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9

기독교의 기원과 영지주의 |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의 기원과 영지주의 |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의 기원과 영지주의
Sep 08, 2014 PTSA 기고글



기독교의 기원과 영지주의



1. 들어가면서

기독교 이단으로 지목된 영지주의(Gnosticism)와 관련 문서들은 기독교의 기원을 푸는데 귀한 정보원으로 신약학계에서는 연구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파생하였는데, 그 지식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구원에 관한 지식(salvific knowledge)을 뜻합니다. 최근 영지주의 문헌 가운데 하나인 <도마복음> 해설서를 김용옥 교수와 오강남 교수가 내놓으면서 한국 교계와 학계에서도 영지주의는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 신학계의 때늦은 관심에 비해 서구 학계는 이미 60년 전부터 영지주의문헌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이러한 영지주의 연구는 1945년 발견된 영지주의 문헌의 보고인 나그함마디에서 다량의 영지주의문헌이 발견되면서부터입니다. 그 문헌의 발견과 동시에 역사적 예수 연구도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기원을 푸는 한 열쇠가 되는 영지주의를 간략히 소개하려 합니다.

2. 한 현대판 영지주의자와의 해후

영지주의는 2000년전에 사라진 것이 아닌 지금도 곳곳에 그 잔재들이 여러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10년 전 남가주 업랜드(Upland)에서 살 때, 아랫집 미국 사람의 집에서 목요일마다 모임을 가지길래 궁금하던 차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모임의 리더인 그와 대화하던 중 그의 여러 이야기에 영지주의적 요소가 강해서 ‘그노시스(gnosis)’와 ‘노스티시즘(Gnosticism)’이란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지요. 모른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고전이 된 한스 조나스(Hans Jonas)의 <The Gnostic Religion>(영지주의 종교)이란 책을 주면서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 주었지요. 이 친구가 그 책을 일주일 동안 읽은 후, 저를 찾아와서 다소 상기된 얼굴로 자신의 신앙이 그 책이 소개해 주고 있는 영지주의와 분명 깊은 관련이 있음을 시인 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자신의 신앙의 뿌리를 찾은듯 흥분해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가 제게 보여준 그들의 두꺼운 경전의 저자와 기원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책을 열어 보았을 때 성경에서 발견하는 여러 지명과 인명뿐만 아니라 복잡한 우주도와 가르침의 체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 종단의 본부는 시카고에 있다고 하면서 내년 중에 그들의 경전에 해당하는 그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국에 소개할 것이라는 귀뜸을 해 주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영지주의의 한 뿌리를 그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현대판 영지주의자와의 예기치 못한 뜻밖의 해후였습니다.

3. 헤븐스 게이트(Heaven’s Gate)와 영지주의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이런 형태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심지어 영화 <Matrix>(메트릭스)가 보여주는 세계관도 이런 영지주의적 요소와 함께 기독교와 불교적 세계관이 뒤섞인 혼합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배어 있습니다. 1997년 3월 26일 남가주 샌디에고(San Diego)에서 집단 음독자살한 39구의 시신이 한 집에서 발견되어 세계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였습니다. 이들이 가담했던 컬트(cult)는 <Heaven’s Gate>라는 신흥종교로 영지주의에 그 뿌리가 잇닿아 있습니다. 고대의 영지주의는 소위 정통 기독교처럼 신앙의 대상으로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단지 불교의 붓다(Buddha)처럼 진리를 가리키는 이인 천상의 계시자(heavenly reveler) 정도로 여겼다면, 이들 Heaven’s Gate 신도들은 예수님 대신 UFO가 구원의 지식(salvific knowledge)을 끊임없이 지상으로 전해주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이 지구를 탈출하여 다른 세계로 가려고 하였고, 그 결과 그들이 택한 것이 자살이었지요.

이 세상으로부터의 엑소더스(exodus)를 위해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영지(gnosis)를 활용하여 영혼의 여행길을 떠난 것입니다.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 있는 그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웃음 머금은 채 말이지요. 육체를 덧입고서 그 중력으로 떨어진 이곳 지구를 탈출하여 그들이 본래 있던 천상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패스워드(password)와 같은 영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러한 영지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믿은 그들은 그런 깨달음이 없는 이 세상을 뒤로하고 극단적 자살을 통해 다음 세상으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영지를 가지고 그런 식으로 관문을 통과하여 그들이 다다르고 싶은 신과의 합일을 위한 본래의 천상적 영역으로 이동하려고 하였지요. 이것을 우리는 ‘영혼의 여행'(the journey of soul)이라 합니다. 모든 영지주의 종교는 이 세상을 탈출하여 저 세상으로 가는 이러한 구원의 여정을 상정합니다.

4. 중세 이후 영지주의의 잔재들

이러한 영지주의적 궤적을 밟아 올라가면, 그곳에는 16세기의 은밀한 비전 전수 모임인 장미 십자단(Rose Croix) 형제들과 그들로부터 매우 심대한 영향을 받은 프리메이슨단(Freemason)이 있습니다. 프리메이슨단은 이 세계를 영혼이 윤회의 가혹한 순환과정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 지옥과 같은 곳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대의 온갖 음모이론이 제기될 때마다 그러한 음모를 일으키는 배후 세력으로 언급되는 이러한 프리메이슨단도 영지주의적 경향이 강하지요. 시인이며 견자였던 윌리암 블레이크(William lake), 괴테(Goethe)의 파우스트(특히 2부에 영지주의적인 신화학과 형이상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적 경향의 신화와 윤회의 이론이 스며든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종교사상, 19세기 후반의 상징주의 시인이었던 보들레르(Baudelaire. 자연의 모든 형태, 즉 외적인 자연과 인간의 자연적 천성과 모세의 율법에 반항하며, 버림받은 사람들, 즉 카인의 종족을 찬양하는 그의 시 세계에 담긴 유일한 희망은 세계 밖으로의 탈출입니다.), 그리고 단테(Dante)의 (아라비아인들에 의해 수집된 몇몇 영지주의적 테마를 이용한) 신곡, 독일 신비주의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에크하르트(Eckhart), 생물학과 인류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영지주의의 관점과 결합한 테이야르 드 샤르뎅(Chardin),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 등등이 이런 영지주의적 요소가 반영된 사상을 표출했지요. 세계의 부조리, 세계의 잔인함, 지옥 같은 지상의 거소로부터 탈주하고자 하는 욕망, 동류 인간들 사이에서 ‘이방인’이라는 소외된 느낌, 끈덕진 악의 편재 등은 영지주의적 주제들의 목록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카프카(Kafka)와 포크너(Faulkner), 그리고 카뮈(Camus)의 작품도 영지주의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5. 고대의 영지주의의 맥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으로서 유대종교의 우수성을 그레꼬-로마 세계에 선양하려한 필로(Philo),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 어거스틴(Augustine)이 한 때 심취했던 페르시아에서 발원한 마니교(Manicheism), 나조라파라고도 불리우는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유대, 그리고 마니교의 요소들이 한데 섞여 있는 메소포타미아 하부 지방의 만다교(Mandaism),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수장으로서 창조의 영원성과 무한히 계속되는 많은 수의 세계가 있음을, 그리고 영혼이 전생에 생존했었고, 그들이 육체 속에 추락했음을 설파한 교부인 오리겐(Origen), 바울의 열렬한 팬으로서 정통 교회로 하여금 신약 정경화(canonization) 작업에 박차를 가하도록 자극했던 마르시온(Marcion)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이전의 엠페도클레스(Empedokles)나 피타고라스(Pythagoras) 학파는 기독교적 영지주의의 선구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조물주는 열등하지만 악하지 않은 신으로 간주하면서 형이상학적, 종교적인 이원론을 옹호하며,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는 혼란과 악에 연결될 수밖에 없으며, 지상의 삶을 사는 동안 영혼은 “수없이 많은 악 밑에 깔려 있다.”고 주장한 플라톤(Plato)은 영지주의의 선조 중의 한 명이며, 그의 후계자로 영지주의자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던 플로티누스(Plotinus)도 영지주의의 영향권 내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영지주의의 가르침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끼지 인류 사상사 속에서 둥지를 틀고서 모양을 달리하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6. 영지주의와 기독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지주의 문헌은 거의가 2세기 중반 이후의 것이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그 기원을 바벨론 포로기까지 추산하기도 합니다. 월터 바우어(Walter Bauer)에 의하면 주후 2세기에는 지금의 터키인 소아시아(Asia Minor)에 영지주의자들이 소위 정통 크리스천들보다 수적으로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영지주의는 동양종교, 그리스 철학, 그레코-로마의 신비종교와 기독교의 교리가 섞인 일종의 혼합주의적 경향을 띤 기독교 이단이었습니다. 또한 물질과 육체를 죄악시 하고 영을 높이 평가하는 그들의 극단적인 이원론적 사상 때문에 물질세계를 창조한 구약의 야훼 하나님을 가장 저급한 신인 데미우르지(demiurge)로 간주하였습니다. 물질과 육체를 악하게 생각한 나머지 두가지 상반되는 그룹이 내부적으로 생겼습니다. 육체를 구원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기에 그 육체를 철저히 억누르는 금욕적 형태의 그룹과 육체적 탐닉에 전혀 상관치 아니하는 쾌락주의적 경향의 그룹으로 분화됩니다. 극과 극은 통하듯 실은 이 둘의 뿌리는 하나였습니다.

이들의 가르침은 당대의 많은 대중들을 매료시켰고 2세기 중반까지 기독교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되었지요. 적어도 정통 크리스천들의 박해와 그들의 지적 종교로의 지나친 경도로 인하여 대중적 기반을 급격히 상실하기 이전에는 그랬습니다. 8층적 우주관에서 나중에는 365층으로 확대된 복잡한 우주관과 교리체계를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성직자 계급 제도(hierarchy) 위에 구축된 가톨릭 입장에서는, 영지를 가짐으로써 예수와 제자들 사이의 간격이 없듯이, 다소 평등한 체제를 유지한 영지주의 그룹이 위협적인 이단으로 보여 졌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영지주의 그룹이 내부에 어떤 영적 서열도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워낙 은밀한 그들의 행보로 대부분 그들의 가르침과 의식을 비판했던 교부들의 작품 속에서만 그들의 가르침의 일부를 간헐적으로 만나다가 1948년 (고대에는 케노보스키온으로 불렸던) 나그함마디(Nag Hammadi)라는 이집트 북부(우리가 보았을 때는 나일강 남부) 작은 촌락에서 주후 400년경에 정통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영지주의자들이 묻은 것으로 보이는 밀봉된 단지에서 가죽 장정 파피루스 코덱스 13권이 1945년 12월에 발견되어 세상에 공개된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학계에서는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에 버금가는 중요한 발견으로 여기는 바, 초기 기독교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나그함마디 영지주의 문헌들은 유네스코(UNESCO)가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지요.

영지주의는 소종파로 각 처에 흩어져 내밀하게 활동했는데, 시조 내지는 스승의 이름을 따서 불리우는 그들 그룹의 이름을 열거하자면, 영지주의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사도행전에 성령을 돈으로 사려했던 마술사) 시몬의 종파인 시모니안, 발렌티니안, 바실리디안, (도마복음, 도마행전, 도마서를 남긴) 토마스, 유대적 영지주의 그룹인 세티안 등이 있습니다.

7. <도마복음>(Gospel of Thomas)과 역사적 예수 연구

특히 <도마복음>은 말씀복음서 Q 복원에 박차를 가하면서 역사적 예수 연구에 불을 지폈지요. Q는 “자료” 혹은 “원천”을 뜻하는 독일어 Quelle의 이니셜을 딴 것으로, 신약학계에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자료로 사용된 예수님의 말씀어록으로 150년전부터 여러 학자들이 그 존재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해 왔던 자료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야기 형태가 아닌 어록 형식의 복음서인 도마복음이 발견되면서부터 Q 연구는 날개를 달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복음서는 이야기 형식의 복음서이기에 어록 중심의 비내러티브적(non-narrative) Q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고 회의적 반응을 보여온 학계에 이야기 형식이 아닌 어록중심의 도마복음이 발견되면서 Q연구와 역사적 예수 연구는 엔진을 달게 되었습니다. 물론 Q 문서는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자료는 아닙니다. 지금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한 동안 그 두 복음서와 함께 역사적 예수 연구 관련 도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 어록(Jesus’ sayings)이 가진 비내러티브적 경향 때문에, 한 흐름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narrative) 형태의 정통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로 나아가고, 또 다른 흐름은 영지주의적(gnostic) 경향을 지닌 <도마복음>과 같은 소위 이단적 형태의 복음서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마복음>을 읽다보면 불교의 붓다의 모습을 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영지를 얻는 순간(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해탈하는 순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사이의 간격은 사라지고, 동일한 영지를 지닌 동일한 부류가 되고 맙니다. 자신이 붓다가 되려면 자신 속에 있는 붓다를 죽이라고 설파하는 그런 불교적 색채의 기독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계시적(revelatory) 종교가 아닌 계몽적(enlightening) 형태의 기독교가 <도마복음>에 꿈틀대고 있는 것이지요.

8. 신약성서와 영지주의

지금 있는 거의 대부분의 영지주의 작품들이 주후 2세기 이후의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발아상태의 영지주의가 신약성서 시대에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만개한 2세기의 영지주의 이전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면서 기독교의 강력한 적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프로토노스틱주의(proto-Gnosticism)를 상정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신약성서에서 영지주의적 요소와 한 판 힘겨루기 했던 그런 흔적들을 찾아본다면, 고린도전서의 바울의 적대자들의 주장 속에서, 금욕적 형태의 골로새서의 유대적 계열의 영지주의자들(2장), 영지주의적 세계관을 도입하면서도 그들의 사상을 강하게 반격한 요한복음(이 때문에 요한복음은 오래 동안 정경의 자리에 들어가는데 힘겨운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할 것을 주장한 금욕적 형태의 영지주의를 반영한 디모데전서 4장 1-3절,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한 디모데후서 2장 16-18절(이러한 주장은 나그함마디 라이브러리의 The Treatise of the Resurrection, The Exegesis on the Soul, The Gospel of Philip에서 주창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육체로 온 것을 부인하는 자들을 언급한 요한 1서(2:22; 4:1-3)와 요한 2서(7절), 가인의 길을 행하는 자들을 질책한 유다서(11절), 계시록의 니골라당(2:15),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을 따르는 무리들(2:20) 등등이 영지주의적 사상과 경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9. 나가면서

어떤 종교든 인간의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투 속에서 그 시원을 열었다고 한다면 영지주의 또한 악의 기원과 인간이 고통당하고 죽어야 하는 그 이유를 해명하는데서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기에 악의 기원이 되는 물질과 육체를 만든 구약의 야훼를 가장 저급한 신(Demiurge)으로 여기고, 그러한 물질세계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교리를 구축할 때, 그들이 특히 창세기를 집요하게 나름대로 석의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할 것입니다.

소위 정통 기독교가 교리를 형성하는 과정에 영지주의가 영향을 준 것이 있다면, 여기서 두 가지 정도 들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영지주의와의 대결 속에서 정통 기독교는 육체의 부활로 선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육체의 부활을 주장하지 않다가 육체를 죄악시 하는 그들과의 논쟁 속에서 육체의 부활을 주장하는 경향이 강해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무에서 유로의 창조(creatio ex nihilo)’도 영지주의자들과의 대결 속에서 나온 교리로 보고 있습니다. 실은 창세기 1장을 읽어 보면 ‘무(nothing)’가 아닌 ‘혼돈(chaos)’으로부터의 질서(cosmos)로의 창조입니다. ‘혼돈’은 nothing이 아닌 something입니다. 이것도 영지주의의 부정적인 물질관에 대한 하나의 반작용일 듯합니다.

최근 미국 서점에 가면 영지주의 관련 도서들이 북케이스(bookcase)를 부쩍 많이 차지하고 있음을 봅니다. 아마도 댄 브리운 쓴 <다빈치 코드>가 준 영향도 있겠지요. 그리고 영지주의 관련 도서의 판매부수가 의외로 많다는 것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영지주의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고, 독자층이 넓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단이었지만 어쩌면 기독교의 기원을 살펴보는데, 그리고 기독교에 이래저래 영향을 준 중요한 사상의 한 뿌리로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겠지요.

어떤 종교와 사상도 진공(vacuum)상태에서 기원하여 발전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1세기 가장 격렬한 상황에서 발원하여 로마제국의 박해을 견디어 내며, 강력한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과 투쟁하면서 그 사상과 체계와 조직을 갖추었습니다. 어쩌면 영지주의와의 격렬한 사상적 투쟁이 있었기에 그 이후 기독교는 세계 종교로 부상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기원과 기독교의 원래적 에토스(ethos)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는 현대 교회가 자칫 기독교 복음의 원류에서 이탈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떠내려 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와도 같습니다. 세계 학계의 방대한 영지주의 연구에 비해 연구 활동이 빈약한 국내에 영지주의 관련 문헌들이 소개되고 연구되어 기독교의 기원을 푸는데 세계 학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