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환경정치학 강의한 교수의 조언 "기후위기 내 탓 보다 중요한 건..."
[인터뷰] 권혁범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유진(yujin9023)등록 2022.08.17
▲ 권혁범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임유진
대전 대덕구 미호동에 자리 잡은 '미호동넷제로공판장'. 1층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로웨이스트샵이 펼쳐지고, 2층으로 올라서면 에너지전환해유 사회적협동조합(아래 해유)이 운영하는 넷제로도서관이 열려 있다.
환경 분야 도서,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도서들로 빼곡히 채워진 공간에 새로운 서가가 마련됐다. <녹색평론>부터 환경분야·인문사회도서 200여 권들로 빼곡히 채워진 서가를 마련하게 한 이는 바로 권혁범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다. 이달 말에 은퇴할 예정이니 이제는 학자라 소개하는 것이 맞겠다. 기후위기 시대, 넷제로를 일구는 미호동넷제로도서관에 책 기증을 한 그를 지난 5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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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개념, 확장되는 중"
-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29년 학생들을 가르치셨어요.
"1994년 대학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으니, 28년 반을 교수로 있었네요. 일단은 만세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 들어요. 특히 행정적인 일로부터의 해방감이 있죠. 대학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휘둘리면서 대학의 본래 역할을 잃어버린 측면이 커요. 사무 관료적인 행정 절차는 언제든지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인들에게 억압적인데 그 부분에서 해방된 게 좋아요.
아쉬움이 드는 건 학생들을 만날 수 없다는 부분이고요. 강의 철학 중 하나가, 방학 끝나갈 무렵 설레지 않으면 당장 교수 그만둬야 한다는 건데, 28년 동안 설레지 않았던 적이 없어요."
- 주로 생태·여성·지역·인권 등과 관련한 강의를 하셨어요.
"대학에서 생태·환경·인권 분야가 비주류로 분류되죠. 신자유주의적인 발상 탓에 비판정신을 길러내는 인문학과 기초 사회과학이 대학에서 천시받는 거죠. 외국에서 국제 정치·경제 및 제3세계의 발전·저발전 연구를 하다가 1993년도에 귀국했어요. 그때는 환경에 중심을 둔 연구는 아니었는데, 한국의 개발 중심 성장 속에 자연환경이 파괴되어온 광경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걸 계기로 대학에서 '환경평화정치론'이라는 과목을 개설하게 됐어요. 현재는 '세계환경정치론'으로 과목 이름이 바뀌었고, 지난 학기까지 그 강의를 했네요.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등의 책들도 썼고요. 젠더문제 의식도 강해서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라는 책을 쓰고 <성과 문화의 정치학>이라는 강좌도 개설해서 학생들과 치열하게 토론했지요."
- 진보적 비주류 정치 의제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반영되었을까요, 강의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느꼈나요.
"무엇보다도 '진보'의 개념이 확장되고 다양한 길로 분화되어 나아갔다고 봐요. 기존 진보의 억압성과 획일성에 대한 반성으로 탈진보적 세력도 커졌구요. 양심적 병역거부만 해도 이전에는 군대에 갔다 온 많은 남성이 말도 안 된다며 매우 적대적이었지만, 지금은 대체복무제가 생겼잖아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아직 제정 전이지만 퀴어퍼레이드를 접하면서 희망적인 기대가 생겼어요. 주한미국대사가 와서 '이것은 인권이다'라고 선언했으니, 퀴어퍼레이드를 욕하는 수구 진영도 난감해지는 상황이 되는 거고요.
보수정권이 들어서긴 했지만, 전반적인 흐름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고 봐요. 국가인권위원회·인권단체·성평등·환경에 대한 관심과 그걸 추구하는 단체도 많이 생겨나고요.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숙제죠. 비정규직 노동자를 계속 양산하는 추세로 흐르고 있으니, 오히려 퇴행했다고 봐요. 노동자뿐 아니라 농민 등 소외계층이 계속 차별에 노출된 상황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예요."
- 교수님의 강의나 책을 보면 환경문제는 곧 정치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중요한 건 공동체의 문제가 될 때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환경문제를 공동체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개인의 습관이나 태도의 문제로만 몰잖아요. '내 탓'이라고만 생각하면, '공동체의 문제'라는 사실은 사라지죠. 물을 아껴 쓰자, 자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자, 허리띠 두르고 개천 청소하면서 자연을 보호하자 등등 이런 말만 하지 말고요. 정책·제도·법 등을 포괄하는 정치·경제 구조가 있잖아요. 이 구조적인 문제 의식을 갖고 환경문제에 접근해야 해요."
- 환경문제의 이슈와 양상이 시대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흐름을 짚어주신다면요.
"환경문제 자체를 '공해 추방' 정도에서 바라보던 시대가 있었지요. 70·80년대보다는 사회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비주류 의제 중 하나로 바라봐요. 개인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이 좀더 강해요.
기후위기가 대중의 관심을 끌기가 어려운 건 단기적으로 이 문제가 눈에 잘 안 보인다는 점이에요. 폭염과 폭설을 말할 때, 이게 기후위기 때문이니 해결하자고 해봐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이 될까요? 온실가스 배출량을 수치화해서 전달한다고 해도 온실가스 배출량과 기후위기의 연관성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마찬가지예요. 논리적으로 다가가는 것의 한계가 있을텐데, 조금 더 창조적인 전달 방식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원자력이 청정에너지라는 말 믿는 사람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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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호동넷제로도서관 한편에 그가 기증한도서 200권으로 채워진 서가가 마련됐다. ⓒ 임유진
- 기후위기 대응으로 전 세계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가능할까요.
"솔직히 비관적입니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자고 했더니 어느 진영에서 '원자력이 청정에너지'라는 말을 퍼뜨리는데,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2050년까지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 같고, 장기적으로 국민국가의 틀을 깨야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비관적이라는 말이 노력하지 말아야 한단 뜻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야겠죠. 다만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일부 나라에서 여전히 석탄과 원자력에너지를 생산하니 더욱 그렇죠."
- 기후위기 시대, 우리 정치는 어떤 길로 가야 할까요.
"그 얘기를 제대로 하자면 책 한 권이 필요하니 다음번으로 미루고 두 마디만 하겠습니다. 개별적인 분야에만 골몰하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잖아요. 흔히 쓰는 말이지만,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신사회운동(시민운동)과 정치는 연관되어 있으나 사실은 성격이 다릅니다. 정치인에게 운동가의 자세를 요구하거나 시민운동이 일부 운동가의 정치 진입을 위한 발판이 되는 거 둘 다 위험해요."
- 시민들의 정치인식과 참여, 시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할 거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실천을 어떻게 하시나요.
"실천이랄 게 별로 한 게 없어요. 강단에서 환경정치학을 가르치고 책을 내고 관련 칼럼을 쓴 걸 실천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일단 지역환경운동단체에 후원하는 정도죠. 서울·중앙의 유명한 운동단체를 뒷순위로 두고, 대전·충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를 우선 후원하는 편이에요. 특히 환경운동에서 지역이 가진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일종의 '정치적 세금'을 낸다는 생각하기도 합니다."
- 제자들이 환경운동을 하는 건 교수님의 교육 실천으로부터 비롯된 거 같아요.
"수업을 성실하게 하는 게 늘 제일 중요했던 일이에요. 이론과 실천은 분리될 수는 없지요. 강단도 현장의 일부라는 인식, 예전에는 욕먹을 얘기지만 지금은 필요합니다. 은퇴 후에 책을 쓰는 계획을 하고 있어요. 환경을 주제로 한 권,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한 권.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지역의 시민운동단체와 협의하여 환경이나 인권 혹은 사회과학 기초에 대한 시민강좌 같은 것을 개설할 꿈도 있어요."
- 미호동넷제로도서관에 기증하는 책들은 어떤 책들인가요.
"주로 환경도서에요. 우리나라 최고의 잡지라 여기는 <녹색평론>도 함께 있고요. 환경분야의 책만 읽으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고도 생각해 기초적 인문사회도서들도 함께 있어요. 거대한 사회 전환을 이루려면 환경도서만 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또 환경을 주제로 한 문학, 에세이, 그림책도 20권 정도 추가로 기증하려고 해요. 어떤 것이든 일방적으로, 계몽의 방식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책들이 가진 힘이 있어요."
- 기증 책 중에 이것만큼은 필독했으면 하는 책을 꼽아본다면요.
"<오래된 미래>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지금은 라다크 마을 공동체가 많이 파괴되었지만, 그 이전 공동체가 살아 숨쉴 때의 모습을 다룬 책이에요. 환경 분야에 대한 입문서로 추천드리고 싶어요. 앞서 얘기했듯, <녹색평론>은 환경뿐만 아니라 관련된 우리 시대의 일상적 생활양식과 정치사회구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잡지에요. 실제로, 학교에서 주 교재로 사용도 했었고요. 그 중 빼어난 글을 모은 <녹색평론선집>1·2·3권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어요."
-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을 새롭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학생·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한방에 해결하려 하면 안 된다는 거요. 사실은 활동가·지식인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해야겠네요. 자기 자신을 소모하고 탈진 시키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되니까요. 동시에 학생들·지식인들에게 실천 영역에서의 경험이 부족하면 관념적으로 급진성을 띠게 된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어요.
관념 안에 갇힌 채로 일반 시민들과 분리된다면 그 또한 위험한 일이 되겠죠. 또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죄의식에 호소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방향이라고 봐요.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을 만드는 일이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니까요. 앞서 말했듯 연대 안에서 희망을 함께 찾아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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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5일, 문화동 한 카페에서 에너지전환해유 사회적협동조합 양흥모 이사장이 권혁범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인터뷰하고 있다. ⓒ 김나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에너지전환해유 사회적협동조합 블로그에도 게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