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연찬하다‘라는 옛 글을 다시 쓰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뒷편으로 갈수록 무게감(?)이 떨어지는 면도 있습니다. 전(前)에 한 작업이 14편까지는 원문 전체를 옮겨 적었는데 15편부터는 몇 장(章)만 옮겨 적어놔서 다시 전체를 옮기는 작업부터 해봅니다. 그냥 읽는 것보다는 집중이 되어서 새롭게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독수리 타법에다가 한자 바꾸기까지 하다 보니까, 어제는 계씨 편 1장을 옮기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관심 있는 분들에게 나눌 겸 올려봅니다.
당시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으로 공자의 제자 염유와 자로가 복무했는데, 그 염유와 공자의 대화입니다.
당시의 시대와 사회상을 배경으로 하는 대화이어서 지금과는 많이 다른 면도 있지만, 큰 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는 지금 공자의 정치나 경제나 문화주의를 잘 보여주는 ’오래된 대화‘가 새로운 정치나 경제 그리고 문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靈感)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글이지만 음미하면서 읽어보시면 그렇게 아까운 시간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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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씨가 전유를 침략하려고 했다. 염유와 계로가 공자를 뵙고 말하였다.“계씨가 장차 전유에서 일을 벌리려 합니다.”
“구야,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겠느냐? 전유는 지난날 선왕께서 동몽산의 제주(祭主)로 삼으시고, 노나라 역내에 있으므로 사직의 신하인데 어찌 침략할 수 있단 말이냐?”
“계씨가 욕심을 부리는 것이지, 우리 둘 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구야, 주임이 말하기를, ‘힘을 다하여 맡은바 직책을 다하다가 감당할 수 없거든 물러난다’고 하였다. 계씨가 위태로운데도 잡아주지 않고 넘어지려는데 붙들어주지 않는다면 장차 너희는 무엇을 도우려는거냐? 호랑이와 들소가 우리에서 나와 도망가고 거북 껍질과 옥이 상자 속에서 부셔진다면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지금 전유는 견고한데다가 비 땅에 가까우니 지금 정벌하지 않으면 후세에 반드시 자손들에게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구야, 군자는 겉으로 탐내지 않는척 하고 말로 꾸미는 것을 미워한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나라나 집을 가진 자는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않은 것을 걱정하며, 가난을 걱정하지 않고 불안함을 걱정한다. 무릇 고르면 가난이 없고, 화목하면 부족하지 않고 편안하면 기울어지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먼 데 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덕(文德)을 닦아 스스로 오게 하고, 오면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구와 유 너희 둘은 계씨를 돕는 자리에 있으면서 먼 데 사람이 심복하여 오지 못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나라가 무너지고 인심이 이반하는데도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나라 안에서 싸움을 일으키기를 꾀하고 있구나. 나는 계씨의 근심이 전유에 있지 아니하고 제 집 안에 있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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季氏 將伐顓臾 冉有季路 見於孔子曰 季氏 將有事於顓臾 孔子曰 求 無乃爾是過與 夫顓臾 昔者 先王以爲東蒙主 且在邦域之中矣 是社稷之臣也 何以伐爲 冉有曰 夫子欲之 吾二臣者皆不欲也 孔子曰 求 周任有言曰 陳力就列 不能者 止 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 且爾言 過矣 虎兕出於柙 龜玉毁於櫝中 是誰之過與 冉有曰 今夫顓臾 固而近於費 今不取 後世 必爲子孫憂 孔子曰 求 君子 疾夫舍曰欲之而必爲之辭 丘也 聞 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夫如是故 遠人不服則修文德以來之 旣來之則安之 今由與求也 相夫子 遠人不服而不能來也 邦分崩離析而不能守也 而謨動干戈於邦內 吾恐 季孫之憂 不在顓臾而蕭牆之內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