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6

다 괜찮다 : 연재ㅣ김경림의 ‘씩씩하게 뻔뻔하게’

다 괜찮다 : 교육 : 사회 : 뉴스 : 한겨레:

다 괜찮다
등록 :2021-01-04 
연재ㅣ김경림의 ‘씩씩하게 뻔뻔하게’

2021년 새해가 밝았다. 2020년을 맞을 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1년 동안 펼쳐졌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고, 어른들은 생계와 돌봄을 유지하느라 힘들었던 1년이었다.

지난해 작은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했다. 전교생이 30명인 시골 중학교에 다니다가 드디어 한 학년이 260명이나 되는 대도시 근처 기숙형 고등학교로 갔다. 아이는 새롭고 넓은 곳에 가보고 싶다고 했고, 나는 그 선택에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아이의 패기에 박수를 치기에는 낯선 곳에서의 적응, 입시제도에서의 생존 등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앞섰다. 코로나가 일상을 뒤덮을 줄 몰랐던 시절의 걱정이었다. 바이러스로 인한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아예 입학을 못 하는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입학을 못 하자, 입학만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겨우 입학을 하게 되고, 아이가 너무 힘들고 외롭다며 하루에 몇번씩 전화하자 어서 안정을 찾기만을 바랐다. 입학한 지 열흘 만에 중간고사 시험을 보고 실망하자 공부에도 뒤처지지 않기를 바랐다. 공부에도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게 되자 더 잘하기를 바랐다. 처음 학교에 보낼 때의 막연한 불안은 없어졌는데도 계속 바라고 바랐다. 바라는 게 충족될수록 불안이 없어져야 할 텐데,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새해가 왔다. 바이러스의 위험이 계속되고 있지만 ‘새해’란 그 속에서도 희망을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새해에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여전히 걱정과 불안이 앞서는 중에 문득 지난해 중학교 교무실에서 아이의 진학 원서를 작성할 때가 떠올랐다. 아이의 결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버릇대로 이런저런 불안과 걱정을 늘어놓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한 선생님이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시골학교 관사에 사시며 밤 11시까지 아이들과 함께 땀을 내며 농구를 하시던 선생님이었다.
“어머니, 괜찮을 거예요.” “네?” “괜찮을 거예요. 공부는 잘해도 괜찮고, 못해도 괜찮아요. 처음에 힘들겠지만 결국 다 괜찮아질 거고, 아이는 잘 살 거예요.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순간, 자동기계처럼 의미도 재미도 없이 불안과 걱정을 떠들어대던 말이 멈추었다. 불안은 현실이 아닌 미래의 일이었다.

13년 전, 온 가족이 서울에서 지리산으로 내려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뒤떨어질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아픈 아이의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우리에겐 오늘 하루 ‘사는 일’이 중요했다. 그저 하루 맛있게 먹고 즐겁게 노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13년이 흘렀다. 지금 이 자리는 기대도 계획도 하지 않은 곳이지만, 13년 전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괜찮다.
새해의 기대와 결심은 이것으로 하기로 한다. 멀리 보지 않기. 하루하루 즐겁고 따뜻하고 건강하게 지내기. 그러다 보면 내년에 또 기대하지 않은 성장과 변화가 찾아올 것이고, 그때 ‘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 애써 믿어본다.

김경림 ㅣ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저자
※ ‘김경림의 씩씩하게 뻔뻔하게’ 연재를 마칩니다. 김경림 작가님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