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4

에도시대 일본인들의 퇴계이황비판. - 나치 마이너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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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번역] 에도시대 일본인들의 퇴계이황비판.
유교탈레반 2020.12.25 02:36:37
조회 372 추천 3 댓글 2



일본의 주자학에 관하여 약간의 위키백과의 내용을 번역하였는데, 사실 유학에 있어서 일본은 조선보다 유학연구에 더 다양화 되있었고 그에맞춰 조선의 사상가를 비판하는 수준까지 오게된다.

아무래도 이전의 관학파를 몰아낸 사림파의 학문이 사상적으로 치우친것과 관료채용을 과거시험에 기반으로 둔것등 조선은 학문에 획일화가 되어버린것과 같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것은 논외로 두고 나는 우연히 한 논문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은근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중요한부분을 골라 번역을 해 올리고자 함.

이 갤의 주된 목적중 하나가 우리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세우는것인만큼 전통적인 유교상역시 참조할것이 되니 그것에 도움이 됬으면 좋겠음.




내가 일본어 고문(古文)은 전문적으로 공부해본적이 없어서 일본웹의 고문사전을 검색해가면서 고문을 번역했는데, 일일이 찾아번역하는데는 한계가 있어 이번글은 일본어 본문을 같이 올리거임.

논문의 다음 내용들도 차차 올릴 생각이고, 일본역시 자신들의 종교인 신토를 주자학의 이기론적으로 해석하는등 우리가 볼땐 쓸대없는 짓들을 많이 했으니 이글보고 일뽕으로 흑화해버리는 불상사가 없기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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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퇴계 이황을 존경했는가?




-阿部吉雄が一九 六五年に著した『日本朱子学と朝鮮』は、李退渓を大きく取り上げ、彼の思想が藤原惺窩 や林羅山、山崎闇斎など、日本朱子学派の形成に大きな影響を与えてきたことを実証した とされている。

아베 요시오(阿部吉雄)가 1965년에 쓴 '일본주자학과 조선'은 퇴계이황을 높이평가, 그의 사상이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와 하야시 라잔(林羅山), 야마사키 안사이(山崎闇斎)와같은, 일본주자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것을 실증하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このテキストの登場は、それまでの日本人の朝鮮儒学に対する無関心を根 底から揺さぶっただけでなく、韓国においてもきわめて高い評価を獲得してきた。

그 원문의 등장은, 그당시까지의 일본인의 조선유학에 대한 무관심을 근본부터 흔들어놓았을뿐만이 아닌 한국에대한 높은 평가역시 산출해내었다.







-たとえ ば『韓国儒学史』を著した裵宗鎬は、この阿部の学説を踏まえ、「山崎闇斎の朱子学は、 李退渓文集全体を通じた成果であり、彼が李退渓を朝鮮一人と評したことを見ても、李退 渓の学問が彼に至大な影響を与えたことを斟酌することができる」8) 、「日本朱子学は朱子 理気哲学を李退渓流に理解していたと、間違いなく考えられる」9) と書き記している。  

예를들어 '한국유학사'를 쓴 배종호(裵宗鎬)는 이 아베요시오의 학설을 바탕으로 '야마사키 안상의 주자학은 퇴계이황문집전체를 통한 성과이며, 그가 퇴계이황을 조선제일이라고 평가했다고 보는것, 퇴계이왕의 학문이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것을 짐작하는것이 가능하다, 일본주자학은 주자이기철학을 퇴계이황류로 이해한것은 틀림이없다고 생각된다.'라고 기록하였다.







-日本朱子学の祖といわれた藤原惺窩や林羅山に始まり、山崎闇斎を師と仰ぐ崎門学派、 大塚退野、横井小楠、そして近代になって教育勅語の起草にもあずかった元田永孚などの 熊本朱子学派によって李退渓が深く尊敬されたという阿部の指摘は、戦前に日鮮同祖論や 天皇崇拝を強要された韓国人はまさに溜飲を下げる思いで歓迎し、疑いのない定説として 信奉されてきた。

일본주자학의 선조라고 불리는 후지와라 세이카와 하야시 라잔을 시작으로, 야마사키 안사이를 스승으로 모시는 키몬학파(崎門学派), 오오츠카 다이야(大塚退野), 요코이 쇼우난(横井小楠), 그리고 근대가 되어 교육칙어(教育勅語)의 기초를 맡았던 모토다 나가자네(元田永孚)등의 쿠마모토 주자학파(熊本朱子学派)에 의해 퇴계이황이 깊이 존경을 받았다고 하는 아베의 지적은, 태평양전쟁이전 일선동조론과 천황숭배를 강요받았던 한국인은 과연 속이 후련한 생각으로 환영하였으며, 의문역시 없는 정설로서 신봉되어왔다.







-しかし、すでに江戸時代において朝鮮や李退渓を批判する言説は広範に存在していた。 たとえば、山鹿素行(1622-85)は、『中朝事実』の中で「朝鮮は箕氏受命以後姓を易ふ ること四氏なり。その国を滅ぼして或は郡県と為し、或は高氏滅絶すること凡そ二世、彼 の李氏二十八年の間に王を弑すること四たびなり。況やその先後の乱逆は禽獣の相残ふに 異ならず」10)「況や朝鮮・新羅・百済は皆 本朝の藩臣たるをや」11)と書き記し、朝鮮を「禽 獣の相」を持った日本の「藩臣」とみなしていた。

그러나, 이미 에도시대에 있어 조선과 퇴계이황을 비판하는 언설은 넓게 존재해왔다. 예를들어, 야마가 소코(山鹿素行)는 중조사실(中朝事実)에서 '조선은 기자이래 성씨가 바뀐지 4회. 그 국가를 멸망시켜 혹은 군현으로 만들어, 혹은 고씨(高氏)를 멸절한것이 2세, 또한 이씨(李氏)이십팔년간 왕씨(王氏)를 사살한것이 4회.하물며 그 전후의 반역은 짐승의 상(相)과 다름이 없다.', '하물며 조선, 신라, 백제는 모두 본국의 번신(藩臣:번국)일랴'이라고 서술하였으며, 조선을 짐승의 상 이라고 취한 일본의 번신(藩臣)이라고 여겼다.







-また、伊藤仁斎(1627-1705)も『童 子問』の中で、「予少時嘗て朝鮮の李退溪が輯むる朱子書札を読むに、楊子直が姓字の下 に於て之を註して曰く、『朱門の叛徒』と。予竊に之を薄んじて曰く、『何ぞ見ることの陋 きや。往く者は追はず、来る者は拒まず、古の道なり。奚ぞ叛を以て之に名ることを為ん。 滉は蓋朱門を私して爾云ふ』」12)と記し、李退渓の『朱子書節要』が朱子の解釈を私物化し たものであるととらえていた。

또한, 이토 진사이(伊藤仁斎)역시 동자문(童 子問)에서, '내가어릴적 일찍이 조선의 퇴계이황이 집대성한 주자서례를 읽으니, 양자직(楊子直)이 이름아래에있어서 이를 주석하여 이르되, 『주몬(朱門:주자학)의 이단(叛徒를 의역)이라고.』

예절에 이를 가볍게 여기어 말하되 어째서 보는것이 더러운가, 따르는 사람은 쫒지않고, 오는 사람은 거부하지않고, 낡은 길이니. 어찌하여 이단을 통해 以て之に名る(고문 해석불가). 이황은 주자학을 사물화(私物化)하는것과 같다.' 라고 기록하였으며, 이황의 주자학절요(朱子書節要)가 주자의 해석을 사물화한것이라고 이해하였다.







-新井白石(1657-1725)が、「朝鮮の事、永く隣好を結ば るべき国に非ず。子細ある事に候。其ゆゑは朝鮮歴代の書共を見るに大かた我国を以て彼 国に臣属せし事の如くに記し置き、甚しきは倭酋、倭奴、倭賊などしるし候事、筆を絶ち 候はず」13) と記し、朝鮮を「永く隣好を結ばるべき国」ではないと主張したことは有名な 事実であり、さらに中井竹山(1730-1804)は『草茅危言』の中で、「神功の遠征已来、韓 国服従朝貢、我属国たる事歴代久く絶ざりしに」14) と主張し、明らかに朝鮮を蔑視してい た。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가, '조선이란것을 친하게 지내면 안되는 국가. 이유가 있는것. 그 이유는 조선역대의 서적을 보니 크디큰 우리나라를 신하국으로 바꿔 기록하니, 애처롭게도 왜추, 왜노, 왜적(倭酋、倭奴、倭賊)로 기록한것, 붓을 부러뜨리지 않을수 없다(?)' 라고 기록하여, 조선을 '친하게 지네는 국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것은 유명한 사실이며, 더하여 나카이 지쿠잔(中井竹山)은 초모위언(草茅危言)에서, '신공황후의 원정이래, 한국은 조공하며 우리의 속국이었던것이 오랫동안 끊기지아니하였으니.'라고 주장하여 명백하게 조선은 멸시하여왔다.







-そして、阿部が取り上げた元田永孚が活躍した明治期においても、中井竹山のこの『草 茅危言』が盛んに復刻されたことを想起すれば、「近世の思想家たちが朝鮮を問題にする 場合は、ほぼ、蔑視か侵略の対象としてであり、そのほかに、近世を通じて朝鮮の特定の 人物(たとえば、李退渓)や文物に対する尊敬の念をもつ朱子学者のグループが存在する が、こちらは思想的には発展させられない」15) という荒野泰典の主張の方が、阿部の指摘 よりもはるかに説得力を持つ。


또한, 아베가 주장한 모토다 나가자네(元田永孚)가 활동한 메이지시기에 있어서, 나카이 지쿠잔(中井竹山)의 초모위언이 활발히 재발견된것을 상기하자면, '근세의 사상가들이 조선을 논의의 대상으로하는경우, 대체로는 멸시와 침략을 대상으로하며, 그 이외에는, 근세를 통해 조선의 특정인물(예를들어 이황)과 문물에 대하여 존경의 생각을 가진 주자학자의 그룹이 존재하지만, 이쪽에서는 사상적으로 발전을 시키지 않을수 없다' 라고 하는 아라노 야스노리(荒野泰典)의 주장이 아베의 주장보다도 훨씬 설득력을 가진다.







-以上のことを考慮すれば、日本人が江戸時代から近代まで一貫して李退渓を尊敬したと いう主張にはかなり無理があることは明らかであろう。すでに定説化している阿部の立論 に問題はないのだろうか。


위의 것들을 고려하자면, 일본인이 에도시대부터 근대에 있어 일관적으로 퇴계이황을 존경했다고 하는 주장은 매우 무리가 있는것은 확실하다. 이미 정설화되어있는 아베의 주장에는 문제가 없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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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総合政策論叢』第18号(2010年2月) 島根県立大学 総合政策学会, 近代日本における李退渓研究の系譜学 ―阿部吉雄・高橋進の学説の検討を中心に―

井上厚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