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스님

평소 몸가짐과 외모, 곧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을 위의(威儀)라 한다. 이에 여법하다면 승가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이겠다.

여태껏 풀먹여 다린 승복을 입은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첫 철 선원 방부에 앞서 구참 납자로부터 당부 겸 조언의 말씀을 들었다. 포행할 때는 혼자서 하고, 좌복에 앉는 시간 외에 무명 옷을 손수 풀 먹여 다림질하다 보면 여러모로 유익할 거라는. 해서 그때 이후로 줄곧 풀먹여 다린 승복을 입게 되었다. 심지어 줄기차게 비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풀한 승복을 입고는, 외골수적인 융통성 없는 모습으로 보일까 싶어 “풀해서 다린 승복밖에 없어서요!” 사실이 그러면서도 겸연쩍어 자진해서 이해를 구하곤 한다.

특히 선원에서 풀먹인 승복을 입는 것은, 순간적인 수면이 몰려와 깜빡할 때 ‘바스락’하는 소리에 퍼뜩 알아차리라는 의미가 있다. 어느 때는 동안거 한겨울인데도 풀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던 납자들이 한철 내 동참한 일도 있었다. 사실 손길이 많이 간다. 풀을 쑤어 말리고 밟아, 속을 먼저 다리고 다시 뒤집어서 재차 겉을 다리기까지 번거로이 생각하면 마음 내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내겐 일상이 되었기에 손수 옷 손질이 나태함을 덜어 주어 내심 위안이 된다. 더구나 포행길에 간간이 듣는다. “풀먹인 승복이 너무 멋있습니다!” 지난해 포교국 소임 볼 때 불교대학에 입문하게 된 소감으로 “스님의 포행하는 모습이 너무 맘에 들어 입학했습니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일전에 낯선 보살님의 인사말을 들었다. “요즘도 방송하세요?” 사실은 지난해 연말부터 준비한 원고가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방송되었을 것이다. 의욕이 앞섰나 보다. 거기에 선택한 교재가 독해로는 무난한 듯 싶었는데, 막상 방송을 해보니 청중이 두루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느껴져 다음을 기약했다. 어쩌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 인사말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참에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불교신문 3719호/2022년6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