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의 철학
사변적 실재론 이후의 ‘인간의 조건’시노하라 마사타케, 조성환, 이우진, 야규 마코토, 허남진 역 | 모시는사람들 | 2022년 08월 31일
지구인문학의 시선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기획/박치완 등저
13,500원 (10% 할인)더보기이동
이 분야 베스트셀러
도올주역강해
도올 김용옥 저
35,100원 (10% 할인)
책소개
이 책은 인류가 새롭게 맞이한 인류세에 즈음하여 한나 아렌트가 제기한 ‘인간의 조건’이라는 철학적 물음을 재조명한다. 아렌트의 견해에 인류세를 인간사와 자연사의 얽힘으로 이해한 차크라바르티의 견해를 더하고, 퀑탱 메이야수의 사변적 실재론이나 티모시 모튼의 객체지향철학 등이 제기한 ‘사물’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경유하여, 동일본대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의 체험과 연결시키면서 재구성하고 있다.
인류세란 “산업혁명 이래의 인간의 활동으로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붕괴되고, 그로 인해 인간의 조건이 위협받는 시대”이다. 이에 즈음하여 근대문명이 구축해 온 인공세계는 자연세계 위에 놓인 것이며, 자연 세계는 연약하고 깨지기 쉬우며 인간에게 우호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 책은 인류세에 즈음하여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수용하며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 인간이 붕괴의 길로 추락할 것인가, 성찰을 바탕으로 자연세계와 화해하고 붕괴 이후의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지향할 것인가를 묻는다.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한국어판 저자 서문
프롤로그 『인류세의 철학』은 어떻게 탄생했나?
해제 〈붕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서론
제1장 인간과 자연의 관계
· 인공물과 자연 · 인공물로서의 경계
· 인간의 세계·경계·자연과의 만남 · 인간의 세계와 그 붕괴
· 인간세계의 한계로서의 경계 · ‘아우라의 붕괴’에서의 양의성(兩義性)
· 자연 이해의 어려움 · 세계의 사물성
· 상호연관의 펼쳐짐
제2장 인간세계의 이탈
· 인간이 아닌 것의 세계 · 인류세
· 인류세 시대의 인간의 조건 · 인간의 조건의 사물성
· 이탈하는 인간세계 · 인간세계를 교란시키는 자연
제3장 인간세계의 취약함
· 인간세계의 과학기술화 · 지구로부터의 인간 이탈
· 인간의 조건의 붕괴 · 환경 위기와 인간 소멸
· 무용해지는 기분과 인공세계의 구축 · 생태적 현실로
제4장 생태적 세계
· 데이터로 본 현실의 충격 · 데이터가 제시하는 현실의 역설
· 마음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 유체적(流體的) 사고에 대한 비판
· 인간은 자연 속에 살아 있다 · 인간적인 것과 생태적인 것의 사이
· 취약성의 현실성
제5장 사물의 세계와 시적 언어의 가능성
· 사물과의 상호교섭 · 과학기술화 과정에서의 주체성 상실
· 시적으로 말하기 · 사물의 응시
· 정신의 극복 · 사물이 만나고 모이는 장소
· 과대 도시화와 공업화의 결말
제6장 생태적 공존
· 현전(現前)의 공간과 그곳으로부터의 제거
· 인간 아닌 것의 힘들과의 접촉 · 인간의 유한성
· 혼돈공간의 발생 · 확산에서의 연관
· 파편과 함께 있다는 것 · 빛과 어둠의 경계
· 분리되지 않지만 구별된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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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5명)
역 : 시노하라 마사타케 (篠原雅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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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학(京都大?) 총합인간학부(?合人間?部) 졸업. 교토대학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박사. 현재 교토대학대학원 총합생존학관(思修館) 특정 준교수. 저서로『공공공간의 정치이론(公共空間の政治理論)』(人文書院, 2007), 『공간을 위하여(空間のために)』(2011), 『전-생활론(全-生活論)』(2012), 『살아진 뉴타운(生きられたニュ?タウン)』(2015),『복수성의 에콜로지(複?性のエコロジ?)』(2016), 『‘인간 이후’의 철학(‘人間以後’の哲?)』(2020)이 있고, 번역서로 마누엘 데란다, 『사회의 새로운 철학(社?の新たな哲?)』(2015), 티모시 모튼, 『자연없는 생태학(自然なきエコロジ?)』(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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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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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 [다시개벽] 편집인. 지구지역학 연구자. 서강대와 와세다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였고,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한국 근대의 탄생』과 『개벽파선언』(이병한과 공저)을 저술하였다. 20∼30대에는 노장사상에 끌려 중국철학을 공부하였고, 40대부터는 한국학에 눈을 떠 동학과 개벽사상을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1990년대부터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관된 문제의식은 ‘근대성’이다. 그것도 서구적 근대성이 아닌 비서구적 근대성이다. 동학과 개벽은 한국적 근대성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고, 지구인문학은 ‘근대성에서 지구성으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양자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지구지역학’을 사용하고 있다. 동학이라는 한국학은 좁게는 지역학, 넓게는 지구학이라는 두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장차 개화학과 개벽학이 어우러진 한국 근대사상사를 재구성하고, 토착적 근대와 지구인문학을 주제로 하는 총서를 기획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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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이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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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교육대학교 교수. 공주교육대학교 글로컬인문학연구소 소장. 공주교육대학교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교육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차세대 한국학자로 선발되어 워싱턴대학교에서 연구하였다. 저서로 Korean Education:Educational Thought, Systems and Content (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정의를 위한 교육 ? 야누시 코르차크』,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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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아렌트는 근대 이후의 인간 생활의 문제를 ‘인간의 조건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버린 문제’로 생각하고자 하였다. 『인간의 조건』 제2판(1998)에 실린 서문에서 마거릿 캐노번(Margaret Canovan, 1939~2018)은 아렌트가 인간의 영역인 공적 세계에 대한 고찰을 지구라는 행성, 즉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려 했다고 말하고 있다. 아렌트는 1957년의 인공위성 발사를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으로 파악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지구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즉 “지구에서 하늘로 달아나고, 핵기술과 같은 실험을 통해서 인간 존재는 자연의 한계에 도전해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4 아렌트는 인간의 영역이 지구에서 이탈하여, 그 자체로 자족하게 되는 징조를 인공위성 발사에서 감지했다.
--- p.42
○ 인간 생활의 조건이 취약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인간 생활의 조건이 인간적인 의도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의 인공 공간만으로는 완결되지 못하고,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지탱해 주는 자연과 만나는 곳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모튼이 “사물에는 기묘한 구석이 있다.”라고 주장했던 것은 인공과 자연이 은밀하게 만나는 곳에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인간 생활에서는 사물의 기묘함을 대체로 의식하지 못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세계에 사는 데 익숙해지게 됨에 따라, 그 이외의 세계, 즉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세계는 아렌트가 말하는 ‘세계 아닌 것’으로 지각되고, 거기에서 감각이 닫히고 사고도 멈추기 때문이다.
--- p.90
○ 차크라바르티는 기후변화와 함께 일어나는 사태를 둘러싼 사유를 펼쳐나가는 일을 야스퍼스의 “전대미문의 사태에 대한 의식”에 관한 검토에서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기술화가 인간 생활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현실은 전문적으로 분화된 개별 지식의 테두리에 머물러서는 사유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인간이 지구로부터 분리됨으로써 뿌리 없는 풀과 같은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자각을 촉구하고, 그 결과에 대한 사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 p.127
○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사물성(事物性)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사물을 두 가지 상태로 구분하였다. 하나는 인간적 세계의 구성 요소가 된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바깥으로 내몰려 서로 무관한 것들이 퇴적되어 있는 상태이다. 인간 존재를 조건 지우는 상태에 있는 사물은, 인간 생활이 영위되는 인간적 세계의 영역 안에 확실히 존재하는 것으로 지각되고, 인간 생활을 현실에서 뒷받침하는 것으로 감지되며 인식되고 있다. 이에 반해 인간적 세계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물은 명확히 ‘세계 아닌 것’(non-world)으로 불리고 있다. ‘세계 아닌 것’이란 인간 생활과 무관하고 인간 생활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인간 생활로부터 방치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 p.153
○ 오노의 시는 공업화된 장소를 사물성에서 포착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균질 공간의 확장과 그 확장에 대한 대항이라는 관념적 도식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모튼의 표현을 빌리면, 오노의 시는 “인간이 구축한 장소보다 훨씬 더 거대한 장소에 우리가 있음을 발견한” 시로 읽을 수 있다. 거대한 장소에 있을 때 인간은 바람과 연기를 느끼며, 풀과 광물의 현실성을 느낀다. 이 드넓은 펼쳐짐 속에 들어감으로써, 인간이 문화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만들어 낸 장소가 협소하고 제한적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환영이나 정신으로 가득 찬 번화가와는 다른 ‘갈대밭’이라고 하는 변경의 정적 속에 몸을 두는 것이 요청된다.
--- p.182
○ 인간세계가 그 자기완결성을 완화하고, 생태적 세계와 만나는 것은 실로 이 사이, 중간적인 곳이다. 인간적인 세계가 원활한 작동을 멈추고 확장을 멈출 때, 거기에서 생성되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 확실함을 깨닫게 해주는 공간, 즉 자연세계에서 다양한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얻어지는 확실함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정적, 세누히마(せぬひま)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곳은 인간세계가 자연세계와 접하고 만나는 곳으로, 그래서 자연 그 자체에 삼켜지거나 자연과 일체화되는 곳과는 다르다. 자연과도 구별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세계의 자기완결성이 삐져나오는 곳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p.215
○ 아렌트는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파시즘 시대에서 인간이 자신의 거주지 감각을 상실하고 고립되고 기댈 곳 없는 존재가 되자, 인간의 내면적 자연성이 돌변하여 야만화되고 폭력적이 되는 공포를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것에 비하면 인간세계를 안정적인 것으로 만들고 유지하여, 자기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게 될 것이다. 정치철학자로서 아렌트는 설령 인간세계의 형성이 자연에 대한 폭력의 행사를 동반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고립되고 퇴행하고 야만화하는 것에 비하면, 이 폭력은 허용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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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동아시아 최초의 ‘인류세 철학서’
붕괴 이후의 인간의 조건을 사물철학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한다
죽어갈 것인가, 살아볼 것인가?
이 책은 2018년에 교토대학의 시노하라 마사타케(篠原雅武, 1975~ ) 교수가 쓴 『人新世の哲?: 思弁的?在論以後の ‘人間の?件’』(東京: 人文書院, 2018.01)을 번역한 것이다. 여기에서 〈人新世(인신세)〉는 anthropocene의 일본어 번역으로, 한국에서는 ‘인류세’로 번역되고 있다. 〈思弁的?在論(사변적 실재론)〉은 speculative realism의 번역어로, 최신 철학의 한 흐름이다. 〈人間の?件(인간의 조건)〉은 한나 아렌트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유래하는 개념이다.
‘인류세’는 2000년에 네델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Jozef Crutzen)이 사용하여 널리 알려진 개념이고, ‘사변적 실재론’은 프랑스의 철학자 퀑탱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가 2006년에 쓴 『유한성 이후(Apres la finitude)』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인간의 조건’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1958년에 쓴 저서 제목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인류세 시대의 인간의 조건을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철학적 관점에서 다시 생각한다”가 된다.
‘인류세 철학’은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개념이다. 서양에서도 인류세를 ‘철학적’ 관점에서 사유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인류세 철학”이라는 제목의 책이 처음 나온 것이 2016년이기 때문이다. 이 해에 덴마크의 철학자 Sverre Raffnsøe가 쓴 『인류세의 철학(Philosophy of the Anthropocene): 인간적 전환(The Human Turn)』(Hampshire: Palgrave Macmillan)이 출판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8년에 ‘마침내’ 비서구권에서도 “인류세의 철학”을 제목으로 한 단행본이 간행된 것이다.
저자인 시노하라 마사타케는 일본에서는 인류세 철학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 국내에도 번역되어 유명해진 『지속불가능한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의 저자 사이토 고헤이(?藤幸平)와 『현대사상』에서 대담을 나눴고(?ポスト資本主義と人新世(포스트 자본주의와 인류세)?, 『現代思想』, 2020년 1월호),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philosophy)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티모시 모튼(Timothy Morton, 1968~)과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자신의 책 『複?性のエコロジ?(복수성의 생태학)』(2016)에 수록하였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가 제기한 ‘인간의 조건’이라는 철학적 물음을 ‘인류세’ 시대에 다시 생각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 제기는 이미 시카고대학의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가 2009년에 ?역사의 기후 : 네 가지 테제?라는 논문에서 제기한 바 있다. 차크라바르티는 인류세의 의미를 인간사와 자연사의 얽힘으로 이해하였다. 저자는 여기에다 퀑탱 메이야수의 사변적 실재론이나 티모시 모튼의 객체지향철학 등이 제기한 ‘사물’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추가하고, 그것을 고베지진이나 동일본대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의 체험과 연결시켜, ‘일본인’의 관점에서 인류세 철학을 재구성하고 있다.
‘인류세의 철학’이라는 논리와 개념이 함의하는, 그리고 이로부터 출발하는 사유의 지평은 긴박하고도 광범위한 문제를 포괄한다. 저자는 인간의 조건 문제를 특히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우발적(?) 자연재해와 그로 말미암은 쓰나미 그리고 그 이후에 펼쳐진 세계상이라는 지엽적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그 이전 반세기나 한 세기로 소급하고(1958년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출간), 또 그 이후로는 티모시 모튼,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등과의 만남을 포함하여 미래로 ‘열린 구조’를 갖고 있으며, 생물 대멸종을 포함하여 인간의 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매년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폭염, 폭우, 가뭄, 초대형 산불 등의 재난이 일상적이며 연례적인 사태로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북극 해빙이나 북구 만년빙하의 급속한 해동, 그리고 시베리아 영구동토의 해빙으로 말미암은 재난과 재앙도 인류 역사와 사회변화의 상수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탄소중립 일정표 문제나 플라스틱을 포함한 각종 쓰레기의 유출 등등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인간 조건의 문제가 범세계적이며 전 지구적인 현재진행형의 과제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으로, 이러한 자연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비롯한 사물 세계의 인간 세계로의 진격과 혼섭(混涉) 또한 인류세 시대에 인간의 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되고 있다.
다시 원론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면 인류세란, 차크라바르티의 개념 정의를 참조할 때 “산업혁명 이래의 인간의 활동으로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붕괴되고, 그로 인해 인간의 조건이 위협받는 시대”로 요약될 수 있다(『인류세의 철학』 2장 1절 “인류세 시대의 인간의 조건”). 여기서 ‘인간의 조건’은 인간 자신을 제외한 인간 활동의 산물(인공물)과 동식물이나 광물, 나아가 바다나 대기와 같은 자연물과 최종적으로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 ‘행성 지구’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인류세’란 바로 이러한 ‘행성 지구’ 이하의 인간의 조건이 격변하고 급변하는 와중에 구온난화 사태의 경우에서 보듯이 인간의 생활은 물론 생존과 생명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 시대를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불타고, 녹아내리고, 멸종하고, 숨 막혀 죽어 가는 이 인류세의 실제상황 시대에 ‘철학’을 이야기하는 이유와 의미와 여지는 무엇인가. 이제야말로 인간이 이 자연 세계, 인간의 조건의 주인이 아니라 일개 거주민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은 결코 인공 세계(문명)만으로 생존하고 생활해 나갈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인간이 자연(동물~바이러스)에 너무 깊숙이 침입하는 바람에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은 바로 이러한 인류세라는 거대 구조의 손바닥 위에서 펼쳐진 파노라마의 도입부였던 것이다.
인류세 시대에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인공의 세계만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자연이야말로 광범위하고 근원적인 인간의 조건이라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그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닐뿐더러, 그로부터의 해방이란 것도 원천적으로 환상, 환몽,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근대 이후로 건설된 인간의 인공세계는 자연세계 위에 겹쳐지고 포개지듯이 성립하였고, 따라서 대단히 연약하고 깨지기 쉬우며, 자연재해나 기후변동으로 인해 쉽게 붕괴될 위험이 있다. 인류세의 철학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류세는 인간세계가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고, 쉽게 붕괴될 수 있으며, 이러한 불안정 상황이 지속되는 시대를 말한다. 근대라는 안정된 시스템이 ‘붕괴’되는 지금 여기에서의 경험을 절망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이를 사물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기회로 삼아 성찰하고 자연세계와의 화해와 만남,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추구할 것인가?
한마디로 “죽어갈 것인가, 살아볼 것인가?”를 묻는 것이 바로 ‘인류세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