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9

알라딘: 최소의 발견 이원 (지은이) 2017

알라딘: 최소의 발견
최소의 발견 

이원 (지은이)
민음사2017-11-17

책소개

25년 동안 시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시가 내게로 왔다는 말, 시가 가르쳐 주었다는 말, 시와 함께한다는 말……. 시와 시인에 대한 이 익숙한 말들에 담겨 있는 동사들, 그러니까 왔다거나 가르쳐 주었다거나 함께한다는 말들은 '나'를 어떤 방향으로 안내하는 걸까? 그리고 그 방향은 시인 아닌 우리의 방향과 얼마나 같고 또 다른 걸까.

이원 시인은 25년차 시인이다. 다섯 권의 시집을 냈고 시집들은 저마다 실험적인 언어와 낯선 이미지들로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하고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했다. 차갑고 이지적인 언어로 현대 문명의 비인간화된 풍경을 그려낸 전위적인 언어 예술가. 시인 이원의 이미지다.

한편 인간 이원은 누구보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사람이다. 이원 시인이 쓰는 모든 안부 글에는 글자 하나하나에도 온도가 담겨 있다. 이토록 모던한 시인이자 이토록 따듯한 인간 이원의 언어주머니에는 어떤 다양한 단어들이 들어 있을까. <최소의 발견>은 시인 이원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자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25년 동안 시를 쓰며 알게 된 가장 작은 것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한 발명 노트이자 발견 노트이다.


목차

1부 이제 세상은 월요일, 오후의 시작
오동나무
포로교환
마네킹
한 마리의양
묵언
아리조나 카우보이
시를 쓰면 비명도 날개가 된다
악의 꽃
나는 거리에서 산다

2부 맥박과 커서
순간
용접
속도
근원
시인의 손은 늘 어리둥절해야 한다
닿으면, 꽃
모니터를 새〔鳥〕로 만드는 방법
이미지와 놀다
오토바이, 모터사이클, 바이크
2095년 래퍼 구보 씨의 일일
‘그 꽃의 끝을 본다는 것’

3부 세잔의 방식으로
본다
‘사과’의 탄생
생각하지 않고 먼저 본다
쓰지 않고 먼저 그린다
언어를 지우지 않고 여백을 지운다
세잔의 손
나는 부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방에 앉아 방을 궁금해하다
피 묻힌 손은 보여 주지 않는다

4부 기계가 좋다 무당이 좋다
지하철역
노란집
산 것/살아 있지 않은 것
콩알만 하게/뜨겁게 만져지는 것
언덕
춘수 선생의 ‘꽃’
최소주의
기계-무당 (1)
기계-무당 (2)

5부 격렬한 내부를 가진
오갈피나무와 부용과 코끼리와 앵두밭과-김춘수
김혜순 시/인을 구성하는 23개 또는 2023개의 거울
안상수 날개 사전
김행숙으로부터 김행숙으로까지
‘복자수도원’의 그이, ‘언니 하나님’ 되다-이진명
절벽을 더 높이 세우는 일에 몰두하는, ‘두루미-천남성’ 인간-조용미
사막에서 강영숙을 만나다
하드보일드-수도승-김경욱
이만하면 괜찮다, 시 하는 일-김사인
친구들이 가는 방향의 어딘가에서-세 편의 축사
네 개의 몸 또는 네 개의 이미지-오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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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초등학교 내내 석천(石川)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에 살았다.
“누군가 다소 진지하게 인생관을 물어 왔을 때 나는, 기회주의자는 아니고 ‘순간주의자’예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너무 먼 시간은 생각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가고 싶은 데 가고 보고 싶은 거 보며 살아요, 우리는 언제 사라질지 몰라요, 그랬더니 그 사람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많이 웃었다. 물론 내 말은 농담조였지만 심정적으로는 진심에 가까웠다.” 

“스물 몇 살 때, 시 비슷한 것 하나 쓰면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며 보고 또 보고 했었다. 카페에서도 보고 버스에서도 보고 자기 전에도 보고 혼자 낄낄거렸다. 스스로 의기양양해져 걸을 때에도 소읍의 불량배처럼 걸었다. 한 가지를 계속하면 더 사무쳐야 하고 더 단순해져야 하고 더 무모해져야 하는데, 왜 그렇지 못할까. 지금부터 다시 그 시간으로 걸어가야겠다. 나는.”  

“시를 쓰면, 내가 세상의 어딘가와 닿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내게는 늘 세상이 낯설었다. 내가 바라고 있는 창밖이 낯선 것이 아니라 내 두 다리로 딛고 서 있는 창 안이 낯설었다. 자라 모르는 사람보다는 바로 옆 사람이 더 낯설었다. 세상에 대한 이러한 느낌은 죽음을 겪기 전부터 시작된, 태생적 불안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사람들이 북적대는 세상 속으로 몸을 쑥 집어넣지 못하리라는 것을 어려서부터 직감했던 것 같다.” 

“잘못 떨어진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새벽이 늘어 간다. 창은 그때마다 아직 어둠을 삼키지 못했고 모니터의 흰 땅에서는 커서가 뛴다. 커서를 들여다보다 나는 내 맥박을 짚어 본다. 엇갈려야만 걸을 수 있는 오른발과 왼발처럼 맥박과 커서는 번갈아 뛴다. 간혹 같이 뛸 때도 있으나 커서의 호흡이 내 몸의 것보다 늘 조금 빠르다. 커서와 맥박이 엇갈리는 그곳이 내 언어들이 생겨나 꼼지락거리는 바로 그 지점이다.” 

“나는 인간이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이보그다. 나는 단단한 것들, 물기가 없는 것들, 뿌리가 없는 것들 쪽으로 열린다. 그러나 220볼트용으로 개조된 몸을 가지고서도 물렁한 것들, 축축한 것들, 뿌리가 있는 것들에게도 느닷없이 몸이 열린다. 이렇게 두 정체성이 충돌하는 나는 울 수도 없는, 땀을 흘릴 수도 없는 한밤의 검은 거울과 같다. 내 삶과 언어는 인간과 사이보그라는 가파르게 균열된 몸의 경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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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원 (지은이) 

시 쓰는 생물이라고 적어본다. 시가 제일 어렵고 점점 모르겠고 그런데 사랑을 거둘 수 없다고도 적어본다. 시가 알려준 것들로 상당 부분을 지탱시키며 시간을 통과한다. 인간이 만든 색과 향을 좋아하며, 다름의 동시성이 깃드는 ‘모순’을 자주 뒤척인다. 마음의 등불이 꺼지는 순간이 있어 성냥을 모은다. 파란 머리를 가진 성냥인데 통마다 향이 다르다. 성냥이 곁에 있으면 불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불가능한 종이의 역... 더보기

수상 : 2018년 시인동네문학상 , 2005년 현대시작품상
최근작 : <시를 위한 사전>,<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나는 나의 다정한 얼룩말> … 총 3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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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지은이)의 말

가장 작은 것, 최소를 발견하기까지는 최대 속에서 헤매게 된다. 그러고 나면 최소를 발견하는 시선이 생긴다. 최소의 발견만 하겠다는 자발적 능동성이 생긴다. 이 동선을 겪으면 필요라는 실용적 단어를 동화적 단어로 바꾸는 힘이 생긴다. 최소로 최대를 지탱시키는 마법을 갖게 된다. 최소라는 점이 들어 있어야 최대라는 풍경에 멈추게 된다는, 최대 속에는 이미 최소가 들어 있다는 비밀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므로 최소는 처음 선택이자 마지막 선택이다. 모든 것을 다 버려도 포기 못하는 그 무엇, 그러니까 뛰는 심장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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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꼭 필요한 하나에 집중하기
꼭 필요한 하나를 발견하기
미니멀리스트 시인 이원이 일상과
예술을 바라보는 ‘최소’의 시선들

25년 동안 시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시가 내게로 왔다는 말, 시가 가르쳐 주었다는 말, 시와 함께한다는 말……. 시와 시인에 대한 이 익숙한 말들에 담겨 있는 동사들, 그러니까 왔다거나 가르쳐 주었다거나 함께한다는 말들은 ‘나’를 어떤 방향으로 안내하는 걸까? 그리고 그 방향은 시인 아닌 우리의 방향과 얼마나 같고 또 다른 걸까. 이원 시인은 25년차 시인이다. 다섯 권의 시집을 냈고 시집들은 저마다 실험적인 언어와 낯선 이미지들로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하고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했다. 차갑고 이지적인 언어로 현대 문명의 비인간화된 풍경을 그려낸 전위적인 언어 예술가. 시인 이원의 이미지다.

한편 인간 이원은 누구보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사람이다. 이원 시인이 쓰는 모든 안부 글에는 글자 하나하나에도 온도가 담겨 있다. 이토록 모던한 시인이자 이토록 따듯한 인간 이원의 언어주머니에는 어떤 다양한 단어들이 들어 있을까.『최소의 발견』은 시인 이원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자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25년 동안 시를 쓰며 알게 된 가장 작은 것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한 발명 노트이자 발견 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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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주의자의 생활

『최소의 발견』은 간결하고 심플한 생활 방식에 대한 시인의 예찬론이다. 이원 시인은 순간에만 집중하고 순간만 믿는 순간주의자다. 순간주의자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으로 몸을 확장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에 메어 있으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순간’이라는 뜨겁고 고통스러운 찰나, 시인에게 ‘자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이러한 찰나에만 가능하다. 순간주의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 준 ‘순간’들에 대한 기록. 첫 번째 발견이다.

닿고 있다는 느낌

‘닿다’는 이 산문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 중 하나다. 시를 쓸 때 시인은 어떤 느낌일까. 닿고 있는 느낌이다. 이원 시인은 세상과 닿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 좋아서 멈추지 않고 계속 썼다.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 열리고 닫히는 지하철 문을 보며 시를 쓰는 순간, 동굴에서 빠져나오고 동굴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하철을 바라보는 순간, 시인은 시를 통해 순간을 알아채고 순간 안에서 시를 쓴다. 그를 시인으로 만드는, 어떤 닿고 있다는 느낌. 두 번째 발견이다.

깨끗하고 과장 없는

『최소의 발견』은 시인의 시론이자 예술론이기도 하다. 순간주의자인 동시에 최소주의자인 이원 시인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예술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림, 조각, 사진, 타이포그래피…… 예술은 많고 일상은 예술이다.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 그림과 조각과 사진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 안에 누워 있던 예술에 대한 감각들도 깨어난다. 깨끗하고 과장 없는 최소주의의 시선으로 찾아낸 예술 감상기. 세 번째 발견이다.

시인의 사랑

시인은 사랑할 때 어떤 말을 할까? 시인의 촉수는 언제나 언어를 향한다. 그러므로 선배 시인 김춘수의 말투부터 동년배 시인 김행숙의 목소리까지, 존경하는 시인 김혜순에 대한 마음부터 아끼는 후배 김민정 시인에 대한 마음까지, 그가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며 오래도록 생각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원 시인 특유의 언어 묘사로 전달된다. 다정한 관찰기이자 애정 어린 고백록. 네 번째 발견이다. 더 작고 더 많은 발견들이 당신에게 들키려고 숨죽이고 있는 지금, 이원의 발견을 읽으며 우리 각자의 삶을 위한 최소의 발견도 시작될 것이다. 접기



북플 bookple

평점 분포
    9.2
100자평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울림이 있습니다.
응축된 문장 속에 깊은 사유와 온기가 있는 이원 시인의 산문집. <최소의 발견> 추천하고 싶습니다.  구매
kamang 2017-12-02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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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한 미사여서 미안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체˝라는 게 뭔지 정말 제대로 보여주네요. 최소의 글 속에 꼼꼼하게 숨겨둔 여백들, 같은 글을 몇 번 읽어도 좋습니다. 
풀 2017-11-2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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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에 무엇을 하는 시인인가 라는 질문의 무서움. 궁핍한 시대라는 것을 아예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최소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 어둠이 전부가 되면 지금이 어둠이라는 것조차 모른다는 것. 그걸 하는 자가 시인이라는 것. p.67 
amalia 2017-12-10 공감 (1) 댓글 (0)
     
시집들 만큼이나
최소의 발견들이네요
최소를 통해 최대를 창출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나는 나야라고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고 싶은  구매
sukhee1796 2018-12-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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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전체 (4)
     
닿을 수 없는 깊이

 겨울이 차지했던 공간이 사라지고 봄이 도착했다. 대청소를 계획하기도 하고 옷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입은 옷들을 버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버리고 싶은 것들이 눈에 보인다. 책, 그릇, 옷을 정리한다. 내가 모두 좋아했던 것들이며 한때는 집착할 정도의 욕심을 부린 것들이다.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고 할까. 그러니 이원의 산문집 『최소의 발견』은 끌리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거기다 시인의 산문은 언제나 묘한 동경이 있지 않은가. 미리 말하자면 이원의 시집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읽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원의 글을 처음 읽는 거나 다름없다. 공교롭게도 항상 밤에 읽었는데 낮보다는 밤에 더 깊게 문장에 취할 수 있었다.

 최소는 꼭 필요한 하나에 집중하기다. 꼭 필요한 것을 발견하겠다는 의지다. 그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은 대부분 놓쳤다는 뜻이다. 가장 작은 것, 최소를 발견하기까지는 최대 속에서 헤매게 된다. 그러고 나면 최소를 발견하는 시선이 생긴다. 최소의 발견만 하겠다는 능동성이 생긴다. (「서문」, 7쪽)

 ‘최소’라는 말을 떠올리면 아주 작은 것, 뭔가 부족한 것들이 따라온다. 그런데 시인의 글을 읽고 보니 가장 소중한 것이나 가장 놀라운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그 안에서 나만의 의지를 확립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유지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닐 것이다. 어쩌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극히 관념적인 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으로 순간을 즐기는 삶이란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는 순간주의자가 되고 싶어진다.

 나는 정말 순간주의자다.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도 전생 같다. 나는 순간만 알겠다. 그래서 무모하다. 어쩌다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까지 몸을 확장시키면 금방 불안해진다. 아무 의미 없이 질러 대다 사라지는 아이들이 외마디 비명 같은, 신명으로 들끓어 오르는 무당의 맨발이 올라탄 작두 위 같은, 순간이라는 뜨겁고 고통스러운 찰나가 좋다. 어쩌면 나는 순간에는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 48~49쪽)

 순간 궁금하다. 무엇이 시인을 순간주의자, 최소 발견자로 살게 만들었을까. 그것이 시의 원천이었을까. 어린 시절 경험한 가족의 죽음, 고독, 그리고 시. 하나의 사물을 통과해서 시를 품고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산문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남다른 시선, 모든 것이 시로 끝을 맺는 듯한 느낌이다. 시를 쓴다는 뜨거운 자부심과 함께 시와 닿는 순간을 위한 처절한 고통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삶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비명 지르고 싶은 순간들이 내게도 있지만 바로 그 순간 비명을 몸 안으로 넣고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비명이 삶을 일으켜 세워 준다는 것도, 비명이 내 날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 나는 이제 삶이 그리 비장하지 않은 것임을 안다. 시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시를 쓰면 비명도 날개가 된다」, 35쪽)

 잘못 떨어진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새벽이 늘어 간다. 창은 그때마다 아직 어둠을 삼키지 못했고 모니터의 흰 땅에서는 커서가 뛴다. 커서를 들여다보다 나는 내 맥박을 짚어 본다. 엇갈려야만 걸을 수 있는 오른발과 왼발처럼 맥박과 커서는 번갈아 뛴다. 간혹 같이 뛸 때도 있으나 커서의 호흡이 내 몸의 것보다 늘 조금 빠르다. 커서와 맥박이 엇갈리는 그곳이 내 언어들이 생겨나 꼼지락거리는 바로 그 지점이다. (「모니터를 새{鳥}로 만드는 방법」, 75쪽)

 우아하고 매혹적인 산문집이다. 허투루 내줄 수 없는 시인의 감정을 일부만 보여준다고 할까. 한 번도 꺼내 보여주지 않았던 비밀의 조각과 함께 말이다. 시 쓰는 게 너무 좋아서 시 비슷한 것을 쓰고 매일매일 가방에 넣고 꺼내 보았다는 스무 살 무렵의 시인을 만나고 화가 세잔에 대한 이야기, 그림을 통해 시를 말하는 시인. 그러므로 이 산문집을 읽는 독자는 시인 이원과 비밀을 공유한 것이다. 특히 그녀가 좋아하는 이들에 대한 글은 더욱 그렇다. 시인 김춘수, 김혜순, 김행숙, 조용미, 김민정과의 인연과 그들을 향한 사랑. 소설가 강영숙과 김경욱과의 우정, 그리고 스승 오규원에 대한 존경까지.

 시인의 산문을 읽는다는 건 시를 읽는 그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것은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섣부른 자신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원의 시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뿐 아니라 그녀가 사랑한 시인의 시도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거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깊이라서 힘겨운 산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산문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최소의 발견』이라고 말하겠다.

 최초의 방이 자궁이라면, 최후의 방은 무덤인가. 방은 삶과도 연결되며 죽음과도 연결된다. 그러므로 방은 삶이며 죽음이다. 그러므로 삶은 죽음이며 죽음은 삶이다.  (「방에 앉아 방을 궁금해하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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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8-04-06 공감(2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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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 줄 것 『최소의 발견』 

『최소의 발견』은 시인 이원의 자신의 인생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아가 다른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아우르며 삶의 순간순간들을 담아낸 산문 책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순간주의자’라고 말한다. 너무 먼 시간을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집중해서 잘 살자는 의미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마치 미래가 없을 것처럼 오늘을 마음대로 소비하자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세상, 태생적인 겁 많음과 어렸을 적 겪은 가족의 죽음. 그녀는 어쩌다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까지 몸을 확장시키면 금방 불안해진다고 털어놓는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 건 아닐까. ‘최소의 발견’을 자신의 중심으로 삼아 일상의 어떤 순간이나 거기에 존재하는 감각, 꼭 필요한 하나에 집중하기로 한 것 말이다. 그러나 ‘최소’라고 해도 절대 얕봐서는 안 된다. 작가에게는 바로 이 ‘최소’는 곧 최대를 지탱시키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지만 역시 그녀의 인생에 있어 ‘시’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서울 예대 2학년, 용기를 내어 가족사에 대한 시를 썼는데 그 과정을 통해 그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작가에게 시는 낯선 세상 속 불안을 가라앉혀주고 어딘가와 닿게 해주는 연결고리다. 그리고 그녀는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살아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것만 봐도 우리는 작가에게 있어 시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생동감을 주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삶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비명 지르고 싶은 시간들이 내게도 있지만 바로 그 순간 비명을 몸 안으로 넣고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비명이 삶을 일으켜 세워 준다는 것도, 비명이 내 날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 나는 이제 삶이 그리 비장하지 않은 것임을 안다. 시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p.35)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 주라는 말이 인상 깊다. 그러다 보면 저마다의 고통과 불안, 슬픔은 어느새 자신 편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 역시 남에게만 친절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본인을 좀 더 챙길 일이다. 앞으로는 자신에게 상냥하고 너그럽게 대하기를. 그리고 자신의 아픔이나 약한 부분도 달래고 쓰다듬으며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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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빛책갈피 2018-05-1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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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단어들을 만났다.

이원 시인이 쓴 에세이를 읽었다. 재미있고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서 리뷰를 남긴다. 이원 시인하면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가 생각난다. 워낙에 임팩트 있는 제목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는데 바로 그 시인이 이번 가을에 에세이집을 냈다. 에세이를 읽어내려가는데 반가운 단어들이 등장했다. '산울림 소극장', '미도파 백화점', '오규원 시인',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 라는 단어를 보고 작가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동질감을 느꼈다. 산울림 소극장에서 연극 보던 일이 생각나는데, 산울림 소극장은 대학로 소극장들과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홍대 앞에 홀로 고고하게 자리잡은 채로 굉장히 문학성 짙은 연극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산울림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려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감성이 마구 샘솟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오규원 시인 산문집에 나온 한 구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니 오규원 시인의 책을 찾아서 보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또한 반가웠던 이름으로 로버트 프랭크가 등장하는데 정말 그 당시는 사진 작가의 작품집을 보면서 논평하고 그랬다. 요즘은 로버트 프랭크 이름 들어보기 힘들다. 강렬한 흑백사진에 담긴 예술 세계를 탐구하던 그 열정이 생각난다. 사진에 담긴 작가의 정신을 배워 보려고 하던 기억이다.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이번 겨울에 이 책을 읽고 시인과 정서적으로 가까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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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2017-12-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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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발견

나에게 시란 가끔 마음의 위안을 주고 영감을 주는 것이지만 그리 오래 밀접하게 붙어서 나를 위로해주고 감싸주는 존재는 아니다. 
사실 글을 좋아하는 편이고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잠깐 멀어지면 어느 순간 잊혀져버린 존재가 되는 것이 글이고 책이다.
게다가 훨씬 짧게 읽을 수 있는 시조차 나의 마음을 오래 붙들어주지 못하는데..
그러나 최소의 발견 작가는 나와 달리 시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사람을 얻고 세상을 얻고 
자기 자신을 얻은 것 같다.
그것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작가님에게 시와같은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시의 매력을 알고 느껴본다면 새로운 세계를 접해보는 것이니 나쁠 것은 없는 것 같다.
책의 내용과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연관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의 발견과 반대되는 사례가 떠오르는 것 같다. 최근에는 훈민정음 혜례본을 가지고 국가에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시민이 있는데 그것을 보며 생각한 것은 어차피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텐데 뭐 저리 꼭 붙잡고 놓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조차도 그런 것이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떠나지 못한다.
그러니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본다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작가님의 세상과 만나보고 싶다면 최소의 발견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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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꺼져 2018-10-31 공감(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