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8

그들의 ‘전향’은 용서되는가? < 기타필진 < 칼럼 < 쩌날리즘 < 기사본문 - 평화나무

그들의 ‘전향’은 용서되는가? < 기타필진 < 칼럼 < 쩌날리즘 < 기사본문 - 평화나무

그들의 ‘전향’은 용서되는가?
기자명 박가분 정치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였다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신지예부터, 정의당 출신으로 지금은 국민의힘 강력 지지 스피커가 된 유재일, 청년 진보 논객을 표방하며 나름 자신만만하게 나타났지만 역시 국민의힘 진영에서 활약하는 노정태에, 김경율과 한석호까지...진보가 척박하기로 유명한 대한민국 땅에서 ‘진보’ 간판 달고 공론장에 나섰다가 결국 극우의 품에 안긴 이들은 원래 사상은 관련 무엇이었을까요? 박가분 평론가의 분석을 들어봤습니다. - 편집자 주 -

일반대중에는 많이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은 사회주의·공산주의·무정부주의 계열 좌익운동 역사가 우리나라보다 오래되었고 그 양상 역시 의외로 격렬했다. 지금 우리들의 눈에 일본이야 정체되고 변화가 적은 나라이지만, 실은 한국이 광복 후 압축적으로 겪은 근현대사의 이념대립을 좀 더 길게 이어놓은 것이 일본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또 다른 일본의 역동적 근현대사의 면모가 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때 일본 사상사에 관심을 가질 때 흥미로웠던 것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사회주의자였던 사노 마나부와 같은) 급진적 사상가와 정치인들의 ‘전향사 연구’가 하나의 독자적인 연구 카테고리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자세한 내용은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논형)』 등의 역서를 참고할 것). 이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나타낸다. 우선 유력 좌익인사들의 전향이 하나의 연구 주제로 다뤄진다는 것은 그만큼 ‘대량의 전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전(戰前) 시기에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➊ 만주 사변 이후 강화된 천황제 파시즘의 기 속에서 1930년대 초반에 일어난 급진주의자의 집단적 전향 ➋ 1937년의 중일전쟁 개시 이후 일어난 리버럴(자유주의자)들의 집단전향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그런 대량의 전향이 있었다는 것은 일본이 어느 시점까지는 상당한 ‘시민적 저항운동의 에너지’를 보유한 국가였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변절한 것일까. 일본의 학자 쓰루미 스케는 전향을 ‘권력에 의해 강제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상의 변화’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전향이라는 것이 오직 외적인 탄압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을까?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를 집필한 후지타 쇼조는 전향의 또 다른 원인은 전향 주체의 정신적 구조의 취약성에 있다고 설명한다. 사상적 ‘전향’의 근거를 파고 들어가면 역설적으로 ‘사상의 결핍’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서는 ‘전향사’라는 것이 일본만큼 독자적인 연구 카테고리로 다뤄지지 않는 듯하다. 그 이유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일본보다 더 압축적인 근대화 경험이라는 역사적 차이에 있을 것이다. 우선 식민지 치하 한국은 일본 국내만큼 시민사회적 권운동조차 펼치기에 불리한 다. 상당수의 독립운동은 해외에서 되었다. 그리고 역사적 시점을 광복 이후로 좁혀 보더라도 좌익세력은 분단 이후 상당수 월북하거나 납북당했고 남아 있던 이들은 한국전쟁의 전개 과정에서 대량학살 당했다. 남한에 남아 있던 상대적으로 온건한 진보주의자도 반공냉전 분위기의 고착화로 조봉암처럼 정권에 의해 살해당했다. 전향 이전에 절멸에 직면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물론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남아 있었지만) 일본만큼 ‘전향문제’가 심각한 연구문제로 다뤄지기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 점에서 어쩌면 ‘전향’이라는 문제에 대한 한국의 사회적 이해가 일본보다 부족한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서는 ‘전향’의 문제를 (친일파에 대한 인식이 흔히 그러하듯) 단순히 ‘변절’이나 ‘배신’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향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전향 주체가 견지한 사상 그 자체에 대한 ‘자기성찰’을 요구한다. 예컨대 왜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손쉽게 전향했을까? 애초에 그들이 고민 없이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한 탓이 아닐까? 사상을 수용하는 주체 자신의 내적 모순은 없었던 것일까? 이처럼 전향 문제에서 전향 주체 자신의 멘털리티에 대한 문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한편 필자가 지금, 이 시점에서 전향사 연구의 한일 비교 문제를 반추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역사에 대한 호사가적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후 정치적 전향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김문수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뉴라이트의 상당수도 한때 주사파 운동권이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냉전 시대의 이념대립을 배경으로 한 이런 ‘고전적 전향’ 외에도 보다 더 기묘한 사례들을 최근 볼 수 있다. 조국 전 장관 논란을 계기로 진중권을 비롯해 과거 참여연대에 활동하던 김경율 회계사 등이 국민의힘과 윤석열 지지자로 전향했다. 과거 진보신당에서 활동하던 노정태 작가는 탈원전 논쟁을 계기로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후위기 회의론 저서(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부키))를 번역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장혜영, 류호정 등 정의당 인사들이 참가한 ‘세 번째 권력’의 조성주 공동운영위원장이 노동 개혁과 연금 문제에 있어서 보수언론과 정확히 동일한 입장을 내기 시작했다. 특히 해당 단체는 대기업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의 힘을 모아 싸우자는 기존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은 ‘586의 낡은 노동관(?)’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진보정당에서 나오리라 예상하기 어려운 이례적 발언이다.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 상당수가 자신들의 입장 변화를 ‘진영논리’를 초월하는 행위쯤으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세 번째 권력’의 조성주 전 소장은 ‘민주당의 오른쪽’으로 가서 중도정당을 지향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진중권·김경율·노정태 등도 자신의 입장 변화를 ‘상대(ex 조국 전 장관)의 내로남불이 싫어서’, ‘정치적 극단주의에 휘말리기 싫어서’ 등의 이유로 설명하곤 한다(그런 이들 상당수가 정작 메갈리아 등의 래디컬 페미니즘 조류에 아부했던 것에 비춰보면 상당히 기묘한 일이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을 ‘과잉 입법’이라 비판한 진중권이나 연금의 보장성보다는 재정건전성을 먼저 걱정하는 조성주의 사례를 보더라도 사회경제적 민생문제에 관한 이들의 입장변화는 결국 기존 보수주의자들의 통념으로 회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보수적 입장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자신의 포지션 변화를 진영논리와 무관한 합리적 주의쯤으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자기 입장변화의 계기를 ‘외부의 탓(ex 조국의 탓, 극렬 야당 지지자의 탓)’으로 돌릴 때이다.

이들이 내보이는 또 다른 공통적 성향 중 하나는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 경시 사상이다. 이들은 습관적으로 반대편 지지자들은 정치적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집단쯤으로 폄하하곤 한다. 정작 이러한 폄하의 제스처도 선택적이고 진영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으레 일어나는 대중적 열광에 대해서도 ‘책임정치’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유해한 요소쯤으로 취급하곤 한다. 이들의 눈에 본래의 정치는 인정욕구로 움직이는 사람 (논객)들의 전문직업인데 점차 일반대중이 정치 현상을 주도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일까. 여기서 다시 전향사 연구의 오랜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애초에 그들이 본래 견지했던 신념이나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전향은 사상의 문제 이전에 그들의 정신구조 자체의 취약성(ex 좌절된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박가분 정치경제평론가 news@logosian.com
====

"한편 필자가 지금, 이 시점에서 전향사 연구의 한일 비교 문제를 반추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역사에 대한 호사가적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후 정치적 전향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김문수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뉴라이트의 상당수도 한때 주사파 운동권이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냉전 시대의 이념대립을 배경으로 한 이런 ‘고전적 전향’ 외에도 보다 더 기묘한 사례들을 최근 볼 수 있다. 조국 전 장관 논란을 계기로 진중권을 비롯해 과거 참여연대에 활동하던 김경율 회계사 등이 국민의힘과 윤석열 지지자로 전향했다. 과거 진보신당에서 활동하던 노정태 작가는 탈원전 논쟁을 계기로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후위기 회의론 저서(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부키))를 번역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은 기후위기 회의론이 아닙니다.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원자력의 활용을 늘려야 한다는 책입니다.
책을 써도, 번역을 해도, 자칭 지식인이라는 자들마저 거들떠보지 않음. 그냥 자기 떠들고 싶은대로 떠들고, 원로 지식인들마저 유튜브가 출처인 발언을 마구 내뱉음.
그러니 유튜브에서 음악이나 듣고 운동 정보나 찾아보던 나 같은 사람이 밤에 카메라 켜고 주절거리게 되는 것임. 오늘 밤에도, 말하자면 '빅터 프랭클 3부작'을 마무리지을 예정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