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4

이병철 - -연하장을 발송하다

이병철 - -연하장을 발송하다/ 어제 오후에 우체국에 가서 지인들에게 올해의 연하장을 보냈다. 다른 해보다 훨씬... | Facebook



이병철
17 m ·



-연하장을 발송하다/
어제 오후에 우체국에 가서 지인들에게 올해의 연하장을 보냈다. 다른 해보다 훨씬 빠르게 보낸 것인데, 평소 정원님과 둘이 하던 일을 마침 휴가차 집에 와 있던 막내가 거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새해 초에 판화 형태의 연하장을 직접 만들어 보내기 시작했던 것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햇수로는 거의 50여 년에 가까운 것 같다. 결혼 전부터인데, 내 기억으로는 76년부터라 싶다. 이 연도를 기억하는 것은 이 해가 내 생애의 중요한 변곡점(?)이 된 해라 싶기 때문이다.
75년 이른 봄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모색하다가 농민운동을 그 길로 선택하고 뛰어든 해가 그 해부터였는데, 그 해의 초에 고무판에 그림을 새기고 엽서에 탁본하듯이 먹물로 찍어 보냈던 것이 그 처음이었으리라 싶다.
연하장 작업을 고무판에서 목판으로 바꾼 것은 80년, 결혼한 이후인데, 그 뒤로 한동안은 목판에 그림을 새겨 찍은 판화에 붓글씨로 써서 연하장을 만들어 보냈다.
정원님의 기억에 의하면 내 연하장 그림과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것은 89년부터라고 하는데, 이 해부터 연하장의 그림 내용이 바뀌고 색채도 검정에서 채색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연하장은 나도 기억한다. 연꽃을 새기고 붉은색을 입힌 판화였다. 홍련(紅蓮)을 새겨 보낸 것이다. 그동안 투쟁적이거나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표현한 그림 대신에 처음으로 꽃이 등장한 것이었다. 내가 기존의 운동에서 이른바 생명운동으로 전환(?)한 시점도 이때부터라 할 수 있다.

87년은 아마도 내 생애에서 가장 치열했던 때라 여겨지는데,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의 조직을 책임지고 있던 나는 백성(民)이 나라의 주요 의제를 직접 결정하는 체제를 꿈꾸었고 이는 결국 단일화의 실패로 좌절되면서 사회운동에서의 은퇴를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와 일 년 넘게 칩거하며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새롭게 모색했고 그런 모색 끝에 다다른 것이 생명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많은 설명이 필요한데, 언젠가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튼 그래서 그 때부터 연하장의 형태도, 내용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내 연하장에서 그림 대신에 글씨로 바뀐 것은 2,000년대를 지난 뒤라 싶다. 모자라는 솜씨에 그림을 새긴다는 것이 갈수록 부담스러워 쉽고 편하게 한다고 글씨로 바꾸었다고 하겠는데, 글씨로 사자성어 등을 새기면 한 해의 메시지를 훨씬 더 쉽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또한 귀찮다는 생각에 글자 한 자를 새기기 시작했던 것도 어느새 십수 년에 이른 것 같다.
 
해마다 연초에 새해를 품어갈 한 글자를 써서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그동안 새겨 보낸 글자가 올해의 비(悲 24년), 성(省 23년), 성(醒 22년), 지(止 21년), 공(共 20년), 서(恕 19년) 등인데, 올해의 비(悲)와 함께 하는 '자(慈)'를 새겨보낸 해가 2014년이니, ‘자(慈)’와 ‘비(悲)’가 하나임을 깨닫는 것에 10년이 걸렸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싶다.
내가 얼마나 게으른가 하는 것은 우리 가족들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그런 내가 거의 오십여 년 가까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하장을 만들어 보내왔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가족들도 신기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사실 나도 연말이 되면 인제 그만두어야지 하는 생각을 갈수록 더 하게 된다.
연하장을 한 장 한 장 목판으로 찍고 글씨를 써서 만들어 보내는 작업이 품과 시간이 여간 걸리는 게 아니다. 연말과 연초를 온통 이 일에 매달리다시피 해야 한다.
글자를 새긴 목판에 잉크를 묻히고 한지를 덮고 숟가락으로 문질러서 한 장씩 찍는 작업은 오래전부터 공부모임 도반들이 함께해주고 있지만 그 위에 다시 무언가를 쓰고 우편으로 발송하는 작업은 우리 내외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귀찮고 힘겹다는 생각이 들 때가 없지도 않다. 그래서 매번 연하장 보내는 것은 올해로 마지막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리 계속해온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 하나는 백수로 살아온 내가 신세 진 이들에게 그 고마움을 표현할 다른 마땅한 방법이 없이 이렇게라도 한 해의 인사를 대신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내가 직접 연하장을 만들어 보내는 일을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 때문이다. 좀 귀찮더라도 이렇게 연하장을 만들어 보낼 지인들이 있고, 아직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이 또한 감사하고 즐거운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찍는 것이 한정되어 더 많은 이들에게 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혹시 그동안 내 연하장을 받았는데, 왜 올해는 보내지 않는가 하고 서운해하는 이들이 계신다면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내가 깜빡했을 수도 있고, 만든 연하장이 모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인지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한다는 의미가 갈수록 각별하게 느껴진다. 해가 바뀐다는 것이 그냥 달력 상의 바뀜만이 아님이 절실히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곧 우주적 사건임이 몸으로도 경험되는 것이다.
해마다 한 해를 품어갈 한 글자와 그 글자에 담은 새해의 서시 한 편을 이번 생의 고마운 이들과 나눌 수 있어 고맙고 기쁘다.
올 한해, 함께 품어가자고 했던 '비(悲)'를 새삼 생각한다.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한다면 사랑일 수 없다는 것을.
아침에 연하장에 관한 생각이 들어 함께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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