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1

[책과 삶]경연, 왕의 공부 김태완 2011-

[책과 삶]조선 왕들에게 ‘권력의 공공성’을 일깨우다


[책과 삶]조선 왕들에게 ‘권력의 공공성’을 일깨우다

입력
 기사원문

국왕이 성균관 대성전에서 알성례를 치른 뒤 유생들의 공부를 살피기 위해 경서에 대한 강론과 문답을 실시하는 장면을 그린 ‘성균관친림강론도’(왼쪽)와 저자가 탁월한 경연관으로 뽑은 정암 조광조의 초상. 아래사진은 경연에서 애용돼 역대 왕들의 교과서라고 불릴만한 ‘대학연의’.

경연, 왕의 공부…김태완 | 역사비평사

임금은 새벽 5시쯤에 일어났다. 미음이나 죽 등 자리끼조반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웃전에 문안을 여쭙는 것이 먼저 할 일이었다. 웃전으로 생존해 있던 인물은 대개 어머니(대비)와 할머니(대왕대비)였다. 그 다음에 신하들과 만나 아침 조회인 상참(常參)을 열고 경연(經筵)을 펼쳤다. 경연이란 학문이 뛰어난 신하들과 철학·역사를 논하고 국가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임금은 그것이 다 끝나고 나서야 아침을 들었다.

아침 경연은 조강(朝講)이라 한다. 정오에는 주강(晝講), 오후 2시에 석강(夕講)이 열렸다. 삼시강(三時講)이라고 불린 이 세 차례의 경연이 공식적인 법강(法講)이었다. 물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소대(召對)도 있었다. 특히 밤에 열리는 소대를 야대(夜對)라 불렀다. 소대는 임금이 아무 때나 신하를 불러 경연을 펼치는 것이었는데, 특별히 학식이 깊은 신하나 은퇴 원로가 초빙돼 왕과 더불어 담론했다. 하지만 임금의 바쁜 일정 탓에 삼시강과 소대가 날마다 열리진 못했다. 실제로는 며칠에 한 번 열리는 경우도 있었고, 아예 서너달을 거르는 일도 있었다. 임금의 성향과 입장에 따라서도 빈도가 달라졌다. 세종과 성종은 경연을 애호한 반면, 세조와 연산군은 그렇지 않은 축에 속했다.

저자 김태완에 따르자면, 경연은 권력세습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으로 등장했다. “불필요한 비용 지불과 희생을 막기 위해 권력 세습을 인정”하면서도 “군주가 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곧 권력은 공기(公器)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세습 군주의 자질이 고르지 않았던” 까닭에 “군주의 교육은 필수적”인 것으로 자리잡았다. 임금은 “유교적 덕치 이념을 교육하는 세미나”였던 경연을 통해 “사적 이익을 제한하고 절제하는 수련, 다시 말해 욕망을 억제하고 공공의 선을 지향하는 것”을 배우고 익혔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임금에게 강론했던 경연관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했을까? 저자는 조선 말기의 학자 최한기의 <강관론(講官論)>에서 경연관의 자질에 대한 내용을 이렇게 인용한다. “경연관을 뽑아 쓰거나 내치는 것이야말로 군주의 학문이 발전하고 쇠퇴하는 것, 정치와 교육의 수준이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과 결부된다. 그러므로 큰일을 하려는 군주는 먼저 경연관을 잘 뽑아야 한다. (중략) 그러나 경연관이 직책을 수행함에도 우열이 없지 않다. 기색이 온화하고 말이 간단하면서도 조리가 분명하고 왕에 대한 충성과 사랑이 넘치는 자가 으뜸이다. 능란한 말솜씨로 변론에 힘쓰고 이전의 언설을 갖다 붙여서 담론을 즐기는 것을 바탕으로 삼는 자가 그 다음이다. 지나치게 자중하여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오로지 재능과 덕을 숨기는 것만 일삼는 자가 그 다음이다.”

저자는 특히 “조선시대 학자관료의 상징적 존재”였던 조광조를 탁월한 경연관으로 뽑길 주저하지 않는다. “유교적 지치주의(至治主義) 이념을 꿋꿋이 지키다가 장렬히 순교”한 사람이라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지치주의란 중국 성리학의 한국적 변용쯤으로 볼 수 있겠다. ‘천인무간(天人無間)’이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인간은 하늘과 연결돼 있는 존재이며, 사람의 일과 하늘의 뜻은 별개가 아니라는 이상주의 철학을 일컫는다. 37세에 홍문관 부제학, 38세에 대사헌에 올랐던 조광조는 당시의 군주였던 중종에게 순정한 이상주의 사회를 설파했으며, 그것을 방해하는 삿된 것들을 강력하게 물리쳐야 한다고 주창했다. 결국 당대 기득권자들과 갈등을 빚다가 사약을 받는 운명에 처한다. 하지만 저자는 “조광조는 죽어서 영원히 산 사람이 되었다”며 “조선 정치이념의 좌표를 설정하는 방향타”의 역할을 했다고 칭송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사림이 득세한 선조 때 개성있고 탁월한 경연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쟁명했다”며 ‘김우웅, 유희춘, 기대승, 이이’ 등을 “도도한 학식을 뽐내고 원대한 경륜을 다투며 폭넓은 교양을 과시”했던 뛰어난 경연관들로 손꼽는다.


그러면 조선의 임금들은 무슨 책을 주로 읽었을까? 역대 왕들이 경연에서 사용했던 교재들은 유가의 거의 모든 경전을 망라한다. 역사서로는 <자치통감> <자치통감강목> 등 통감류와 <십팔사략> <사기> <한서> 등 중국의 책, <동국통감> <고려사> <고려사절요> <국조보감> 등 우리나라 책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용했던 교재는 <대학연의(大學衍義)>였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태조실록>에 따르자면 이 책은 “군주가 마땅히 알아야 할 이치와 해야 할 일을 상세히” 제시함으로써 “격물치지·성의정심의 학문을 연구하여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효과”를 이루게 한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 책을 “조선시대 제왕학의 교과서”라고 매김한다.

이와 더불어 “동양적 덕치의 정치이념을 가장 잘 표현한 경전”인 <서경>, 
“유비의 촉한을 정통으로 기술한” 주희의 역사서 <자치통감강목>도 핵심 교재였다. 
성리학 연구의 기본 학습서였던 <근사록>은 “진리가 형이상학적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디딘 현실에 있음”을 밝히면서 “주체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진리를 인식해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교재였다.

또 <심경>은 책의 제목처럼 “마음수양”에 관련한 왕의 필독서였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심경>은 “욕심을 없애고 잃어버린 본성을 찾아 군자가 되는 것을 가르쳤던” 책으로, 퇴계 이황에 의해 “경연의 주요 교재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황은 이 책에 대해 “신명(神明)과 같이 믿고, 엄한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하였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조선의 경연 기록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는 기대승의 <논사록>이이의 <경연일기>에서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기대승은 명종 19년(1564) 주강에 참석한 이래 선조 5년(1572)까지 총 31회에 걸쳐 경연에서 진강했다. 그의 강론은 매우 직설적이다. 상황에 대해 이러저러한 설명을 배제한 채 곧바로 과녁을 조준한다. 기대승은 처음 참석한 경연에서 “언로는 국가에서 매우 중대합니다. 언로가 열리면 국가가 편안하고, 언로가 막히면 위태로워집니다”라고 토로한다. 선조 즉위년 소대에서는 “임금은 이익을 독점하지 말고, 반드시 백성과 함께해야 합니다. 임금이 정치만 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는 근본이 없는 것이고, 마음만 있고 백성에게 균등히 분배하는 정사가 없으면 혜택이 아래에 이르지 않습니다”라고 왕을 계도한다.

반면에 율곡 이이가 남긴 내용들은 “사건의 배경과 상황 설명이 상세하고 짜임새 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이이는 명종 20년(1565)부터 선조 14년(1581)까지 경연에 참석했으며, <율곡전서> 중 <경연일기>가 바로 그 기록이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기대승의 <논사록>과 달리, “당시의 중요한 정치적 쟁점과 정계의 동향, 정책의 득실과 정치인의 인물평을 기록한 일종의 정치평론집으로서의 성격을 띤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이이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 선조에게 폐정 개혁을 아뢰는 장면은 사뭇 격하다. “전하께서는 무조건 긍정하거나 무조건 부정하는 마음을 갖지 마소서. 근래의 규례로서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개혁하여 제거하며,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살릴 새로운 계책이 있으면 강구하여 시행하소서. 그렇지 않고 다만 두려워하고 수양하고 반성한다는 명분만 있고 실상이 없으면 어떻게 위로 천심(天心)에 답하고 아래로 백성의 원망을 위로하겠습니까?”

저자가 보기에 경연은 “왕에게 권력의 공공성을 각인하는 것”이었다. “왕은 경연에 참여함으로써 권력의 본질을 성찰하고, 권력의 사용을 반성하며, 권력의 성패에 대한 역사적 교훈을 습득”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와 같은 경연의 본질을 “단지 과거의 사실로 묻어둘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경연은 정말 조선의 왕에게만 필요했던 건지, 오늘 우리가 다시 되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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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 왕의 공부 
김태완 (지은이) 역사비평사 2011-
08-16
정가
22,000원



8.7

책소개
최고 지도자, 왕. 그는 그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했다. 조선에서 ‘민본(民本)’이니 ‘위민(爲民)’이니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 하는 이념은 바로 피지배자이며 생산자인 백성의 생존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러한 유교이념에 따라 지배자라 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마음대로 추구할 수 없었다. 이는 왕도 마찬가지다.

왕이 사적 개인들 간에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을 조정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사적 개인으로 전락하여 신료들과 이익을 다툴 때, 왕조의 권위는 타락하고 사회는 혼란해지고 끝내 정권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왕은 유교적 덕치이념을 체화하기 위해 평생 공부해야 했던 것이다. 왕이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국가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 그것이 바로 경연이다.

이 책은 경연에서 왕이 무엇을 공부했는지, 어떤 교재로 공부했는지, 왜 공부했는지,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그러나 단순하게 경연에 대한 설명과 이해에만 그치지 않는다. 실제 경연의 기록을 그대로 보여주고, 왕과 신하들이 어떤 논의를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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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7
화보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경연 26

1장 경연과 왕의 하루 42

2장 경연에 관한 모든 것 80
1. 경연, 왕의 공부 80 / 2. 경연의 목표, 성인군주 만들기 97 / 3. 경연의 역사 103 / 4. 경연관들 111 / 5. 경연에서 쓰인 책들 124 / 6. 경연의 스타일 140 / 7. 모범생, 문제아, 편입생 187 / 8. 정조의 사례 197

3장 경연의 기록, 그 숭고한 작업 204
고봉 기대승의 『논사록』
1. 『논사록』에 관하여 204
2. 『논사록』 속으로 208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
1. 『경연일기』에 관하여 296
2. 『경연일기』 속으로 302
에필로그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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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김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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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술술 읽고 척척 쓰는 문해력 한자 교실 1>,<고전의 숲>,<십 대를 위한 하루 한 줄 인생수업> … 총 32종 (모두보기)
숭실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특히 퇴계와 율곡에 깊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공부할수록 조선 성리학의 심오한 매력에 빠져들어 마침내 율곡 이이의 책문을 텍스트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주자평전』으로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수상했으며, 율곡 이이의 학문을 보급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20회 율곡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경연, 왕의 공부>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2011년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입니다.

최고 지도자, 왕! 그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했다.
공부하는 리더, 토론하는 리더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조선시대는 세습 권력제 사회였다. 곧 아버지가 아들에게 최고 권력인 왕위를 물려주는 왕조사회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왕의 자질이 없더라도 언젠가는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으므로 공부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일인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조선 사회, 그 속에서 왕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맘껏 행사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의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다시 말해 조선시대 국왕은 선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나라를 대표하고 나라 전체의 품격을 비추는 거울로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했다. 당대 최고의 석학을 선생으로 삼아 그들과 함께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이를 정치에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조선에서 ‘민본(民本)’이니 ‘위민(爲民)’이니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 하는 이념은 바로 피지배자이며 생산자인 백성의 생존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러한 유교이념에 따라 지배자라 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마음대로 추구할 수 없었다. 이는 왕도 마찬가지다. 왕이 사적 개인들 간에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을 조정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사적 개인으로 전락하여 신료들과 이익을 다툴 때, 왕조의 권위는 타락하고 사회는 혼란해지고 끝내 정권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왕은 유교적 덕치이념을 체화하기 위해 평생 공부해야 했던 것이다.
왕이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국가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 그것이 바로 경연이다. 이 책은 경연에서 왕이 무엇을 공부했는지, 어떤 교재로 공부했는지, 왜 공부했는지,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공부하는 리더, 관료를 이끌고 백성의 삶을 돌보는 최고 지도자!
국격을 좌우하는 그는 바로 왕이다.

왕의 인문학 공부,
일상의 배움으로 나라를 경영한다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대체 인문학이 무엇이길래, 인문학의 위기를 탄식하면서 한국 대학의 위기와 사회 전체의 위기가 함께 거론되는 것일까? 흔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철학과 역사를 가리킨다. 철학과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곱씹어보는 일이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과거 사람들의 삶을 거울삼아 현실을 반성하는 일이다. 조선시대 국왕은 경연에서 철학과 역사 위주의 인문학 공부를 했는데, 이는 인간사의 보편적 가치 기준을 끊임없이 되묻고, 과거의 풍부한 경험에 비춰 현실의 구체적 사안에 대해 가장 나은 검증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왕은 경연이라는 인문학 세미나를 통해 자신의 통치 행위를 반성하고 성찰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에게 속한 백성의 삶을 보살피라는 가르침을 체화해야 했던 것이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왕조사회에서 경연은 왕의 권력 남용과 독단을 막고 정치 현안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게끔 유도했다.
조강(朝講), 주강(晝講), 석강(夕講), 소대(召對), 야대(夜對) 등 한 번 공부로 그치지 않고, 하루에도 연달아서 경연을 열어 공부하고 정사를 논의했던 조선시대 국왕은 그 공부한 내용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고 응용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왕의 공부였으며, 나라를 경영하는 원리였다.

과거의 역사가 오늘에 재현되는 섬뜩한 사실!
과거를 거울삼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조선시대만 해당될까?

이 책은 경연이 무엇인지에 대해 유래와 역사, 경연에서 쓰인 교재, 경연관의 선발 방법, 경연이 이루어지는 절차, 경연의 목표 등, 경연에 관한 궁금한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놓았다. 그러나 단순하게 경연에 대한 설명과 이해에만 그치지 않는다. 실제 경연의 기록을 그대로 보여주고, 왕과 신하들이 어떤 논의를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마치도 한 편의 다큐멘터리 또는 르포르타주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저자는 실제 경연의 모습을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발췌했지만, 제3장 ?경연의 기록, 그 숭고한 작업?에서는 특히 고봉 기대승과 율곡 이이가 남긴 기록을 뽑아 보여줌으로써 경연에서 이루어진 논의의 생동감을 더했다.

<경연의 실제 모습 1 : 성종9년(1478)10월7일, 조강>
허침 : 참판 신정(申瀞)은 비록 자질이 명민하나, 역시 물망(物望, 여론)에 맞지 않은 자입니다. 이 두 사람이 어찌 인물을 전형하는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신은 전선(銓選, 인물의 전형과 선발)이 정밀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임금 : 참판이 물망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허침 : 여론이 모두 청렴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임금 : 이조는 중대한 곳인데, 그 사람됨이 이와 같다면 그 벼슬에 둘 수 없다. 저마다 아는 것을 말하라.
― 본문 46쪽에서

<경연의 실제 모습 2 : 명종19년(1564)2월13일,주강>
기대승 : 언로(言路)는 국가에서 매우 중대한 것입니다. 언로가 열리면 국가가 편안하고, 언로가 막히면 국가가 위태로워집니다.
― 본문 208쪽에서

<경연의 실제 모습 3 : 선조즉위년(1567)12월9일,비현각丕顯閣,소대>
기대승 : 임금은 이익을 독점하지 말고, 반드시 백성과 이익을 함께 해야 합니다. …(중략)… 임금이 정치만 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는 근본이 없는 것이고, 마음만 있고 백성에게 균등히 분배하는 정사가 없으면 혜택이 아래에 이르지 않습니다.
― 본문 230쪽에서

<경연의 실제 모습 4 : 선조11년(1578)2월>
조보를 간행한 것은 애초에 간사한 모의를 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망령된 사람들이 사소한 이익을 취하여 생계를 꾸리려고 했을 뿐이다. 당초 의정부와 사헌부에 품신하자 모두 간행을 허락하였으니, 과실은 두 관청에 있다. 그런데 어찌 어리석은 백성만 죄를 줄 수 있겠는가?
― 본문 397쪽에서

위의 장면은 실제 경연 기록에서 따온 것이다. 관리의 적격성 여부를 논하는 것, 언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이익을 백성과 함께 나눠야 한다는 것, 관청의 책임 떠넘기기의 모습이 과연 조선시대에서만 있었던 일인가?
저자는 과거 경연 기록을 가져와 이를 그대로 보여주되, 이에 대한 풀이를 통해 당시의 정치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고 나아가 오늘날의 정치에 비춰 논평한다. 조선시대 경연에서 논의하는 내용은 단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지금 이때에도 되풀이되는 모습과 같아 깜짝 놀라게 된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실의 정치를 반성하고 백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며, 백성이 잘사는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각오를 다져야 했던 것은 과거 조선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인문학 교육은 조선시대의 왕에게만 필요했던 것일까? 오늘, 다시 되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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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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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늘 201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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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공부한 왕이 성공했다,의 현재적 역설은 무식한 대통령이 나라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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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20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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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는 재미가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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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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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인기있는 TV드라마를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여성들의 경우는 천일의 약속을,남성들은 뿌리깊은 나무를 들지 않을까 싶다.뿌리깊은 나무는 이정명의 동명 원작 소설인 뿌리 깊은 나무를 각색한 것으로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려는 세종과 신권위주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던 삼봉 정도전의 유지를 받드는 밀본이란 비밀 조직을 내세우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이끌면서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데 특히 밀본의 수장 정기준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위해 가리온이란 백정으로 분한 사실은 마치 영화 유쥬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를 보는듯한 대 반전을 그리고 있다. 밀본의 3대 수장인 정기준은 조정에 숨어있는 관료인 밀본지사들에게 정체를 밝히면서 삼봉 정도전의 밝힌 밀본의 뜻을 알리는데 '군주가 꽃이라면 그 뿌리는 재상이다. 꽃이 부실하다 하여 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지만 뿌리가 부실하면 나무가 죽는다. 부실한 꽃은 꺽으면 그만이다'라 왕권보다는 사대부 위주의 신권이 우선인 나라가 조선이라고 밝힌다.그러면서 '집현전의 의견이 재상 위에 있고 또 그 위에는 임금 이도가 있다'며 '그 집현전 철폐를 시작으로 재상중심 정치를 실현할 것이다'라고 밀본의 첫번째 공식적인 목표를 밝히면서 세종 이도가 집현전을 위시로 경연을 농단하며 왕권유지의 도구로 삼고 있다고 비판한다.이처럼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세종 이도가 경연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비판하는데 그가 비판한 경연이라 과연 무엇일까?경연은 왕에게 유학의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덕에 의한 교화를 이상으로 하는 정치원리를 근거로 왕에게 경사를 가르쳐 유교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실제로는 전제왕권의 사적인 행사를 규제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하니 상당히 중요한 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경연 제도는 원래 중국에서 나온 제도이지만 명,청을 거치면서 사라졌는데 반해 조선의 경우는 조선말까지 경연제도가 유지되었다.그럼 조선을 건국한 유학자들이 경연 제도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정도전은 임금이 소인들을 만나면 여자와 놀이에 관심을 갖고 정무를 안보게 되지만 책을 읽고 사대부를 만나면 국정에 대해 생각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된다고 말한대서도 알 수 있듯이 임금을 소인과 멀리시키고 최대한 사대부와 만나 공부케 함으로써 공정할 결정을 내리도록 하기위한 것이 경연의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연에 관련한 책중의 하나가 본서인 경연,왕의 공부란 저서인데, 여기서는 경연이 즉 왕의 공부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경연,왕의 공부의 표지>근래 각 기업의 CEO등이 없는 시간을 쪼개서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여러 방면의 공부를 틈틈히 히고 있다는 기사를 보곤 했는데,이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흔히 절대 왕정으로 알고 있던 조선 시대에도 왕들이 신하들을 스승으로 삼고 공부했음을 알게 된다.이 책을 읽어보면 흔히 편하게 앉아서 신하들에게 이거 저거 지사나 내리는 것이 조선 시대의 왕이란 생각이 얼마나 커다란 편견인지 깨닫게 해주는데 이 책에서 조선 시대 왕들은 하루 최대 다섯 번씩 즉 해가 뜰 무렵 아침식사도 하기 전에 조강으로 일과를 시작해 정오에 주강, 오후 2시에 석강에 참석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특강 형식의 소대및 밤에 열리는 소대인 야대에서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국가 정책을 토론했다고 한다.조선 시대 왕들은 현재 고 3처럼 왕이 된 이후 죽을때까지 경연을 통해 공부를 했다고 하니 왕이란 자리가 참으로 쉽지만은 아닌 자리임을 알게 해준다. 본서는 1장 경연과 왕의 하루에서 경연의 종류와 어떤 식으로 운용되었는지를 독자들에게 간략하게 설명해 주면서 2장 경연에 관한 모든 것에 말 그대로 경연의 모든것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조선 왕의 학습 방법인 경연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단순히 경연이 왕의 학습이 아니라 왕의 스승으로서 왕을 견제하는 신권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그래선지 이 책에선 경연광이었던 성종을 이상적으로 평가하고 경연을 싫어한 세조나 연산군을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조선 시대는 절대 임금이 혼자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나라가 아님을 알수 있는데 실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 공신인 삼봉 정도전은 조선의 기본 법전이 되는 <조선경국전>에서 '치전총재소장야' 즉, '나라는 재상이 다스리는 것이다'로 신권을 주장하며 왕권이 아닌 신권 중심의 재상의 나라를 이상향으로 태조 이성계와 세자 방석에게 교육을 주지시키려다 결국 태종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하지만 이런 정도전의 사상은 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대부의 의식속에 면면히 자릴 잡게 되는데 사대부인 선비들은 왕밑의 신하로서 주종관계를 이루고 있지만,경연이란 제도를 통해서 왕이 스승으로 왕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당시 주변국과 다른 이원적인 정치체계를 가졌음을 알게 해준다.왕은 주종관계로서 사대부들을 신하를 부리려고 하지만 사대부들은 스승으로써 왕을 견제하려고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중의 하나가 바로 조선 후기의 대 성리학자인 송시열을 들수 있다.송시열은 효종과 현종의 스승이기도 했는데 예송 논쟁을 일으키면서 당시 남인인 허목이 왕가의 예는 일반 사대부와 같을수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송시열은 예를 논함에 있어서 성역이 있을 수 없다고 맞받아 친대서 알 수 있듯이 송시열은 왕 역시 사대부의 일원이란 생각을 가진듯 하다.경연,왕의 공부는 인문학 서적답게 빽빽한 글씨가 한가득이라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지만, 본문에 앞서 총천연색 경연자료(사진과 그림)가 들어있고 풍부하고 다양한 경연의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인문학 서적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있다. <인문학 서적으로 드물게 다양한 커러 화보가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경연 사례가 몇몇 왕에 그치질 않고 다수의 조선 임금을 다루면서 상당시 충실한 편인데 특히 책속에 인용된 각종 기록들의 번역과 해석 및 주석은 이 책의 장점으로 이 책을 읽으면 조선시대 임금 및 정치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조선 시대 경연이란 제도가 현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프롤로그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저자는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몸은 빌릴 수 없다고 말한 대통령의 재임 당시 중국 장쩌민 주석이 방한해 청와대 뒷산의 붉은 단풍을 보며 한시를 읊는데,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적절한 말로 응수하지 못하고 딴소리를 하는 뉴스 장면과 검사와 다투었던 어떤 대통령은 품위 없는 말투,현직 대통령은 외국 정상 앞에서 모욕을 당하는 모습등을 비꼬우면서 절대 권력을 휘들렀던 조선 시대 왕들보다 못한 현재 지도자들의 태도(인문학에 대한 소홀한 모습)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조선 시대의 왕들이 전제적이고 독재적인 지도자라고 쉽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당시 조선의 지도층이었던 사대부들은 공부를 통해서만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고, 이런 이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왕세자 시절부터 신하들이 고전을 가르쳤고 왕이 되서도 지속적으로 경연을 통해 왕을 성찰시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경연은 고전을 공부함으로써 오늘의 밝은 길을 찾으려던 조선 왕들과 사대부들의 노력이었던 것이다.물론 경연이란 옛 제도를 현대에 되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오늘날 대한 민국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과연 조선 시대 왕들처럼 백성들을 위해 매일 5회이상의 학습을 하는지 궁금해 진다.개인적으로 경연-왕의 공부는 대한 민국을 이끈다고 자부하는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필히 한번씩 읽고 스스로를 반성해 보면 좋게단 생각이 드는 책이다.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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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기울이면 201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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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의 만듦새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깔끔한 표지와 휴대가 불편하지 않는 판형(그렇다고 편하다고 하기엔..), 적당히 채워진 글밥과 구석구석 조화롭게 배치된 자료사진과 정보들. 일단 이렇게 손에 착 감기는 책이 들어오면 내용과 상관없이 열독률이 올라간다. 물론 역사 이야기니 주제도 나에겐딱.


'왕의 공부'라니 호기심도 생기지만 자연스레 '나는 왕이다'라는 기분으로 책을 읽게 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자같은 왕의 기분으로 말이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상의 위치에 있는 왕의 교육은 어떤 분위기였을지 자못 궁금해하며...


그러나 왕의 실상은 엘리트 관료들에 의해 궁궐에 유배되어 훈육되어지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음은 노비들도 아는 사실, 왕가의 혈통이라고 해도 결국 특별날것 없는 인간인데, 대대로 지배자의 위치에 있으려면 주변의 노력(견제?)이 필수불가결한 것임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명석한 신하들이 먼저 알았을 것이다.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다보면 조선 건국조차도실상은 정도전이 이성계를 간판으로 내세워서 이뤄낸 일처럼 소개되는 대목도있었던 것 같다.(벌써 어렴풋해지는 기억...)그림자 권력이라고나 할까?


경연에 나오는 신하들의 이야기는 부탁같기도 하고 읊조림같기도 하고, 말그대로 교육같기도 하고 때론 명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책에는 꼭 '학습'분위기의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은퇴하려는 신하와 그것을 만류하는 임금. 다시 그것을 정중히 거절하는 신하와 최대한 조건을 걸고서야 놓아주는 임금의 대화.그 둘 사이의 대화는 비즈니스계의 긴장감 팽팽한 협상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노학자의 고집과 임금의 끈질김이 엿보이는데, 이런 모습들을 보니 조선시대의 정치는상명하복관계였다기보다는 서로 의지하고 공생하는 관계였던 것 같다.


어쨌거나, 경연의 자리에서오가는 이야기는 상당부분 도덕에 대한 이야기다. 요순같은 성군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유의 이야기 말이다. 물론 신하를 쓸때에도 그러한 유교적 가치에 어울리는 사람을 써야 하고. 능력만 있으면 도덕성 같은건 개나 줘버리는 지금의 어느 정치집단과 비교가 된다. 그나마 그 '능력'이라는게 사기치는 능력이라 더더욱 현재가 개탄스럽고.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신하를 잘못 쓴데 대한 책임을 왕에게도 묻듯이,부패한 정치인이 활개치는 것은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는추론이 가능하다.하긴, 국민이 선거로 뽑은 정치인을 누가 뽑았냐고 서로 질타해봐야 누워서 침뱉기 아닌가.


그럼, 그런 국민은 조선의 왕처럼 공부하고 있을까? 어떤 정치가 필요한지, 어떤 세상을 추구해야 하는지 교육받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아 보인다. 왕은 어려서부터(세자시절) 기본 소양을 교육 받았지만 지금의 왕(어린이)들은왕대접을 받기는 하나왕노릇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성인들도마찬가지.그러니사람이 떠내려가도 물이 인정사정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돈만 된다면 사람들은 그리로 쏠린다.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는 지옥을 만들어 간다.그러는 사이 간신배같은 무리들이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다.






텅빈경복궁의 전각들을 빼꼼 들여다 볼때마다 뭔가 쓸쓸함 이랄까 허전함같은게 느껴졌었다. 주인 잃은 집이란 생각에 그저 '기와는 돌이요, 기둥은 나무요, 저 사람은 관광객이니라' 하는 느낌정도 밖에는...
다행히 이 책으로 인해 그러한 이미지에 약간이나마 생기를 불어 넣을수 있었다는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앞으로 궁을 돌아다니면 저 건물들 안에서 이뤄지던 대화와 토론들이들릴것 같다.500년을 이어온 저력이 말이다.바램이 하나있다면 저 뒤 멀리 보이는 푸른기와집에도 들렸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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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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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드라마나 역사 소설을 보면 왕이 경연에 나간다는 말을 듣게 된다.
경연이란 왕이 스승들과 공부를 하는 자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경연에 대해서 자세하게 서술한 책은 읽어 보지 못했다.
이 책, 저 책에서 조금씩 다룬 내용을 접해 보기는 했지만 < 경연, 왕의 공부>처럼 한 권의 책에 경연에 관한 많은 내용이 담긴 책은 처음 읽게 된 것이다.



" 경연이란 남의 지헤를 빌리는 자리, 곧 지존의 왕이 신하들을 스승으로 삼아 그들의 지혜와 경륜을 배우는 자리이다. 남의 머리를 빌리는 것, 남의 말을 듣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교양을 쌓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 (p24)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존립을 책임진 유일한 대표인 왕이 그에 걸맞은 덕성과 자질, 인품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에 유가의 경전과 중국, 우리나라 역대 역사를 공부하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경연인 것이다.
왕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에 걸쳐서 조강(朝講), 주강(晝講), 석강(夕講), 소대(召對), 야대(夜對) 등의 경연을 통해서 공부를 하고, 경연에서배우고 익힌 것들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였으니, 이것이 조선시대의 나라를 경영하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제 1장 : 국왕의 일과
하루 5번 이루어지는 경연과 경연에서 국왕들이 공부하는 방식, 정책토론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 2장: 경연의 유래, 역사, 경연에 쓰인 교재, 진강(進講)방법, 경연관의 구성과 선발, 경연의 목표 - 경연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수있는 것이다.
제 3장 : 경연에 참여했던 경영관들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실제 경연에서의 강의가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를 알아본다.



경연의 중요성이란 나라의 권력이 왕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수 있는 상황에서 권력의 남용과 독단을 막을 수 있고,왕에게 놓여진정치 현안들도 경연을 통해서 스승들과 함께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이 모두 경연을 중요하게 여기고,경연에 빠지지 않고 나갔던 것은 아니다.
세종과 성종처럼 조선문치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왕들은재위기간의 각종 경연에 관련된 기록이나 기사가 풍부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조선시대의 군주의 모범을 보여준 왕들이고, 경연의 모범생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조와 연산군은 제왕 학교의 문제아라 칭할 수 있다.
세조는 집현전을혁파하고 경연을폐지하였으며, 연산군은재위 초반부에는 경연을 중시하였으나, 후기에 가서는홍문관을 혁파하고 경연을 폐지하였기에, 신하들과의 사이에 경연에 참석 여부를 두고 옥신각신한내용의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선조는 강론에는 열심히 참여했으나 마음을 열고 강론을 들은 것이 아니라 건성으로 듣고 정책에는 검토를 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은언군의 손자인 철종은 왕손이지만 역적의 집안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강화도에 숨어살면서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즉위후에 경연에참석하게 되는 경연의편입생이라 할 수있는데, 이미 철종은 경연을 통해서 심성을 수양하고, 덕성을갖추고, 학문을 배우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이미 나라의 기틀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도 철종때의 경연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 역사 속에서 가장 폭넓은 지식과 박학한 왕은정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도학군주 중심의 개혁정치를 이론적으로 지탱한 규장각을 통해서 정조 자신이 스승이 되어 규장각 각신과 초계문신에게 가르침을 베풀기도 했다.

이처럼 경연은 국가의 안녕과 백성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왕들이 자질을 갖추고 학문을 배울 수 있는 장이고, 왕의 평생교육기관이었기에, 왕들이 경연에 적극참여하고, 열심히 강론에 임한 왕들을 보면 조선의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분들인 것이다.

경연과 왕의 치적은 비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경연, 왕의 공부> 제 3장은 경연의 실제 기록이 담겨져 있는 장이다.
그것은 고봉 기대승의 <논사록>과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의 내용이다.



기대승은 경연에 참석하여 강학한 내용을 모은 <논사록>을 기록한 사람인데, 경연 기록자료 중에는 대표적인 자료가 되는 것이다.






이이의 <경연일기>는 원래 <석담일기>라는 제목의 필사본으로 이이의 직계 제자와 율곡 학파에서 거의 비전되다시피 전해지다가 김집의 제자 송준길에 의해 널리 퍼졌다고 한다.

그것이 영조 25년에 <율곡 전서>가 간행될 때 합본으로 수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는 명종 20년에서 선조 14년까지 이이가 경연에 참석하여 보고 듣고 겪은 내용과 건의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 경연의 기록만으로도 그 시대의 사회상황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경연의 기록들을 통해서 왕들이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경연에 참석했던 스승들은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문답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질문과 답변을 읽으면서 왕들의 심성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책의 첫부분에는 경연과 관련이 있는 사진들이 실려 있어서 이해를 돕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접할 때는 재미없는 내용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기 쉬우나, 책을 펼치는 순간 이제까지 많이 접하지 못했던 내용들이기에 한층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나 일반인들 모두 한 번쯤은 조선시대의 왕들의 경연에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경연이란 왕과 현자의 이상적인 만남의 장이기도 하고, 그것은 왕이 얼마나 책임있는 정치를 할 수 있는가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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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랑 201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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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늘 전제 군주라 하면 무소불위라 생각해왔었다. 헌데 이 책을 읽어 보면서 그런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임금으로 키워지고 임금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신하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자신을 담금질 해야 했던 군주들 모습이, 그리고 독재로 흐르지 않도록 균형을 잡기 위해 군주를 끊임없이 가르치고 스스로를 발전시켜 왔던 신하들의 모습이 잘 그려지고 있다.

군주가 되기 전 세자 시절부터 서연이라는 공부 과정을 거치고 군주가 되어서는 경연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좋은 군주가 되기 위한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공부와 과거 역사로부터 배우는 모습.

과연 현재의 우리나라 대표들은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자신이 속한 나라를 위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국민을 위한 것이 어떤 것인지 정말 생각하면서 일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올 핸 두 번의 선거가 있는 데.....

적어도 선거에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 보면서 제대로 된 미래 설계를 한 사람들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나도 멋진 대표가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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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섬 201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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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 왕의 공부]

철학의 눈과 입으로 왕의 공부를 읽고 논하다






매우 반가웠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개념 정도만 배우고 스쳐 지나갔던 경연, 그 후 여러 교양서나 강의를 통해 경연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쌓을 수 있었으나 다른 주제를 논하면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내내 아쉬웠다. 경연을 논하는 학문은 사학, 교육학, 정치학 등 다양한데 그렇다면 그 경연이란 무엇인지 시스템이나 교재 등 총체적이고 원론적인 내용들을 알고 싶었다. 지금까지 경연만을 단독적으로 조명했던 책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이 두어 권 정도밖에 없는데다가 출간된 지 10~18년 된 책이고 학술서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지난 달 출간한 김태완의 <경연, 왕의 공부>는 해묵은 니즈를 일소해주지 않을까 싶어 무척 기대하고 반겼다.




동양의 제왕교육, 경연의 연원은 중국 하·상·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서 깊고 우리는 고려 때부터 도입하였으나 체계가 완전히 잡히고 활발했던 것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성리학이 가장 발달했던 조선에서였다. <경연, 왕의 공부> 역시 조선의 경연을 소재로 한 책이다. 본문에 앞서 프롤로그와 총천연색 경연자료(사진과 그림으로 읽는 경연)로 간단히 몸풀기를 한 다음 1장 경연과 왕의 하루를 통해 경연의 종류를 파악하고 실록 인용을 통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한다. 2장 경연의 모든 것에는 경연의 역사와 교재, 교수 등을 총정리한다. 여기까지 실록을 중심으로 경연을 살펴보았다면 3장 경연의 기록 그 숭고한 작업에서 기대승의 논사록과 이이의 경연일기 같은 개인 기록을 통해 경연을 바라보고 에필로그와 부록(참고문헌, 세부목차)로 마무리한다.




<경연, 왕의 공부>의 내용은 조선 왕의 학습방법인 경연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동양철학 전공자(이이 연구로 박사학위)인만큼 철학 관점에서 경연을 바라본다. 그래서 경연에 대한 다른 학문의 다른 학자들의 견해와 철학과 저자의 견해를 비교해보며 읽길 권한다. 학자별 개인적 차이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철학에선 경연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이 책의 전반적인 논조도 그렇다. 또한 신권, 왕을 가르친 학자(관료)의 관점으로 경연을 해석한다. 그래서 이 책은 경연광이었던 성종을 이상적으로 평가하고 경연을 싫어한 세조나 연산군을 비판하는데, 경연은 단순 교육이 아니라 정치 방법이고 신권을 강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왕권에 경연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또 철저한 성리학 교육이기 때문에 세도정치 이후 근대시기에도 효과적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철학 관점에서 경연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 책이 갖는 또 다른 차별적 특징은 경연에 대해 실록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개인 기록물을 인용하며 중국의 고전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성리학자들에 대한 평가 뿐 아니라 그들 당사자들의 생각과 당시 학계 흐름을 직접 엿보고, 사서의 행간 혹은 그 이상을 깨달을 수 있다. 특히 개인의 경연 기록물은 학파 계보나 정통론 논쟁, 학자들 간의 묘한 관계 구도, 지금과 상반된 인물 평가를 볼 수 있고 사학과 철학의 의견이 갈리는 이유를 극명히 알 수 있는 부분이라 흥미로웠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경연을 설명한다고 해서 저자의 입장 혹은 학계의 입장만 고집하는 책은 아니며, 읽어보면 저자가 자신과 다른 견해도 존중하고 굉장히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경연, 왕의 공부>가 단순 왕의 공부를 설명하기 위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선 왕의 공부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주목할 점은 무엇일까. 그들이 배우고 토론했던 것은 철학(유교경전)과 역사(중국사, 한국사)였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대통령들이 인문학 소양이 부족해 발생한 일화를 소개하며 책을 시작하는데, 이는 왕과 대통령을 동일시하거나 경연의 공부법이 소수에 국한된 특수교육임을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에 소홀한 작금의 세태를 꼬집으며 과거에서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순수 인문학의 위기는 계속 심화되는 반면 다른 학문들의 인문화 경향은 높아지고 있으며 출판 트렌드 역시 최근 인문학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또 교육열은 어떠한가. 그런 점에서 <경연, 왕의 공부>을 통해인문학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올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지원과 추천을 받은 책인 만큼 <경연, 왕의 공부>는 꼼꼼하고 알찬 저술이 돋보인다. 인용 자료(글, 사진, 그림)도 많고 빽빽한 글씨라 430쪽 정도지만 체감 분량은 500쪽 이상이다. 목차만 보고 정조 사례만 있고 실록 외 기록물도 논사록과 경연일기로 끝이라고 오판하기 쉬운데 경연 사례도 몇몇 왕에 국한하지 않고 골고루 담았으며 기록물도 정말 다양하다. 본문 자체도 유익하지만 또 하나 이 책의 장점으로 꼽고 싶은 것은 인용한 각종 기록들의 충실한 번역과 해설·주석이다. 이런 고서들은 전공자가 아닌 이상 전문을 읽기는커녕 접할 가능성도 적기 때문에 이 부분만 읽어도 상당한 분량이고 본문을 읽는 것과 별도로 또 다른 독서의 재미를 준다. 이렇듯 <경연, 왕의 공부>는 독자의 역량에 따라 하나를 얻어갈 수도 있고 백을 얻어갈 수 있을 만큼 다면적이고 깊이 있는 책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경연이 흔하고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닌데 한 달 간격도 채 되지 않아 <경연, 왕의 공부>와 굉장히 유사한 책이 또 출간되었다. 도현신 저의 <왕가의 전인적 학습법>이란 책인데, 전자는 제목이 왕의 공부고 후자는 제목이 왕'가'의 공부지만 두 책 모두 서연 등 조선의 왕실 교육 시스템 전반을 다루는 책이고 이러한 공부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논하는 책이기 때문에, 후자가 종학에 대해 더 다뤘다는 점 외에는 비슷하다. 왜일까, 그냥 최근 인문학 열풍 트렌드 맥락이나 늘 인기 많은 공부법 책의 일환에서 경연 책이 잇단 출간된 것인지 특별히 올해 경연이 주목받는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이유야 어쨌든 경연을 분석하고 논하는 책이 계속 나오는 것은 독자로서언제나 환영이다.



* 2011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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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wmaha 201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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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이라는 딱딱할 수 있는 주제를 저자의 재치 있고 농익은 말투 속에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한국사회의 정치가, 어떤 집단의 지도층에 있는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으로 보인다.






저자는 경연을 통해 현 세태에 대하여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경연과 경연의 내용, 의미를 설명하고서 마치 조선시대의 사관(史官)이 포폄을 가하듯이 현재 위정자들의 문제, 권력을 가진 이들의 태도, 교육의 엘리트성과 대중성에 대해서 비판과 고민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경연의 의미와 목적을 좇아가보면, “군주 교육의 목적은 국가의 모든 권력을 지닌 일인전제 군주가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없도록 하고, 국가 전체의 공공선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운용하도록 이끌어가는 것”(81쪽)이었다. 또 “권력을 세습한 군주가 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곧 권력은 공기公器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작업이”(95쪽)기도 하다. 다시 말해 경연은 군주와 신하가 “권력의 본질을 성찰하고, 권력의 사용을 반성하며, 권력의 성패에 관한 역사적 교훈을 습득하는 자리”(423쪽)였던 것이다. 경연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자신의 언행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할 줄 아는 정도의 지각은 있어야 한다”(24쪽)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저자가 경연을 막상 찬양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점은 조선 말, 나라가 망해가는 국면에서 고종에게 경연의 중요성을 강조한 박규수의 행동에 대해서도 저자는 경연을 강조하는 것이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반문하고 있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는 어떠한가. ‘내가 해봐서 안다’는 식의 오만함이 국정 전반을 흐르는 듯하다. 장관들을 소집한 회의에서 장관들을 꾸짖고 기업들의 이익 추구를 꾸짖는 식이다. 글쎄.. 해봐서 알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것이 다 일까? 안다고 해서 잘 할 수 있고, 잘 했을까? 이 책을 통해서 봤을 때, 아는 것은 끊임없이 닦고 계발하고, 돌아봤을 때 진정한 앎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국정 최고 지도자의 언변과 태도는 ‘앎’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 보인다.






현재와 같이 모든 이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적어도 그런 가치를 지향하는) 민주사회에서 조선시대의 경연과 같은 수양과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최소한 이 사회를 이끌어나간다고 하는 이들, 특히 권력과 금력이 본래 자기의 것인 마냥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저자의 가을서리와 같은 비판을 곱씹어볼 일일 것이다. 권력에 조언 내지 비판을 하는 입장에서도 저자가 3장에서 소개한 기대승의 󰡔근사록󰡕과 이이의 󰡔경연일기󰡕와 같이 세상을 넓고 바루게 보려고 하는 말과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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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201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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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왕조의 몰락 원인을 ‘당파’에서 찾았다. ‘당파’를 나누어 서로 싸움만 하여 정치 시스템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함으로써 사회가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당파싸움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조선의 위정자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조선인의 민족성이라는 논리로 발전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사 연구자들은 이를 ‘당파싸움’이 아니라 ‘붕당정치’로 바꾸어 부르면서, 단순한 패싸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발전적 토론을 하였던 것으로 재해석하기도 하였다. 이는 조선이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끝없이 서로 논쟁하며 바른 정치의 길을 찾았던 문치국이었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연결되었다.



김태완의 『경연, 왕의 공부』는 나라의 주인이었던 왕이 단순히 군림했던 것이 아니라 경연 시스템을 통하여 끊임없이 공부하고, 치자의 길을 고민했다는 데에 주목하고 있다. 왕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매일같이 마주앉아 경전의 뜻을 문답하고 그를 현실정치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저자는 경연과 치적을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는 없지만, 마음을 다해 경연에 참여했던 왕이 치적을 더 많이 쌓았다고 보면서, 지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늘 고민했던 권력이 통치를 더 잘 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저자는 조선과 현대사회를 넘나들면서 권력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왕=주권자인데, 주권자를 잘 교육시켜야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현대사회에 적용하면 국민=주권자이므로 민주시민으로 잘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제도 자체는 문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의 근본 모순이 왕의 자질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주권자가 ‘올바른’ 의식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 ‘올바른’ 의식이란 누구의 관점에서 ‘올바른’ 의식인가?



또 저자가 역사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인지 역사적 맥락이 많이 사장되어 단순한 텍스트 분석에 그치고 있는 지점들이 많이 눈에 띈다. 경연의 내용을 옮기고, 그에 대한 풀이를 제시하는 부분에서 실제적 사건과 관련된 논쟁이 있다. 예를 들어 창원군 이성과 관련된 부분이라던가, 임사홍과 관련된 설명. 이러한 정치적 사건들을 단순히 스토리로만 해석해 버리면 그 배경에 작용하고 있는 역사적 맥락이 사라져 버린다. 이를 현대의 인사청문회와 연결 시키면서 조선시대의 인사가 더 청렴했다고 결론내리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오늘날 고위공직자의 위장전입, 탈세 등을 단순히 그 개인과 인사 책임자의 부도덕만으로 읽을 경우 우리는 사회의 수많은 문제와 모순들을 놓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역사학자들에게 이런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어떤 역사적 사건이든 그것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평가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묻고자 한다”고 밝혔는데 “역사적 맥락에 대한 평가”와 “역사적 의미”가 과연 다른 말인가? 이렇게 간단한 말장난으로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덕을 갖춘 지도자, 늘 공부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지도자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매우 의미있다. 장사꾼 같은 지도자, 도덕성보다 능력을 봐 달라던 지도자를 선택한 국민들에게는 특히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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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fjj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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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대학 학부생 시절, 조선 후기 공론(公論)정치에 관한 논문을 한 편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단순히 왕과 고위관료 몇몇에 의해 국정이 좌우되는 것이 아닌 여론의 수렴을 도모하고자 했던 정치행태에 대한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논문에서 조참(朝參, 한 달에 네 번 중앙에 있는 문무백관이 정전에 모여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고 정사를 아뢰던 일), 상참(常參, 의정을 비롯한 중신과 시종관이 매일 편전에서 임금에게 정사를 아뢰던 일), 윤대(輪對, 백관이 차례로 임금에게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뢰던 일) 등 용어를 찾아보며 왕 노릇을 한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겠구나, 막연히 생각했었다.

왕의 정치라는 건 두 방향에서 이뤄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널리 여론을 수렴하려는 노력이 우선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민본정치를 표방한 이상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테니.

다른한 편으로실제정치적 의사결정 능력을 지닌핵심 지배층의 부단한 자기개발과 노력, 공부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이들었다. 실은,널리 여론을 수렴하고거기에서 진정한 민심을 듣고 반영하는 것 자체가 결정권자의 역량에 달린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이 책에 다룬 왕이며 왕의 공부,즉 경연인 것이다.

율곡의 책문을 전공한 김태완 선생의 이 책은 조선시대에행해진 경연의 개요, 왕의 일상스케쥴과 경연, 실제 경연내용 등 말 그대로 경연에 대한 내용을 집대성했다. 조선시대 왕들과 당대의 석학들이어떻게 함께 공부하고 토론했는지, 그 토론과정에서 어떤 정치철학, 실제의 문제가 오고갔는지 등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율곡 이이 등 당대 석학의 글을 바탕으로 경연과정을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지만 장면 단위로 서술해 결코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다소 의외로 느낀 감이 없지 않았다.책을 읽기 전에는경연이라는 주제 자체에서 느껴지듯 철저히 '옛날 이야기'에만 집중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현실정치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었다. 본문도 마찬가지로 경연의 이야기 속에 저자의 문제의식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이 점은 독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현재의 정치세태를 그만큼 불만족스럽게 보고 있는 것일까? 어찌 되었건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궁극적으로 현실로돌아온다면,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부단히 현재를 궁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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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s123 201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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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공부, 공부를 외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10대, 꿈을 위해 공부에 미쳐라.
20대, 공부에 미쳐라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
40대, 공부 다시 시작하라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다. 시중에 돌고 있는 책들의 제목이다. 10대, 20대에게 공부하라는 책은 이런 책 말고도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공부’란 무엇일까? 시대가 요구하는, 혹은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공부란 무엇일까?
󰡔경연, 왕의 공부󰡕는, 현재 우리 시대에 사람들이 목소리 높여 추구하는 ‘공부’와는 또다른 공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대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공부’란 결국 스펙쌓기와 관련된 것들이다. 영어 점수 혹은 자기추천에 필요한 것들, 심지어는 봉사활동마저도 스펙의 하나로 취급하며, ‘공부’를 위한 공부보다는 출세를 위한 공부가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그에 반해 이 책에서는 왕의 공부를 ‘인문학 공부, 일상의 배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소홀히 하고 있는 바로 그 공부를 경연을 통해서 드러내고, 그것에 의미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조선시대 왕들이 어떤 공부를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지만, 그로부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초반부는 경연이 일반적으로 어떤 형식,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었는지를 개괄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후반부는 경연의 실제 진행을 기대승과 이이의 기록을 통해서 구성하고 있다. 그 외에도 경연의 실례를 풍부하게 제시하면서, 조선의 왕과 신하가 어떤 대화를 어떻게 진행하며, 인문학적인 유교 경전의 내용을 어떻게 실제 정책과 연결지어 나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여러 대목에서 현재적인 이슈들에 대한 논평도 양념처럼 첨가하고 있어, 읽는 동안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줬다.
단지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경연의 대화내용을 통째로 옮겨다 붙인 것은 경연현장의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난해함과 낯설음으로 독해에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각각의 개별 경연들이 에피소드처럼 구성되면서 하나로 통합되는 의미를 취하기에는 독자의 미숙함 탓인지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읽던 와중에 종종 경연의 전체내용을 다 따라가지 못하고 풀이만을 읽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불성실한 독자가 괜히 저자탓을 하는 것같기도 하지만, 독해의 어려움을 준 것은 독자의 탓이라기보다는 저자의 탓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큰 책이다. 공부, 공부, 공부, 평생 공부를 외치는 듯, 내몰리고 있는 현재에,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할 공부란 무엇일까? 그것을 어떤 식으로 실천하면 좋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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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픈 201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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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남녀 주인공은 강론 자리에서 처음 만난다. 둘은 서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가문 간에 혼담이 진행된다. 남주인공은 성균관 직강으로서 종학(당시 종친교육기관)에서 공주를 가르치는 직무를 맡는다. 여주인공은 약혼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친밀한 사이인 공주에게 부탁하여 대신 강론에 들어간다. 평소 짓궂은 장난으로 강관들을 괴롭히곤 했던 공주를 손봐주려고 하는 남주인공이나, 약혼자를 알기 위해 몰래 강론에 임한 여주인공이나 강론은 뒷전이고 치열한 눈치작전만 벌인다. 엄숙하기만 할 것 같은 구중궁궐에서, 그것도 진지해야 할 강론장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자잘한 ‘밀당’ 싸움이 시청자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조선은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덕치(德治)’를 추구한 나라였다. 즉 법에 의한 통치보다는 도리와 예절에 의한 통치를 추구한 나라였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덕치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가장 높은 신분이었던 왕(그리고 왕족들)이 충실한 덕성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왕이 제대로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왕과 신하들 간의 적절한 균형과 견제로 운영되었던 조선의 정치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기 힘들었다. 그러므로 왕이 통치를 위한 덕성을 잘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는 제도가 중시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연이었다. 공주나 대군 같은 왕족들의 교육은 위에서 말한 에피소드처럼 가볍게 진행되어도 큰 탈은 없었겠지만, 왕을 대상으로 한 경연이나 세자를 대상으로 한 서연은 중요한 정치 문제를 논의하곤 했던 진지한 토론장이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경연 백과사전’이다. 조선시대의 경연 제도에 관한 사실들을 충실히 설명하고, 경연이 어떤 역할을 하는 자리였는지 풍부한 사례를 들어 차근차근 풀어주었다. 1장 <경연과 왕의 하루>와 2장 <경연에 관한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3장 <경연의 기록, 그 숭고한 작업>에서는 고봉 기대승의 <논사록>과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를 소개하며, 경연의 실제를 보여준다.







이 책이 경연에 관한 백과사전이라고 해서 객관적인 딱딱한 사실들만 죽 나열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저자는 경연을 통해 드러나는 조선의 정치문화와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를 적극적으로 비교하여 논평하곤 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최근 대통령들의 ‘말실수’들을 지적하며 민주사회에서도 정치지도자의 ‘품격’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본론에서 경연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조선시대의 왕과 학자관료들이 보여주었던 ‘품격’의 좋은 예들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는, 조선시대의 경연은 적어도 ‘정치문화’의 측면에서는 민주사회를 사는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을 만한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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