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5

“자비심 없이 머리만 깨달아선 ‘구제불능’ 될 수 있죠”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자비심 없이 머리만 깨달아선 ‘구제불능’ 될 수 있죠”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휴심정조현이만난사람
“자비심 없이 머리만 깨달아선 ‘구제불능’ 될 수 있죠”

등록 :2021-10-14 

【짬】 불교학회 김성철 명예회장




불교계에서는 깨달음의 다른 표현인 ‘견성’(見性·붓다의 성품을 봄)을 했다는 이들이 있다. 승가에서는 그 증거로 스승으로부터 (깨달았음을) 인가받았다는 ‘전법게’(진리를 전하는 글)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런 스님들 가운데도 행실이 뒷받침되지 않아 신뢰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다. 이에 대해 인지적 깨달음 즉 머리로만 깨달은 것은 반쪽의 깨달음일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선불교의 뿌리>(도서출판 오타쿠)를 낸 김성철(64) 불교학회 명예회장을 13일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선불교의 뿌리> 표지.

“인지만의 깨달음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아직 감성과 정서의 문제가 남아있다. 인지적 해체만이 아니라 식욕과 성욕, 재물욕, 명예욕, 교만, 분노, 질투, 원한 등의 버릇과 습관에 대한 감성적 해체가 함께해야 한다.”


‘깨달음은 한번의 승부가 아니’라는 이런 주장은 ‘깨달으면 더이상 닦을 것이 없다’는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와는 다르다. 그는 “인지적 번뇌인 ‘견혹’(見惑)만이 아니라 감정적 번뇌인 ‘수혹’(修惑)까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불경과 논서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불가에서 한방의 깨달음에 치중한 채 정서나 감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해 그는 최근 잇따라 낸 <선불교의 뿌리>, <공과 윤리-반야중관에 대한 오해와 이해>, <불교하는 사람은. 김성철 교수의 실천불교>, <중론 개정본>을 통해 감정과 정서 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만약 수행자가 감성의 정화 없이 인지의 해체에서 멈출 때 모든 가치판단이 상실된 폐인이 될 수 있다. 선과 악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다는 자만심에서 악을 행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감성적 정서적 정화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머리로만 이성적으로 깨달았다고 할 경우 구제불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행을 하는 것은 부처님처럼 되기 위해서다. 부처님을 닮으려 할 때 두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보리수 아래서 얻은 지적인 깨달음만 보기 쉽지만, 부처님은 12살 어린 나이에 밭에서 벌레를 새가 먹고 새는 더 힘센 존재에 잡아 먹히는 것을 보고 고통을 느낄 만큼 모든 생명체에 대한 자비심이 있었고, 화려한 왕궁을 버릴 만큼 세속적 쾌락을 싫어하는 염리심이 수행 전에 있었다. 그처럼 감성이 정화되지 않은 상태라면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탐심을 없애는 부정관, 분노심을 없애는 자비관, 교만심을 낮추는 하심 등의 수행을 선행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간화선이 최상승의 수행법이긴하지만, 인지적 수행에 그치는 한계도 지적했다. 이분법적인 인지와 애증(애착하고 증오함)의 감성을 모두 해체한 깨달음의 증거로 그는 자비와 지혜를 들었다. 즉 남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이타의 감정’인 자비와 ‘절묘한 분별’을 하는 지혜가 없다면 깨달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인지적 깨달음은 반쪽 깨달음
자비와 지혜 함께 있어야 진짜”
최근 출간 ‘선불교의 뿌리’서 강조
“간화선, 인지수행 치중 한계”



치과의사 하다 ‘불교학’ 전향
“한류엔 화엄 절대긍정 정신 담겨”




김 교수 연구실은 그의 부인이 운영하는 치과의원의 한 귀퉁이에 있다. 부부는 서울대 치대 동기다. 치과의사를 하다가 ‘불교학’으로 전향해 2000년부터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를 하는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주로 원격강의를 하면서 이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입하고 있다.

정년을 1년여 앞두고 댓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도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는 그는 이 시대의 오타쿠가 틀림없다. 젊은 시절 좋아한 술도 끊고 오직 연구에만 힘써 온갖 학술상을 휩쓸었던 그는 분노와 탐욕, 교만과 같은 감성적 번뇌를 치료하는 데도 붓다의 가르침을 최고의 처방으로 제시한다. 그는 금강경에서 강조하는 ‘반야’(깨달음의 지혜)를 절대부정으로, 화엄경의 화엄을 절대긍정으로 비교한다. 그는 “만약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부정의 반야사상’으로는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조언하고, ‘절대긍정의 화엄사상’으로는 ‘실은 누구나 다 그래’라고 말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우리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한민족이 해체와 긍정으로 새로운 문명을 이끌기 시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해 4·19혁명 60돌을 맞아 ‘4·19혁명과 서양의 저항운동’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기성세대의 욕심으로 젊은이들을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에서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서구 가치관에 대한 1960~70년대 저항운동의 시작이 4·19혁명이라고 탄허 스님이 생전에 말씀했는데, <뉴욕타임스> 등 당시 미 언론들을 보니 모두 4·19를 1면 톱 기사로 보도했다. 미 학생운동 조직으로, 저항운동의 시작점이었던 ‘민주사회학생회’ 지도자인 토머스 헤이든도 ‘이승만 하야 이틀 뒤 민주사회학생회 첫 회의를 열었다’고 회고했다.”

이를 시작으로 비틀스와 스티브 잡스 등 서구 젊은이들이 인도사상과 선불교에 심취하고, 반전운동과 인종차별철폐운동, 페미니즘, 동물해방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저항과 해체에서 한발 나아가 화엄의 절대긍정으로 세계 정신을 새롭게 이끄는 게 바로 한류”라고 설명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종합하고 회통하는 화엄의 특성이 있다. 전문가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속셈부터 태권도, 미술, 피아노까지 온갖 것을 배우고 종합해야 직성이 풀린다. 회통을 통해 편벽됨을 넘어서 휴머니즘의 인간성을 지향한다. 그래서 일부 퇴폐적이고 술수가 난무하는 ‘미드’와 한류는 많이 다르다. 방탄소년단 음악은 서구 학부모들이 더 좋아할 정도로 가사가 긍정적이다. <프리즌 브레이크>같은 ‘미드’와 달리 한류 드라마엔 휴머니즘이 있어 인류에게 희망을 준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연재조현의 휴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