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4

박정미 - 아주 오래 된 의문

박정미 - 아주 오래 된 의문

박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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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된 의문

 세상에 쓸 데 없는 이상한 고민을 할 때가 있다. 
사춘기시절이 주로 그러한데, 내 인생에서는 대학 신입생시절 운동권 주변을 맴돌면서부터였다. 
자의식이 강했던 나는 처음 정면으로 마주한 사회와의 접합면에서 하염없이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자아의 한계를 돌파하려다가 튕겨나오고, 다시 들이대다 상처입고 내면으로 침잠하곤 했다. 
나 자신도 구체화할 수 없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의문의 구렁텅이, 난마처럼 얽혀있는 생각의 함정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때 제기된 어둡고 무거운 실뭉치같은 의문에서 실마리를 찾아 질문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응답해가는 과정이 바로 내 인생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 몸을 돌보지 않는 무질서한 생활과 유물론철학을 학습하면서 생긴 신경증으로 학교를 휴학하고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졌다. 소화시키지 못하는 철학이 몸으로 표현되었는지, 몸이 음식물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반년 후 학교로 돌아왔지만 원래부터 약했던 몸은 그 후로도 내 발목을 잡았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생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산다.

내 의식에 들러붙어 활력을 빨아먹던 유물론 철학과 결별하게 된 것은 나이 마흔도 넘어셔였다. 아빠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것이다. 
 아빠와의 영원한 이별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인터넷서점 검색란에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넣고 떠오르는 책은 다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영혼의 존재와 카르마로 작동되는 자아의 진보와 불멸과 환생이 우주의 법칙이라는 사상을 수용하게 됐다. 수용이라기 보다는 재확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유물론을 학습하기 전에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해왔으니까.  

지금도 그 불교-인도철학의 핵심사상은 내 존재를 떠받치는 기반으로 살아있다(물론 불교는 불멸의 영혼을 부정하고 생을 거치며 언젠가 해체되어야 할 생명의 파동으로 이해한다.). 나는 언젠가는 돌아가신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나뵐 수 있음에 안도했다. 이 때가 내 인생의 한 문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말하고 행동하고 어울리기보다는 한 켠에 서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지켜보며 살아가는 쪽이었는데 대학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촌놈대학교라는 명성에 어울리게 서울대 콤플렉스를 가진 시골마을 남자수재들이 대부분이었던 학교라서 더 그랬다. 

그 중의 몇몇 특별한 개성들은 호기심과 관심을 끌었는데, 동문들의 소문과 인터넷을 통해 지금도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추적하여 확인하곤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인간은 술에 취하기만 하면 5,18을 이야기하며 울고 남북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고통을 절절이 불고 하던 운동권 남학생이었다. 나는 사회현실과 역사에 대한 그 격정의 토로와 뜨거운 민족애에 반은 감동하면서도 반은 미심쩍어했는데, 결국 환멸을 느끼고 절연했다. 

지금도 그 인간은 그렇게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 요란하게 살아가고 있더라.

대학시절 받은 큰 문제 중의 하나가 그렇게 거대하고 추상적인 것을 쉽사리 말하는 인간들로부터 나온 것들이었다. 인간의 영적 진화의 잣대는 사랑과 자비라고 한다. 그러면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두 사람을,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열 사람을, 열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민족과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더 사랑에 가까운 진화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큰 사랑을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왜 개별적 관계에서는 그토록 거짓되고 망령되이 행동할 수 있을까. 왜 그들은 그토록 쉽사리 민족애와 조국애를 입 밖에 꺼낼 수 있는 것인가. 왜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사랑을 느낄 수 없고 의심과 환멸만 느끼는 것인가.

 며칠 전 시월의 마지막날, 모교 주변을 자전거로 도는데 문득 내 마음 속에 해답을 물고 떠오른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지, 인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사랑은 추상적인 인류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웃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사랑이 땀과 냄새와 눈빛을 가진 개별적인간을 벗어나면 그것은 사랑의 경계를 넘어간다. 민족애는 민족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민족을 위한다는 자각에서 나오는 명예감정을 지칭한다. 명예감정이 가치 없다는 뜻이 아니다. 명예감정은 인간 내면에서 가장 훌륭한 감정 중 하나라고 본다. 다만 잣대가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범주에 민족애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족애는 민족의 현실에 대한 고통과 연민과 책임의 감정뿐만 아니라 민족에 반대되는 것에 대한 분노와 증오까지도 아우른다. 사랑에 분노와 증오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 시절 운동권으로 젊은 학생들을 이끌었던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드높은 명예감정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은 사회의 엘리트로서 민중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의식이 강조되었다. 이젠 어른이 되었다는 초조함, 역사적 소명의식의 깨어남, 혜택받는 계층으로서의 부채의식이 그들을 내몰았다. 

 하지만 꼭 그런 사람만 있던 것은 아니어서 어디에나 있는 새끼악마는 여기에도 끼어들곤 했다. 새끼악마는 구체적 인간에 대한 사랑도, 드높은 명예감정도 아닌 권력욕의 발로로 운동권에 또아리를 틀었다.

 무지개처럼 마음도 칸막이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스펙트럼을 형성해서 번지듯 넘어간다. 사랑의 감정 옆에 명예감정이 있다면 권력욕은 멀리 떨어져 겹쳐지지 않는 곳에 있다. 명예감정은 사랑의 입장에서 보면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인 가치지만 권력욕은 사랑과는 대척점을 이루는 사랑의 적이다.

 학생운동을 왜 했는지, 젊어서는 주위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자신조차 잘 알 수가 없다. 젊음 자체의 순수한 혈기와 단순성이 욕망조차 신선하게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어 한 때는 자신과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지만 긴 인생행로에서는 결국 다 드러내고야 만다. 

우리 세대에서는 소련이 멸망하고 북한의 실상이 드러남으로써 학생시절 추종하던 사상과 철학이 오류로 판명났을 때 선명하게 길이 갈렸다. 지천명이라는 나이 쉰도 중반을 넘은 지금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족적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고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길을 처절하게 반성하고 욕을 먹으면서까지 고난을 자초하며 길이 끊어진 곳에서 새길을 만들어 걸어갔다. 내면의 명예감정이 길을 밝히고 고상한 인격을 증명해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는 반성적 의식을 내비치기는커녕 자신의 과거를 민주화운동에만 축소 왜곡하여 포장하는데 힘썼다. 권력의 주변을 기웃거리며 윗선에 아부하고 대중선전에 사력을 다해 국회의원이 되고 기관장자리를 꿰찼다. 그가 진실로 원했던 것이 민족과 민중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권력과 사회적 지위였음을 스스로 증명해낸 것이다.

 “그는 인류를 사랑하긴 하지만 스스로에게 놀라곤 한다고 말하더군요. 인류전체를 더 많이 사랑할수록 개별적인 사람들, 즉 사람들 개개인은 점점 덜 사랑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몽상 속에서는 인류에 대한 열정적인 봉사를 생각하기에 이르고 갑자기 어떤 식으로든 요구가 있을 시엔 어쩌면 정말로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 행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로 하게 되는 일이 드물지 않지만, 정작 고작 이틀도 누구와 한 방에 지낼 수가 없다고요. ---대신 개별적인 사람들을 더 많이 증오하게 될수록 언제나 인류전체에 대한 그의 사랑은 더욱 더 불타오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오랫동안 무슨 뜻인지 모호하기만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이 통찰을 그런면에서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인간의 내면에 정통한 도스토예프스키는 구체적인간을 떠난 인류애가 말만 사랑이지 사랑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예수는 인류애를 위해 십자가형을 바란 게 아니라 생의 도정에서 마주치는 개별적 인간의 구원을 위해 힘쓰다가 결국 십자가의 길로까지 나아갔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구체적 인간조건과 상황에 정통해진다는 것이다. 어둡고 모호한 현실에서 사랑의 길을 찾는 길눈이 밝아진다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인간의 길은 사랑의 길이고 그 다음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현실정치에서 발을 빼지 말아야 한다는 정언명령은 우리 80년대 운동권적 마인드에 불과하다. 어떤 이는 명예감정이 다른 이는 권력욕이 부추긴 그 시대의 의무감이었다.

 운동권주변을 맴돌던 내 젊음에서 얻어낸 결실이 있다면 사랑 아닌 것들로부터 사랑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길의 진척정도를 재는 잣대가 오로지 사랑뿐임을 확인한 것이다.

 지금 여기서 당당하게 내 아이들과 가족, 친구, 이웃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다음 생에는 좀 더 사랑의 힘이 커진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부모님을 만나게 된다면 이번 생에서 추상적인 것에 홀려서 받기만 하고 돌려드리지 못한 사랑, 그 하늘 같은 은혜를 반드시 갚고 싶다. 그 희망이 내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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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의식>이란 것을 고려하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는 교육을 받아서 그런 면이 강하지만, <나라를 위한다거나, 독립을 위한다는 것>이 개인에게 중요했던 시대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시대가 바뀌어서는 현재에는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보이고 거짓처럼 보이지만 현재의 프레임으로 과거를 해석하면 틀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586의 시대는 <전환기의 시대>였다고 보면 586세대가 조금 덜 위선적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민주화 이후의 시대를 이전의 시대의 프레임으로 보거나, 보이게 하려면, 위선이 더 많이 작용할 것 같습니다.
2] Pay it forward idea
3] 예수의 논리에 대한 해석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