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0

希修 < 초기불교와 기타 영적 전통들 간의 차이 #5. Personal vs. Imperson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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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 초기불교와 기타 영적 전통들 간의 차이 #5. Personal vs. Imperson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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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미국 역시 코로나 이후 무료 급식소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빈곤층을 위한 교회 봉사활동에 다녀왔다면서 "우리가 이렇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바로 코로나가 가져온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글을 어떤 분이 페북에 쓰신 적이 있다. “고작 당신의 보람을 위해 神이 그분들을 빈곤층으로 만든 것이라는 말씀인가요?”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A의 일을 B가 시간, 노력, 재능을 들여 도와 준 것에 대해 "부처님이 B를 통해 나를 도와 주셨다"고 기뻐하는 분을 볼 때도, “제가 알기로는 부처님은 인간사에 관여 안 하시는데요. B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느끼기는 하시는 것인가요?” 역시 묻고 싶었지만 또 참았다.. 이놈의 삐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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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저런 수준의 욕망은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영적 전통들에서는 각 존재와 삶/우주 사이에 무척 personal한 관계를 상정한다. 이 세상의 개별 존재들은 바다에서 파도가 칠 때 공중에 떠오른 물방울 하나 하나와도 같고 물방울과 바다 사이의 차이는 착각/착시에 불과하건만 그 물방울은 자신이 본질적으로 바다 ('Consciousness' = 비인격적 神) 임을 이해하지 못 한다, 라는 것이 바로 베다전통의 전제. 각 존재들이 神의 속성을 갖고 있는 神의 일부라고 믿는 종교들은 이외에도 많으며, 자신의 간절한 바람에 神/우주가 응답할 거라는 믿음은 제도종교들의 영향력이 줄어가는 현대에도 여전히 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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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에 대해 초기불교는 "그 믿음의 근거는 무엇이지? 자신이 본래 특별한/神性한 존재라고 믿고 싶은 그 마음의 정체는 무엇인지?"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묻는다. (자신들 포함 모든 생명체와 지구 자체까지 오로지 파괴만 하는 유일한 種이 바로 인간이건만, 스스로 "우리는 본래 선하다/신성하다" 주장하는 종 역시 인간뿐이라는 이 아이러니.) "너를 사랑으로 품어 줄 테니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고 말하는 '자비로운' 이가 초기불교에는 없다. 인과의 법칙은 각 개별 존재의 상황에 대한 정상참작도 예외도 없이 돌아가며, 심지어 부처님조차 우리를 위해 아무 것도 못 해 주신다. 다른 존재들을 위해 부처님이 하신 일은, 윤회라는 이 함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을 남겼다는 오로지 그 하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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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儀式이 업을 거스르지는 못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SN 42.6). 
"Phenomena are preceded by the mind, ruled by the mind, made of the mind."라는 법구경(Dhp I) 구절은 
분명 물질세계에 미치는 정신의 힘을 인정하지만 인과의 한계를 넘지 못 하며, 
업을 초월하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 노력해서 스스로 성취하는 해탈뿐. 

베다전통과 그 아류들에서의 수행이라는 것은, 명상을 하면서 'I am,' 'I am'하고 되뇌임으로써 자기 안에서 잠자고 있는 神性을 깨우는 것. ('I am X'라고 하면 나의 정체성은 X로 제한되는데 神은 무한하기에, 그래서 'I am'이라고만 하는 것.) 

하지만 초기불교는 정반대로 각 문장 (생각이라는 것도 실은 머릿속에서 자기 자신과 나누는 대화)에서 '나(I)'라는 단어는 최대한 defocus, blur 처리할 것을 가르친다 ('not self'/'no conc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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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얘기를 어떤 분들은 폄하의 의도를 갖고서 하신다. 그러나 오직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삶과 대면해야 하고 나와 personal한 관계의, 나를 사랑으로 지켜봐 주는 神/우주 같은 것을 초기불교는 인정 않으니, 그런 면에선 저 말도 맞는 얘기. 
초기불교에서 ‘보살’은 부처/아라한의 해탈 이전 시기를 가리키는 단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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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한 오해 #8. 무아는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뜻'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323204904718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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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와 윤회'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15007984869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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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입니다. 길가의 풀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 하루 삶에 만족 못하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 법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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