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2

알라딘: [전자책] 니체 극장 고명섭

알라딘: [전자책] 니체 극장


[eBook] 니체 극장 -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고명섭 (지은이)김영사201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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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100자평(12)리뷰(9)
파일 형식 : ePub(9.27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 856쪽,
책소개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모순과 역설의 철학자 니체. 미궁 같은 니체의 사유와 아주 특별했던 그의 삶 속으로 안내하는 니체 평전의 결정판이다. 비록 니체의 전공자는 아니지만 다양한 인문서를 소개하고 직접 집필하며 인간과 시대의 내면을 통찰해온 저자가 지난 5년 가까이 니체의 삶을 추적하고 그의 내면 세계와 사상을 탐사하여 엮어낸 책이다.

어느 한쪽 시선에도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니체의 삶을 시대순으로 따라가며 “한없이 부드럽고 여성적인 니체”와 “거칠고 남성적인 니체”, “실존의 문제와 싸우는 니체”와 “위험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는 니체”,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로서의 니체”와 “전쟁을 찬양하는 파괴자로서의 니체” 등, 니체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모순되는 요소들을 차근차근 풀어낸 이 책은 가장 풍부하고 깊이 있는 니체 사상의 전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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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_ 마음의 극장, 정신의 미궁
들어가는 말

01. 젊은 철학자
1. 쇼펜하우어 숭배자
2. 바그너의 사도
3. 비극의 탄생
4. 반시대적 고찰

02. 방랑하는 자유정신
5.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6. 아침놀
7. 즐거운 학문
8. 간주곡- 루 살로메

03. 차라투스트라의 탄생
9. 초인의 도래
10. 권력의지
보충1 권력의지에 대하여
11. 영원회귀
보충2 영원회귀에 대하여

04. 창조하는 파괴자
12. 선악의 저편
보충3 니체의 민주주의 비판과 급진적 귀족주의
13. 도덕의 계보
보충4 니체의 관점주의에 대한 이해들
14. 우상의 황혼
15. 이 사람을 보라
16. 정신 붕괴
보충5 니체와 심층심리학
보충6 니체와 나치 혹은 부드러운 니체와 거친 니체

니체 연보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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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14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니체상은 극단을 향해 치닫는 위험한 니체를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거나 희석시킨 니체였다. 니체를 제대로 보려면 밝은 니체뿐만 아니라 어두운 니체도 보아야 한다. 니체의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도 보아야 한다. 니체 정신의 표면뿐만 아니라 심층도 보아야 한다. 웃는 니체뿐만 아니라 우는 니체, 통곡하는 니체도 보아야 한다. 속삭이는 니체뿐만 아니라 분노하는 니체, 포효하는 니체도 보아야 한다. 고양이 발걸음으로 걷는 니체뿐만 아니라 번개처럼 구름을 뚫고 내리꽂히는 니체, 눈사태처럼 덮치고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니체, 망치를 휘둘러 우상을 때려 부수는 니체, 전쟁터를 지주하고 약탈하는 니체도 보아야 한다. 그 모든 니체를 보아야 우리는 니체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여러 얼굴을 지닌 니체를 통째로 겪고 났을 때 우리는 니체 인식의 본관에 들어설 수 있다. 접기
P. 31너무 깊어서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었던 내면, 니체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데 도움을 줄 아리아드네의 실은 무엇일까. 니체 자신의 삶이 아리아드네의 실 노릇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겪은 것, 느낀 것, 말한 것 생각한 것을 실마리로 삼아 니체라는 미궁 속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테세우스의 용기를 가지고 그 라비린토스로 들어가 니체 정신 속의 괴물과 대결해보자. 니체의 언어로 말하면, 테세우스는 권력의지이고, 아리아드네의 실은 진리 의지이다. 권력의지가 진리의지의 힘을 빌려 괴물의 실체와 만날 수 있을지, 한번 용기를 내 따라가 보자.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고명섭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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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황혼녘 햇살에 빛나는 구렁이알을 삼키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을 낸 뒤 10여 년 동안 마음의 두엄에 풀과 지푸라기와 생각의 뿌리들이 쌓여 썩었다. 거기서 발효하며 피어오르는 시상들을 잡아채 엮은 것이 <숲의 상형문자>다. 소설 <미궁-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를 냈으며, <니체 극장>, <즐거운 지식>, <광기와 천재>, <담론의 발견>, <지식의 발견>과 같은 책들을 썼다.

최근작 : <숲의 상형문자>,<이희호 평전>,<미궁 :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 총 12종 (모두보기)
인터뷰 : 서평계의 두 고수, 고명섭 기자와 로쟈 이현우를 함께 만나다 - 2011.04.15


출판사 제공
책소개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모순과 역설의 철학자 니체,
그의 인생 궤적을 따라가며 써내려간 사상의 전기!

한겨레신문을 통해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시대의 정신을 일깨우고 인간 내면을 통찰하는 인문서를 소개해온 기자이자 시인 고명섭의 신간 《니체 극장 -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가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모순의 철학자’이자 2000년 서양철학사 중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니체. 그는 역사상 그 어떤 철학자보다 넓은 사상의 스펙트럼를 가지고 있는 철학자이며 그의 저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국내외의 수많은 니체 전공자들이 나름의 시각으로 니체의 사상을 해석한 많은 연구서와 해설서가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니체의 삶을 통해 그의 사상을 조명한 책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너무나도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니체의 철학과 그의 저서들은 고독하고도 특별했던 그의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때문의 니체의 철학을 읽는다는 것은 곧 그의 삶을 읽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내면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책은 비록 니체의 전공자는 아니지만 다양한 인문서를 소개하고 직접 집필하며 인간과 시대의 내면을 통찰해온 저자가 지난 5년 가까이 니체의 삶을 추적하고 그의 내면 세계와 사상을 탐사하여 엮어낸 책이다. 어느 한쪽 시선에도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니체의 삶을 시대순으로 따라가며 “한없이 부드럽고 여성적인 니체”와 “거칠고 남성적인 니체”, “실존의 문제와 싸우는 니체”와 “위험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는 니체”,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로서의 니체”와 “전쟁을 찬양하는 파괴자로서의 니체” 등, 니체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모순되는 요소들을 차근차근 풀어낸 이 책은 가장 풍부하고 깊이 있는 니체 사상의 전기라 할 수 있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니체의 인생 궤적을 따라가며 써내려간 니체 평전의 결정판!

저자는 라캉의 ‘승화’의 개념을 빌려 니체의 공간을 설명한 주판치치의 니체 해석의 맥락을 더 확장시켜, 니체의 삶이 구축한 그의 사상의 공간을 ‘극장’이라고 표현한다. 주판치치는 어둡고 사악한 열정을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시키지 않고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무대를 창조하고 그 무대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는 것을 ‘승화’라고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 역시 자신의 철학과 저서 안에서 “현실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파괴적이고 비도덕적인 열정”이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는 하나의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그것이 바로 ‘니체 극장’이다. 이 무대 위에서 니체는 “여러 가면을 쓰고 등장해 관습과 전통을 조롱하고 도덕과 윤리를 해체하며” 2000년 서양사상사를 전복시킨 극단적이고 위험한 사상을 쏟아놓았다. 이런 독특한 해석이 바로 이 책이 다른 니체의 해설서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하나의 거대한 무대와 같은 니체의 사상을 이 책에서는 그 흐름에 따라 총 4부로 나누어 설명한다. ‘1부 젊은 철학자’에서는 독일 시골마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쇼펜하우어에 심취하고 바그너에 매료된 니체가 디오니소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비극 정신을 새롭게 해석, 부활시키고 이후 바그너와 결별하기까지 그의 학문적 여정이 펼쳐진다. ‘2부 방랑하는 자유정신’에서는 바그너와 결별한 니체의 사상 속에 차라투스트라라는 초인의 싹이 트기까지의 과정과 그의 생의 최초이자 유일한 연인이었던 루 살로메와의 비극적 운명을 그리고 있다.

‘3부 차라투스투라의 탄생’에서는 니체 사상의 핵심이자 전부라 할 수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탄생 배경과 그 안에 담긴 비유와 상징들의 의미는 물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철학사적 의미까지 상세하게 설명하였으며, 마지막으로 ‘4부 창조하는 파괴자’에서는 가장 고독하고 외로웠던 시기에 가장 서늘하고 강렬하게 빛났던 니체 말기 사상과 그의 고독하고도 쓸쓸했던 죽음까지 그려진다.

4부에 걸쳐 니체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풀어놓는 한편 저자는 국내 학자들의 다양한 분석을 바탕으로 니체 사상의 핵심인 ‘권력의지’, ‘영원회귀’ 와 같은 개념에 대한 비판적 해석 또한 놓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니체의 관점주의에 대한 분석과 심층심리학의 측면에서 본 니체의 사상 등 니체의 철학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미궁과도 같은 니체의 사상 속으로 들어가는 자세한 지도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유의 오지, 정열의 밀림, 충동의 심연이 공존하는 무대 위에 펼쳐진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니체 사상의 모든 것!

서문에서 저자는 이 긴 글을 쓰는 과정이 니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 사랑하는 마음에는 비판과 부정과 외면을 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어 있다. 그런 만큼 이 책 안에는 5년 동안 저자가 끊임없이 바라보고 탐사했던 니체의 모든 모습, 즉 기괴한 사유를 품고 잔인한 주장을 서슴지 않는 철학자이자, 오만한 인격체였으나 또한 동시에 고독한 인간이었던 니체의 삶과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가 이런 “괴로운 탐사 작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니체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을 바탕으로 저자는 니체의 모든 모습을 그대로 담고자 노력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자기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 몇 가지만 취하고, 나머지는 더럽히고 엉클어뜨리며” 니체를 모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 책에서는 독자들이 가급적 “원액 그대로” 니체의 사상을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저자의 말처럼 니체의 사상은 약이자 동시에 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그것을 먹는 사람의 소화력에 달려 있다.” 약도 독도 될 수 있는 니체 사상의 모든 측면이 다루고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으로서의 니체를 맛보거나 약으로서의 니체를 맛보는 것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그랬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니체라는 한 인간을 삶 속으로 들어가 그의 삶을 살아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난해한 철학자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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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9.5





내가 이책에 미쳤다는 건, 내안에 니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인생을 고민하는이에게 니체는 반드시 거쳐가야할 관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니체의 여파가 오래간다~
군자란 2013-01-1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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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의 언어로 말하는 니체전기가 나왔구나
가명 2018-04-2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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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만큼이나 저자 고명섭을 늦게 알게된 것이 다행이면서도 아쉬울 뿐이다.
여름밤 2018-10-0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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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임에도, 손쉽게 술술 읽힌다. 여러 입문서를 읽어 보았지만, 이 책이 가장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니체의 주장, 개념에 대한 여러 외, 국내 학자의 견해를 소개해주어 종합서 같은 역할을 해 준다.
희백 2022-04-2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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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일종의 가이드북 역할을 합니다.
ilbooks 2019-12-19 공감 (1) 댓글 (0)



니체의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꼬리를 무는 책읽기’에 관한 이야기를 몇 차례 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읽고 있는 책에서 저자의 강력한 추천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니체극장> 역시 이런 사례에 해당되면서도 조금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지난 해 ‘현대의학과 다시 만남을 모색하는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김선희교수님의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74996>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철학한다는 것이 바로 사유를 통하여 물음을 던지는 일이자 던져진 물음에 답을 구하는 일’이며, 철학적 탐구의 목적은 지식과 진리, 현실, 이성, 의미, 가치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철학이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실질적인 삶의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싶은 형이상학적 문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경도되어 온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결국 철학이 일반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전공하시는 분들만의 영역에서 고립된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고, 대중에게는 ‘철학은 어려워’라는 선입관이 자연스럽게 남겨진 것 같습니다.

그레일링은 “의학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생명윤리학의 주제가 철학과 의학, 법학, 사회학, 공공정책, 교육 및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갈수록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AC 그레일링 지음, 새 인문학 사전;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67909).” 의학영역에서 철학적 사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처럼 철학영역에서 역시 마음의 철학 혹은 신경철학과 같이 인간의 심리 혹은 인간의 사고체계에 대하여 사유하는 사조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해결을 위한 철학적 실천방안을 구체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합니다.

치료자로서의 철학자의 역할을 자리매김하기 위한 방법을 구하는 과정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김선희교수님의 설명을 마음 한 구석에 갈무리해두었던 모양입니다. 그 사이에도 스탠리 큐브릭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오프닝에 장엄미를 더해 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으면서 역시 니체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고명섭기자님의 <니체극장>을 만나게 된 인연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제목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니체의 철학 작품들은 하나의 독특한 공간을 구성한다. 그 공간은 극장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공간이다. 니체의 예외적인 삶이 떠받치고 그의 특별한 문체가 만들어내는 한없이 낯선 분위기의 공간, 그 극장의 무대에서 니체는 모놀로그를 한다.(23쪽)” 이런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KBS에서 방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극장>이 떠오릅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삶을 있는 그대로 영상으로 담아내기 때문에 쉽게 공감하게 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바로 각자가 주인공으로 연기하는 한편의 드라마인 셈이라면 니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를 공연하는 극장이 바로 <니체극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책읽기는 작가의 단편적인 생각을 읽는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저자와의 대화라거나 작품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을 담은 다양한 매개체를 통하여 작품에 대하여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고명섭 기자님의 <니체극장>이야 말로 1844년 10월 15일 태어난 프리드리히 니체의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뒤쫓는 한편 그가 발표한 작품에 담겨있는 그의 정신을 분석해서 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는 니체의 작품과 니체가 가족 친지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을 바탕으로 니체의 삶과 정신을 재구성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니체극장>에 담아낸 그의 삶을 정리해보면 니체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기독교와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였던 것 같습니다. 선조 대대로 루터파 신도였던 집안에서 목사가 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소년시절 니체는 ‘꼬마 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깊은 신앙심은 열 네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삶을 기록한 첫 번째 글 <나의 삶>에 담겨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경험했다. 기쁨과 슬픔, 즐거운 일과 슬픈 일들을, 하지만 이 모든 것 속에서 신은 아버지가 자신의 약하고 어린 아들을 인도하듯이 안전하게 나를 이끌어 주셨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그분의 종이 되겠다고 확고하게 결심했다.(45쪽)”

하지만 이 약속은 청소년기가 끝나기도 전에 깨어질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차라투스트라의 목소리를 빌어 신이 죽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지난 날에는 신에 대한 불경이 가장 큰 불경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고 그와 더불어 신에게 불경을 저지른 자들도 모두 죽어갔다.(366쪽)” 심지어는 인간이 신의 작품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작품이라고 단언하고 “저편의 또 다른 세계를 꾸며낸 것은 고통과 무능력, 그리고 더없이 극심하게 고통스러워하는 자만이 경험하는 그 덧없는 행복의 망상이었다.(368쪽)”고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저편의 또 다른 세계는 사제의 주도에 따라 각자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쇼펜하우어였는데 니체는 본대학을 거쳐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전공하게 되는데, 라이프치히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를 읽고 빠져들게 되었는데, 당시 독일에서는 쇼펜하우어가 문화적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이 무렵 외롭게 방황하고 있던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세계인식, 즉 염세주의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삶이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며, 이런 사태를 깨닫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정’이다. 곧 그는 ‘의지를 부정하며’,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직 삶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리는 수행자나 성자가 된다.(69쪽)”고 요약하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철학을 사상적 지주로 삼았던 니체는 10년이 지난 다음에는 이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리하르트 바그너였습니다. 1868년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등을 들으면서 격한 감동을 느꼈는데, 특히 쇼펜하우어에 대한 두 사람의 경외심이 서로를 이끌리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삶이 치유를 필요로 할 때 예술과 철학의 역할을 논한 쇼펜하우어를 두고 바그너는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는 철학자라고 평했던 것에 니체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니체와 바그너의 이런 긴밀한 관계도 결국에는 끝이 나고 말았는데, 평생을 독신으로 외롭게 지낸 니체의 독특한 개인적 취향이 두루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니체는 자신의 사유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세 가지 요소 모두를 뛰어넘으면서 독자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틀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도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바그너와의 만남이 있고나서 니체는 바젤대학에서 문헌학자로서 입지마련을 시작하게 되는데, 첫 번째 작품 <비극의 탄생>은 그의 전공이라고 할 고전문헌학적 탐구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의 핵심내용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세계관에 입각해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해명하고, 이어 바그너예술을 그리스 비국의 부활로 해석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자신이 숭배하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를 위한 헌사를 쓰다 보니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니체는 ‘모순의 철학자’, 2000년 서양철학사 중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니체가 새로운 인식을 깨닫기 위하여 치열하게 사유한 결과를 공격적으로 쏟아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모 대선후보가 인용해서 기억에 남는 다음 구절은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글에서 니체의 사유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지를 떠나 출항했다! 우리는 건너온 다리를 태워버렸다. 게다가 우리는 뒤에 남아있는 대지까지도 불살라버렸다! 자, 작은 배여, 조심하라. 대양이 너를 도처에서 둘러싸고 있다.(302쪽)”



저자가 <니체극장>을 통하여 정리하고 있는 방대한 니체의 저술에 대한 해설을 짧게 요약하는 일은 저의 일천한 인문학적 책읽기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한 가지만 인용하려 합니다. 바로 귀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비판입니다. 귀족주의 옹호자라는 시각에서 니체는 플라톤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습니다. 니체는 자신의 조상이 폴란드의 귀족이었다고 했다는데 근거가 분명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저자는 “(니체는 다수의 저술을 통하여) 기독교에 반대하고, 민족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여성해방, 심지어는 휴머니즘과 같은 모든 근대적 이념을 부정하였다.(564쪽)”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인간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병자다. 악인이나 ‘맹수’가 아니다. 처음부터 실패한 자, 유린당한 자, 좌절한 자, 가장 약한 자들인 이 사람들은 인간 삶의 토대를 허물어버리고 삶과 인간과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의심 속으로 몰아넣고 그 신뢰에 아주 위험하게 독을 타는 자들이다.(627쪽)”라는 <도덕의 계보> 제3논문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니체의 이런 주장은 자유민주주의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위험한 사상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만, 자유, 평등, 복지, 약자에 대한 보호와 사회적 정의를 기반으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민주국가의 행태가 현대에 들어 더욱 치열해진 국가간 글로벌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되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저자가 보충자료로 인용한 박찬국의 주장을 일부 인용합니다. “국가가 개인의 노후 생활을 비롯해, 질병, 실업 등 인간다운 삶에 책임지는 경향의 주요한 동기도 니체는 그것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인도주의에서 찾지 않고 국가가 모든 것을 해주기를 바라는 허약한 인간들의 의존 성향에서 찾을 것이다.(588쪽)”



앞서 인용한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에서 김선희교수님은 치유의 방법으로서의 철학을 논하면서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공히 인간의 고통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해답을 찾고자 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히 니체의 경우 <우상의 황혼>으로부터, 인간이 창조한 우상을 신봉함으로써 스스로를 경멸하게 되므로 우리의 삶에서 우상의 흔적을 지워내야 할 것이며, 그로써 인간 내부에 있는 자기 치유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여기에는 자기긍정이라는 접근법이 효율적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니체극장>을 통해서 만난 니체가 절망으로 나락에 떨어진 인간을 위하여 긍정적인 조언을 주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니체가 역사상 그 어떤 철학자보다 넓은 사상의 스펙트럼를 가지고 있고, 그의 저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결국은 그의 작품을 직접 읽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니체가 남긴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구축한 그의 삶과 사상의 줄기를 정리한 <니체극장>이야말로 니체의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안내서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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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11-19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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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유감



고명섭의 <니체극장>은 놀라운 책이다.

이것이 과연 한국인이 쓴 책인가도 싶다. (영어로 번역되길 바래본다)

내용뿐 아니라.. 필체도 매우 미려하다.

니체를 읽어야지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딱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책속에서 니체를 평가한 이들의 얘기가 나온다.

그중 칼 야스퍼스의 니체 평가를 인용한다.



"자기모순은 니체 사상의 특징이다. 우리는 거의 언제나 니체의 어떤판단에 대해서도 정반대의 판단을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겉으로 보면 그는 모든 것에 관해서 두 가지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니체로부터 마음껏 인용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은 사태의 본질에서 생기는 필연적인 모순이며 사유의 졸렬함의 표시가 아니라 성실함의 표시일 것이다." (p.444)



동감!

문제는 니체의 모순이 사유의 졸렬함이 아니라 성실함이라는 마지막 구절.



그래도 계속 이런 생각이 든다.

신을 거세했던 니체는 왜 초인이라는 또다른 현신을 열망했는가.

자기를 극복하는 그 초인은 "너 자신의 왕이 되어라"라는 플라톤의 통치자와 무엇이 다르던가.

세상을 비극이라고 했던 니체는 왜 또 세상을 희극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하이데거가 니체를 플라톤 이후 서구 형이상학의 최후 완성자로 불렀던 게 이런 이유였으리.



세상이 진짜 비극인 이유는 세상이 비극이라고 외치는 나 자신도 그 비극의 일부라서가 아닐까.

이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유체이탈적 비극론에 불과하다. 사고의 졸렬함이다.



니체극장을 읽다 쇼펜하우어를 다시금 주목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받아들이면서도 쇼펜하우어의 가치는 저버렸던 것은 아닐까.

세상이 모두 권력관계라면.. 그리고 이 더러운 권력관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결국 그 답은 하나뿐이지 않겠는가.



"죽음"



물리적 죽음도 죽음이겠지만.. 생존의지를 버리는 것..

이것이 세상 권력관계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저항아닐까.

언제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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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2013-06-08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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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극장



책 쓰신 분이 언론인이라서 그런지 니체를 조망하는 데 있어서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몹시 애쓰신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 분은 니체를 형이상학적으로 보는 관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부정적인 것 같다. 조심스러워 하시는 것 같다. 종교인이 아니라 언론인이어서 그러시겠지만. 그러나 니체의 권력의지를 단순히 "우리 세계 안의 우리 생명체들의 문제"로, 더욱이 "사회를 형성하고 역사를 만들어 가는 우리 인간들, 그리고 창조하고 투쟁하는 개인들의 문제”로 선을 그어버리면 니체는 다만 정치심리학자 내지는 사회생물학자밖에 안 되는 거 아닌가. 단지 그 정도만은 아닐 것 같은데. 내가 신비주의 취향이라 그런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막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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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3-01-2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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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었던 니체에 관한 최고의 책!!!




니체 극장
니체극장 –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고명섭, 김영사


2013년 03월 31일 (일) 전민용 gca027@hanmail.net









그동안 니체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늘 니체의 철학 자체가 아니라 니체를 해설하는 해석자의 철학을 읽었던 것 같다. 니체의 철학은 보수, 진보, 종교인, 비종교인, 극단주의자 등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끌어다 쓸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니체 텍스트에는 수많은 모순된 명제들이 섞여있고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 내가 알고 있던 니체는 부드럽고 온건한 표정의 니체에 가깝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니체극장’은 니체의 삶과 사상을 놀라울 만큼 방대한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철학평전이다. 주인공 니체가 악마, 신, 늙은 여인, 뱀, 독수리, 차라투스투라 등으로 등장해서 일인극을 펼치는 ‘극장’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니체 철학을 날 것 그대로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능력의 탁월함이다.



기자가 이런 전문적인 책을 썼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기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잘 읽히는 책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해석자의 생각이 아닌 나의 방식으로 니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인류 역사를 둘로 나눈다. 그의 존재 이전과 그의 존재 이후로.’(751쪽) 니체는 기독교 비판과 문명 비판을 토대로 지금까지의 모든 가치를 전복하고, 영원회귀와 권력의지를 동력으로 초인이 주인공이 되어 인간의 본성에 맞는 새로운 가치와 문명을 창조해 가자고 선언한다. 니체는 이런 자신의 핵심적인 사상을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안티크리스트’, 그리고 자서전인 ‘이 사람을 보라’를 통해 전개한다.



니체는 기독교가 현대 유럽 세계의 모든 가치인 도덕과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등의 뿌리라고 보고 기독교를 뒤엎어 ‘모든 가치를 전도’ 시키려고 한다.


니체는 나사렛 예수가 지상의 행복을 지향한 정치범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로가 예수의 죽음을 무릅쓴 실천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나 부활한 예수라는 거짓말로 왜곡해서 지상의 삶을 부정하고 천상의 구원에 대한 약속으로 변조했다는 것이다.



‘부, 불경, 악, 폭력, 관능 등을 하나의 의미로 결합해 세상이라는 말을 더럽고 욕된 것으로 만들었다.’(554쪽) ‘신 앞의 평등을 내세우며 인간을 더 왜소하고 어리석은 인간으로 만들었다.’(554쪽) ‘그들은 우리의 본능과 완전히 상반된 것을 요구하고 있다.’(559쪽)는 말들처럼 기독교와 여기서 파생된 문명이 현세를 부정하고 모든 근현대인을 본성을 잃고 길들여진 허약한 무리 짐승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니체는 도덕과 선악과 미추의 기준도 문화권에 따라, 같은 문화권에서도 처한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니체는 그 중에서 인간의 삶을 강화시키는 관점(해석)이 인간의 본성적인 권력의지의 실현에 적합한 진리라고 주장한다. 양심적이고 선하다고 하는 약자의 도덕과 사상은 강자의 권력의지를 부패시키는 척결해야 할 데카당스(퇴폐, 타락)일 뿐이다.(670쪽)



니체는 양심의 가책도 ‘인간 안에 있는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진 공격성이 발산되지 못하고 막히자 자기 내부로 화살을 돌린 것으로 보았다. 니체의 이런 생각은 나중에 프로이드에 의해 ‘공격 본능이 내면화되어 생긴 초자아와 자아 사이의 긴장이 죄책감’(621쪽)이라는 더 정교한 이론으로 정식화된다.



니체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위해 서양 정신사를 분석한다. 기독교의 절대 신이라는 관념이 유래된 그리스 철학을 시작으로 플라톤이 만든 ‘참된 세계(이데아)’가 기독교 교리와 여러 철학 사조를 거쳐 결국 ‘꾸며낸 이야기’로 귀착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참된 세계가 거짓이고 남는 것은 이 현실 세계뿐이니 이 세상을 즐겁게 살다 가면 된다는 생각’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부터가 니체의 독창적인 철학의 출발이다. 인간은 참된 세계나 절대자의 존재를 통해 현실 세계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는데 전자가 사라지면 후자의 의미와 가치도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니체는 ‘우리는 대지를 떠나 출항했다! 우리는 건너온 다리를 태워버렸다. 게다가 우리는 뒤에 남아 있는 대지까지 불살라버렸다!’(302쪽)는 전면적 파괴 후에 인간 스스로가 ‘사납고 무한한 대양’같은 현실에서 모든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전력을 다해 그 일을 수행한다.



두려움과 가능성이 교차하는 끝이 안 보이는 대양 같은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계기와 동력은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이고 그 주체는 초인이다.



니체의 삶은 끝없는 질병의 고통과 회복의 반복이었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니체는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절규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지나면 다시 삶을 의욕했고, 창조의 의지로 불탔다.(505쪽) 언제나 파괴당하면서 다시 부활하고 되돌아오는 삶에서 니체는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를 보았다.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까지 껴안는 것이다. 그의 삶에서 영원회귀는 죽음을 거치며 다시 솟구치는 부활의 끝없는 반복이다. 우리 안에 살아있는 죽음과 재생의 디오니소스 신화이다.(506쪽)



이 귀환과 부활의 반복 속에서 작동하는 무한한 재생의 동력이 권력의지다. 어떤 경우에도 파괴되거나 소멸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더 많은 힘을 향한 의지, 그것이 권력의지다. 권력의지는 삶의 본질이고 영원회귀는 삶의 형식이다.(506쪽)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설파하는 미래의 세상과 이를 창조하고 지배할 초인이 자신의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니체는 “내 작품 중에서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독보적이다.”라며 자신이 인류에게 큰 선물을 주었고, 수천 년 동안 퍼져나갈 최고의 책이라고 자평한다.(745쪽) ‘초인이라는 말은 최고의 완성된 인간 유형을 지칭한다.--- 현대인, 선량한 사람, 기독교인, 여타의 허무주의자들과 반대되는 말이다.’(376쪽)



니체는 나폴레옹 1세가 가장 초인에 접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초인이 아직 존재한 적이 없고 더없이 위대한 사람조차도 너무나도 인간적’(385쪽) 이라는 말로 초인은 미래에 올 새로운 인간형임을 밝힌다.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이 초인을 창조할 수 있고, 초인을 당장 창조할 수 없다면 초인의 선조는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379쪽)



인류적 차원의 천재의 출현, 인간 종 자체의 상승과 비약이라는 초인 사상이나 강자 중심의 사상은 ‘연민은 도태의 법칙인 진화의 법칙을 방해하고 있다.’(727쪽)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 다윈의 진화론적 세계관의 영향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다윈은 ‘몇 세기가 지나지 않은 미래에 문명화된 인종이 전 세계에 걸쳐 미개인종을 절멸시키고 그들을 대체할 것이 거의 틀림없다.’(188쪽)고 예견했다.



현재 다윈의 이 예견을 믿을 학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이런 주장을 토대로 사상을 전개했다면 열등한 종인 약자를 잔인하게 멸종시키는 고등한 종인 초인이나 폭력적이기도 한 강자 중심 사상은 니체에게는 자연도태와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었을 것이다.



니체의 사상을 쉽게 이해하려면 영화 매트릭스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문명 세계와 인류는 영화 속 가상세계인 매트릭스처럼 가짜 세상을 진짜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영화에서 진짜 인간들이 영양액 속에 잠겨 살듯이 진짜 인간의 본성은 마음 속 깊은 곳에 결박당하고 길들여진 채 가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무서운 비밀과 진리를 발견하는 사람이 네오이고 니체이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인간과 세계의 비밀과 진실을 안다는 것은 문제 해결의 출발일 뿐이다. 비밀이 밝혀지지만

인간 중에는 위험한 현실보다 안온한 가상세계를 선택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것들의 편에 서는 심하게 길들여진 인간들도 많다. 네오와 저항군처럼 비밀과 진리를 깨닫고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싸우는 사람들이 강한자이고 초인이라면 이에 반하는 인간들은 멸종해야 할 비겁하고 약한 무리 짐승인 것이다. 니체의 관점에서 이 전쟁은 영화에서처럼 인류의 모든 미래와 생사를 건 ‘전대미문의 전쟁’(749쪽)이다.



‘큰 고통은 고귀함과 비범함을 낳는다.’(579쪽) 니체는 평생을 정신병과 지독한 고통 속에 살았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 싸웠고, 오히려 고통이 창조의 원천이라고 찬미했다. 광기조차도 그에게는 창조의 원천이 되었다. 이 불굴의 정신이 니체라는 걸출한 사상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니체는 탁월한 심리학자이기도 했다. “도덕에서 인간은 자신을 ‘분할할 수 없는 것’, 즉 개체(individual)로서가 아니라 ‘분할할 수 있는 것’(dividual)으로서 다룬다.”(223쪽)는 니체의 생각은 인간이 두 가지 이상의 욕망을 가진 분할된 인격이고 서로 명령하고 복종하는 힘 관계라는 통찰을 보여준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과 융의 분석심리학은 많은 부분에서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



니체의 초기 저작들에서 알 수 있듯 니체는 젊은 시절 내내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를 숭배했다. 나중에 니체는 그들의 한계를 보았고 그들의 생각을 오류로 판명했다. 하지만 니체는 이 오류가 필연적 경험이라면 그 필연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운명을 사랑하는 운명애라고 생각했다. 니체의 운명애는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움과 결합하는 것이다.


니체는 ‘열정의 약화나 근절이 아닌 열정에 대한 지배! 우리의 의지의 지배력이 클수록, 그만큼 열정에 더 큰 자유를!’(20쪽)이라며 열정을 최대치로 허용하고 다시 그 열정을 지배하는 것이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에 지배당하거나 아예 차단하거나 할 뿐이다. 강한 정신은 열정을 최대한 끌어올린 후 무서운 의지로 절도를 부여한다.



‘나는 홀로 가겠다! 너희도 각각 홀로 길을 떠나라! 나를 떠나라. 그리고 차라투스투라에게 맞서라’(745쪽) 니체는 결코 자신이 숭배자나 지도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모든 개인이 각자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초인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니체가 생각했던 초인과 새로운 세상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800쪽에 달하는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일독이 아니라 이독, 삼독을 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누구 말대로 니체에 대한 열등감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다. 활기차고 부드럽고 긍정적인 니체뿐 아니라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이고 반시대적인 니체의 맨얼굴도 볼 수 있었다. 니체의 글은 약이자 독이라는 저자의 반복되는 설명에 공감한다. 강한 독을 강한 약으로 만들어 삶의 전환을 이루는 생동하는 모험의 길을 떠나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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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 2013-04-0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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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극장



니체를 좋아하지만 니체의 저서를 읽어본 적이 없다.
누군가 니체를 해설한 쉬운 책만 접했지 막상 니체의 책을 접했을 때 내가 옳게 해석했는지 혹은 놓치는게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되어 기초를 다지겠다는 생각만 하고 읽어본 적이 없더랬다.
그 기초를 다지기에 이 책은 참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800쪽 분량의 아주 무거운 책인데 지루하지 않고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내가 알던 니체는 그 니체가 아니구나..하는거였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는 독자들이 니체를 전체적으로, 통합적으로 보게 만들기 위함이다.
19세기에는 히틀러 덕분에 악마의 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20 세기 후반에는 그의 폭력성, 반민주주의적 태도와 같은 면은 배제된체 '부드러운 니체' 만을 보여줬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특히 한국 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


내가 알던 니체, 내가 감동받았던 아포리즘을 쓴 니체는 분명히 '부드러운 니체' 의 모습이다.
난 그가 반민주주의인지, 귀족주의 인지 잘 몰랐다.
폭력성, 잔인성, 전쟁을 찬양했던 니체는 몰랐다.
광기어린 니체는 몰랐다. 그냥 미쳤다고만 생각했지 그 광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저자는 니체의 많은 저작들, 편지들을 통해 그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그리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의 모습을 보여주려 애쓴다.
이 책은 니체의 전 생애를 관통한다. 그리고 그가 쓴 책들에 관해 말하고 그의 주된 철학들에 대해서도 여러 관점을 제시하며 부연설명도 덧붙여서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리고 인간 니체가 보였다.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을지. 아무도 없이 아픈 몸으로 혼자서 자신의 운명을 향해 맞섰을 그를 생각하면 그 정도의 고통을 겪어야 위대한 사상이 나오는건가. 고통의 깊이만큼 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치기 직전에 채찍에 맞고 있던 말의 목을 부여잡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봤을 때는 좀 울컥했다.



내 관심을 잡아끈 건 역시나 관점주의다.



"진리는 없다. 모든것은 허용된다. -니체-"








이십대 초반부터 이 관점주의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난감했다.
난 저 명제가 싫다. 그래서 그 다음은???


관점주의, 권력의지, 운명애, 영원회귀.
난 내가 니체를 좋아하는건지 아니면 극복하고 싶어하는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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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 2016-07-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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