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2

[이정모 칼럼] 호신불호학(好信不好學)이면…Yuik Kim 이 글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Yuik Kim

이 글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우선은 ‘단학선원’. 원종우씨가 뉴스공장에 나와 자신의 경험을 소개할 때 나도 모르게 ‘피식’. 나도 그와 거의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 4학년, 그리고 대학원 석사과정에 있을 때, 이 단체의 캠퍼스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며 단전호흡을 배웠다 (나는 대전에 있는 KAIST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얼굴이 발그레하고 순진하던, 동생뻘의 청년강사가 열심히 지도를 해줬는데,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사는지, 좀 궁금하다. 사실, 한동안은 나름 열심히 수련에 참여했는데, 나는 이런 수행법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듯,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이 단체의 상업적, 종교적 면모도 마음에 걸리는 측면이 없지 않았고... 여하튼 그 후에도 몇번 이 단체를 접촉할 기회가 있었지만, 크게 인연을 맺을 일도 없었고, 관심도 수그러들었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시점에서 나와 더욱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영성, 신비주의, 주역(점).

나는 이공 계통 공부를 하긴 했지만, 과학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혹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부정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성, 신비주의 혹은 종교적 요소와 그 표현의 대부분이, 설사 '메타포어'로 읽혀야 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 두지는 않는다. 

회의주의 스켑틱과 불가지론 사이의 어느 지점 사이를 배회하는 정도, 어떨 때는 또 일정 부분, 한발을 걸치고, 참여도 할 수 있는 태도가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자세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 (메타포어 이상의 영성을 주장하시는)과의 대화와 협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또 이런 인류의 오랜 지혜와 경험이 녹아있는 자산의 가치를 긍정하고 적극 활용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나 태도는 예전과 달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면 우리 조상들과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과 실질에는 많은 차이가 생겼으니까. 
하지만 그런 태도의 변화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하기 위한 것이 돼서도 안된다. 

‘뇌과학’ 유사과학 논란이 좋은 사례가 되는 것 같다. 
주위에 주역점을 일상적으로 보는 분들이 계신데, 이번 논란을 유의하셨으면 한다. 

나는 이 분들과 깊이있게 협력을 한 적도 있고,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내 부주의로, 또, 그 시점의 필요성 때문에, 굉장히 심하게 그 폐해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 분들중에 내가 아직도 친구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메신저와 메시지가 ‘좋아도’ 의심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이정모 선생의 충고에도 귀를 기울이시길 권고해 본다.


[이정모 칼럼] 호신불호학(好信不好學)이면…

[이정모 칼럼] 호신불호학(好信不好學)이면…
입력 2019.05.15

공자가 말씀하셨다. “유(由)야, 너는 여섯 마디의 말에서 여섯 가지 폐단이 따른다는 말을 들어보았느냐?” 선생님이 제자에게 이렇게 물어봤을 때 나오는 대답은 뻔하다.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이게 배움을 청하는 자세다. “거기 앉아라. 내가 설명해주마.” 공자는 이어서 여섯 마디 말에서 따르는 여섯 가지 폐단을 가르치신다. 그 가운데 세 번째 마디와 그에 따른 폐단은 이러하다. ‘호신불호학(好信不好學) 기폐야적(其蔽也賊)’ 요즘 말로 하면 ‘믿기만을 좋아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사회의 적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믿는 것은 쉽다. 하지만 공부가 어렵다. 왜냐하면 공부란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가 질문하면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주변에 믿지 못할 놈들 천지인데 의심이 뭐가 어렵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다. 하지만 의심하기 어려운 이유가 의외로 많다.

첫 번째 이유는 메시지가 좋기 때문이다. 버스 뒷자리에 앉은 고운 아주머니가 초등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딸에게 하는 이야기다. “엄마가 책에서 읽었는데, 물에다 대고 ‘넌 참 곱구나, 나는 너랑 놀고 싶어, 사랑해.’ 같은 좋은 이야기를 하고서 얼리면 대칭형의 예쁜 얼음 결정이 생기고, ‘난 네가 싫어. 꺼져. 죽어버려.’ 같은 나쁜 이야기를 하고서 얼리면 아주 못생긴 얼음 결정이 생긴대.” 일본 사람이 쓴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우리나라에서만 수십만 부가 팔렸다. 아직도 5월 초가 되면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엄마 몰래 투명 텀블러를 냉동고에 숨긴다. 자기 마음을 담은 예쁜 결정의 얼음을 어버이날에 선물하기 위해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도대체 물은 몇 가지 언어를 이해해야 하는가? 예쁜 말에서 특정한 파장의 에너지가 나와서 물 분자를 진동시켜 특정한 모양이 되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말은 쉽게 믿게 된다. 왜냐하면 메시지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예쁜 생각을 하고 고운 말을 쓰라는 것 아닌가. 우리는 그래야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무턱대고 믿기만을 좋아하면 안 된다. 공부해야 한다. 공부란 의심이다. 우리는 의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폐단이 될 수도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메신저가 좋기 때문이다. 우리는 훌륭한 분의 말씀은 믿고 싶어한다. 선생님, 목사님, 스님, 신부님, 문재인 대통령, 공자님처럼 좋은 사람들의 말은 쉽게 믿는다. 먹거리 운동가나 환경운동가처럼 자신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사람들의 말을 쉽게 믿는다. 왜? 메신저가 좋으니까. 좋은 사람이 설마 나쁜 이야기를 했을 리는 없으니까 믿으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왜 훌륭한 분들이 하는 이야기가 다 다른지 말이다. 핵발전소, 성소수자, 신도시 건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목사님, 신부님, 스님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지지하는 정당도 다르다. 좋은 메신저가 하는 이야기가 다 다르다면 그들의 메시지도 당연히 의심해야 하다.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치유시키고자 하는 어떤 한의사 선생님은 얼마나 훌륭한 생각을 하셨는가. 하지만 그를 의심하지 않아서 생긴 폐단은 너무나 컸다. 나는 환경운동가들의 삶을 존경한다. 하지만 GMO, MSG, 전자(기)파의 위험성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무턱대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말도 의심해야 한다.

의심해야 할 주제로는 호흡도 있다. 호흡이란 생명체가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생명 활동이다. 호흡을 위해서는 산소가 있는 공기 또는 물과 직접 접촉하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 허파와 아가미 그리고 피부 그리고 곤충의 기문(氣門)이 그것이다.

그런데 뇌호흡이라는 게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안 나오는 단어인데, 뇌호흡에 관한 책은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 권이나 팔렸다. 이 책에 따르면 뇌호흡은 다양한 방법으로 뇌를 자극하고 운동시킴으로써 뇌의 긴장을 제거하고 뇌가 원래의 편안한 상태를 회복하도록 돕는다고 한다. 뇌가 적당한 긴장과 이완을 유지하며 최적의 상태가 될 때 육체적인 차원의 호흡을 주관하는 연수도 최상의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

그런데 왜 과학 교과서에는 안 나올까? 과학자의 의심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충분한 과학적인 연구와 증명 과정이 없다. 그런데 21세기에 왜 다시 과학계에서 회자되고 있을까? 어처구니없게도 논란의 한복판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있다. 뇌호흡을 주장하는 한 단체가 주최하는 컨퍼런스를 과기정통부가 후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훌륭한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의심하지 않고 후원하기로 했을 것이다. 다행히 행사 전에 후원은 철회되었지만 이번 사태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겼다.

만유인력은 반대할 수 없다. 의심의 장벽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의심은 세상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이다. 공자님 말씀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