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3

이정우 “오늘날 철학 화두는 자연과 사물, 세계 둘러싼 거대한 변화죠” : 한겨레

“오늘날 철학 화두는 자연과 사물, 세계 둘러싼 거대한 변화죠” : 학술 : 문화 : 뉴스 : 한겨레

“오늘날 철학 화두는 자연과 사물, 세계 둘러싼 거대한 변화죠”

등록 :2022-02-02 
강성만 기자 사진

[짬] 소운서원 이정우 원장

이정우 소운서원 원장. 본인 제공

<파라-독사의 사유/장자와 철학>(그린비).

철학자인 이정우 소운서원 원장이 재작년 서원에서 동양 고전 <장자>를 강의한 내용을 보완한 책이다. 이 원장은 만 39살 되던 1998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사직하고 2000년부터 대안공간인 철학아카데미와 소운서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쳐왔다. 그가 2011년 첫 권을 낸 역작 <세계철학사>(길)는 최근 ‘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라는 부제를 달고 3권까지 나왔다.


그는 서울대 공대를 나온 뒤 철학으로 전공을 바꿔 서양 고대철학과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철학 연구 초기부터 전공의 틀에 갇히지 않고 폭넓게 동서양 사유를 가로지르는 공부를 해왔다. 중국과 인도·한국 등 아시아철학사를 다룬 저작 <세계철학사 2>(2018)의 폭과 깊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원장이 이번에 <장자> 내편 텍스트로 자신의 독자적인 사유를 펼친 <파라-독사의 사유/장자와 철학>은 다산 정약용을 다룬 <인간의 얼굴>(1999)에 이은 저자의 두 번째 ‘동양철학’ 연구서다.

지난 31일 전자우편으로 저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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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독사의 사유> 표지.

전쟁과 살육, 권모술수가 판치던 기원전 4세기 중국 전국시대에 쓰인 <장자>를 두고 이 책의 한국어 번역자 고 안동림 선생은 “인간 사회의 일체 속박에서 해탈하여 절대 자유의 정신을 찾고 자연과 하나 되는 경지를 추구한 책”이라고 규정했다. 이 원장도 <세계철학사 2>에서 “장자만큼 현대인의 사유를 일깨우고 비전을 촉발해주는 동북아 철학자도 드물다”고 썼다. 

그 이유를 묻자 이 원장은 “<장자>에서 ‘파라-독사의 사유’를 발견해서”란다. 
그리스어로 파라(para)는 나란히, 독사(doxa)는 통념이란 뜻이다. 
“파라-독사는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 옆에 나란히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세계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상식적인 사고와 세속적인 가치를 뒤집고 또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사고한 장자의 통찰에 왜 낯선 그리스어 ‘파라-독사’가 붙는지 설명이 이어졌다. “<장자>에서 독사는 ‘성심(成心)’이란 개념으로 표현됩니다. 이 말은 두 가지 다른 의미가 있어요. ‘오늘 월나라로 출발해 어제 도착했다’와 같은 궤변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은 긍정적이죠. 하지만 도를 깨달으려면 성심의 수준을 넘어서야죠. 이게 바로 ‘파라-독사’의 사유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것을 어떤 문제의 한 해(解·풀이)로 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이 해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가 아는 해가 아닌 다른 해도 있음을 발견해야죠. 그로써 지금 우리의 세계를 바꾸어 나갈 수 있어요. 파라 -독사는 부분적인 통념으로부터 도의 진리로 나아가는 사유이죠.”

그는 기후위기나 양극화 등 오늘날 인류의 문제에 영감을 주는 장자의 사유 중 하나로 양생술(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기술과 방법)을 꼽았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푸코가 사유했던 ‘생명정치(biopolitique)’의 세계입니다. 효율성의 가치에 입각해 사람들을 철저히 관리하는 이 생명정치 사회는 최근 인공지능의 현실화로 더 가혹한 시대로 접어든 듯해요. 양생술의 ‘생명’은 이 생명정치의 생명과 대결해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본래 생명의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는 운동으로 볼 수 있어요. 이는 서구의 근대성을 모델로 형성된 오늘날의 문명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으로도 볼 수 있죠. 기후위기도 양생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집니다. 양극화는 다른 각도의 접근을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만, 이 역시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양생술과 연결됩니다.”

<장자>에는 소 잡는데 도가 튼 백정 포정의 해우 이야기가 나온다. 이 원장은 이 이야기로 장자 양생술의 현재적 의미를 풀었다. “해우 이야기는 포정이 소의 마디와 결을 따라 칼질할 때 신명에 든 것처럼 할 수 있고 또 칼을 망가뜨리지 않고도 소의 뼈와 살을 잘 발라낼 수 있음을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지금의 문명은 자연의 마디와 결을 무시하면서 그것을 해부하고 있죠. 마디와 결에 맞지 않을 경우 칼을 무지막지하게 크게 만들어 아예 자연의 마디와 결을 부러뜨리고 헤집고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각종 재해는 이런 폭력적인 자연 착취의 결과들입니다. 그렇게 얻은 부는 자본가들에게 돌아가죠. 양생술이 이런 흐름에 직접 맞서는 힘이 되기는 힘들 겁니다. 그러나 문명의 흐름 전체에 대해 반성하고 삶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해 주는 철학적 기초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장자’ 매개로 독자적 사유 펼친

‘파라-독사의 사유/장자와 철학’ 내

“장자는 우리가 아는 ‘풀이’ 아닌

다른 ‘풀이’도 있음을 알려주죠

양생술 ‘삶의 가치 전환’에 영감”

20여년 대안공간서 철학 공부·강의



장자 이야기 중 가장 마음을 끈 게 뭐냐고 묻자 이 원장은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다수 있지만 철학적으로는 아무래도 ‘제물론’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세 가지 퉁소(사람퉁소 , 땅퉁소 , 하늘퉁소 )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다”고 했다. “이 이야기에 장자 사유의 전체가 압축되어 있죠.”

이번 <장자> 연구서의 큰 특징은 기존 주석서들과 달리 원문 이야기를 끊지 않고 통으로 옮긴 점이다. “철학적 이해를 위해 세밀한 분석보다는 이야기·논의 전체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번역했다”는 설명이다. “<장자>는 한 편의 문학작품이어서 문장의 호흡을 리드미컬하게 하고 또 장면 장면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살리려고 상당히 고심해 번역했어요.” 원뜻을 최대한 살리며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번역한 한문 실력의 원천을 궁금해하자 그는 “어릴 때부터 한학자 아버지와, 조부의 한의사 친구에게 한문을 배웠다”고 답했다. “어린 시절 제 주변이 전체적으로 고전적인 분위기였어요. (동양) 고전은 중학교 때 본격적으로 배웠죠. 중·고교 시절 한문 수업이 제게는 너무 싱거웠어요.”

동양 철학사의 양대 축인 유가와 노장 사상 중 어디에 더 끌리느냐는 물음에는 “양자가 상보적”이라고 답했다. “장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할 수 있게 해 주고 , 공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할 수 있게 해 줍니다 . 사회적인 삶의 테두리 내에서는 공자의 가르침이 중요하고 ,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할 때는 장자의 통찰이 중요해요. 딱히 어느 쪽에 끌린다기보다는 양자가 상보적이어야죠.”

그는 2006년 저서 <탐독>에서 군부독재 시절인 1980년대 시대 상황이 자신의 인생 항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썼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흘렀다. 지금 시대의 화두는 뭐고 거기에 철학은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세 가지 문제가 있어요. 자연과 세계, 사물을 둘러싼 거대한 변화이죠. 자연의 전반적인 변화,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인한 사물 개념의 변화, 사이버공간의 등장으로 인한 세계 개념의 변화입니다. 뇌과학, 인공지능 등 생명과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한 인간관의 변화도 있고요. 철학은 이런 문제들을 존재론적으로 개념화하고 미래 문명의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던 생명정치라든가 양극화, 국제관계의 불안정 등 정치적인 문제들도 있죠. 철학은 이런 문제들을 윤리적으로, 정치철학적으로 개념화하고 해결 방향들을 제시해야죠. 아울러 매체 환경, 교육 환경, 문화 환경의 변화로 인해 사유 자체가, 사상 자체가 퇴조하고 모든 것이 즉물화하는 경향과도 맞서 싸워야죠.”

이 원장은 ‘사유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가로지르기의 삶’으로 규정한다. 철학 내 칸막이를 허무는 것은 물론 과학, 역사, 사회과학, 문학까지 자유롭게 주유하며 자신의 사유가 흘러가는 대로 공부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에서 이런 유목적 사유가 가능할까? “제가 학계라는 곳, 대학이라는 곳에서 느꼈던 것은 편협함입니다. 진정한 사상이나 사유의 추구가 아니라 섹터(구역)들을 분할하고 그중 하나의 섹터를 전공하면서 아집의 성을 쌓는 모습이었죠. 가로지르기는 자신의 문제의식에 입각해, 기존의 격자(가로세로를 일정한 간격으로 직각이 되게 짠 구조)를 가로지르면서 독자적인 사유를 행함을 뜻합니다. 지금 제도권 내에 가로지르기 교육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제도권 교육은 가로지르기와 함께 가기 힘듭니다. 제도권 교육은 하나의 직업이고 또 격자화되어 있어 가로지르기를 하기는 어렵죠.”

그가 대안공간에서 공부공동체를 꾸린 지 올해 22년이다. 그 사이 이 세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정치적으로 다소 희석된 반면 전문적으로 분화한 느낌이 있습니다. 2000년대 대안공간은 ‘운동’의 뉘앙스를 띠고 있었고, 군정과 싸우면서 민주화해 온 흐름을 이어가려는 사회 변혁에의 열망이 강했습니다. 아직까지 ‘사상’이라는 것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이런 강렬한 정치적 맥락이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사상’에서 ‘대중문화’로 옮겨 가버렸죠. 매체의 변화가 이런 흐름을 부추겼습니다. 모든 것이 짧고 가볍고 즉물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반면 대안공간이 분화되면서 일정 정도 전문화된 면도 있습니다. 매우 많은 곳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대안적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공간들이 어떻게 소통하고 힘을 합쳐 시대에 대항할 것인가가 화두라 하겠습니다.”





이정우 원장. 본인 제공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동서양 철학의 큰 차이를 물었다. “지중해세계의 철학은 어떤 ‘아르케’(원리)를 찾아가는 철학입니다. 궁극의 어떤 존재자가 있고, 그것에 의해 세계의 모든 것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유이죠. 이 점에서 점의 사유입니다. 반면 동북아 철학은 도가 우리 삶에 깃들어 있어 우리 삶이 도에 의해 흘러간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도에 합치하는 삶은 어떤 선을 그립니다. 도에 부합하는 길/선을 따라서 흘러가는 삶을 살아가려는 사유이죠. 또 지중해세계의 철학은 ‘작(作)’의 사유입니다. 만듦의 사유죠. 특히 기독교를 비롯한 일신교들이 모두 ‘작(作)’의 사유죠. 반면 동북아의 철학은 ‘생(生)’의 사유입니다. 낳음의 사유죠. 끝없이 내재적으로 ‘생-성(生-成)’하는 사유입니다.”

앞으로 집필 계획은? “지금 <세계철학사 4>를 거의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작활동은 두 갈래로 할 생각입니다. 철학에 무게중심을 두는 저작들과 철학사에 무게중심을 두는 저작들이죠. 전자로서 현재 진행 중인 두 권은 <무위인-되기:세계, 주체, 윤리>와 <아이온의 시간>입니다. <무위인-되기>는 ‘타자-되기’와 ‘내재적 가능세계론’을 통해 세계, 주체, 윤리의 문제를 다룹니다. <아이온의 시간>은 시간에 관한 책으로, 시간의 존재 유무, 시간의 흐름 유무를 논하는 저작입니다. 현재 구상 중인 저작은 <동물, 인간, 기계:인공지능 시대의 휴머니즘>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동물, 인간, 기계 삼자의 관계를 다루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운명을 가늠해보는 책이죠. 후자로서 현재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저작들로는 <동학의 정신:다시개벽의 철학>과 <파르티잔-철학자:박치우와 그의 시대>입니다. <동학의 정신>은 동학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이돈화의 저작을 비판적으로 논하고, 우리 시대에 걸맞는 동학의 철학을 ‘다시개벽의 철학’으로서 제시하는 저작입니다. <파르티잔-철학자>는 철학자이면서도 총을 들고서 파르티잔이 되어야 했던 박치우의 생애와 사상을 논하면서 20세기 전반의 역사를 해명하는 저작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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