살아가기
죽어감조차 평등하지 않다
죽음의 기이한 불가사의
죽음의 부조리,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보다 죽어간다는 게 두렵다
죽음과의 타협
위로가 아닌 진실을
옮긴이의 말―존엄으로 빛나는 삶을 원한다면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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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50 살아낸 시간, 그것은 그의 재산이자 그의 독특함 자체다.
그러나 바로 이 살아낸 시간, 자신의 자아를 규정해주는 살아낸 시간 탓에 우리는 끊임없이 속임을 당한다. - Blue
P. 110 소유가 가지는 강요의 힘은 무서울 정도로 크다. 어떤 개인의 소유 혹은 시장 가치는 그만큼 이 개인을 더 순종하게 만든다. - Blue
내가 다루고자하는 물음은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 - gaudium
P. 23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시간은 물리적 시간이 아니다. 이둘은 전혀 사정이 다르다. 이 글에서 말하는 시간은 언제나 우리 시간, ‘살아낸 시간‘ temps vecu일 따름이다. 이런 시간을 성찰하면서 우리는 두 개의 위험지대 사이를 지나간다. 둘 다 똑같이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한쪽에서 우리는 공허한 말장난과 천박한 캐물음의 위협을 받는다. 다른 한편에서는뭔가 배운 것 같은 울림을 주기는 하지만, 알아야 할 최소한의가치도 제시하지 못하는 이른바 전문 철학자의 인공 언어에 휘둘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두 위험지대를 돌파하려 시도해야만 한다. 시간은, 살아낸 시간 혹은 (그렇게 표현하길 원한다면)주관적인 시간은 우리 모두의 가장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 이런 단어는 잉크 냄새가 코를 찌르는 신문에서나 나오는 게 아니던가! 시간은 우리의 숙적인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다. 우리가 저마다 각자 전적으로 홀로 소유하는 게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은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우리의 고통이자 희망인 게 시간이다. 시간 이야기를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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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3 그러나 결국 문제 삼지 않았던 것 곧 자연적인 시간 감각은 쓸모 있음 이라는 법칙에 굴복한 편안함과는 다른 것임을 깨닫지 않을까? 자신이 저 무의미한 성찰이나일삼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여기며 매달렸던 바로 그 ‘자연적인시간 감각‘ 말이다. 아마도 그게 ‘자연‘이니까,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는 있다. 이 자연은 과학으로부터 이끌어낸 물리적이고수학적인 질서의 자연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변형을 준다면 ‘살아낸 자연‘nature vécue이라는 반론이!
그래야 그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상처를 입었다고 가정해보자.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는다. 곪아 통증을 일으켜공간적인 외부가 그의 몸을 공격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몸은 가지지 않아야 완전히 소유한다. 다시 말해서 느껴지지 않는 몸이 건강하다. 그러다가 점차 상처가 아문다. 감염과의 싸움을 그의 유기체가 이겨내 상처가 아문다. 그러니까 이제상처를 지워버리는 것은 돌연 시간이다. 매일 흘러가는 하루와 더불어 새로운 조직이 상처를 덮어버림으로써 이제 시간은 더욱 살아낸시간이자 살아낸 자연이 된다. 드디어 시간이 승리하는 날이 찾아온다. 바로 그래서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고 세상사람들은 말하는 모양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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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책 (마음산책 刊)
저자 및 역자소개
장 아메리 (Jean Améry)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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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대인이었지만, 어머니에게 가톨릭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대학에서는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1938년 벨기에로 망명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1943년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이후 유대인으로 ‘강등되어’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브뤼셀에 정착하여 작가로 활동했다. 본명은 한스 차임 마이어Hans Chaim Mayer이지만, 1955년에 성 ‘Mayer’의 철자를 뒤섞어 아메리Amery로 개명했다. 1966년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파국의 경험을 담은 《죄와 속죄의 저편》을 발표해 동시대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1976년에는 《자유죽음》을 출간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78년 잘츠부르크의 한 호텔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유 죽음’을 택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중앙묘지에 안장된 그의 묘비에는 출생 및 사망 연도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감 번호 ‘172364’가 적혀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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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죄와 속죄의 저편>,<자유죽음>,<늙어감에 대하여> … 총 41종 (모두보기)
김희상 (옮긴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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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독일 뮌헨의 루트비히막시밀리안 대학교와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헤겔 이후 계몽주의 철학을 연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을 찾아왔다.
‘인문학 올바로 읽기’라는 주제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강연과 독서모임을 펼치고 있다. 대표 강좌로는 한겨레 교육 문화 센터의 ‘문장 수정 가능하실까요’가 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의 힘을 키우는 주니어 철학』이 있고, 『말로 담아내기 어려운 이야기』, 『마음의 법칙』, 『늙어감에 대하여』, 『사랑은 왜 아픈가』, 『봄을 찾아 떠난 남자』 등 13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좋은 책과 만나 참된 삶의 길을 찾으려는 방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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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생각의 힘을 키우는 주니어 철학> … 총 170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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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글쓰기 생각쓰기>,<새로고침 서양미술사 3>,<새로고침 서양미술사 2>등 총 600종
대표분야 : 역사 3위 (브랜드 지수 893,629점), 음악이야기 5위 (브랜드 지수 26,442점), 한국사회비평/칼럼 8위 (브랜드 지수 60,04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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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늙어감의 불가피한 인간 실존과 운명을 사유
『늙어감에 대하여―저항과 체념 사이에서』는 늙어감의 불가피한 인간 실존과 운명을 도저하게 사유한다. 이 책이 질문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 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6쪽) 다시 말해 늙어감이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아낸 주관적 현실’의 차원에서 다룬다.
저자 장 아메리는 철학과 문학 텍스트에서 길어올린 사유를 씨줄과 날줄 삼아 늙어감의 진실에 한치의 타협도 없이 접근한다. 『늙어감에 대하여』는 늙어감의 현실에 직면하기 시작한 중장년층에게는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남아 있는 생을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젊은 독자에게는 그들 앞에 놓인 삶의 소중함과 존엄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즉물적 시선과 타성을 거부하는 사유는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저자 장 아메리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로서, 프리모 레비와 더불어 독일 나치스의 유대인 절멸에 대해 알린 대표적인 증언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글은 추상적인 이론이나 사상에 의존하지 않고, 구체적인 경험에 기반한 독자적인 사유를 도저한 수준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에세이즘의 한 경지에 다다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메리는 독일의 집단적 학살을 글자 그대로 ‘몸’으로 경험한다. 고문과 폭력을 ‘피부 표면’에서 경험하고, 무수한 살해의 현장을 직접 목도하고 각인함으로써.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이론과 사상의 프레임을 우선적으로 전제하지 않고 한치의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즉물적 시선과 타성을 거부하는 사유는,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르지 않았던, 숨 쉬는 게 외줄타기와 같았던, 동료들의 “쌓인 시체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밟고 넘어가”(192쪽)야 했던,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체험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
아메리는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에서 살아남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더 이상 ‘고향’이 될 수 없는 세상이었고, 젊음이 상실된 채 남아 있는 한줌의 시간이었다. 이 세상으로부터 고향을 상실하고 청춘을 강탈당한 자는 그저 늙어가야 했다.
늙어가는 이의 인생은 시간의 층이자 무게이다
첫 번째 에세이 「살아 있음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에서는 늙어가는 인간은 새삼스럽게 시간을 발견한다는 논지를 펼치면서 ‘시간’에 대해 성찰한다. 아메리에 따르면 젊은이는 세계를 ‘공간’으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외화’(外化)하지만, 늙어가는 사람은 지나버린 ‘시간’을 인생으로 ‘기억’하고 ‘내화’(內化)한다. 늙어감은 그의 안에 시간의 층이 점점 두꺼워짐을, 시간의 무게가 더해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노인 자신은 바로 ‘시간’이다. 인생이 허무하다고 한탄하는 것은, 늙어가는 이에게 더 이상 세계와 공간이 허락되지 않고, 대신 그 안에 쌓이는 시간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몸의 발견, 낯섦과 소외를 경험하는 나
늙어가면서 새삼스럽게 발견되는 것은 시간과 더불어 우리의 ‘몸’이다. 아메리는 고통과 아픔을 호소하는 자아를 ‘새로운 자아’ 또는 ‘진정한 자아’라고 명명한다. 이 자아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자신의 것”이고 “세계의 것이 아닌 오로지 나의 자아”(86쪽)이다. 몸의 고통은 나의 진실이지만,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뿐 아니라 내가 누리던 세계의 상실을 의미한다. 조금씩 변해가는 나를 바라보는 나는 나로부터 낯섦과 소외감을 느끼고, 더불어 본래적 자아를 새롭게 발견했음에도 세상으로부터 부정되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인다.
타인의 시선으로 정의되는 나
―“도대체 나는 언제 진짜 사는 것처럼 살까?”
우리가 ‘나이’라고 하는 것은 생물학적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사회의 관습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아메리는 이를 ‘사회적 연령’이라고 칭한다. “사회적 연령이란 타인의 시선이 우리에게 측정해주는 것이다.”(99쪽) 사회적 요구에 따라 그 나이에 부합하는 생활을 해야 하고, 결국 인생은 “그가 어제까지 시도해왔고 포기한 일의 총량”(101쪽)이 된다. 사회에 순응한다는 것은 ‘소유’와 ‘존재’의 삶에서 ‘소유’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의 시선 아래에서 사회적 연령에 부합하는 삶을 살다가 늙어가는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하며 인생을 살았는지 생각해본 일도, 어떤 게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었는지 도전해본 일도 없다”는(102쪽) 걸 깨닫는다.
문화적 노화―세상 이해의 불가능성과 가능성, 그 모순에 저항하기
아메리가 늙어감을 육체와 사회적 범주에 한정하지 않고 문화적 범주까지 확장하고 있는 점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아메리가 이 책을 집필한 1960년대는 20세기 유럽 지성사의 격변기였다. 문학과 철학 등의 인문 지성도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렸다. 아메리는 이를 ‘표시 체계’의 변화라고 말하는데, 문화적 노화란 이 표시 체계를 해독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빠르게 변모하는 현대사회에서 “현재의 문화적 현상을 자신의 시대였던 과거라는 관계 지점에 따라 해석하려 시도하는” 늙어가는 사람은 점점 세상으로부터 소외된다.(139쪽) 문화적 노화는 현대인이면 피할 수 없는 늙어감의 한 현상이다. 아메리는 이에 대해서 다소 모순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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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 book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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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하나둘 올라오는 연말결산 페이퍼를 감탄과 부러움-재밌겠다, 나도 하고 싶다!-의 눈으로 지켜보던 지난 연말이 엊그제 같은데, 금세 1년이 지나가고 내가 그 페이퍼를 쓸 수 있는 시기가 왔다. 연말결산 못 해도 되니까 그냥 제 1년 다시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되겠죠? 흑흑. 마음 같아서는 잠자냥 님처럼 책마다 책에 대한 설명과 훌륭한 점을 들어 요목조목 적어내고 싶지만 그건 능력 부족으로 포기했다. 직전에 읽은 책 100자평 쓰는 것도 힘들어하는 인간이 몇 개월 전에 읽고 희미한 감상만 남은 책들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을 리가.... 그런 능력을 가질 순 없으니 그런 능력을 가진 분을 가지기로 했다.
여하간 그렇다고 제목만 줄줄이 나열하면 의미 없는 심심한 페이퍼가 될 것 같으니 책마다 상을 주기로. 읽은 책 목록을 쭉 보면서 특히 좋았던 책들만 추리고 추리니까 소설 8권, 비소설 12권이 남았다. 20권 전부 올해 내게 어떤 식으로든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이다. 순서는 순위가 아니라 단지 읽은 순서이며, 올해 읽기가 재독이었던 책들은 이 페이퍼에서 제외했다.
소설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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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재회상: 크리스티앙 보뱅, <가벼운 마음>
진정 가벼운 마음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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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내취향상: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완전 내 취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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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소설상: 카렐 차페크, <평범한 인생>
소설 중에서 딱 한 권만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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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지팔지꼰상: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오블로모프>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지 팔자 지가 제대로 꼬는 골 때리는 게으름뱅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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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재미상: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
존나 재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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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난줄상: 시바타 쇼, <그래도 우리의 나날>
주인공이 나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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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언니상: 프랑수아즈 사강, <패배의 신호>
사강 언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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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캐릭터상: 에마뉘엘 보브, <나의 친구들>
얘도 골 때리는데 작가가 심리 묘사를 너무 잘해서 실재하는 인물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
전에 없이 소설을 많이 읽은 해였다. 내 소설 취향을 알아가고 있는 중인데, 아직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확실해진 건, 난 서사보다는 문장에 감응하는 문장성애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파악이 필요한 부분은 그래서 나는 어떤 문장에 꼴리느냐(?)인데.... 문장의 내용 면에서 보자면 인간과 삶에 대한 비범한 통찰이 묵직하게 들어있는, 그걸로 머리를 때리는 문장에 꼴린다. 어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동안 이런 문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어떤 소설은 한 페이지만 펼쳐도 그런 문장이 수두룩하게 박혀 있다(<평범한 인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특히 그랬다). 문장의 형식 면에서 보자면.... 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이 문장은 예술이야!"라는 말이 나오도록 문장을 꾸며내는 작가들이 있는 듯한데, 정확히 어떤 요소가 내게 이 작가들의 문장에서 꼴림을 느끼게 하는지 콕 집어내지는 못하겠다. 비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장은 물론이거니와 문단 단위로 봐도 도저히 뺄 게 없어서 문단을 통째로 옮기는 고생을 시키는 저자들이 있다. 이렇게 내 취향의 문장을 잔뜩 심어놓는 작가들의 책은 다 읽고 옮길 걸 생각하면 깜깜하지만 읽는 동안에는 무지 짜릿하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 배경묘사가 많은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다. 위에서 뽑은 아홉 권도 배경묘사가 적고 인물과 상황 묘사가 주인 소설이다. 나는 지루함을 쉽게 느끼고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을 지녔다. 내 뇌를 들여다보면 자극의 역치가 평균보다 높고 도파민 수치는 바닥을 기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정적인 취미라는 책에도 자극을 요구한다. 그리고 책은 자극적이다. 읽는 내내 쉴 새 없이 정보가 들어오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들어오는 정보가 내게 유의미한 정보여야지만 활자가 단순한 활자가 아닌 정보가 되고 자극이 된다는 사실인데, 유의미한 정보란 내 흥미를 끄는, 말하자면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정보를 의미한다. 소설의 배경은 내게 유의미한 정보가 아니다. 나는 인물 뒤의 풍경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 나뭇가지가 거세게 흔들리는지 아니면 살랑살랑 흔들리는지 제비꽃이 피었는지 아니면 양귀비가 피었는지 건축물의 구조가 어떠한지 집의 벽지는 또 어떤 무늬로 이루어져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TMI다. 나는 인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용한 옷과 악세서리의 디자인과 재질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 TMI다. 그러니 그런 거 하나하나 공들여 묘사해줄 시간에 대사나 한 줄 더 써주면 좋겠다.... 그러나 이건 나의 취향일 뿐이고, 섬세한 배경묘사를 음미하는 게 소설 읽기의 묘미라고 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걸 안다(그런데 "소설 배경묘사"로 여기저기 검색해본 바에 의하면 의외로 나같은 배경묘사극혐불감증 독자들도 많다!). 나도 아름다운 배경묘사에 감응하는 인간이 되고 싶지만 그건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벚꽃을 봐도 감흥이 없어서 벚꽃 구경을 싫어하는 사람인 걸 보면 아마 앞으로도 소설의 배경 묘사를 즐기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은오의 소설 취향 분석이었습니다. 데이터 수집과 취향 분석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앞으로 은오가 배경묘사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는 작가의 소설을 읽겠다고 하면 "싫어할걸?" 하면서 말려주세요.
비소설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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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약혼자분이 신형철 마니아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잠시 그녀의 귀를 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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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문장상: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문장성애자는 신형철의 글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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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불쌍해상: 마리 루티, <남근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
제목이랑 표지가 알맹이를 학대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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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대깨상: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대가리가 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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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재미상(비소설 부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재밌다고들 하는데 진짜 재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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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언니상(비소설 부문): 비비언 고닉, <짝 없는 여자와 도시> <사나운 애착>
둘 다 좋으니까 둘 다 넣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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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부활기원상: 장 아메리, <늙어감에 대하여>
다시 부활해서 책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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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빛과소금상: 토머스 리고티, <인간종에 대한 음모>
쇼펜하우어에밀시오랑데이비드베너타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늘어지던 염세주의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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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페미니즘도서상: 레이첼 모랜, <페이드 포>
페미니즘 책 중에서 딱 한 권을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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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비소설상: 알랭 드 보통, <불안>
비소설 중에서 딱 한 권을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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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반성상: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반성하며 어린이를 올바른 마음으로 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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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분석상: 박권일, <한국의 능력주의>
<공정하다는 착각>보다도 이 책을.
1년에 50권도 겨우 읽던 나는 올해 대략 120권의 책을 읽었다. 50권이라는 수치도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치라는 건 알지만 나는 내가 일 년에 120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올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건 100퍼센트 알라딘 언니들의 공이다. 역시 어울려 노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음. 언니들이랑 놀려면 책을 읽어야 하니까 열심히 읽었고, 언니들이 읽는 책을 보면 재미있어 보이니까 따라 읽었고, 언니들이 내가 읽는 책에 관심을 가져 주니까 신나서 더 읽었다. 알라딘 서재가 내 독서 인생의 2막을 열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니들은 제가 언니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결혼신청으로도 뽀뽀로도 미처 다 표현되지 않는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원통하다! 맨날 결혼신청 해도 결혼도 안 해주고, 맨날 뽀뽀해도 돌아오는 뽀뽀는 거의 없지만-매정한 사람들....-그래도 제가 많이 좋아합니다. 아, 그렇다고 언니들만 좋아하는 건 아니고요. 극여초 알라딘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주시는 다정한 소수자 남성분들도 좋아합니다.
다들 올해도 저랑 같이 놀아주세요!
은오 2024-01-02 공감 (55) 댓글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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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고 지혜로워진다거나 여유로워진다거나 하는 미사여구는 다 헛소리라고. 늙음은 그저 늙음일 뿐이라고 죽음이 죽음인 것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썩어가기 시작”한다는 어느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플라시보). 늙음도 죽음도 있는 그대로 빋아들일 때 생을 더 치열하게 살 수 있다는.
잠자냥 2023-10-05 공감 (23)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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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게 다 늙기 때문이지, 라고 답했다. 꽤 자주. 왜 인간은 기껏 태어나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느냐는 물음이 떠오를 때마다 말이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썩 유쾌하지 않은 노동에 바치면서, 그렇게 해서 번 돈도 마음껏 쓰지 못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던지기를 주저하다 결국 포기하고 남은 미련에 허우적거리면서, 달지만 해로운 것들을 참으면서, 꾸역꾸역. 그러니까 이게 다 늙기 때문이지.
늙어감 없이 젊게만 살다가 떠나는 삶을 상상해 본다. 나는 맨날 놀다가 돈이 떨어지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일도 좀 지겹네.’라고 스스로에게 한마디 던져 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하고, 다시 돌아와서 놀고, 그렇게 살 거다. 기실 사람이 젊기만 하면 어떻게 살든 괜찮고, 어떻게든 살 수 있는 법이다.
“몸을 등한시하면서도 몸과 더불어” 살던 젊은 시절과는 다르게, 인간은 나이가 들면 “몸을 통해 늙어가면서 몸을 적대시”한다.(79쪽) 젊어서는 관심을 주지 않아도 얌전히 제 기능을 다하여 나와 세상의 순조로운 접촉을 돕던 몸이, 늙어서는 더이상은 못 참겠다며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쑤시고 아프게 하면서 자기주장을 해대는데, 그걸로도 분이 안 풀리는지 쪼그라들기까지 한다. 이 몸도 내 몸이라고 건사하기 위해 끌고 밖으로 나가서 돈을 벌어 보려 해도 써먹기 힘들고 누가 써주지도 않는 몸.
그러니 젊어서 고생해야 한다. 물론 젊어서 고생한들 늙어서 고생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젊어서 고생하지 않으면 늙어서 더 고생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지만, 죽어가는 과정에서조차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177쪽) “열악한 환경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복도에서 불편한 몸을 질질 끌어야만 한다.”(178쪽)
『사는 게 뭐라고』의 저자 사노 요코는 암 선고를 받고 기뻐하며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외제차까지 뽑았더랬다. 앞으로 1년 정도면 죽으니 무섭지 않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하면서. “안 무섭다니까. 오히려 기뻐. 생각해봐. 죽으면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고. 돈을 안 벌어도 되는 거야. 돈 걱정이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행운인걸. (…) 게다가 암은 정말로 좋은 병이야. 때가 되면 죽으니까. (…) 류머티즘 같은 건 점점 나빠지기만 할 뿐이고 계속 아픈데도 낫질 않잖아.” 맞는 말이다.
늙어감 없이 젊게만 살다가 떠날 수 없다면, 떠나는 날을 미리 알 수 있기만 해도 좋으련만. 들린다. 당신은 10년 뒤에 죽습니다. 내가 말한다. 오, 감사합니다. 걱정 없이 삶을 즐길 수 있겠어요! 장난이고요. 당신은 70년 뒤에 죽어요. 아니… 이건 모르고 사는 거랑 똑같잖아요! 역시 최고의 시나리오는, 삼키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알약을 소지한 상태로 재밌게 살다가 삶의 저울이 고통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는 순간 그 알약을 삼키고 끝내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런 알약은 구할 길이 없을 터, 외국인도 받아준다는 스위스 안락사 단체를 검색해 보기에 이르렀는데, 얘네도 죽을 병 걸린 거 아니면 안 받아준다고 하네.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는 1968년에 발간되었고, 『자유죽음』은 1975년에 발간되었다. 이후 그는 1978년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했다(요새 나오는 수면제는 100알을 목구멍에 털어도 안 죽는다). 저자의 삶의 이력을 아는 채로 『늙어감에 대하여』를 읽노라니 내내 든 생각. ‘어휴 인간아… 늙어감에 대해 이렇게까지 골몰하니 자살할 수밖에 없지. 어차피 다 늙고 죽는 거….’
초판 서문에 “내가 다루고자 하는 물음은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 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6쪽)라고 적혀 있듯이, 이 책은 늙어가던 장 아메리가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고 체험하고 해석한 것들을 가감없이 치열하게 적어내린 결과물이다. 여기에 노년기의 평안이나 지혜,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 따위는 없다. 있었다면 저자가 자유죽음으로 생을 마감하지도 않았을 터다. 내가 장 아메리라면 스스로의 지성과 필력에 취해서 오래 살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 책의 존재는 정희진의 저서로부터 알았는데, 정희진은 독후감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나이듦을 느끼는 독자들에겐 쉽고 깊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물론 ‘이미 알고 있어요.’라고 말할 젊은이들은 없을 것이다.” 어떤 젊은이는 이 책을 읽고서 늙어감이 이렇게나 씁쓸한 것이로구나, 내 젊음을 소중히 여겨 열심히 살아야지,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다른 젊은이의 한숨. 에휴 시발 어차피 다 늙고 죽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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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8 공감 (41) 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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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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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어요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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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어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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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어요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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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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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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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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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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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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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여성 남성
평점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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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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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 유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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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열 개를 줘도 모자라다 말하고 싶다. <자유죽음>보다도 더 장 아메리의 지성과 통찰에 감탄하면서, 명쾌함에 무릎을 치면서, 이내 씁쓸함을 참기 어려워져 쉬어가면서, 그렇게 읽었다. ˝타협을 폭로하고, 통속을 짓밟으며, 싸구려 위로의 허위를 드러내˝며 늙어감에 대해 적실히 적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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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6 공감 (31)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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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고 지혜로워진다거나 여유로워진다거나 하는 미사여구는 다 헛소리라고. 늙음은 그저 늙음일 뿐이라고 죽음이 죽음인 것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썩어가기 시작”한다는 어느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플라시보). 늙음도 죽음도 있는 그대로 빋아들일 때 생을 더 치열하게 살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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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05 공감 (23)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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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아메리의 전집이 번역되어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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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htM 2014-12-20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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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죽음>을 읽고 나면 읽을 수 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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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wife 2015-04-21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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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계속해서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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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은의지니 2014-12-23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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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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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라니. 멋모르는 어린아이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어른이 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혈기왕성한 청춘 시절에는 그 시절에 흠뻑 빠져 나이들어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청춘 시절은 현재만이 있는 시절이다.
어쩌면 어린시절은 미래가 더 많이 보이는 시절이라면 청춘은 현재에 몰입한 시절이다. 그런 시절이 지나고 서서히 늙어가면 이제는 현재에서 미래를 보고, 과거를 보게 된다.
미래는 조금, 과거는 많이. 과거가 많이 보일수록 더 늙었다고 할 수 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앞으로 살아갈 세월보다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빨리 압축되어 존재하고, 미래는 느리게 펼쳐서 존재하길 바란다.
어느 순간 나이듦에 대해서 저항하기 시작한다. 과거를 그리워하기 시작하고, 현재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이때부터가 늙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저항한다고 해도 늙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늙음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죽음, 그것은 무(無)다. 도무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언어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다. 칸트 식으로 말하면 '물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절대로 인식할 수 없는. 경험할 수도 없는.
사람은 누구나 늙고 죽어간다는 것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경험은 우리가 언어로 다시 전달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일회성이다. 불가역적이다.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경험을 하되 경험했다고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태가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저항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아무리 저항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몸은 자꾸만 중력의 법칙에 따르게 된다. 땅과 점점 더 가까워진다. 점점 더 중력이 몸에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니 결국 체념할 수밖에 없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 두려운 것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늙어감에 대해서 자신이 서서히 죽음이라는 구멍을 향해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게 된다.
청년기를 지나고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접어들면, 아무리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도 인간이 영원히 살 수는 없으니까, 사람들은 늙어감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 아무리 젊다고 생각해도 이미 뒤쳐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젊은이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어지고, 최근에 나온 책들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부정하려고 해도, 자신의 언어와 젊은이들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체념이라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한다. 수용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일회적인 것 아니겠는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삶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겠다. 이 책에서는 많은 문학작품이 언급된다. 거기서 늙어감, 죽어감에 대해서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일회적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죽음과 더불어 산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유한함을 깨닫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또 무의 무의미함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저 공허하고 잘못된 기대, 자기기만을 되풀이하는 연습에 익숙해질 뿐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한사코 부정하며 자기기만의 희생자가 된다. 204쪽.
늙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자신과 거짓말 타협을 하며 살아간다. 207쪽
이것을 꼭 자기기만이라고 해야 할까. 현재를 살면서 현재에 과거와 미래를 불러올 수 인간이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과연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인간은 현재를 잘 살기 위해서 자기기만을, 거짓말 타협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언젠가는 오겠지만 아직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체념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수용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겠단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늙어감이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지만,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니,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유한한 삶, 일회적인 삶을 잘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올 미래를 미리 당길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미래는 현재에는 없는 것이다. 내가 살아간다면, 늙어가고 있다는 것 자체도 이미 죽음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 살아갈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니...
그럼에도 우리는 늙어감,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한다. 만약 죽음이라는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지금보다 나아질까... 그 점을 생각하면...
늙어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는 책이긴 하지만, 서양문학에 대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지만 그래, 그래 하면서 읽을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프루스트, 괴테, 토마스 만 등의 소설이 기본 바탕이 되고 있으니... 원. 그래서 내게는 많이 난해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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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17-08-12 공감(18)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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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만나야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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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다.
열네 살, 스무 살, 때로는 나이조차 기억나지 않는 태초의 것만 같은 기억들.
다시 나는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았던 마흔의 철책 앞에 선다.
스무 살은 꿈꾸었지만 서른은 실감나지 않았고 마흔은 차마 상상해 내지도 못한 나이.
이제 나는 쉰도 되고 환갑도 되고 고희연도 치를 수 있기를 서글프지만 현실적으로 소망한다.
나도 늙고 늙어가고 있고 더 늙어가다가 마침내 죽을 것이다.
이 당연한 명제를 이제는 실감한다.
삶은 스무 살이 세계 전체를 포박하고 내가 딛는 발자욱이 그려내는 지도로만 완성되지 않음을 배워가는 과정과
다름아니다.
<늙어감에 대하여>라는 이 추연한 제목 아래 처절하게 인간의 늙어감과 그것의 종말을 기술한 저자의 도저한 탐구, 모색이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영화의 클라이맥스 못지 않은 울림을 자아냈다. 순간 아연해졌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그 어떤 위로도 위장도 에두름도 없는 그 직설적인 산재한 진실들에 인간으로 태어나 산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모순과 덧없음과 역설에 지는 것인지를 동의해야 하는 과정임에도 저자 장 아메리의 그 담백하고 처연한 문장들에 절로 목울대가 울렸다.
그 앞에서 '늙어감'은 그저 세계와 환상을 잃어가고 죽음이라는 도저히 풀길없는 하지만 자명한 역설의 진리로 한 걸음씩 내딛는 초라하고 처절한 행보다. 성숙, 세계를 보는 시선의 확장, 관용, 성숙의 휘장은 그의 예리한 언어의 칼날로 난자 당한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더 늙어가며 죽음으로 행진하는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A의 시선이 관통하는 그를 둘러싼 세계들, 그리고 그것에서 밀려나며 자신이 쌓아온 시간들로 향햐는 시선들의 흐름은 마치 한편의 소설 같다. 실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시선들이 군데군데 녹아들어가 있다. 장 아메리는 자신이 실제로 만지고 느낀 것들을 충실히 자신만의 언어로 쓰다듬고 훓어내어 흩뿌린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천착했던 속물성이 횡행하는 사회의 실체는 장 아메리 앞에서도 가감없이 드러난다. 우리의 고향은 존재의 세계가 아니라 소유의 세계이며 소유가 있어야 사회적 연령을 부여받는다는 그의 지적은 우리의 늙음의 결이 사회가 부여하는 소유의 위계를 따라 스며듦을 간파한 것이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그마저도 우리는 사회적 연령의 심판 하에 쌓아놓은 재물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이렇게도 희망을 깨부수는 이야기들. 한마디로 '늙음'과 '나이듦'은 인간이 직면한 '죽음'이라는 그 불합리하고 역설적인 모순의 마침표로 규정된 '존재'와 얽혀 하나의 '무의미'로 회귀해 버린다. 실제 장 아메리는 오십 대 중반에 이 저술을 하고 십년 뒤가 지나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텍스트를 위해 산화해 버린다.
A는 균형을 깨뜨리며, 타협을 폭로하고, 통속화를 짓밟으며, 싸구려 위로를 깨끗이 쓸어버리는 그 어떤 일을 해냈을까? 그는 그랬기를 희망한다. 남은 날들은 쪼그라들며 메말라 비틀어진다. 그럼에도 그는 진리만큼은 간절히 말하고 싶었다.
-p.211
A는 다름아닌 장 아메리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해냈다. 하지만 그의 인간의 삶에 대한 그 가차없는 메마르고 명징한 통찰은 또 다른 역설과 만난다. 찰나의 경건함. 그것이 꼭 대단한 의미와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은 날들이 쪼그라들며 비틀어지고 지나간 나날들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으므로 '지금', '여기'가 가지는 무게는 한층 더 한량없다.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 보는 거울에서 나의 얼굴은 빛을 잃었지만 벚꽃비를 맞으며 향그러운 그 덧없음을 향유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가 오십 대에 마침내 육십 대에 얻은 깨달음과 사유가 삶에 대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의 한계까지 밀고 나간 것이라 할지라도 남는 것들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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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4-10 공감(16)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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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늙어감에 대하여』를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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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아메리가 『늙어감에 대하여』를 펴내고, 제4판에서 결정적인 부분을 고쳐 쓴 뒤,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10년, 그 중간 어디쯤 시간에 제 인생이 서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삶을 사랑으로 보듬고, 존경으로 예우하며, 최상으로 매듭지은 시간의 결과 겹을 제 삶의 감각과 사유, 그리고 행동에 포개기 참으로 적절한 기회였습니다. 지난 두 달, 때로는 서성이고 때로는 가부좌 틀고 때로는 누우며 그 포갬 속에 머물렀습니다. 쪼갬이 여명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이 주해 리뷰를 쓰는 동안 홀연히 향아설위向我設位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향아설위는 수운水雲선생께서 태동시키시고 해월海月선생께서 완성한 위대한 제의祭儀 혁명입니다. 단도직입으로 말하자면 하느님을 내 맞은편 벽에 세우는 것, 그러니까 향벽설위向壁設位가 아니라 내 안에 세운다는 말입니다. 절이든 기도든 나를 향하여, 내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이 진리는 붓다께서도 그리스도께서도 이미 설파하신 것입니다. 다만 그를 따른다 말하는 자들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하여 오늘 여기 자신을 향하여 절하는 불자도 없고 자신을 향하여 기도하는 기독자도 없습니다. 그들이 절하고 기도하는 맞은편에는 다름 아닌 우상이 서 있을 뿐입니다. 불자에게 붓다는, 기독자에게 그리스도는 실제로 모두 우상일 따름입니다. 저는 불자도 기독자도 아닙니다. 아니 그런 우상숭배자이기를 거절합니다. 어느 새벽 문득 일어나 제게 절하였습니다. 어느 새벽 문득 무릎 꿇고 제게 기도하였습니다. 비로소 거기서 저 아닌 저를, 우상 아닌 붓다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느닷없는 향아설위 향벽설위 이야기와 장 아메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향벽설위는 이원론적 세계관의 산물입니다. 장 아메리가 저 치열함과 결곡함에도 깨부수지 못한 은산철벽이 바로 서구 이원론적 세계관입니다. 도처에 모순 감각과 역설 지향이 번득이지만, 그에게 죽음은 끝내 아我가 아니었습니다. 끝내 벽壁이었습니다. 그러면 길은 일원론에 있을까요? 이미 아시다시피 아닙니다. 제가 제게 절하고 기도함으로써 저 아닌 저를, 우상 아닌 붓다 그리스도를 만났듯, 진정한 향아설위는 불이불일不二不一의 세계관입니다. 여기가 길입니다.
제가 향아설위를 실행에 옮긴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 아닙니다. 사십 년 동안 축적해온 비대칭적 대칭의 사유가 변곡점에 도달하면서 일으킨 질적 전환입니다. 그 변곡점에 장 아메리라는 변수가 작용하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프리모 레비와 함께입니다. 그들이 변수로 작용한 것은 외부에서 “습격”해오는 죽음의 문제, 그 상처에서 오는 죽음의 문제를 저와 우리 공동체가 긴급하고도 치명적인 현안으로 떠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문제의식과 제 문제의식은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같은 부분은 함께 다지고 다른 부분은 홀로 열면서 저는 제 길을 가야 합니다. 이 깨달음의 결과가 바로 향아설위입니다.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모르므로, 그저 모를 뿐이므로 갑니다, 극진히 갑니다. 희망도 지나고 절망도 지나서. 낙관도 지나고 비관도 지나서. 나도 지나고 붓다 그리스도도 지나서. 마침내 삶도 지나고 죽음도 지나서. 오직 이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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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i_che 2015-04-21 공감(6)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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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저항할 것인가 체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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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늙어가기’는 제가 쥐고 있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노화와 죽음은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요? 즐기려면 일단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제일이지요.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도 늙어감을 배우기 위하여 읽었습니다.
초판 서문을 보면 저자 역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문제를 곰곰이 따지며 생각해보려는 성향 덕에, 또 아마 좋은 연습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인간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무얼 뜻하는지 이 글에서 밝혀보려 한다”라고 운을 떼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증과학이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런 생각입니다.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 일반이라는 보편적 문제에 지성이 등을 돌리는 시대에, 나는 ‘살아본 구체적 경험(’levécu)만을 철두철미하게 고집했다.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근접하게나마 충실하게 그리려는 노력은 ‘성찰’이라는 방법으로만 감당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여기에 주의 깊은 관찰과 공감 능력이 덧붙여져야 한다. 그러나 과학이 요구하는 엄밀함, 심지어 철저하게 완벽한 논리를 기대하는 태도는 이 시도에서 포기될 수밖에 없다.(7쪽)”
목차를 보면 ‘살아있음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 ‘낯설어 보이는 자기 자신’, ‘타인의 시선’, ‘더는 알 수 없는 세상’, ‘죽어가며 살아가기’ 등 5개의 제목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55살이 될 무렵 초판을 냈던 것 같습니다. 살아온 나날이 덧없이 흘러간 것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이 느껴지는 첫 번째 글 묶음입니다. 두 번째 글묶음은 그렇게 살아오다보니 문득 자신이 낯설어 보이더라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세 번째 묶음은 늙어가는 내 모습을 남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담았구요. 네 번째 글묶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있구나 하는 인식 혹은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담긴 듯합니다. 그리고 마지막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듦을 감내하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겠지요.
각가의 글묶음에는 A라고 하는 화자가 있습니다. 물론 글묶음마다 화자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덧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첫 번째 글묶음의 화자 A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입니다. 특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편 되찾은 시간을 화두로 삼았습니다. 마침 민음사에서 새로 번역하여 출간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편을 읽고 있어서 저자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마르셀 프루스트가 루아르에셰르 주 출신이고 그곳에서는 프뤼(Pruh)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늙어감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40대 무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우아하게 늙어가는 길을 모색했는데 답을 찾아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왔는데,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나이 듦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메리는 늙어감에 대한 저항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어가는 현실에 체념하게 된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긍정적 태도, 품위 있고 불평하지 않는 노년의 두 가지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그 하나 “변화와 발전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저 자기기만의 인기 높은 주장대로, ‘젊음과 더불어 젊게 살자!’고 외쳐대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대를 뒤쫓으며 사회의 [노인]파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그 숨 가쁜 행보로부터 자신은 빠져나왔다고 하면서 사회의 파괴를 부정한다. 늙는 것은 아름답고 좋은 일이다. 젊었을 때는 토론에 끼어 말을 거들었을 뿐이지만, 늙은 지금은 내 말이 진리다. 이미 오래전에 경제적으로 아무 어려움이 없게 노후를 준비해두었다. 그러니 오 세상이여, 나를 이대로 내버려다오. 노인은 아무것도 아닌 평화를 이룩해준 사회에 만족했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잡는데 분명 도움이 될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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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23-06-1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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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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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이 공포로 다가온 순간이 있었다.
어느 날, 연고를 바르기 전에 연고에 적힌 깨알보다 작은 '주의사항'을 읽어보려는데,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악몽을 꿀 때, 아무리 발버둥치고 소리를 질러도 꼼짝 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에 그런 순간이 올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순간이었다. 다초점 안경을 쓰고도 선명하게 보이지가 않았다. 특히 시력이 좋았던 나로서는 불가해한 일이었다.
이 책의 저자 장 아메리는 그 '늙어감'에 대해 아주 냉정하게 쓰고 있다. '4판 서문'에는 앞서 책을 출간했을 때, "고작 쉰다섯 살의 이 '젊은 인간 J.A.가 늙어감이, 나이를 먹는다는 일이 뭔지 대체 알기는 하겠어? 그런데도 무슨 이야기를 늘어놓겠다는 거야?"하고 '정말 고령의 신사'가 엄혹하게 비판했던 일을 두고 말한다.
"나는 텍스트를 다시 읽으면서 유쾌한 노인의 이 말이 심히 유감스럽지만 틀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내가 옳았다. 아, 이런! 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경험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말했던 것을 강조했으면 강조했지 축소하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다. 모든 게 내가 예견했던 것보다 더욱 나빠졌을 따름이다. 몸의 늙어감, 문화적 늙어감, 음울한 표정의 사내가 다가오는 게 매일 더욱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일 등등. 그 음울한 사내는 내 곁을 스쳐지나가며 마치 저 라이문트 발렌틴처럼 기괴할 정도로 음산하게 나를 부르곤 했다. "친구, 어서 오게...""
그러니까 저자는 이 책을 1968년에 출판하고, 그 후 10년이 지난 1977년에 이렇게 쓰고 있다. 그리고 다음 해 그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처음부터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살아있음과 덧음이 흐르는 시간...일단 반항을 시작한 사람은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없다."(P.51)
"이로써 생각함이라는 위험지대를 벗어나 습관이라는 편안함으로 후퇴하는 것일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치 시간을 잘 아는 양 행동하는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하리라."(P.52)
"몸은 가지지 않아야 완전히 소유한다. 다시 말해서 느껴지지 않는 몸이 건강하다."(P53)
"곧 내가 '나 아닌 나'가 되는 깊은 충격이 노화의 진실이 아닐까. 젊은 시절에는 당연하다고만 여겼던 게 돌연 낯설기만 한 것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소름끼침은, 우리 인간의 근본 정서 가운데 일부인 소름끼침은 거울 앞에서 물러나 평소 일상에 뒤덮여 하루 일과를 감당하느라 잊힐 따름이다...그럼 돌연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라는 것, 곧 '나 아닌 나'가 평소 익숙한 나를 문제 삼으면서 충격과 경악이 고개를 든다."(P. 61)
"늙어감의 기본 상태라는 게 있다면 이 상태는 비참함과 불행함이라는 단어로 어느 정도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으리라. 비참하다는 말은 어떤 고통이 치유될 수 없을 것이라는 어렴풋함 의식이 가져다 주는 답답함이다. 그리고 불행함이란, 그것을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실존의 공간을 채우는 어떤 '확신'이다.
2년 전, 이 책을 읽고 수첩에 옮겨 둔 글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는 '늙음'과 '죽음'이 아닌가. 외면하지 않고 직면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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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동 2018-03-1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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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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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말년작들을 읽으며 자연스레 노년과 늙어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10년 뒤 이야기들임에도 그렇다). 더이상 노년이 강건너 일만은 아닌 나이가 되니 늙어감을 주제로 한 책들에까지 눈길이 멈춘다(늙어감 혹은 죽어감).
최근에 영어판으로 첫 비평판이 나왔기에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다시 구입했는데, 그가 58세에 쓴 책이다. 노년의 문턱에서 쓴 것이라고 할까. 인생론을 쓰고픈 충동을 느낀다면 그때가 바로 노년의 기점인지도 모른다.
노년 역시 죽음과 마찬가지로 다섯 단계의 반응태도를 갖게 하는지. 부정과 거부에서 체념과 수용까지 말이다. 죽음과의 차이라면 어떤 포즈(허세)가 그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꽤 유지될 수 있다는 점. 물론 방심은 금물이고 언제든지 탈락자의 대열로 옮겨갈 수 있다.
책을 읽는 독서가들에게는 아마도 노안이 충격의 시작이리라. 나는 아직 시력에 불편을 느끼지는 않지만 조만간 시력이 아니더라도 지력이나 체력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그런 게 늙어감의 문제다).
방과 현관에 쌓여있는 책들을 보다가 이제는 정말다 읽을 수 없겠다는 실감이 들었다. 갑자기 무연한 상태가 된 것. 책을 읽는 게 문제가 아니라 찾는 게 더 큰 문제가 된 이후로 책과의 관계도 많이 데면데면해졌다.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고 관계의 문제다.
늙어감을 주제로 한 책 몇 권도 찾아서 모아두어야겠다.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도 않지만 자진해서 노년의 수감생활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묘한 선택장애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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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9-06-18 공감 (67)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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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좋았던 책 스무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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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하나둘 올라오는 연말결산 페이퍼를 감탄과 부러움-재밌겠다, 나도 하고 싶다!-의 눈으로 지켜보던 지난 연말이 엊그제 같은데, 금세 1년이 지나가고 내가 그 페이퍼를 쓸 수 있는 시기가 왔다. 연말결산 못 해도 되니까 그냥 제 1년 다시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되겠죠? 흑흑. 마음 같아서는 잠자냥 님처럼 책마다 책에 대한 설명과 훌륭한 점을 들어 요목조목 적어내고 싶지만 그건 능력 부족으로 포기했다. 직전에 읽은 책 100자평 쓰는 것도 힘들어하는 인간이 몇 개월 전에 읽고 희미한 감상만 남은 책들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을 리가.... 그런 능력을 가질 순 없으니 그런 능력을 가진 분을 가지기로 했다.
여하간 그렇다고 제목만 줄줄이 나열하면 의미 없는 심심한 페이퍼가 될 것 같으니 책마다 상을 주기로. 읽은 책 목록을 쭉 보면서 특히 좋았던 책들만 추리고 추리니까 소설 8권, 비소설 12권이 남았다. 20권 전부 올해 내게 어떤 식으로든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이다. 순서는 순위가 아니라 단지 읽은 순서이며, 올해 읽기가 재독이었던 책들은 이 페이퍼에서 제외했다.
소설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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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재회상: 크리스티앙 보뱅, <가벼운 마음>
진정 가벼운 마음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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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내취향상: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완전 내 취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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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소설상: 카렐 차페크, <평범한 인생>
소설 중에서 딱 한 권만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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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지팔지꼰상: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오블로모프>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지 팔자 지가 제대로 꼬는 골 때리는 게으름뱅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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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재미상: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
존나 재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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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난줄상: 시바타 쇼, <그래도 우리의 나날>
주인공이 나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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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언니상: 프랑수아즈 사강, <패배의 신호>
사강 언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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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캐릭터상: 에마뉘엘 보브, <나의 친구들>
얘도 골 때리는데 작가가 심리 묘사를 너무 잘해서 실재하는 인물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
전에 없이 소설을 많이 읽은 해였다. 내 소설 취향을 알아가고 있는 중인데, 아직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확실해진 건, 난 서사보다는 문장에 감응하는 문장성애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파악이 필요한 부분은 그래서 나는 어떤 문장에 꼴리느냐(?)인데.... 문장의 내용 면에서 보자면 인간과 삶에 대한 비범한 통찰이 묵직하게 들어있는, 그걸로 머리를 때리는 문장에 꼴린다. 어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동안 이런 문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어떤 소설은 한 페이지만 펼쳐도 그런 문장이 수두룩하게 박혀 있다(<평범한 인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특히 그랬다). 문장의 형식 면에서 보자면.... 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이 문장은 예술이야!"라는 말이 나오도록 문장을 꾸며내는 작가들이 있는 듯한데, 정확히 어떤 요소가 내게 이 작가들의 문장에서 꼴림을 느끼게 하는지 콕 집어내지는 못하겠다. 비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장은 물론이거니와 문단 단위로 봐도 도저히 뺄 게 없어서 문단을 통째로 옮기는 고생을 시키는 저자들이 있다. 이렇게 내 취향의 문장을 잔뜩 심어놓는 작가들의 책은 다 읽고 옮길 걸 생각하면 깜깜하지만 읽는 동안에는 무지 짜릿하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 배경묘사가 많은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다. 위에서 뽑은 아홉 권도 배경묘사가 적고 인물과 상황 묘사가 주인 소설이다. 나는 지루함을 쉽게 느끼고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을 지녔다. 내 뇌를 들여다보면 자극의 역치가 평균보다 높고 도파민 수치는 바닥을 기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정적인 취미라는 책에도 자극을 요구한다. 그리고 책은 자극적이다. 읽는 내내 쉴 새 없이 정보가 들어오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들어오는 정보가 내게 유의미한 정보여야지만 활자가 단순한 활자가 아닌 정보가 되고 자극이 된다는 사실인데, 유의미한 정보란 내 흥미를 끄는, 말하자면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정보를 의미한다. 소설의 배경은 내게 유의미한 정보가 아니다. 나는 인물 뒤의 풍경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 나뭇가지가 거세게 흔들리는지 아니면 살랑살랑 흔들리는지 제비꽃이 피었는지 아니면 양귀비가 피었는지 건축물의 구조가 어떠한지 집의 벽지는 또 어떤 무늬로 이루어져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TMI다. 나는 인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용한 옷과 악세서리의 디자인과 재질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 TMI다. 그러니 그런 거 하나하나 공들여 묘사해줄 시간에 대사나 한 줄 더 써주면 좋겠다.... 그러나 이건 나의 취향일 뿐이고, 섬세한 배경묘사를 음미하는 게 소설 읽기의 묘미라고 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걸 안다(그런데 "소설 배경묘사"로 여기저기 검색해본 바에 의하면 의외로 나같은 배경묘사극혐불감증 독자들도 많다!). 나도 아름다운 배경묘사에 감응하는 인간이 되고 싶지만 그건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벚꽃을 봐도 감흥이 없어서 벚꽃 구경을 싫어하는 사람인 걸 보면 아마 앞으로도 소설의 배경 묘사를 즐기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은오의 소설 취향 분석이었습니다. 데이터 수집과 취향 분석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앞으로 은오가 배경묘사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는 작가의 소설을 읽겠다고 하면 "싫어할걸?" 하면서 말려주세요.
비소설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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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약혼자분이 신형철 마니아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잠시 그녀의 귀를 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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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문장상: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문장성애자는 신형철의 글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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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불쌍해상: 마리 루티, <남근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
제목이랑 표지가 알맹이를 학대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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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대깨상: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대가리가 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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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재미상(비소설 부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재밌다고들 하는데 진짜 재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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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언니상(비소설 부문): 비비언 고닉, <짝 없는 여자와 도시> <사나운 애착>
둘 다 좋으니까 둘 다 넣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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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부활기원상: 장 아메리, <늙어감에 대하여>
다시 부활해서 책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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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빛과소금상: 토머스 리고티, <인간종에 대한 음모>
쇼펜하우어에밀시오랑데이비드베너타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늘어지던 염세주의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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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페미니즘도서상: 레이첼 모랜, <페이드 포>
페미니즘 책 중에서 딱 한 권을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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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비소설상: 알랭 드 보통, <불안>
비소설 중에서 딱 한 권을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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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반성상: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반성하며 어린이를 올바른 마음으로 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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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분석상: 박권일, <한국의 능력주의>
<공정하다는 착각>보다도 이 책을.
1년에 50권도 겨우 읽던 나는 올해 대략 120권의 책을 읽었다. 50권이라는 수치도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치라는 건 알지만 나는 내가 일 년에 120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올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건 100퍼센트 알라딘 언니들의 공이다. 역시 어울려 노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음. 언니들이랑 놀려면 책을 읽어야 하니까 열심히 읽었고, 언니들이 읽는 책을 보면 재미있어 보이니까 따라 읽었고, 언니들이 내가 읽는 책에 관심을 가져 주니까 신나서 더 읽었다. 알라딘 서재가 내 독서 인생의 2막을 열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니들은 제가 언니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결혼신청으로도 뽀뽀로도 미처 다 표현되지 않는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원통하다! 맨날 결혼신청 해도 결혼도 안 해주고, 맨날 뽀뽀해도 돌아오는 뽀뽀는 거의 없지만-매정한 사람들....-그래도 제가 많이 좋아합니다. 아, 그렇다고 언니들만 좋아하는 건 아니고요. 극여초 알라딘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주시는 다정한 소수자 남성분들도 좋아합니다.
다들 올해도 저랑 같이 놀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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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4-01-02 공감 (55) 댓글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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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게 다 늙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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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게 다 늙기 때문이지, 라고 답했다. 꽤 자주. 왜 인간은 기껏 태어나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느냐는 물음이 떠오를 때마다 말이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썩 유쾌하지 않은 노동에 바치면서, 그렇게 해서 번 돈도 마음껏 쓰지 못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던지기를 주저하다 결국 포기하고 남은 미련에 허우적거리면서, 달지만 해로운 것들을 참으면서, 꾸역꾸역. 그러니까 이게 다 늙기 때문이지.
늙어감 없이 젊게만 살다가 떠나는 삶을 상상해 본다. 나는 맨날 놀다가 돈이 떨어지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일도 좀 지겹네.’라고 스스로에게 한마디 던져 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하고, 다시 돌아와서 놀고, 그렇게 살 거다. 기실 사람이 젊기만 하면 어떻게 살든 괜찮고, 어떻게든 살 수 있는 법이다.
“몸을 등한시하면서도 몸과 더불어” 살던 젊은 시절과는 다르게, 인간은 나이가 들면 “몸을 통해 늙어가면서 몸을 적대시”한다.(79쪽) 젊어서는 관심을 주지 않아도 얌전히 제 기능을 다하여 나와 세상의 순조로운 접촉을 돕던 몸이, 늙어서는 더이상은 못 참겠다며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쑤시고 아프게 하면서 자기주장을 해대는데, 그걸로도 분이 안 풀리는지 쪼그라들기까지 한다. 이 몸도 내 몸이라고 건사하기 위해 끌고 밖으로 나가서 돈을 벌어 보려 해도 써먹기 힘들고 누가 써주지도 않는 몸.
그러니 젊어서 고생해야 한다. 물론 젊어서 고생한들 늙어서 고생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젊어서 고생하지 않으면 늙어서 더 고생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지만, 죽어가는 과정에서조차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177쪽) “열악한 환경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복도에서 불편한 몸을 질질 끌어야만 한다.”(178쪽)
『사는 게 뭐라고』의 저자 사노 요코는 암 선고를 받고 기뻐하며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외제차까지 뽑았더랬다. 앞으로 1년 정도면 죽으니 무섭지 않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하면서. “안 무섭다니까. 오히려 기뻐. 생각해봐. 죽으면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고. 돈을 안 벌어도 되는 거야. 돈 걱정이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행운인걸. (…) 게다가 암은 정말로 좋은 병이야. 때가 되면 죽으니까. (…) 류머티즘 같은 건 점점 나빠지기만 할 뿐이고 계속 아픈데도 낫질 않잖아.” 맞는 말이다.
늙어감 없이 젊게만 살다가 떠날 수 없다면, 떠나는 날을 미리 알 수 있기만 해도 좋으련만. 들린다. 당신은 10년 뒤에 죽습니다. 내가 말한다. 오, 감사합니다. 걱정 없이 삶을 즐길 수 있겠어요! 장난이고요. 당신은 70년 뒤에 죽어요. 아니… 이건 모르고 사는 거랑 똑같잖아요! 역시 최고의 시나리오는, 삼키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알약을 소지한 상태로 재밌게 살다가 삶의 저울이 고통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는 순간 그 알약을 삼키고 끝내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런 알약은 구할 길이 없을 터, 외국인도 받아준다는 스위스 안락사 단체를 검색해 보기에 이르렀는데, 얘네도 죽을 병 걸린 거 아니면 안 받아준다고 하네.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는 1968년에 발간되었고, 『자유죽음』은 1975년에 발간되었다. 이후 그는 1978년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했다(요새 나오는 수면제는 100알을 목구멍에 털어도 안 죽는다). 저자의 삶의 이력을 아는 채로 『늙어감에 대하여』를 읽노라니 내내 든 생각. ‘어휴 인간아… 늙어감에 대해 이렇게까지 골몰하니 자살할 수밖에 없지. 어차피 다 늙고 죽는 거….’
초판 서문에 “내가 다루고자 하는 물음은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 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6쪽)라고 적혀 있듯이, 이 책은 늙어가던 장 아메리가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고 체험하고 해석한 것들을 가감없이 치열하게 적어내린 결과물이다. 여기에 노년기의 평안이나 지혜,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 따위는 없다. 있었다면 저자가 자유죽음으로 생을 마감하지도 않았을 터다. 내가 장 아메리라면 스스로의 지성과 필력에 취해서 오래 살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 책의 존재는 정희진의 저서로부터 알았는데, 정희진은 독후감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나이듦을 느끼는 독자들에겐 쉽고 깊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물론 ‘이미 알고 있어요.’라고 말할 젊은이들은 없을 것이다.” 어떤 젊은이는 이 책을 읽고서 늙어감이 이렇게나 씁쓸한 것이로구나, 내 젊음을 소중히 여겨 열심히 살아야지,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다른 젊은이의 한숨. 에휴 시발 어차피 다 늙고 죽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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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8 공감 (41) 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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