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슬리의 <영원의 철학> 제3장 신성한 <나>가 되기에 나오는 기억에 대하여
===
이 장에서는 우선 나라는 것은 1, 2, 3의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 1,2 (몸과 마음)는 나3 (영혼spirit)가 아니다.
---
나 1,2에 대하여
---
우리는 탐식의 쾌락이나 부절제 또는 관능과 같은 거의 무한한 수의 가능한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 돈, 권력 또는 명성으로;
- 우리 가족과 함께 소유물로 간주되거나 실제로 우리 자신의 이기심의 확장 및 투영으로 간주되는 것들.
- 우리의 취미, 수집품;
- 우리의 예술적 또는 과학적 재능, 좋아하는 지식 분야;
- 우리의 직업, 정당, 교회;
- 우리의 고통과 질병;
- 성공이나 불행에 대한 기억, 미래에 대한 희망, 두려움 및 계획;
---
그러나 이러한 유혹에 굴복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이런 유혹에 저항할 수 있고, 그것들이 자기가 되기에 너무 쉽고 자연스러운 것과 동일시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니 그러한 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의 근원에 존재하는 <영원한, 신성한 실재>이다.
===
세진: 여기에 <기억>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불행에 대한 기억>, 의식적인 것에다 무의식적인 것도 포함하면 트라우마에 상당하는 것이 된다. 몸과 마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없는 것까지 지어내서 기억하는 것도 있을 수 있겠다. 위안부문제도 연결되어있는 이슈이다.
그런데 <신성한 나>라는 것은 그런 몸과 마음에서 벋어나는 것이다. 이런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난 후에, 그것과는 관계없는 가족관계에 대하여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트라우마 문제를 다루는 책을 읽자는 생각이 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