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31

希修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얘기를 진실/진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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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얘기를 진실/진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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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을 들었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후회가 생기지만, 내 마음을 따랐을 경우엔 설사 결과가 안 좋아도 후회는 크지 않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슴/직관을 따르면서, '나는 최선을 다 하고 있다' 믿으면서 산다. 그런데 그 가슴/직관이라는 건 살아 오는 동안 축적된 정보들의 산출값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크게 운명/숙명/업의 작용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은 '타고난 대로' 산다는 얘기가 되는 것일 확률도 제로는 아닌 것. 삶의 의의를 '경험을 통한 학습'이라 본다면 '타고난 대로' 사는 것도 이승에서 받은 숙제를 한다는 얘기가 되니 괜찮지만, 다른 것에 삶의 목적을 둔다면 물론 판단도 달라진다. 그래서 ‘구원’ 같은 강력한 동인이 없는 한, 나이가 들수록, 즉 '이제와 방향을 틀기엔 매몰비용이 이미 너무 크다' 싶어질수록 자기 삶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의미, 목적 이런 건 불확실하지만 내 마음이 편하고 불편하고는 너무나 확실하고 또 죽음이 가까울수록 마음이라도 편한 것에 대해 점점 더 절박해지기 때문
젊을 땐 '생각하는 대로 살'았다가도 나이들수록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 
나아가 '생각 따위 무슨 소용? 어차피 한바탕 꿈 걍 관조하며 즐겨!' 식으로 흘러가는 것도 이런 이유이며, 그렇기에 나이와 '지혜' (얄팍한 처세요령을 의미하는 게 아님)가 비례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통념들과 다른 부분들로 인해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던 분들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 등)은 모두 당대에 미움을 받았고 (부처님의 윤회관은 당시의 상식을 그냥 인정해 준 제스쳐가 아니었습니다. 에혀..), 다시 살아온다 한들 이마에 '나 예수,' '나 석가'라 써붙이지 않는 한 현재의 기독교인들이나 불자들에 의해 박해받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나는 추측한다. 인간이 또 다시 인간으로 윤회할 확률은 온세상에 산과 들의 형태로 존재하는 흙의 양과 비교한 손톱에 낀 흙의 양만한 비율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SN 20:2) 다른 이유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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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Thomas Sowell의 "The Quest for Cosmic Justice"는 불교적인 관점에서 특히 흥미로운 책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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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aith Ryu

업장이란 것도 결국 무의식의 패턴이죠. 생각은 무의식 따라 일어나니, 그냥 일어나는 생각의 연쇄에 빠져 살다 가는것이 대부분의 인생인 것 같아요.


希修

Wraith Ryu 그쵸! 그래서 "One does not become enlightened by imagining figures of light, but by making darkness conscious."라는 Carl Jung의 얘기처럼, 마음챙김을 통해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제어하지 못 하면 결국 타고난 경향성 (뭐 운명/숙명이 거창한 게 아니라 타고난 경향성이 곧 운명/숙명이겠죠)의 노예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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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분별 마라. 내려놓아라"만 외운다고 해서 수행이 되지는 못 하는 거죠. 의식의 차원에서 설사 이게 된다 하더라도 무의식에서 들끓고 있는 온갖 상카라는 걍 포기, 무시함으로써 탐진치의 치를 더 키우는 결과가 되니까요. 그래서 생각을 '나'라고 집착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모든 생각들에 대한 책임 역시 나에게 있음을 잊어서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생각의 기준의 나의 기분/이익/가치관이 아니라 4성제와 12연기여야 한다는 점이 중요할 뿐이죠.


Wraith Ryu

希修 그렇죠. 생각도 결국 연기따라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인데.. 내려놓으라고 놓아질 수 있는것도 아니고 말이죠^^

希修

Wraith Ryu 네. X를 '내려놓기' 위해서는 X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며, 이건 (i) X를 발생시키는 원인 이해, (ii) X를 소멸시키는 원인 이해, (iii) 내가 X에 끌리는 이유 이해, (iv) 궁극적으로 X가 가져올 고통 이해, (v) X에 대한 환상에서 완전히 벗어남의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DN 1도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제 생각에는 아마도 과거 업 때문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 (나의 현재에서의 능동적 참여는 0%에 가까운)에서부터 100% 나의 현재 의지로써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유까지, 다양한 종류의 생각들이 있을 것 같긴 합니다.


Wraith Ryu

希修 예.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은 석가모니가 강조하신 것이기도 하죠.
자유의지로 일으키는 적극적인 생각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알아차림이 함께하고 있을것이란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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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QUEST FOR COSMIC JUSTICE | Kirkus Reviews


THE QUEST FOR COSMIC JUSTICE
BY THOMAS SOWELL ‧ RELEASE DATE: OCT. 1, 1999

A cosmic straw man is vanquished in the fight against dangerous ideals such as social justice and equality. 

This is not the place to look for original ideas or honest analysis. Presumably, Sowell’s (Migrations and Cultures, 1996, etc.) goal is to entertain those who share his convictions rather than convince open-minded readers, and this audience will be pleased. 

“Cosmic justice” is presented as a fundamental departure from the “traditional” conception of justice, which Sowell claims has the “characteristic of a process,” rather than of a particular outcome. 
He conveniently forgets to mention that this “tradition” dates back only to the emergence of liberal-democratic states and that contrasting notions of procedural vs. substantive justice remain the subject of lively debate. 

Admitting legitimate disagreement over even something as slippery as justice would soften the blows he aims at those who think inequality and any associated oppression raises concerns a just society should address, and Sowell is not one to temper a political argument simply to maintain intellectual integrity. He is not straightforwardly defending inequality, of course, but rather is pursuing the familiar strategy of attacking measures that could alleviate it. 

Sowell, a fellow at the Hoover Institution at Stanford, boldly asserts that those who believe equality should be pursued through public policy “assume that politicizing inequality is free of costs and dangers.” No names are mentioned, and it is indeed hard to imagine that anyone would believe there are no costs or dangers. By stating the issue in terms of extremes, however, he ducks the real issue—the challenge of weighing costs and benefits—and avoids the need for incorporating any subtlety into his discussion. Confronted with such disingenuous blather, readers may find Sowell’s criticism of others applies well to Sowell himself: “To explain the levels of dogmatism and resistance to facts found in too many writings . . . it is necessary to explore what purposes are served by these vis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