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5

이키가이: 일본인들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는 방법 - BBC News 코리아

이키가이: 일본인들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는 방법 - BBC News 코리아



이키가이: 일본인들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는 방법
2021년 8월 28일


사진 출처,GETTY IMAGES사진 설명,

일본 노동자 4명 중 1명은 한 달에 80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한다


대도시에 사는 일본 노동자들의 하루는 보통 '스시즈메'로 시작된다.


초밥 안에 꽉 들어찬 밥알처럼, 혼잡한 지하철에 몸을 비집고 들어가는 통근자들의 모습을 일컫는 단어다.


스트레스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본의 노동문화는 엄격한 계층적 질서가 자리잡은 사무실에서 오랜 시간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과로가 흔한 것. 그래서 평일 자정 무렵 지하철 막차에는 정장 차림으로 퇴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키가이'라 불리는 것이 비결과 관련있을 것이다. 이 단어에 딱 들어맞는 영어 단어는 없다. 대략 '삶의 보람'이나 '삶의 행복' 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키가이가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일터로 향하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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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가이에 대해 조금이나마 아는 서양인들은 종종 자신이 사랑하는 것, 잘 하는 것, 세상에 필요한 것,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구성된 네 개의 원이 겹쳐지는 벤다이어 그램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이키가이는 물질적 수입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때도 있다. 실제로 센트럴리서치센터가 2010년 일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31%만이 자신의 일을 이키가이와 연관지어 생각한다고 답했다.


사진 출처,AFP


물론 어떤 이들의 삶의 가치는 일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가치가 반드시 일에만 국한되는 것인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기


아키히로 하세가와는 도요 에이와대학교 부교수이자 임상심리학자다. 그는 자신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2001년 이키가이 연구논문에서 이키가이라는 단어를 일상 생활 속의 표현으로 설명했다. 이키가이는 두 단어의 합성어다: 삶을 뜻하는 '이키'와 가치라는 의미의 '가이'다.


사진 출처,AFP사진 설명,

일본인들은 일상의 작은 행복들이 더해져 인생 전체를 풍족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세가와에 따르면, 이키가이라는 단어의 기원은 헤이안 시대(794년 ~ 1185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이는 당시에 높은 가치를 가졌던 '카이(일본어로 조개 껍데기)'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어요. 그래서 이키가이는 삶에서 가치있는 것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카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표현 중에는 행위의 가치와 일의 가치를 뜻하는 '야리가이' 또는 '하타라키가이'가 있다.


이키가이는 삶 속에서 이러한 가치들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인 셈이다.

'행복'과 유사


일본에는 이키가이를 다룬 책이 많다. 이중 1966년에 나온 '이키가이에 관하여'라는 책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의 저자인 정신과 의사 가미야 미에코는 이키가이를 '행복'과 비슷하지만 미묘한 어감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이키가이는 비록 지금의 현실이 비참하더라도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어떤 것이다.


하세가와는 영어에서 '라이프'라는 단어는 삶과 일상 모두를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라고 번역된 이키가이는 매우 거창한 의미를 가진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일본어에서는 인생을 뜻하는 '진세이'와 일상의 삶을 뜻하는 '세이가츠'가 구분됩니다."


이키가이는 이중 세이카츠와 보다 연관이 깊은 개념이다. 연구를 통해, 하세가와는 일상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이 더해져 삶 전체이 충족이 이뤄진다는 일본인들의 믿음을 발견했다.

장수에도 영향을 미칠까?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은 세계적인 장수 국가다. 여성의 평균 수명은 87세, 남성은 81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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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팝 아이돌' KBG84가 코하마 섬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작가 댄 뷰트너는 이키가이 개념이 장수에도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블루 존"이라 이름붙인 세계적인 장수 공동체를 여행하며, 이에 대한 책을 저술했다.


100세 이상의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오키나와 역시 그러한 지역 중 하나다. 이 지역의 식습관이 장수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졌지만, 뷰트너는 이키가이 역시 한 몫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인들이 존중을 받고 있고, 그들 역시 젊은 세대에게 자신들의 지혜를 전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라는 삶의 목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뷰트너에 따르면 이키가이 개념은 오키나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스칸디나비아나 니코야 반도처럼 유명한 '블루 존'에서 장수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개념이 존재합니다. 물론 이를 표현하는 단어는 없을지도 모르죠."


뷰튜너는 세 가지를 정리해볼 것을 제안했다. 자신이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등이다. 이 세 가지 항목이 겹치는 곳이 이키가이다.

행동하라


하지만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이키가이는 "살아 움직이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92세의 토미 메나카는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키가이를 'KBG84'라는 무용단에서 동료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라 말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업무일 수도 있는 일이다.


인사 컨설팅회사 '진자이 겐큐쇼'의 대표인 토시미츠 소와에 따르면, 집단의 가치가 개인보다 중요한 문화에서 일본 노동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도움이 되고 이에 대해 고맙다는 반응을 얻고 이로 인해 동료들로부터 존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프로비티 글로벌 서치'의 CEO 다카토 유코는 "업무를 자신의 이키가이로 여기는 훌륭한 인재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이들의 공통점은 동기부여가 되어 있고 행동이 빠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을 하고 싶지만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기가 두렵다면,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일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 보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다카토는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게 생각하라


그렇다고 해서 더 오래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이키가이의 핵심이라는 말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노동자의 약 25%가 한 달에 80시간 이상을 초과 근무한다. 이로 인해 비극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과로사로 매년 2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것이다.


오히려 이키가이는 자신의 업무가 삶을 다르게 만든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경영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업무에서 의미를 찾게 하는 방법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와튼 경영학과의 교수 애덤 그랜트는 논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일을 하는 것"과 "자신의 업무를 통해 이로움을 얻은 이들을 만나는 것"이 직원들을 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시건 대학에서 장학금 모금 업무를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다. 이에 따르면, 이러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장학금 수혜자와 이야기를 나눠보는 등 함께 시간을 보냈을 경우 그냥 모금 업무만 한 이들보다 1.7배 많은 장학금 모금을 달성했다.


장학금 수혜자를 만나는 단순한 행동 하나가 장학금 모금 업무 담당자들에게 자신의 일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고, 이로 인해 성과가 올라간 것이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 가능하다. 세계의 굶주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 지역사회 봉사단처럼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주변 이들을 돕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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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기는 당신이 하는 일이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만든다는 보람에 기인한다

이키가이를 다양하게 만들어라


직장에서 자신의 이키가이를 찾아온 이들에겐 은퇴는 커다란 상실감과 공허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자신이 전력으로 해온 분야에 종사할 수 있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운동선수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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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유상 허들선수 다이 타메스에는 은퇴가 삶과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2012년 은퇴한 전직 유상 허들선수 다이 타메스에는 최근 인터뷰에서 은퇴 후 자신에게 "스포츠를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고 말했다.


"저는 육상 경기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는 은퇴 후 스포츠 관련 사업을 지원하는 회사를 세워, 새로운 이키가이를 찾았다.


타메스에의 사례는 이키가이가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퇴직 후에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게 하니라 '(그 일에서) 무엇을, 왜 하려 했는가'를 이해하는 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만족스러운 삶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