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8

이남곡 - 화합하되 다름을 존중하며, 두루 어울리되 편을 가르지 않고, 당당하되 다투지 않는다.

오피니언 > 칼럼 > 629호 화합하되 다름을 존중하며, 두루 어울리되 편을 가르지 않고, 당당하되 다투지 않는다.

화합하되 다름을 존중하며, 두루 어울리되 편을 가르지 않고, 당당하되 다투지 않는다.
이남곡 (인문운동가)


①“군자는 화합하되 같게 하려 아니하고, 소인은 같게 하려 하되 화합하지 못한다.” 君子 和
而不同 小人 同而不和(13-23)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요즘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말의 하나이다.
세뇌나 무지나 악성 편가름 때문에 다른 사람이나 특정 집단에게 뇌동(雷同)하는 것은 자주
성을 원천적으로 빼앗기는 것이어서 진정한 사이좋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다르다. 성격, 욕망, 취향, 사회적 조건 등이 모두 다르다. 따
라서 이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특성을 존중할 때 진정으로 화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자기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를 자기의 생각이나 행동양식에 일치시키려고 한다.
자기와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한다. 자기 생각과 다른 생각을 말하면 자기를 반대하는 것으
로 생각하고 미워한다.
 이 오래된 습성에서 벗어날 것을 공자는 권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평생을 일이관지(一以貫之)했다는 서(恕)의 실천이 바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인 것이
다.
이 부동(不同) 즉 다름을 존중하는 것은 인간의 숭고지향성이라는 바탕에서 서로 같아지려
고 하는 노력이 다른 한편에 있을 때 진정한 조화를 이룬다. 즉 사람의 덕성(德性)이나 현명
(賢明)함이나 선(善)함에 있어서는 같아지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진실한 모습이다.
불선(不善)이나 불인(不仁) 조차 용인하는 것이 화이부동이나 구동존이가 아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불인(不仁)이나 불선(不善)을 보면, 자신에게 그런 것이 없는
가를 먼저 살피는 태도다. 그럴 때라야 상대를 비판하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내로남불’과 ‘네거티브’로 우리 정치를 악성 편가름의 질곡과 혼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
는 현실을 보면서  다음 구절들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다른 사람의 현(賢)을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불현(不賢)을 보면 그것이 내 자신
에게는 없는지 나 자신을 먼저 살핀다”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4-17)
“오직 인자(仁者)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다” 惟仁者 能好
人 能惡人 (4-3)

② “군자는 긍지를 가지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도 편을 가르지 않
는다.” 君子 矜而不爭 群而不黨(15-21)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의 사회성을 잘 나타내주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군자의 긍지는 아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투지 않는다.
소인의 자만은 아집에서 나온다. 그래서 아집과 아집이 만나면 다투게 된다. 이것은 진정한
당당함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이 옳다’라는 고정된 견해가 없이 ‘무엇이 진리인가’를 끝까지 구명하려
는 태도이기 때문에 비록 다투는 듯한 외형이 있는 경우라도 자신의 내면에 평정을 유지한
다.
실제로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는 것은 우리들의 실태가 아집이 많은 인간이라는
것이지 그것이 불가능한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적어도 이런 인간상을 그려보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집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편을 가르지 않는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아니면 파당을 만든다.
끊임없이 자기 본위로 생각하고 그렇게 살기 때문에 어울리지 못하거나, 어울리면 편을 가
르려고 한다.
지금은 같은 편이지만 상대편이 사라지면 같은 편 안에서 다시 편이 갈라진다.
이것이 아집의 특성이다.
작게는 개별적 삶에서 크게는 국가나 세계의 삶에 이르기까지 이런 삶이 반복되어 왔다.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 끊임없이 다투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 아
닐까.
그러면서도 실제로 자신은 그 길과는 반대로 가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조건이나 환경 탓을 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그런
상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길이 무엇일까에 대해 공자의 이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먼저 긍이부쟁(矜而不爭) 군이부당(群而不黨)하는 사람으로 되어 편가르기와 끊임없
는 다툼을 넘어서 진정으로 자유롭고 사이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지금의 위기를 넘
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가장 탄탄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③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君子 不器(2-12)
“군자는 보편적이되 편벽하지 않고, 소인은 편벽하여 보편적이지 않다.”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2-14)
그릇(器)은 고정되어 있어서 용도가 제한되어 있다. 사람이 어떤 한가지로 고정되어 교조적
이거나 편협한 인간으로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만일 어떤 정치가나 혁명가 또는 어떤 정치 집단이 이런 인간이나 집단이 된다면 그 폐해는
엄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