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3

“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 조현이만난사람

“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등록 :2022-08-03
조현 기자
[이것이 K-정신이다] ④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한학자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네번째는 김언종(70)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다.



한글전용이 대세를 이루고 한자는 갈수록 읽을 기회조차 줄고 있다. 그러나 한자는 여전히 지울 수 없다. 국회에서도 이모(이아무개)를 이모(어머니의 자매)로 혼동하는 일이 벌어질 만큼 한자를 모르면 여전히 언어 소통에 장애가 크다. 전국의 지명과 산과 강이 하나같이 한자 뜻으로 이뤄졌고, 이름도 한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수천년 역사와 고문헌, 문학도 절대다수가 한자 기록문이다. 한자와 유학을 두 다리 삼아 살아온 김언종 교수를 지난달 26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서재 도가재(道可斎)에서 만났다. 도가재는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인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공자를 꼽을 정도로 천생 유학도다. 한국고전번역학회 회장과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평생 한문을 업으로 삼은 그는 <한자의 뿌리>, <한자어 의미 연원사전> 등의 저서와 <한자의 역사>, <역주 시경 강의>, <혼돈록> 등의 역서를 낸 한학자다.

하지만 왕십리역 부근의 오피스텔에 자리한 서재에서 전자칠판을 비치해놓고, 멋진 모자를 쓴 채, ‘한잘알’이란 유튜브도 혼자 운영하며 현대식으로 한자 공부를 하길 그는 권한다.

“여전히 국어사전도 70% 이상이 한자어다. 가령 분수나 대수, 기하학 같은 수학 용어들도 한자를 알면 이해가 빠르다. 한자를 모르면 뜻은 모른 채 소리만 따라 하는 앵무새가 될 수 있다.”

그는 “한문 뜻글자는 칡뿌리처럼 곱씹으면 씹을수록 진국이 우러나기에 철학적·인문학적 사유를 깊게 해서 샤머니즘 감성에 치우친 한국인의 감성적 기질을 이성적으로 보완해주었다”며 “산골까지 서당이 생겨 당대 유럽보다 오히려 지식층을 두텁게 해서 케이(K)인문의 틀을 다져주기도 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를 한자나 유학 근본주의자로 알면 오해다. 그는 유학의 본고장 안동 출신이면서 다산 정약용이 변화를 거부한다며 칭했던 ‘안동답답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가 하면, 유학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김언종 교수의 서재인 도가재 편액. 김언종 교수 제공―우리에게 유학은 무엇인가?

“유학이 2000년간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교 국가인 조선시대의 식자들은 3경(시경·서경·역경)까지는 다 능숙하게 알지 못해도, 사서(논어·맹자·중용·대학)를 안 읽은 사람은 없었다. 공자는 차별 없이 남을 자기처럼 아끼는 살 만한 대동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공자의 생활철학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실천만 한다면 계층 차이와 상대적 빈곤, 전쟁 같은 세상의 문제가 일거에 해소된다. 그러나 유학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고급 공무원들과 국민의 20% 정도 되는 양반들의 이념에 머물렀다. 조선시대 백성의 40~50%는 노비나 상민이었는데, 차별받는 이들이 유학을 좋아할 리 없었다. 공자는 대문 밖에 나가면 모든 사람을 귀빈으로 대하라고 했다. 그가 ‘똥 푸는 사람’이어도 말이다. 백성들을 부리더라도 황제가 제후를 대하듯 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중봉 조헌을 비롯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노예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 한양에서 벼슬을 하면 통상 200~300명의 노비를 거느렸다. 다산 정약용조차 <목민심서>에서 ‘민란을 쉬 진압하지 못하는 것은 노비 숫자가 적기 때문’이라고 했을 정도다. 아버지가 양반이더라도 어머니가 천한 신분이면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도록 한 종모법을, 서얼 출신인 영조가 종부법으로 바꿔 양반인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게 한 뒤 노비가 적어져서 민란을 진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임진왜란도 지도층들이 싸운 것이 아니라 서애 류성룡이 꾀를 내어 노비들에게 면천을 시켜주겠다고 구슬려 노비들을 동원해 극복한 면이 있는 것이다.”

―유학은 왜 제사와 문화엔 남았지만 국민들의 마음에서 멀어졌나?

“조선시대 유학의 영향은 고급 공무원과 양반들에게만 해당됐다. 조선의 지배자들이 공자의 뜻을 거슬러 노비와 상민, 서얼, 여성을 차별하고, 자기들만이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는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오히려 무속과 무속화한 불교에서 위안을 얻었다. 사마천의 <사기>의 ‘공자세가’를 보면, 야합이생(野合而生)이라고 했다. 70살 가까운 아버지 공흘과 10대 후반의 어머니 안징재가 야합, 즉 정상적인 혼인이 아닌 관계를 가져 공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공자야말로 처는커녕 첩의 자식도 못 된 셈인데, 공자를 하늘처럼 받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차별을 자행했으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유튜브 ‘한잘알’에서 논어를 강의하고 있는 김언종 교수. 유튜브 ‘한잘알’ 갈무리―공자의 유학이 왜 변질되었나?

“공자는 휴머니스트이자 유머가 풍부한 분이었다. 그런데 주자는 강력한 불교를 밀어내기 위해 공자를 석가모니와 같은 절대적 초월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공자의 부드러운 유머를 지우고, 의도적으로 공자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공자의 제자였던 자로와 번지마저 희화화시키기도 했다. 빈천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공자는 가난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며 안빈낙도를 권했다. 그런 실천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여섯번이나 했으며 훗날 다산이 ‘청백리의 표상’이라 칭송했던 오리 이원익은 ‘물질은 남에게 양보하고, 정신적인 것을 가져라’ 하며 이를 실천했다. ‘힘든 일엔 앞장서고, 나눠 먹을 때는 뒤에 서라’는 공자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다.”

―다산을 비롯한 탁월한 인물들이 실학을 주창했는데 조선은 패망했다. 한국실학학회 회장도 한 다산 전공자로서 이를 어떻게 보는가?

“노론과 남인 집권세력에서 소외된 이들이 실학파와 이용후생학파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히 소외돼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시대를 극복해보려 애를 썼지만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쳐 변화의 동력이 되지 못했다. 성호 이익의 책도 출판조차 되지 못하고, 다산의 책이 출판된 것도 1930년대에 와서였다.”



한학자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조선 패망 이유를 어떻게 보는가?

“견제세력이 없으면 나라가 힘들어진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아무리 바른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으니 속이 터져서 49살에 돌아가신 것인지도 모른다. 훌륭한 인재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어도 그걸 활용 못하니 국란을 맞은 것이다. 서인 가운데 노론들이 막 나갈 때 젊은이들이 소론을 만들어 견제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이미 숙종 때부터 막 나가 더 일찍 망했을 수 있다. 영조·정조 때까지는 그나마 당파가 있어 견제가 됐다. 뱀눈은 앞만 보지 위와 옆을 못 본다. 순조 때부터는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세도정치로 견제세력이 사라져 뱀눈들이 지배했다. 일제 식민사관이 가르친 대로 당파싸움 때문에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다. 왕 앞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했던 선비 정신이 사라지고, 당파와 견제와 비판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뱀눈들이 전횡을 일삼다가 망한 것이다. 나도 아내가 견제하지 않았으면 좋아하는 막걸리만 마시다가 몸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시대에도 한자가 필요한가?

“한 정치인이 무운을 빈다고 한 것을 두고, ‘승리하기를 빈다’가 아니라 ‘운이 없기를’이라고 해석해 웃음을 산 적이 있다. 한자 뜻을 모르면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안 쓰고 사물을 보는 것과 같다. 한자 뜻을 알면 기미독립선언서를 한글로 읽어도 뜻을 알 수 있지만 한자를 모르면 읽을 줄 알아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일본이 중국과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데도 왜 한문을 함께 쓰겠는가. 우리도 한자를 2000자만 알면 나머지는 유추해서 알 수 있어서 그 유익함이 무궁무진하다. 세종대왕이 말한 ‘어린 백성’ 즉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않으려면 한자를 알 필요가 있다. 한자는 2000년 이상 우리나라에서 국어 구실을 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 세계 속에 한자는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한국인들이 ‘음주가무’에 능한 기질대로 영화와 드라마, 케이팝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만약 한자 공부를 해 깊이를 더한다면 철학과 문학 면에서도 세계적으로 드날릴 수 있을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연재[한겨레-플라톤아카데미 공동기획] 이것이 K정신이다“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인문 사상 종교, 중국서 꽃 피고 한국서 열매 맺어
한류 ‘빅뱅’ 만든 한국인의 기질은 이것에서 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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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유튜브로 동양 정신문화 정수 익힌다"
기자명 이욱신 기자
입력 2021.03.02 12:54
수정 2021.03.0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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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사서삼경' 강의 통해 유가 핵심 사상 배워"
"모든 사람이 조화롭게 사는 대동사회 원리 공부"
"한자 배우면 고전 익혀 옛사람과 벗 될 수 있어"
▲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연구실에서 만난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이 시대 사서삼경 공부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전통시대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한자(漢字)를 받아들임으로써 선진 문명의 정수를 빠르게 흡수해 우리 문화의 발전과 성숙에 크게 활용했다. 그 중에서 유가(儒家)의 대표적 저술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 국민들의 정신세계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는 4일부터 유튜브를 통해 대중을 상대로 한 사서삼경 강의를 함으로써 동양 고전의 지혜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인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를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연구실에서 만나 이 시대 사서삼경 공부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편집자 주>.


김언종(金彦鍾) 교수는 2018년 2월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직 정년 이후에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주 화요일에는 실학 연구자들의 연구모임인 실시학사(實是學舍)에서 2017년에 돌아가신 설립자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전 성균관대 교수)의 유지를 받들어 경학반을 이끌고 있다. 현재 10여명의 소장 학자들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최후의 역작인 『상서고훈(尙書古訓)』을 번역하고 있다.

수요일에는 고려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학의 기초가 되는 중국 고대 은주(殷周)시대 고문자(古文字)의 변천과정을 살피며 글자 하나하나의 형태와 음을 익히게 해 한문고전 연구에 들어선 후학들의 기초를 다져주고 있다. 또 수요일 저녁에는 고려대 평생교육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학의 대표적 고전인 사서삼경 강의를 했었다. 2013년에 시작된 이 강의는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쉬고 있지만 매회 수강생이 200명을 넘길 정도로 인기 강좌였다.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연구실에서 만난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서가에서 책을 빼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코로나시대 유튜브 강의로 대중의 쉬운 한자 접근 도와

궁즉통(窮則通)이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했던가. 대중강연이 힘들어지자 비대면으로도 다수의 수강생을 만날 수 있는 유튜브가 눈에 들어왔다.

김 교수는 유튜브 채널 '한자 잘 알려주는 노인(한잘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언어생활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한자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때 그 때 시사와 관련된 한자어를 풀어 보이고 있다. 보통 10분에서 15분 분량으로 일주일에 두 세 편이 올라오기도 하는 영상에는 당시 뉴스의 중심이 된 인물의 이름, 시사용어, 고사성어 등에 쓰인 한자 하나하나의 생성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과거 일간지에 다년간 시사한자 뜻풀이 기고를 한 경험이 있는 만큼 당대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한자를 추리는 데는 남다른 감각이 있기도 하다. 지난해 추석에 '가황(歌皇)' 나훈아(羅勳兒)의 공연이 뜨거운 화제 속에 방영된 뒤에는 관련 영상을 띄우자 구독자가 배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한자 익히면 동양 문명 정수 마음껏 즐길 수 있어…단계 밟아 배우면 어렵지 않아

김 교수는 "한문을 익혀 놓으면 세계 4대문명의 하나인 중국 황하문명 이래로 3000년 동안 위대한 선각자·지식인들이 글로 남겨 놓은 귀중한 보물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며 "'상우고인'(尙友古人·위로 옛사람과 벗을 한다)이라는 말처럼 공자·맹자·묵자·양주·주자·왕양명 등 무수한 사상가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또 8만여권 8억자에 이르는 『사고전서(四庫全書)』와 우리 조상들 문집을 정리한 방대한 분량의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을 통해 중국과 우리의 전통시대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고 한문 공부의 묘미를 소개했다.

이어 "'한문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예전에 '한문에 문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기계적으로 문장을 외우기만 했기 때문"이라며 "우선 한자 하나하나의 생성원리를 배워 개별 한자의 뜻과 음에 대한 감을 익힌 다음 요즘 학생들에게 익숙한 영어 문법처럼 한문 문법을 배우고 사서삼경을 비롯한 고전을 숙독한 뒤 다른 한문 문헌으로 공부 범위를 넓혀 갈 것"을 권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연구실에서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를 만나 이 시대 사서삼경 공부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사진=김현수 기자

◇사서삼경, 대동사회 꿈꾼 유가 사상 핵심 배울 수 있어

김 교수는 "사서삼경 가운데서도 특히 사서(四書)는 12세기 중국 송대 주자가 신유학을 정립하는데 핵심 역할을 한 이래로 사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상도 이해할 수 없는 독존적 지위를 누리게 됐다. 중국의 주류 사상이 된 유학에 대한 지지나 비판, 융합 모두 사서에서 비롯된다"며 사서 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사서삼경의 정신은 『논어(論語)』 「이인(里仁)」편에 나오는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에 집약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며 "공자가 지향한 '도(道)'는 어떤 종교성을 띄는 신비한 원리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사회 모든 구성원이 공평하면서도 조화롭게 사는 행복한 사회 즉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살 수 있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원리·원칙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런 공자의 생각을 항상 되새기며 개인 연구실을 '도가재(道可齋)'로 이름 붙였다.

첫 교재인 『논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묻자 김 교수는 「자장편」에 나오는 '기생야영, 기사야애'(其生也榮,其死也哀) 여덟글자를 든다. 이는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의 삶에 대해 내린 평어(評語)이다. 공자와 한 시대에 태어나 공자의 영광스런 삶을 함께 할 수 있었음이 무한한 영광이었고 수많은 허망한 삶과 달리 돌아갔을 때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슬퍼했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김 교수는 "누구나 이런 삶을 지향해야 한다"며 "어떤 사람과 한 시대를 사는 것이 치욕이거나 누군가가 죽었을 때 '축 사망(祝 死亡)'이라도 외치고 싶은 경우가 빈번한 메마른 요즘 세상이기에 이 여덟 글자는 심금을 울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일방통행식 강연이 아닌 시청자도 실시간 참여하는 소통형 강연 목표

이번에 진행할 유튜브 사서삼경 강의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실시간으로 방송한다. 유튜브 채널에 기록물로도 계속 남아 전 세계 어디서나 필요할 때마다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게 됐다. 대략 『논어』 1년, 『맹자』 2년, 『중용』·『대학』 각 1년, 『시경』·『주역』 각 2년, 『서경』은 중요부분만 뽑아 6개월 정도가 걸릴 예정이다.

과거 한 강연에서 어떤 청중이 처음부터 계속 졸기만 해서 그 사람을 깨우기 위해서 갖은 재담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끝날 때까지 깨우지 못해 자신의 강연 능력을 한탄하기도 했다는 김 교수는 "이번 사서삼경 강의는 절대 지루하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고전 문장의 원뜻을 살리면서도 그와 관련된 다양한 고사를 풀어내는 '이야기 사서삼경'이 될 것이란다. 또 일방적인 강의전달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질문도 받고 때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관심있는 시청자들도 참여해 대화도 하는 입체적인 강연을 계획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학계도 전문가 그룹에서만 읽히고 일반인에게는 잘 안 알려지는 연구논문만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할 것이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한 기고·강연·유튜브 활동 등도 학문 활동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과거 번역은 논문보다 학문적으로 저평가 받다가 지금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학계에서도 전문 연구자들의 대중 교양 강좌 활동과 저술에 긍정적 평가를 한다면 대중성과 전문성 모두 갖춘 수준 높은 인문학 강연자·저술가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연구실에서 만난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다산의 장·단점 모두 기술해야 총체적 접근 가능…'박문약례' 자세로 학문 연구

『논어』에 대한 중국·한국·일본의 다양한 학설을 종합해 비교 분석한 다산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40여년 동안 이를 널리 알린 김 교수는 "다산 선생은 위대한 분이었지만 학설에 있어 소소한 문제점도 없지 않다"며 "그 동안 국내 다산학 연구에서 금기사항처럼 여겨진 다산의 한계점도 드러냄으로 다산을 좀 더 다각도로 연구해 후배들의 학문 연구에 디딤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다산 주역 해석의 문제점을 꼽는다. 주역 해석은 크게 주역에 담긴 윤리·도덕적 의미를 궁구하는 '의리학'(義理學)과 사물의 현상을 부호화 혹은 수량화해 사물의 관계와 변화를 추측하는 '상수학'(象數學)으로 나뉜다.

다산은 이 중 상수학에 몰입해 주역 한 구절 한 구절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 메커니즘처럼 이뤄진 완벽한 구조라고 믿었고 세상원리가 이에 정확히 반영돼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대략 3000년 전에 만들어진 주역 본문 속에 삼라만상과 모든 우주 현상의 원리가 반영돼 있다는 것은 주역 공부를 하면 할수록 믿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과거 고전을 달달 외울 정도로 사서삼경을 숙독한 선배 학자가 수업 시간 전에 꼭 다시 한 번 강의 할 부분을 숙독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도 그렇게 하려 노력한다는 김 교수는 후학들에게 "평균수명이 90을 바라보는 시대이니 만큼 '박문약례(博文約禮)'라는 공자 말씀처럼 60대 중반까지는 전공이라는 뚜렷한 중심 말뚝을 박아 놓고 학문의 외연을 넓혀가되 정년 이후로는 이를 수렴·정리함으로써 학문적 성취를 얻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언종 교수 약력
▲1952년 경북 안동 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대만 국립사범대 석·박사 ▲경희대 중어중문학과 전임강사·조교수 ▲고려대 한문학과 부교수·정교수 ▲한국실학학회 회장 ▲한국경학학회 회장 ▲한국고전번역학회 회장 ▲『정다산논어고금주원의총괄고징(丁茶山論語古今註原義總括考徵)』, 『한자의 뿌리』1·2권 등 저서, 『한자의 역사』·『다산의 경학 세계』 등 역서 다수 ▲현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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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회통’ 능력자…4차혁명 날개 달고 한류로 피었다

등록 :2022-05-11 
조현 기자 사진

[한겨레-플라톤아카데미 공동기획] 이것이 K정신이다
① 불교학회 명예회장 김성철 동국대 교수

김성철 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첫번째는 한국불교학회 명예회장인 김성철(64)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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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서부이촌동 김성철 교수 연구실. 몇평 안 되는 좁은 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테라코타들이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 등의 조각상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김 교수가 직접 빚은 것들이다. 김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작품을 보고 조각에 꽂혔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를 하다가 불교학자가 되어 정년을 앞두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틈틈이 테라코타를 만들고 있다.

서울대 사대 학장과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를 지낸 선친 김종서 교수가 가끔 모시고 온 탄허(1913~1983) 스님을 어린 시절 집에서 만나곤 할 만큼 불연이 있던 그는 불교학에도 열정을 불태워 가산학술상, 불이상, 청송학술상, 반야학술상, 탄허학술상 등을 휩쓸었다. 또 원효대사보다 150년이 앞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상가로 꼽히는 고구려 승랑대사에 대한 연구로 ‘한국연구재단 10년 대표연구성과’를 이룬 이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구실 한쪽에는 그가 만든 명상 기계가 있다. 마음챙김을 더욱더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가 발명한 것이다. 그는 뭔가 하나에 빠지면 아무도 못 말리는 덕후임이 틀림없다. 그는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해보는 것이나, 문과와 이과를 넘나드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기질 속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남들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어하는 게 한국인들이다. 자기가 못하면 아이들이라도 시킨다. 영어, 수학, 미술, 피아노, 태권도 등 남들 하는 것은 다 하게 한다. 옆집 아이가 바이올린을 배운다면 자기 자식도 시키고 싶어하는 게 한국인이다.”

그는 “여러 가지를 다 해보고 하나로 꿰려는 게 불교의 왕도인 화엄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한다. “화엄의 핵심은 일즉일체 하나에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또 화엄은 누구나 다 부처님이라고 한다. 화엄경에 나온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 즉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을 가진 분이다. 모두가 부처라니, 우리 각자도 모두 보려고 하고 직접 해보려 한다. 옆으로만 회통하는 것이 아니다. 위부터 바닥까지 알려고 한다. 미국인들은 자기네 대통령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우리나라에선 정치도, 교육도 다 자기 소신을 가지고 알려고 하고 주장을 한다.”

그는 “정보통신, 디지털 혁명이 바로 화엄의 시대에 조응하는 것이어서 한국인의 기질에 딱 맞는다”고 말한다.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으로 전지전능하게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나 인터넷과 게임과 메타버스 등으로 시공을 넘어 회통하는 것이 한국인의 심성에 부합해 4차 혁명이 가져올 미래는 한국인의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한 일문일답이다.





2020년 8월31일(한국시각) ‘2020 엠티브이(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의 ‘다이너마이트’ 퍼포먼스 장면. 빅히트뮤직 제공

―한국불교의 특성, 즉 ‘케이(K)불교정신’은 무엇인가?

“일제강점기에 한국 불교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일 때 육당 최남선은 한국 불교를 한마디로 ‘회통’으로 정의했다. 고려 대각국사 의천은 원효에 대해 ‘화쟁 국사’라고 했다. 원효가 여러 다툼을 조화롭게 만들어, 대립과 분열을 넘어 화해하게 했다는 것이다. 신라의 원측도 당나라에 유학해 처음엔 유식학의 개조인 법상과 승변으로부터 배우고,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귀국하자 그에게 다시 배워 구유식과 신유식을 회통시켰다. 고려 보조지눌도 선(禪)과 교학을 회통했다. 보조지눌은 원돈성불론을 통해 선과 화엄의 최고 경지가 같다고 했다. 조선시대 선승인 서산대사도 불교·유교·도교 삼교회통론을 설했다. 탄허 스님도 유불선과 기독교까지 회통하지 않았는가. 다른 나라 불교와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이런 회통이다.”

―회통이 불교 고승들만의 특성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는 등의 문과적 성과만 이룬 것이 아니다. 그는 장영실 등의 젊은 과학자를 등용해 천문관측기구인 대·소간의, 일성정시의, 혼천의, 시간을 재는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들고 측우기를 제작해 서울과 지방의 강우량을 측정하고, 수표로 하천의 수위를 재게 하고, 역서와 천문도도 제작해 천문 지리 등의 과학기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또 음악에도 조예가 남달랐다. 새로 편경을 만든 후 첫 아악 연주를 들은 세종대왕이 ‘편경 소리는 맑고 고우며 조율도 잘 되었는데, 12음률 중 아홉째 음률의 편경 소리가 좀 높으니 어찌된 일인가’라고 물어서 박연이 편경을 세밀히 조사했더니 그어놓은 먹줄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음이 반음 높았다고 한다. 절대음감을 지닌 세종대왕의 날카로운 모습이다. 세종대왕은 문과 이과와 예술까지 가리지 않고 넘나들었다. 이순신 장군도 백전백승의 장수이기만 한 게 아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그는 글에서도 대단한 실력파다. 조선의 선비들은 글만 쓰지 않았다. 문인화를 그렸다. 난 정도는 칠 줄 알아야 선비라 할 만했다.”





영화 <천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회통과 종합은 어떤 사상에서 비롯됐다고 보나?

“화엄이다. 불교의 왕도라는 화엄은 모든 것을 껴안는다. 일즉일체, 즉 ‘하나 속에 모든 게 들어간다’고 본다. 일본인들은 법화경을 가장 중시한다. 중국은 원각경, 열반경 등을 많이 본다. 그러나 한국은 화엄경을 어마어마하게 본다. 한반도에서 대부분의 주석서는 중국의 고승들의 저서에 대한 것들인데, 화엄경만은 다르다. 방대한 화엄경을 210자로 간추린 의상대사의 법성게에 대해서는 김시습을 비롯한 후대의 주석들이 많다. 다른 나라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화엄경 주석들을 모은 신화엄경합론을 탄허 스님이 말년 1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낸 것에서도 화엄경에 대한 정성을 알 수 있다.”

―고승들이 아닌 일반 승려들도 그런 회통의 경향이 있는가?

“그렇다. 한국 불교 선방의 참선 열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뜨겁다. 그런데 1989년 거해 스님의 <깨달음의 길>이란 책이 나와 남방불교의 위파사나 수행법이 알려지자 수많은 수행자들이 미얀마와 타이의 위파사나 수행처로 달려가 수행했다. 위파사나 수행 전통이 가장 잘 전해내려온 미얀마엔 전세계에서 수행 명상하러 온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한국인들이 가장 많다. 또 티베트불교가 알려지자 너도 나도 달라이라마와 티베트 수행처들이 있는 북인도 히말라야로 가서 수행했다. 남방불교나 티베트불교 스님들은 다른 불교를 기웃거리지도, 다른 수행법을 해볼 엄두도 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수행자들은 다르다. 화두선이 그만 못해서가 아니다. 가장 수승한 화두선을 하면서도, 새로운 것이 보이면 그것도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한가지에 만족하지 않는다. 남이 배운 것은 나도 배우고 싶어 한다. 탄허 스님이 미래 불교는 한국이 이끌 것이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들이 모든 불교를 회통시킬 수 있어서다.”

―한국인들의 종교 신앙에서도 독특성이 있는가?

“통상 종교 제도 속에 들어가면 다른 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의 주체성은 유별나다. 종교마저 초월한다. 자기가 종교보다 더 중요하다. 조직에 그대로 순응하기보다는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시킨다고 그대로 하지 않는다. 내가 필요하면 종교도 활용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종교도 버린다.”





넷프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제공

―통상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듣는 게 ‘빨리빨리’라고 하는데, 성급하고 빠른 게 한국인들의 기질은 아닌가?

“급격한 경제성장기에 뭐든 빨리빨리 하려는 것은 한국만은 아니다. 일본에도 1960년대 도쿄올림픽 때 총알택시가 있었다. 한국인들이 원래 일 중독이 아니라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민족이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우리도 저 나라들처럼 충분히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빨리빨리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고, 내 시대가 아니면 자식 시대라도 잘살게 하려고 빨리빨리 서둘렀다.”

―일본만 해도 대를 이어 장인이 되는데, 한국인은 뭐든 빨리만 하려고 하지 대충대충 건성으로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한국인들이 경부고속도로도 아랍의 항만공사도 최단기간에 완성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기질이라기보다는 빨리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은 오히려 종교도 학문도 끝장을 보려 끝까지 파헤치는 근성이 남다르다. 신라·고려의 불교가 그랬고, 조선 유학의 퇴계와 이이가 그랬다. 사토 시게키라는 일본의 불교학자는 성철 스님 당대에 일본엔 90점짜리 스님들만 있는데, 한국엔 간혹 100점짜리 스님들이 있다고 한 바 있다. 한번 수행이나 깨달음에 목적을 정하면 일생을 희생해서라도 반드시 끝장을 보려는 심성이 작용한다. 확철대오해야 한다며 생명을 거는 분들이 한국 불교엔 있다.”

―일제가 한국인들을 비하할 때 썼던 것이 조선시대 당파끼리 싸운 당쟁이다. 그 이후에도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한국전쟁을 겪고, 지금도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데, 이것도 한국인의 심성에 기인한 것인가?

“원효대사보다 150년이 앞선 고구려의 승랑대사는 달마대사 일화에 나온 양무제와 더불어 중국 선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고승인데, 무쟁법사로 불렸다. 한국 불교 간화선의 뿌리인 남종선의 육조 혜능-마조도일-임제의현-오조법연-대혜종고는 승랑의 삼론학이 밑거름이 되어 탄생했다. <진서>에는 승랑에 대해 ‘무쟁(無爭·다투지 않음)을 몸에 익히고 행하는 분이어서 미리 말하는 법도 없었고 생각을 짜내어 이치를 만들지도 않았으며, 상대를 보아야 비로소 응했고, 적을 만난 다음에야 움직여, 철저하게 대기설법 응병여약으로 교화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화엄경의 핵심인 무의무득, 즉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어떤 것도 포착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의 생각을 중화시켰다. 승랑은 굶주린 생명들까지 모두 거두어 그의 방 안에는 거위와 오리, 닭과 개 등 온갖 축생들이 함께 생활했는데, 승랑이 잠들 때면 모두 고요해졌다가 함께 밖으로 나갈 때는 요란하게 울고 짖으며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런 무쟁의 도인에 이어 다투는 쟁론을 화해하게 한 원효의 화쟁 정신이 면면이 내려오는 게 한국의 정신사다. 분열과 갈등이 아니라 무쟁과 화쟁과 회통이 우리의 뿌리다.”





원효대사 영정. <한겨레> 자료사진

―그런데 왜 이렇게 우리끼리 다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면면히 이어져온 그 정신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개인 개인이 주관을 회복할 때 남도 나와 같다는 공감력이 생기며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화해시키고 회통시킬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객관이란 미명으로 무한비교하고 경쟁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갈등하게 한다. 화엄으로 마음을 수습해서 주인이 되면 무쟁과 화쟁의 통찰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더 높은 한국 정신을 고양시키려면, 이제 끝없이 바깥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데서 그치지 말고 나아가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을 추스려야 한다.”

―한류 드라마와 영화, 음악에 세계인들이 호응하는 이유는?

“역시 문화에서도 회통하는 능력이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주목을 끄는 것도 노래와 춤만이 아니다. 영상이 가미되어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한가지만으로는 어필하기 어렵다. 영화도 드라마도 케이팝도 종합예술이다. 종합예술에서 우리의 회통하고 종합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한류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머리를 지닌 한국인들이 음악과 미술뿐 아니라 윤리와 도덕, 풍습과 눈치를 종합시켜 만들어낸 것들이다. 특히 서구 예술문화가 퇴폐적인 게 많았지만, 한류는 권선징악적이어서 굉장히 보수적인 이슬람권에서조차 거부감이 없다. 또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문화 예술에 유입되어서 기틀을 다진 것도 한류에 크게 기여했다. 독재시대에 학생운동에 참여한 많은 젊은이들이 감옥에 다녀와 공직이나 대기업에 취업할 수 없어서 문화 예술계에 적잖이 진출한 것이 그 분야의 흐름을 바꾸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1978년작 영화 <호국 팔만대장경>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셨던 탄허 스님이라면 ‘케이정신’을 무어라고 말했을까?

“40여년 전 정치적 혹한기임에도, 탄허 스님은 한국의 미래를 낙관하면서, 한국인이 도덕적으로 세계인을 선도한다며 정역에 근거해 한국의 세계적 사명을 제시했다. 탄허 스님은 도덕적 인재가 나와서 인류를 선도한다고 했다. 그러나 공자 같은 인물이 다시 나와서 세계를 선도하는 시대는 이제 아니다. 한 인물이 아니라 한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이야말로 경제발전에서도 민주화에서도 다른 나라의 귀감이 되는 나라다. 다른 나라를 침탈해서 자신의 부를 이룬 게 아니라 도덕성에 기반하여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장을 이룬 한국이야말로 세계인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케이 문화다. 백범 김구가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한류가 아닌가.”

―우리가 잊고 있는 선조들의 케이정신으로 현대에 되살려야 할 점은?

“전문적인 치밀성이다. 우리 민족은 건성건성 하지 않았다. 팔만대장경보다 더욱 더 자랑스러운 것은 그 책임자인 수기 스님이 대장경을 판각하면서 편찬한 30권의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이다. 이 교정별록은 고려팔만대장경 편집의 저본으로 사용한 초조대장경과 송판대장경, 그리고 거란판대장경 등 3개 판본을 대조해 여러 가지 착오를 바로잡고 그 자료를 수록한 것이다. 수기대사는 처음부터 기준 판본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3가지 판본을 서로 비교하여 가장 정확한 것을 택하는 입장을 취했기에 고려대장경은 그 내용이 가장 정확하다. 그래서 훗날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과 중국의 빈가정사대장경도 우리의 고려대장경을 그 모본으로 삼았다. 총 66종의 경, 율, 론을 검토해 번역자, 권수, 주석, 제목을 검토하고, 경전이 위경인지 진경인지를 판별하고, 누락된 경전을 보충하고, 섞인 경전을 바로잡고, 글자와 행, 문구의 오류를 바로잡아 치밀하기 이를 데가 없다. 고려대장경이 한 글자의 오류마저 용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수기대사의 교정별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세계적인 불교학자인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이 교정별록과 서양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비교해보고, 현대문헌학으로 보면 후자가 수기대사보다 200년 뒤에 만들어졌음에도 오자가 많아 쓰기 어려운 반면 수기대사의 교정별록은 지금 보아도 틀린 게 없이 놀라운 정도라고 한 바 있다. 상감청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학문적 깊이와 정교함으로도 끝장을 보는 정교함이 있다. 우리의 그 정교함을 되찾아야 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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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K정신이다]
③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과 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세번째는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과 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다.
















이동준(85)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 겸 유학대학원장,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장을 지냈고, 한국사상연구원 설립자이자 원장이다. 그의 집안은 한국 철학의 기둥이다. 부친 학산 이정호(1913~2004)는 ‘정역’(조선 후기 김항이 <주역> 원리를 독자적으로 이해해 주창한 역학사상) 연구의 일인자였다. 학산의 애제자이자 도반이고, 이 교수의 손윗동서인 류승국(1923~2011) 전 정신문화연구원장은 우리 문화의 원류인 동방문화를 밝힌 주역이었다. 이 교수의 딸 이선경(55) 박사는 대만국립정치대학에서 주역을 연구한 뒤 <한국주역대전> 편찬팀장을 거쳐, 차기 주역학회장으로 선임된 상태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과천에서 부녀를 만났다. 이 교수가 지어 40여년을 산 단독주택은 학산이 말년에 함께 머물고, 류승국이 자주 드나들던 집이다.

학산은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선어과를 거쳐 의예과에서 의학도 공부한 수재였다. 해방 뒤 일석 이희승이 서울대에 국문학과를 재건하자며 그를 세번이나 찾아왔으나 응하지 않았다. 대신 계룡산에 들어가 3년간 정역을 만든 김항의 조카 덕당 김홍현으로부터 정역을 전수하였다. 그가 세상에 드러낸 정역은 조선의 패망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족적 자존감이 꺾인 한민족에게 희망의 싹을 틔웠다. 우리나라가 세계 변화의 중심이 되어, 조화로운 화합 시대인 후천 시대로 세상을 이끈다는 정역은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국수주의자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쯤으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한류가 세계를 휩쓸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 교수는 사상과 문화에 대해 “중국에서 꽃이 활짝 핀다면 한국에선 열매를 맺는다”며 한국 정신을 ‘다양성의 조화’라고 결론짓는다.



정역 연구의 일인자였던 학산 이정호.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한국 사상은 오랜 세월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때로는 상반된 길을 달렸지만, 궁극적으로 이질성의 통합과 다양성의 조화라는 특징을 지녔다. 천지인 삼재라든가, 유불도 삼교를 포함한 풍류도 등 고대 정신에도 포용성과 통합성이 두드러진다. 또한 형이상의 정신과 형이하의 물질의 양면적 사고가 깔려 있으며, 어느 일면으로 기울어지다가도 다시 양면으로 통합하는 성격을 지닌다. 유불도(교) 모두가 이 땅에 들어온 뒤 그랬다. 한국 사상이 지향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명의 존엄과 인격의 존중이다. 그것이 한국인의 성격과 가치관의 중핵이다.”

그는 또 “한국인들은 평화와 인(仁·사랑)을 지향하면서도, 기질적으로는 의리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무사도 정신이 지배하고, 중국은 좋아도 싫어도 ‘하오하오’ 하며 원만한 군자를 지향한다면, 한국인은 백이숙제와 같은 의리학파가 뿌리내려 불의에 항거하는 선비정신이 강하다. 그래서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지만, 돈을 준다고 해서 반드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돈을 줘도 ‘누굴 거지로 아느냐’면서 돈을 내던지는 게 한국인이다. 학문을 하면서도 목숨을 내거는 게 선비다. 가치중립을 지향한다면서 누군가 자기 새끼를 죽이고 있는데도 ‘난 <중용>이나 읽을게’ 해선 선비라 할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과 700명의 의사를 보라. 700명은 무사나 농부가 아니라, 모두가 선비였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싸운 것이다.”

이선경 박사는 “우리나라엔 경학 고문헌 가운데 역(易)에 관한 것이 가장 많을 정도로 고대부터 정신의 저류에 주역을 비롯한 역의 사유 방식이 흐르고 있었고, 근대에 정역의 등장으로 또 한번 사고 전환의 일대 계기를 맞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문일답이다.



1975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명륜당에서 류승국의 박사학위 수여식 때 학산 이정호와 류승국 전 정신문화연구원장.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한국 철학에 역이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고 보는 까닭은?

이선경(이하 경) “한국, 한국인의 사유 방식에서 역학적 사고방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훈민정음과 태극기를 봐도 그렇다. 류승국은 갑골문을 통해 상고대 동이의 ‘인방족’과 ‘어질 인(仁)’이 한국사상문화의 시발점이라고 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어질 인(仁)’의 인도주의는 단군신화, 최치원 풍류도, 성리학의 태극, 훈민정음, 동학의 인내천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정역에서는 황극이라는 인간론으로 점을 찍었다. 중국에서 황극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표준이었지만, 정역이 말하는 황극은 보통의 인간이 절대주체로 선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18째 아들인 담양군의 13대손인 연담 이운규로부터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남학 창시자 광화 김치인, 일부 김항 세분이 동문수학했다고 하는데?

이동준(이하 준) “연담이 세분을 불러서 이걸 하라고 했다기보다는 최제우는 선도를 중심으로 법을 펴고, 김치인은 불교를 중심으로, 김항은 유교를 중심으로 법을 펴는 특별한 사명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진실은 다 알 수 없다. 연담은 실학자 이서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2006년 ‘학산 이정호와 정역’에 대해 학술 발표를 하고 있는 류승국.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정역은 어떻게 공부를 했나?

준 “학산과 도원(류승국) 등 8~9명이 계룡산 향적산방에 모여 밤엔 영가(음·아·어·이·우 노래)를 하고, 무도(춤)를 했다. 무도를 하다 신명이 나면 튀어 오른다. 영가 무도를 하면 동물과 자연물도 감응한다고 했다. 영가를 하면 그 소리를 들은 호랑이가 찾아왔다가 사람이 눈에 띄면 휙 사라진다고 했다. 겨울에 나가 보면 눈 위에 큰 발자국이 있었다.”

―정역이란 무엇인가?

준 “김항이 36살 때 연담 이운규에게 화두를 받고 54살에 정역의 세계를 깨쳤다. 복희 문왕 팔괘는 봄여름, 정역은 후천 시대인 가을 결실기를 제시한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간방(艮方)이 정역에서 중심이 되면서 간방 중심의 세상이 열리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봄여름 성장기엔 경쟁이 심해 모순이 대립해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다툼이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어른이 된다. 그런 여름이 가야 가을이 온다. 진(팔괘의 ‘震’, 현실에선 중국)이라는 것은 번성하고 화려하게 드러난다. 정역에서 보면 중국이 꽃이라면 우리나라는 열매다. 중국에서 핀 꽃들이 여기에 와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단군 이전 ‘구이’족이 가진 동방문화의 기반에서 유불도와 기독교까지 받아들여 통합했다고 했는데?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이 부친인 학산 이정호가 역의 원리로 밝혀낸 훈민정음의 원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준 “강자가 약자를,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억음존양(抑陰尊陽)의 모순과 갈등을 극복함으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정역에서는 조양율음(調陽律陰, 음양의 조화)의 시대가 온다고 봤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음의 시대가 지나면 양의 시대가 도래한다. 고려 시대엔 가요와 문학이 발달했다. 조선 시대는 고려의 문화예술을 당하지 못했다. 반면 고려는 조선 시대의 철학을 당하지 못한다. 고려는 악이 발달했고, 조선은 예가 발달했다. 고려 말에 자유로움이 심해져 너무 문란해지니 조선 시대는 예법으로 다스린 것이다. 그러자 학문·철학은 발달했지만 부드러움은 사라졌다. 다시 뼈에 살을 붙여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음악, 무용, 연극 등 예체능이 보완되어야 영육쌍전(정신과 육신의 균형 있는 발전)으로 온전해진다.”

―학산이 말한 훈민정음의 핵심은?

준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制字解)에 ‘천지의 도는 하나의 음양오행일 뿐’이라고 했다. 해례본은 역리와 성리학으로 설명되니 언어학만으로 해명이 어렵다. 1940년대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엔 훈민정음의 원리를 알 수 없었다. 1970년대 초 국립중앙도서관이 세계에 알릴 첫번째 우리 책으로 훈민정음을 정한 뒤 이창세 관장이 국문학자들을 찾아다녀도 역학을 모르니 제대로 해설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일석 이희승이 대전으로 학산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훈민정음의 구조 원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정음 글자에는 음양, 오행, 천지인 삼재 그리고 하도의 원리가 들어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뿌리 깊은 인도주의 정신 및 영육쌍전 사상이 뼈대가 되는 원리가 담겨 있다.”



2019년 미국 캔자스대학에 방문교수로 간 이선경 박사가 한국 사상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태극기의 원리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경 “류승국이 ‘우주 만유의 근원이 태극인데, 내 주체가 남의 주체이니 남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 것은 기초적인 설명이다. 태극 모양은 동지부터 하지까지 밤낮 길이의 변화를 말한다. 45도 각도로 줄어들고 늘어나는 비율을 그리면 자연의 리듬을 따른 태극 문양이 된다. 태극 문양은 우리 고대부터 있었다. 태극을 중국 것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음악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틀이지 피타고라스가 만들었다고 그리스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역도 보편적인 사유의 틀이다. ‘기원이 어디냐’보다 그것이 우리 삶 속에서 무엇을 변화시키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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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빅뱅’ 만든 한국인의 기질은 이것에서 왔다

등록 :2022-06-07 18:16수정 :2022-06-08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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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K-정신이다]
②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가무 즐기는 ‘무당열정’에 ‘인문학 교육’, 한류에 작용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두번째는 국제한국학회 회장이자 ‘한국문화중심’ 대표인 최준식(66)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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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템플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한 최 교수는 이미 1990년대 중반에 국제한국학회를 설립한 데 이어 10년 전엔 한국 문화가 중심이 된 복합문화공간인 ‘한국문화중심’(K컬처센터)을 만들어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경복궁 옆 한국문화중심 사무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그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을 경계한다. 종교학이나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기득권의 압력이 두려워 샤머니즘에 대해 애써 무시로 일관하는 것과 달리 샤머니즘, 즉 무기(巫氣)와 신기(神氣)야말로 한국인의 근본적인 기질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데서부터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샤머니즘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무속’이라는 용어 대신 ‘무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한국인의 주요 특질로 유교 인문학적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한 문기(文氣)와 무교적 신기를 꼽는다. 그는 <문기> <신기> <세계를 흥 넘치게 하라> 등 책을 통해 한류의 힘의 뿌리를 말해준다.

최 교수는 먼저 ‘한국인은 누구나 반쯤은 무당’이라고 본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를 때는 700만명이 거리로 나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온 국민이 금을 모으고, 관광버스에 타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네다섯시간 내내 날뛰고, 전국의 노래방에서 밤마다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 밤새 뛰는 무당을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무교는 과거엔 권력과 불교와 유교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이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해 잡신 덩어리 정도로 폄하됐지만, 한국인은 무교를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다”고 평한다. 대표적 유교 마을인 안동 하회마을 한가운데는 당산나무가 버티고 있고, 교회에서 하는 부흥회에서 30~40분간 노래만 하다가 결국 망아경(忘我境) 속에서 통성기도와 방언을 하는 것이 굿판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은 평소엔 자기 종교를 신앙하다가도 문제에 부딪히면 주저하지 않고 쉽게 무당을 찾는다는 것이다. 또 낮엔 유교 선비처럼 지내다가 밤이 되면 무당이 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화된 나라에서 무당이 여전히 20만~30만명이나 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이 <무릎팍도사>와 <물어보살>이어도 생소할 게 없는 것은 무기가 우리 피에 흐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한류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류 뒤에는 문화적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국이 최근에야 단군 이래 처음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주장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한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전 한국외대 교수가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라는 책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은 서양인들에게는 미지의 땅이었지만, 삼국시대부터 17세기까지 세계 13대 선진국 가운데 하나였고, 한국이 후진국이었던 기간은 불과 100~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인류사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만들고, 정보산업의 총아인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고, 오늘날로 치자면 하이테크급 기술로 고려청자를 만들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같은 세계 최고 최대의 기록문화를 남기고,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인문학을 익힌 힘이 있었기에 최단시일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대금을 불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국인이 가진 문기는 어디에서 왔나?

“조선의 인문학은 최고 수준이었다. 서당에 처음 가면 천자문부터 배운다. 이어 소학 같은 윤리서와 역사서를 배우고, 사서, 삼경, 주역까지 배우는 인문학적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어디 있었나.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습격한 프랑스 군인들이 허름한 민가에도 집집마다 책이 있는 것을 보고 열등감을 괜히 느꼈겠는가. 한국인은 교육에 미친 나라다. 부처나 예수가 와도 교육열을 잠재울 수 없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나라가 됐고, 산업화와 민주화에 활용할 인재들이 나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인 아이큐(IQ)는 그런 교육열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무기의 열정에다가 브레인까지 더해졌다. 그러니 2011년 한국에 와본 워런 버핏이 ‘한국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한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까지 이룰 수 있었던 힘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였으니, 미국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필리핀이 아니었다. 조선은 명나라나 청나라보다 더 우수한 통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체제 안에서 공식적으로 왕을 감시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왕에게 직언할 수 있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통령 주변에 딸랑이들만 있는 현대보다도 최고 권력자에게 ‘아니되옵니다’ 하던 시대였다. 설사 왕이 받아주지 않아도 목숨을 걸고, 귀양을 마다치 않고 저항했던 정신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세계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지구상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코리아를 들지 않는가.”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가 한류에 기여했다고 보는 이유는?

“한국인은 우리 집, 우리 딸,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 남편’이라고 하지 ‘내 남편’이라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 ‘내 남편’이라고 하면 ‘너만 남편 있냐’고 비웃는다. 물에 빠져서도 개인주의인 서양인들은 ‘헬프 미’(나 살려)라고 하지만, 한국인은 ‘사람 살려’라고 한다. 한국인은 모임에서도 형, 동생처럼 가족 호칭으로 부르며 친족공동체화한다. 그런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여서 한국의 아이돌도 연습생 시절 집단의 규율에 따라 그 힘든 훈련을 견뎌내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특징은?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게, 중국에서 압록강 하나만 건너면 언어와 말과 문자뿐 아니라 음식이나 옷차림이 달라지고, 특히 음악의 박자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통음악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은 기본적으로 4박자인데, 한국은 3박자다. 정원을 만들 때도 중국이나 일본은 철저히 인간의 손이 타게 인간 위주로 만들지만, 한국은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만들려고 한다. 뇌 구조로 비유하자면 일본은 좌뇌, 즉 논리적이지만, 한국은 우뇌, 즉 감성적이다. 일본의 전통음악계에서는 스승의 것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퇴출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판소리에서 ‘사진소리’, 즉 스승의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한국인들의 핏속에는 자유분방함과 창조에 대한 희구가 있다.”



―한국인의 가장 주요한 기질적 특징을 무기와 신기로 본 까닭은?

“한국과 중국, 일본 동북아 3국은 유교와 불교를 공유하고 있다. 다른 것은 무엇인가. 중국은 도교, 일본은 신도, 한국은 무교다. 여기서 세 나라가 달라진다. 도교, 신도와 달리 한국 무교는 시종일관 노래와 춤을 종교의례로 삼는다. 외국인 제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면 일본인들은 박수 치며 논다. 한국인들이 길길이 뛰며 노는 것을 보면 ‘저렇게 노는 사람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고 놀라워한다. 유세 현장에서도 노래와 춤을 하지 않느냐. 월드컵 경기 때 집단적 망아경 속에 들어가 한국인들이 뿜어내는 열광적인 에너지를 보라. 그 무서운 신기가 지금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방탄소년단 슈가의 ‘대취타’ 뮤직비디오 장면.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국인의 한국 문화에 대한 태도는?

“너무 모른다. 전세계인들이 한류에 열광하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무지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오해를 시정해주지도 못한다. 방탄소년단(BTS)의 슈가가 ‘대취타’를 불러 전세계 아미들이 한국의 전통악기와 음악을 궁금해해도 국악을 모르니 설명을 못 해준다. 블랙핑크가 ‘하우 유 라이크 댓’이란 노래를 부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입고 춤을 추어 세계 팬들이 한복에 관심을 가질 때 한복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연재[한겨레-플라톤아카데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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