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
최진석 (지은이)북루덴스2022-12-30
책소개
평생 노장 철학을 연구해온 저자의 ‘나’와 ‘가족’ 이야기, 노자와 장자 철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 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육십갑자를 한 바퀴를 돌았다는 회갑 날, 저자는 자신이 태어난 전남 신안의 작은 섬, 장병도를 방문한다. 저자는 그곳에서 이제는 할머니가 된 아버지의 초등학교 제자를 만나 기억에도 없던 어릴 적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꺼낸 적 없는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를 비롯해 큰누나와의 이별까지 인간 최진석의 진솔한 자기 고백과 거기서 비롯된 깊은 철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평생에 걸쳐 ‘죽음’을 사유했던 저자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에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고 영원한 삶을 살아가자고 따뜻하지만 냉철한 어조로 권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품었던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내가 자기 삶의 ‘별’로서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자 찰나적인 삶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죽음’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나’라는 인간 존재가 한 마리 작은 물고기 곤(鯤)이 억겁의 축적을 통해 대붕(大鵬)으로 날아오르듯, 우주적 존재로서 자유롭고 영원한 비상을 꿈꾼 것이다.
저자는 세계를 ‘지적 탐구의 대상’이 아닌 철학적 사유와 실천을 통한 직접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실현해야 할 장(場)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국민소득으로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다른 여러 면에서 중진국의 한계에 갇힌 우리 사회를 냉철하게 진단하고 우리 자신이 사회를 변화시킬 역량을 갖춰 역사의 주체로서 선도국으로 건너갈 소명을 다하자고 역설한다.
===
목차
프롤로그-내가 다시 나를 찾은 날
제1부 별 헤는 마음
별똥별의 마음
별을 노래하는 마음
산티아고의 마음
별처럼 빛나고 싶은 마음
아버지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
제2부 우주를 겨드랑이에 낀 채로
덕이 출렁출렁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로
자신의 고유한 걸음걸이로
영감이 피어나는 순간에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면서
우주를 겨드랑이에 낀 채로
제3부 신의 있는 사람
지적인 사람
성공한 사람
‘장오자’라는 사람
유유자적하고 장수를 누리는 사람
참된 사람
감동과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
제4부 건너가는 시선
야수의 시선
신뢰의 시선
자신의 생각에만 매몰되지 않는 시선
무불위(無不爲)의 시선
제5부 정해진 마음 넘는 법
정해진 마음 넘는 법
‘아큐(阿Q)’로 살지 않는 법
‘내 손’에 집중하는 법
무모해지는 법
종속을 넘는 법
곤(鯤)이 대붕(大鵬)이 되는 법
접기
책속에서
P. 40 ‘별처럼 산다’고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서 ‘내가 나로 빛난다’는 뜻이다. 내가 나로 빛나면 유한한 시간 속에 무한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원하는 것’이다. … 원하는 것이 없는 삶은 빛날 수 없다. 원해야 한다!
P. 55 새벽 기차에 올랐다. 익산쯤 왔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7시 조금 안 된 시각. 사람에게는 용건을 듣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다. 전화벨이 울리자, 임종하는 효도의 길이 이미 지났음을 직감했다.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혼자, 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셨다. “나 인자 그만 먹을란다”라고 말씀하신 후, 8일간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 그리고 가셨다. 접기
P. 72 눈앞의 편리함을 위해 공공의 책임감을 포기하거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경박함이 있다. 이런 경박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감당하며 인간으로서 품격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덕(德)이 있는 사람이다.
P. 107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자는 그 순간에 영원을 함께 경험한다. 자기 존재의 자각,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성스러운 자리다.
P. 108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책받침 두께 정도의 얇은 틈새를 천리마가 휙 지나가는 것과 같다. 홀연할 따름이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
====
최진석 (지은이)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이다. 건명원(建明苑) 초대 원장을 지냈다.
1959년,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 곁의 작은 섬 장병도에서 태어나 함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당나라 초기 장자 해석을 연구한 『성현영의 ‘장자소’ 연구(成玄英的‘莊子疏’硏究)』(巴蜀書社, 2010)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가(道家) 철학자인 그는 원래 서양철학을 공부하려고 독일 유학을 계획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독일철학... 더보기
최근작 :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 총 33종 (모두보기)
노장 철학의 대가, 최진석의 진솔한 고백이 돋보이는 ‘삶’과 ‘철학’ 이야기
자기 삶의 ‘빛나는 별’로서 영원한 우주적 존재로 건너가는 법
성공을 바라는 자들을 향한 통렬한 일침!,
“공이 이루어지면, 그 공을 차고앉지 말아야 한다(功成而不居).”
별똥별을 보며 죽음을 자각하고 영원을 꿈꾸다
고등학교 1학년, 고향 집 마당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저자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불현듯 ‘내가 언젠가 죽을 수도 있다’을 사실을 자각한다. 그것은 불혹이 넘도록 그를 따라다니던 죽음의 공포를 갖게 된 계기였다. 그 후 저자는 줄곧 죽음 너머의 ‘영원’을 갈구한다. 그 갈망 끝에서 ‘인간이 존재 자체로 우뚝 설 때 별처럼 빛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별똥별’에서 시작된 죽음에 대한 탐구는 저자를 철학으로 이끌었고 그의 철학과 삶의 토대가 되었다. 저자는 책의 앞머리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기 삶의 정신적, 물질적 자양분이었음을 따뜻하면서도 애틋한 시선으로 돌아보고 어릴 적 한 조각 추억처럼 남은 큰누나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을 한 몸처럼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죽음으로 향하되 영원과 절대 자유를 꿈꾼 저자는 노장 철학의 무위자연과 곤(鯤)이 대붕(大鵬이 되는 적후지공(積厚之功)의 경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성찰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
‘나’라는 존재에서 출발한 저자의 철학적 시선은 사회와 국가로 옮아간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현상 유지와 앞선 나라의 이론과 시스템을 따라 하기에 바쁜 나머지, 사회의 문제를 개인적인 일로 치환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치열함이 부족했던 결과로 ‘종속’의 틀에 갇혀 버렸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을 공부할 때도 플라톤과 장자 등 철학자의 철학적 결과물인 이론만을 답습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론만을 되새김질하는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기에 거기서 벗어나 철학자의 철학적 방법론과 사유의 높이 그 자체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가장 높은 사유의 단계라고 규정하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낯설게 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일상적인 사건 속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은 ‘사과가 떨어진다’는 단순한 사건을 보고 ‘왜 그럴까?’라는 질문과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거의 모든 철학서에 ‘철학은 경이에서 출발한다’라고 쓰여 있다. 그 말은 철학은 낯설게 하기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다”라고 적고 있다. 세상 만물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경이로움, 바로 거기서 철학은 시작된다는 인식이다.
낯설게 보기 위한 단초인 ‘호기심’이라는 작은 불꽃이 피어날 때, 인간은 비로소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거기서 새로운 지식과 이론이 생겨나 세계를 전략적으로 다루게 된다. 낯설게 보기라는 철학적 사유의 시작이 세계를 주체적으로 다루는 전략의 수립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철학적 사유의 시선을 갖자고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육고(陸賈)의 충언과 윤편(輪扁)의 수레바퀴를 넘어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미 중진국 상위레벨에 도달했으면서도 선진국으로 나아갈 동력을 상실했다고 개탄한다. 그것은 새로운 단계에 걸맞은 전략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기득권 세력이 ‘성공의 덫’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건국 세력부터 산업화 세력, 민주화 세력은 여전히 자신들이 이룬 공을 차고앉아 기득권이 되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어젠다를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장자의 “공이 이루어지면, 그 공을 차고앉지 말아야 한다(功成而不居)”는 말을 빌려 성공의 기억에 갇힌 이들에게 성공의 기억과 현실 안주에서 벗어나라고 일갈한다.
저자는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이 새 시대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로 말 잔등에 올라 세상을 도모할 수 없다는 육고의 충언을 받아들여 경전을 공부함으로써 새로운 비전을 가졌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은 그에 걸맞은 통치이념과 전략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수많은 학인(學人)이 외국에 나가 선진 학문과 문물을 배워왔다. 그럼에도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 고유의 것을 거의 갖지 못했다. 그것을 저자는 윤편의 일화를 들어 외국 문물의 껍데기만을 들여왔을 뿐 윤편의 손에서 비롯된 수레바퀴를 만드는 그 기술을 배워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학문적 성과나 결과만을 배울 뿐 과정을 중시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저자는 윤편의 수레바퀴를 넘어 윤편의 손에서 비롯된 기술을 배우고 그것마저도 넘어서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일류국가, 선도국가로 나아가고 철학적 사유의 높이를 가지는 길이 될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설파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사회를 바꿔야 더 높은 단계로의 도약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철학이 이론을 넘어 진정한 철학이라 부를 수 있는 ‘실천하는 철학’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 철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라 힘주어 말한다. 접기
====
구매자 (0)
전체 (11)
공감순
❤️ 이 책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
당신은 누군가의 문화적 활동이 야기한 변화를 수용하기만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스스로의 생산적인 활동으로 단련하고 경계 너머 ‘열리지 않은 곳‘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변화를 야기하는 사람입니까?
모든것이좋아 2022-12-22 공감 (13) 댓글 (0)
Thanks to
공감
읽고 생각하기 좋은 책, 나에 대해 좀 더 집중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향기로운이끼 2022-12-28 공감 (3) 댓글 (0)
Thanks to
공감
복잡하고 어려운 철학 및 고전 분야에 대해 현실적으로 표현하며 삶을 말하는 철학에세이북
djkidol 2022-12-28 공감 (1) 댓글 (0)
Thanks to
공감
글의 모든 내용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madwife 2023-05-18 공감 (1) 댓글 (0)
Thanks to
공감
노장 철학의 대가, 최진석의 진솔한 고백이 돋보이는 ‘삶’과 ‘철학’ 이야기. 그의 자전적 철학 에세이로서 이 책은 ‘나‘와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성찰로 우주에서 영원히 ‘빛나는 별‘로 가는 길을 제시한다.
늘술 2022-12-28 공감 (0) 댓글 (0)
====
마이리뷰
전체 (40)
지금은 철학을 공부할 시간
철학자가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때가 있었을까?
없지는 않았다. 지금도 백수를 누리고 있는 김형석 교수나 고인이 된 안병욱 교수가 1980년 대 거의 혜성같이 나타나 독서계를 주름잡은 적이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분들은 철학의 대중화보단 그냥 잔잔한 수필을 썼던 분으로 더 각인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본격적인 철학의 대중화는 강신주란 걸출한 철학자가 한 10년 전쯤 나오면서부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전이라고 그런 노력들이 없었겠냐만 우리나라 사람이 딱히 독서를 좋아하는 민족은 아니지 않는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데 철학이라고 좋아할 리도 없고. 그저 미미한 꿈틀거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노력들이 꾸준히 있어왔기에 이만큼이라도 철학의 대중화를 이룰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예나 지금이나 철학은 정말 별 볼 일없구나 싶다. 어쩌면 그리도 안 바뀌는지. 저자가 대학을 들어갔던 80년 대 초, 아버지가 철학은 해 뭐 하냐며 전공을 바꾸라는 걸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열심히 철학을 공부했느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그런 걸 보면 핍박이 좀 심해서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왠지 철학은 그래도 될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현실에 발을 딛고는 결코 못할 일이 그거 아닌가. 사실은 현실에 발을 딛고 해야 하는 일이 그것인데 철학과 현실은 아직도 괴리가 있어 보인다. 그나마 요즘은 인문학이 인기가 많다지만 편차는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나이 먹고 은퇴하고 하는 거지 사느라 바쁜 젊음에겐 언감생심인 것 같다. 더구나 동양철학을.
저자의 이력이 좀 흥미롭다. 원래 저자는 서양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것도 그 어렵다던 독일철학을 미간을 찌푸리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철학을 멀리하는 이유일 것이다. 전공자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안 그래도 미간 찌푸릴 일 많은데 공부까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공부가 축복이 돼야지 고난이 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다 저자는 장자를 읽다가 그 재미에 푹 빠졌다고 한다. 사람이 공부를 하던 일을 하던 그렇게 해야 한다. 재밌어서 하는 것. 옛날이야 먹고 사느라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21세기 아닌가. 아무튼 난 그렇게 많은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전이나 평전류를 좋아하고 동양 철학을 곁들인 에세이 냈다고 하니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250쪽 내외니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 근데 그게 아니었다. 책이란 얇다고 해서 금방 읽고, 두껍다고 해서 늦게까지 읽으라는 법은 없다. 얇아도 한참 붙들고 읽는 책이 있고, 두꺼워도 금방 읽는 의외의 책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전자에 해당하는 책이다. 언제나 그렇듯 철학은 어떤 형식으로 풀어내도 가독성이 좋은 책은 아닌 성싶다.
그래도 첫 부분에서 다룬 저자의 자전은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힌다. 저자가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는지 시를 인용하면서 글의 격을 높인다. 또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므로 철학자의 글쓰기를 새롭게 하는데 좋은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왠지 철학자는 말마따나 미간을 찌푸리며 묵직한 표준어만을 사용할 것 같지 않은가. 한마디로 저자의 글발이 좋다. 기라성 같은 글발 좋은 저자들이 수두룩 빽빽인데 (처음 읽어 본 나로선) 결코 기죽지 않은 저자만의 탁월한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글 속엔 죽음에 대한 의식, 무의식적 두려움이 깔려있다.
어렸을 때 백혈병으로 죽은 큰 누나와 삶의 마지막 순간 곡기를 끊고 그런 지 8일 만에 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하며 저자는 적잖이 삶과 죽음을 사유했겠구나 싶다. 개인적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곡기를 끊는 것이 제대로 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곡기를 끊었기 때문에 죽는 것인지 아니면 죽으려고 곡기를 끊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게 소위 말하는 자연사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 주위엔 사고로, 병으로, 자살로 심지어는 타살로 생을 마무리하는 죽음이 얼마나 많은가. 자연사는 확실히 복된 죽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들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우린 할 수만 있으면 죽음을 얘기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발버둥 친다. 큰 누나가 어린 나이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로 큰 누나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건 비단 저자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 중 누구도 죽음에 대해 의식, 무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해 말하길 삼간다. 사람은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삶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아쉬운 건, 전체가 저자의 자전 에세이인 줄 알았더니 앞부분에서만 다루었고, 그 뒤로 또 다른 주제의 에세이가 이어진다. 갈수록 말랑말랑하고 내 스타일에 맞는 책만 읽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모처럼 뭔가 도끼로 두껍게 얼어붙은 강바닥을 깨는 느낌이다. 정신나는 문장들이 많아 얼마나 많이 줄을 쳐 가면서 읽었는지 모른다.
특히 지식 수입국이라는 우리나라 지식 생태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던지는 쓴소리는 좀 음미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권문세도가들이 어떤 우를 범하고, 왜 그런 우를 범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저자 특유의 사유가 돋보인다. 그리고 그건 갈수록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철학 없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가능할까. 당연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린 지금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중간중간에 그림이 들어가 있던데 따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자 자신의 작품인듯하다. 필치도 프로의 경지다.
책은 대체로 좋다. 나중에라도 다시 한번 읽고 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책의 3분의 2 정도가 지나면 뭔 말을 하는 것인지 그 주제와 촛점이 좀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뭐 어려운 동양철학을 이만큼 썼다면 용서해 줄 마음도 없진 않지만, 이건 우리나라 저자들이 주로 많이 하는 실수는 아닌가 지적하고 싶다.
그건 그만큼 뒷심 좋은 작가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도 같고, 아니면 반대로 집중력과 지구력이 다소 떨어지는 독자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는 절대로 후자로 자신을 자책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어려운 걸 쉽게 풀어쓸 의무와 책임이 있다. 최후의 한 장까지 잘 쓰고 마무리하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 접기
stella.K 2022-12-29 공감(24) 댓글(8)
Thanks to
공감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감사히 읽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이번 책은 도가 철학의 석학 최진석 교수님의 최초의 자전적 철학 에세이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통해 인문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바 있어서 이번 책도 매우 반갑게 기다렸었다. 그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담기고 한국 사회와 문명을 함께 고민해 보는 이번 책은 '철학 하는 사람' 그 자체로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는 책이 되었다.
❤️ 이 책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
당신은 누군가의 문화적 활동이 야기한 변화를 수용하기만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스스로의 생산적인 활동으로 단련하고 경계너머 '열리지 않은 곳'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변화를 야기하는 사람입니까?
별똥별을 보며 죽음을 자각하고 영원을 꿈꾸다
고등학교 1학년, 고향 집 마당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저자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불현듯 ‘내가 언젠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것은 불혹이 넘도록 그를 따라다니던 죽음의 공포를 갖게 된 계기였다. 그 후 저자는 줄곧 죽음 너머의 ‘영원’을 갈구한다. 그 갈망 끝에서 ‘인간이 존재 자체로 우뚝 설 때 별처럼 빛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경계에서어느 순간, 방 안에 아무도 없었다. 두 세계로 나뉜 방 이쪽에 내가 있고 누나는 저쪽에 있었다. 나는 앉아 있고, 누나는 누워 있고.세상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왜 그랬는지는 이유를알 수 없지만 나는 병풍 뒤로 돌아갔다. 누나는 얇은 천을 발끝부터머리까지 올려서 이불처럼 덮고 누워 있었다. 지금은 그 천이 무슨색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얇은 천인 것만 뚜렷하게 기억한다.천 끝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건드려 보았다. 그 사소한 긴장이 기억난다. 왠지 덥석 만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엉덩이를 밀며달라진 세계조금 더 다가갔다. 한참을 앉아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그쪽세계의 사방을 둘러봐도 병풍으로 갈라진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없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것은 달라졌다. 달라진 모든 것은 온도에 담겼다.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방 하나를 병풍으로 갈라놨지만, 이쪽과 저쪽을 비교하면 저쪽이 이쪽보다 서늘했다. 달라진 모든 것이 온도에 담긴다면 혹시 이 세상은 온도의 기록이 아닐까?
p 63
❤️ 나는 아직 죽음에 대해서 깊은 슬픔을 느껴보지 못했다. 내게 조금 멀리 있는 죽음에 애도를 표할 뿐이었다. 나에게서 뭔가 빠져나간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경계에 대해 느끼는 바가 아직 모호하다. 저자가 어릴 적 누님이 돌아가시고 같은 방에서 병풍 하나 사이로 마주한 죽음에 대한 자각이 그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사로잡히게 했다는 고백은 공부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었기에 방황하게 되었고 보통의 공부는 할 수 없었다는 고백과 함께 깊게 와닿았다.
배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한 배움이어야 하는가?
수많은 죽음을 직접 집행했음에도 이 죽음의 슬픔에서 멀리 있었던 사람이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국가의 명령에 따른 것이 죄인가요?"라고 물었다면 한나 아렌트가 말한 그의 죄는 그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았던 죄이다.
죽음의 슬픔을 깊게 겪은 이들은 일찍이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의식의 성장을 이루는 것 같았다. 신해철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가 왜 그렇게 인기였는지 나는 어린 나이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 최진석 님의 고백은 데미안을 보는 듯했다. 데미안에서 마주했던 두 세계는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있고 내면을 들여다본 사람들이라면 자기의 알이 무엇이었고 무엇을 깨뜨리고 나와야 하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데미안은 최진석 교수님이 <나를 향해가는 열 걸음>에서 소개한 열 권의 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보다 앞서는 장자가 있다. 인간이 자연과 문명이라는 두 세계가 겹쳐놓은 무대에 산다고 일찍이 2000년도 전에 가장높은 도를 깨달은 것이다.
가장 높은 사유의 단계라고 규정하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낯설게 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진이 되고자 하면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것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아가 이념과. 관념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단련된 상태. 이것이 바로 창의적 활동이다.
고도된 단련된 상태로
미학적 높이에서
행위를 결정할 줄 안다는 것
상징의 사유 높이
창의는 익숙함이 부과하는 무게를 이겨내고 모르는 곳으로 과감하게 넘어가는 일이다.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는 일에 '과감'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가 있다.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는 일은 일종의 그험이자 탐험이기 때문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모르는 곳'은 명료하게 해석될 수 없는 까닭에 항상 이상하고 불안한 곳이다.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위험한 곳으로 넘어가는 탐험과 모험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모든 창의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넘어가는 일이라면, 그것은 철저한 탐험의 결과다. 장자의 '박 배'도 장자가 가지고 있었던 지식이 아니라, 그의 탐험 정신이 만들어냈다. 그 탐험 정신은 장자를 여기서 저기로 성큼 건너가게 했다.
탐험 정신이 살아 있는 문명은 강하다. 새로운 이론이나 지식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문명을 강하게 만드는가? 문명은 생각이 만든다. 생각이 문명을 통제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문명을 확장하고 통제하는 매우 효율적인 생각의 얼개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지식이자 이론이다. 앎의 체계인 것이다. 당연히 지식이나 이론을 생산하는 문명은 통제력이 클 수밖에 없고, 통제력이 큰 문명은 강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지식이나 이론을 수입하는 문명은 종속적이기 때문에 주도권이 없어 강한 면모를 보이기 어렵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할 때, 보통은 어떤 것에 대하여 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말한다.
p 101
인간의 존재적 의미는
내가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려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펼쳐 나가는 존재이다
p 91
자신이 자신에게 경험케 하는 작은 승리
❤️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나의 호기심을 열심히 쫓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 개척해가는 나자신의 문명이다. 먹고사는 것 이외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인간의 사유, 문명의 사유를 경험해 보고 싶었고 나도 내가 가진 경계를 넘어보고 싶었다. 좋은 책을 통한 시공간 초월의 기회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내게 선물한다. 좋은 책은 생각하게 만든다.
낯설게 보기 위한 단초인 ‘호기심’이라는 작은 불꽃이 피어날 때, 인간은 비로소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거기서 새로운 지식과 이론이 생겨나 세계를 전략적으로 다루게 된다. 낯설게 보기라는 철학적 사유의 시작이 세계를 주체적으로 다루는 전략의 수립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철학적 사유의 시선을 갖자고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사람을 그 사람으로 펼쳐 나가게 하는 힘은 욕망이고 금증이다.
사람은 모르는 곳에 집중한다.
그런 인간은 지치지 않는다.
모르는 곳에 관심을 표하지 않는 인간은 지친 인간이다.
p 92
철학이라는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하는 것. 철학자 중의 철학자이다. 최진석 교수님은 철학이라는 학문 이전에 수없이 의심하고 고민하고 흔들렸던 존재의 시작점부터 보게 해주셨고 이 자전 에세이가 어느 철학서보다 철학에 가깝다고 느낀다.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 삶의 ‘별’로서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찰나적인 삶 속에서 영원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삶의 목적이다.” 라는 저자의 말처럼 석학 최진석이 제시하는 빛나의 삶의 주인 되기와 철학의 시작점과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만큼 따뜻한 위로와 큰 가르침이 있는 책이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려고 하든 꼭 필요한 사유가 담긴 책입니다. 우리자신이 별이 되는 순간을 응윈하는 책이기에 어떤 경로로든 꼭 만나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by 모든것이좋아 - 책과 다이어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매우 적다.
그보다 더 슬픈 일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자신에게도 묻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p 94
탐험 정신이 살아 있는 문명은 강하다. 문명은 생각이 만든다. 생각이 문명을 통제 한다는 뜻이다.
문명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 하는
발버둥이다. 그것은 태도의 문제다.
p 101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는자는 그 순간의 영원을 함께 경험한다 자기 존재의 자각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성스러운 자리다 p 107
극단적인 허무를 경험한 인격은 무한 변화와 확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허무와 무한 확장을 연결하는것은 하나의 독특한 능력이 아니라 검을 하는 기반 위에서 자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존재 적 명령이자 사명이다. p 108
우주는 원래 허무하다. 허무하게 생긴 우주의 존재 형식을 노자나장자는 '도(道)'라고 불렀다. 이런 도의 이치를 온전히 깨닫고, 그 이치를 자기화해서 구현할 능력까지 겸비하면, '득도(得道)’했다고 말한다. 우주적 삶을 살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단계에 오른 자가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일을 잘 수행한다면, '도통(道通)’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궁극적 사명은 득도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p 109
어떤 정치인이 당선과 진실한 봉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당선은 진실한 봉사보다 구체적이고, 진실한 봉사는 당선보다 추상적이다. 이때도 당선을선택하면 도에서 멀어지고, 진실을 선택하면 도에 가까워진다. 모순적인 상황에서 '도'에서 먼 쪽이 보내는 유혹을 이겨내고, 가까운쪽을 선택할 때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다. 이 용기를 발휘하여 '도'에 가까운 쪽을 선택하는 승리를 한번 경험하면 우리는 점점 우주적 삶의 경지로 이동한다. 결국 우주적 삶은 모순적 상황에 처한 매우 미미하고 고독한 주체가 용기를 발휘하는 그 찰나적 순간에서만피어난다. 이 용기가 '여기' 멈춰 있는 나를 '저기'로 건너가게 한다.이것이 깨달음이다. - p 111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방 하나를 병풍으로 갈라놨지만, 이쪽과 저쪽을 비교하면 저쪽이 이쪽보다 서늘했다. 달라진 모든 것이 온도에 담긴다면 혹시 이 세상은 온도의 기록이 아닐까? - P63
인간의 존재적 의미는 내가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려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펼쳐 나가는 존재이다 - P91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는자는 그 순간의 영원을 함께 경험한다 자기 존재의 자각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성스러운 자리다. - P107
극단적인 허무를 경험한 인격은 무한 변화와 확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허무와 무한 확장을 연결하는것은 하나의 독특한 능력이 아니라 검을 하는 기반 위에서 자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존재 적 명령이자 사명이다. - P108
- 접기
모든것이좋아 2022-12-22 공감(15) 댓글(0)
Thanks to
공감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내가 별이 되는 것이다.
이 순간의 삶 속에서 내가 영원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삶의 목적이다. (-15-)
모든 게 사라진다.
우리 엄마도 돌아가신다.
나도 사라진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이곳에서 저 별은 나에게 무엇일까?
여원을 생각하다 그곳에 빠졌다. 고등학교 생활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쳤다. (
자부심이 있는 별 같은 존재들은 무엇을 하든지 멋지다. 무엇을 하든지 당당하다. 왜냐하면 자부심으로 뭉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기 때문에, 당당하고 두려움도 없다.자부심 있는 두 별은 산티아고와 청새치이다. 산티아고와 청새치의 사투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두 별의 교류였으며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을 기능적으로 제거하려는 목표가 아니었다. 왜 그걸 까? 청새치는 산티아고에게 하나의 자부심이자 자기가 별처럼 존재하는 한 형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어 데가달려들어서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에도 청새치를 끝까지 지켰다. (-34-)
공이 이루어지면, 그 공을 차고 앉지 말아야 한다.
노자는 처음에 이 말을 정치적인 의미에서 주로 사용되었다.정치인이 직속적인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백성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남는 생명력 있는 권위는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우선 자기가 이룬 공, 바로 그것에 함몰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룰 때 사용하였던 방법에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혁명가가 자신이 타도하려고 하는 대상을 타도하고 나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드는 이미 혁명가가 아니라 반항아에 불과하다. 왜 진실한 표정으로 혁명가를 자처하던 사람들이 혁명을 이룬 후에는 쉽게 비판받고 버림받게 되는가. (-124-)
용기,모험,도전이 일어나는 핵심적인 출발장소는 문제의식을 느낀 마음이다.그런데 문제의식을 느낀 모든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해결하려고 덤비지만 누구는 피해버리기도 한다. 해결하려고 덤비는 사람은 자신이 문제의식에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감동' 한 것이 분명하다. '감동'이라는 절차가 없이는 몸이 움직여지기 어렵다. 이 세계를 느끼는 내면의 어떤 특별한 활동성, 즉 감동이 없으면 잘해보고자 해도 잘할 수 없다. (-162-)
우리는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다. 단순히 경제적이거나 군사적인 문제만 놓고 하는 말이 아니다.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문법 등에서 아직 독립적인 생산 단계에 들지 못했다는 뜻이다.'지식'하나만 따로 놓고 말한다면, 지식의 생산국에 진입하지 못하고 아직도 총체적인 지식 수입국이라는 뜻이다. 이런 비독립적 항계가 경제와 군사적인 문제의 높이까지 결정한다.'독립적인 생산단계'에 든 나라를 선진국 혹은 선도국이라고 한다. (-197-)
세계의 진보는 이미 단단히 자리 잡은 기준이란 가치관으로 하는 '판단'에 의존하기보다는 개방적으로 진행되는 '사유'에 더 의존한다.'판단'에만 빠진 채'사유'능력을 기르지 못하면,'판단'이 제공하는 수준의 문명만 누리지 '사유'하는 능력이 제공하는 더 높은 문명은 누릴 수 없다. (-243-)
익히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탁월한 사유의 시선』,『나 홀로 읽는 도덕경』,『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을 읽은 바 있다. 그는 우리에게 사유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으며, 춘추전국시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적 이치에 근거한 옳바른 삶과 탁월한 인생을 언급하고 있었으며,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학에 근거한 사유와 철학이라 말한다.
철학자 최진석은 우리가 지식 수입국이라 말한다. 그 이유는 서구의 여러 사상이나 지식을 활용, 모방, 응용하는데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의 자부심과 자긍심은 높지만, 지적인 수준은 성장하고 있지 않음에 대해 문제의식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형식적인 혁신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다.스스로 우물안 개구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스스로 우물 안에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말하였다. 즉 우리가 중진국으로서 여러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 경제적인 면에서, 선진국 반열이 오르고 있지만, 문화적, 철학적으로 볼 때 여전히 중진국으로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 조목 조목 따지고 있으며, 말한다.
한국인, 한국 사횐에는 논쟁과 혐오, 판단은 있지만, 사유는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이유다. 겉보기에는 사회적 진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바닥 문화, 저문화를 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치를 깨닫고, 본질을 보지 못하고, 섣불리 판단하는 한국인의 정서는 그러한 부분을 반영하고 있다. 신중하지 못하고, 스스로 탁월한 사유 방식을 정착시키지 못하는 한계,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분노사회, 혐오사회, 인성교육이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최진석 교수는 회갑이 지난 현재,철학 에세이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노장사상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사유의 등대와 나침반이 될 것이며,노장 사상의 사유, 무위자연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올바른 사유, 탁월한 사유의 해법이 될 수 있음을, 최진석 교수의 철학적 사유에서 느껴진다.
- 접기
깐도리 2022-12-28 공감(7) 댓글(0)
Thanks to
공감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새창으로 보기
저자의 노자인문학을 무척 인상적으로 읽고 이후로 다른 책이나 강연도 챙겨보고 있는데, 최근 그 책에서 받은 인상과 다르게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글을 신문지상에 기고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 이번 책도 제목은 노자와 장자를 언급했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최근 한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이라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않고 한국사회가 재도약할 수 있는 방법을 철학 속에 찾자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저자의 출생지나 이름에 얽힌 이야기, 가난 속에서 저자가 자라면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철학, 그 속에서고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뒤를 이어 저자의 생각이 담긴 글이 실려있다. 저자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본질보다는 수단과 방법에 뛰어나 (따라하기에 능해) 중진국을 벗어나 선진구 초입에 이르렀지만 근본을 생각하는 창의성이 부족하여 다시 뒤로 밀려나갈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어 창의성이나 근본을 생각하고 공부, 연구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와 연관된 노자, 장자의 이야기도 곁들이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창의성과 본질에 충실하자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예전 노자인문학에서 느꼈던 삶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보다는 현 한국사회의 문제를 고쳐야한다는 까칠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져서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노장 사상은 까칠한 것보다는 관조적이고 애정어린 시선이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하면서도 저자의 주장과 연관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떤 기술을 개발했어도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고 미국, 독일, 일본에서 개발된 기술이어야만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무척 많이 보아왔다. 혹자는 조선시대 사대주의 정신이나 식민지통치에 기반한 정서라고 하기도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있는 경우가 맣은 것은 사실인 듯 하고, 이 점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민족이 도약하기 어렵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창의성을 개발하고 이를 위해 산책을 권하는 글이 실려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각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저자의 방법을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고민과 사고 관점의 중심을 본질에 두는 것에서 부터 출발하여야하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 접기
마키아벨리 2023-01-01 공감(4) 댓글(0)
Thanks to
공감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어렵고 복잡하게 보이는 철학 및 고전 분야에 대해 저자는 최대한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우리들의 이해를 돕고, 철학에 대해 왜 생각하거나 일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도 그 의미에 대해 자세히 표현하며,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물론 개인마다 좋아하는 철학자나 사상가가 있을 것이며 이는 우리의 현실적인 부분이나 삶의 성장을 위해서도 좋은 영향력을 제공한다. 삶의 멘토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를 존경하는 행위가 주는 긍정적인 의미를 안다면 왜 대중들이 고전 및 철학적 가치를 좋아하는지, 때로는 시대와 역행하는 부분이 많고 현실적이지 못한다는 비판도 존재하나, 여전히 철학에 대한 탐구와 평가는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함께 알아야 한다.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이 책도 동양철학이라는 큰 틀을 바탕으로 노장철학, 노자철학, 그리고 장자철학 및 노가철학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도 함께 표현하고 있다. 물론 고전 및 철학 분야를 전공한 분들도 어려워 하는 분야라서, 일반인들이 쉽게 마주하기란 어렵지만 주역이나 해석에 매몰되기보단 이를 현실적인 관점에서의 생각이나 나에게 맞는 영역을 발췌해서 배우는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책을 통해 삶과 인생, 자연과 우주, 그리고 신에 대한 색다른 관점에서의 이해와 생각이 가능하다는 점도 이 책이 갖는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개인적인 사례나 이야기를 통해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도 더 쉽게 배울 수 있는 동양철학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으로 볼 수 있다.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시대는 급변하며 과학 기술적인 역량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 그리고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예전의 가치나 고전적 의미에서 삶의 균형감을 갖거나 더 나은 성장전략 및 방향성을 갈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모순적인 의미도 아니며, 오히려 서로 다른 분야의 결합을 통해 더 나은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과 이미 경험하거나 활용한 분들의 경우에도 철학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사라져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는 함께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개인이 바라는 삶의 행복과 성공에 대한 갈망, 그리고 사회와 사람을 바라보는 일정한 안목과 더 나은 형태의 생각법이 왜 필요한지, 예전의 느낌과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볼 수도 있는 동양철학의 의미를 통해 현실문제를 해결하거나 나를 위한 삶의 방향성 설정, 긍정적인 자세와 효과 등에 대해서도 함께 접하며 판단해 보자. 생각보다 솔직하고 쉽게 표현하고 있는 책이라 다양한 분들이 쉽게 배우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적용하거나 더 나은 삶에 대해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양철학을 통해 말하는 삶과 사람, 그리고 사회적 현상, 통찰력 등에 대한 조언서, 책을 통해 배우며 판단해 보자.
-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