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4

알라딘: 함양과 체찰 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 ; 말 함양, 체찰

알라딘: 함양과 체찰


함양과 체찰 - 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 
신창호 (지은이)미다스북스201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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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100자평(11)리뷰(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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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퇴계의 생애와 사상을 핵심적으로 요약한 뒤에 '자성록'을 뼈대로 퇴계의 가르침을 재구성한 책. '함양과 체찰'을 통해 현대의 한국인들은 퇴계의 지혜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고, 

제1부 ‘함양과 체찰의 삶, 이황’에서는 ‘공부하는 인간, 퇴계’라는 측면에서 퇴계의 생애와 철학을 명료하게 재구성하고 있어서 학자로써의 퇴계뿐만 아니라 인간 퇴계의 일면도 재미있게 엿볼 수 있다.

퇴계의 마음공부는 현대인에게 절실한 덕목이다. 입시 위주 교육풍토, 1등 만능주의가 팽배한 한국사회가 뼈아프게 자성해야할 덕목이다. ‘함양과 체찰’은 마음공부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인에게 참된 공부가 무엇인지 일깨우는 죽비 같은 책이다. 두 번 세 번 혹은 그 이상 두고두고 펼쳐보고 곱씹어 볼만한 책이다.

한편 각 장마다 붙어있는 주해註解는 성리학에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단면과 추상적이고 어렵기만 한 성리학적 개념들에 대한 자세하고 치밀한 설명이 들어 있다. 꼼꼼하고 풍부한 주해를 읽다 보면, 조선의 직계 자손인 현대 한국인의 잠재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유교- 성리학의 기본 개념들, 리理와 치治, 궁리窮理와 거경居敬,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등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각 장마다 퇴계가 지은 시, 관련 그림 등을 곁들여 인문학적 지식과 독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목차


들어가며-조선이 낳은 위대한 학자가 들려주는 마음공부법

제1부 함양과 체찰의 삶, 이황
- 마음공부에 혼을 불사른 선비 퇴계의 생애와 학문
사람으로서 떳떳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다
학문과 벼슬 사이에서 고민하다
벼슬을 사양하며 참 학문을 추구하는 시소게임을 하다
학문과 연구에 몰입하다
자신이 거두는 삶에 최선을 다하다
조선의 학파의 거두에서 세계적인 사상가로 거듭나다

제2부 자성록 - 몸과 마음의 공부법

자성록 서문

제1절 벼 싹을 잡아당긴다고 벼가 빨리 자라지 않는다

제1강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1. ‘공부에 대한 조급증’이 마음의 병을 부른다
2. 뜻을 세우지 않으면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
제2강 ‘마음공부의 적’ 출세와 명예욕에 대해 충고하다
3. 무르익지 않은 공부로 높은 관직을 바라지 말라
4. 명예욕을 잘 다스려라
5. ‘공부를 잘 한다’는 칭찬을 두려워하라
6. 스스로 공부가 부족하다 여기는 마음을 유지하라

제2절 앎과 행동은 함께 굴러가는 두 바퀴다

제1강 몸으로 부딪치는 모든 일이 공부다
7. 집안일이 공부에 방해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8. 생활 속에 세상 이치가 있다, 성찰하라
9. 생활공부와 마음공부는 별개가 아니다
제2강 공부에는 마침표가 없다
10. 앎과 행동을 분리하지 마라
11. 공부는 끝이 없으며 평생 계속되는 사업이다

제3절 마음을 붙들어야 참다운 공부가 완성된다

제1강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말하다
12. 마음 집중을 몸에 익히도록 애쓰라
13. 고요한 곳에서 건강한 정신으로 몰입하라
14. 휴식할 때도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라
제2강 함양과 체찰을 거듭 강조하다
15. 인의예지를 체득하라
16. 잘못 배운 것은 몸소 바로잡는 용기를 지녀라

제4절 폭넓게 보라, 교류하라, 그리고 통하라

제1강 겉핥기식 공부를 꾸짖다
17. 성현의 말을 앵무새처럼 읊지 마라
18. 넓게 익히고 정밀하게 파라
19. 갈라진 지류를 보고 근원으로 착각하지 말라
제2강 나만의 지식 감옥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라
20. 진솔한 벗을 사귀어 유익함을 구하라
21. 후배와 제자의 물음에 겸손하게 답하라

제3부 마음을 다스리는 실천의 지혜


활인심방
수신십훈
퇴계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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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눈이 가는 곳으로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는 곳으로 삶이 움직인다는 것.
- 김연수 (소설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0년 1월 30일 교양 새책
중앙일보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0년 2월 6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신창호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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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학력 및 경력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졸업(철학 부전공)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철학 전공)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교육철학 및 교육사학 전공)
고려대학교 교양교육실장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장
한국교육철학학회 회장
한중철학회 회장

주요 저․역서
󰡔교육철학󰡕,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철학 및 교육사󰡕, 󰡔수기(修己), 유가 교육철학의 핵심󰡕, 󰡔유교의 교육학 체계󰡕, 󰡔대학, 유교의 지도자 교육철학󰡕, 󰡔유교 사서(四書)의 배움론󰡕, 󰡔율곡 이이의 교육론󰡕 외 다수 접기

최근작 : <교육철학잡기 5 (2022-2)>,<합리적 사고를 위한 12개 키워드>,<교육철학잡기 4 (2022-1)> … 총 13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조선 500년 유교사회의 빛나는 대표적 지성, 세계에 우뚝 서다!!
한국을 넘어, 동양을 넘어, 세계에 우뚝 선 학자, 퇴계 이황에게 현대를 관통하는 공부법을 배운다!! 유교의 핵심 덕목인 함양과 체찰의 번득이는 가르침!!
500년의 시간을 넘어서도 발휘되는 위대한 마음공부법!!

1. 21세기 들머리의 한복판, 왜 갑자기 퇴계 이황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배워온 퇴계 이황의 모습은 ‘심오한 유교 사상가’이거나 ‘이기론理氣論의 철학자’ 또는 ‘보수적이고 약간 관념적인 조선시대의 사상가’이다. 하지만 그 이해의 수준은 굉장히 낮고 게다가 피상적이기까지 하다. 퇴계에 대한 이미지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퇴계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거의 전적으로 무지에 가깝다. 그의 사상과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천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면서도 인간적인 사상가이자 조선 5백년 유교사회의 가장 빛나는 지성인 퇴계 이황이 21세기 현대 한국사회에 와서 천 원짜리 지폐 속에서 박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만들어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첫째, 20세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국교육의 문제다. 현재 한국의 초중고대학 교육은 기본적으로 서구식 교육관에 입각해 있다. 퇴계 이황이 그토록 강조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마음공부의 핵심이 인성교육인데, 학교의 공교육에서 쓰이는 인성교육은 미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의 다국적 교육철학과 방법론이 종합된 것이다. 설사 그것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동안 5천년 한국 역사, 가까이는 5백년 조선사회의 교육적 토대를 기초로 하여 마련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조선사회 최대의 교육철학자이자 인성교육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다음 두 번째로는 퇴계 이황의 사상에 대한 현대적 계승의 단절이다. 1970년대 이후 한국교육학계 일각에서 퇴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근자에는 일본이나 중국, 미국과 같은 곳에서 퇴계 이황의 사상에 대한 재조명과 세계적 사상으로서의 학문적 정립을 시도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조명이 덜 되고 있고 오히려 다른 철학자나 사상가들에 비해 외면당하고 있다는데 또 다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물론 퇴계의 학문이나 사상이 일반인에게 제대로 소개가 안 된 것에는 그의 저작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요인에도 불구하고 퇴계 이황의 학문적 성과를 오늘날 한국사회가, 그리고 세계 지성사회가 학문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 널리 재조명해야할 강력한 사명은 존재한다.

2. 그렇다면, 퇴계 이황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었는가?
- 조선 유교사회의 대표적 지성 퇴계 이황의 역사적 의미

1) 학문에 온몸을 바친 지성인, 청렴강직한 관리이자 선비!

‘강직한 암행어사로 활약하고, 군수 퇴직 후에 남은 건 두 개의 책상자뿐이었던 청백리!’

경상북도 안동의 시골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이황은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자라면서도 꼬마시절에는 이웃집 노인에게 '천자문'을 배우고, 열두 살 부터는 삼촌인 송재공에게 '논어'를 배웠으며, 스무 살 무렵까지는 어지간한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20세 무렵 이황은 '주역'의 뜻을 강구하느라 식음을 전폐하고 몰두하다가 평생의 지병을 얻어 이때부터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벼슬에는 욕심이 없고, 오직 공부에 뜻과 마음을 두었지만, 가족을 돌보기 위해 4수(?) 끝에 34세에 대과에 급제한다. 그후 본격적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를 거쳐 승진을 거듭한다. 그리고 40세에는 감찰기관인 사헌부의 ‘지평’이 된다. 이후에도 계속 사헌부와 홍문관, 성균관 등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나 이황은 언제나 청렴하고 강직하고 높고 깨끗하여 사욕과 탐욕이 일체 없었다.
이황은 박문수 이전에 벌써 강직한 암행어사로도 활약한 적이 있다. 42세 되던 해에 이황은 어사가 되어 충천도 지역의 군이나 읍을 돌면서 흉년구제 작업을 암행감찰하였다. 그리고 돌아와서 “흉년구제를 대비하여 경비를 비축”할 것과 “못되고 탐욕스런 공주판관 인귀손의 죄를 다스릴” 것을 당시의 왕인 인종에게 요청하여 실행하도록 만든다. 또한 그가 40대 후반 풍기군수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가져간 물건이라고는 달랑 책을 담은 상자 두어 개가 전부였다. 오늘날까지도 만고에 귀감이 되는 청렴강직하고 깨끗한 관리의 표상이다. 뿐만 아니라 이황은 43세 이후로는 나라와 왕으로부터 관직에 임명되면 그만두기를 계속하며, 임명받고 거절하기를 끝없이 반복하게 된다. 영예로운 벼슬자리보다 매화를 더 사랑하며 학문을 탐구하고 지성을 교유하기를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하여 관직을 맡으라는 명종의 거듭되는 요청에 대하여 퇴계가 제시한 ‘관직을 수행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 (①어리석음을 숨기면서 벼슬자리를 도둑질하는 것 ②병으로 몸을 못 쓰게 된 자가 녹봉을 도둑질하는 것 ③헛된 명성으로 세상을 속이는 것 ④잘못인 줄 알면서도 무릅쓰고 벼슬에 나아가는 것 ⑤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면서도 물러나지 않는 것)는 오늘날 21세기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모든 공직사회를 비롯한 주요한 기관의 수장과 리더들이 깊이 새겨야할 항목이라고 할 수 있다.

2) 효와 충(인과 예)을 실천하고, 조선사회 인성교육의 틀을 만들다!

‘어머님 3년상의 예를 다하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제자를 맞이하여 인사를 하다!’

이황은 두 살에 아버지를 여윈 후 홀어머니로부터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욕하기 쉽다. 과부가 어떻게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의심한다. 그러니 너희들은 남보다 백 배 더 공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비난을 면할 수가 없다!”는 가르침 속에서 공부를 하며 자랐기에 남보다 더욱더 부모에 대한 효와 나라에 대한 충, 인륜과 근본적인 도덕에 충실했다. 그래서 관직에 나간 지 4년째, 37세 되던 해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고향으로 돌아가 꼬박 3년상을 치렀다.
이러한 인본정신은 가정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40대 후반 나라의 명을 받아 풍기군수로 임명되었을 때 이황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에 해당하는 소수서원을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서원은 조선사회 이후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립대학교육의 근원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황은 소수서원을 비롯하여 후에 도산서원을 남김으로써 조선사회 올바른 사립교육 부흥의 혁혁한 공적을 세운 것이다. 또한 학자로서의 권위나 자존심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기대승, 정자중, 권호문, 이이 등과의 서간 및 내왕을 통해 빛나는 사상적 교유의 모범을 남기었다. 이것은 학문적 교유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형식에 있어서도 하나의 전범이라고 할 만한다. 아울러 이황은 죽는 순간까지도 병마와 싸우며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어찌 제자들을 안보겠는가!”라며 학자로서의 아름다운 최후를 맞이했다.

3) 조선의 사상가이자 세계에 우뚝 선 철학자!
“유교의 최고봉!” “학문과 도덕 모두 조선의 최고!” “세상에 보기 드문 기품 있는 학자!”

퇴계 이황은 생전에도 제자가 많았지만 타계 이후 후대로 내려오면서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퇴계의 후세대인 이익, 정약용, 정시한 등의 인물들이 사숙私淑의 형태로 퇴계의 학문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퇴계의 사숙학파라 일컬어질 정도로 하나의 뚜렷한 학문적 흐름을 형성했다. 한편 퇴계의 학문은 중국과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쳐 

일본 근세유학의 시조격인 후지와라 세이카는 자신의 학문형성이 퇴계에게 크게 빚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을 깨우쳐준 최고의 저서로 퇴계가 발문을 써서 편찬한 '연평문답'을 든다. 그 후로 후지와라의 제자이자 일본주자학의 도입자로 알려진 하야시 라잔, 일본 유학의 대가로 인정받는 야마자끼 안사이 등이 있어 역시 퇴계를 조선 유교의 일인자로 칭송하고 그의 제자들은 퇴계를 일컬어 “주자 이후의 첫 번째 가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이외에도 일본 실학파의 시조인 오쓰카 다이야는 퇴계를 존경한 나머지 자신의 호를 ‘퇴야退野’라고 지었으며 그의 제자인 미야케이가 퇴계를 칭송하여 지은 시가 남아있기도 하다. 

중국의 경우에는 퇴계 생존 시에 전파된 '성학십도'를 통해 이름이 알려졌고 사후에는 명성이 더욱 널리 퍼져 청나라 말기의 대학자인 양계초나 신해혁명 때 혁명군 수령이었던 려원홍 등과 같은 사람들이 퇴계를 일컬어 노래하고 찬양시를 썼다. 20세기 들어서면서 퇴계의 학문은 점차 국제성을 띠게 된다. 우리나라, 일본,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각지의 저명한 동양학자들이 ‘퇴계학 국제학술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특히 퇴계 사후 4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행사가 1970년 개최된 이래, 퇴계학 연구기관 역시 급속히 증가하여 미국, 일본, 대만, 홍콩, 독일 등 세계 각지에 퇴계학부 지부가 설립되어 바야흐로 퇴계는 국제적 사상가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3. 왜, “함양과 체찰”인가? - 현대 한국인들이 읽어야할 고전 중의 고전

‘함양’과 ‘체찰’은 퇴계 이황이 죽을 때까지 강조했던 유교적 지식인, 아니 공부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가장 주요하고 핵심적인 덕목이다. 퇴계 이황 스스로가 서간집 안에서 추려 묶었던 '자성록'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내용도 바로 이 ‘함양’과 ‘체찰’이라고 할 수 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병통이 되는 것은 뜻을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정자중에게 답함’에서
“공부란 한번 껑충 뛰어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정자중에 답함’에서
“책을 읽되 마음을 괴롭힐 정도로 하지 마세요.”-‘남시보에게 답함’에서

퇴계 자신은 경험을 통해 공부하는 사람의 병통, 즉 고질병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알묘조장(벼싹을 잡아당겨 벼가 빨리 자라는 것을 돕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이를 설명한다. 벼싹을 잡아당긴다고 벼가 빨리 자라는 것이 아닌 것처럼 공부도 ‘벼락치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빠른 시간에 성과를 내고자 한다. 퇴계는 이런 자세를 조급증이라 표현하며 공부하는 사람의 경계대상 1호로 꼽았다. 이밖에 공부에 관한 그의 깨달음이 계속 이어진다. ‘함양과 체찰’의 방법론이 고스란히 담긴 '자성록'은 퇴계 이황이 기대승, 정자중 등과 같은 후배 유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추려 엮은 서간집이다. 때문에 이 편지에는 일상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일상적인 내용의 문맥 속에는 당대를 관통하는 사상의 정수와 정치적 식견과 인간적 성찰의 근본적 도리에 대한 퇴계 이황의 핵심적 철학과 사상이 구체적으로 숨 쉬고 있다.

이 책 '함양과 체찰-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은 퇴계의 생애와 사상을 핵심적으로 요약한 뒤에 '자성록'을 뼈대로 퇴계의 가르침을 재구성하였다. 아울러 ‘활인심방’과 ‘수신십훈’ 등 퇴계 이황의 행동적 가르침을 첨가하였다. ‘함양과 체찰’은 박제화된 퇴계를 생생하게 되살리고, 난해하게 인식되는 그의 이론을 현대인이 소화하기 쉽게 만든 책이다. '함양과 체찰'을 통해 현대의 한국인들은 퇴계의 지혜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고, 제1부 ‘함양과 체찰의 삶, 이황’에서는 ‘공부하는 인간, 퇴계’라는 측면에서 퇴계의 생애와 철학을 명료하게 재구성하고 있어서 학자로써의 퇴계뿐만 아니라 인간 퇴계의 일면도 재미있게 엿볼 수 있다.

4. 일상 언어로 구성된 퇴계사상의 정수, 자성록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우다!’

한편, 퇴계 이황의 철학과 사상을 응축한 한자를 꼽으라면 ‘경敬’이다. 퇴계는 ‘경’을 공부의 영역으로도 확장해서 설명한다. 공부법 가운데 으뜸이 ‘경’이라는 것. 퇴계에 따르면 ‘경’은 “한 곳에 몰입하여 다른 쪽으로 마음을 쓰지 않는 공부법”이다. 경각심과 유사하다고도 한다. ‘몰입’, 또 다른 표현으로 ‘마음의 집중’은 퇴계가 간파한 공부의 핵심이다. 마음을 집중해야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제대로 된 공부가 가능하다는 것이 퇴계의 주장이다. 언뜻 들어도 당연한 말이다. 학식이 없는 필부라도 알 법한 진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퇴계는 그 사상을 벼리고 벼려 이 같은 진리에 도달했다. 몰입의 경지 ‘경’은 그래서 심오한 퇴계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당연해 보이면서도 심오한 진리. 우리는 흔히 이를 보편적 진리라 부르는데 ‘경’은 공부법에 관한한 보편적 진리라 할 수 있다.

“마음에 있는 것과 사물에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아님을 분명하고 투철하게 알아야 합니다”-편지4 ‘정자중에게 답함(2)’에서
“공부는 몸에 배도록 익히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익히는 일은 어떤 것이건 하나에 몰입하는, 이른바 정신집중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편지6 ‘정자중에게 답함(4)’에서

예나 지금이나 마음공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말일 것이다. 일찍이 퇴계는 마음공부법의 중요성을 파악했고 이를 후학들에게 깨우쳐 주고자 '자성록'을 엮은 것이다. 마음공부법은 퇴계의 철학으로도 읽힌다. '자성록' 곳곳에 등장하는 ‘이치를 깨우치는 법’은 마음공부를 빼곤 설명되지 않는다.
퇴계의 마음공부는 현대인에게 절실한 덕목이다. 입시 위주 교육풍토, 1등 만능주의가 팽배한 한국사회가 뼈아프게 자성해야할 덕목이다. ‘함양과 체찰’은 마음공부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인에게 참된 공부가 무엇인지 일깨우는 죽비 같은 책이다. 두 번 세 번 혹은 그 이상 두고두고 펼쳐보고 곱씹어 볼만한 책이다.

5. 이 책 '함양과 체찰-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의 구성과 특징

우선 제1부는 조선의 지성인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제2부는 퇴계 사상의 학문적 높이에 대하여 마음공부법이라는 큰 테마 아래 '자성록'을 재구성했다. 각 편지는 원래 순서(편지의 넘버링)에 구애받지 않고 주제별로 모았다. 독자가 수월하게 읽도록 배려하면서 편집했다. '자성록'을 단순 번역 수준이 아니라 마음공부법이라는 접근법으로 새롭게 배열한 책은 '함양과 체찰'이 처음이다.
퇴계가 지은 시편도 넣었다. 공부와 학문을 읊은 시들을 위주로 선별했다. 각 시는 '자성록' 내용과 의미론적으로 조응하도록 배치했다. 이 책은 마음공부에 대한 퇴계의 육성이 생생하게 담긴 '자성록'을 중심으로 하여 선생의 전 생애와 핵심적인 사상쳀 담긴 ‘활인심방活人心方’과 ‘수신십훈修身十訓’을 함께 묶었다. ‘활인심방’은 공부법의 실천요령인 셈이다. 즉 공부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일관되게 퇴계의 사상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자성록'은 퇴계선생이 후학들과 교류한 편지를 필사하여 직접 선별하여 묶은 일종의 서간집이다. 그동안 몇 차례 의역 출간된 적은 있었으나 지금껏 그 진가를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채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이 책에서는 그래서 편지글이라 하지만 독해가 만만찮은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는 '자성록'을 꼼꼼하면서도 편안한 문체로 정리했다. 따라서 '함양과 체찰'을 통해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퇴계선생의 원고를 청소년부터 일반인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성록'에서 퇴계는 생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공부의 조급함을 나무라면서 집중과 평생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처세와 공부의 관계에 대한 지적 또한 무척 흥미롭다. '자성록'을 읽어가노라면 따뜻한 사랑방에 앉아 나직하고 정겨운 어투로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큰 선생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젖어들기도 한다.
'자성록' 앞에 실린 퇴계의 생애와 학문의 편력 또한 흥미롭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은 퇴계는 이웃집 노인에게서 천자문을 배우면서 학문의 길로 들어서 벼슬을 하게 된다. 충청도 지방의 어사로 파견되어 민심을 살피고 왕에게 보고한 일도 있었다. 애초부터 벼슬에 뜻이 없었던 퇴계가 최고관직까지 올라 그 명성이 나라에 퍼져 학문과 벼슬 사이에서 기나긴 신경전을 벌이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제3부에 실린 ‘활인심방活人心方’은 만병의 근원이 마음에 있음을 꿰뚫어 본 퇴계가 병의 증상이 아닌 원인을 치료해야 함을 역설하면서 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글이다. 그리고 ‘수신십훈修身十訓’는 마음공부를 실행하는데 따라야 할 10가지 준칙이다. 주자학의 대가, 퇴계 이황의 사상적 진수가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각 장마다 붙어있는 주해註解는 성리학에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단면과 추상적이고 어렵기만 한 성리학적 개념들에 대한 자세하고 치밀한 설명이 들어 있다. 꼼꼼하고 풍부한 주해를 읽다 보면, 조선의 직계 자손인 현대 한국인의 잠재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유교- 성리학의 기본 개념들, 리理와 치治, 궁리窮理와 거경居敬,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등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각 장마다 퇴계가 지은 시, 관련 그림 등을 곁들여 인문학적 지식과 독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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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한 속으로 집중하라..생활 공부와 마음 공부는 별개가 아니다. 얼마나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고지식한 얘기던지..하나 40대 중반..마음공부와 생활공부의 일치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겠다
사복 2012-03-1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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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공부는 몸과 마을 모두를 단련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일깨워줍니다.
MooMin 2011-09-2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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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습니다. ^^
비단견우 2010-04-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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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기... 성공학이 `역사적 사명(?)`이 된 시절이라 귀한 책. 최소한 근동 유교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현실 정치가로서의 퇴계에게서 많은 부분 배울 수 있는 좋은 글 - 이런 글이 잘 안팔리는 시절이 좋은 시절인 건데.....
독서꽝 2014-07-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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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록이라는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자성록을 어떻게 풀어쓴 건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호호호호호 2014-07-2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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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과 체찰

요즘처럼 평생학습의 중요성이 새삼스레 강조되는 시절도 없는 것 같다. 자기계발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역사를 새로 조명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특히 고전을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책으로 출간하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

예로부터 교육은 사람의 도리를 깨치는 인성교육이고 전인교육이었지만 지식습득의 장이 되어버린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히 입시제도가 중심이 되어 버린 우리의 교육현장은 어린 학생들까지도 무한경쟁의 무대로 떠민다. 그래서 인성교육의 교훈을 고전에서 찾아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학문하는 바른길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책이 바로 <함양과 체찰>이다.

<함양과 체찰>은 조선이 낳은 세계적인 대학자인 퇴계 선생이 후학이나 제자들의 물음에 답한 편지들을 말년에 다시 추려 모아 책으로 엮은 <자성록>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퇴계 선생이 말하는 함양(涵養)은 인간의 본성을 보전하는 마음공부를 말하고 체찰(體察)은 마음에서 욕심을 제거하는 공부로 성찰을 말한다. 책 속에는 퇴계 선생은 율곡 선생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성리학의 학문 수양 방법인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를 인용한다. 거경은 내적 수양 방법이고 궁리는 외적 수양 방법이다.

책에서 말하는 공부법을 몇가지로 요약하자면 공부에 조급증을 가지지 말고 뜻을 세워야 하며, 명예욕을 다스리고 항상 부족하다는 겸손을 가져라는 것이 첫째다. 생활공부와 마음공부가 다르지 않다는 것과 아는 것을 행동하라는 것. 참다운 공부는 마음을 다스려 집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넓게 익히고 교류하여 스스로 지식 감옥에 갇히는 것을 경계할 것을 이야기 한다. 아마도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공부를 출세와 권력욕에 이용한 이가 많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특히 기대성과 <사단 칠정론>에 대해 논하는 서신은 참 흥미롭다. 학교 다닐적에 제목은 들어봤지만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기에 더 흥미를 끌었다. 사단(인,의,예,지)과 칠정(희,노,애,락,애,오,욕)을 리와 기로 나누어 설명하는 부분은 사실 좀 어려웠지만 무슨 말인지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2010년 올해는 조선이 낳은 세계적인 대학자인 퇴계 선생 탄생 51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70년 퇴계 서거 400주년 기념 학술행사를 시작으로 퇴계학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늘고 있다니 다행스럽기도 하고, 같은 민족으로서 자부심도 느껴진다.

한국 양명학의 시조인 남시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퇴계 선생의 독서법이 소개된다. 마음을 괴로울 정도로 심하게 읽지 말고, 많이 읽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답장으로 보낸 서신들로 미루어 퇴계 선생도 생전에 많은 책을 탐독하신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나도 여유로운 독서생활을 하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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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비 2010-02-22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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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선생의 진면목을 보다.

이황 선생의 면모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글이다. 주로 편지글 형태가 많이 실렸는데, 성리학에 관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 내용이다. 자신의 안부와 함께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곡진하고 친절하다. 거목 퇴계가 왜 이토록 유명하게 되었고, 그의 학문이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는지 그가 쓴 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회적 명망이나 지위로 봤을 때 보통의 유명인사라면 큰소리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 할텐데, 퇴계의 글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 나이 차이가 아무리 많이 나도 같은 학문의 길을... + 더보기
시골향기 2016-10-03 공감(4)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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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 언제나 명징하기를




스무 번째 서평



함양과 체찰- 신창호








그 마음, 언제나 명징하기를








이미지라는 것은 한편으로 아주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고착화되고 나면 완전히 굳어져버리는 불미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문득 천원자리 지폐에 그려져 있는 인물상이 떠오른다. 퇴계 이황. 그의 이미지는 얇디얇은 종이지폐 속에 갇혔다. 냉정한듯 하지만 수심이 묻어나는 표정과 굳게 다문 입술에서 엿보이는 강직한 성품, 다소 양 끝으로 올라가 붙은 눈 꼬리에서 알 수 있는 예리하고 깊이 있는 통찰력 따위를 재빨리 구성해볼 수도 있겠지만 다 접어두고서라도 이황하면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려서 읽었던 교과서 속에 그 모습 그대로 남루한 의복에 늘 검소한 일생을 살다 간 학자.



신창호가 펴낸 책 ‘함양과 체찰’은 퇴계의 글을 다시 요약 편집하고 읽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한글로 풀어 다시 세상에 빛을 만나게 해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은 퇴계가 완성한 문언 ‘자성록’에 기초를 두고 있다. 더불어 그가 평생을 두고 알고자 했던 학문과 스스로 걸어가기를 원했던 학자로서의 길, 또 같은 길을 가는 후배를 위한 일침과 조언까지 꼼꼼하면서도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학자의 자리에서 알게 된 이들과 주고받았던 서신을 소개하는 형식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답신이나 별지를 첨부하여 퇴계와 교류했던 이들이 서로 간에 배움을 주고받으며 깊이 있는 학문을 전개시켜 나가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사단칠정이나’ ‘이와 기’를 논함에 있어 그 의미를 한 자리에 두고 들어가자면 읽는 이 역시 머리에 흰 띠라도 두른 채, 연필이라도 들고 책을 봐야할 분위기이긴 하다. 그러나 삼백페이지 정도의 내용이 모두 퇴계와 더불어 논박을 했던 기대승의 그야말로 ‘논쟁과 논쟁’으로 채워지지 않았기에 그나마 다행스러웠다면 우스갯소리가 되려는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 내가 더 원하고 알고 싶었던 이야기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찾고 싶었던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하라 하면 머뭇거릴게 분명하지만 뭐랄까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이룩해 놓은 학문이라는 틀이 너무 거대해서, 그저 무심히 돌아본 퇴계는 언제나 날카로운 이성의 흔들림 없는 냉철한 무심한 석상 같은 이미지였다면 한 학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퇴계의 모습을 찾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찌되었나? 혹자가 질문을 한다면, 답을 얻었는가 묻는다면 무어라 말할까도 생각해본다. 그 답은 아직 더 알고 싶다, 로 기울어지고 있어 보인다. 책 한권으로 쉽게 판단할 소지가 못 된다는 뜻일까. 그의 책을 읽고 나니 생각하는 것조차, 글 쓰는 일 조차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건 퇴계가 일궈낸 그만의 사상이 빚어내는 힘의 영향일까








책은 이황의 삶과 자성록을 소개하며 3부의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실천의 지혜를 실으며 목차를 구성한다. 자성록과 더불어 3부에 소개된 내용 또한 읽고 깨닫는 내용이 있으며 간단하게 정리되어 부담 없이 읽어볼만한 내용이다.



저자 신창호의 소개에서도 언급된바 있듯이 이번 퇴계의 책은 마음을 수련하는 법이 강조되고 있다. 중국의 많은 학자 이를테면 공자나 맹자에서부터 그들의 수많은 제자들과 학파를 달리해서도 소개되는 장자와 그 제자들의 이야기와 인용 또한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결론은 한 가지 각자가 자신의 소신에 맞게 공부를 하라는 것이며,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언제나 마음과 정신을 명징하게 닦아놓으라는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이를 따지지 않고 제자들에게조차 예의를 다했던 퇴계의 서신과 그 행적을 들여다보면서 다시 묘한 생각의 꼬리가 늘어지는 것을 느낀다.








딴짓거리이긴 하지만 문득 특별히 무언가를 원하는 까닭은 아닌데, 아쉬움에 몸이 달아서 내게도 세상을 이야기하고 책을 이야기할 친구 하나가 그립다는 생각이 드는 것조차 외면하는 것이 측은하게 생각되더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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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예진 2010-02-2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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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책이 마음에 쏙 듭니다.

공부에 대한 조급증이 마음의 병을 부른다/ 뜻을 세우지 않으면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 무르익지 않은 공부로 높은 관직을 바라지 말라/명예욕을 잘 다스려라/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을 두려워하라/ 스스로 공부가 부족하다 여기는 마음을 유지하라......

퇴계 이황의 가르침과 삶은 표리부동의 것이어서 더욱 맑고 향기롭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내세워 속인이 선망하는 높은 벼슬의 자리도 마다하고 안분자족의 풍미와
깨우침에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서원을 세우고 뜻하는 바를 곧게 펼쳐나감에 한치의 흔들림이 없었던 고고한 영혼의 눈부신 족적에 숙연해지게된다.



옛 선인의 미덕은 단순한 겸손함만은 아니었던것 같다.
충분히 자신의 인재성이 무르익었는가 아니가를 가늠해보고 적절하다는 판단이 서면 만인을 위해 관직에 출사표를 던지라는 따끔한 가르침이 그의 삶으로 부터 또랑또랑 들려온다.



현대문명의 이기는 자신도 속이고 세상도 속이는 포장으로 위기를 모면하려한다.
고지식한 이황의 가르침 따위에는 콧방귀를 뀌고 외면하려들기 쉬운 자기피알시대.

경쟁과 치열한 자리다툼. 그 끊임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인재됨이 없어서일까.

진정한 퇴계이황의 지식인다운 처신이 그리운 시대이다.


옛부터 현대까지 변화가 많았다지만 근본된 세상이치와 인간의 도리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다수인것 같다.

이 시대 리더를 꿈꾸고 있다면 퇴계 이황의 앞서간 행적을 반드시 눈여겨보시라 권유해드리고 싶다.

적어도 퇴계이황의 바람직한 사상과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의 모습에서 기본적인 덕목을 벤치마킹을 할수만있다면 불협화음은 커녕 존경받는 절대적리더가 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페이지를 뒤적이다보면 행간행간 퇴계이황의 사각거리는 도포자락소리와 그의 밝은 정신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기대도하지 않았었는데 책을 읽으며 유유자적의 즐거움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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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장미 2010-02-2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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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과체찰

이 책을 읽는 내내 이황선생님을 단순히 지폐안에서나 보는 분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함양과체찰.
함양이란 학식을 넓혀 심성을 닦는 것이고, 체찰은 몸으로 익혀 실천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p6)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인께서 공부는 산수문제하나를 풀어서 점수를 잘받는것이아니라 마음을 올바르게 닦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것이 진정한 공부임을 알려주고있습니다.
즉 퇴계의 공부론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 그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p8)

어린시절 글을 읽고 생각에 몰두하느라 쇠약해지기도 하셨고, 벼슬보다는 학문을 하고 싶었던 이황선생님께서는 ’공부는 평생을 걸쳐 해야 하는 막중한 사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공부라는 것도 평생을 걸쳐서 해야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공부와는 다른, 좀더 나은 환경으로 나아가고 싶은 단순한 목적으로의 공부이기에 지금 하고 있는 공부의 방향과 앞으로 공부를 함에 있어서의 태도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해보게 했습니다.
이렇듯 어린시절부터 나이가들어 벼슬에 있던시기모두 하루하루 퇴계이황선생께서는 공부를 마음공부를 접었던적이 없으셨습니다. 공부라는것은 평생하는것임을 진정으로 알려주신분이십니다.
이런분의 공부법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고 앞으로의 생활에도 접목시킬 수 있었던것이 이 책을 읽으므로써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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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 2010-03-05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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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들이여, 배운 것을 실행하라!… 퇴계 이황의 ‘함양과 체찰’
입력 2010-04-20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책장]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 학이(學而)편 제1장에 나오는 말이자 대한민국 국민이 한문시간에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이 유교의 제1경전인 ‘논어’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논어’ 혹은 유가가 지향하는 핵심이 이 말에 모두 농축돼 있기 때문이다. 유가가 항상 강조하는 ‘학습’이라는 말도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대목은 ‘배우면 기쁘다’는 부분이다. 즉 배움에 방점을 찍는다. ‘공부는 재미있어야 잘한다’ ‘공부를 싫어하면 잘할 수 없다’는 말이 생긴 이유도 그 때문. 재미가 공부를 바라보는 하나의 경계지표가 됐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이 말의 전체 문맥에서 중요한 논점 하나를 놓치고 있다. 원래 이 말의 핵심은 ‘배우고 익힌다’, 즉 익힘이 배움과 병치한다는 데 있다. 아무리 배워도 그것을 실천하거나, 내 것으로 체화하고 그것을 행위에 접목하지 못한다면 본래의 가르침에서 어긋난다는 뜻.

퇴계 이황이 말한 ‘함양(涵養)과 체찰(體察)’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퇴계는 시보 남언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 유교 가르침의 으뜸으로 꼽았다. 여기서 함양이란 학식을 넓혀 심성을 닦는 일이고, 체찰은 몸으로 익혀 실천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자학은 원래 학문을 하는 네 가지 방법론으로 첫째 체인(體認), 둘째 체찰, 셋째 체험(體驗), 넷째 체행(體行)을 든다. 이는 일종의 학습 프로세서로, 나 자신을 살피고 덕성을 높이며 그것을 받아들여 실천하는 단계를 각각 가리킨다. 퇴계는 이 네 단계를 압축해 함양과 체찰로 정리한 후 다시 ‘학습(學習)’이란 두 글자로 환원했다. ‘학’은 배움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습’을 파자해보면 몸이 두 개의 날개를 달고 있는 형상이니 배운 내용에 두 날개를 달아 훨훨 나는 것, 즉 실천궁행(實踐躬行)이 배움의 덕목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조선의 유학자들은 배움을 실천으로 연결하기 위해 애썼다. 이 부분을 간과하고 유학을 단지 형이상학의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 여긴다면 이는 무지에 의한 왜곡일 수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 출사(出仕)한 이유는 학문으로 배운 바를 사회에서 실천하기 위해서였고, 반대로 일생을 은거하며 공부에 몰입한 유림들도 자기 방식으로 체행에 몰입한 것이다. 퇴계는 이 둘 사이에서 고민과 갈등을 거듭했다. 학문을 익히고 배운 바를 사회에 실천하기 위해 출사했지만, 공부에 부족함을 느껴 즉각 물러났으며, 배움의 길과 가르침의 길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제자들을 길렀다.

‘함양과 체찰’(신창호 엮고 지음/ 미다스북스 펴냄)에는 이런 퇴계의 고민과 생각이 담겨 있다. 지폐에서 매일 만나는 얼굴이지만, 우리가 퇴계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는 이유는 ‘이기론(理氣論)’ 같은 그의 학문적 성취에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조 형이상학의 심오한 세계를 후대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벅찬 탓이다. 하지만 이 책은 퇴계의 학문이 아니라 학문정신, 즉 함양과 체찰에 주목했다. 퇴계가 학문에 임한 자세, 출사 후 관리로서의 구실과 고민, 학자로서의 겸양과 자세 등이 담겨 있는 것. 물론 이 책에서 퇴계의 온전한 사상을 모두 접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의 정신세계만큼은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조선 최고의 유학자였던 퇴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책은 전편에서 퇴계의 삶을 일별하고, 후편에서는 퇴계가 다른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자성록’이라는 책을 통해 그의 육성을 들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학자로서의 사상보다 ‘학문하는 자’로서,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퇴계의 자세와 정신을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없는 안내자 구실을 한다. 늘 스스로를 함양하고 체찰하려 했던 당대의 지식인 퇴계를 통해 배움에만 몰입하고 익힘에는 소홀한 우리 후학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셈이다. 함양과 체찰, 어쩌면 퇴계의 시대가 아닌 바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내내 곱씹게 될 것이다.

박경철 blog.naver.com/donodonsu
<주간동아 7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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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涵養)과 체찰(體察)을 읽으며

ㅡ퇴계 이황의 마음공부 읽기
by솔바우Jan 02. 2022아래로


함양(涵養)과 체찰(體察)을 읽으며

신창호 작가가 쓴 이 책 <함양(涵養)과 체찰(體察)>을 읽기 전에 일본의 한 대형서점에서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난 적이 있다. 한국에서 <대망>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책이다. 일본에서는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그리고 최후의 승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가리켜 흔히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3인방 정도로 이해한다. 이들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차례로 패권을 잡았던 사람들이며,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를 개설한 1603년부터 조정에 정권을 반환한 1867년까지 봉건시대를 흔히 에도시대(江戸時代) 라고 칭한다. 일본은 200여 년간의 전국시대를 거쳤는데, 에도막부는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확립하는 도구로서 조선의 유학자인 퇴계 이황의 경(敬) 사상을 도입하였다.
즉 힘으로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유교적 윤리인 경 사상으로 도쿠가와 정권의 정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교육칙어 내용도 역시 이황의 경 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며 일본의 정신적 기반이 된 이 사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임을 아베 요시오 도쿄대학 명예교수가 밝힌 바 있다.


나에게 <함양과 체찰>은 이렇듯 일본의 근대화에 정신적 기틀을 제공한 퇴계사상, 혹은 퇴계라는 인물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이 책의 내용을 들여다본다.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적 관계에서 서로 교류하는 연계 활동으로 체득하고 실천하기 위한 후천적 소양을 갖추기 위한 마음공부가 필요하며 그 방법은 다양하다고 말한다. 퇴계는 스스로를 뒤돌아보며 지적 소양을 쌓고 품성을 닦으며 끊임없이 성찰하는 자기 관리를 매우 중요시하였다. 함양은(涵養)은 학식을 넓혀 심성을 닦는 것이고 체찰(體察)은 몸으로 익혀 실천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의 지성인으로서의 성장은 유교적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의 공부는 20세 정도에 기초가 다져진 것으로 보인다.
사서삼경-사서는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말하고 삼경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을 말함-의 마지막 단계인 역경은 주역(周易)이라고도 하는데, 이 주역을 공부할 무렵 퇴계는 식음조차 거르며 <주역>을 뜻을 강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퇴계는 34세의 늦깎이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올라 40세에 사헌부 지평에 이른다. 그러나 영예로운 벼슬자리에 연연하지 않았고, 여전히 마음공부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43세부터는 벼슬할 마음이 적어 물러나 쉬기로 뜻을 정했음에도 조정에서는 여러 차례 그를 불러들였다. 45세 인종이 승하하고 명종이 즉위하지만 여전히 퇴계를 찾았다. 그가 풍기군수로 재직 중에 요즘으로 비교하면 사립대학에 해당하는 서원인 소수서원을 세우는데 기여한다. 이를 통하여 조선 유교사회의 학문적 부흥과 교육사업의 주춧돌이 놓이게 된 계기가 된다.
또한 53세에 성균관의 수장인 대사성이 되어 교육에 대한 각성을 촉구한다. 이 무렵 사단칠정의 단초가 된 정지운의 <천명도>를 개정한다. 그는 편지를 통하여 지인, 후학들과도 교류를 지속하는데 특히 고봉 기대승과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이황이 12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8년 동안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편지는 유명한데, 이것은 유학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사칠이기론(四七理氣論)의 변론 후 퇴계는 그의 학식을 존중하여 대등한 입장에서 대하였다. 또 남시보와의 편지에서는 마음공부를 하며 조급증을 일으켜 ‘싹을 억지로 잡아당겨 성장을 도우려’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함을 경고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함양과 체찰은 유교의 근본 취지로 자연의 이치와 세상의 일이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퇴계는 기명언(기대승)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무르익지 않은 공부로 높은 관직을 바라지 말며 명예욕을 경계하였다. 정자중에게 보낸 편지에서 퇴계는 몸으로 부딪히는 모든 일들이 공부가 됨은 물론, 공부에는 마침표가 없으며, 앎과 행동을 분리하지 않았고, 공부는 짧은 기간에 완성되지도 않고 도약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또한 퇴계는 하나의 일을 할 때에는 다른 일이 있더라도 하나의 일에 마음을 전념하고 두 갈래로 쓰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이는 공부를 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는 실천의 지혜로서 훌륭한 선비는 올바른 인간의 길에 대해 들으면 그것을 힘써 실천하는데, 공부를 조금 했다는 선비는 경우에 따라서 실천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며, 공부가 부족한 선비는 실천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웃고 조롱을 한다고 하였다. 이는 나만의 지식 감옥에 갇히는 것을 경계한 것이리라. 이렇게 퇴계는 일상의 평이하고 명백한 곳에서 이치를 발견하기를 갈구하였고, 나아가 마음공부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어쩌면 사회적 처세와 성공을 위한 도구로써 공부를 지향하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공명이 크게 울리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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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과 체찰
기자등록 2019.05.30

치과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 이야기(424)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건 1심 판결이 유죄로 끝났다. 자녀 성적을 위해 불법을 행한 아버지의 비뚤어진 부정을 비난하기 전에 그들 부녀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 교육 현실의 자화상인 것을 반성하고 현 교육에 대하여 깊은 통찰을 해야 한다.

 

서울의 한 국립대 교수는 아들을 위해 시험문제를 유출했다. 이 두 사건은 매우 유사하다. 대표적 교육자들이 자녀 성적을 위해 교육과는 위배되는 행위를 하였다. 그들에게 교육은 그저 돈벌이 수단이었거나 이익을 위한 도구였을 뿐, 철학도 윤리도 없었다. 두 번째는 가장 큰 피해자가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녀들도 공모를 했다면 가해자이며 피의자이지만, 부모가 미성숙한 자녀들에게 옳은 길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삶을 정상적이고 정의롭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이른 나이에 상실하였다. 또 범죄행위를 했다는 비난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대학교수보다 교무부장이 더 나쁜 상황을 만든 것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원이 정황 증거가 넉넉하다고 표현할 정도인 상황에서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억울할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 배제할 수는 없지만, 고등학교를 다니고 시험을 치러 본 사람들이라면 물리 문제를 풀이과정 없이 암산만으로 만점을 맞았다는 것을 믿기는 정말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는 아빠 심리가 궁금하다. 우선 단순히 결정적 증거가 없으니 인정하지 말라는 변호사의 조언을 따를 가능성이 있다. 법원도 정황 증거만으로 유죄를 판결하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자기 최면이나 암시로 잘못한 기억을 지우고 자신은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성격장애이다. 셋째는 자식들에게 범죄자라는 멍에를 지우지 않겠다는 부정(父情)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자신들이 아무리 옳다고 주장해도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회와 단절하거나 그들을 모르는 외국에서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모두에게 인정될 용서를 구하는 편이 자녀들 인생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자녀 또한 공범으로 별도 소년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아빠와 마찬가지로 자녀들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아빠 생각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 판단된다. 아빠가 생각을 바꿔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법원은 선처를 하지 못한다. 아빠의 어리석음으로 시작된 사건에서 그는 또 어떤 결정을 할지 궁금하다.

 

위 두 사건에서 부모들의 가장 큰 잘못은 불법을 행한 것보다 행복의 조건을 몰랐던 ‘무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람이 미덕에 따라 행동할 때, 선을 행하고 만족하게 된다. 미덕의 실천은 행복에 대한 가장 확실한 길이다’라고 했다. 절대 선을 추구하는 종교를 제외하고서도 모든 철학과 학문에서 ‘행복은 미덕과 선에서 온다’고 정의한다. 부정한 방법을 통한 성취는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 부모의 무지에서 시작됐다.

 

학교 교육의 모체인 서원을 처음 시작한 퇴계 이황은 앎(교육)과 행동(실천)을 굴러가는 두 개의 바퀴라고 말하고 아는 것에 대한 실천을 강조했다. 이황은 인성교육의 핵심으로 함양과 체찰을 말했다. 함양은 학식을 넓혀 심성을 닦는 것이고, 체찰은 몸으로 익혀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행동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체찰은 몸으로 익히는 공부의 가치로 단지 알기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공부가 아니라 하였다. 공부(工夫)라는 한자적 의미가 장인들이 숙달된 행위를 통해 물건을 생산해 내듯이 배움도 실천적 행동을 보일 때 완성된다 하였다.

 

안동이 교육의 본거지이며 전통유학의 정신적 장소인 이유도 퇴계의 고향이고 그가 그곳에서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누가 살든지, 세월이 얼마가 지나든지, 안동은 그런 곳이다. 무지로 잘못된 생각을 인지하지 못하면 잘못된 행동이 나온다. 진정한 교육이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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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 저자] "퇴계는 내면(內面)을 닦으라 합니다, 일상에서요"
《함양과 체찰》 신창호 교수

곽아람 기자
조선일보 201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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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대한 조급증이 마음의 병을 부른다', '마음이 괴로울 정도로 책을 읽지는 말라', '마음을 비워 한가하고 담백한 생활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라'….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숨 돌릴 만한 쉼표를 찍어주는 이 말들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제자들에게 들려준 마음 다스리는 법 중의 일부다.

최근 퇴계의 마음 공부법에 대한 책 《함양과 체찰》(미다스북스)을 낸 신창호(46)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퇴계가 남긴 이 말들은 점진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유교(儒敎) 공부법의 핵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퇴계는 제자 남시보(南時甫)에게 보낸 편지에서 '싹을 억지로 잡아당겨 성장을 도우려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기운을 소진하게 된다'고 합니다. 공부를 갓 시작한 사람들이 빨리 경지에 이르려는 욕심 때문에 마음이 고통스러워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지요."

《함양과 체찰》은 퇴계가 말년에 자신이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 중 스스로를 돌아볼 만한 것을 묶어 펴낸 《자성록(自省錄)》 중 현대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쉬운 말로 번역해 엮은 대중교양서다. 책의 제목인 '함양(涵養)'과 '체찰(體察)'은 유교의 근본 취지를 이른다. 신 교수는 "'함양'은 내면을 닦는 것이고 '체찰'은 마음으로 닦은 것을 몸으로 직접 살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일상의 도리, 세상의 이치 등을 염두에 두고 마음을 다스리다 보면 장아찌에 간장이 배듯 그것들이 마음에 스며 들어갑니다. 이렇게 '함양'된 가치들을 내가 잘 실천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바로 '체찰'입니다. 인성교육이 도외시되고 지식교육만 중시되고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들이 꼭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말입니다."

신창호 고려대 교수는“동양의 고전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서“이를 바탕으로 한국교육철학의 기초를 닦아놓고 싶다”고 했다.
신창호 고려대 교수는“동양의 고전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서“이를 바탕으로 한국교육철학의 기초를 닦아놓고 싶다”고 했다.
퇴계는 한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명예욕을 잘 다스리라"고 조언하고, 또 다른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무르익지 않은 공부로 높은 관직을 바라지 말라"고 충고한다. "유학에서 말하는 마음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 남을 다스림)'이라는 말이 있지요. 내면을 닦지 않고 일단 권력부터 쥐고 보는 요즘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정신이지요."

'유교 교육학'이 전공인 신 교수가 퇴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려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1996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받은 석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율곡의 수기론(修己論)'이었고, 2001년 고려대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중용(中庸) 교육사상의 현대적 조명'이다. 그는 "2~3년 전부터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를 찾기 위한 곳에 바로 퇴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오히려 수많은 유혹이 찾아오더라고요. 여기저기서 이 자리, 저 자리 맡아달라는 제안도 많고…. 마음을 닦기 위한 일종의 롤모델이 필요했는데, 퇴계가 보였지요."

그는 대학 시절 읽었던 《자성록》을 다시 꺼내 들춰보기 시작했다. 20대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퇴계는 참 겸손한 분이셨어요. 자신보다 서른 살 가까이 어린 기대승과도 끊임없이 논쟁했지요.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어디 제자가 지도교수한테 달려들겠어요? 교수로서 그러한 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가 이번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인격수양은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인격수련이라는 것은 대부분 체험학습, 현장학습 등 이벤트성으로만 이루어집니다. 퇴계는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집안일이 마음을 갈고 닦는 공부의 출발점이니 공부에 방해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일상에서의 배움을 강조한 것이지요. 사람들이 이러한 퇴계의 말을 붙잡고 좀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곽아람 기자
문화부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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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어원: 한자 涵養
1. 능력이나 품성 따위를 길러 쌓거나 갖춤.
인격 함양.
정서 함양.
의식 함양.
독서는 학생들의 지식과 정서 함양에 크게 이바지한다.
동사: 함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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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과 체찰
책소개

함양’이란 능력이나 품성을 기르고 닦는다는 뜻이며 
’체찰’은 몸소 자세히 살펴봄을 뜻하는 말이다. 

이‘함양’과 ‘체찰’은 퇴계 이황이 죽을 때까지 강조했던 유교적 지식인, 혹은 공부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덕목이다. 퇴계 이황 스스로가 서간집 안에서 추려 묶었던 ’자성록’에서도 가장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내용도 바로 이 ‘함양’과 ‘체찰’이었다. 『함양과 체찰-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은 퇴계의 생애와 사상을 핵심적으로 요약한 뒤에 ’자성록’을 뼈대로 퇴계의 가르침을 재구성하고 있다. 또한 ‘활인심방’과 ‘수신십훈’ 등 퇴계 이황의 행동적 가르침을 첨가해 그의 삶과 철학을 소개한다. ‘함양과 체찰’은 지폐속에 박제화된 퇴계를 생생하게 되살리고, 난해하게 인식되는 그의 이론을 현대인이 소화하기 쉽게 풀어 쓰고 있다. ’함양과 체찰’을 통해 현대의 한국인들은 퇴계의 지혜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공부하는 인간, 퇴계’라는 측면에서 퇴계의 생애와 철학을 명료하게 재구성하고 있어서 학자로써의 퇴계와 인간 퇴계의 일면도 재미있게 엿볼 수 있다. 각 장마다는 자세한 주해가 첨부되어 있는데 이는 성리학에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단면과 어렵기만 한 성리학적 개념들에 대해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꼼꼼하고 풍부한 주해를 읽다 보면, 조선의 직계 자손인 현대 한국인의 잠재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유교 성리학의 기본 개념들, 이와 치, 궁리와 거경, 격물치지, 사단칠정론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각 장마다 퇴계가 지은 시, 관련 그림 등을 곁들여 인문학적 지식과 독서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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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앎과 사색-퇴계의 신사체찰을 통한 앎의 극진

토포스맨추천 0조회 12610.08.24 
앎과 사색

-퇴계의 신사체찰을 통한 앎의 극진

 

愼삼갈신思생각할사體몸체察살필찰

-류 우 현

 

유가에서 강조하는 거경궁리의 자세 중에서 궁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세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허심손지(虛心遜志)이고, 다른 하나는 신사체찰이며, 또 다른 한 가지는 침잠완색(沈潛玩索)이다. 이들은 퇴계 이황 선생이 자신의 삶과 공부에서 스스로 실천하였던 궁리의 방안인 동시에 가르친 교육의 내용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허심손지'는 마음을 비우고 뜻을 겸손하게 한다는 뜻을 지녔고, 다른 하나인 침잠완색은 주체와 대상의 대립을 벗어나 객체에 자신을 잠기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여기서 특히 신사체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신사체찰’이란 삼가서 생각하고 몸소 체득하여 인식으로 나아가는 일을 말한다. 의미를 해석하는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해석할 수 있겠으나 대의(大意)에서 말한다면 그렇다.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그 뜻풀이를 정교히 하려는 데 있지 않고 그 대의에 따르기 위해 필요한 자세를 살펴보는 일이다.

신사체찰하기 전에 미리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겸허한 자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지식들이 얼마나 옳고 그른지 면밀히 검토해서 진위를 고려해보았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과연 정확하고 진실한지 살펴보지도 않고 육감이란 것에 너무 의존하지 않았는가, 모든 것을 필연적 귀결로만 해석하려는 과학적 분석과 탐구에만 매달리지 않았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경험에 의존하지 않았더라도 우리의 인식의 과정을 너무 신뢰함으로써 쉽게 믿어버리는 일은 없는가를 검토해 볼 일이다. 경험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의 지식을 나의 것으로 믿고 그것을 진리라고 보는 일을 소크라테스는 의견(doxa)이라고 하여 경계하였다. 차라리 자신이 무식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시작하는 태도가 허심손지이다. 소크라테스의 강조한 ‘무지의 자각’이 출발점이다. 무지의 자각은 겸손하여 배우고 탐구할 수 있는 근본 바탕이다.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자세를 지니지 않는다면 우리의 속은 꽉 찬 그릇과 같아져서 무엇을 더 이상 담기 어려워진다.

겸손한 자세를 갖춘 후에는 치지의 방법으로서 신사체찰이 필요하다. 치지(致知)도 성리학자가 보는 것과 양명학자가 보는 관점이 다르다. 성리학에서는 앎을 궁구(窮究)하는 일에 한정하지만 양명학에서는 마음의 양지를 극진히 하여 구체적으로 행하는 일을 일치시키는 것까지 포함한다. 여기서는 퇴계 성리학의 관점에서 치지를 말하고자 한다. 신사(愼思)는 삼가서 생각하는 일이므로 정밀한 사색을 뜻한다. 여기서 생각(사색)은 마음에 구해서 증험(證驗)이 있고 소득이 있어야 한다. 『중용』은 치지(致知)의 방법 곧 앎에 도달하는 공부를 하는 방법으로서 널리 배우는 것, 살펴서 묻는 것, 삼가서 생각하는 것, 분별하는 것 네 가지를 제시하였다. 퇴계 선생은 그 중에서도 특히 신사(愼思)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체찰(體察)은 앎(인식) 자체만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몸소 체득하여 지식을 공고히 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실질(實質)이 있도록 지혜를 얻는 과정이다. 공자가 배우기만 하고 사색이 없으면 얻는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 체찰한 것을 깊이 사색(思索)하는 신사의 과정으로써 앎을 완전하게 나아가도록 한다.

신사와 체찰 어느 한 가지만으로서 앎을 완전하게 충족시킬 수 없다. 공자는 사색을 강조한 것과 똑같이 배움도 매우 중시하였다. ‘배우지 않고서 사색만 하면 위태롭다’고 한 것은 이를 가리킨다. 언젠가 우리 사회는 자신의 직분에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 성공의 도구로써만 추구하는 공부를 중시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그러므로 앎 자체에서 얻는 기쁨을 얻지 못하고 경쟁적으로 공부하고 의무적으로 공부하는 습성을 기르게 되었다. 사람에게 주어진 명분(名分)이란 말은 그리 구태적(舊態的)인 어휘가 아니다. 명분은 각각의 명목名目)에 따라 이루어야 할 분수(分手)이다. 이 분수에 맞게 최선을 다하고 연구하고 노력하면 필시 언젠가는 크게 이루어 지식도 활통(滑通)하게 되고 지위도 상승하게 된다. 배우지 않고 사색만 하는 것은 대체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지닌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런 사람은 배우지 않고도 많이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의 사색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정책이나 방법은 진실성이나 실질에서 멀고,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게 된다. 잘못된 방책은 많은 수고와 예산을 낭비하고 그것을 알아차리게 될 때에는 손실이 크다. 잘못된 결과를 되돌리기 위해 더 많은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심지어 전쟁이나 전투에서 지휘관이 무지한 판단을 내리면 그 결과는 심각한 인명 피해와 영토 손실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니 이것이 공자가 말한 배우지 않고 사색한 결과 초래되는 위태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고전을 배우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이런 신사체찰의 묘지(妙智)를 체득하기 위한 것이다. 동양 고전 뿐 아니라 서양 고전도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서양 고대의 철학이 양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서양의 정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뿐 아니라 자연철학으로부터 헬레니즘의 완결까지 무려 천여 년 간 지속된 기나긴 역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것이 중세 천년을 단절하기 않고 연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가 서양 사상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한 말처럼 고전은 완전히 멸절(滅絶)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제자백가로부터 시작된 동양 고전에서 겪었던 사상적 분산(分散)과 통합(統合), 생멸(生滅)과 진보(進步)가 교차하던 역사적 변증 과정을 통하여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온 사상의 흐름에서 우리는 체찰의 경험의 누적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반드시 다독을 권장할 필요는 없으나 고등학생이라면 적어도 동서양 고전들을 여러 권을 읽고 앎을 체득해나가야 한다. 적어도 자기의 인생을 결정할만한 열 권 정도를 마음에 품어야 한다. 교사는 적어도 고전을 마음속에 서른 권 정도를 두어야 한다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학생이 모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으나 선생이 모르는 것은 죄가 된다. 그 이유는 남에게 영향력을 덜 미치는 학생들보다 영향력이 큰 가르치는 자들이 남과 사회를 더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지를 무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죄를 짓는 일이 된다.

스스로는 지니지도 않은 '앎'을 나누어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 모든 선생이나 지식인, 행정가들은 이상한 직무에 종사하고 있으며, 더욱 사회를 비참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들이 열과 성과 지혜를 다하여 맡은 일을 수행하는 데 있다. 살피고 살피며 겸손하게 배워야 하고,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아는 척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 퇴계 선생의 교훈은 오늘 이 시점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바르게 아는 만큼 진실을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바르게 사색한 만큼 진실하게 행동할 용기를 지닐 수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로 부정하기 어렵다. 함부로 안다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안다고 하는 것들 중에는 진지한 반성과 검토를 하여 증험을 얻지 못한 이상 '참된 앎'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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