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1

[책] 숲에게 길을 묻다 - '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존재의 발견 김용규

알라딘: [전자책] 숲에게 길을 묻다


숲에게 길을 묻다 - '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존재의 발견 (10주년 컬러 개정판) 
김용규 (지은이)비아북2019-12-06 
전자책정가
10,500원
종이책 페이지수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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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젊은 나이에 돌연 벤처기업 CEO 자리를 내려놓고 떠난 저자는 숲에 오두막을 한 채 지어 살며 생명력의 근원을 탐구한다. 그는 숲속 생명들의 다양한 생존 방식에 주목한다. 이들이 오랫동안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생존질서가 인간 사회와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2009년 출간된 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던 김용규의 《숲에게 길을 묻다》가 10주년을 맞아 컬러판으로 새롭게 단장해 돌아왔다. 많은 독자들이 아쉬워했던 숲과 나무, 꽃 등의 흑백 사진을 올 컬러로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진을 추가하고, 디자인을 새롭게 배치하여 한층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또한 10년이 흐르는 동안 낡아진 이야기를 덜어내고 현재의 이야기는 덧붙여 세월만큼 깊어진 저자의 사유를 한껏 음미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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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정판 서문 생명, 존재의 복원을 꿈꾸며
추천의 글 ‘에코 CEO’ 김용규, 숲에게 길을 묻다
서문 희망의 숲에 그대를 초대합니다

1막 태어나다
선택할 수 없는 삶_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 모든 생명은 자기답게 살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
   ·숙명 숲에는 태어난 자리를 억울해하는 생명이 없다
   ·운명 노예로 살 것인가? 주인으로 살 것인가?
   ·수용 시작하자! 신갈나무처럼, 담쟁이덩굴처럼!

2막 성장하다
내 모양을 만드는 삶_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꿈 나무에게는 빛, 사람에게는 꿈
   ·상실 두려워 말자! 버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 없으니
   ·상처 담담하게 지니고 있는 상처야말로 그다운 향기다
   ·경쟁 우리도 숲의 생명들처럼 다툴 수 있기를
   ·관계 성장을 위한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망’
   ·경계 경계, 그곳에 누군가의 길이 있다
   ·혁명 버려진 땅 위에 자신의 꽃을 피우는 일

3막 나로서 살다
나를 실현하는 삶_나로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통 꽃의 유혹?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려!
   ·사랑 따로 또 같이, 사랑하려면 혼인목과 연리목처럼
   ·자식 품 안에 둘 것인가? 멀리 떠나보낼 것인가?
   ·일 식물의 방식으로 일할 수 없다면 참된 일이 아니다
   ·휴식 결실을 위한 에너지와 창조의 힘
   ·상생 홀로 숲을 이룰 수 있는 나무는 없다
   ·공헌 숲을 닮은 풍요, 진정한 부자로 사는 길

4막 돌아가다
다시 태어나는 삶_돌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순환 천지에 흐르지 않는 것은 없다
   ·정리 세상에 남겨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놓음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기
   ·죽음 두려워할 일은 죽음이 아니다

후기 그대, 마침내 숲을 이루십시오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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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자연에는 학교가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 부르지 않아도 계절은 어김없이 매년 순환하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생명은 모두 그 계절에 화답합니다.
P. 272 두려워할 것은 오히려 살고 있으되 살아 있음에 철저하지 못하고, 죽음의 때에 이르러서도 그 죽음에 철저하지 못한 우리의 삶입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일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삶과 죽음의 기회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 hsjang


저자 및 역자소개
김용규 (지은이) 

사람들에게 숲의 철학자로 불린다. 숲을 스승으로 섬기며 글쓰기, 교육과 강연을 주로 한다. 하면서도 스스로는 농부라는 직업에 충실할 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충북 괴산에 ‘여우숲’ 공간을 연 설립자이자 그곳에 세운 ‘숲학교 오래된미래’의 교장이고 ‘자연스러운삶연구소’의 대표다.
30대의 마지막 7년을 벤처기업 CEO로 일하다가 더 깊고 충만한 삶을 열망하여 홀연 숲으로 떠났다. 그 숲에 백오산방白烏山房이라 이름 지은 오두막을 짓고 다락방에서 이 책을 썼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와의 연결을 회복해가는 기쁨을 오롯이 책에 담았다. 숲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마침내 진정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마침내 잃어버린 생명성을 되찾고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으로 돌아오는 길을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이후 《숲에서 온 편지》,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 등의 책을 펴냈다.

KBS, EBS, MBC, SBS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강의를 하고 대담을 나눴으며, 매년 150회 이상 다양한 조직과 기관, 대중을 만나는 강연자로 살고 있다. ‘숲 해설가’, ‘유아숲지도자’ 양성과정 등에서는 전문가를 대상으로 숲의 인문학과 생태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숲으로 떠나온 지 10년 되던 해부터는 자신이 마주한 세계를 더 깊게 나누기 위해 ‘자연스러운삶연구소’를 설립, 연구원들을 양성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숲에게 길을 묻다>,<숲에게 길을 묻다>,<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 … 총 7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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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10주년 컬러 개정판 출간!

소모적인 경쟁을 넘어, 다시 숲의 방식을 주목하라

2009년 출간된 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던 김용규의 《숲에게 길을 묻다》가 10주년을 맞아 컬러판으로 새롭게 단장해 돌아왔다. 많은 독자들이 아쉬워했던 숲과 나무, 꽃 등의 흑백 사진을 올 컬러로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진을 추가하고, 디자인을 새롭게 배치하여 한층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또한 10년이 흐르는 동안 낡아진 이야기를 덜어내고 현재의 이야기는 덧붙여 세월만큼 깊어진 저자의 사유를 한껏 음미할 수 있도록 했다.

언젠가 돌아올 여우를 기다리며
숲 철학자가 길을 잃은 이들에게 바치는 ‘존재 안내서’

충북 괴산 사오랑에 위치한 ‘여우숲’은 저자가 직접 붙인 이름이다. ‘여우를 기다리는 숲’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동식물의 서식지 파괴도 가속화되어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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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분포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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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할 것은 오히려 살고 있으되 살아 있음에 철저하지 못하고, 죽음의 때에 이르러서도 그 죽음에 철저하지 못한 우리의 삶입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일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삶과 죽음의 기회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272
저자의 십년을 함께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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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jang 2019-11-2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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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집 안을 꽉 채운 책에서 사금 채취하듯 조금씩 모아놓은 작은 깨달음들의 원전이 ‘자연‘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책. 활자중독자인 내가 책을 덮고 직접 자연과 만날 용기를 낼 수 있는 에너지를 선물해준 귀한 책  구매
박미옥 2019-12-1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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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게 길을 묻다 새창으로 보기
30대 중반에 저자는 작은 벤처기업의 CEO가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저자에게 희망의 길에 섰다고 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저자도 그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희생하며 많은 시간을 매진하였다고 합니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그 시기에 죽으라고 일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장으로서 삶의 외양은 그럴싸했으나 저자의 내면은 늘 거북함이 함께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의 자리라고 말하던 모험기업의 CEO 자리는 자신에게 맞지 않았던 자리라고 저자는 고백합니다. 의미감에 짓눌린 길은 더이상 저자에게 희망일 수 없었고, 그 지점에 다다랐을 때 저자는 새로운 길 위에 서기로 결심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숲을 항상 좋아했던 저자는 그렇게 숲으로 갑니다.

"내가 정말 나답게 살 수 있을까? 이 새로운 길을 끝까지 걸어가면 내가 닿고 싶은 곳에 닿을 수 있을까?" 숲은 한동안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숲이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숲을 보라! 이곳에서 나고 살고 이루고 떠나는 모든 생명체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마음으로 보라!" 나는 숲의 속삭임에 따라 자연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그들의 삶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숲은 날마다 저마다 저답게 삶을 시작하고 이어가는 생명체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는 생명에게도 나로서 시작하고 살아갈 힘이 있다고 매일매일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생명을 보라! 벌과 나비를 만날 수 없다고, 그것이 두렵다고 스스로 먼저 시드는 꽃은 한 송이도 없다. 삶은 나라는 생명에게 깃든 위대한 자기완결의 힘을 믿는 한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은 모두 자기로 살 힘을 가졌으므로!" (p. 17-18)

그 숲에서 자연과 함께 거하면서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와의 연결을 통해 저자의 마음이 회복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자는 숲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마침내 진정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숲에서 저자가 함께 보고 듣고 느낀 자연이 알려주는 삶의 가치들을 모은 글입니다.

신은 생명들에게 학교를 세워주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신은 오히려 생명체 모두에게 배우지 않고도 저다운 삶을 이룰 수 있는 씨앗을 주었습니다. 숲을 이루고 그 숲에 기대어 사는 모든 생명의 삶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p. 30)

참으로 신비한 것은, 숲에 있는 식물들과 나무와 꽃과 벌레들과 새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이 돌아가는 규칙과 이치를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됩니다. 그 모습이 우리들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연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음에도 우리는 요즘 자연의 삶과는 반대되는 형태의 선택들을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식물은 이렇게 매일 빛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공평하게 비추는 햇살을 생명 저마다의 처지와 환경에 맞게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그렇게 자기를 자라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 빛을 찾을 수 없는 나뭇잎이 누런빛으로 바래가고 마침내 시들어 낙엽으로 떨어지듯이 빛이 흐르지 않는 삶은 희망이 없는 삶입니다. 그곳이 어디든, 지금 어떤 호사를 누리고 있든 자신의 영혼을 일으켜 세워 춤추게 하고 걷게할 꿈이 없다면 그것은 향기가 없는 화려함일 뿐입니다. (p. 77-78)

따뜻한 눈으로 숲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 응답하듯 자신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숲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마주하게 되면서 자연스러운 삶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언어도 맞아떨어집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운 사람, 자연스러운 삶... 등을 표현할 때 쓰이는 '자연스럽다'에 하필이면 우리의 '자연'이 대표로 뽑혀 쓰이게 되었을까요. 자연에서 숲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삶을 찾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르겟습니다.

이렇듯 자연은 자신의 새끼나 씨앗을 발아래 두려 하지 않습니다. 품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새끼는 무서운 맹수나 맹금류를 피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위태로울 것이고, 부모의 발아래에서 발아한 씨앗은 결국 부모의 그늘에 살면서 부모와 햇빛을 나누고 양분을 다퉈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식이 스스로 서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의 사랑이 어찌 참다운 사랑이겠습니까?

숲은 비료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비료를 주지 않아도 숲은 날로 깊어가는 법을 압니다. 굳이 날갯짓을 배우지 않아도 새가 스스로 창공을 가르며 날아오를 수 있듯이 자연의 모든 생명은 이미 그 안에 스스로 자라고 익어가는 법을 품고 있습니다. (p. 179-180)

서로의 모습을 비춰주는 숲과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숲이 생각나는 것은 정말로 자연스러운 일인가 봅니다. 저자는 숲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나로서 살며, 끝으로 어딘가로 돌아가는 그 순환의 고리를 체감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나무는 한때 자신을 키었으나 이제는 짐이 되는 가지들은 더 이상 영향을 공급하지 않음으로써 정리해버립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유용보다 무용이 커진 부분을 실수나 실패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저 그렇게 무수한 잎과 가지와 줄기를 버림으로써 나무는 매 순간 조금씩 성장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숲 바닥으로 버려지는 수많은 시도들이 미생물을 만나 썩음으로써 다시 자신과 주변 생명체의 삶을 비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리라는 걸 나무들은 알고 있습니다. (p. 88)


이상하게 숲에서 이루어지는 순환의 고리를 함께 따라 읽어가면서 묘하게 숲에서, 그 안의 식물들과 생명들의 모습에서 힘을 얻게 됩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생명의 힘을 내뿜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로 힘이 됩니다.


나는 하루하루 태양을 경배하며 살아가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꿈도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들처럼 나답게 독립적으로 살면서도 그 삶이 세상을 더 맑고 아름답게 할 수만 있다면, 사람마다 이루어내는 세상은 얼마나 맑을까, 눈부실까, 그리고 배부를까... 생각하곤 합니다. (p. 79-80)


바쁜 삶을 살다보면 에너지가 나한테 들어온다는 느낌보다 내 안의 에너지가 빠져 나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숲에 가봐야겠습니다. 모든 것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에너지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는 숲에 가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하는 과정에 이 책을 통해 숲에서 있는 작은 것부터 큰 것들의 삶의 방식을 알고 간다면 더 그들의 에너지가 잘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나무가 노동과 휴식을 철저히 자연의 흐름에 맞춤으로써, 지구상에서 가장 유구하고 장대한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깨달은 자들의 삶을 닮았습니다. 나의 눈에 이것은 철저하게 '지금'을 살아가는 지혜를 익힌 자들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미래를 걱정하며 밤을 지새우지도 않고, 과거에 대한 회한으로 불면하지도 않으며, 부질없는 욕망에 휘둘려 밤을 배회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순간에 순간을 더하여 지금에 충실할 뿐입니다. (p. 200-202)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s://blog.naver.com/sak0815/221784378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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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 2020-01-2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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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김용규 님

 

 

숲이 좋아서 산에 다니기 시작한게 벌써 8년이다...처음엔 막연하게 등산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으로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산에 한반짝 발을 내딛었더랬다...처음엔 정말이지 사람들은 이런걸 왜할까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더랬다...힘도 들고 다리도 아프고 다녀온후 며칠동안은 종아리에 알이 배겨 절룩거리며 다녔었다...하지만  한두번으로 산이 좋아질리는 없을거라고 또 산에 다니면서 체력이 조금더 좋아지면 괜찬아질거야 라고 생각하며 다니길 수개월...

그즈음부터는 산에 오른다는것보다 다른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예쁘게 생긴 노랑망태버섯이 처음으로 보였고...난생 처음보는 야생화들도 보였고...말로만 들었던 둥글레...조릿대 등등 이름을 알수 없는 수없이 많은 생물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것...그때부터는 막연히 정산에 오르기위해서가 아닌 숲을 보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고 오르내렸던것 같다...지금은 제법 규모있는 산악회에 가입을해서 전국에 있는 산들을 보는 기쁨으로 주말을 기다리며 산다...

 



 

물론 이 책이 산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하지만 숲이라는 공간에게 얻을수 있는 길...삶의 길...삶의 방향...철학...삶에 대한 통찰...등 숲에게 얻을수 있는 모든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마치 숲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표현도 하지 못할것 같은 숲속의 모든것들에게 의미를 주고 숲의 위대함을 토로하는듯 보인다...숲속의 생명이 어떻게 탄생을 하는지...또 어떻게 성장을 하는지...또 어떻게 열매를 맺고 그 결실을 맺는지에 대한 자세한 과정들을 설명하고 오랜기간 인간의 삶속에 숲이 존재할수 있는지에 대한 숲의 생존방식? 등을 이야기한다...탄생과 죽음...

인간의 삶과는 철저하게 비교되어지는 숲의 이야기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자연의 위대함에 고개를 끄덕였던것 같다...

 



 

책의 구성도 참 좋다...책을 읽으면서 나도 숲처럼만 살아갈수 있다면이라는 생각도 수없이 많이 했던것 같다...나도 숲처럼 살아갈수 있다면...하고

총 4막으로 구성되어있는데...그 제목들의 이름만들어도 자연의 위대함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태어나다...선책할수 없는 사람...성장하다...내 모양을 만드는 삶... 나로서 살다...나를 실현하는 삶...돌아가...다시 태어나는 삶...이 책의 끝맺음은 내 마음에 끝없는 울림을 주었다...[마침내 숲을 이루십시요...]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타협하고 경쟁자를 불신하며 얻어내기 위해 아첨하고...빼앗기위해 협박하고 사는 인간들의 삶의 끝에서...나는 마침내 숲을 이룰수 있을까 하는 공허한 울림...마침내 숲을 이룰수 있을까? 하고 물어보는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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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책방 2020-02-2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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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 존재의 발견

숲의 가르침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사랑하는 힘을 회복하다

 

 

'숲 철학자' 라 불리는 저자의 이 책은 2009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이후로도 꾸준히 읽혀져 십년만에 개정판으로 새로 나오게 됐다고 한다.

30대에 벤처기업 CEO가 되기까지 성공가도를 달렸던 그가 40을 앞두고 홀연 숲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 숲에서 글을 쓰고 숲의 가르침을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이 그 어떤 때보다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기계발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잘 읽지 않는데,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서가 아니라 숲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었다. 언제는 유행처럼 반려동물 붐이 일면서 동물관련 책들이 쏟아지더니 최근에는 식물로 그 방향이 바뀐 듯한 느낌에 이런 저런 식물 생태계 관련 책들로 관심이 가던 차였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자기계발서 였으나, 다행스럽게도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성찰을위한 자기계발이라 힐링서처럼 읽히기도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들어간 사람을 보면 후렴구처럼 떠올려지는 '월든 의 소로' 라는 표현처럼 저자는 '여우숲 의 소로' 였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규명하여 전하려 할 때 인과의 요소만을 주로 따지는 것은 서양의 전통적 방식입니다. 아무리 복잡한 것도 단순하고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점이 있습니다. 신속하고 명쾌하며 효율적입니다. 이 방식은 살펴보려는 사물이나 생명, 사태 등이 전부 대상화되는 특성을 갖습니다. 한편 동양의 전통적 방식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연 緣 이라는 요소를 함께 넣어 사태를 살핍닏. '인-과'라는 직선성보다 '인-연-과'라는 곡선상은 더디고 덜 선명하며 자못 복잡하여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보다 풍성합니다. 헤아려보려는 그 무엇을 단순히 대상화하는 것보다 더 깊게 파고들어 존재 그 자체로 마주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p. 5)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이 책의 첫문장첫단락인 위 구절이었다.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하면서 저자의 관점을 잘 드러낸 부분이기도 했지만, 내게도 가장 와 닿은 부분이었다. 서양 동양 굳이 나눌 필요는 없겠지만 다른 건 다른것이므로 어쩔 수없이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할때가 있는데, 요즘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동양적 마인드 일것 같다. 자연친화적이면서, 집단적이 아닌 개인의 집합으로서의 공동체 문화가 필요한 때인듯 싶어서...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

루쉰은 많은 사람이 걸어가는 곳이 길이 된다 했지만, 그 길이 반드시 내게도 희망일 수는 없습니다. 그 길이 내게 더 이상 희망일 수 없을때, 그 길은 죽은 길이 되고 절망이 됩니다. 한때 희망이라고 믿었던 길 위에서 우리는 지금 절망의 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도 한때 걷던 길 위에서 그런 곤란함과 대면한 적이 있습니다. (p. 13, 14)

 

여러 사람들이 앞서 다지고 간 길이라고 해서 그 길이 반드시 내게도 옳은 길일 수는 없다. 누구나 성공가도를 추구하지만 모두 같은 모습의 성공을 원한다면 결국 탈락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탈락은 실패인가? 길은 한 갈래만 있지 않다. 고속도로가 막히면 국도로도 하고 논밭사잇길로도 간다. 산을 오르는 길이 어디 한 가지 방법 밖에 없겠는가? 남들이 다져놓은 편한길만 찾다가는 작은 돌에 걸려 넘어져도 다리가 부러질 수 있다. 내 발로 흙길을 조금씩 다져가는 길을 가야한다는 것은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이렇게 글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은 왜일까...


모든 생명은 저마다 고유하고 유일합니다. 누구도 다른 누구를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생명의 근원성입니다. 나는 생명의 가장 귀하고 소중한 특성을 바로 대체 불가능성에서 찾습니다. 그대라는 존재를 대체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정치·경제·사회질서가 요구하는 표준과 규격을 따르도록 훈련받아왔고 그 과정에서 유일함을 존중받지 못하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결국 '나'라는 씨앗 안에 무엇이 접혀 있었는지를 잊게 되었습니다. (p. 32)

태어나는 모양과 자리와 시간이 다를 뿐, 생명 모두의 씨앗 속에는 자기 완결의 힘이 이미 담겨 있습니다. (p. 36)

우리 눈에 누추해 보이는 곳이나 그저 길섶에서 자라는 어느 풀 한포기, 어느 나무 한 그루라도 이유없이 자라는 생명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뿌리를 뻗고, 키를 키우고, 꽃을 피워대느라 고단하지 않은 초목이 없는 것입니다. (p. 64)

 

저자의 어투는 굉장히 평온하다. 종교인인가 싶을 정도로 명상적인 문체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떤 특정 종교를 생각나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행이다;;;) 그저 숲 속에 자리 하나 펼치고 앉아, 이나무 저나무 이풀한포기 저풀한포기 둘러보며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 그 자체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듯 조곤조곤 듣고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숲에 가면 왠지 크게 소리치기보다는 조용조용 대화하게 되는데, 그러한 말투가 몸에 배인듯한 저자의 문장들은 굉장히 조용하게 읽게 된다.


나는 가시를 떨어뜨린 나무들을 찬찬히 살펴본 후 그들이 가시를 버린 이유를 알았습니다. 즉 스스로를 지킬 힘이 생긴 나무들만이 가시를 버렸던 것입니다. 동물들에게 쉬이 꺾이지 않을 만큼 자신의 줄기를 살찌웠을 때 비로소 스들은 그동안 키워온 가시를 떨어뜨렸습니다. 자라면서 그들은 가시에 쏟아부었던 에너니와 양분을 차단했습니다. 그러면 가시는 자연스레 삭다가 어느 순간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가시가 있던 자리는 말끔하게 껍질로 덮였습니다. (p. 98)


두릅나무, 아까시나무, 주엽나무 등 성장의 초반에 가시를 달고 자라는 나무들을 보면서 저자가 깨달은 바를 통해 저자는 사람도 이와 같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세웠던 사람들도 나중에 튼튼해지면 가시를 버릴 수 있으리라고, 그러니 가시를 버릴 만큼 튼튼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가시를 여전히 달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가시를 뽑지 말고 이해해주기를 권하고자 한다. 숲에서 살며 숲을 통해 배우는 것들로 은유하는 저자의 이야기들은 그래서 명상적이고 철학적이 된다.


대부분의 식물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영역을 넘어 타자의 영역을 빼앗음으로써 자신을 성장시키는 무리한 경쟁에 골몰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자신을 꽃피우기 위한 공간을 열기 위해 오로지 자신과 다툽니다. (p. 109)


식물은 움직일 수 없다. 동물보다 굉장히 제한적으로 생태계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식물은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 큰나무가 있으면 어떻게든 옆으로 가지를 뻗고, 꽃이 볼품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 수분할 방법을 찾는다. 타자를 의식하나 자시을 바꿔나간다. 내것을 갖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는 인간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


지구가 있어 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달이 있어 지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가 있어 서로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도록 살뜰히 잡아주는 것으로 세상이, 별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꾸 잊어가고 있는 이 위대한 법칙을 반드시 되살려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홀로 온전할 수 없었고 앞으로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p. 121)


도시와 떨어진 숲에서는 별이 잘 보인다. 빛 공해가 없는 곳에 가서 밤하늘 보는 것을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한다. 도시에서도 밤에 불을 좀 끈다면 별을 볼 수 있을 텐데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별을 보려 도시가 아닌 곳으로 간다. 저자는 숲에 산다. 외딴 숲에서 일출과 일몰에 의해 생활리듬을 잡고 있기에 밤에는 별을 잘 볼 수 있다. 숲에는 식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낮에 보이는 숲이 가르쳐주는 것과 밤에 보이는 별이 가르쳐주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할 수 있어 해주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문제'입니다. 작게는 모든 생명이 생명으로서 지니고 있는, 스스로 개척하고 이루며 사는 자립의 원리를 무너뜨리는 것이자, 그 재미를 빼앗는 것입니다. 또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려움과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회적 적응력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약화된 적응력이 대를 이어 재생산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식들에게 지나친 재산과 기회를 구축하여 상속해주고, 이것이 반복된다면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자식들은 구조적인 불평등 속에서 삶을 시작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낳을 것입니다. 성년이 된 자식이 그 삶을 더 안락하게 시작하도록 배려하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지만, 도가 지나칠 경우 부모의 삶이나 자식의 삶이나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숲에 사는 생명들은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p. 171)

자연은 자신의 새끼나 씨앗을 발아래 두려하지 않습니다. 품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새끼는 무서운 맹수나 맹금류를 피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위태로울 것이고, 부모의 발아래에서 발아한 씨앗은 결국 부모의 그늘에 살면서 부모와 햇빛을 나누고 양분을 다퉈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식이 스스로 서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의 사랑이 어찌 참다운 사랑이겠습니까?숲은 비료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비료를 주지 않아도 숲은 날로 깊어가는 법을 압니다. 굳이 날갯짓을 배우지 ㅇ낳아도 새가 스스로 창공을 가르며 날아오를 수 있듯이 자연의 모든 생명은 이미 그 안에 스스로 자라고 익어가는 법을 품고 있습니다. (p. 179)

 

뒤이어 들려주는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라는 책 이야기는 유익한 사례였다. 섬진강 변에서 큰오색딱따구리를 50일간 관찰한 사진과 기록을 담아 펴낸 책으로 부부새의 육아를 온전히 관찰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자연의 삶이 대개 그러하듯 자식을 독립시키는 철저함도 교훈적이었다. 숲에 사는 저자가 감동적으로 읽을만한 책이었다.

얼마전 티비에서 치타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치타는 집단을 이루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다. 번식기에 잠깐 상대방 치타를 만났다가 헤어지고 어미는 새끼를 홀로 낳아 키운다. 집단이 아닌 만큼 주변 맹수들로부터 새끼를 지켜내는 것은 제아무리 치타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 새끼를 낳았던 어느 치타는 결국 하이에나에게 새끼를 모두 잃었다. 그 경험으로 이제 치타는 다음번 태어나는 새끼들은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 자연에서는 새끼를 잃는 경험으로 새끼를 지키는 법을 배울 정도로 어찌보면 냉혹하고 어찌보면 철저하다. 하지만 그래야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대부분의 나무가 노동과 휴식을 철저히 자연의 흐름에 맞춤으로써, 지구상에서 가장 유구하고 장대한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눈에 이것은 철저하게 '지금'을 살아가는 지혜를 익힌 자들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미래를 걱정하여 밤을 지새우지도 않고, 과거에 대한 회한으로 불면하지도 않으며, 부질없는 욕망에 위둘려 밤을 배회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순간에 순간을 더하여 지금에 충실합니다. (p. 201)


사람이 나무처럼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은 나무로부터 배울 수는 있다. 나무는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무의 삶은 충분히 사람에게 시사하는 내용이 있다. 식물은 고민하지 않는다. 식물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저 생명력을 발휘하고 생태계를 순환시키는데 일조한다. 의도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 뿐이다. 사람이 식물처럼 살 수는 없지만 식물처럼 살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식물의 자세를 조금 응용한다면 사람의 삶이 좀더 평화로워질 수 있음은 분명하다. 저자는 숲에게서 나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깨달음을 전하고자 하지만 직유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은유는 해석자에 따라 다양한 범위로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한 종의 새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미 30여 종의 곤충이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소멸은 소멸을 낳고 그 소멸은 다시 더 빠른 소멸을 낳습니다. 우리 인간이 오로지 인간의 편리와 안전과 행복만을 욕망하는, 이대로의 탐욕을 유지한다면 더 이상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소멸의 법칙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인간마저도 소멸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아직도 늦추려 하지 않고 계속 달리기만 하는 이 소멸의 연쇄를 상생의 연쇄로 바꿔내지 않으면 분명히 그런 날이 오겠지요. (p. 208)


한 종의 새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미 30여 종의 곤충이 사라졌다는 의미라니... 최근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며 생명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읽을 때마다 깨닫고 있는 중이라서인지 이 문장에서 느껴지는 파괴력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우수한 품종만 간단하게 남기는 것은 그 우수종을 죽일 수 있는 균이 나타났을 때 멸종 이외의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없게 만든다. 다양성이 곧 생명력이다. 인간에게 필요하건 필요치 않건 모든 생명은 다 존재의 이유가 있고 그 존재의 이유를 무시해나가는 발전은 발전이 아니다. 눈앞의 편리보다 먼미래의 공존을 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인간의 삶인가 보다.


저자는 인생에서 깨달아야 할 가르침들을 숲에서 얻었고, 그렇게 자신처럼 숲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숲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숲에 가서 느낄 수 있는 가르침들을 책 한권으로 배울 수 있도록. 그리고 숲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그렇게 숲이 주는 가르침을 직접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숲에 가보도록.


제목이 생각나진 않지만 유명한 그림책이 떠오른다. 도시의 사람들이 휴가로 시골에 왔다. 오기 편하려고 길을 닦고 집을 짓고 마트를 들여오고 사람이 모여들자 도시와 똑같이 되버려서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한곳한곳 망쳐놓고 떠나는 인간들의 모습이 그림책 속에서 너무나 어리석게 표현되어 있었다. 지구는 무한하지 않다. 그렇게 한곳한곳 망치다가는 온 지구를 다 망치게 될 것이다.


대부분 산전수전 다 겪고 마음이 지치고 삶이 힘들때 이런 책과 이런 가르침들을 찾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숲 가까이에 살면서 종종 숲에 가서 숨쉬고 올 수 있는 환경속에서 산다면 일찍 부터 숲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숲이 멀어져 가는 요즘이 더 안타깝기만 하다. 자연은 존재 자체로 늘 깨달음을 준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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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LY 2020-01-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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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게 길을 묻다 새창으로 보기
저자는 숲에서 인생을 생각하고 인간을 넘어 인류 전체를 생각한다. 숲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 다고 하니 숲이 그에게는 생명의 공급처다. 창조주가 만든 자연, 가장 원래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 숲이리라. 인간의 탐욕이 덜 들어간 그 곳, 그 곳에서 지치고 병든 마음과 몸을 맡기는 것도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과학만능주의로 생각도 인과에 지나치게 함몰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수많은 아픔과 노력과 고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오로지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고 와서 오늘날과 같은 온갖 병폐가 난무하지 않나 싶다.

그는 총 4막으로 구성하여 책을 전개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삶, 그런데 이 삶을 주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노예로 살 것인가? 는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다. 그래서 나름의 자신의 모양을 만들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인생일 것이다. 자신이 왔던 그 길을 미련 없이 다른 이들에게 또한 돌려주는 것도 그의 몫일 것이다. 잠시 나그네로서 행복하게 살다가 다음 사람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려주는 아름다운 삶을 꿈꾸어 본다. 이것이 단지 몽상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저자는 산 속의 나무나 들판의 풀이 자신의 의지나 바람과 상관없이 누구는 험하고 외진 곳에 누구는 양지 바른 곳에 뿌려져 자라면서 우리처럼 불평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그 조건이나 형편에 맞게 잘 적응해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의 올바른 길로 말한다. 이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고 조물주의 뜻에 따르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좀 더 편한 것도, 어려운 것도 불평의 요소이기 보다는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참 길의 과정임을 깨닫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도구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철학자이며 시인이며 자연인 것 같다. 오늘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익히며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찾아가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진실한 삶의 현장 곧 자연으로 돌아가야만 참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지렁이도 잡초들도 그들만의 방법으로 다른 동물이나 풀들에게 유익함을 주며 살아가고 있고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도 칡넝쿨 같은 존재들보다 서로를 인정하며 상처를 주지 않고자 노력하는 자연을 보며 우리가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따뜻한 조언을 한다.

 

자연은 더 이상 우리가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태고의 인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배우고 최소한 우리가 공생하는 대상이어야 함을 배운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많은 쉼과 평안을 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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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 2020-02-0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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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함께 깊어진다는 것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책은 저자가 내놓은 첫 책을 10주년을 기념하여 개정판으로 내 놓은 책이다. 처음 초판 1쇄를 읽고 개정판을 새로 읽어도 새롭다는 것이 참 좋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십년을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는 행운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정판에 밝힌 저자의 겸손한 말처럼 그렇게 그 의미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운명처럼 그의 몸으로 들어온 것들이 십년 동안 실천하면서 피와 살이 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의 책은 인용이 드물어서 좋다. 



이 책의 경우 인용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예를들면 김성호 교수님의 책) 그것은 그가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꼭 필요한 경우에 극히 제한 되고 있다. 그 이후의 책들 또한 위대한 철학자나 사상가의 이야기들을 인용해서 읽는 사람들의 지식으로 기를 죽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가 나무를 풀을 숲을 친구로 스승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는 천상 이야기 꾼이다. 자신이 나무에게 물은 것들, 풀에게 물어 본 것들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그의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떠오를 정도로 빠지게 된다.



아껴 읽었지만 어느 새 끝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저자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의 모든 시도를 응원한다.



두려워할 것은 오히려 살고 있으되 살아 있음에 철저하지 못하고, 죽음의 때에 이르러서도 그 죽음에 철저하지 못한 우리의 삶입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일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삶과 죽음의 기회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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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할 것은 오히려 살고 있으되 살아 있음에 철저하지 못하고, 죽음의 때에 이르러서도 그 죽음에 철저하지 못한 우리의 삶입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일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삶과 죽음의 기회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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