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스펙트럼
석가모니에서 무묘앙 에오까지, 그 깨달음의 궤적
김현철 (지은이) 시단 2013-06-05
정가
20,000원
깨달음은 어떤 특정한 것이 아니다. 이 몸과 마음이 ‘나’가 아니라 이 우주 전체가 다 ‘나’라는 것을 아는 그 앎이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그 앎이 어찌 하나의 종교나 하나의 방법으로만 가능하겠는가? 불교를 통해서도, 기독교를 통해서도, 마법을 통해서도, 과학을 통해서도, 명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그대와 잘 맞는 방법을 선택해서 그대의 실체를 알면 그게 바로 깨달음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깨달음의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어느 한 길만이 진리라는 독단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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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01 내가 있다는 느낌을 쫓아서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
spectrum 02 삶속에서 죽음을 죽음 속에서 삶을
오쇼 라즈니쉬
spectrum 03 자아탐구와 헌신의 길
라마나 마하리쉬
spectrum 04 물처럼 흘러서
노자
spectrum 05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
공자
spectrum 06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석가모니
spectrum 07 마법을 통해 가는 길
프란츠 바르돈
spectrum 08 모든 것을 통합하다
켄 윌버
spectrum 09 의식의 지도를 그리다
데이비드 호킨스
spectrum 10 가슴으로 만난 신
닐 월시
spectrum 11 마음을 완전하게 사용하는 사람들
베어드 스폴딩
spectrum 12 과학을 통하여 존재를 만나다
마이클 탤보트
spectrum 13 우리가 지구에 온 이유·미리 계획된 삶
로버트 슈워츠
spectrum 14 길 없는 곳을 가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spectrum 15 미처 못가고 옆길로 샌 바보
무묘앙 에오
spectrum 16 서양의 철학자들
·에드문트 후설
·마르틴 하이데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질 들뢰즈
spectrum 17 그리스도가 된 예수
성경에서 만난 예수
부록 도마복음·바보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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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42
마음은 꼭지에 매달린 과일과 같다. 꼭지가 없으면 과일도 없다. 마하라지가 지치지도 않고 바로 그 꼭지, 모든 마음들이 매달려 있는 그곳, 즉 내가 있다는 느낌에 집중하라고 요구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마음을 가만히 한 곳(그것이 ‘내가 있다’든, ‘나는 무엇인가?’든, ‘이 뭣고?’든)에 모으면 마음의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바탕인 의식과 만날 수 있는데, 그대가 확실하게 의식과 만나고 나면, 마음이란 결국 의식이 있음으로 해서 가능한 움직임일 뿐임을 명확하게 알게 된다. 그때 그대의 관심이 비로소 마음에서 의식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P.56
깨달음이 하나뿐이니 깨달은 사람들은 다 똑같이 행동할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정치인들이 정치라는 한 가지 일에 종사하지만 그 개인에 있어서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택시 기사들도 똑같은 일을 하지만 각자 다 삶의 모습이 다르듯이, 깨달음에 있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나타난다. 그래서 혹자는 고요한 곳을 찾아들어가서 침묵을 즐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망나니로 변신하기도 한다. ‘나’라고 할 것이 없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나’라고 할 것이 없으니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P.73
어쩌면 마음을 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그렇게나 많은 방편들이 생겨났을까? 마음을 보면 되는데 왜 잠을 안 자는가? 마음을 보면 되는데 왜 밥을 안 먹는가? 마음을 보면 되는데 왜 고행을 하는가? 마하리쉬는 모든 방법들이 다 참자아 탐구로 들어가기 위한 간접적인 방편들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참자아 탐구가 바로 마음을 보는 것이다. 단식도, 장좌불와도, 고행도 다 마음을 보기 위한 준비운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마음을 봐라!
P.79
물 같은 사람이 되라. 도덕경은 결국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써진 글이다. 지는 것이 결국 이기는 것이고 남을 돕는 것이 결국엔 나를 돕는 일이 된다는 걸 그대도 알고 있지만, 막상 행동을 할 땐 그게 잘 안 된다. 그대가 의식의 눈으로도 보고 마음의 눈으로도 보면서 갈등하는데 대개는 마음이 의식을 이기는 탓이다. 하지만 의식이 성장하면 의식의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마음은 여전히 움직이지만 의식을 압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일 이를 닦고 몸을 씻듯이 마음도 좀 씻고 다녀라.
P.85
벽에 문이 있으면 그 문을 열고 지나가면 된다. 그런데 만약 문이 없다면 어떻게 지나갈 수 있을까? 정상적으로는 벽을 지나서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대가 모르는 마술 같은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벽을 지나서 반대편으로 넘어가려던 그대의 ‘나’가 사라지는 순간 모든 것이 ‘나’가 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저 어떻게든 이 몸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야한다고 믿고 있던 그대가 그 믿음을 포기하는 순간, 그대가 모든 곳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벽을 지날 필요도 없고 저쪽으로 건너갈 필요도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그대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셈이다. 그대의 ‘나’를 없앨 수 있다는 것과 그대가 사라지는 순간 그대가 전부가 된다는 것을. 그대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은 사실은 아무 것도 없다. 그대가 스스로 자신을 묶어놓고 있을 뿐이다.
밑줄긋기
revoman
이 모든 것이 존재라면 나도 이미 존재라는 얘긴데 왜 굳이 깨달아야 하는가? 굳이 깨달을 필요 없다.
그런데 살다보면 신호가 오는 때가 있다. 어떤 신호가 올까? 고통이라는 신호가 온다. 그러면 그대는 저절로 약을 찾게 된다. 그대는 단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거나 약 비슷하게 생긴 거라면 뭐든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때 결국 만나게 되는 게 깨달음이다.
그러니 왜 깨달아야 하느냐고 미리 묻지 마라. 고통이라는 삶의 신호가 그대를 발견하는 순간 ‘왜?‘는 흔적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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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연은 일렬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연은 동시에 도처에서 한꺼번에 발생한다. 이런 동시발생의 증거는 바로 가까이에 있다. 책 읽기를 중지하고 위를 보라. 당신은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무한하게 많은 과정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태양은 빛나고, 심장은 고동치고, 새들은 노래하고, 아이들은 뛰놀고, 폐는 숨을 쉬고, 개는 짖고, 바람은 불고,귀뚜라미는 울고, 눈은 보고 귀는 듣고 있다. 계속해서 예를 들 필요가 있을까?
이런 현상들은 시간적으로 차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도처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이전도 이후도 없다. 다른 말로, 자연이 선형으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은 시간으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연은 동시 다발적인 존재 전체이고, 그것이 영원의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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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사실은 그대의 고통을 필요로 해서 그것을 붙잡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대는 “아니 내가 왜 고통을 원합니까? 내 유일한 소원이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인데 내가 고통을 붙잡아두다니요?˝라고 반박하겠지만, 그건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그럼 왜 사람들이 고통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고통이 허망함보다는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에고는 근본적으로 이분법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 그 상대방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 상대방이 어떤 것이건 최소한 상대방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왜냐하면 이분법에 근거한 에고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내 앞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김현철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깨달음의 스펙트럼 2>,<깨달음의 스펙트럼>,<마음, 그것 하나만 봐라!> … 총 3종 (모두보기)
1966년 경남 김해 출생. 김해고.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어릴 때부터 삶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자랐다.주어진 삶에 적응하려고 부단히 애썼으나 결국 삶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삶에 대한 의문을 파고든 끝에
2008년 어느 봄날 마침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마침표를 찍었다.지금은 블로그(seedan.kr)에 글을 쓰면서 시단선원(네이버 까페 drovell)에서 수행자들을가르치고 있다.
저서: 마음, 그것 하나만 봐라!
깨달음의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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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다양한 유형을 보여주는 책
깨달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다. 깨달음은 어느 특정한 모습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밖으로 나타난 모양은 달라도 모두가 같은 진리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깨달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깨달음을 대표할만한 유형의 사람들을 고른 다음, 그 사람을 잘 보여주는 책을 선정하여 해설하는 방식을 택했다. 영향력을 따진다면 석가모니와 예수가 맨 앞에 와야겠지만 순서는 책 나름의 구성을 따랐다. 무묘앙 에오는 깨달음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중생이지만, 어둠 취향의 수행자들에게 다소 어필한 바가 있어서 짧게 언급했다. 아울러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도 깨달았다고 하기에는 흔쾌함이 부족한 인물이지만, 밑에서 올려다보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라서 일단 포함시켰다. 『마음, 그것 하나만 봐라!』에서 소개된 다스칼로스나 『깨달음의 심리학』은 이번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해의 지평을 넓혀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깨달음은 어떤 특정한 것이 아니다. 이 몸과 마음이 ‘나’가 아니라 이 우주 전체가 다 ‘나’라는 것을 아는 그 앎이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그 앎이 어찌 하나의 종교나 하나의 방법으로만 가능하겠는가? 배부름이 한식이나 중식이나 일식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듯이, 어떤 음식으로도 배를 불릴 수 있듯이, 깨달음 역시도 지극히 다양한 방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앎이다. 우리가 다 같은 길을 가는 동료들임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불교를 통해서도 ‘하나’를 알 수 있고,
기독교를 통해서도 ‘하나’를 알 수 있고,
마법을 통해서도 ‘하나’를 알 수 있고,
과학을 통해서도 ‘하나’를 알 수 있고,
명상을 통해서도 ‘하나’를 알 수 있고,
무술을 통해서도 ‘하나’를 알 수 있다.
그대와 잘 맞는 방법을 선택해서 그대의 실체를 알면 그게 바로 깨달음이다.
이 책은 깨달음의 다양한 모습들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존재가 ‘하나’일 뿐만 아니라 존재를 향해 가는 모든 길들도 ‘하나’임을 이해한다면, 깨달음을 향해가는 그대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 질 것이다. 하나의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에게 잘 맞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서평]
인식의 지평을 한없이 넓혀줄 책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수많은 책과 종교가 삶의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또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에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기 위해 여기 저기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대개는 성과를 이루지 못하거나, 성과를 좀 낸다고 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만족하고 끝내버린다. 왜냐하면 존재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설명해줄 스승을 만나지 못한 탓이다. 저자는 말한다. “깨달음은 어떤 특정한 것이 아니다. 이 몸과 마음이 ‘나’가 아니라 이 우주 전체가 다 ‘나’라는 것을 아는 그 앎이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그 앎이 어찌 하나의 종교나 하나의 방법으로만 가능하겠는가?” 그렇다. 산 정상으로 가는 길도 여러 갈래이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방향도 다양하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식 지평은 한없이 넓어질 것이고, 잘못된 길에서 방황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부처와 마법사, 공자와 예수가 만나는 지점이 궁금한가?
저자는 깨달음을 대표할만한 사람들을 고르고, 그 사람을 잘 보여주는 책을 선정하여 해설하였다. 석가모니와 예수, 공자와 노자, 명상가와 철학자, 과학자와 마법사. 이들은 얼핏 매우 다른 사람들인 것 같지만, 저자는 그들이 사실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깨달음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반드시 이 책과 만나야 한다. 여러분들에게 밝은 빛을 비추어 줄 것이다. 저자는 존재의 관점에서 종교와 철학, 과학과 마법을 오가며 깨달음의 모습을 명쾌하게 해설하고 있다. 부처와 마법사, 공자와 예수가 만나는 지점이 궁금한가? 예수의 진짜 모습이 궁금한가?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서양의 철학자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지 궁금한가? 그대의 눈을 밝혀줄 『깨달음의 스펙트럼』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그대의 의식은 더 명확하고 밝아져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 자신의 길을 찾아라
저자는 말한다. “그대와 잘 맞는 방법을 선택해서 그대의 실체를 알면 그게 바로 깨달음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깨달음의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어느 한 길만이 진리라는 독단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진리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등대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
평점 분포
8.0
구매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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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프로그래머 20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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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깨달은자의 위선. 차라리 마하시사야도의 초전법륜경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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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앤 201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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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의 우주에서 단 한가지 본질의 공통점이 있다면 깨달음일까?그러나 그것으로 가는 길은 역시 우주의 별만큼이나 다양하다는 것.당신의 사고를 넓혀줄것이다. 그리고 가차없이 깨줄것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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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디프로그래머 20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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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숨자운의 카페에서 나는 실제로 단기간 수행했었다. 그러나 일숨자운이 제시하는 수행법들은 욕망을 가중시킬수있는 방편들(항문조이기 등)이 일부 포함되있으며 본인스스로 다른약이 필요없다고 말할정도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에고가 깨졌다면서 책을썼다. 책내용을 지적하니 수행하라고 쓴책을 왜 토론의 대상으로 삼냐면서 나를 차단하더라. 중요한점은 이책은 수행과는 별상관없이 여러 저작들의 깨달음에대한 관점과 아주일부의 수행법을 제시해놓은 개괄서 밖에 되질않는다. 그런데도 일숨자운 본인은 줄기차게 수행하라고 쓴책이란다. 일숨자운의 위선은 카페활동에서 드러났다. 신입회원사진올리는곳에 누군가가 사진과 자기소개를 올렷다. 그랫더니 일숨자운은 자신이 전지전능한듯 마치 모든것을 내다보는듯이 그를 비난했다. 카페잘못찾은거같으니 알아서 나가라고. 이게 에고가 깨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언행일까. 앞에서도 언급햇듯이 나는 위의 책내용에대해 문제제기를했고(켄윌버를 왜곡하고있었다.) 일숨자운의 오만함을 지적했더니 나는 탈퇴당했다. 이게 에고가 깨진 사람의 언행인가? 또한가지 언급할점은 무슨 모임비로 돈을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놀러갈 비용이라던데 수행가페에서 놀러갈 여행비용을 걷는다는게 웃기다. 십만원이던가?
수행을 하고싶다면 이러한 위없는 사기꾼을 찾지말고 차라리 마하시 사야도의 초전법륜경을 읽을것을 권한다. 구글에 위빠사나 수행이나 사마타수행에대해 검색하면 많은 자료가 나온다. 이책은 단지 영적인 스승들에 대한 개괄서일뿐이다. 그러나 읽어보면 알겠지만 문체가 오만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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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oman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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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존재라면 나도 이미 존재라는 얘긴데 왜 굳이 깨달아야 하는가? 굳이 깨달을 필요 없다.
그런데 살다보면 신호가 오는 때가 있다. 어떤 신호가 올까? 고통이라는 신호가 온다. 그러면 그대는 저절로 약을 찾게 된다. 그대는 단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거나 약 비슷하게 생긴 거라면 뭐든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때 결국 만나게 되는 게 깨달음이다.
그러니 왜 깨달아야 하느냐고 미리 묻지 마라. 고통이라는 삶의 신호가 그대를 발견하는 순간 ‘왜?‘는 흔적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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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연은 일렬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연은 동시에 도처에서 한꺼번에 발생한다. 이런 동시발생의 증거는 바로 가까이에 있다. 책 읽기를 중지하고 위를 보라. 당신은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무한하게 많은 과정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태양은 빛나고, 심장은 고동치고, 새들은 노래하고, 아이들은 뛰놀고, 폐는 숨을 쉬고, 개는 짖고, 바람은 불고,귀뚜라미는 울고, 눈은 보고 귀는 듣고 있다. 계속해서 예를 들 필요가 있을까?
이런 현상들은 시간적으로 차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도처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이전도 이후도 없다. 다른 말로, 자연이 선형으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은 시간으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연은 동시 다발적인 존재 전체이고, 그것이 영원의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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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사실은 그대의 고통을 필요로 해서 그것을 붙잡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대는 "아니 내가 왜 고통을 원합니까? 내 유일한 소원이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인데 내가 고통을 붙잡아두다니요?"라고 반박하겠지만, 그건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그럼 왜 사람들이 고통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고통이 허망함보다는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에고는 근본적으로 이분법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 그 상대방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 상대방이 어떤 것이건 최소한 상대방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왜냐하면 이분법에 근거한 에고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내 앞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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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네 201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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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마음, 그것 하나만 봐라!' 를 읽고 저자의 책이 또 언제 출간되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저자의 책을 만났다. 깨달음의 스펙트럼
깨달음은 수행의 최종목표이자 종착역이기에 많은 이들이 갈구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깨달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답변 밖에는.
서문에서 저자는 깨달음은 어떤 특정한 것이 아니라 이 몸과 마음이 '나'가 아니라 이 우주 전체가 다 '나'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서문을 읽으면서부터 벌써 통쾌하고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깨달음을 대표할만한 유형의 사람들을 고르고 그 사람을 잘 보여주는 책을 선정하여 저자가 직접 해설하였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 중에서 솔직히 내가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저자가 소개하는 책의 내용 속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 책의 핵심만을 쏙쏙 뽑아서 해설해주었기 때문에 엑기스만을 뽑아 짧은 시간에 배운 느낌도 들고 저자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해설을 접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속시원하고 가려운 부위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도 들었다.
솔직히 이런 책을 읽고 느낌을 적는다는 것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잘 보이고 알기 쉽지만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데 4-5일은 걸렸다. 500페이지 가까운 두께의 압박도 있었지만 읽다 생각하다 또 나는 어떤가. 등등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가끔 깨달음이나 수행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늘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똑같이 읊는 듯한 느낌이 들때도 많았는데
이 책 속에서는 저자만의 직설적 언어로 사실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설도 똑 부러지고 이 분은 깨달았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까 싶었다.
깨달으신 분 중에서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이야기를 하시다보니 어떤 면에서는 답답하고 콕 집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질문자; 어떻게 하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불안정한 마음이 어떻게 스스로를 안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럴 수 없지요. 돌아다니는 것은 마음의 본성입니다. 의식의 초점을 마음 너머로 옮기는 것이 그대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의 아이 앰 댓 p41
위의 마하라지의 답변만 들어서는 무언가 잡힐 듯 하면서도 아리송하다.
깨달음의 스펙트럼 저자의 해설을 접하는 순간 명확해진다
마음은 관심을 먹고 산다. 그래서 그대가 마음에 관심을 주고, 마음을 바로잡으려 할수록 마음은 더 제멋대로가 된다. 마음을 바로잡으려는 그대의 노력 때문에 마음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마음의 식량이 관심이라면 마음을 죽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당연히 무관심이다. 그대가 마음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포기할수록 뜻밖에도 마음이 바로잡히게 된다. 보통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이 바로 이것이다. 흔히들 반대로 알고 있다. 마음을 바로잡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을 내버려두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
마음을 보지 말고 의식을 봐라, 마하라지가 제시하는 대로 '내가 있다' 만 붙들고 마음은 전혀 신경 쓰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그러면 마음이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한다. (p.27)
책을 읽는 순간 아 그렇구나 하면서 끄덕여진다. 깨달음의 메세지를 전한 책들은 솔직히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렇게 쉽게도 설명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깨달음은 단지 어려운 수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종교를 통해서도 알 수 있고 또한 종교를 넘어서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법을 통해서도 깨달음의 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저자는 누가복음의 편집 오류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부분까지 알 수 있었을까.
수행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엔 아직 부족한 나로서는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나는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성경 속의 황금이라는 저자의 해설을 보니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은 솔직히 그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이 공부가 많이 된 사람은 금방 이해할 것이고 잘 모르는 사람은 도대체 뭔 소리인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자꾸자꾸 반복해서 읽다보면 분명 얻는 것이 많은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 나 같은 수행 입문자라면 아, 나는 지금까지 정말 무엇을 한 것일까. 라고 생각하며 수행에 정진하게 만드는 책이다.
우리가 일으키는 생각들에 대한 저자의 명쾌한 답을 보라. 정말이지 감격으로 가슴이 벅찬 느낌이 든다. 이런 가르침이 있다니. 이런 해설이 있다니 그저 감사하다.
그대의 생각은 형편없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그대의 감각과 생각을 '피로' 혹은 '병' 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대가 자신의 전 재산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을 석가모니는 쓰레기로 보고 있는 것이다. 누가 옳을까? 석가모니가 옳을까, 그대가 옳을까? 당연히 석가모니가 옳다. 석가모니는 이 우주의 끝까지 가본 사람이지만, 그대는 아직 이 지구도 다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대의 생각은 가짜다. 그래서 그 생각을 의심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명상이라는 작업이다. 생각은 쓰레기지만 분명히 치료할 수 있다. 어둠과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서 꼼짝 말고 앉아 있어라. 거기가 그대의 세탁실이다. 찌든 때가 불어서 일어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냄새도 좀 날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묻혀온 때이기 때문에 그대가 세탁해야만 한다. 세탁실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라. 1년쯤 세탁을 하면 제법 깨끗해진 그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세탁실로 들어가라. 지금 그대는 너무 더럽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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