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7

· 무당산(武當山)과 무당꿍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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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기's post 다석 유영모 민웅기 · 3 d · 무당산(武當山)과 무당꿍푸 산문에서 정상인 천주봉(1,612)까지는 40여 킬로나 된다. 무당산은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만 72봉이고, 36암 24간의 도관이 그 사이사이를 꽉 채운다. 정상인 천주봉(금정봉이라고도 함)을 둘러싸고 72개의 봉우리가 향로 모양으로 에워싼다. ‘명대 도교 제1의 명산’ 답게 안개 자욱한 산의 권역에 들어서는 순간, 도가의 선경이란 바로 이런 곳이겠구나, 하고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무당파(武當派)! 숭산에 기지를 튼 소림사의 소림권과 함께 무협의 양대 정파의 명맥을 이루고 있는 무당파의 시조는 말할 것도 없이 장삼풍이다. 세간에 말이 있다. “용맹한 권법의 기예는 소림을 ‘외가(外家)’로 삼고 무당 장삼풍을 ‘내가(內家)’로 삼는다.” 소림이 외가권, 즉 강권(剛券)의 대명사라면, 무당은 내가권, 즉 연권(軟券)의 대명사가 된다. 경내 셔틀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산길을 가니, 금정봉 올라가는 케이블카 정류장이 나온다. 9월 초면 늦은 여름이 맞다. 그런데도 산상은 추운 모양이다. 두꺼운 옷을 빌려주는 장사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아미산 정상(금정 3,100)에 올라갈 때도 두꺼운 파카들을 빌려 입고 갔었다. 눈앞에 따로 또 같이 치솟은 영봉들이 아스라하다. 일단 케이블카를 타고 금정봉에 오르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내려서 보니, 정작 여기서부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상에 오르는 길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안개비가 촉촉이 젖어있는 오솔길을 좁은 돌계단으로 오른다. 혼자 이 경사진 계단을 오르라면 추위를 탈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중얼대며, 인파에 밀려 오르고 또 올랐다. 암벽 사이로 빙글빙글 돌며 난 돌계단을 오르며, 인간들이란, 인간의 문명이란 참으로 지독도 하구나‥‥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가파르고 험한 산비탈에 돌계단을 만들어 놨을까..... 경이로운 문명사의 자취가 여기 이렇게 또 있다. 정상에 올랐다. 어찌나 좁은 복도 같은 곳을 앞만 보고 올라왔던지..... 바위산 꼭대기의 비좁은 공간에 앉힌 폭 5미터 정도의 자그마한 건물 한 채가 뎅그랗다. ‘금전(金殿)’이라 씌어있다.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든다. 꼭대기와 봉우리 사이사이를 휘감은 짙은 운무 속을 뚫고, 셋은 무리들을 헤치며 금전 앞으로 다가선다. 서서 삼배를 했다. 안에 모셔진 분이 진부대제라고 하는데, 이 양반은 맨발이다. 웬 맨발..... 고개를 갸웃하며 옆에 계신 분을 뵌다. 아, 이 분이 장삼풍이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무당산 모든 도관에서는 장삼풍 진인을 조사로 모신다. 역시. 금전은 겉엔 금물이 발라져 있으나 실은 구리로 주조한 ‘동주조물’이라고 한다. 만드는 데 구리 20여 톤이 들어갔고, 바르는 데 황금 300킬로그램이나 들어갔단다. 말하자면 이 금전은 중국 최대의 구리로 된 대전인 셈이다. 그러니까 돌계단의 역사만 해도 신기한 일인데, 이 꼭대기에 이렇게 의젓하게 동주조물로 된 건물을 앉힐 생각을 했다니,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케이블카로 단박에 산 정상 조금 못 미친 중턱까지 올라와버린 탓에 오솔길을 걸어 오르는 참맛을 놓쳤다는 반성을 담아, 내려가는 길은 일일이 거칠 곳은 거치며 내려가기로 했다. 목조건물로 된 장경각(藏經閣)을 비롯해서, 기암절벽 끝 절벽 밑에 들어서 있어 내려다보이는 단애가 비경인 남암(南岩)과, 태자성(太子城) 등을 거쳐 자소궁(紫宵宮)에 이르렀다. 도관마다 각각 색다른 멋과 고유한 전통이 담겨있다. 사면이 권가의 절기를 담은 사진으로 도배된 곳도 있고, 노자도덕경의 오천언이 정려한 필체로 한눈에 보이도록 써 붙여진 곳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림과 글씨 등 수도자들의 각종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 곳도 있었다. 김 선배가 이곳에서 사온 그림 한 점은 나중에 송계선원의 차방의 안쪽에 걸리게 되었는데, 화제가 ‘노자출관(老子出關)’이다. 주나라를 떠난 노자가 검은 소를 타고서 시동과 함께 함곡관을 나가는 역사적인 장면을 그렸다. 바로 이곳 함곡관을 통과하던 중에 남긴 ‘오천 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노자도덕경’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구한 ‘노자출관(老子出關)’이 나중에 나의 책 [태극권과 노자]의 표지 그림으로 실리게 됐으니, 그 인연이 참으로 귀하다. 무당산의 곳곳이 각종 무협영화의 자료 화면이나 마찬가지로 자주 등장한 곳들이다. 그 중 출연의 빈도가 비교적 많은 곳 중의 하나가 ‘자소궁’이다. 이 자소궁 곁에 우람하게 서있는 ‘국제 무관(武官)’의 간판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무관에 배우러 오는 이들 가운데는 중국인도 있지만 외국인들이 대부분. 불현듯 그 하는 일이 궁금해졌다. 명함을 건네주면서 관장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전갈을 넣었다. 다행히 들어오라고 한다. 작달막한 키로 단단한 인상에, 나이는 30대 후반쯤 되어 보인다. 관장은 아니었으나, 알고 보니 이 사람이 진짜 대단한 인물이었다. 진 사범이었다. 약간 왜소해 보이나 기세가 남다른 진 사범(도사)과 잠깐 동안이나마 이곳의 교육 프로그램과 수련 방식, 비용 등을 물었다. 이곳 무관은 국제적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태극권과 기공을 지도한다. 학생의 수준에 따라 무당 태극권 108식까지를 전수하고 있었고, 가장 높은 단계로는 장삼풍 진인이 직접 창제한 ‘태극권 13세’를 가르친다. 무관의 선생들은 남녀 모두 출가한 도사들로 돼 있다. 인상들이 하나같이 깨끗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나에게 말 대접을 해준 진 사범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그때까진 몰랐다. 내가 혹시 이곳의 꿍푸에 관련된 동영상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자기네들은 공식적으로 그런 동영상을 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바로 몇 시간 뒤에 산문 밖의 기념품 가게에서 이것 저것 뒤적이다가 ‘무당꿍푸’에 관한 동영상을 발견해서 구해 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그 진 사범이 시연한 것들로 편집돼 있었다. 그 안에는 태극권, 태극검, 팔괘장, 용호권, 용호검 등 무당산에서 전해지는 각종 ‘무당꿍푸’ 십여 가지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극하는 듯 경이로운 영상이 담긴 시디를 손에 넣을 수 있다니. 그러니까 나와 잠깐이라도 마주한 그 진 도사는 현대판 무당파의 초절정 고수였고, 세계적인 무술의 달인이었다니. 말하자면 장삼풍의 후인 중의 후인이었던 것이다. 도관마다 도사들이 요처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불교의 출가 수행자를 스님이라 부르듯, 도교의 수도자를 도사라 부른다. 그 중에는 출가자도 있고(전진파), 가정을 이루면서 수도하는 도사도 있다(정일파). 도교에서는 남자 도사는 ‘건도(乾道)’, 여자 도사는 ‘곤도(坤道)’라 한다. 역(易)에 건(乾)은 하늘이요, 양이고, 곤(坤)은 땅이요 음이다. ‘건도’ ‘곤도’는 그로부터 나온 이름이다. 도사들은 모두 상투를 위로 틀어 올린 다음 대나무 비녀로 꽂아 고정시킨다. 무당산에는 공식적으로 100여명의 도인이 살고 있다고 했다. #민웅기 #수련일기 #송계선원 #뮤위태극선 #달에하루명상 #사띠와사마디 #과학명상 #실용명상 #통합명상 #1박2일명상 #태극권 계속~ 한민희 Top contributor 원장님 좋은 말씀과 가르침에 감사를 드립니다... 3 d Reply Share 민웅기 Author Top contributor 한민희 제 방랑의 여정을 나누는 게 혹 어떨까 싶어 올리는 것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산문에서 정상인 천주봉(1,612)까지는 40여 킬로나 된다. 무당산은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만 72봉이고, 36암 24간의 도관이 그 사이사이를 꽉 채운다. 정상인 천주봉(금정봉이라고도 함)을 둘러싸고 72개의 봉우리가 향로 모양으로 에워싼다. ‘명대 도교 제1의 명산’ 답게 안개 자욱한 산의 권역에 들어서는 순간, 도가의 선경이란 바로 이런 곳이겠구나, 하고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무당파(武當派)!
숭산에 기지를 튼 소림사의 소림권과 함께 무협의 양대 정파의 명맥을 이루고 있는 무당파의 시조는 말할 것도 없이 장삼풍이다.
세간에 말이 있다. “용맹한 권법의 기예는 소림을 ‘외가(外家)’로 삼고 무당 장삼풍을 ‘내가(內家)’로 삼는다.” 소림이 외가권, 즉 강권(剛券)의 대명사라면, 무당은 내가권, 즉 연권(軟券)의 대명사가 된다. 경내 셔틀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산길을 가니, 금정봉 올라가는 케이블카 정류장이 나온다. 9월 초면 늦은 여름이 맞다. 그런데도 산상은 추운 모양이다. 두꺼운 옷을 빌려주는 장사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아미산 정상(금정 3,100)에 올라갈 때도 두꺼운 파카들을 빌려 입고 갔었다. 눈앞에 따로 또 같이 치솟은 영봉들이 아스라하다. 일단 케이블카를 타고 금정봉에 오르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내려서 보니, 정작 여기서부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상에 오르는 길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안개비가 촉촉이 젖어있는 오솔길을 좁은 돌계단으로 오른다. 혼자 이 경사진 계단을 오르라면 추위를 탈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중얼대며, 인파에 밀려 오르고 또 올랐다. 암벽 사이로 빙글빙글 돌며 난 돌계단을 오르며, 인간들이란, 인간의 문명이란 참으로 지독도 하구나‥‥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가파르고 험한 산비탈에 돌계단을 만들어 놨을까..... 경이로운 문명사의 자취가 여기 이렇게 또 있다.
정상에 올랐다. 어찌나 좁은 복도 같은 곳을 앞만 보고 올라왔던지..... 바위산 꼭대기의 비좁은 공간에 앉힌 폭 5미터 정도의 자그마한 건물 한 채가 뎅그랗다. ‘금전(金殿)’이라 씌어있다.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든다. 꼭대기와 봉우리 사이사이를 휘감은 짙은 운무 속을 뚫고, 셋은 무리들을 헤치며 금전 앞으로 다가선다. 서서 삼배를 했다. 안에 모셔진 분이 진부대제라고 하는데, 이 양반은 맨발이다. 웬 맨발..... 고개를 갸웃하며 옆에 계신 분을 뵌다. 아, 이 분이 장삼풍이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무당산 모든 도관에서는 장삼풍 진인을 조사로 모신다. 역시.
금전은 겉엔 금물이 발라져 있으나 실은 구리로 주조한 ‘동주조물’이라고 한다. 만드는 데 구리 20여 톤이 들어갔고, 바르는 데 황금 300킬로그램이나 들어갔단다. 말하자면 이 금전은 중국 최대의 구리로 된 대전인 셈이다.
그러니까 돌계단의 역사만 해도 신기한 일인데, 이 꼭대기에 이렇게 의젓하게 동주조물로 된 건물을 앉힐 생각을 했다니,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케이블카로 단박에 산 정상 조금 못 미친 중턱까지 올라와버린 탓에 오솔길을 걸어 오르는 참맛을 놓쳤다는 반성을 담아, 내려가는 길은 일일이 거칠 곳은 거치며 내려가기로 했다. 목조건물로 된 장경각(藏經閣)을 비롯해서, 기암절벽 끝 절벽 밑에 들어서 있어 내려다보이는 단애가 비경인 남암(南岩)과, 태자성(太子城) 등을 거쳐 자소궁(紫宵宮)에 이르렀다.
도관마다 각각 색다른 멋과 고유한 전통이 담겨있다. 사면이 권가의 절기를 담은 사진으로 도배된 곳도 있고, 노자도덕경의 오천언이 정려한 필체로 한눈에 보이도록 써 붙여진 곳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림과 글씨 등 수도자들의 각종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 곳도 있었다. 김 선배가 이곳에서 사온 그림 한 점은 나중에 송계선원의 차방의 안쪽에 걸리게 되었는데, 화제가 ‘노자출관(老子出關)’이다. 주나라를 떠난 노자가 검은 소를 타고서 시동과 함께 함곡관을 나가는 역사적인 장면을 그렸다. 바로 이곳 함곡관을 통과하던 중에 남긴 ‘오천 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노자도덕경’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구한 ‘노자출관(老子出關)’이 나중에 나의 책 [태극권과 노자]의 표지 그림으로 실리게 됐으니, 그 인연이 참으로 귀하다.
무당산의 곳곳이 각종 무협영화의 자료 화면이나 마찬가지로 자주 등장한 곳들이다. 그 중 출연의 빈도가 비교적 많은 곳 중의 하나가 ‘자소궁’이다. 이 자소궁 곁에 우람하게 서있는 ‘국제 무관(武官)’의 간판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무관에 배우러 오는 이들 가운데는 중국인도 있지만 외국인들이 대부분. 불현듯 그 하는 일이 궁금해졌다.
명함을 건네주면서 관장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전갈을 넣었다. 다행히 들어오라고 한다. 작달막한 키로 단단한 인상에, 나이는 30대 후반쯤 되어 보인다. 관장은 아니었으나, 알고 보니 이 사람이 진짜 대단한 인물이었다. 진 사범이었다. 약간 왜소해 보이나 기세가 남다른 진 사범(도사)과 잠깐 동안이나마 이곳의 교육 프로그램과 수련 방식, 비용 등을 물었다.
이곳 무관은 국제적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태극권과 기공을 지도한다. 학생의 수준에 따라 무당 태극권 108식까지를 전수하고 있었고, 가장 높은 단계로는 장삼풍 진인이 직접 창제한 ‘태극권 13세’를 가르친다. 무관의 선생들은 남녀 모두 출가한 도사들로 돼 있다. 인상들이 하나같이 깨끗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나에게 말 대접을 해준 진 사범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그때까진 몰랐다. 내가 혹시 이곳의 꿍푸에 관련된 동영상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자기네들은 공식적으로 그런 동영상을 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바로 몇 시간 뒤에 산문 밖의 기념품 가게에서 이것 저것 뒤적이다가 ‘무당꿍푸’에 관한 동영상을 발견해서 구해 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그 진 사범이 시연한 것들로 편집돼 있었다. 그 안에는 태극권, 태극검, 팔괘장, 용호권, 용호검 등 무당산에서 전해지는 각종 ‘무당꿍푸’ 십여 가지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극하는 듯 경이로운 영상이 담긴 시디를 손에 넣을 수 있다니. 그러니까 나와 잠깐이라도 마주한 그 진 도사는 현대판 무당파의 초절정 고수였고, 세계적인 무술의 달인이었다니. 말하자면 장삼풍의 후인 중의 후인이었던 것이다.
도관마다 도사들이 요처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불교의 출가 수행자를 스님이라 부르듯, 도교의 수도자를 도사라 부른다. 그 중에는 출가자도 있고(전진파), 가정을 이루면서 수도하는 도사도 있다(정일파). 도교에서는 남자 도사는 ‘건도(乾道)’, 여자 도사는 ‘곤도(坤道)’라 한다. 역(易)에 건(乾)은 하늘이요, 양이고, 곤(坤)은 땅이요 음이다. ‘건도’ ‘곤도’는 그로부터 나온 이름이다. 도사들은 모두 상투를 위로 틀어 올린 다음 대나무 비녀로 꽂아 고정시킨다. 무당산에는 공식적으로 100여명의 도인이 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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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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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좋은 말씀과 가르침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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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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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희 제 방랑의 여정을 나누는 게 혹 어떨까 싶어 올리는 것 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