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nam Oh
3 h ·
<강아지 똥> 권정생 선생님
한 때 저는 <오강남이 만난 사람들>이라는 책을 내 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제목으로 책을 쓸 수는 없지만, 앞에서 김하태 박사님, 변선환 박사님, 심재룡 교수 등 제가 만난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 또 한 분에 대해 이야기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바로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알려진, 아니 그 보다 더 훌륭하신, 권정생 선생입니다. 권정생 선생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수많은 저술은 인터넷에 보면 자세히 나와 있기에 저는 여기서 저와 관계되는 것, 제가 들은 것을 중심으로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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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과 〈몽실 언니〉의 작가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났다.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귀국. 극한적인 가난과 전신 결핵 같은 병마로 온갖 고생을 다 하다가 1969년 <강아지 똥>으로 아동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동화작가, 소설가, 시인으로 살다가 2007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권정생 선생을 알게 된 것은 나의 이종 사촌 형 민영진 박사 덕택이다. 대한성서공회에서 한국어 성경 번역을 책임지고 있던 형은 한국말 성경에 될 수 있는대로 순수 우리말을 많이 사용할 마음이었는데, 어느 분이 한국 토종말을 가장 잘 구사한 책으로 권정생 선생의 책 <초가집이 있던 마을>을 추천해 주어 읽어보았다고 한다. 그 책에 형의 어머니가 쓰시는 경상도 말이 고스란히 나온다고 하면서 나 보고도 읽어 보라고 책을 보내왔다. 그 형의 어머니이신 나의 이모님과 이모님의 언니되시는 우리 어머니는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원리에서 자라나셨다. 이모님은 결혼하셔서 대전에서 사셨기 때문에 형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았지만 이모님은 계속 사투리를 쓰셨던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보고 놀란 것은 이 책에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는 것뿐 아니라, 바로 권정생 선생의 초등학교이자 나의 초등학교인 일직국민학교 학생들의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6.25 이후 일직국민학교에 대한 일지를 읽는 것 같았다. 학교가 불타 학생들이 주변 서당이나 교회당 같은 곳에서 수업 받던 일이라든가, 학교 북서쪽 모퉁이에 조성된 무궁화 동산 이야기라든가, 내가 다닐 때의 학교 사정을 고스란히 적어놓고 있었다. 권 선생은 나보다 나이는 네 살 위이지만 어릴 때 떠돌아 다니다가 일직국민학교 옆 동네 조탑동에 자리잡고 학교에 다니느라 나보다 선배인 것 같기도 하고 후배인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한 졸업 연도를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서로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책이 우리 초등학교 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남북의 분단 현실을 개탄하며 왜 이렇게 나누어져 싸우고 있는가 하는 것을 어린 아이와 북에서 피란 내려온 어른의 대화를 통해 심각하게 반성하게 하는 이야기로,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동화”이기도 하다.
권정생 선생은 수 없이 많은 동화와 시와 소설을 썼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책을 들라면 위에서 말한 책과 그가 직접 나에게 준 <강아지 똥>, 그리고 내가 사서 본 <우리들의 하느님>, <한티재 하늘1,2>이다. <강아지 똥>은 담벼락 밑에서 진흙과 섞여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던 강아지 똥이 민들레 꽃을 피우는 데 소중한 거름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장자>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었다는 불교의 화엄철학을 어린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들의 하느님>은 일직 교회의 종지기로 교회 문간방에 살면서 기독교와 접하게 되었지만,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평신도의 관점에서 기독교 신앙을 되새겨보게 하는 데 가장 훌륭한 책이라 생각된다. 지금도 생각나는 한 대목은 “만약 내가 교회를 세운다면 초가지붕에다 바닥에 앉아 예배드리고 가끔 씩은 이웃집 무당 할머니를 불러 이야기를 듣기도 하겠다.”하는 것이다. 지금 내 앞에 그의 책이 어디 꽂혀 있는지 찾을 수 없어 직접 인용은 못하겠지만 일단 그런 내용이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책 전체를 통해 그는 철저히 자본주의 가치관을 비판하는 데 초지일관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국방부의 불온서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나는 버틀러 보던이 쓴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흐름출판, 2009)을 번역했는데, 그 말미에 부록으로 내 스스로 추천하고 싶은 책 50 권의 목록을 붙였다. 그 목록 1번이 바로 이 책이었다.
<한티재 하늘>은 남쪽에서 안동읍으로 가자면 한티재가 있는데, 한티재 하늘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근 삼밭골이라는 동네 이야기다. 한문으로 평팔동(坪八洞). 우리 아버지 고향이기도 한 곳으로 내 본적지가 캐나다로 오기전까지 안동군 일직면 평팔동 1113번지. 거기에 해주 오(吳)씨 집성촌이 있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고 거기 사는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1896년 동학혁명 즈음을 기점으로 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을 담담한 필치로 펴내려 간 소설로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나는 권선생님에게 여기 나오는 경상도 안동 사투리 해설집을 만들어 주며 다음 책 부록으로 넣으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리기도 하고, ‘곤두랍다’, ‘널진다,’ ‘하근스럽다 등 아직 사용되지 않은 사투리들도 다음 책에 넣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권정생 선생이 내게 한 말에 의하면 본래 6권을 구상해서 70년대 등장인물의 딸이 흑인과 결혼해서 미국 가는 이야기까지도 생각했는데, 2권을 끝내고 건강 악화로 뜻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이 책을 내고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자기는 죽으라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쓴 것을 독자들이 단숨에 다 읽었다고 했을 때라고 하는 농담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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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는 이것으로 일단 끝내고 이제 직접 만나본 이야기.
1999년 5월 24일 이현주 목사님 부부, 판화화가 이철수 부부, 우리 부부가 안동 권정생 선생 집으로 찾아갔다. 다섯 평 오두막 집에 우리가 들어가 앉으니 서로 무릎이 부딪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 한쪽은 완전히 책으로 가득했다. 찐 감자를 내어놓는데, 먹을 수도 없고 안 먹을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이었다. 그 길로 안동시의 문화관으로 가서 방을 얻어 밤새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현주 목사와는 한 때 같은 동화작가로, 이철수 화가와는 <몽실언니> 삽화가로 연결된 사이였는데, 서로 형 동생하며 대화를 하였다. 권정생 선생은 촌철살인의 한 마디씩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 후로도 나는 캐나다에서 가끔씩 전화로 안부도 묻고 또 한국에 나갈 일이 있으면 이철수 화가와 함께 권정생 선생을 찾았다. 같이 안동 댐으로 놀러가 헛제사밥을 먹기도 하고, 내가 초등학교 때 원족 갔던 고운사(孤雲寺)로 함께 가기도 했다. 고운사 갔다 오다가 마침 운산에 장이 서서 거기서 권정생 선생은 기념으로 큰 손톱깍기를 사주셨다.
그 후로도 나는 캐나다에서 가끔씩 전화로 안부도 묻고 또 한국에 나갈 일이 있으면 이철수 화가와 함께 권정생 선생을 찾았다. 같이 안동 댐으로 놀러가 헛제사밥을 먹기도 하고, 내가 초등학교 때 원족 갔던 고운사(孤雲寺)로 함께 가기도 했다. 고운사 갔다 오다가 마침 운산에 장이 서서 거기서 권정생 선생은 기념으로 큰 손톱깍기를 사주셨다.
2007년 5월 17일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이철수 화가 부인으로부터 들었는데, 장례식하는 날 나는 마침 서울에서 강연하기로 되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아직도 서운한 마음이다. 돌아가신 후 권정생 선생을 존경하는 어느 분과 함께 선생이 사시던 빈 오막집을 찾아갔는데, 방 앞에 놓여 있는 방명록에 방문객들의 이름이 빼곡 쓰여 있었다. 그 집에서 돌아서 나오는데, 어느 남녀가 그 집을 향해 가는 것도 보았다. 집에서 나와 그 옆 내가 살던 동네 초등하교 후배 집에 들렸는데,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신 다음 그 부근 사람들이 두 가지로 놀랐다고 했다. 하나는 장례식에 참석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 둘째는 남겨 놓은 돈이 그렇게 엄청났다고 하는 것.
남겨 놓은 유언장에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굶주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여력이 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서도 써 달라.”고 하였다.
어느 분은 권정생 선생을 두고 성인(聖人)이라 하기도 한다. 엄격히 성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다 찌그러져 가는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권력은 말할 것도 없고, 명예나 금전 같은 모든 것에서 초탈한 자유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원고료를 받는데, 원고 몇 장 쓰고 집 앞 농부가 여름 내내 지은 배추를 한 수레 끌고 가서 받는 돈과 같은 돈을 받는다니 양심이 허락지 않아 차라리 원고료를 주지 않는 <녹색평론> 같은 데 글쓰는 것이 편하다고도 하였다.
MBC에서 “느낌표”라고 하는 프로그램에 책 소개를 하면 그 책이 100만 부 정도까지 팔리기도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요청도 거절했다. 아무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알았지만 민들레 꽃을 피운 강아지 똥처럼 우리 곁에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피어나게 한 그런 인물이 우리 곁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할 수 없이 큰 의미를 지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154김두화, Hyuk Bom Kwon and 15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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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은이)녹색평론사2008-05-01
9.5 100자평(26)리뷰(22)
320쪽
150*215m
책소개
뛰어난 아동문학가이자 사상가였던 권정생 선생 1주기를 맞아 <우리들의 하느님> 개정증보판을 발간했다. <우리들의 하느님>이 나온 후에 '녹색평론'에 발표되었던 선생의 글 몇편과 작년 '녹색평론'의 권정생 추모특집에 실렸던 두편의 글을 추가하였다.
저자인 자신의 생애와 생활의 단상을 서술한 산문들을 엮은 이 책은 빨갱이의 자식으로 태어나 범죄자가 되 버린 목이, 첫날밤도 못 치른 채 신랑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시부모를 봉양해온 할머니가 효부상을 거부한 사연, 인공수정을 당하는 태기네 암소의 눈에 맺힌 눈물 등 화려하지는 않지만, 진실된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아울러 성전 건축에 열 올리고 빨간 십자가로 불야성을 이룬 한국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나, 소유욕 때문에 병들어 가는 자연, 아이들의 교육문제 등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화려한 수사는 없지만 <강아지 똥>, <몽실 언니>같은 선생의 동화처럼 마음을 울리는 귀한 책이다.
목차
개정증보판에 부쳐 …… 김종철
책머리에
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
우리들의 하느님
십자가 대신 똥짐을
휴거를 기다렸던 사람들
침묵하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삶과 부활의 힘
종교의 어머니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가정 파괴범
물 한 그릇의 양심
사람다운 사람으로
팥빙수 한 그릇과 쌀 한되
태기네 암소 눈물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
슬픈 양파농사
유기농 실천회에 다녀와서
녹색을 찾는 길 더보기
책속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 홈>을 듣고 가출했던 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봤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그토록 타이르고 설득해도 듣지 않던 아이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에 쉽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어째서일까. 이것도 일종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리일지도 모른다. (......)
'... 더보기
횟집에서 우리 옆자리에 두 쌍의 중년 부부가 먼저 와 있었는데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계산이 틀리는지 큰 소리로 싸운다. 알고 보니 매운탕 3천원을 2천원으로 흥정해놓고 왜 더 받느냐는 것이다. 다 받아봤자 2천원차이다. 차림새를 보니 제법 살고 있는 사람들 같은데 이런 덴 쩨쩨하리만큼 인색하다.
안동포 삼베로 여... 더보기
조부님 제삿날, 갓 시집온 새댁이 밤중에 일어나 제삿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나갔다. 인기척 소리에 사랑방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물었다.
"얘야, 아직 이르지 않느냐?"
그러자 며느리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아버님,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
시아버지는 어안이 벙벙... 더보기 - 자일리
꼭두새벽부터 어둑새벽, 찬새벽, 밝을녘 등등으로 아침시간을 나누었다. 저녁나절부터는 해거름, 해넘이, 어스름저녁, 이렇게 숫자표시보다 훨씬 따뜻하고 시적인 시간개념으로 사물을 표현했다.-94쪽 - 자일리
권정생,우리들의하나님 - boh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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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삶과 그 글이 일치한 작가.
- 공선옥 (소설가)
동네 노인들이 알고 있던 것처럼 권정생 선생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병들고 비천한 모습으로 살다 가셨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렸고 명예와 문학권력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으셨다. 10여년 전 윤석중 선생이 직접 들고 내려온 문학상과 상금을 우편으로 다시 돌려보냈고, 몇해 전 문화방송에서 ‘느낌표’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책읽기 캠페인에 선정도서로 결정되었을 때도 그걸 거부한 바 있다. 그때 달마다 선정된 책은 많게는 몇백만부씩 팔려나가는 선풍적인 바람이 불 때였는데 권선생은 그런 결정 자체를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로 여기셨다. 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집은 다섯평짜리 흙집이다. 그 집에서 쥐들과 함께 살았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찾아간 집 댓돌에는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나는 그 고무신을 보고 울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신발과 옷을 생각하며 부끄러웠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신을 사들이고 다시 구석에 쌓아두면서 더 큰 신장으로 바꿀 일을 생각하는 우리의 욕망, 우리는 앞으로도 내 욕망의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 것임을 생각하며 민망했다.
- 도종환 (시인)
‘쉼’이라는 주제로 소개한 책들
-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그는 탐욕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이 세상의 전복을 꿈꿨다. 이 세상의 한 구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에 대한 반역을 꿈꿨다. 욕망의 체계인 자본주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무욕, 절제, 가난을 무기로 정면 대결했다. 사람들이<우리들의 하느님>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 책에는 “함께 일해 함께 사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면 올바른 사회주의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동문학가는 이 사회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버림받고, 병들고 가난한 자가 세상과 잘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위대한 부정의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왜 그의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닌 평화를 느끼게 할까. 그에게 소멸은 무엇이기에 슬프기보다 아름다워 보일까. 한 줌의 흙, 한 포기 풀과 같이 살았기 때문일까. 그는 “싸움이라는 삶이 끝났을 때라야 평화라는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지지배배 짖던 작은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듯 그는 그렇게 가버렸다.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전사에게만 돌아가는 휴식이다.
- 이대근
저자 및 역자소개
권정생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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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이듬해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경북 안동 일직면에서 일직교회 종지기로 일했고, 교회 문간방에서 《몽실언니》를 썼다. 세상을 떠나면서 인세를 어린이들에게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단편동화 〈강아지똥〉으로 기독교아동문학상을 받았고, 〈무명 저고리와 엄마〉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사과나무밭 달님》 《바닷가 아이들》 《점득이네》 《하느님의 눈물》 《밥데기 죽데기》 등 많은 어린이 책과, 소설 《한티재 하늘》,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등을 펴냈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홈페이지(http://... 더보기
최근작 : <새해 아기>,<강아지똥 (25주년 특별판)>,<짱구네 고추밭 소동> … 총 186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녹색평론사
출판사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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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녹색평론 통권 180호>,<녹색평론 통권 179호>,<녹색평론 통권 178호>등 총 72종
대표분야 : 환경/생태문제 2위 (브랜드 지수 80,066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권정생 선생 1주기를 맞아《우리들의 하느님》개정증보판을 발간하다.
개정증보판에 부쳐 중에서: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신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 1주기를 맞으면서 나는 선생님이 더이상 우리들 곁에 계시지 않는 것이 새삼 말할 수 없이 허전하다. 물론 선생님이 많은 글을 남겨놓았다는 게 우리들에게 위안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더는 저 조탑리의 작고 어두운 골방으로부터 나오는 유례없이 부드럽고 간곡한, 그러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목소리를 듣는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는 유감스러운 것이다. 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녹색평론》편집실에서 우리들이 생각해낸 것이 이 책, 즉 선생님의 산문집《우리들의 하느님》의 개정증보판이다.
이번에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우리는 선생님의 글 가운데서 책으로 묶여지지 않은 산문을 더 찾아보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다만《우리들의 하느님》이 나온 후에《녹색평론》에 발표되었던 선생님의 글 몇편과 작년《녹색평론》의 권정생 추모특집에 실렸던 두편의 글을 추가하여 증보판을 찍기로 하였다.
권정생은 뛰어난 아동문학가임에 틀림없지만, 단순히 아동문학가라고 해서는 그 본질을 드러낼 수 없는 문인이자, 사상가이다.
그는 권력있는 자들과 그들의 세계에 대하여 거의 본능적인 위화감(違和感)을 느끼고 있었고, 그런 감정을 별로 숨기지 않았다. 그 대신 이 세상의 약자들―사람과 사람 아닌 것을 포함한―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연민 혹은 사랑은 측량할 수 없이 깊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자신의 철저한 밑바닥 체험과 평생에 걸친 병고(病苦)와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혹은 그의 기독교 신앙과도 관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권정생은 이른바 교인다운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다. 그는 여하한 권력욕망도, 권력의 그림자와도 인연이 없는 철저히 소박한, 꾸밈없는 촌사람이었다. 그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믿은 기독교인이었다. 그가 자본주의 근대문명과 근원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비근대인’으로서의 일관된 삶을 살아간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오늘날 이 나라의 독서계에서 권정생은 계속해서 읽히고,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권정생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가 과연 얼마나 상투적인 수준을 벗어나 있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연구는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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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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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이명박정권때 국방부 불온서적으로 지명당했다니. . 그렇치 이명박이 믿는 하느님과 이 책의 하느님과는 전혀 다른분이니
rainboweyes 2016-09-10 공감 (4) 댓글 (0)
설 연휴 마지막 날 밤이 고요하게 지나가고 있다. 내일부터 반짝 추위를 알리는 일기예보를 보고 꼼꼼하게 문단속을 했다. 유난히 길게 만 느껴졌던 이번 겨울도 어느 새 2월에 접어 들었다. 물론 꽃샘추위도 남았고, 때를 맞추지 못한 눈이 3월에 내릴지라도... 나에게 3월 1일부터는 봄이다.
"봄"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니 따뜻한 온기가 다가온다는 의미와 '보다'라는 말의 명사형 '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맞다... 봄은 겨울과는 달리 볼 것들이 참 많다. 겨우내 얼었던 강물과 땅이 녹기 시작하고, 그 땅에 따뜻한 봄볕이 들어 새싹을 움트게 한다. 메말랐던 나뭇가지에도 생기가 돌고, 흙 한줌 사이에서도 이름 모를 들꽃들이 얼굴을 내미는 계절이 바로 봄이다.
이유없는 우울과 답없는 고민들도 이 겨울 끝자락에 묻어두고 난 눈부신 봄 햇빛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다.
몇년 전부터 시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에게서 오랫만에 연락을 받았다. 등단을 준비 과정에서 겪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대체 나는 그동안 뭘하며 살았던가 ? 하는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 왔다.
한 걸음씩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가고 있는 친구와 달리 좌충우돌하며 늘 후회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보니 참 한심스럽다. 하지만 우울한 기분은 떨쳐 버리고 으싸으싸 하기로 한다. 마음을 다잡고 펼쳐든 책이 녹색평론 1-2월호이다.
몇 년전부터 꾸준히 녹색평론을 구독 중이며 단행본으로 나오는 책들도 대부분 소장하고 있을만큼 나는 녹색평론사의 열렬한 독자이다.
특히 무위당 장일순의 나락 한알 속의 우주,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그리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의 간디의 물레를 관심있게 읽었다. 녹색평론 독자모임이 대전에 없다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대전보다 작은 소도시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모임이 대전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어쩌면 나처럼 남들이 만들어 놓은 모임에만 나가려는 소극적 독자들이 대전에 많을지도 모르겠다.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세상과의 소통과 이해의 폭이 좀 넓어진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것들이 내 삶에서 작은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더 의미 있는 일이 될텐데...늘 아는 것과 삶이 별개가 되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이번 호 녹색평론에서 내가 가장 관심있게 읽은 기사는 안드레 블첵의 시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이다. 이 글은 남아메리카의 변화와 혁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시와 노래에 관한 에세이다.
세 개의 집, 혹은 세 군데 거처가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의 한 사람, 즉 칠레에서는 돈 파블로, 세계 전역에서는 파블로 네루다로 알려진 사람에게 속했다. 이 세개의 근사한 집들은 모두 시인이 손수 거들어 지어진 집들이었다.
하나는 칠레의 산티아고, 보헤미안의 동네인 벨라비스타의 언덕에 붙어 있다. 두 번째 집은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에 있는데, 항만과 바다를 지나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기막힌 전망을 가진 집이다. 마지막 집은 이슬라네그라 혹은 '검은 섬'이라고 불리는 소박한 해안 마을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실제로는 섬이 아니라 찬란한 바위 해안을 따라 모여 있는 집들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여기가 대서양의 엄청난 파도를 바라보며 작은 목재 오두막에서 파블로 네루다가 자신의 가장 강력한 시 몇 편을 썼던 곳이다. (책 137쪽에서)
이야기와 책, 시와 음악, 춤과 연극 - 그것들은 모두 필수적인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혁명은 어떤 것이라도 그것들 없이는 일어날 수 없었다.
바리케이드로 나갈 것을 결정하기 전에, 이 대륙의 사람들은 단지 확신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감동을 받고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과 대중에게 수백만 권의 책들을 나눠주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돈키호테>와 같은 고전작품들이 문자 그대로 무료로 나라 전역에서 배포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가 운영하는 모든 서점들에서는 시와 세계문학의 걸작들이 또한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우루과이와 에콰도르 그리고 그 밖의 나라들의 투쟁은 실제로 매우 기본적인 휴머니즘의 원칙을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칼 맑스나 마오 주석, 혹은 레닌이나 차베스의 책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었다. 빅트르 위고와 세르반테스, 막심 고리키와 톨스토이, 타고르가 쓴 고전적인 작품들 속에 그 모든 것의 정수가 들어있는 것이다.
(책 140쪽에서)
예술은 가르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도록 부추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선과 악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알게 도와준다. 이러한 자질을 결여한 혁명은 어떤한 것이라도, 이미 많은 불행한 장소에서 그랬듯이, 살육으로 나아갈 수 있다.
(책 142쪽에서)
예술은 사람들에게 꿈꾸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 꿈들은 사회를 전진시켜준다.
칠레의 혁명을 이끌었던 시는 네루다의 장엄하고 위대한 '마추픽추 봉우리들'이 아니라, 그가 사랑한 여인에게 바쳤던 단순하고 소박한 시였다고 한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고 있는 중이었는데, 네루다와 칠레 그리고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야기가 나와서 먼저 읽어 봤다. 한동안 유럽여행을 꿈꿨었는데 최근에는 기회가 된다면 쿠바나 칠레, 아르헨티나를 여행해 보고 싶다. 정말 멋진 나라들이다.... 특히 돈키호테를 무료로 나눠주었다는 베네수엘라의 정부의 정책이 참 인상적이었다.
착한시경 2014-02-03 공감 (10) 댓글 (2)
더 이상 그 분의 새로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상실감이 더 크게 와 닿았던 책이다.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으며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구절과 내용들이 너무 많다. 삶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이기에 더 마음이 와 닿는다
평점
분포
9.5
이런 책이 이명박정권때 국방부 불온서적으로 지명당했다니. . 그렇치 이명박이 믿는 하느님과 이 책의 하느님과는 전혀 다른분이니
rainboweyes 2016-09-10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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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단 한가지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권정생 선생님이 믿는 하느님을 나도 믿고 싶다는 생각! 참고로 나는, 날 때부터 개신교 신자이자 한때 성직을 수행했던 사람이다.
밤안개 2016-03-24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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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고 권정생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분꽃 2011-05-23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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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이땅에 계셨다면 이분처럼 살아가셨을거란 생각이든다. 더이상 이분의 글을 못 읽는게 안타깝다
멋진사람 2013-02-1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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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을 생각한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나 보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세 때 22세나 23세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권정생 선생의 유언을 처음 접한 건 한 일간지를 통해서였다. 선생의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책들을 소개하며 유언장의 일부를 공개했는데 그 글자들을 난 눈물바람으로 맞았다. 다시 유언장을 대해도 역시 눈물바람이다. 2007년 선생의 부고를 접하고 부랴부랴 <우리들의 하느님>을 찾아 들었다. 당시 책은 초판본이었는데, 이번엔 개정증보판을 읽는다. 개정판엔 비록 선생의 글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글이 세 편 추가돼 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의 책 소갯글과 선생의 지인인 김용락 시인과 고교 교사 이계삼씨의 추모글이 실려있다. 세 편 모두 선생의 삶과 사상을 잘 담고 있다.
선생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난 그 분의 이름 속에 한 방법이 있다고 본다. 정생(正生), 바른 삶이다. 이토록 바르게 살아간 삶이 몇이나 더 있을까? 그의 삶을 바로 세운 힘은 무얼까? 선생의 삶을 여러 존재가 지나갔을테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이는 예수일테다. 그의 일생을 지배한 육신과 마음의 고통은 그를 예수에게로 인도했고, 그 자신 예수의 삶을 살게된다. 헨리 나웬의 말처럼 예수가 '상처입은 치유자'라면, 권정생 역시 일평생 얻은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 치유자가 될 수 있었다.
선생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글이다. 삶이 끝나가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세상을 말하는 그였고, 제발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말기를 당부한 그이였다.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 드립니다. ......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달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권정생
권정생(193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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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11-21 공감(14)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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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봤을까??
국방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 봤을까? 권정생 선생님의 하느님을 도대체 이해나 한 것일까?
책읽는사람 2008-08-02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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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지게를 지고 살아간 바보
요근래 내가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 있다. “기독교계에는 한완상과 이어령이라는 두 지성이 있다. 한완상은 기독교가 키운 인물이고, 이어령은 재수 좋게 주은 인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 뜨거울 정도로 설익은 말이다. 도무지 생각이라곤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말이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냥 창피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 자아비판을 해본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일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와 동생에게 책을 사주셨다. “몽실언니”라는 제목의 상아색 표지의 책을 사주셨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가지고 다녔던 책인데, 몇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참 열심히 읽었었다. 당시 몽실언니라는 드라마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것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책이 정말 재미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동생 둘을 데리고 이리저리 식모살이 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왜 그렇게도 멋있어 보이고 빛이 나 보이던지. 지금은 깨끗한 표지로 새롭게 책이 나왔지만 역시 몽실 언니는 그 촌스러운 책 표지가 어울리는 것 같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아는 사람은 아마 기억하지 않을까?
권정생 선생님을 처음 접한 것은 몽실 언니보다는 민들레 교회 이야기라는 주보를 통해서이다.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께서는 늦은 나이에 목회를 하시면서도 민들레 교회 이야기를 꾸준히 구독하셨고 그 덕에 나는 그분의 구수한 이야기를 꾸준히 읽을 수 있었다. 한티재 이야기도 제목을 몰라서 그랬는데 읽어보니 그곳을 통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촌스러운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마치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동화와 옛날 이야기는 어린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민들레 교회 이야기와의 인연이 끝이 났고 한동안 최완택,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최완택 목사님께서 계시는 기도원에 수련회를 가게 되었고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등 어린 시절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그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책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그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거웠다.
내가 자란 마을은 꽤 촌구석이다.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촌이다. 아내가 초등학교 동창인지라 처가를 갈 때마다 어린 시절 자랐던 그곳을 지나노라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촌스럽긴 매한가지다. 현대자동차, 삼성 반도체 등 기업들이 내려오면서 많이 발전되었지만 내가 살던 동네는 발전과 발전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다행히(?) 촌스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치기, 구슬치기, 쥐불놀이, 정월 대보름 밥서리, 딱지치기, 호디기(버들피리를 우리 동네에선 이렇게 불렀다.),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등 게임기가 없어도 하루종일 재미있게 놀았다. 먹을 것도 많았다. 칡뿌리, 대추, 호두, 밤, 감, 삘기(삐리라고도 한다.), 머루, 다래, 으름, 아가배(아마도 야생 배의 한 종류가 아닐까?) 지금도 그것들을 어떻게 잘도 찾아냈는지 모르겠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착각할지 몰라 밝히지만 나는 78년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지 맞아. 그래. 그것도 있었어. 참 재미있었는데. 그건 참 맛있었는데.”몇 번씩이나 추억에 젖어서 맞장구쳐본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도대체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책에서 권정생 선생님께서 제기하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서 자기만을 챙기다 보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살다보니까 더불어 살아야할 그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머리로 사는 천재가 아니라 몸으로 사는 바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간은 모두 바보로 돌아가야 한다. 이 땅의 천재들은 머리로 살아가지만 바보는 몸으로 산다. 부처님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고, 진정 이 땅 위의 위대한 인간은 바보로 돌아갔다. 머리로 산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았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도, 모로카이섬의 다미안도, 마저 테레사도 그랬다.(P.116)
그렇다 세상에 참 똑똑한 사람이 넘쳐나면서부터 우리의 삶이 편리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편리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했는가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경제적인 면은 윤택하게 만들었을지언정 삶의 가치라는 부분에서는 참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아무 것도 없어도 즐거웠고, 맛있는 쿠키나 음료수가 없어도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자연이 주는 것들을 채집해서 먹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연이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놀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되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낭만과 공존에 대한 생각들이 사라져 버렸다. 조금이라도 손해보기 싫어하는 똑똑하고 잘난 천재들이 세상을 꽉꽉 채우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물론 나조차도 천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바보 예수님이 오늘날 이 땅에 오셨다면 십자가 대신 똥지게를 지셨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마음 깊이 여운으로 남는다.
ps.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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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4-01 공감(3)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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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오신 하느님의 그림자
수십년 전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신학으로 "민중신학"이 있다. 그 신학 이론에 따르면 예수님은 항상 박해받는 민중의 모습으로 계속해서 탄생하신다고 한다. 20세기 한국에서 교회는 한없이 번창하여 밤하늘의 별처럼 교회의 빨간 네온싸인 십자가 숫자가 늘어났지만 그에 비례하여 고통받거나 박해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올라갔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관심이 줄어졌다고 할 수 있다.
권정생 선생님은 바로 이 땅에 다시 오셨던 예수님이었다고 여겨진다.
그 옛날 예수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듯이 우리는 권 선생님께 당연히 드렸어야 할 사랑을 드리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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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 2009-12-1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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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서 아픕니다
세상엔 정말 나쁜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나쁜 이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부귀를 누리는 것을 볼 때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지옥은 아닌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또한 세상엔 아름다운 이들도 많다. 한없이 착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해준 이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엔 존재한다. 또한 그런 어진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권정생 선생님 역시 우리에겐 한없이 고맙고 소중한 분이었다. 평생을 따라다닌 육체의 고통을 견디며, 선생님은 우리에게 감당하지 못할 사랑을 전해주셨다. 선생님께서 지친 몸을 버리시고 자유롭게 하늘로 올라가신지 1년하고도 육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선생님들을 그리워한다.
사실 난 선생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아주 어린 시절 선생님의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을 읽었던 기억이 있고, “몽실언니”의 추억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동화작가로서 많은 작품을 써오시며 가난하지만 절대 가난하지 않은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 정도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동화작가를 떠나 참된 신앙인이었고, 참된 어른이었고, 또한 참된 어린이었다. 자연을 한없이 사랑하셨고, 그런 자연이 무지와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어 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다.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며, 자연과 등을 돌리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셨고, 그 착한 심성들이 오직 돈을 위해 경쟁하고 남을 짓밟는 야만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절망하셨다. 그리고 한없이 우시고 우셨다.
우리 곁을 떠나가신 선생님을 기억하고 선생님의 뜻을 잊지 않고자 펴낸 이번 개정증보판은 역설적이게도 선생님이 그렇게도 싫어하셨고, 없어지길 바라셨던 군대, 즉 국방부에 의해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기막혀 하실지….
선생님은 글을 통해 남북의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는 것을 슬퍼하셨다. 고향을 등지고,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을 염려하셨고, 그들이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도록 만든 남북 양쪽 모두를 꾸짖으셨다. 그리고 책은 또한 현실 기독교의 수많은 문제점들을 매우 냉정하게 비판하셨다. 오직 권력과 부귀를 위한 종교는 이미 종교가 아니라고 질타하셨고, 초심으로 돌아가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위해 복무하는 종교가 되기를 기도하셨다. 선생 스스로 너무도 독실한 신앙인이었기에 이런 비판은 참으로 진실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현 정부, 그리고 국방부에게는 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정신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위험한 불온서적으로만 비쳐질 뿐이었다. 분노와 한심함을 넘어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러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얼마나 안쓰러워하셨을까.
이제 선생님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다. 선생님의 따뜻한 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많은 아이들과, 또는 어른들까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따뜻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국방부에서 아무리 선생님의 글을 막으려 해도, 기독교 권력이 아무리 선생님을 폄하하려 해도, 우리에게 우뚝 솟은 선생의 존재감을 무너뜨릴 순 없다. 어찌 보면 이미 선생님은 우리의 이웃, 우리들의 정다운 ‘하느님’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개미 한 마리, 쥐와 닭과 개와 소. 이 세상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고 아꼈던 선생님.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가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으로 누군가가 잃고 있지는 않은지, 정말 사람이란 존재에 맞도록 사는 것이 무엇인지. 선생님의 글을 통해 깨우치곤 한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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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틀키드 2008-11-2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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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지은이)녹색평론사2008-05-01
9.5 100자평(26)리뷰(22)
320쪽
150*215m
책소개
뛰어난 아동문학가이자 사상가였던 권정생 선생 1주기를 맞아 <우리들의 하느님> 개정증보판을 발간했다. <우리들의 하느님>이 나온 후에 '녹색평론'에 발표되었던 선생의 글 몇편과 작년 '녹색평론'의 권정생 추모특집에 실렸던 두편의 글을 추가하였다.
저자인 자신의 생애와 생활의 단상을 서술한 산문들을 엮은 이 책은 빨갱이의 자식으로 태어나 범죄자가 되 버린 목이, 첫날밤도 못 치른 채 신랑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시부모를 봉양해온 할머니가 효부상을 거부한 사연, 인공수정을 당하는 태기네 암소의 눈에 맺힌 눈물 등 화려하지는 않지만, 진실된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아울러 성전 건축에 열 올리고 빨간 십자가로 불야성을 이룬 한국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나, 소유욕 때문에 병들어 가는 자연, 아이들의 교육문제 등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화려한 수사는 없지만 <강아지 똥>, <몽실 언니>같은 선생의 동화처럼 마음을 울리는 귀한 책이다.
목차
개정증보판에 부쳐 …… 김종철
책머리에
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
우리들의 하느님
십자가 대신 똥짐을
휴거를 기다렸던 사람들
침묵하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삶과 부활의 힘
종교의 어머니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가정 파괴범
물 한 그릇의 양심
사람다운 사람으로
팥빙수 한 그릇과 쌀 한되
태기네 암소 눈물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
슬픈 양파농사
유기농 실천회에 다녀와서
녹색을 찾는 길 더보기
책속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 홈>을 듣고 가출했던 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봤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그토록 타이르고 설득해도 듣지 않던 아이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에 쉽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어째서일까. 이것도 일종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리일지도 모른다. (......)
'... 더보기
횟집에서 우리 옆자리에 두 쌍의 중년 부부가 먼저 와 있었는데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계산이 틀리는지 큰 소리로 싸운다. 알고 보니 매운탕 3천원을 2천원으로 흥정해놓고 왜 더 받느냐는 것이다. 다 받아봤자 2천원차이다. 차림새를 보니 제법 살고 있는 사람들 같은데 이런 덴 쩨쩨하리만큼 인색하다.
안동포 삼베로 여... 더보기
조부님 제삿날, 갓 시집온 새댁이 밤중에 일어나 제삿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나갔다. 인기척 소리에 사랑방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물었다.
"얘야, 아직 이르지 않느냐?"
그러자 며느리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아버님,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
시아버지는 어안이 벙벙... 더보기 - 자일리
꼭두새벽부터 어둑새벽, 찬새벽, 밝을녘 등등으로 아침시간을 나누었다. 저녁나절부터는 해거름, 해넘이, 어스름저녁, 이렇게 숫자표시보다 훨씬 따뜻하고 시적인 시간개념으로 사물을 표현했다.-94쪽 - 자일리
권정생,우리들의하나님 - boh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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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과, 그 사람의 삶과 그 글이 일치한 작가.
- 공선옥 (소설가)
동네 노인들이 알고 있던 것처럼 권정생 선생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병들고 비천한 모습으로 살다 가셨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렸고 명예와 문학권력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으셨다. 10여년 전 윤석중 선생이 직접 들고 내려온 문학상과 상금을 우편으로 다시 돌려보냈고, 몇해 전 문화방송에서 ‘느낌표’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책읽기 캠페인에 선정도서로 결정되었을 때도 그걸 거부한 바 있다. 그때 달마다 선정된 책은 많게는 몇백만부씩 팔려나가는 선풍적인 바람이 불 때였는데 권선생은 그런 결정 자체를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로 여기셨다. 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집은 다섯평짜리 흙집이다. 그 집에서 쥐들과 함께 살았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찾아간 집 댓돌에는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나는 그 고무신을 보고 울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신발과 옷을 생각하며 부끄러웠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신을 사들이고 다시 구석에 쌓아두면서 더 큰 신장으로 바꿀 일을 생각하는 우리의 욕망, 우리는 앞으로도 내 욕망의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 것임을 생각하며 민망했다.
- 도종환 (시인)
‘쉼’이라는 주제로 소개한 책들
-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그는 탐욕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이 세상의 전복을 꿈꿨다. 이 세상의 한 구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에 대한 반역을 꿈꿨다. 욕망의 체계인 자본주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무욕, 절제, 가난을 무기로 정면 대결했다. 사람들이<우리들의 하느님>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 책에는 “함께 일해 함께 사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면 올바른 사회주의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동문학가는 이 사회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버림받고, 병들고 가난한 자가 세상과 잘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위대한 부정의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왜 그의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닌 평화를 느끼게 할까. 그에게 소멸은 무엇이기에 슬프기보다 아름다워 보일까. 한 줌의 흙, 한 포기 풀과 같이 살았기 때문일까. 그는 “싸움이라는 삶이 끝났을 때라야 평화라는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지지배배 짖던 작은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듯 그는 그렇게 가버렸다.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전사에게만 돌아가는 휴식이다.
- 이대근
저자 및 역자소개
권정생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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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이듬해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경북 안동 일직면에서 일직교회 종지기로 일했고, 교회 문간방에서 《몽실언니》를 썼다. 세상을 떠나면서 인세를 어린이들에게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단편동화 〈강아지똥〉으로 기독교아동문학상을 받았고, 〈무명 저고리와 엄마〉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사과나무밭 달님》 《바닷가 아이들》 《점득이네》 《하느님의 눈물》 《밥데기 죽데기》 등 많은 어린이 책과, 소설 《한티재 하늘》,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등을 펴냈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홈페이지(http://...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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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분야 : 환경/생태문제 2위 (브랜드 지수 80,066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권정생 선생 1주기를 맞아《우리들의 하느님》개정증보판을 발간하다.
개정증보판에 부쳐 중에서: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신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 1주기를 맞으면서 나는 선생님이 더이상 우리들 곁에 계시지 않는 것이 새삼 말할 수 없이 허전하다. 물론 선생님이 많은 글을 남겨놓았다는 게 우리들에게 위안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더는 저 조탑리의 작고 어두운 골방으로부터 나오는 유례없이 부드럽고 간곡한, 그러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목소리를 듣는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는 유감스러운 것이다. 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녹색평론》편집실에서 우리들이 생각해낸 것이 이 책, 즉 선생님의 산문집《우리들의 하느님》의 개정증보판이다.
이번에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우리는 선생님의 글 가운데서 책으로 묶여지지 않은 산문을 더 찾아보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다만《우리들의 하느님》이 나온 후에《녹색평론》에 발표되었던 선생님의 글 몇편과 작년《녹색평론》의 권정생 추모특집에 실렸던 두편의 글을 추가하여 증보판을 찍기로 하였다.
권정생은 뛰어난 아동문학가임에 틀림없지만, 단순히 아동문학가라고 해서는 그 본질을 드러낼 수 없는 문인이자, 사상가이다.
그는 권력있는 자들과 그들의 세계에 대하여 거의 본능적인 위화감(違和感)을 느끼고 있었고, 그런 감정을 별로 숨기지 않았다. 그 대신 이 세상의 약자들―사람과 사람 아닌 것을 포함한―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연민 혹은 사랑은 측량할 수 없이 깊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자신의 철저한 밑바닥 체험과 평생에 걸친 병고(病苦)와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혹은 그의 기독교 신앙과도 관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권정생은 이른바 교인다운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다. 그는 여하한 권력욕망도, 권력의 그림자와도 인연이 없는 철저히 소박한, 꾸밈없는 촌사람이었다. 그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믿은 기독교인이었다. 그가 자본주의 근대문명과 근원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비근대인’으로서의 일관된 삶을 살아간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오늘날 이 나라의 독서계에서 권정생은 계속해서 읽히고,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권정생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가 과연 얼마나 상투적인 수준을 벗어나 있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연구는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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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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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이명박정권때 국방부 불온서적으로 지명당했다니. . 그렇치 이명박이 믿는 하느님과 이 책의 하느님과는 전혀 다른분이니
rainboweyes 2016-09-10 공감 (4) 댓글 (0)
설 연휴 마지막 날 밤이 고요하게 지나가고 있다. 내일부터 반짝 추위를 알리는 일기예보를 보고 꼼꼼하게 문단속을 했다. 유난히 길게 만 느껴졌던 이번 겨울도 어느 새 2월에 접어 들었다. 물론 꽃샘추위도 남았고, 때를 맞추지 못한 눈이 3월에 내릴지라도... 나에게 3월 1일부터는 봄이다.
"봄"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니 따뜻한 온기가 다가온다는 의미와 '보다'라는 말의 명사형 '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맞다... 봄은 겨울과는 달리 볼 것들이 참 많다. 겨우내 얼었던 강물과 땅이 녹기 시작하고, 그 땅에 따뜻한 봄볕이 들어 새싹을 움트게 한다. 메말랐던 나뭇가지에도 생기가 돌고, 흙 한줌 사이에서도 이름 모를 들꽃들이 얼굴을 내미는 계절이 바로 봄이다.
이유없는 우울과 답없는 고민들도 이 겨울 끝자락에 묻어두고 난 눈부신 봄 햇빛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다.
몇년 전부터 시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에게서 오랫만에 연락을 받았다. 등단을 준비 과정에서 겪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대체 나는 그동안 뭘하며 살았던가 ? 하는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 왔다.
한 걸음씩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가고 있는 친구와 달리 좌충우돌하며 늘 후회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보니 참 한심스럽다. 하지만 우울한 기분은 떨쳐 버리고 으싸으싸 하기로 한다. 마음을 다잡고 펼쳐든 책이 녹색평론 1-2월호이다.
몇 년전부터 꾸준히 녹색평론을 구독 중이며 단행본으로 나오는 책들도 대부분 소장하고 있을만큼 나는 녹색평론사의 열렬한 독자이다.
특히 무위당 장일순의 나락 한알 속의 우주,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그리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의 간디의 물레를 관심있게 읽었다. 녹색평론 독자모임이 대전에 없다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대전보다 작은 소도시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모임이 대전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어쩌면 나처럼 남들이 만들어 놓은 모임에만 나가려는 소극적 독자들이 대전에 많을지도 모르겠다.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세상과의 소통과 이해의 폭이 좀 넓어진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것들이 내 삶에서 작은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더 의미 있는 일이 될텐데...늘 아는 것과 삶이 별개가 되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이번 호 녹색평론에서 내가 가장 관심있게 읽은 기사는 안드레 블첵의 시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이다. 이 글은 남아메리카의 변화와 혁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시와 노래에 관한 에세이다.
세 개의 집, 혹은 세 군데 거처가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의 한 사람, 즉 칠레에서는 돈 파블로, 세계 전역에서는 파블로 네루다로 알려진 사람에게 속했다. 이 세개의 근사한 집들은 모두 시인이 손수 거들어 지어진 집들이었다.
하나는 칠레의 산티아고, 보헤미안의 동네인 벨라비스타의 언덕에 붙어 있다. 두 번째 집은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에 있는데, 항만과 바다를 지나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기막힌 전망을 가진 집이다. 마지막 집은 이슬라네그라 혹은 '검은 섬'이라고 불리는 소박한 해안 마을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실제로는 섬이 아니라 찬란한 바위 해안을 따라 모여 있는 집들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여기가 대서양의 엄청난 파도를 바라보며 작은 목재 오두막에서 파블로 네루다가 자신의 가장 강력한 시 몇 편을 썼던 곳이다. (책 137쪽에서)
이야기와 책, 시와 음악, 춤과 연극 - 그것들은 모두 필수적인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혁명은 어떤 것이라도 그것들 없이는 일어날 수 없었다.
바리케이드로 나갈 것을 결정하기 전에, 이 대륙의 사람들은 단지 확신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감동을 받고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과 대중에게 수백만 권의 책들을 나눠주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돈키호테>와 같은 고전작품들이 문자 그대로 무료로 나라 전역에서 배포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가 운영하는 모든 서점들에서는 시와 세계문학의 걸작들이 또한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우루과이와 에콰도르 그리고 그 밖의 나라들의 투쟁은 실제로 매우 기본적인 휴머니즘의 원칙을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칼 맑스나 마오 주석, 혹은 레닌이나 차베스의 책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었다. 빅트르 위고와 세르반테스, 막심 고리키와 톨스토이, 타고르가 쓴 고전적인 작품들 속에 그 모든 것의 정수가 들어있는 것이다.
(책 140쪽에서)
예술은 가르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도록 부추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선과 악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알게 도와준다. 이러한 자질을 결여한 혁명은 어떤한 것이라도, 이미 많은 불행한 장소에서 그랬듯이, 살육으로 나아갈 수 있다.
(책 142쪽에서)
예술은 사람들에게 꿈꾸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 꿈들은 사회를 전진시켜준다.
칠레의 혁명을 이끌었던 시는 네루다의 장엄하고 위대한 '마추픽추 봉우리들'이 아니라, 그가 사랑한 여인에게 바쳤던 단순하고 소박한 시였다고 한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고 있는 중이었는데, 네루다와 칠레 그리고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야기가 나와서 먼저 읽어 봤다. 한동안 유럽여행을 꿈꿨었는데 최근에는 기회가 된다면 쿠바나 칠레, 아르헨티나를 여행해 보고 싶다. 정말 멋진 나라들이다.... 특히 돈키호테를 무료로 나눠주었다는 베네수엘라의 정부의 정책이 참 인상적이었다.
착한시경 2014-02-03 공감 (10) 댓글 (2)
더 이상 그 분의 새로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상실감이 더 크게 와 닿았던 책이다.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으며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구절과 내용들이 너무 많다. 삶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이기에 더 마음이 와 닿는다
평점
분포
9.5
이런 책이 이명박정권때 국방부 불온서적으로 지명당했다니. . 그렇치 이명박이 믿는 하느님과 이 책의 하느님과는 전혀 다른분이니
rainboweyes 2016-09-10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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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단 한가지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권정생 선생님이 믿는 하느님을 나도 믿고 싶다는 생각! 참고로 나는, 날 때부터 개신교 신자이자 한때 성직을 수행했던 사람이다.
밤안개 2016-03-24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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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고 권정생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분꽃 2011-05-23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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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이땅에 계셨다면 이분처럼 살아가셨을거란 생각이든다. 더이상 이분의 글을 못 읽는게 안타깝다
멋진사람 2013-02-1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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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을 생각한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나 보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세 때 22세나 23세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권정생 선생의 유언을 처음 접한 건 한 일간지를 통해서였다. 선생의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책들을 소개하며 유언장의 일부를 공개했는데 그 글자들을 난 눈물바람으로 맞았다. 다시 유언장을 대해도 역시 눈물바람이다. 2007년 선생의 부고를 접하고 부랴부랴 <우리들의 하느님>을 찾아 들었다. 당시 책은 초판본이었는데, 이번엔 개정증보판을 읽는다. 개정판엔 비록 선생의 글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글이 세 편 추가돼 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의 책 소갯글과 선생의 지인인 김용락 시인과 고교 교사 이계삼씨의 추모글이 실려있다. 세 편 모두 선생의 삶과 사상을 잘 담고 있다.
선생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난 그 분의 이름 속에 한 방법이 있다고 본다. 정생(正生), 바른 삶이다. 이토록 바르게 살아간 삶이 몇이나 더 있을까? 그의 삶을 바로 세운 힘은 무얼까? 선생의 삶을 여러 존재가 지나갔을테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이는 예수일테다. 그의 일생을 지배한 육신과 마음의 고통은 그를 예수에게로 인도했고, 그 자신 예수의 삶을 살게된다. 헨리 나웬의 말처럼 예수가 '상처입은 치유자'라면, 권정생 역시 일평생 얻은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 치유자가 될 수 있었다.
선생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글이다. 삶이 끝나가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세상을 말하는 그였고, 제발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말기를 당부한 그이였다.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 드립니다. ......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달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권정생
권정생(193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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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11-21 공감(14)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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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봤을까??
국방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 봤을까? 권정생 선생님의 하느님을 도대체 이해나 한 것일까?
책읽는사람 2008-08-02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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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지게를 지고 살아간 바보
요근래 내가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 있다. “기독교계에는 한완상과 이어령이라는 두 지성이 있다. 한완상은 기독교가 키운 인물이고, 이어령은 재수 좋게 주은 인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 뜨거울 정도로 설익은 말이다. 도무지 생각이라곤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말이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냥 창피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 자아비판을 해본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일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와 동생에게 책을 사주셨다. “몽실언니”라는 제목의 상아색 표지의 책을 사주셨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가지고 다녔던 책인데, 몇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참 열심히 읽었었다. 당시 몽실언니라는 드라마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것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책이 정말 재미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동생 둘을 데리고 이리저리 식모살이 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왜 그렇게도 멋있어 보이고 빛이 나 보이던지. 지금은 깨끗한 표지로 새롭게 책이 나왔지만 역시 몽실 언니는 그 촌스러운 책 표지가 어울리는 것 같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아는 사람은 아마 기억하지 않을까?
권정생 선생님을 처음 접한 것은 몽실 언니보다는 민들레 교회 이야기라는 주보를 통해서이다.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께서는 늦은 나이에 목회를 하시면서도 민들레 교회 이야기를 꾸준히 구독하셨고 그 덕에 나는 그분의 구수한 이야기를 꾸준히 읽을 수 있었다. 한티재 이야기도 제목을 몰라서 그랬는데 읽어보니 그곳을 통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촌스러운 사투리를 섞어가면서, 마치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동화와 옛날 이야기는 어린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민들레 교회 이야기와의 인연이 끝이 났고 한동안 최완택,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최완택 목사님께서 계시는 기도원에 수련회를 가게 되었고 권정생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등 어린 시절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그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책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그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거웠다.
내가 자란 마을은 꽤 촌구석이다.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촌이다. 아내가 초등학교 동창인지라 처가를 갈 때마다 어린 시절 자랐던 그곳을 지나노라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촌스럽긴 매한가지다. 현대자동차, 삼성 반도체 등 기업들이 내려오면서 많이 발전되었지만 내가 살던 동네는 발전과 발전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다행히(?) 촌스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치기, 구슬치기, 쥐불놀이, 정월 대보름 밥서리, 딱지치기, 호디기(버들피리를 우리 동네에선 이렇게 불렀다.),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등 게임기가 없어도 하루종일 재미있게 놀았다. 먹을 것도 많았다. 칡뿌리, 대추, 호두, 밤, 감, 삘기(삐리라고도 한다.), 머루, 다래, 으름, 아가배(아마도 야생 배의 한 종류가 아닐까?) 지금도 그것들을 어떻게 잘도 찾아냈는지 모르겠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착각할지 몰라 밝히지만 나는 78년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지 맞아. 그래. 그것도 있었어. 참 재미있었는데. 그건 참 맛있었는데.”몇 번씩이나 추억에 젖어서 맞장구쳐본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도대체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책에서 권정생 선생님께서 제기하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서 자기만을 챙기다 보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살다보니까 더불어 살아야할 그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머리로 사는 천재가 아니라 몸으로 사는 바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간은 모두 바보로 돌아가야 한다. 이 땅의 천재들은 머리로 살아가지만 바보는 몸으로 산다. 부처님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고, 진정 이 땅 위의 위대한 인간은 바보로 돌아갔다. 머리로 산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았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도, 모로카이섬의 다미안도, 마저 테레사도 그랬다.(P.116)
그렇다 세상에 참 똑똑한 사람이 넘쳐나면서부터 우리의 삶이 편리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편리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했는가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경제적인 면은 윤택하게 만들었을지언정 삶의 가치라는 부분에서는 참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아무 것도 없어도 즐거웠고, 맛있는 쿠키나 음료수가 없어도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자연이 주는 것들을 채집해서 먹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연이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놀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되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낭만과 공존에 대한 생각들이 사라져 버렸다. 조금이라도 손해보기 싫어하는 똑똑하고 잘난 천재들이 세상을 꽉꽉 채우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물론 나조차도 천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바보 예수님이 오늘날 이 땅에 오셨다면 십자가 대신 똥지게를 지셨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마음 깊이 여운으로 남는다.
ps.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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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4-01 공감(3)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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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오신 하느님의 그림자
수십년 전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신학으로 "민중신학"이 있다. 그 신학 이론에 따르면 예수님은 항상 박해받는 민중의 모습으로 계속해서 탄생하신다고 한다. 20세기 한국에서 교회는 한없이 번창하여 밤하늘의 별처럼 교회의 빨간 네온싸인 십자가 숫자가 늘어났지만 그에 비례하여 고통받거나 박해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올라갔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관심이 줄어졌다고 할 수 있다.
권정생 선생님은 바로 이 땅에 다시 오셨던 예수님이었다고 여겨진다.
그 옛날 예수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듯이 우리는 권 선생님께 당연히 드렸어야 할 사랑을 드리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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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 2009-12-1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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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서 아픕니다
세상엔 정말 나쁜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나쁜 이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부귀를 누리는 것을 볼 때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지옥은 아닌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또한 세상엔 아름다운 이들도 많다. 한없이 착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해준 이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엔 존재한다. 또한 그런 어진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권정생 선생님 역시 우리에겐 한없이 고맙고 소중한 분이었다. 평생을 따라다닌 육체의 고통을 견디며, 선생님은 우리에게 감당하지 못할 사랑을 전해주셨다. 선생님께서 지친 몸을 버리시고 자유롭게 하늘로 올라가신지 1년하고도 육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선생님들을 그리워한다.
사실 난 선생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아주 어린 시절 선생님의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을 읽었던 기억이 있고, “몽실언니”의 추억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동화작가로서 많은 작품을 써오시며 가난하지만 절대 가난하지 않은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 정도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동화작가를 떠나 참된 신앙인이었고, 참된 어른이었고, 또한 참된 어린이었다. 자연을 한없이 사랑하셨고, 그런 자연이 무지와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어 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다.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며, 자연과 등을 돌리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셨고, 그 착한 심성들이 오직 돈을 위해 경쟁하고 남을 짓밟는 야만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절망하셨다. 그리고 한없이 우시고 우셨다.
우리 곁을 떠나가신 선생님을 기억하고 선생님의 뜻을 잊지 않고자 펴낸 이번 개정증보판은 역설적이게도 선생님이 그렇게도 싫어하셨고, 없어지길 바라셨던 군대, 즉 국방부에 의해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기막혀 하실지….
선생님은 글을 통해 남북의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는 것을 슬퍼하셨다. 고향을 등지고,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을 염려하셨고, 그들이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도록 만든 남북 양쪽 모두를 꾸짖으셨다. 그리고 책은 또한 현실 기독교의 수많은 문제점들을 매우 냉정하게 비판하셨다. 오직 권력과 부귀를 위한 종교는 이미 종교가 아니라고 질타하셨고, 초심으로 돌아가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위해 복무하는 종교가 되기를 기도하셨다. 선생 스스로 너무도 독실한 신앙인이었기에 이런 비판은 참으로 진실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현 정부, 그리고 국방부에게는 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정신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위험한 불온서적으로만 비쳐질 뿐이었다. 분노와 한심함을 넘어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러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얼마나 안쓰러워하셨을까.
이제 선생님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다. 선생님의 따뜻한 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많은 아이들과, 또는 어른들까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따뜻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국방부에서 아무리 선생님의 글을 막으려 해도, 기독교 권력이 아무리 선생님을 폄하하려 해도, 우리에게 우뚝 솟은 선생의 존재감을 무너뜨릴 순 없다. 어찌 보면 이미 선생님은 우리의 이웃, 우리들의 정다운 ‘하느님’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개미 한 마리, 쥐와 닭과 개와 소. 이 세상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고 아꼈던 선생님.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가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으로 누군가가 잃고 있지는 않은지, 정말 사람이란 존재에 맞도록 사는 것이 무엇인지. 선생님의 글을 통해 깨우치곤 한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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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틀키드 2008-11-2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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