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2-07-29
고명섭 기자
철학자 김용옥 ‘주역’ 해설서
역경 ‘64괘 384효’ 상세한 풀이
동주 혼란기 성립 ‘깊은 우환의식’
동아시아 윤리학·형이상학 창출
도올 주역 강해
김용옥 지음 l 통나무 l 3만9000원
<주역>은 동아시아 문명의 바탕을 이루는 경전 가운데 가장 난해한 텍스트로 꼽힌다. 주역에 관해 여러 주해서를 쓴 신유학의 대사상가 주희도 <주역>을 읽고 ‘정말로 해석하기 어렵다’(최난간, 最難看)고 했다. 그런데도 이 경전에 담긴 음양론은 동아시아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고대 이래 동아시아인의 일상을 지배하다시피 했다. <도올 주역 강해>는 철학자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가 쓴 <주역> 해설서다. 지은이는 지난 2천여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탄생한 주요한 <주역> 해석을 바탕에 깔고서 이 난해한 책을 오늘의 언어로 바꾸어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데 빛을 주는 책으로 빚어낸다.
<주역>이란 ‘주나라에서 성립한 역’이라는 뜻이다. 이때 ‘역’(易)은 일차로 변화를 뜻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주역>을 ‘변화의 책’(The Book of Changes)이라고 번역한다. 동시에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주희가 “대저 ‘역’이란 복서(점) 책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역>은 변화의 책이자 변화를 점치는 책이다. <주역>이라고 부르는 이 책자는 <역경>과 <역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경>은 <주역>을 구성하는 핵심 텍스트이며 <주역> 성립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역전>이란 공자 이후 이 <역경>을 해설한 권위 있는 논문들을 가리킨다. <단전> <상전> <문언전> <계사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 7종이 <역전>을 이룬다. 주희가 ‘역’이라고 부른 것은 이 문헌들 가운데 핵의 자리에 놓인 <역경>을 가리킨다. 이 <역경>의 내용을 철학적으로 해석한 논문들이 <역전>으로 덧붙여져 현재의 <주역>이 된 것이다.
<주역>은 우주 만물과 인간 세계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변화를 설명하는 데 쓰이는 범주가 음과 양이다. <주역>은 이 두 범주를 조합해 천지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주목할 것은 이 두 범주가 절대적으로 구별돼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양 속에 음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다. 양이 음으로 바뀌고 음이 양으로 바뀐다. 이렇게 음양이 서로 바뀌어감으로써 세상 모든 것이 변화 속에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변화는 일직선의 변화가 아니라 순환하는 변화다. 우주는 끝이 있으므로 그 한계 안에서 모든 것이 무수한 변화를 거쳐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같다. 한번은 양으로 한번은 음으로 바뀌는 이 ‘일양일음’의 변화는 우주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의 법칙이기도 하다. 이 음양론은 17세기 중국에 온 서방 선교사를 통해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에게 알려졌고, 라이프니츠는 이 음양론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 컴퓨터 이진법의 기원이 되는 수의 체계를 창안했다.
<도올 주역 강해>를 펴낸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도올은 <주역>을 ‘하늘의 소리를 듣는 책’이라고 말한다. 통나무 제공
<역경>은 이 음양의 변화 양상을 점으로써 알아보는 책이다. 그 <역경>을 구성하는 기초 단위가 ‘괘’와 ‘효’다. 효는 음효(- -)와 양효(―)로 나뉘는데, 지은이는 이 음효와 양효가 각각 남녀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본다. 이 두 효가 여섯개 쌓여 하나의 괘를 이루고, 이 괘가 64개 모여 전체를 이룬다. 가령, 양효만 여섯개 쌓이면 ‘건 괘’(첫번째 괘)가 되고, 음효만 여섯개 쌓이면 ‘곤 괘’(두번째 괘)가 된다. 이렇게 쌓여 이룬 ‘괘’의 모양을 ‘괘상’이라 한다. 이 괘상마다 괘의 이름인 ‘괘명’이 있고, 그 괘를 설명하는 말씀 곧 ‘괘사’가 따른다. 각각의 괘에는 여섯개의 효가 있으므로 전체 64괘는 384효로 이루어진다. 이 384개의 효마다 효사가 달려 있다. 특정한 절차를 통해 효를 뽑아내고 그 효에 달린 효사를 읽어 길흉을 알아보는 것이 바로 역점이다. 이 책은 그 절차 곧 점치는 방법도 상세히 알려준다.
그렇다면 점을 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지은이는 먼저 ‘역’은 ‘기복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인간의 운명이나 운세라는 것은 내 실존의 문제이지 점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점을 치는가? 지은이는 “내 지력이나 노력으로 선택의 기로가 열리지 않는 극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 점을 치는 이유라고 말한다. 점이 가리키는 효사는 하느님이 내려주는 말씀이다. 이때의 하느님은 어떤 초월적 절대자가 아니라 음양의 기운 속에 운행하는 우주 만물에 깃든 하느님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바로 이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 점이다. 주역이 발흥한 시기는 동주시대(기원전 770~256)의 혼란기였다. 세상이 끝없이 어지러웠기에 주역에는 깊은 ‘우환의식’이 배어 있다.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기대는 것이 점이라는 방식의 ‘물음’이었다. 그러므로 점은 실존의 한계상황, 시대의 한계상황에서 하늘에 뜻을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사로움을 넘어선 물음과 응답이었기에, 후대에 역에 대한 해석을 통해 철학적·윤리학적·형이상학적 사유가 자라날 수 있었다.
이 책은 64개의 괘를 그 효와 함께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한다. 이 64괘 가운데 63번째에 놓인 괘가 ‘기제’(旣濟)이고 64번째에 놓인 괘가 ‘미제’(未濟)다. 기제란 ‘이미 건넜다’는 뜻이고 미제란 ‘아직 건너지 못했다’는 뜻이다. 왜 <역경>의 마지막 괘가 ‘완료’를 뜻하는 기제가 아니라 ‘미완’을 뜻하는 미제일까? 역의 세계에는 완전한 종결이 없기 때문이다. 끝은 항상 시작을 품고 있는 것이기에 미제가 마지막에 놓인다. “역의 논리에 즉해서 생각하면 기제 다음에 미제라는 것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즉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이 미제는 그 표면의 뜻만 보면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세번째 효의 효사는 ‘정흉(征凶), 이섭대천(利涉大川)’이다. 그 함의를 풀어보면 ‘흉운을 감수해야만 하는 시대를 만났지만(정흉), 이런 때일수록 큰물을 건너는 모험을 감행해야 이로움이 있다(이섭대천)’는 뜻이 된다. “정흉은 객관적 판단이고 이섭대천은 주체적 결단이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모험을 감행해야만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얘기다. 오늘의 우리를 향해 하는 말로 새겨도 좋을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