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7

알라딘: 일상이 철학이다 삶의 지평을 넓히는 에세이철학 이종철 2023

알라딘: 일상이 철학이다















일상이 철학이다 
삶의 지평을 넓히는 에세이철학

이종철 (지은이) 모시는사람들 2023
-09-30
정가
17,000원
전자책
320쪽


책소개

‘에세이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의 철학화, 철학의 일상화를 주창해 오는 저자의 철학이 녹아 있는 에세이 모음집이다. 오늘 시대는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쓰는 시대이며, 그 하나하나가 자기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에세이철학론은 글이 비로소 시민 전체에게 자기표현과 실현의 도구로 작동하는 민주화 시대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이기도 하다.

철학은 극히 최근까지도 일부 지식인에 국한되는 학문 영역으로 치부되어 왔으나, ‘철학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삶에서 철학하기’로서의 철학은 특히 일상, 생활 세계에서의 글쓰기를 통해 구현되어야 하고, 또 누구나 철학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씌어졌다.

에세이철학은 일상어의 철학이며, 공유와 토론 철학이라고 말한다. 에세이철학이 주로 일상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다양한 소재와 관점, 다채로운 생각들이 녹아 있으나, 단행본으로 엮으면서 그것들을 갈래 짓고 다듬어서, 에세이의 성격에 무게를 싣되, 독자들과 철학적인 소통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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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내며
제1부_ 일상과 철학
일상과 도(道) 자율과 강제
실존적 아포리아(aporia) 운수 좋은 날
한국인의 내로남불 위험한 상상
고령화와 한국 사회의 대응 고령화 시대의 삶의 기술―1
고령화 시대의 삶의 기술―2 내가 바라는 엉뚱한 소망들!
습관 페이스북과 라이프니츠

제2부_ 영화와 비평
<아제 아제 바라아제>와 깨달음 <가을비 우산 속에>와 <안티고네>의 갈등 해법
<거래>(Arbitrage)와 빼어남의 악덕 <1911, 신해혁명>과 북한 체제
<십계>와 기독교의 본질 <필라델피아>와 이반의 사랑―1
<필라델피아>와 이반의 사랑―2 통쾌하지만 씁쓸한 영화 <암살>
<아임 얼라이브>와 좀비들 세상 <페르시아 수업>과 우연, 언어, 이성, 인간, 기억

제3부_ 사회와 정치
5월에 부침 민란과 직접민주주의의 전통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방정책 미국 사회의 흑백 차별과 기독교 근본주의

제4부_ 도구와 기술
글과 글쓰기 SNS와 공간의 소멸
소확행과 블루투스 음성 인식 기술과 글쓰기
기술과 인간 AI 시대에서의 인간의 고유성

제5부_ 역사와 문자, 그리고 한글
고대사 연구와 문헌 순혈주의와 동종교배
역사의 변곡점과 역사적 주체의 대응 역사 청산
불행했지만 자랑스러운 한국의 최근세사 반사대주의
사무라이와 일본 우익의 전통 한국과 일본, 역사
중국과 소국 콤플렉스 문자와 기록
문체와 사유 한글과 성경
한글날을 생각하며―1 한글날을 생각하며―2
한글 전용과 국한문 혼용 별의 이미지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 운초 김부용을 그리며

제6부_ 한국의 대학과 교육
공자와 공부 질문이 왜 중요한가?
언어와 학문 주권 의학 교육과 인문학
한국의 인문학 교육과 유학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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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43
뒤집기와 적대적이고 절대적인 부정만 능사로 하는 한국사회에서는 타협을 이야기하는 것은 변절이고 배반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제3 지대는 회색지대로 치부될 뿐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이 문제가 있다고 바로 상대 집단으로 옮겨 간다면 발전과 진보가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집단 이익에 봉사해서 서로 상대를 부정하는 논리만 나온다. 자기 집단이 문제가 있다면 상대 집단으로 투항하기보다는 중간 지대로 옮기는 것이 양측의 전향적 발전을 위해 필요한 태도이다.

P.63
나이를 먹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략)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자들의 태도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런 변화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이다. 지혜와 영성은 이런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통해 양성된다. 피해의식을 가지고 아무리 거부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자꾸 움츠러들 가능성만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삶에 대한 지혜로운 태도, ‘삶의 기술’이 필요해지는 시대이다.

P.94
영화는 종종 철학 수업이나 사유의 좋은 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강의 시간에 좋은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름 깊은 메시지가 있는 영화는 생각의 자극제가 된다. 요즘은 대학 강의실에서 영화를 이용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나도 강의를 할 때 한두 번 정도는 영화를 상영하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학생들도 좋아한다. 좋은 영화는 웬만한 텍스트 이상으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켜 준다.

P.144
배움을 강조한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고 했다. 오직 배움만이 인간을 사회적으로 성숙시키고, 교육만이 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토대를 다지는 길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이들은 오로지 입시 경쟁에 내몰리고, 학교는 폭력으로 얼룩지고, 교권은 땅에 떨어져 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도 한국의 낡은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이런 변화를 외면하고 있다.

P.153
한국사회는 여전히 이데올로기 싸움에 그칠 뿐 계급과 자본에 포섭된 영역은 좌우가 거의 비슷하게 공유를 하고 있다. 진보적 의식을 갖고 있지만 부와 불평등이나 그 밖의 여러 부분에서는 진보와 보수 간에 별 차이가 없다는 비판도 크다. 따라서 좌우가 공유하는 계급과 경제 영역에서의 정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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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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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일상이 철학이다>,<철학과 비판> … 총 12종 (모두보기)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교원대, 숙명여대, 서울여대 등에서 강의했고, 

몽골 후레 정보통신대학 한국어과 교수와 한국학연구소장을 역임하고, 한남대 초빙교수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현재 연세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브레이크 뉴스’와 ‘내외신문’ 컬럼리스트와 NGO 환경단체인 ‘푸른아시아’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고, 네이버 프레미엄 서비스에 정기적으로 기고를 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에세이철학’을 철학의 독립 장르로 만들기 위한 글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저서로 『철학과 비판-에세이 철학의 부활을 위해』가 있고, 공저로 『철학자의 서재』, 『삐뚤빼뚤 철학하기』, 『우리와 헤겔철학』, 『문명의 위기를 넘어』 등이 있으며, J. 이뽈리뜨의 『헤겔의 정신현상학』(1/공역, 2), A. 아인슈타인의 『나의 노년의 기록들』, S. 홀게이트의 『정신현상학 입문』, G. 루카치의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Ⅰ,Ⅱ』(2, 3, 4/공역), 『무엇이 법을 만드는가』(공역) 외 다수의 책들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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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오늘 우리는 누구나 글을 쓰고, 읽는 시대를 살아간다. “책을 안 읽는다! 안 읽어도 너~무 안 읽는다”는 말이 떠돈 지 이미 오래고,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서, 출판사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시대이지만, ‘글쓰기’와 ‘글 읽기’는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는 인간의 활동 분야이기도 하다. 하여, 오늘날은 ‘책 읽는 사람보다 책 쓰(고자 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가 되었다.
전통적인 글쓰기-책 쓰기 문법에 따르면 오늘날을 ‘글쓰기가 왕성하게 성장한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각종 SNS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글을 읽고, 쓴다. 책을 종이책에, 신문을 종이신문에만 한정하지 않으면, 종이책 독서나 TV 시청이 줄어든 대신 넷플릭스나 유튜브 시청이 늘어난 것까지를 아우르면, ‘정보 습득으로서의 독서’는 지극히 일상적이며, 지속적이며, 현대인의 삶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행위이다. 오늘날이야말로 읽고 쓰기의 르네상스, 진정한 혁명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책 읽기’와 ‘글쓰기’의 개념과 범위가 달라진 만큼,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의 범주와 용도도 크게 달라져야 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실제로 오늘날 인문학은 대학 울타리를 벗어나 삶의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문-사-철’을 포함한 정통인문학에서부터 실용적인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분야를 넘나들고 확장되고 심화되고 있다. 오늘날,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가 무제한, 무가격으로 공급되면서,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하고, 쓰고, 배포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교육 수준의 향상되면서, 좋은 글, 의미 있는 글쓰기에 대한 욕구와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에세이철학’은 이러한 시대 상황과 요구에 따른 새로운, 어쩌면 본래적이며 본질적인 철학하기를 주창하여, 철학을 일상화하고, 나아가 일상 즉 생활세계에서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것, 만나는 사람, 겪는 사건, 떠오르는 생각 하나하나를 철학적 수준에서 재음미하고, 그것을 글로써 정리(집필)하는 것을 말한다. 철학의 일상화가 필요한 이유는 생활과 괴리된 철학-학문은 의미 없으며, 일찍이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에서 ‘생각 없는 삶’의 위험천만함을 설파했듯이, 철학하지 않는 삶이란 위험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의 활동이 철학 활동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인식하고 인정할 때, 오늘날 정보의 홍수 속을 헤매는 현대인에게 철학적인 삶, 삶의 철학화가 의미 있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강단에서 철학을 교육해 온 저자가, 은퇴 이후 ‘에세이 철학하기’의 관점에서 그동안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발표해 온 글들을 한데 모으고, 단행본으로 편집한 것이다. 에세이철학에 ‘대하여’가 아니라, 실천적 글쓰기로써 에세이철학‘을’ 실현하고 실행하는 글쓰기의 성과를 모은 것이다. ‘단행본’의 의미와 ‘편집’의 의미가 더해짐으로써, 에세이철학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책이 되고 있다.


1부는 ‘일상과 철학’을 주제로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생활세계를 대상으로 철학하고 생활에 즉한 철학을 함으로써, “일상을 철학화하고, 철학을 일상화하자!”는 에세이철학의 본령을 보여준다. 철학자로서의 저자에게 다가오는 일상의 사건들의 의미를 일상에 내맡겨 버리지 않고, 그 속에 깃든 철학적 의미를 길어올리는 글들이다. 특히 저자가 새롭게 직면하는, 그리고 우리 사회가 급작스럽게 맞이하는 고령화 시대에, 에세이철학의 의미와 가치를 다각도로 논설한다.

2부는 ‘영화’를 철학적 사유 대상으로 삼아 철학(사유)을 전개한다. 영화뿐 아니라 유튜브나 넷플릭스 드라마 등이 그 안에 다양한 철학적 토론과 논의의 소재를 담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좋은 영화는 그 자체로 한 권의 책 이상의 것이 되고, 한 권의 책은 하나의 도서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에세이철학에서는 중요한 비유로 삼을 수 있다.

3부는 한국 사회와 정치 문제를 철학적으로 논구한다. 정치와 사회의 일들이란 곧 일상 이상의, 이외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에세이철학은 정치, 사회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은 많은 에너지 소모를 가져오는 일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주체적인 삶을 누리는 인간이라면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혜롭게,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정치사회 문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기술을 엿볼 수 있다.

4부는 도구와 기술에 관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직접적으로 에세이철학의 발상이 주로 소셜미디어에서의 글쓰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바로 중요한 논점 중의 하나이다. 그 밖에 AI에 기반한 디지털 혁명, 챗GPT 등으로 가속화하는 세계의 ‘탈인간중심주의’ 등이 인간의 정체성에 끼치는 영향, 그 속에서 인간이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인간다움의 실체와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5부는 ‘한글과 역사’라는 주제로, 저자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부문, 즉 쉬운 우리말로 철학하기라는 관점에서는 에세이철학의 핵심 주제가 되는 한글과 우리나라를 중심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새로운 세기의 세계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한다고 할 때, 이 지역의 국가 특히 우리나라가 어떻게 자기 자리를 잃지 않고, 그 안에 살아가는 우리가 또 어떻게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자주성과 공존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지, 에세이철학의 심화가 이루어진다.

6부는 저자의 전공 영역으로서, 평생에 걸쳐 체험해 온 대학과 교육 문제점을 일반 대중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오늘날 모든 한국인의 관심사이자 한국사회 문제의 출발점이며, 내일의 한국사회의 희망의 출발점이기도 한 한국 대학의 현실은 개혁이 필요한 상황임을 직격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 외에도 앞으로의 모든 글쓰기 활동을 ‘에세이철학’의 관점에서 전개함으로서 철학의 일상화, 일상의 철학화라고 하는 비전과 과제에 천착해 가고자 한다. 그것이 현대 사회, 시민들에게 중요한 동기부여와 가치창발의 계기가 되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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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 『일상이 철학이다』
 2023-10-29 
서평 _교수신문

『일상이 철학이다』 | 이종철 지음 | 모시는 사람들 | 317쪽


이종철 선생을 처음 뵌 것은 아마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던 작년 4월이었을 것이다. 인터뷰가 아닌 철저한 독자와 작가의 만남이었다. 첫 인상은 듬성듬성한 머리숱과 깊게 파인 미간주름이었다. 채 마흔도 안 된 나이에 탈모가 진행 중인데다가 미간에 벌써부터 주름이 잡힌 나와 동일시 되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내가 나이가 더 든다면 아마 선생의 얼굴이 되지 않을까? 선생에게는 쇼펜하우어같은 허를 찌르는 냉철한 독설과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의 파괴적 창조가 있었다. 해박함과 달변에 나는 마치 전류가 흐른 것처럼 매료되었다. 그는 지성계의 아웃사이더이며 일종의 반란군이다. 


철학의 대중화, 실용적 철학의 부활을 기치로 내건 ‘브나로드’ 

『일상이 철학이다』는 전작 『철학과 비판』에 이은 이종철 선생의 두 번째 작품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철학자 이종철이 철학을 도구로 세계와 영화, 정치와 역사를 조망한다. 마지막은 ‘한국의 대학과 교육’에 대한 일침으로 마무리한다. 내가 선생의 문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타 지식인들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지적 허세나 만연체 대신 진솔하고 아이같은 천진함이 담겨있다. 「제1부 일상과 철학」 63페이지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나이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가끔씩 무례한 젊은 친구들이 고령자들을 ‘틀딱’이니 ‘거시기도 서지 않는다’니 조롱하는 경우가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숨 멎을 듯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선생 특유의 구수한 말투가 ‘음성지원’된 탓도 있다. 예컨대 이어령과 김훈은 결코 이런 식으로 쓰지 않는다. 급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그럴까? 소위 먹물들이 지양하는 표현들을 선생은 거침없이 차용한다. 이처럼 직설적인 어조는 저자의 매력이자 정체성이다. 


「제2부 영화와 비평」, ‘<필라델피아>와 이반의 사랑-1’ 의 한 대목도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이른바 pc통신이 한창 유행할 때다.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당시 하이텔이나 나우누리같은 통신망들의 대화방은 밤만 되면 북적거리던 시절이다(중략), 그런데 어느 날 ‘이반’이라 이름 붙인 대화방에 들어가려니까 일반인지 이반인지 묻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몇 학년 몇 반’정도로 생각해서 그냥 일반이라니까 일반은 안 된다고 하면서 입장 불허하는 것이다. 하도 이상해서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동성애자들의 방이라고 한다. 그 사정을 알고는 그 방 근처만 가도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왕성한 호기심에 나는 또 한 번 웃고 말았다. 단순히 동성애의 난감함으로 글이 마무리되면 아무래도 심심하다. 직업병처럼, 동성애자였던 비트겐슈타인, 미셸 푸코를 소환시킨다. 책 제목처럼 정말 『일상이 철학이다』. 이 책의 장점은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철학자들 중 이만한 가독성을 뽐내는 이는 손에 꼽을 것이다. 독자들의 눈높이를 감안한 친절한 설명도 인상적이다. 일상을 철학 이론과 연계하는 탁월성이야말로 본질적 정체성일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

「제5부 역사와 문자, 그리고 한글」, ‘고대사 연구와 문헌’에서 눈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내용을 읽었다.


“한단고기에 등장한 수많은 내용이 고고학과 천문학 등 현대의 많은 과학적 탐구들에 의해 밝혀졌음에도 불구(중략)..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혀 위서(僞書)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올바른 학자로서의 태도가 못 된다.” 

한단고기에 대한 내용은 매우, 아주 굉장히 실망스럽다. 옥의 티처럼 느껴진다. 단언컨대 훌륭하기 그지없는 이 책의 신뢰성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자충수라고 생각한다. ‘한단고기’는 오죽하면 조선민족주의를 표방하며 단군릉(그 마저도 사기에 가까운)을 만든 북한조차 ‘참담하다 느껴’ 위서로 판단한 책이다. 한단고기는 과학과 이성이 아닌 종교와 극단적인 왜곡주의의 상징이다. 편견과 오해의 차원이 아닌, 과학적이고 실증주의적 역사학이라면 당연히 무시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병도를 위시한 주류사학계를 무조건적 ‘식민사관’으로 매도한다면 할 말은 없다. 적어도 합리와 이성을 따져야 하는 철학자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내용이다. 

추측컨대 혹여 선생의 내셔널리즘, 애국주의가 앞섰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파스퇴르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말했다. 그 누구보다도 가슴 뜨거운 이종철 선생은 어쩌면 “철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철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고대사에 대한 왜곡된 애정이 꽤나 지나치다. 선생과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있는 나로서는 무조건적인 찬사같은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것이 장기적인 입장에서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훌륭한 책에 삽화가 없다는 것도 조금 안타까운 일이다. 글이 워낙 가독성이 좋아 읽는데 피곤함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왕이면 그림까지 있었다면 완벽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전설적인 미국의 풍자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의 에세이 ‘나라 없는 사람’보다 어쩌면 이 책이 한 수 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중간중간 삽화가 있었다면, 판매 부수가 조금이나마 더 오르지 않았을까? 최근들어 대두된 대중의 문해력 부족은 필연적으로 그림을 위시한 이미지를 찾게 한다. 애초부터 대중서를 표방했다면, 출판 관계자가 한번쯤 고려해봤을 법도 한데 그 점이 조금 의아하기는 하다.    


철학계의 이단아

현대철학은 너무 현학으로 흘러 대중과 괴리된 측면이 크다. 일전에도 비슷한 표현을 썼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철학자 이종철은 이에 반기를 들어 에세이철학의 기치를 올렸다. 나는 그에게서 록 음악의 거친 기타 리프를 느낀다. 일종의 반항아, 이단아에게서 풍기는 강렬한 냄새가 짙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미적지근한 한국사에서 내가 존경하는 인물들은 ‘문체반정’ 연암 박지원과 ‘고집쟁이’ 공병우인데 공통점은 주체적인 시각을 가진 괴짜들이란 사실이다. 감히 주장하자면 이종철 선생도 궤를 같이 한다. 그가 내 반골 기질을 자극했다. 

특히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선생에게서 공병우와 스피노자의 데자뷰를 느끼기도 했는데, 전자는 세벌식 자판을 보급하기 위해 애플 컴퓨터로 천리안과 나우누리를 사용하며 서거하는 순간까지 연구했던 공 선생을, 후자는 철학을 본업으로 렌즈깎는 일을 부업으로 삼았던 스피노자처럼 이종철 선생도 컴퓨터라는 기계를 통해서 철학을 재정립하기 때문이다. 그 연세에 pc조립을 식은 죽 먹기로 하는 분은 드물다. 

첫 만남에서 선생이 내게 하셨던 말씀이 워낙 강렬해 잊지 못한다. 그는 “나를 따르라”고 하지 않고 “나를 밟고 꺾고 올라서게”라고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간화선의 가르침을 그대로 옮겼다. 철학은 제자가 스승을 죽이면서 영원히 진화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죽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죽였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서양철학 2천년을 지배하던 플라톤을 다시 죽이면서 현대철학의 흐름을 바꿔버렸다. 

왕성한 호기심, 실용주의는 그를 표현하는 상징일 것이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운동의 공력이 느껴지는 대단한 악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지성계의 현역 파이터다. 최정점에 선 거장들의 나태함이나 매너리즘이 없다. 마치 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재야무림 고수 같은 느낌이 난다. 그나마 ‘네이버 프리미엄 서비스’가 그를 알아 본 것은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종의 안도감마저 느낀다. 

한 노인의 죽음은 “도서관이 불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언젠가 마주할 선생의 별세는 일개 도서관 수준을 초월해 거진 마을 단위 규모의 거대한 단과대학이 소실되는 초대형급 피해일 것이다. 때문에 아주 많은 저작을 남기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 『일상이 철학이다』 씨종자 글이었던 페이스북 게시물은 인터넷 특성상 금새 휘발된다. 훗날 찾기도 어렵다. 정 오프라인 출판이 힘들다면 pdf 파일이라도 남기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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